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의 강물 (3)
10. 바빌론의 강물 Rivers of Babylon (3)
거지꼴이 되어 파리에서 돌아오자마자, 옷차림을 제대로 가다듬지도 않고 피렌체로 달려갔던 장 제르송이 피사의 공의회주의자 동료들 앞에 나타난 것은 사흘 뒤의 일이었다.
한때 지기스문트의 수족이 되어 두 명의 대립교황을 강제로 퇴위시킬 만큼 등등했던 공의회주의자들의 위세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공의회주의자들이 교회 개혁을 위해, 감히 공의회의 권위를 부정하려 드는 위클리프파 이단들부터 먼저 정죄하겠노라 나섰던 것은 결국 자충수였다.
지기스문트의 십자군은 완패했고, 그들의 후원자였던 지기스문트는 위신이 추락했을 뿐 아니라 도리어 그 이단들과 순순히 교섭해 이름뿐인 성공을 자축했다.
그리고 그 틈을 노리고서, 공의회주의자들 덕에 교황의 자리에 오를 수 있던 요한 23세는 슬슬 피사에 모여든 성직자들 사이에서 저의 파벌을 꾸리기 시작했다.
이제 지기스문트도, 공의회주의자들도 쓰임이 다했다. 교회가 하나로 합쳐졌으면 그만 아니겠는가? 굳이 이단 정죄니, 개혁이니 할 것이 있을까? 성직 매매니 면벌부 판매니, 그런 사소한 일들로 꼬투리를 잡는다면 한도 끝도 없지 않으냐...
그러한 유혹이 피사 곳곳의 교회 구석과 어두운 골목에서, 입에서 귀로 옮겨지고, 다시 귀에서 입으로 옮겨졌다.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교회통합을 이끈 공로로 추기경에 임명된, 제르송의 공의회주의자 동료이자 선배 학자 피에르 다이이와 기욤 필라스트르Guillaume Fillastre를, 보다 정확히는 그들 주변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제르송이 한탄했다.
“어쩌겠는가? 인간의 마음이란 악마의 속삭임에 너무나 취약한 것을... 허나 자네가 멀리서 찾아와 기꺼이 발품을 팔았으니, 이제는 뭔가 달라지리라 믿네.”
“그래, 그 마녀, 아니, 이제는 뭐라 불러야 하나... 좌우지간 그 시그리드 리프트라사는 어떤 선택을 했던가? 우리 또한 그에 맞춰 움직여야 하겠지.”
피사로 돌아오는 길에 제르송이 들었던 풍문, 지기스문트가 자신의 세력을 재규합하기 위해 이런저런 술수를 꾸미고 있으며, 그중 하나가 (전) 마녀 시그리드에게 그럴듯한 아군 하나를 붙여주는 것이라는 소문은 이들 추기경들에게도 익숙했다.
시그리드가 덴마크 국왕과 몇몇 유력한 한자 동맹시들의 손을 잡든, 이곳 이탈리아 상인들의 손을 잡든, 어느 쪽이든 물밑에서 시그리드의 ‘이단 및 마녀’ 행각을 옹호하는 여론을 만들어내는 데는 제법 효험이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지기스문트에 반대하는 독일 제후들도, 교회 개혁을 께름칙하게 여기는 이들을 모아 저만의 세력을 꾸리고자 하는 요한 23세¹도 뜻을 접을 수밖에 없으리라.
“두 분께는 죄송한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시그리드 리프트라사가 누구의 손을 잡았는지 염탐할 심산으로 피렌체에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허나 제르송의 답변은 두 추기경의 기대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저 답을 듣고 싶었습니다.”
제르송의 생각보다도 빠르게, 이 땅을 지난 수백년간 지탱해 왔던 단일하면서도 아름다운 질서는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너무나도 밝은 표정으로 신대륙의 꿈을 거론하던 동레미의 유지 자크 다르크는, 저도 모르는 사이 제르송에게 이렇게 말한 것과 다름없었다.
이미 이 땅의 교회는 백성들에게 답을 주지 못하게 된 지 오래였고, 이단은 그 증상에 불과하며, 그간의 순응과 침묵은, 그저 대안의 부재가 낳은 결과일 뿐이었다고.
또한 파리의 거리에서 덴마크산 머스킷으로 마구 사람을 살상하던 부르고뉴파 폭도들, 그들 뒤에 서린 거대한 그림자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였다.
그들이 알던, 신을 향하기 위한 것이며 반드시 신에게 나아가야만 하는 이성과는 사뭇 다른, 국가이성Raison d`Etat의 시대가 찾아오고 있노라고².
그것을 위해서라면, 거리낌없이 아르마냑파와 부르고뉴파의 다툼쯤은 이용할 수 있다고. 아니, 오히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고 다치든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백 번, 천 번쯤 똑같은 일을 벌여도 괜찮을 것이라고.
한 해 전, 블타바 강가의 비셰흐라트에서 시그리드는 말했다. 종말도, 구원도 찾아오지 않고, 이 세상은 그대로, 이 누더기에 엉망진창인 모습 그대로 유지된다고.
그것을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방식으로 체감한 제르송은, 답을 들어야만 했다.
시그리드가 그런 세상을 벗어나 새롭게 세우고자 하는 질서에 대해 듣는다면, 제르송 역시 무언가 이쪽 세상을 위한 답,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시급하게 이 세상에 필요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바라던 바를 얻었지요. 아마 조금은 그 답이 나오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을 것입니다.”
“답이라니?”
“시그리드 리프트라사는 군주의 손도, 상인의 손도 잡지 않을 것입니다.”
제르송의 단언에 두 추기경은 모두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고, 몇 남지 않은 다른 사람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예로부터 프랑스인들은 그런 격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유명했고, 이 방 안의 공의회주의자들은 대부분 – 제르송을 포함해 – 프랑스인이었던 것이다.
“뭐라고?”
“그렇다면 어떻게 이곳 피사에서 벌어지는 음모에 대처하겠다는 겐가?”
“이대로라면 – 물론 그 무시무시한 프라하의 군대를 데리고 왔으니 당장 체포되진 않겠지만 – 그 신대륙 이주 전체가 이단 행위로 낙인찍히고, 그 이단을 제대로 근절하지 못한 지기스문트 폐하와 우리에게까지 불똥이 튈 텐데?”
한참 그들이 알아서 떠들고, 걱정하고, 언쟁도 벌이다가 종국에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면서, 제르송은 시그리드가 내놓은 답과 자신의 선택에 대해 숙고하였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저 바다 건너편, 제르송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그 미지의 땅에 새로운 세상을 꾸리겠다는 그 광기에 가까운 야심.
그러나 광기나 야심이라는 말을 쓰기에는 너무나 순진하고, 그러면서도 결연한 다짐.
제르송은 자신의 약속대로, 처음으로 아무런 선입견 없이 그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때로는 메아리가 울릴 벽이 되어주었고, 때로는 악마의 대변인으로서 트집도 잡아주었다.
제르송은 알지 못했지만, 그것이야말로 그 어떤 군주도, 성직자도 아직껏 그린란드의 시그리드에게 내밀지 못했던 대가였다.
그렇게 사흘간 이야기가 이어진 끝에, 명분 외에 아무것도 제공해줄 수 없는 공의회주의자들의 손을 기꺼이 잡겠노라며 고개를 끄덕이던 시그리드와, 그 허무맹랑하면서도 대담한 계획에 어느새 절반쯤 발을 걸치게 된 제르송은 이곳 피사로 향하게 되었다.
그리고 제르송은 아직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자, 이제 한 번 들어보시지요. 그린란드의 시그리드가 내놓은 답에 대해, 그리고 그 답과 함께 우리에게 내민 협력의 제안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편 그 무렵, 시그리드는 그린란드 사람 몇몇과 함께 피사의 어두운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들 앞에서 길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은 교황 요한 23세가 아직 발다사레 코사 추기경이었을 적부터 부려왔을 법한 수족들.
피사에 도착하자마자, 요한 23세가 은밀히 저를 불렀다는 소식을 듣고서 따라나오는 길이었다.
언뜻 생각하면 고작 수행원 몇몇과 함께, 어떤 음모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곳으로 향하는 쪽이 더 긴장해야 할 듯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긴장한 쪽은 길잡이들이었는데, 그들보다 덩치가 훨씬 큰 북방인 사내들과 그들이 찬 도끼와 머스킷에 위압되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런 사내들 사이에 끼어 함께 밤길을 걷고 있는 시그리드를 두려워하는 면이 더 컸다.
그들이야 긴장하건 말건, 달빛 받아 빛나는 피사의 거리를 감상하며 걷는 시그리드였다.
“우리는 먼 길을 왔지요.”
“그러게 말이다. 내가 너를 브라타흘리드로 불렀던 그날, 누가 나더러 조만간 덴마크에 폴란드, 보헤미아를 거쳐서 이탈리아까지 가게 될 것이라 했더라면 헛소리 말라고 흠씬 두들겨팼을 텐데.”
이 모든 것의 시작. 이방인 욘이 사라지고 흐발세이 교회 앞에서 팅이 열렸을 때부터 벌써 5년이 흘렀다.
그러나 그간 시그리드가 동료들과 함께 이루어온 것을 생각하면, ‘고작 5년만에’라고 부르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이제 그 마지막 난관이 눈앞에 있네요.”
유럽 본토에서 용병단 노릇을 하며, 유럽의 모두가 그린란드 사람들의 빈란드 이주 계획에 대해 듣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이제는 한 시대의 끝에서 고통받는 이들, 거기서 버림받은 이들과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을 모아 바다 건너로 나아갈 때였다.
신성로마제국의 지기스문트에 이어, 이제 교회까지 움직이게 된다면, 당분간 그 누구도 함부로 그들의 앞길을 막진 못할 것이다.
언제고 다시, 새로운 적대자가 유럽에 나타나 대양 너머까지 손을 뻗쳐올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그때 새로 고민할 일.
“늘 그랬듯 잘 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고마워요.”
피렌체에서 시그리드가 어떤 고민을 했는지, 스베인은 잘 알지 못했다.
그 제르송이라는 재수 없는 샌님과 뭔가 열띤 토론을 나눌 때 그 곁에 몇 번 동석하기도 했지만, 제르송의 어설픈 독일어와 시그리드의 어설픈 ‘프랑스어’ - 실제로는 현대 영어였지만, 고급 어휘 상당수가 프랑스어에서 왔기 때문에 제한적으로나마 뜻이 통하긴 했다 – 로 오가는 대화가 설령 유창한 북방어로 이루어졌다 한들 제대로 이해하진 못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간의 고민을 떨쳐내고, 모종의 패기까지 드러내며 밤거리를 걷는 시그리드를 보며, 스베인은 시그리드가 늘 그랬듯 자기 자신을 속이지도, 팔아넘기지도 않는 답을 찾았으리라 짐작할 뿐이었다.
곧 일행은 어느 화려한 저택의 뒤편 골목에 접어들었다.
“여기서부터는 그린란드의 시그리드 혼자만 들어갈 수 있소.”
아직 한 두세 번은 더 쏠 수 있을, 한때 지기스문트의 관자놀이를 겨누었으며 지금은 저의 허벅지에 매여 있는 플린트락 피스톨을 믿고서 시그리드는 제 앞에 열린 뒷문으로 홀로 걸어들어갔다.
그리고는 또 한참 복도가 이어졌다. 대리석 바닥과 기둥 사이사이 세워진 조각상이, 등불 앞에서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저택을 지을 수 있는 이탈리아의 부유함과, 그런 저택을 마음대로 쓸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성직자들의 위세에 동시에 감탄하게 되는 시그리드였다.
곧 그 앞에 방문치곤 거의 대문에 가까운 화려한 문이 나타났다. 길잡이는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며, 이탈리아어로 무어라 말했다.
문이 활짝 열리자, 노인 여럿이 둘러앉은 넓은 탁자가 보였다. 탁자의 상석에는 시그리드를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는 중년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³.
“먼길 오느라 수고가 많았겠구나, 아이야.”
중년의 사내, 아마도 교황 요한 23세일 이가 이탈리아 억양이 강한 독일어로 상냥하게 시그리드를 맞이했다.
“예법에 밝지 못한 점 먼저 사과드립니다, 성하.”
“괜찮다. 오늘의 만남은 어디까지나 비공식적이고도 사적인 모임에 불과하니까. 더구나 너희 그린란드라는 곳은, 안타깝게도 우리 교회로부터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수십 년을 홀로 견뎌야 하였다 들었다. 너의 무례마저도 우리 교회의 잘못 아니겠느냐?”
만약 시그리드가 물정 모르는 동녘정착지 소녀로서 들었더라면, 진심에서 나온 상냥함이라 착각했을 법한 인자한 어조였다.
그리고 똑같은 어조로, 너무나 세속적인 단어들을 입에 올리는 교황이었다.
“이 이탈리아 땅의 관습은 거칠기만 한 알프스 이북과는 사뭇 다르단다. 우리는 기사의 창과 용병의 석궁보다는, 그림자 속의 대화와 정직하든 부정하든 똑같이 빛나는 황금으로 먼저 대화를 나누곤 하지.
그러므로 이 땅에는 비밀이라는 것이 드물단다. 오직 공공연한 사실과, 비밀인 척하며 저의 값을 올려 부르는 사실, 이 두 가지가 있을 뿐이지. 아마 오늘의 모임 소식 또한 어떻게든 너와 같은 편이 된 지기스문트 왕의 귀에 들어갈 것이다.”
교황이 포도주 잔을 내려놓으며 웃었다.
시그리드는 새삼스레, 교황뿐 아니라 주변의 그 누구도 자신에게 자리에 앉으라 청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 덕에, 우리 또한 피렌체에서 네가 내린 결정에 대해 미리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얼마나 놀랐는지, 너는 짐작할 수 있겠느냐?”
요한 23세의 입가에 서리는 웃음은, 따뜻한 말투와 달리 한없이 차가웠다.
“너는 그 바다 너머의 땅에 대한 허황된 이야기를, 다른 누군가의 입맛에 맞게 바꿈으로써 그들의 호의를 얻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듣자하니, 너는 그 신대륙 계획에 다른 이들의 입김이 닿는 것을 한사코 거절했다더구나.
그렇다면 너는 무엇을 믿고 이곳 피사에 찾아온 것이냐?”
비웃는 와중에도, 요한 23세의 눈은 시그리드를 계속 훑었다. 평생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던 이답게 그 속에는 더러운 시선도 깔려 있었지만, 그보다는 불신과 의심의 눈빛이 더욱 강렬했다.
권모술수의 세상에 태어나 그 일원으로 평생 살아온 이는, 아무런 대비 없이, 아무런 세력 없이 어떤 이상만을 위해 사실상 맨몸으로 역경 앞에 나타났다는 것을 선뜻 이해하기 어려울 테다.
“어쩌면, 우리는 너 하나뿐 아니라 네 그 기묘한 계획 전체를 이단으로 선포하고, 관련된 모두에게 파문을 선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네가 지금까지 그 놀라운 지식으로서 이루어놓은 것들을 다시 한 번 살펴, 한때 마녀 혐의의 증거로 여겨졌다가 그 이후의 어지러운 정세 속에서 자칫 잊힐 뻔한 것들을 드러낼 수도 있겠지.”
시그리드는 그제야, 이 모임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검은 책의 힘 덕에 지기스문트의 위신이 깎여나가기는 했지만, 아직 이곳 피사에서 힘의 균형은 완전히 뒤집히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만에 하나, 시그리드가 요한 23세 자신도 모르는 비장의 한 수를 숨겨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 이토록 압박하면서 떠 보려는 심산으로 그를 부른 것이리라.
“그러니 네가 바란다면, 우리에게 말해보려무나. 우리가 능히 네 앞을 가로막을 수 있음을 모르지 않을진대, 대관절 그 신대륙에서 무엇을 이루고자 하기에 누구의 손도 잡지 않고, 누구의 도움도 애걸하지 않으며 이곳에 온 것이냐?”
그렇다면 되었다. 공식 석상에서 밝히든, 이 자리에서 밝히든, 어차피 제르송과 이야기 나누며 굳어진 시그리드의 생각은 언제고 드러나야만 하였으니까.
누구에게도 미래를 팔지 않고, 오직 신대륙으로 건너가는 이들만의 힘으로 세울 새 세상. 그 세상을 어찌 꾸릴지, 시그리드는 요한 23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것, 지키고자 하는 것은 단 하나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뜻대로 살아갈 자유, 그 외에는 없습니다. 풍습도, 종교도, 삶의 방식도, 그 어떤 것도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은 분명 아닐 것이다. 가장 빠른 길도, 가장 유리한 길도 아닐 것이다.
“우리는 유럽에서 버림받은 이들, 내몰린 이들, 좌절한 이들을 모아 신대륙으로 떠날 거에요. 그리고 합의된 규칙을 제외한 그 무엇도 강요하지 않을 거에요.”
만약 이익의 명목으로 사람들을 내치기 시작한다면, 교회로부터도, 국왕으로부터도, 상인들로부터도 버림받은 채 유럽의 변방에 남겨진 그린란드부터 도태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만약 믿음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가르기 시작한다면, 성큼성큼 다가오는 영원한 겨울에 절망하여 교회의 신을 버리고 오래된 신들을 마음에 다시 받아들인 그린란드 사람들부터 먼저 쳐내야 마땅할 것이다.
그렇게 쳐내고 새로 채우면서, 욘의 세상에 있던 나라들은 이 시대를 벗어날 길을 찾았다.
스페인은 서쪽으로 향했고, 포르투갈은 동쪽으로 향했다. 그 땅에 저들의 문명을 심고, 그 나무에서 이익을 취하면서.
뻗어나면서 자기 자신으로 세상을 채우는 것이 유일한 답이라고 모두가 여겼으므로, 영국도, 프랑스도, 러시아도, 심지어 영국에서 독립한 미국도 그 뒤를 따랐다.
“말도, 살아온 방식도, 믿음도 각기 다른 이들을 그저 한 군데 모아놓는다면, 혼란이 있을 뿐이겠지요. 그들 사이에서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도, 외부에서 그들을 노릴 적들에 맞서는 것도 어려울 테고요.”
그 길에는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도, 동인도회사도, 영국령 13개 식민지도 없을 것이다.
식민지에서 창출되는 이윤을 극대화할, 초보적이면서도 혁신적이었던 자본의 논리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괜찮았다.
“그러면 다툼이 벌어지겠지요. 한 사람의 국왕이나 총독 아래에서, 한 가지 믿음만 가지고서 이윤이라는 한 가지 목표만을 추구할 때보다 훨씬 손실도 많고, 잃는 것도 많겠지요.
그렇지만 지식과 화합의 힘으로 그 다툼을 이겨낸다면, 하나의 믿음과 하나의 군주를 강요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원한이 남을 겁니다.”
독립된 주들의 연방. 다르지만 같은 미래를 그리면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손실과 갈등을 검은 책의 도움을 받아 극복하면서 함께 나아가는 나라.
존 M. 윌슨 중령의 세상에서는, 미리 그 답을 알고 있던 이가 없었기에 벌어져야만 했던 폭력, 그리고 그로 인해 쌓여만 갔던 원한. 그 모든 것을 우회하면서.
그러므로 시그리드의 계획대로라면, 그리고 그 꿈에 후대 사람들이 모두 따라만 준다면, 흑사병으로 쓸려나간 원주민 노예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흑인 노예들이 카리브해를 넘어 끌려오는 일도 없을 것이다.
자신이 잘못을 범하는 줄도 모르고 범한 잘못과, 너무나 어설픈 뒤처리, 그리고 누적된 원한과 서로 향하는 두려움도 없을 것이다.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에게 포위된 케산Khe Sanh 비행장에 착륙하던 수송기 한 대가 SA-7 지대공유도탄에 맞아 산화하는 일도, 그 수송기를 몰던 파일럿을 사관학교 때부터 형처럼 따랐던 고아 출신 존 윌슨이 슬픔에 빠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 사정을 모르고 베트남 전쟁의 옳고 그름을 제 기준대로 떠들던 어린 시그리드를 훈계하던 이방인 욘이, 갑자기 터져나오는 그 아픔에 눈물을 보이게 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제가 신대륙에 세우고 싶은 나라는 그런 나라랍니다.”
그러나 그런 고민을 알 길도 없고, 설령 골백 번을 반복해 들었다 한들 진심으로 들을 귀도 없던 요한 23세와 측근들에게는, 시그리드의 이야기가 그저 광기에 닿은 것처럼 들릴 뿐이었다.
“후스를 따르는 이단뿐 아니라 온갖 이교도까지 모두 제멋대로 날뛰는, 그런 금수들의 세상을 바다 건너에 열겠다는 말이냐? 그게 너의 진심이란 말이냐?”
“네. 누구든요. 그들이 유대인이든, 동방 정교를 믿든, 불교 – 아, 여기선 아직 모르려나요 – 를 믿든, 이슬람을 믿든, 아니면 오딘과 토르를 믿든.”
“그것은 혼란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것이다. 광기, 아니, 차라리 만마전Pandemonium이라 부르는 것이 온당할 것이야! 인간의 교만이 바벨탑을 세웠을 때, 그 아래에서 벌어진 것보다도 더 심한 혼란을, 너는 지금 이 땅 위에 열겠다는 말이냐?”
“네.”
시그리드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욘의 세상. 답을 알지 못했기에 모든 것을 시행착오를 겪으며 알아가야 했던 그 세상에서는 더한 혼란과 더한 아픔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 모든 혼란과 아픔 속에서도, 사람들은 꿈을 꾸었다.
맨해튼 섬에는 새로운 바벨탑이 세워졌고, 그 바벨탑의 그림자에서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수많은 이민자들은 제각기 다른, 그러나 똑같이 값진 꿈을 꾸었다.
여럿으로부터 하나로 모이는E Pluribus Unum 나라. 그 표어가 만들어지기까지, 그리고 만들어진 이후 쌓였던 그 많은 업보로부터 자유로운, 아직 이 세상에는 너무나 이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 세상 사람들의 뜻대로 빈칸을 채워나갈 수 있는 나라.
“신대륙을 새로운 바빌론이라 매도하고 싶으시다면 그렇게 부르셔도 좋아요. 저를 바빌론의 탕녀라 부르셔도 괜찮아요.”
교황에겐 몇 개의 사단이 있냐고, 그 옛날/훗날의 한 독재자는 비꼬았다던가.
아직 사단이라는 편제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이 요한 23세의 뒤에는 분명 강력한 세력이 존재했다.
그러나 시그리드는 개의치 않았다.
17개 항모전단의 통수권을 쥐고 있던 리처드 닉슨조차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하야하지 않았던가.
“유럽을 벗어나는 것을 금지하시겠다고요? 그렇게 하고 싶으시다면 하셔도 좋아요. 제 편을 들어주실 교황을 새로 찾으면 그만이니까요.
저는 이미 마음을 정했고, 이 미래를, 이 꿈을 누구에게도 팔지 않을 거에요.”
그 말과 함께, 시그리드는 돌아섰다.
그 누구도, 교황 요한 23세부터 그 곁의 추기경들, 그리고 한낱 경호원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도 그 앞을 막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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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 역사에서도 피사 공의회에서 추대된 알렉산데르 5세가 선종하면서 피사 교황으로 등극한 요한 23세는, 교회 통합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자신의 종교적·세속적 영향력을 확대하려 권모술수에 의존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산되자, 교황의 신분이었음에도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몰래 도망쳐 룩셈부르크 가문에 반대하는 제후들을 모아 지기스문트에게 저항하려 시도했지요. 교회 통합이라는 대의를 저버리다 못해 아예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공연히 반대하기까지 하는 모습에 공의회주의자들은 크게 분노했고, 그에게 이단과 성직 매매, 알렉산데르 5세 독살, 그리고 200명 이상의 여인을 유혹한 죄 등등 온갖 죄목을 뒤집어씌운 뒤 그를 폐위하게 됩니다. 이러한 죄목 대부분은 그저 마구잡이로 덧붙인 것이었지만, 어쨌든 그가 개인적 야심을 위해 교회의 수장으로서의 책임을 도외시한 것은 사실이었지요.
그러나 요한 23세는 메디치 가문을 비롯해 이탈리아 내 많은 상인들의 후원을 받고 있었고, 그 덕에 금방 무죄로 풀려나 후임 교황 마르티노 5세에게 추기경직을 보장받습니다. 메디치 가문의 의뢰를 받아 도나텔로가 건축한 그의 화려한 영묘는 아직도 피렌체에 남아 있지요.
이처럼 요한 23세는 교회 안팎에서 악평을 받을 만한 행각을 보였고, 그 수십 년 전에 재위한 요한 22세 역시 썩 평이 좋은 교황은 아니었기에, 그 이후 약 5세기 반에 걸쳐 그 어떤 교황도 ‘요한’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게 됩니다. 이후 20세기 중반에 인격적으로나 가톨릭 교회의 지도자로서나 훨씬 뛰어난 교황 요한 23세가 등극하기 전까지 암암리에 이어진 관행이었지요.
2. 중세의 끝을 알리는 온갖 혼란상 속에서, 군주와 정책결정자, 그리고 지식인들은 조금씩 오늘날 정치현실주의political realism이라 불릴 만한 사상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바로 종교적 혹은 일상적인 윤리와는 구분되는, 국익 추구 자체를 지상목표로 삼는 사조가 출현한 것이지요.
특히 ‘국가이성’이라는 표현으로 상징되는, 리슐리외 추기경 등 17세기 프랑스의 정치현실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사상적 근원을 백년전쟁의 혼란상을 종식시키고 절대왕정의 기틀을 닦은 루이 11세에게서 찾았습니다. 같은 시기, 프랑스와 비교를 불허하는 정치적 혼란을 겪었던 이탈리아에서 마키아벨리가 등장했던 것과도 겹치는 부분이지요.
3. 오늘날에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중세 말엽의 교황들 중에는 초로는커녕 아직 40대일 때 선출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이 있었습니다. 작중 시점에서 40대 중반인 요한 23세뿐 아니라, 그가 폐위된 이후 통합된 서방교회의 수장으로 옹립된 마르티노 5세도 40대에 어부의 반지를 끼게 되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