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의 강물 (2)
10. 바빌론의 강물 Rivers of Babylon (2)
1411년 봄에 온 유럽을 강타한 인쇄술 열풍은, 그해 여름이 되기도 전 유럽 각지에서 인쇄소들이 우후죽순 세워지기 충분할 만큼 강렬하였다.
지기스문트가 프라하 시민들에게 저의 과오를 사과했다는 내용 뒤에 별책부록으로 그 ‘인쇄기’라는 물건과 거기 들어가는 활자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상세히 적혀 있었으므로, 그것을 보고서 열풍에 올라타지 않는 자야말로 어리석다 할 만했다.
찍어낼 책이야 충분히 많았다. 당장 ‘일요일의 프라하’ 전에 나왔던 ‘프라하의 시대상’만 하더라도 수요가 넘쳐났다.
더구나 독일어를 아는 사람은 신성로마제국 안팎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었으므로, 인쇄소가 세워지기 무섭게 프라하에서 발행된 세 권의 책은 조금씩 편집된 형태로 빠르게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알프스를 넘어 볼로냐를 지날 무렵, 시그리드는 그 유명한 볼로냐 대학 구경을 갔다가 서점¹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프라하의 책들’을 보았다.
“그, ‘시대상’ 없소?”
“죄송합니다, 교수님. 오늘도 다 팔렸습니다.”
“아니, 그 인쇄기라는 것이 있으면 몇 백 권쯤은 금방 찍어내는 것 아닌가? 솔직히 말씀하시오. 비싸게 팔려고 일부러 조금씩만 인쇄하고 있는 게지?”
의학 교수들은 말비욤 이야기가 수록된 ‘시대상’을 장만하려 주변을 뒤지고, 개중에는 애먼 서점 직원에게 트집을 잡는 경우도 있었다.
허나 서점 직원도 할 말은 있었다.
“이봐, 분명 우리가 어제 와서 그 ‘진실’을 오늘까지 만들어놓으라 했을 텐데? 엉? 우리 콘도티에로Condotierro² 어르신께서 찾으신단 말이다!”
문자와는 연이 없는 용병들이지만, 황제 등극이 코앞에 있는 것만 같던 지기스문트의 십자군을 패퇴시킨 프라하 사람들의 용병술에는 관심이 매우 많았다.
보다 정확히는, 그 용병술이 책에 담겨서 다른 용병단에게 들어갈 것을 경계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바를 남이 알게 될까 질투하고 경계하는 마음이야 교수나 용병이나 매한가지였지만, 교수들과 달리 용병들 손에는 칼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하여 비트코프 언덕과 비셰흐라트 성 전투 경험담이 담겨 있다는 ‘진실’을 어떻게든 손에 넣어보려 애를 썼던 것이다.
“그, 우선 이것이라도 보시겠습니까? 이것도 보헤미아에서 나온 책인데, 이번에 막 이탈리아 말로 옮겼습니다.”
서점 직원이 ‘일요일의 프라하’를 내밀었다.
앞의 두 권 책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이 찍혀나오는 책이 바로 ‘일요일의 프라하’였다. 그 별책부록에 인쇄기와 활자 만드는 법이 적혀 있었으므로, 경쟁자가 늘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 선발주자들은 재빨리 이탈리아어로 책을 번역한 뒤 부록만 빼고 싼값에 출판하여 원본이 유입되는 것을 막으려 노력했다.
(원본은 서가보다는 뒷골목에서, 훨씬 높은 웃돈이 얹힌 채로 거래되고 있다고 했다.)
까막눈인 용병들은, 약삭빠른 서점 직원의 상술에 그만 넘어가고야 말았다.
“흠, 대장이 보헤미아에서 나온 책을 가져오라고만 했었지.”
“그래, 이거라도 사 가자고.”
“대신 다음에는 정말로 그 ‘진실’인지 뭣인지를 만들어 놓는 게 좋을 거야.”
“네, 네. 물론입죠.”
멀찍이서 저의 은발을 두건으로 감추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시그리드는, 이탈리아어로 오가는 대화를 알아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곧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시대상’에 담긴 후스의 글, ‘진실’에 담긴 기사들의 증언, 그리고 ‘일요일의 프라하’에 담긴 지기스문트의 사과문. 셋 모두 신대륙 개척을 거론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저 셋 중 어느 하나라도 통독한 식자들은, 곧 그런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었다.
부데요비체에서 거나하게 취한 지슈카와 대작한 이래 시그리드가 품고 있던 질문.
어떤 식으로든 이제 유럽 땅의 사람들이 대양 너머 미지의 땅을 개척하러 가는 것은 확정되었고, 프라하의 인쇄소에서 찍혀 나온 책을 통해 이는 주지의 사실로 못박혔다.
그렇다면 그 모든 일의 가운데에 있는 ‘하얀 마녀’ 시그리드는, 과연 그 새로운 땅에 어떤 질서를 세우고자 하는가?
‘모두가 자유롭게,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는 땅’이라는 듣기 좋은 구호는, 설령 진심으로 외치는 것이라 할지라도 결국 구호로 그쳐야 할 운명이었다.
그 구호 뒤에 무엇을 세울지, 곧 시그리드는 결정을 내려야 할 터였다.
그리고 시그리드가 바랐던 대로, 마침내 그 행보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된 유럽의 청중들은, 그 결정을 허투루 듣지 않을 것이었다.
그린란드 연대가 볼로냐를 떠나, 피사에 닿기 전 마지막 대도시인 피렌체를 경유할 무렵, 그린란드 연대의 숙영지에 구면 몇몇이 나타났다.
그중 하나는 바로 크라쿠프 대학의 교수 파벨 브워드코비치였다.
“반갑습니다, 교수님.”
“저 역시 반갑습니다. 마리엔부르크에서 뵈었을 때보다 훨씬 아름다워지셨군요.”
브워드코비치의 말투는 그사이 훨씬 정중해져 있었다. 그 정중함이, 꼭 그사이 시그리드가 이루어낸 것에 대한 존중 때문만은 아님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신대륙 개척 문제가 공의회에서 새롭게 논의될 것이라는 사실을 접하신 브와디스와프(요가일라) 폐하께서는, 이번 일에 있어 지기스문트 폐하와 협력하라는 지시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제게 원하는 바가 있으셔서 이렇게 찾아오셨다는 말씀이시군요.”
“역시 잘 꿰뚫어 보셨습니다.”
학자의 본성에 외교관은 어울리지 않았다. 브워드코비치는 자신이 이 자리에 무슨 거창한 거짓말을 내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의 주군의 명에 따라 단순한 거간꾼 노릇만을 하기 위해 찾아왔다는 데 내심 안도하였다.
“우선은, 그사이 피사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드릴 필요가 있겠습니다.”
지기스문트가 낙승을 예상하며 십자군을 소집했다가 터무니없는 패배를 당하자, 그간 지기스문트에게 반대해 왔던 독일 제후들은 이 뜻밖의 호기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지기스문트의 정적이자 사촌인 모라비아 변경백 욥스트는, 룩셈부르크 공국의 이름뿐인 대공이 되어 무위도식하던 전 보헤미아 왕 벤첼을 끌어들여, 지난 번 독일왕 선거를 무효로 돌리고 자신이 새 독일왕으로 등극하려 모의하고 있었다.
누가 왕을 하든 지기스문트만 아니면 족하였던 지기스문트의 정적들 역시 그에 동조했고, 곧 피사 내부에도 그들에게 협력하거나 편승하려는 이들이 나타났다.
“특히나 교황 요한 23세 성하께서 그런 움직임에 긍정적이시라는 풍문이 돌면서, 피사가 시끄러워지고 있습니다. 지기스문트 폐하께서 시그리드 각하를 초빙한 것도 그 때문이지요.”
요한 23세는 청렴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고, 장 제르송이나 피에르 다이이 같은 공의회주의자들이 공의회의 권위를 내세워 교회의 개혁과 청빈을 주장하는 것에 반감을 품고 있었다. (그들 덕에 자신이 서방교회의 수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는 것쯤이야, 청빈에 대한 거부감 앞에서 쉽게 잊을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요한 23세 외에도 청렴이니, 성직자의 윤리니 하면 뜨끔할 수밖에 없는 추기경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는 곧 그렇게 켕기는 이들을 따로 모아 파벌을 이루었다.
지기스문트의 압박으로 퇴위를 선언한 전직 대립교황들이, 공의회주의자들의 빈자리와 더불어 다음 교황을 선정할 권한을 넘겨주겠다는 약속에 넘어가 요한 23세의 손을 잡았다.
“따라서 이번에 공의회에서 새롭게 논의되게 된 주제, 각하께서 주도하고 계신 이 신대륙 개척 계획의 옳고 그름은, 비단 계획 그 자체뿐 아니라 지기스문트 폐하의 정당성, 나아가 공의회 자체의 정당성과도 관련이 생기게 되었지요.”
어쨌든 지기스문트가 십자군 원정에 실패하고, 오히려 이단과 공모하여 풀려났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세간에 무섭게 퍼지고 있는 ‘일요일의 프라하’에 따르면 꼭 그런 것도 아니었지만, 애초에 진실이란 힘 있는 자들이 마음대로 뜯어고칠 수 있는 것이었다.
만약 시그리드의 계획이 교회 입장에서도 받아들일 만한 것이라 판명된다면, 프라하 사람들과의 ‘사소한 오해’를 관용과 타협으로 해소한 지기스문트의 행동 역시 정당하게 될 터였다.
그 반대의 경우라면, 지기스문트는 금방 제4차 십자군 이후 파문당한 베네치아나 제6차 십자군 이후 파문당한 황제 프리드리히 2세와 같은 꼴이 될 터였다. 그리고 파문 당시의 베네치아와 프리드리히 2세에 비하면, 지기스문트는 한참 취약한 입지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시그리드의 귀에 걸린 부분은 따로 있었다.
“‘각하’라고요?”
“여러 왕관을 쓴 군주를 잡아가두고 뜻을 강요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존칭을 받아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딱히 아첨하는 기색도 없이, 저의 상식대로 답하는 브워드코비치였다.
“계속 말씀드리겠습니다.
솔직히 말해, 우리 폴란드로서는 이 공의회의 논제가 지난날 기사단국과의 전쟁에서 다른 쪽으로 넘어가기만 하면 충분합니다. 지기스문트 폐하의 헝가리가 동쪽의 투르크인들과 서쪽의 독일 제후들을 경계하느라 우리 폴란드를 견제할 여력이 없게 된다면 더욱 환영할 일이지요.
그리하여 브와디스와프 폐하와 지기스문트 폐하께서는 그사이 만족할 만한 협의에 도달하셨습니다. 기사단국은 폴란드의 봉신은 아니되 국가대사에 있어 폴란드의 자문을 받는 보호국이 되고, 대신 지기스문트 폐하는 폴란드의 정당한 이익을 침해하거나 견제하지 않는 것이지요.
또한 그 협의의 부속 조항으로, 저는 이렇게 각하를 찾아와, 각하의 편을 들어줄 이들을 소개해 드리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지기스문트 폐하께서 직접 움직이셨다는 풍문이 돌게 되면 그분께는 불리할 테니까요.”
지금까지 조용히 파벨 브워드코비치 곁에 서서, 그 말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두 사람이 인사를 올렸다.
“참으로 반갑습니다, 각하! 로스킬데와 그룬발트에 이어, 이곳 피렌체에서도 뵙게 되는군요. 짐작하셨겠지만, 북방 세 나라의 군주이신 에릭 폐하와 그분께 동조하는 한자 동맹시들을 대표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독일어가 유창한 한 사람은, 브워드코비치보다도 더 오랜 구면인 단치히 시장 콘라트 레츠카우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곳 피렌체와 베네치아에서 은행banco이라는 사업을 하고 있는 조반니 데 메디치입니다³. 두 도시의 여러 유력자들을 대신하여, 서로 이익될 바를 논하고자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반면 독일어가 어설플뿐더러, 마지못해 이 야만스러운 말을 혀에 올린다는 느낌이 확연한 다른 한 사람은 초면이었다. 자신의 부유함을 모자부터 신발까지 드러내고 있는 레츠카우와 달리, 평범한 피렌체 시민의 옷차림을 한 중년 사내였다.
그렇게 간략한 인사가 끝나자, 다시금 파벨 브워드코비치가 말문을 열었다.
“저는 두 분 폐하의 합의에 따라, 공식적으로는 지기스문트 폐하의 편을 들지 않으면서도 시그리드 각하의 입장을 지지해줄 수 있는 이들을 찾았습니다. 각하께서 바라신다면, 이 두 사람과 각각 독대하며 이야기를 나눠보심이 좋을 듯합니다.”
먼저, 레츠카우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어째서인지 조반니 데 메디치가 순순히 선두를 양보하였던 것이다.
처음 브워드코비치가 숙영지에 찾아왔을 때 이미 어슴푸레해져 있던 주변은, 이 무렵에는 이미 깜깜해져 있었다. 보헤미아에서도 겪어본 적 없는 따뜻한 남쪽의 여름밤이었지만, 시그리드에게는 그 흥취를 즐길 여유가 없었다.
뭔가 중요한 이야기가 벌어지고 있음을 깨달은 스베인과 지슈카는, 시그리드의 판단력을 믿는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곤 주변을 깔끔히 비워주었다. 두 사람이 눈 셋과 귀 넷으로 직접 감시하고 있는 이상, 적어도 이곳 천막 근처에서는 첩자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었다.
스베인이 천막을 들추고, ‘이상 없다’라 나지막하게 말해주곤 다시 천막 자락을 닫았다.
“‘에릭 폐하와 그분께 동조하는 한자 동맹시’라 하셨던가요? 벌써 그분께서 그리 많은 지지자를 얻으셨는 줄은 몰랐는데요.”
“하하, 저도 로스킬데에서 에릭 폐하와 시그리드 각하를 처음 뵙기 전까지는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지요. 시그리드 각하께 마땅히 감사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때 그룬발트에서 입은 은혜로 그린란드 회사와 연을 트게 되었고, 그 덕에 다시금 에릭 폐하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고는 사뭇 진중하게 말을 잇는 레츠카우였다.
“에릭 폐하는... 우리 사이에서나 하는 얘기지만, 그분은 눈뜬 맹인과 같습니다. 그분의 지성은 탁월하고, 제가 만난 그 어떤 군주보다도 매력적이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장점을 덮어버리고도 남는, 광기와 집착 또한 지니고 계시지요.
맹인인데도 자신이 맹인임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런 고집불통의 미치광이 맹인이 바로 에릭 폐하입니다.”
“네? 그렇게 생각하시는데 대체 왜...”
“왜 저희가 그분을 따르느냐고요? 광인의 망상이지만, 그 속에는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은 그분의 망상 속에서 미래를 보았고, 그 앞날에 함께하고자 마음을 정했습니다.
한자 동맹은 그 힘과 덩치에 도취하여 있습니다. 그저 지금처럼 계속 장사만 하면, 앞으로도 북쪽 바다의 주인으로, 모든 군주로부터 자유로운 도시 연합으로 존속할 수 있으리라 믿을 뿐이지요.
반면 에릭 폐하께서는, 시그리드 각하께서 보여주시는 행보 속에서 미래를 보셨습니다.”
에릭은 시그리드가 펼쳐보이는 모든 행보가, 이 시대와 그 다음 시대가 내놓은 정답임을 알고 있었다.
답이 정해져 있다면, 그 답까지 가는 길을 짚는 것쯤이야 에릭과 같은 지성과 집착을 겸비한 이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총을 처음 보시자마자, 저희에게는 너무나 낯선 새로운 미래를 떠올리셨습니다. 흑사병을 막아내는 방법을 들으신 뒤에도, 심지어 얼마 전, 그 인쇄술이라는 것을 접하신 뒤에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리고 그 미래는, 저희가 듣기에도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 세상에서 황금은 국가의 것이었고, 국가는 황금의 것이었다.
국가에 황금을 바칠 수 있는 자들, 지금껏 그저 ‘성 안의 사람들’이라 불렸을 뿐인 도시의 주인들은 국가의 기둥이 될 것이며, 반대로 국가는 그들의 가장 든든한 지붕, 그들의 고용인이자 피고용인이 되어줄 것이었다.
황금은 무적의 군대, 총과 대포, 화약과 강철로 무장한 군대를 만들어줄 터였다.
그리고 황금의 힘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인간이 – 보다 정확히는, 다른 인간들 위에 선 인간이 – 자신의 지식으로써 자연을 굴복시키고 나아가 온 세상을 굴복시키는 원동력이 되어주리라.
인쇄술은 나라의 모두가 똑같은 말과 똑같은 생각을 품고, 하나된 나라의 군인이 되도록 만들어줄 것이었다. 말비욤은 국가가 질병이라는 자연의 불가항력조차 이겨낼 수 있도록 해줄 것이었다.
“그 미래에 함께 해주십시오. 그것만이 저희가 청하는 바입니다.
여기 응해주신다면, 저희는 각하를 도울 것입니다. 에릭 폐하께서 내세우신 미래에 함께하려는 이들은, 적어도 이 공의회가 각하의 앞길을 막지 못하게 하기에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덴마크 하나의 힘은 아직 미미했지만, 에릭이 내세운 미래는 한자 동맹부터 잉글랜드까지, 벌써 상당히 많은 투자자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그 투자자들이 십시일반으로 힘을 합하면, 지기스문트를 반대하는 제후들을 직접 막는 것은 어려워도 딴지를 거는 것 정도는 여반장이었다.
“공의회에 나아가, 그 신대륙을 이 땅의 군주들에게 나누어 주겠노라 말씀하십시오. 그린란드 사람들이 닿은 곳은 지금 그린란드가 그러하듯, 노르웨이 왕관 아래에서 자유를 누릴 것이며, 보헤미아 사람들이 닿은 곳 역시 보헤미아의 영토로서 자유를 누릴 것이라 말씀하십시오.
그리하여 그 땅의 야만인들에게 문명을 전파할 것이며, 그 땅에서는 비단 이단뿐 아니라 올바른 교회의 목자들 또한 마음껏 선교를 할 수 있을 것이라 말씀하십시오.
그리하면 비단 저희뿐 아니라, 적지 않은 유럽의 군주들이 새로이 이 대의에 동참할 것입니다. 그 누구도 각하의 뜻을 가로막지 않을 것이요, 설령 가로막으려 한다 한들 금방 다른 이들의 날선 견제에 좌절하고야 말 것입니다.”
레츠카우의 말투는 거칠었다. 미리 준비한 것 외에도, 곳곳에서 자신이 진심으로 믿는 바를 덧붙이는 듯했다.
그리고 시그리드는, 레츠카우가 말하는 것, 그 미래가 욘의 과거에도 실제로 일어났음을 알고 있었다.
시그리드의 마음이 흔들리건 말건, 레츠카우는 할 말을 다 하였음을 예의바르게 고하곤 자리를 비웠다.
그 다음 차례로 들어온 조반니 데 메디치는 단도직입으로 저의 제안을 꺼냈다.
“신대륙의 미래를 사들이고자 합니다.”
“미래를 사들인다고요?”
“예. 정확하게는 그 땅에서 발생할 미래의 수익과 지금의 지원을 맞바꾸자는 제안입니다. 피사에 출두하신 다음, 온 유럽의 상인들로부터 그 그린란드 회사에 대한 투자를 받아, 신대륙을 개척하고 그 수익을 유럽 사람들과 나누겠노라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지금까지 저희는 이미 이곳 지중해와 흑해의 무역 이익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서쪽 대양에는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귀를 기울여 보니, 저 알프스 이북의 미련하고 투박한 상인들이 뭔가 꾸미고 있다는 풍문이 들려오더군요. 그게 무엇인지, 얼마나 큰 가치를 남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치들 손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저희 쪽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각하께서도 그런 무리보다는 저희의 손을 잡는 쪽이 낫지 않겠습니까?
‘온 유럽의 상인’이라고만 말씀하셔도 알프스 남쪽과 북쪽의 모두가 그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조반니 데 메디치의 단단하고 두꺼운 얼굴에, 잠시 자긍심이 비쳤다.
“저희 메디치 은행은 일개 금고가 아닙니다. 로마와 베네치아, 그리고 피렌체의 공장과 무역상들, 그들이 벌어들이는 부는 대개 저희 은행을 통하곤 하지요. 저 역시 일개 은행 주인으로서가 아니라, 베네치아와 피렌체 투자자들의 대표로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희 은행에서 빌려준 돈과, 저희 은행을 거쳐 깨끗해지는 돈 중 상당 부분은, 글쎄요, 매우 거룩하다고만 해두겠습니다. 그런 고객분들 중에는 나폴리 사람 발다사레 코사라는 분도 계시는데, 피사에서는 그분을 교황 요한 23세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분께서 피사에서 새로 사귄 벗들 중에도 저희 은행의 소중한 고객분들이 많이 계시지요.”
즉, 시그리드가 자신들의 손을 잡는다면 굳이 에릭의 도움을 받을 것도 없이, 그런 조용한 압박만으로 요한 23세와 그 측근들을 움직여 주겠노라는 제안이었다.
“제가 왜 그런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친절하게 독일어로 쓰인 제안서까지 내밀며 조반니가 마저 답했다.
“신대륙에 모두가 자유로운 세상을 이룩하려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 각하께서는 굳이 군주니 무어니 따로 모시는 대신, 이탈리아에 거하는 저희 문명인들처럼 공화정을 이루려 하시는 듯하더군요.
공화정을 조금 더 오래 겪어보고 꾸려본 입장에서 감히 조언을 드리자면, ‘모두가 동등한 세상’이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약간 더 동등한 세상’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바로, 혈통 따위보다 훨씬 공정한 척도, 돈이지요.
자유란 결국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돈벌이를 할 자유, 다른 이들의 자유를 약간 쪼개어 살 자유, 그리고 자신의 자유를 조금 쪼개어 팔아 생계에 보탤 자유.
그런 의미에서, 각하께서 바라시는 자유를 이룩하는 데 저희 이탈리아 상인들만한 협력자도 없을 것입니다.”
제안서에는, 조반니 데 메디치의 은행을 거쳐 베네치아와 그 외 이탈리아의 유력한 상인들이 그린란드 회사에 투자하고자 하는 금액과, 그 이후의 수익사업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물론 저희의 제안을 받아들이신다면,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해 서로 비합리적인 태도를 지양해야 할 것입니다. 사업이란 것의 이치가 그러하니, 사정私情을 제쳐놓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지요.”
그 배제해야 할 ‘사정’이 무엇인지, 얼추 시그리드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종착점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근대국가’에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유럽 국가들의 손을 빌리지 않고, 마치 욘의 과거에 있었던 네덜란드와 잉글랜드의 동인도회사처럼, 오직 수익을 위해, 그리고 수익을 통해 존립해나가는 상업공화국.
탐욕스러운 군주들의 손길을 피하면서 오직 금력만으로 버텨나가기 위해서는, 그 금력을 쌓는 데 방해되는 모든 것을 쳐내야 할 것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제안을 다 들은 시그리드는, 당분간 고민을 해 보겠다며 조반노 데 메디치와 천막 밖 멀리서 기다리던 레츠카우 두 사람을 멀리 내보냈다.
그리고 저의 천막으로 돌아오자마자, 쓰러지듯 바닥에 누웠다.
그 옛날 로스킬데에서, 현실의 높은 벽과 그만큼 높은 꿈 중 무엇을 택할지를 두고서 고민하던 시절과는 사뭇 다른 갈등이 마음을 덮쳐왔다.
자신이 피사에 나타나 교황과 공의회 앞에서 무엇을 말하든, 그것은 기록으로 남아 온 유럽에 알려지게 될 터였다. 그리고 그것은 그 자체로 구속력을 지닐 것이다.
그리고 어느 한쪽의 손을 잡든 틀린 답은 아닐 것이다.
화약의 힘은 결국 전쟁을 바꾸었고, 그 전쟁을 일으키고 수행하는 국가를 바꾸었으며, 나아가 시대를 바꾸었다. 욘은 그렇게 말했고, 에릭 또한 그 비상한 머리로써 그런 큰 흐름의 단편 몇 조각을 들여다 본 듯했다.
그 힘으로써 욘의 세상에서 스페인은 신대륙을 정복했고,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그 북쪽에 새로운 식민지를 개척했다. 그 잉글랜드 식민지 사람들끼리 힘을 모아 독립하여 세운 미국 역시 화약의 힘으로써 서쪽으로, 서쪽으로 뻗어나갔고, 마침내 반대편 대양에 닿은 뒤에는 저들의 조상을 본받아 바다 너머에 족쇄를 채우고자 태평양을 넘었다.
또한 두 동인도회사는 바다를 누비면서 엄청난 이익을 올렸고, 지구의 모든 것을 저들의 수익사업으로 삼았다. 비록 18세기에 이르러 무너졌다고는 하지만, 만약 시그리드가 에릭의 손을 잡지 않으려 한다면 차선책으로서 그나마 성공이 보장된 길이었다.
그 모든 것이, 한치 앞을 알지 못하던 욘의 세상 속 과거인들이, 숱한 시행착오와 임시변통 끝에 발견해낸 길이었다.
피와 눈물, 죽음과 고통 위에 세워진 길. 그저 더 나은 길을 알지 못하고, 모든 것이 너무나 낯설었기에 태연하게 행해진 악행과 폭력.
시그리드는 그렇게 화약과 황금의 힘으로, 더 많은 화약과 황금을 얻기 위해 무한히 뻗어나가던 역사의 귀결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슬픔과 실수, 고통을 이 세상에서 아는 이.
그것을 반복하지 않고 더 나은 길을 찾아나설 두 번째 기회가 있음을 아는 이.
그 두 번째 기회를 무작정 움켜쥘지, 아니면 앞날을 두려워하며 저버릴지 결정할 힘을 지닌 이.
그 모두에 해당하는 사람은 이 지구상에 시그리드 혼자뿐이었다.
“첩자다! 첩자!”
막 누워서 뒤척이던 그때, 숙영지를 경비하던 불침번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나는 첩자가 아니오! 부디 시그리드 리프트라사를 만나게 해 주시오!”
서투른 독일어로 항변하는 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헝클어진 옷매무새를 바로잡고 밖으로 나오자, 여기저기 불이 켜진 가운데 붙들려 나온 침입자의 모습이 보였다.
레츠카우와 조반니 데 메디치, 두 사람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초라한 행색의 사내.
또 다른 구면인 장 제르송이었다.
“놓아주세요. 이분은 첩자가 아니십니다.”
그리고 이런 자리에, 이런 행색으로 나타날 만한 사람도 아니었다.
관심이 동한 시그리드는 제르송을 저의 천막 안쪽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점잖은 서생인 제르송에게는 영 불편한 자리겠지만, 남들의 이목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여기뿐이었다.
“후... 고맙구나.”
“별 말씀을요.”
“프랑스에서 봉변을 당하고 급히 피사로 돌아오던 길에, 너를 만나러 그 은행가 메디치와 단치히의 콘라트 레츠카우가 피사를 떠났다는 소문을 들었단다.
그들이 네게 무엇을 제안할지를 들은 나는, 이성적으로 생각하기에 앞서 먼저 너를 한 번 만나봐야 하겠다는 충동에 이끌려 여기까지 찾아오고야 말았다.”
그리고는 민망함에 고개를 떨구는 제르송이었다.
“헌데 생각해보니, 내가 네게 약속할 수 있는 대가는 딱히 없더구나. 공의회주의자들은 지기스문트가 위신을 잃으면서 함께 힘을 잃었고, 내게는 그 어떤 그럴듯한 직위도, 재산도, 세력도 없으니까.
대신 네게 줄 수 있는 것은, 내 두 귀뿐이다. 네가 나를 이대로 내쳐도 무어라 하지는 않을 테니, 부디 네 생각을, 신대륙에 어떤 세상을 이룩하고 싶은지 그것만을 내게 들려다오. 만약 네가 원한다면, 네게 조언이라도 해주려 노력해보마.”
파리에서 겪은 그 소란. 그리고 그 직전에 거기서 들었던 자크 다르크의 이야기에 이끌려, 마치 무엇에 홀린 것처럼 답을 찾아 이곳까지 달려온 장 제르송.
그가 약속할 수 있던 한없이 미미한 대가는, 콘라트 레츠카우와 조반니 데 메디치 두 사람 모두 미처 제안하지 못했고 또 제안할 수도 없는 대가이기도 했다.
--- *** ---
1. 유럽에 종이가 보급되면서, 대략 14세기부터는 대학이 있던 대도시들을 중심으로 필사 공방과 서점이 출현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양산형 필사본은, 흔히 우리가 중세 서적이라 하면 떠올리곤 하는, 화려하게 꾸며진 양피지 재질의 필사본에 비해 질이 떨어졌지만, 점차 늘어나던 유럽의 식자층들의 수요를 어느 정도 만족시켜줄 수 있었지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이러한 상업적 텍스트 생산 및 유통 기반 위에서 폭발적으로 보급될 수 있었고, 르네상스를 뒷받침한 인문학의 부흥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2. 이 무렵 점차 대형화되던 용병단들에게 이탈리아는 ‘꿈의 무대’였습니다. 부유하지만 군사적으로는 허약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이들 용병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고용주였지요. 콘도티에로Condotierro라 불리는 용병단장들은 엄청난 부와 권력을 거머쥐게 되었고, 이를 노리고 잉글랜드와 프랑스, 독일 등지에서 야심만만한 용병단들이 알프스 남쪽으로 계속 내려오곤 했습니다. 이후 15세기 중반을 거치면서 콘도티에로들은 대개 이탈리아 귀족의 서자들로 채워졌지만, 도시국가들의 전쟁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비중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훗날 마키아벨리는 이들에게 과중하게 국방을 의존하는 이탈리아 도시들의 현실에 개탄하며 시민군 창설을 주장하기도 했지요.
3. 훗날 피렌체의 사실상 주인이자 르네상스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큰손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 메디치 집안은, 작중 시점에서는 그저 피렌체의 명문 중 막 부상하고 있는 은행가 가문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당시 피렌체가 운 좋게 주변의 적국 지도자가 요절하는 등의 행운을 겪으며 북이탈리아에서 베네치아 다음가는 세력을 키운 것처럼, 메디치 가문도 재능 있는 인물들의 등장과 시대의 흐름이 겹치며 빠르게 성장하게 됩니다. 조반니 디 비치 (비치Bicci의 아들) 데 메디치는 그런 부상을 이끌면서 메디치 가의 기반을 다진 은행가로, 무역의 중심 베네치아에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하여 가세를 크게 일으킵니다. 그리고 당시 피렌체 최대의 적이었던 밀라노 공국에 맞서 베네치아가 참전하면서, 속된 말로 ‘베네치아 코인’에 일찌감치 탑승했던 메디치 가문 역시 더욱 성장하게 되지요.
조반니 데 메디치는 자신의 대에는 피렌체 제일의 가문이 될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하고, 일부러 평범한 피렌체 시민과 같은 옷을 입고 – 즉 ‘서민 코스프레’입니다 – 그들의 환심을 사려 하는 등 물밑에서 꾸준한 정치적 행보를 보였습니다. 그렇게 수십 년간 집안의 재력과 정치적 지지를 획득한 끝에, 마침내 그 아들 대인 코시모 데 메디치를 시작으로 메디치 가는 피렌체의 가장 유력한 집안으로, 나중에는 피렌체의 지배자로 나아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