바빌론의 강물 (1)
10. 바빌론의 강물 Rivers of Babylon (1) – 보니 M. (1978)
이왕 신대륙 개척민을 모집하는 길에, 아예 피사 공의회를 통해 온 유럽에서 개척민을 모집할 권리를 인정받는 게 어떻겠냐는 지기스문트의 제안.
자신의 위신이 프라하 유수로 인해 실추된 만큼, 나머지 군주와 성직자들의 위신도 깎이면 된다는 나름 합리적인 판단에서 나온 제안이었다.
“그리고 우리로서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우리가 사람들을 모으는 걸 막으려는 이들에게 명분이 쥐어지는 걸 미리 막을 수 있을 테니까요.”
“더구나 모든 계산은 지기스문트가 대신 해주기로 했으니, 남의 돈으로 세상 구경하는 것이라오.”
백송고리 용병단과 보헤미아 용병들, 프라하 민병대 대표들까지 모은 자리에서 시그리드와 스베인이 각각 말했다.
후스를 따라, 그들이 나고 자란 땅을 아예 떠날 각오를 한 이들 – 지기스문트를 사로잡고 그의 사과를 받아낸 이후로는 수가 꽤 줄었다 – 은 망설임 없이 따르겠노라 손을 들었다.
또한 보헤미아에 남기를 원한 이들 중에도, 조금은 더 이 흥미진진한 생활을 이어가고 싶던 사람들이 적잖이 손을 들었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신대륙까지 기꺼이 갈 마음을 먹은 지슈카 역시, 이번에도 어김없이 따라나서겠노라 공언했다.
“도와줄 수 없게 되어 미안하구나.”
반면 얀 후스처럼 난색을 표하는 이도 있었다.
후스는 이미 공의회에서 이단 혐의를 벗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버렸기에, 자신이 따라간다면 오히려 시그리드의 발목만 잡을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괜찮아요. 어차피 누군가는 이곳에 남아서 이주 준비를 총괄해주어야 했으니까요.”
교회의 부정한 재산과 그렇지 않은 재산을 구분하는 일 역시, 자칫하면 허울만 좋은 약탈행위로 전락할 수 있는 노릇이었다. 이번 십자군 소동을 겪으며 보헤미아 전역의 모든 교회가 좋든 싫든 귀 기울일 수밖에 없는 자리에 오른 후스가 보헤미아에 남아있는 쪽이 여러모로 나았다.
“그리고 피사에 도착하면 지기스문트 폐하의 편을 드는 학자분들도 많이 있을 거라고 들었어요. 그분들 도움을 받으면 되지요.”
그들은 진심으로 지기스문트를 따른다기보다는 지기스문트의 권력과 재산을 따르는 이들이었지만, 어차피 피사에 모여든 학자와 성직자 중 열에 아홉은 대개 저들의 논리를 대가를 받고 파는 자들이었으니 별 상관은 없었다. 차이가 있다면, 그 매매를 대놓고 하느냐, 은밀히 하느냐의 차이뿐일 테다.
“후스 선생님, 걱정 마십쇼. 제가 이 땅의 이치를 잘은 모르지만, 논쟁에서 최고의 달변이란 결국 뒤에 가장 강한 군대를 거느린 자들이 걸머쥐는 영예인 것 같더군요. 우리네 그린란드 연대가 시그리드와 함께하는데 누가 감히 함부로 우리 시그리드에게 언쟁을 걸겠습니까?”
스베인이 딴에는 맞장구친답시고 곁에서 거들었다. 후스는 안도하면서도, 그 말에 반박하지 못하는 현실에 은근히 개탄하였다.
프라하에서 피사로 가는 길은 제법 멀고 험난하였다. 거리도 거리지만, 중간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알프스 산맥이 가장 큰 이유였다.
우선은 남쪽으로 직행해 오스트리아 공국으로 진입하고,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린츠와 잘츠부르크를 경유하여야 했다. 거기서 인스부르크와 트리엔트를 거치는 고갯길을 넘은 뒤에야 이탈리아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의 초입, 오스트리아 공국과 보헤미아 왕국의 경계를 지나기 직전에 부데요비체Budejovice, 독일어로는 부트바이스Budweis라 부르는 도시가 있었다.
그 도시 외곽에 느닷없이 나타나 진을 치고 있는 작은 군대가 있었는데, 비단 깃발뿐 아니라 종종 그 진영 위를 날아다니는 백송고리 한 마리 때문에도 도시 사람들은 그 군대의 정체를 잊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정식 명칭으로 그린란드 연대를 자처하게 된, 백송고리 용병단과 얀 지슈카의 보헤미아 용병들, 그리고 프라하에서부터 따라온 민병대 대원들의 부대.
지슈카 집안의 가재 문양과 후스파의 성작 문양, 그리고 그린란드의 백송고리 문양까지 섞인 잡탕 깃발만큼이나 잡탕인 구성이었지만, 그 실력만은 이미 여실히 증명되었기에 부데요비체 시에서는 그저 전전긍긍할 뿐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부데요비체 시의 유력자들 태반은 그들 뒷배인 로젠베르크 가문을 믿고서, 돈놀이를 통해 근처의 하급귀족들이 지닌 농지를 헐값에 사들인 자들이었다.
그리고 부데요비체 시 인근에는 트로츠노브라는 마을이 있었고, 그 마을에는 한때 얀 지슈카라는 의리는 넘치고 재운財運은 없는 애꾸 청년이 하나 살았으며, 부데요비체의 탐욕스러운 상인들은 그 청년 역시 예외 없이 벗겨먹은 바 있었던 것이다¹.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것도 없지 않소? 저 도시 안에 들어가서 혼쭐들 내 줍시다. 그때 어르신네 농장 빼앗은 놈들더러 일가친척 거느리고 나와서, 무릎 꿇고 가진 것 다 바치라고 시원하게 윽박질러줘야지.”
스베인이 선뜻 나서서, 저의 선조들의 지혜 한 토막을 꺼냈다. 사실 선조들을 제대로 본받는다면야 굳이 뭘 내놓으라 할 것도 없이, 원수 머리통을 쪼갠 뒤 그 소유한 바를 알아서 챙겨가면 그만이었지만.
“아니, 그럴 것은 없소. 나는 그저 내게 불의를 행한 자들에게 교훈만 주면 족하다오. 이제 와서 복수랍시고 그들에게 굴욕을 준다 한들 무엇이 바뀌겠소? 오히려 죄없는 그 자식들이나 근처의 선량한 시민들만 피해를 보기 마련이지.”
확실히 그 교훈은 전달되었을 것이다. 프라하를 떠나기 전 미리 부데요비체로 사람을 보내, 오스트리아로 넘어가기 전 이곳 부데요비체에서 먼길 떠나기 전 마지막 준비도 할 겸 사흘간 숙영할 것이니 숙영지와 식량을 준비하라 – 그리고 모든 관련 비용은 보헤미아 국왕 지기스문트 폐하께 청구하라 – 한 것이다.
그러니 지금쯤 저 도시 안에는 앉아도 좌불안석이요 누워도 전전반측인 자들이 꽤 많을 테다. 언제 도시 밖의 그린란드 연대가, 프라하에서 지기스문트를 사로잡더니 이제는 아예 그 요청을 받아 피사까지 가게 된 무리가 저들의 터전 안으로 들어와 난리를 일으키지 않을까 두려워하면서.
굳이 그때의 원한을 일일이 설욕하느니, 이렇게 성벽 안쪽에서 알아서 두려움에 떨게끔만 만들어도, 부데요비체의 탐욕스러운 유력자들은 사람을 함부로 대했다간 큰일날 수 있음을 깨달으리라. 그렇게 지슈카는 생각했다.
그 생각이 얼마나 들어맞을지는 아마 앞으로도 알기 어렵겠지만, 적어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 된 부데요비체의 유력자들이 어떻게든 지슈카와 그린란드 연대의 환심을 사려고 애쓰려 하는 것은 사실인 듯했다.
미리 준비해놓으라 하였던 숙영지 자리에, 온갖 먹거리와 더불어 맥주통이 수북이 쌓여 있던 것이다.
그날 밤 벌어진 성대한 저녁식사 겸 술잔치는 제법 흥겨웠다.
술에 맛 들인 그린란드 사내들과 맥주 좋아하기로는 독일인과 유럽 제일을 다투는 보헤미아 사람들은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소시지나 죽 대신 술로만 배를 채웠다.
그리고 평소에는 그저 목만 적시는 정도로 술을 마시던 지슈카도, 고향 근처에 이렇게 돌아온 데는 나름의 감상을 품지 않을 수 없었는지 꽤 많이 맥주를 들이키고 있었다.
처음부터 저를 따랐던 이 주변 숲의 도적 출신 부하들과 골고루 대작을 하다가 얼굴이 벌게진 지슈카가, 조용한 곳에 홀로 앉아 이 떠들썩함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맥주 홀짝이던 시그리드 앞으로 다가와 털썩 걸터앉았다.
“맛이 어떠니?”
“솔직히 아직 술맛은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이 맥주는 제법 괜찮은 것 같아요.”
“그 옛날 오토카 2세 시절부터 빚어왔던 맥주란다. 주변에서는 꽤 유명하지.”
아마 이게 욘이 종종 그립다고 노래를 부르던 그 ‘버드와이저Budweiser’일 것이다. 시그리드는 문득, 신대륙으로 건너갈 때 이 도시에서 맥주 양조하는 이 한둘쯤 데려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품었다.
“저 도시가 정말로 원망스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지슈카가 달빛 받아 아련히 빛나는 성벽을 보며 말했다.
“젊은 눈에는, 저곳이 마치 세상의 모든 악을 다 모아놓은, 소돔과 고모라보다도 사악한 곳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빚을 갚으라는 독촉을 받아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집안의 땅이 그만큼 줄어들어 있었으니까.”
“그러면 지금은 어떠신가요?”
“이제는 원망하진 않는다. 그때의 그 악행이 오롯이 저 도시의 탐욕스러운 상인들만의 잘못이 아님을 아니까.”
결국 용병 겸 도적으로 전락한 지슈카는, 그때 이후로 많은 일들을 겪었다.
그리고 넓어진 견식으로 다시 세상을 바라보자, 비단 부데요비체뿐 아니라 온 세상이 망가져가고 있는 것이 그 밝은 외눈에 들어왔다.
언제부터인가, 소위 말하는 ‘좋았던 옛날’과 같이 평화롭고도 여유롭게 삶을 영위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누군가는 군주들이 전쟁을 벌이기 때문이라 하고, 누군가는 영주들이 세금을 더 많이 걷기 때문이라 하였으며, 또 누군가는 상인들이 옛날보다 더 탐욕스러워졌기 때문이라 하였으며, 누군가는 농노들이 저의 조상들보다 게으르기 때문이라 하였다.
“아마 후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교회가 올바른 길을 잃으면서 다른 이들을 계도하는 지혜마저 상실한 탓이겠지.
더구나 신대륙으로 떠나기로 한 지금은 굳이 더 원망할 이유도 없지 않겠느냐. 시그리드 네가 세울, 그 새로운 대륙의 새로운 나라. 거기에는 귀족도, 고리대금업자도, 유대인도, 부패한 성직자도 없이, 모두가 함께 일하고 함께 누리며 살아갈 테니까³.”
지슈카가 그간 잘 밝히지 않던 속마음을 술기운을 빌어 꺼내자, 시그리드의 입술은 뭔가 말대꾸를 위해 벌어졌다가 그대로 굳었다.
“어...?”
생각해보면, 저는 한 번도 신대륙에 어떤 나라를 세우겠노라 공언한 적이 없었다.
그저 모두가 자기 자신으로서, 자신의 꿈을 위해 간섭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땅. 이교도 콜그림과 이단 후스, 그리고 큰겨울 핌불베트르 앞에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켰던 파울 신부가 함께 살아가는 땅을 그렸을 뿐.
하지만 그런 땅은 세상에 절로 존재할 수 없는 법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상 규칙이 필요하고, 모든 재화를 홀로 생산할 수 없는 이상 시장이 필요하며, 규칙과 시장이 존재하는 이상 그들 모두를 제어할 권위가 필요하였다.
거기에 대해 그저 ‘바라는 바를 마음껏 이룰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땅’이라 둘러대며 넘어갔으니, 어찌 지슈카와 같은 이들이 자기 머릿속의 모습을 제멋대로 가져다 붙였다 하여 그들을 탓할 수 있을까?
그러나 시그리드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아직 피사까지는 갈 길이 많이 남아 있었고, 그동안 고민하면 될 일이었으니까.
허나 시그리드는 자신의 행적이 나머지 유럽에 얼마나 빨리, 그리고 얼마나 큰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남쪽으로 천천히, 처음 보는 ‘하얀 사람들’이 떠다니는 섬을 타고서 해안을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는 신대륙의 동해안부터, 시그리드의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경망스러우면서도 음험한 웃음이 울려퍼지곤 하는 덴마크의 로스킬데까지.
피사 공의회의 결과만을 지켜보고 있다가 뜻밖의 전개에 눈이 휘둥그래져 남쪽으로부터의 소식만 기다리게 된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그리고 어떻게든 프라하에서 ‘인쇄’되어 나오는 책들에 적힌 놀라운 지식을 얻어보고자 모든 연줄을 총동원하고 있는 유럽 전역의 대학들까지.
심지어, 이번 피사 공의회에 로마인들의 황제 마누일 2세의 밀명을 받고 참석했던 학자 겸 외교관 마누일 흐리솔로라스가 급히 돌아와 황제를 접견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사태에 얽힌 모두가 이 은발 여인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귀를 기울였고, 어찌하면 거기서 자신이 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 나아가 그 모든 변화들이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폭풍은 피사로 다가오고 있었다.
교황 특사이자 프라하에서 잊지 못할 경험을 한 바 있던 장 제르송 박사가 급히 파리 대학으로 향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지금처럼 좋지 않은 시기를 골라서 오시기도 어려울 텐데요.”
“그러니 이렇게 검소한 행색으로 찾아온 것 아니겠소.”
피사 공의회에서 교황 둘을 폐위하고 새로 하나를 세우는 위업을 달성하면서, 장 제르송을 비롯한 공의회주의자들의 위상은 크게 높아졌다.
문제는 그만큼 제르송의 적들 역시 더욱 벼르고서 그를 노리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이것이 그가, 파리 대학의 몇몇 친분 있는 교수들을 대학 강의동이 아닌 근처의 한 여관에서 만나고 있는 까닭이었다.
물론 검소한 행색으로 찾아온 건 제르송 혼자였고, 나머지는 ‘나 교수요’하는 티를 역력히 드러내고 있었지만.
“선생님. 진지하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먼길 오시느라 고생하셨고, 아직 여독도 풀리지 않으셨을 것임을 잘 알지만... 오늘 중으로 떠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제자 출신 교수 하나가 그리 말하자, 제르송과 친분이 깊은 이들이 걱정하는 기색으로 동조했다.
“그 정도인가?”
“예. 그 정도입니다. 곧 부르고뉴파가 뭔가 엄청난 일을 벌일 것이라는 소문이 대학가에도 잔뜩 퍼져 있습니다. 그만하면 이미 알 사람은 다 안다는 뜻이지요.”
잉글랜드의 위협이 잠시 잦아들자마자 프랑스는 내분에 빠져들었다⁴.
그리고 이 무렵에는 부르고뉴파와 아르마냑파 사이에 곧 뭔가 험악한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이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아르마냑파는 잉글랜드에 영토를 바치며 중립을 약속받았고, 부르고뉴파는 그 유명한 덴마크 용병대를 고용했다. 양쪽 모두 충실한 추종자들에게 반대편을 공격할 것을 주문했고, 프랑스 각지에서 산발적인 폭력 행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일찍이 부르고뉴의 무외공無畏公 장 1세가 국왕의 동생이기도 한 루이를 파리 저자에서 암살한 것을 맹렬히 비판하여, 부르고뉴파에게서 크나큰 원한을 사게 된 장 제르송은 그런 폭력의 대상으로 최적이라 할 만했다.
학자로서 명성은 지극히 드높았지만, 그 자신을 보호할 군대는 가지고 있지 않았으므로.
“에이, 그럴 것까진 없지 않소? 우리 또한 제르송 선생께 여쭤볼 바가 허다한데...”
“옳소. 예컨대, 프라하에서 그 시그리드 리프트라사를 직접 만나보셨다 하지 않았소? 혹시 우리에게 귀띔해줄 만한 다른 지혜를 들으셨다던가...”
허나 제르송의 안위보다는 저들의 세속적 성공을 더 중히 여기는 교수들은 욕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아니, 어찌 그런 것을 물으십니까?”
“그럼 우리가 안 묻게 생겼소? 흑사병을 물리쳤다지 않소? 이미 그 ‘시대상’을 어떻게든 구해본 쪽에서 비슷한 방식을 시도해보고는 효험을 보았다는 소문이 자자하오.”
“어디 그뿐인가? 가장 먼저 그 독소virus라는 것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는 자는 엄청난 명성과 부귀를 누리게 될 터인데.”
“지금 그 출판술이라는 것을 담은 ‘일요일의 프라하’도 상인들 사이에선 부르는 게 값이오.”
제르송으로서는 답답한 일이었다.
시그리드 리프트라사가 피사로 오게 되면, 그 신대륙 개척이 과연 옳은 것인지, 어찌하면 그것을 모두에게 이로우면서도 올바르게 수행할 수 있을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게 될 터였다.
그 일은 평생 학문에 힘써온 제르송마저도 홀로 감당하기 벅찬 논쟁일 터. 어떻게든 그 사정을 알리고 우군을 얻어 피사로 돌아갈 심산이었다.
허나 그런 얘기를 꺼낼 겨를도 없이 그의 벗들은 속히 파리를 떠나라 하고, 벗이 아닌 자들은 신대륙은 모르겠고 시그리드 얘기나 더 해보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골머리를 앓고 있던 차, 여관 1층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내 꺼지라고 안 했던가!”
“왜 그러시오? 난 그저 내 돈을 찾으러 왔을 뿐이오!”
“어허! 이곳은 파리 대학의 저명한 교수님들도 찾으시는 곳이다! 네놈 따위가 들어올 곳이 아니라고! 하여간 촌뜨기들은...”
자신 역시 농민의 아들이었던 제르송은 가만 들어줄 수 없었다. 다른 교수들에게 마저 논쟁하라 해놓고는, 교수의 로브를 입고 있는 벗 하나만 데리고서 1층으로 내려갔다.
“무슨 일이오?”
“아이고, 교수님. 별일 아닙니다요.”
반면 딱 보아도 진짜 시골뜨기 같은 인상의 농민은 제르송을 붙잡고 항변하였다.
“나리, 이 여관 주인장이 분명 오늘 아침에는 제게 방을 빌려주더니만, 지금은 안 된다고 하지를 않나, 숫제 윗층에 있는 제 짐도 못 챙겨가게 하고 있습니다요. 거기에 제가 챙겨온 은화고 뭣이고 다 들어있는데...”
파리 대학의 저명한 교수들 – 심지어 개중 하나는 장 제르송이라고까지 하지 않던가! - 이 자신의 썩 훌륭하다고는 하기 어려운 여관을 찾아준 데 고무된 여관 주인이, 훗날 이 일을 두고두고 저의 장삿속 차리는데 써먹을 심산으로 과한 욕심을 부린 모양이었다.
뭔가 엄청난 고담준론을 나누고 있는데 그 곁 복도로 냄새 나는 농민이 지나가면 기껏 찾아온 여관에 안 좋은 인상만 받고 떠날 것이라 지레짐작하였을 테다. (그리고 제르송이 아는 몇몇 교수들의 인성에 비춰보건대 충분히 있음직한 일이었다.)
제르송은 여관 주인과 왈가왈부하는 대신, 농민의 어깨를 잡고 계단으로 이끌었다.
“방을 빌려주는 것은 주인 마음대로니 어쩔 수 없소. 허나 짐은 챙겨갈 수 있어야겠지. 자, 따라오시오.”
“아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언뜻 지나가며 살피니, 아직도 제르송을 당장 떠나보내자는 쪽과 며칠간 모시면서 귀한 얘기 들어보자는 쪽 사이에서 언쟁이 이어지고 있었다.
약간의 궁금증, 그리고 그 언쟁에 휘말리기 싫다는 약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제르송은 농민이 저의 보잘것없는 짐을 챙기고 나오는 길에 함께 따라나왔다.
“그런데 이곳 파리에는 무슨 일이시오?”
“에고, 앞서 도와주신 것도 감사한데 쇤네 같은 것 사연까지 마음 쓰실 게 있겠습니까.”
그래도 몇 번이고 더 캐묻자, 농민은 주춤주춤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나름 파리까지 올 만한 여력은 있는 농민답게, 말투가 투박하긴 해도 조리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그, 쇤네 사는 조그만 마을은, 주변이 온통 부르고뉴파 영주들로 둘러싸여 있는지라 딱 뭔가 난리가 나기 좋은 데입죠.”
허나 그래본들 물정 모르는 시골 사람인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부르고뉴고 아르마냑이고, 요즘 같은 시기에 도시에서 함부로 저의 성향을 밝혔다가 자칫 큰일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듯한 농민이었다.
“당연히 높으신 분들께서 싸우시면 그런가보다- 하고, 얼른 피난 갈 준비나 해야 하겠지요.”
“슬프지만, 그것이 현실이긴 하오.”
“그런데 얼마 전에 이상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상한 얘기라?”
“예. 아들녀석과 함께 랭스Reims에 양 팔러 가는 길에, 마차 바퀴가 수렁에 빠진 상인 하나를 도와주게 되었습니다. 그 덕에 요즘 주변 소문을 좀 얻어들을 수 있었습죠.
헌데 요새 상인들 사이 떠도는 소문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저기 멀리 보헤미아에서, 세상에, 어떤 처녀가 흑사병과 맞서 싸워서 이겼다는 겁니다. 그러고서는, 바다 건너에 그런 고난이 없는 새 세상이 있다고 했다더군요.
그 모든 얘기를, 무슨 마법으로 몇백 몇천 권 책으로 만들어서 온 세상에 퍼뜨렸는데, 그 책 중 한 권을 용케 구해서 살 사람 찾으러 랭스로 가는 길이라는 겁니다.”
“헌데 그 얘기랑 파리까지 먼길 온 것 사이에 무슨 관련이 있소이까?”
‘관련’이라는 말 뜻을 모르는 듯하기에, 한 번 더 풀어서 설명해주는 제르송이었다.
“그게... 아무래도 우리 프랑스에서 가장 소문 밝고 사람도 많은 곳이 파리 아닙니까요. 그 소문이 참인지, 만약 그렇다면 그 바다 건너까지 간다는 배편을 구할 수 있을지 알아보려고 큰맘 먹고 왔습죠.
만약에 사람의 힘으로 흑사병 같은 것도 이겨낼 수 있다면, 전쟁이라는 것도 꼭 앉아서 당해야만 하는 건 아니지 않겠습니까요?”
여전히 제르송을 어렵게 대하면서도, 자신의 얘기가 이 사람이 베풀어준 호의에 조금이라도 보답이 되길 바라면서 내놓는 진솔한 대답.
그 속에 담긴 어떤 각오와 결심을 느꼈기에, 제르송은 차마 이 농민의 어리석음을 함부로 탓할 수 없었다.
농민에게는 역병도, 전쟁도 다 같은 천재지변의 일종이었다. 그러므로 이런 논리의 비약이 가능했으리라.
그리고 이런 물정 어두운 농민조차, 시그리드 리프트라사가 퍼뜨린 이야기의 조각만 전해듣고서도 큰 마음 먹고 파리행까지 결심할 만큼, 이 세상은 괴롭고 어지러웠다.
그간 이 농민처럼, 그저 눈앞에 아무런 대안이 보이지 않았기에 묵묵히 세상의 가혹함을 참고 견뎠을 뿐인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지금껏 제르송 자신이 그 혼란을 종식하는 데 일조하였노라 자부하고, 또 아직은 세상이 그럭저럭 질서를 되찾을 기미가 있다고 안도하였던 것은, 그저 이런 농민들의 속마음을 모르고서 스스로 속여왔던 데 불과하지 않을까?
자신은 나름대로 그 혼란을 종식하는 데 일조하겠노라며, 지금까지 파리 대학의 교수로서, 그리고 온 공의회를 뒤흔드는 위대한 학자로서 자부해 왔건만, 과연 지금껏 최선을 다했다 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제르송 또한 자신이 아는 바대로, 진솔하게 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배편은 여기는 없소. 저 폴란드의 단치히나, 엘베 강어귀의 함부르크로 가면 그린란드 회사라는 곳에서 운영하는 배편이 있다 하였소이다. 그 회사와 도시들 사이에 약조된 바가 있어서, 신대륙으로 가겠노라 하는 이들은 무조건 받아들인다고 하였소.”
“단치히... 함부르크... 그린란드 회사...”
글을 알지 못하는 농민은 그저 머릿속에 외워질 때까지 열심히 그 세 이름을 외웠다.
“허나 이 사람 역시 그저 풍문으로만 들은 것이라서, 확실치는 않소이다.”
“아이고, 그래도 그렇게 알려주시는 게 어디입니까요. 이것만 해도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고 다니기엔 족할 겝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잊지 않을게요...”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 반복하다가, 또 그 세 이름을 마저 반복하다가. 그렇게 농민이 중얼거리는 사이, 제르송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파리에는 마른 벼락이 자주 치나 봅니다.”
“아니, 벼락이 아니오.”
제르송은 이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아는 정황이 머릿속에서 착착 맞추어지자 소리의 정체를 족히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머스킷...”
부르고뉴파가 뭔가 엄청난 일을 준비하고 있다고, 자신을 맞이한 교수들은 말했다.
그리고 부르고뉴파는 덴마크 왕 에릭을 끌어들여 그가 운영하는 용병단을 저들 땅에 받아들였다고도 했다. 오직 물정 밝은 몇몇만 아는 사실이었지만, 이번 일에서 중립을 지키겠노라고 한 잉글랜드가 몰래 뒤에서 부르고뉴파와 덴마크 사이를 중계해주었던 것이다.
꼭 용병단이 파리에 들어올 것도 없었다. 제르송이 튜튼 기사단에게 들은 바와 스스로 알아본 바를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그 머스킷이라는 무기를 판 다음 며칠간 훈련만 시켜주어도 충분했을 테다.
“도망쳐라! 놈들이 사람을 죽인다!”
곧 거리 곳곳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 비명을 즐기는 듯한 외침.
“우리는 무외공 장 각하를 따르는 박피단ecorcheurs이다! 무외공을 따르는 정의로운 시민들은 두려워할 것 없다!⁵”
“하하! 무외공을 욕하던 놈들도 두려워할 건 없다! 어차피 네놈들이 어디로 도망치든 우리 손에 죽을 테니까!”
박피단. 시몽 카보슈라는 파리의 도축업자가 꾸린 부르고뉴파 폭력단. 그들이 파리에서 행패를 부리는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정도까지 대담한 폭동을 벌일 줄은 몰랐던 제르송은, 그만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야 말았다. 결국 그도 다른 교수들과 마찬가지로, 서한과 강단에서의 논설로 하는 형태의 싸움에만 익숙한 서생이었으므로.
“자! 어디 벼락 맛 좀 봐라!”
골목 입구에서 총성이 울리더니, 부리나케 달아나던 사람 하나가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곧 그쪽에서 사람 여럿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쪽이랬나?”
“맞소, 형님. 우리네 끄나풀 하나가 그리 말했소.”
“좋아. 자, 들어라! 우리 무외공 각하를 모욕한 괘씸한 놈이 저기 여관에 묵고 있단다!”
정말로 제르송을 미워하는지, 아니면 그저 저들을 버러지처럼 보던 자들을 버러지 신세로 만들어줄 생각에 기뻐할 뿐인지 알 수 없는 폭도들이 그 뒤에서 따라 외쳤다.
“제르송! 이 도시의 잘나신 분들께서 그토록 찬양한다는 장 제르송!”
“제르송! 나와라! 제르송! 어디 그 잘난 면상이나 보자꾸나!”
여전히 제르송이 두려움에 얼어붙어 있는 사이, 농민이 잽싸게 움직였다.
“억!”
“미안합니다, 나리. 좀만 참으십쇼.”
저쪽 폭도들이 못 볼 만큼 잽싸게 몸통박치기로 제르송을 옆 진흙탕에 자빠뜨린 농민이, 곧 그를 일으켜 세웠다.
“하하하! 저놈 저거 봐라! 제 발로 자빠졌다!”
저들의 힘에 도취되어, 신나게 걸어오던 폭도들이 깔깔 웃었다.
“헤헤, 죄송합니다. 저희 사촌이 좀 모자라서요. 나리들 당당하신 걸 보니까 무서워서 이렇게 고꾸라졌지 뭡니까.
아이고, 이놈아. 가뜩이나 인물도 못난 놈이 이렇게 진흙이나 덕지덕지 바르고 있으면 어떡하느냐.”
폭도 중 하나가 물었다.
“이봐, 너는 이름이 뭐냐? 어디 사는 누구고?”
“무외공 각하 만세! 소인은 그분의 은덕만 믿고 사는 놈입니다. 여기 파리에 사는 게 아니라, 이 못난 사촌 보려고 멀리 시골서 찾아왔습죠.”
“그래? 시골 어디?”
“소인은 멀리 바르Bar 공작령에서 찾아온 자크입니다. 여기 이놈 이름은 장이고요.”
“장? 제르송 그놈이랑 이름이 같구만.”
그러자 눈치껏, 제르송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자크였다. 농사일로 단련된 힘에 또 한 번 제르송은 진흙탕에 고꾸라졌다.
“헤헤, 감히 무외공 각하를 모욕했다는 악한과 이름이 같다니 괜히 괘씸해서 소인네가 대신 벌을 줘봤습니다.”
“거 기특하구만.”
“그래, 잘 했다.”
주변에서 또 한 번 키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형제들! 우리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소! 얼른 그 여관에 가서 제르송 그놈을 끌어냅시다!”
“옳다! 가자!”
“제르송, 나와라! 제르송!”
그렇게 폭도들은 여관으로 들어갔고, 곧 당황한 채로 끌려나오는 – 그러나 제르송 본인은 아니었기에 조금 얻어맞기만 하고 풀려나는 – 파리 대학의 교수들이 보였다.
“고맙소.”
“별 말씀을요. 그보다 얼른 도망치시지요. 우선 파리를 벗어나서, 랭스까지 같이 가시지요.”
자크의 말에, 제르송은 별 이견 없이 따랐다.
온통 난리가 난 파리를 겨우 빠져나온 제르송과 자크는, 운 좋게 랭스로 가는 마차를 얻어 탈 수 있었다. 파리에서 도망치는 아르마냑파 사람들은 죄다 오를레앙이 있는 남쪽으로 도망쳤기에, 부르고뉴파 본진이 가까운 랭스 방면으로 가는 이는 드물었던 것이다.
자크는 한사코 보답은 필요 없다 했지만, 제르송은 미안해서라도 자신이 그린란드 회사에 대해 아는 바를 모두 털어놓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중 많은 부분은 이미 자크도 들어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 역시 자크에게는 뜬소문이라고만 여겼던 것을 제르송의 입으로 확언받는 것이었기에 나름 의미가 있었지만.
도대체 어디까지 퍼져나간 것인지, 그리고 바짝 마른 지푸라기 가득한 들판에 불씨를 놓은 자와, 애시당초 날씨가 건조하다는 것을 모르고서 지푸라기를 그 바닥에 그득하니 내버려둔 자 중 누가 더 잘못이 큰지를 두고 제르송은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나 그런 고민은 결국 무의미한 것이었다. 이미 퍼진 불길이 적어도 밭은 비옥하게 만들어줄 수 있도록, 그 다음의 일을 논하는 것이 마땅하리라.
프라하에서 만났을 때와는 사뭇 달라진 입장에서 시그리드 리프트라사를 다시금 만날 생각을 하는 동안, 일행은 겨우 랭스에 닿았다.
다행히 이곳에는 아직 파리에서 보였던 것과 같은 폭력과 광기가 닥쳐오지 않은 듯했다.
“그간 고마웠소.”
가까운 성당에 들어가 저의 정체를 밝히고 도움을 구하기에 앞서, 제르송은 랭스에서 자크에게 작별을 고했다.
“아이고, 별 말씀을요.”
“언제고 기회가 되면 꼭 보답을 하고 싶구려.”
“정 그러시다면야... 제가 그때까지 마을에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동레미 마을에서 자크 다르크Jacque D`Arc를 찾으면 아마 다들 알 겝니다.⁶”
집에 돌아가 갓난아기 딸 잔을 볼 생각에 들떠 있던 자크 다르크는 그렇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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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급귀족 집안에 태어난 얀 지슈카가 젊은 시절, 재정적 어려움에 시달린 끝에 소유한 부동산을 모두 처분하고 용병 겸 도적 노릇에 나서게 된 사연은 일전에 지슈카가 처음 등장했을 때 언급한 바 있습니다.
2. 미국 맥주 버드와이저와 체코 맥주 부데비요츠키 부드바르 사이의 상표권 분쟁은 1907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부데비요체 측에서는, 13세기에 도시가 양조업 운영허가를 받은 것이 부드바르의 원조이며, 버드와이저는 이 부드바르의 상표를 도용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요. 반면 버드와이저 측에서는, 그저 보헤미아 맥주 풍으로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보헤미아의 도시 이름을 따왔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예로 필스너 역시 체코의 플젠에서 유래한 맥주 종류지요.)
3. 원 역사에서 프라하 대학의 교수들과 같은 지식인들 없이 자체적으로 대안적 사회를 꾸리고자 했고 또 꾸려나가야만 했던 타보르파는, 초창기(1419~1420)만 해도 모든 재산의 공동 분배 등 과격한 평등주의 질서를 내세웠습니다. 이는 도시와 농촌의 빈민들, 그리고 그들에게 호응 또는 영합한 하급 성직자들이 주를 이루었던 타보르파의 속성에서 기원합니다. 이러한 이상이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고, 지기스문트의 십자군이라는 엄청난 위협에까지 직면하면서, 점차 타보르파의 이상은 평등주의적 공유경제를 즉시 실현하는 것에서 그런 목표 달성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부순다는 적극적이면서도 파괴적인 것으로 변해갑니다.
얀 지슈카 역시 어느 정도는 이런 이념에 동조했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그는 충분히 대안적인 통치 질서를 제시하거나, 타보르파를 자신의 군벌 세력으로 사유화할 수 있는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그런 행적을 보이지 않았지요.
4. 작중 시점에서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백년전쟁은 잠시 소강 상태에 들어가 있습니다. 1396년 양국은 적대행위의 종식에 합의하였고, 그 직후 잉글랜드 내에서 왕위계승을 두고 내전까지 터졌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프랑스 역시 사정이 좋지는 못했습니다. 명군 샤를 5세의 뒤를 이은 샤를 6세는 정신병 증세가 심해 제대로 된 통치가 불가능했고, 결국 왕의 친족 가문 중 어느 쪽이 섭정을 맡을지를 두고 프랑스 내에서 파벌이 갈려버린 것이지요. 이중 부르고뉴 공작가를 지지하는 쪽을 부르고뉴파, 오를레앙 공작가를 지지하는 쪽을 아르마냑파라 불렀습니다.
양측의 적대행위는 점점 심해져, 1407년에는 부르고뉴 공작 무외공 장 1세의 사주로 오를레앙 공작이자 샤를 6세의 동생인 루이 1세가 암살당합니다. 작중 서술된 것처럼 장 제르송은 이 사건에 대해 부르고뉴파를 맹렬히 비판했고, 그로 인해 부르고뉴파의 미움을 사게 되지요. 양측의 갈등은 계속되었고, 부르고뉴 측은 나중에는 아예 잉글랜드의 손을 잡고 독립국가화를 시도하게 됩니다.
5. 원 역사에서 박피단의 반란, 혹은 그 지도자 시몽 카보슈의 이름을 따서 카보슈의 난이라고도 불리는 사건은 1413년에 일어났습니다. 작중에서는 당시 아르마냑파와 부르고뉴파 사이의 갈등을 이용해 어부지리를 노리던 잉글랜드에게 덴마크까지 편승하면서 이런 변화가 일어났지요.
유복한 도축업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박피단은 원 역사에서는 1413년 4월, 무외공 장의 사주를 받고 폭동을 일으켜 아르마냑파 귀족 및 주요 인물들을 마구잡이로 살해했습니다. 이들은 약 4개월간 파리를 점령하고 반대파들을 제멋대로 숙청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다가, 결국 파리 시민들의 민심이 이반하면서 동년 8월 파리에서 축출당합니다. 그러나 이후 부르고뉴파가 득세하면서 시몽 카보슈를 비롯한 생존한 박피단원들은 파리로 귀환하게 되지요.
원 역사에서는 피사 공의회가 별 성과 없이 유야무야되면서 아직 파리에 남아 있던 장 제르송 역시 생명의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의 집은 불탔고, 제르송 본인은 노트르담 대성당 지붕 아래의 다락방에 두 달 간 숨어 있다가 겨우 탈출할 수 있었지요. 이후 그는 리옹에서 1429년 사망할 때까지 다시는 파리로 돌아오지 못했는데, 그가 콘스탄츠 공의회를 주도하는 역할을 맡게 되면서 부르고뉴파의 보다 집중적인 견제에 직면하기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6. 자크 다르크의 갓난아기 딸 잔은 바로 우리가 아는 잔 다르크입니다. 통념과 달리 잔 다르크의 집안은 동레미에서 유일하게 석조 주택에 거주할 수 있을 만큼 유력한 집안이었고, 이는 농노제가 해체되는 시대적 상황을 타고 열심히 자신의 재산을 불려나갔던 야심찬 아버지 자크와 동네 유지 집안 출신이던 어머니 이사벨 로메 덕이었지요. 이러한 집안의 진취적인 가풍은 잔 다르크의 성격에도 영향을 주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들이 거주하던 동레미 주변은 온통 부르고뉴파 지지 세력의 것이었고, 결국 1428년 내전에 휘말려 동레미는 약탈당하게 됩니다. 잔 다르크가 천사의 환상을 보게 된 것도 대략 이 시기부터였다고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