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안개 (2)
11. 보랏빛 안개 Purple Haze (2)
먼 옛날, 세상의 북쪽 끝에서 찾아온 사신들은 거룩한 지혜의 대성당, 하기아 소피아에 들자마자 저들의 재주로는 헤아릴 수도, 형용할 수도 없는 광경에 경탄했다.
그리고 그들은 돌아가 그들의 임금에게 전했다.
‘지상에는 그러한 장엄함이, 그러한 아름다움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희는 그곳에 신이 계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루스인들의 우두머리 볼로디미르는 참된 신앙을 따르게 되었으며, 그 후손들은 서방의 라틴인들이 어떤 이단을 내세우든 한사코 올바른 믿음을 지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로부터 사백 년 세월이 흘렀다. 제국은 무너져내렸고, 한때 그토록 위대했던 대성당과 궁전은 제때 보수조차 받지 못해 퇴락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 위대한 성당은 그대로 서 있었다. 바닥에는 세계의 배꼽 옴팔리온이 있었고, 마치 천구 그 자체인 듯 드높은 궁륭이 천장을 이루었다.
도시의 방어자들을 축복하고자,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총대주교 에우티미오스 2세¹는 세계의 중심이자 제국의 중심, 도시의 중심인 이 대성당을 한 바퀴 돌며 축성하고 있었다. 손수 향로를 들고서, 가늘면서도 힘이 있는 목소리로 아토스Athos 산에서 배워 온 성가를 읊조렸다.
그 뒤를 따라 성가를 부르며 걷는 이들 중에는, 명백한 속인俗人 또한 여럿 있었다.
일층에서 시작한 이 소박하면서도 거룩한 행렬이 마침내 꼭대기 층의 남쪽 끝, 누군가는 신비로운 예언이라 주장하고 누군가는 지진으로 인해 생긴 금이라 주장하는 기묘한 문양²이 있는 곳에 이르자, 행렬은 거짓말처럼 성가 영창을 멈췄다.
속인들 중 가장 화려한 복식의 사내가 미리 정해진 대사를 읊었다.
“도시의 황제로서, 총대주교를 뵙소이다.”
“같은 이들 중 으뜸protos metaxy ison으로서, 교회의 황제를 뵙습니다.”
제국의 강역이 도시 하나로 줄어들고 그에 따라 다시금 교회의 힘은 커지면서, 황제와 교회는 서로 다투고 견제하면서도 힘을 합하고 협의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황제 마누일과 총대주교 에우티미오스 2세가 주고받은 대사는, 그러한 대화가 시작됨을 알리는 뜻. 행렬을 이루던 성직자와 속인, 그리고 그림자에서 뒤따르던 이목들은 모두 사라졌다.
어찌하여 이토록 복잡다단한 절차를 밟아야 하는가? 왜 처음 만나자마자 밀실로 향하지 않는가? 그러한 질문은 이 도시의 사람이라면 던질 이유도 없었고, 던져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전례와 권위, 전통과 관습은 몰락을 앞둔 이 도시에 남은 마지막 보물들이었으니까.
“저희가 사람들을 잘못 이끈 것을 사과드립니다.”
두 사람만 남자마자 에우티미오스가 고개를 숙였다.
‘잘못 이끈 것’이란 무엇인가? 바로 도시를 포위하는 척하고 있는 무사 첼레비에게 몰래 사람을 보내, 서쪽에서 오고 있다는 밀사들에 대해 누설한 것을 말했다.
오늘 정오 무렵, 서방 공의회주의자들의 밀사가 타고 있을 베네치아 상선들이 멀리서 나타났다. 그러나 그 배들은 금각만 쪽으로 들어오는 대신 성벽 바깥쪽, 무사 첼레비의 포위망 근처에 정박하였다³.
이는 무사 첼레비와 서방 밀사들 사이에 모종의 충돌이나 교섭이 있었다는 뜻. 그렇다면 총대주교를 따르는 이들이 뭔가 농간을 부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의심의 눈길을 받자마자, 사람들을 ‘잘못 이끈’ 것에 대해 사과한다는 답을 내놓았으니, 이는 곧 ‘우리 쪽 사람이 벌인 짓은 맞으나, 교회통합 반대파 전체가 아닌 일부 인사들의 독단이다’라고 답한 것이었다.
“정녕 그렇소?”
“폐하, 죄악은 설령 필요하다 할지라도 멀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동서 교회의 통합이란 사실상 서방 교회에 대한 굴복임을 이곳의 교회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투르크인들만큼이나 라틴인들 또한 미워하는 도시의 귀족과 군중들 또한 통합 반대를 주장하곤 했다.
교회는 주장에 힘을 싣기 위해서뿐 아니라, 그러한 속세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서도 공공연히 마누일 2세에게 반대하곤 했다. 그들이 이를 대변하지 않는다면, 얼마 남지 않은 제국의 권세 일부를 팔아넘겨서까지 그 여론에 편승하여 제위를 노리고자 하는 자가 나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통합 반대론자들은 교회를 구심점으로 모였을 뿐, 그 이상으로 단합된 세력은 아니었다. 모든 반대파들이 하나로 묶여 단일한 대오를 이루는 것은 진짜 내전을 의미했고, 이는 교회와 황제 모두 원하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니 교회와 세속의 통합 반대론자들 중 몇몇의 돌발 행동까지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겠는가. 총대주교가 ‘죄악을 멀리해야 한다’라고 한 것은 그런 뜻이었다.
“그리고 어떤 죄악은, 세속의 입장에서는 언뜻 필요하게 보일 수도 있는 법입니다. 하물며 지금처럼 도시가 두 개의 죄악 사이에서 택일을 강요받는 듯한 상황에서는 더욱 균형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총대주교가 반격에 나섰다.
투르크인들의 혼란과 이탈리아 상인들의 필요에 의해 겨우 유지되고 있는 균형. 군사적 지원을 기대하며 서방 교회와의 통합을 성급히 추진하는 것은 그 균형을 깨뜨릴 수도 있지 않으냐. 그 군사적 지원이 제대로 올지도 모르고, 온다 할지라도 지난날 니코폴리스 전투의 참패가 보여주듯 큰 도움이 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오히려 밀사들이 오는 길을 틀어막고, 겸사겸사 무사 첼레비에게 힘을 북돋는다는 것도 나쁜 계책만은 아니지 않겠느냐.
처음부터 그런 계책을 꾸미지는 못해도, 누군가 저에게 찾아와 설명했을 때 이해할 수 있는 만큼의 세속적 식견은 있는 에우티미오스였다.
“그러나 우유부단함은 그 자체로 더 나쁜 결과를 불러오는 원인이 되기도 하지 않소이까.”
투르크인들 사이의 혼란이 천년만년 유지될 것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마누일은 한편으로는 교회통합을 추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차라리 가장 유력하고 재능도 있는 메흐메트의 손을 잡고자 했다.
현상이 유지된다면 그저 조용히 몰락해가는 수밖에 없으니, 없는 힘을 끌어모으고 가능한 수를 찾아내면서라도 뭔가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논쟁은 계속 이어졌다.
“폐하, 신중함과 우유부단함을 재단하는 지혜야말로 미덕이라 하겠습니다.”
언제고 투르크인들 사이의 혼란이 잦아들었을 때, 서방 교회와 통합한 결과 언제든 십자군이라는 비수를 겨눌 수 있게 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과연 투르크인들이 내버려두려 할 것인가?
“그 말씀은 잘 귀담아듣겠소. 설령 당장 필요하지 않은 지혜라 할지라도, 언제고 다른 이들에게 설파해야 할 수도 있으니.”
더 멀리 보아야 하는 것은 통합 반대파들이다. 그런 십자군이라도 끌어올 명분을 지금 다져놓지 않는다면, 통합된 투르크 상대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제국은 어떻게 앞날을 보장받을 수 있겠는가?
“먼 옛날 이오니아의 이교도 아이네이아스는 무너지는 도시를 떠나 서쪽으로 향했고, 그것이 첫 번째 로마의 시작이었다고 하지요.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진정으로 로마를 건립하신 분이 성 콘스탄티노스 대제임을 알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이 지혜를 먼저 마음에 두어 주십시오.”
그 명분을 다진답시고, 이 몰락해가는 나라를 겨우 하나로 묶어주고 있는 마지막 기둥,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짓임을 왜 직시하지 못하는가?
일로스(트로이) 땅이 불탈 때는 바다 너머 서쪽 이탈리아로 향할 수 있었지만,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서쪽에 남아 있는 것은 고작해야 테살로니키와 모레아가 전부였다. 굳이 이교도 아이네이아스와 성 콘스탄티노스를 언급하는 것은 이 때문이었다.
그렇게 도시 하나만 남은 제국의 황제와, 황제가 권위를 잃으면서 대신 목소리를 키운 교회. 켜켜이 쌓인 전통과 그것이 불러오는 모순 속에서 은유로 가득한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고, 꼬리는 꼬리를 물며 이어졌으며, 바깥에서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노라며 하기아 소피아로 달려온 이들은 무거운 청동문 앞에서 황제의 호위들과 대성당의 사제들에게 연신 가로막혔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코앞에서 정박한 베네치아 상선에서 그린란드 연대기를 휘날리며 내린 오백여 명 군사는 곧 사격 대형으로 도열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달려온 무사 첼레비 측의 장수에게는, ‘얼른 너희 우두머리 나오라고 해라’하는 말을 최대한 정중하게 비튼 인삿말이 건네졌고, 오백 명의 잠재적 적군이 포위망 뒤에 있는 것을 좌시할 수는 없던 무사 첼레비는 금방 말을 달려 그린란드 연대 앞에 나타났다.
“받들어 총!”
딱히 갑주는 차려입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식을 지켜 척척 발을 맞추는 모습은 그 자체로 인상적이었다.
물론, 이들이 헝가리 국왕이 이끄는 팔만 대군을 무너뜨리고 왕을 포로로 잡았다는 사실 – 그리고 스베인과 무사 첼레비 사이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찰리 베이 – 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런 선입견이 없었더라면 우스꽝스럽게만 보였을 테지만.
“사격 개시!”
그리고 곧 엄청난 소리가 울리며 연기가 자욱이 일자, 무사 첼레비는 경탄을 숨기지 못했다.
찰리 베이 역시, 결코 자신의 해군이 해적 노릇도 못할 만큼 덜떨어진 놈들만 모여서 저 일제사격 한 번에 무너졌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으므로, 무사 첼레비 곁에서 열심히 ‘자신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일제사격의 위력에 대해 늘어놓았다.
“오오, 정말 대단하군! 과연 로마인들이 내 대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평한 무기라 하겠소!”
“그렇지요? 바닷길을 틀어막고 생면부지인 사람을 다짜고짜 붙잡으라는 지시를 내릴 만한 무기지요?”
시그리드가 뼈 있는 말을 던지니, 무사 첼레비는 금방 사과했다. 그사이 살짝 세상에 닳은 시그리드였지만, 아직 이런 말을 던지면서까지 싱글벙글 웃을 만큼 얼굴이 두꺼워지지는 않았기에 화난 티가 확연히 났던 것이다.
“미안하오. 나는 밀사라기에, 그저 몸만 덜렁 오고 있는 줄 알았지. 그대에게 사죄하는 뜻으로, 바라는 바를 합당한 범위 내에서 이루어주겠소.”
먼저 때려놓고, ‘네가 그렇게 센 줄 몰랐다, 미안.’ 하는 격이었지만, 저 성벽 안쪽의 ‘문명인’들에게 비견할 만한 윤리 의식 - ‘당한 놈이 잘못’ - 을 지니고 있던 오스만 가문의 후예에게는 나름 제대로 된 사과였다.
“또한... 다소 무리한 요구임을 나 또한 알고 있지만, 만일 그대가 이 놀라운 무기를 내게 전해주기만 한다면, 바예지트의 아들이자 루멜리아의 술탄으로서 나 무사는 응당의 보답을 할 것이오.”
“걱정 마세요. 아직 폐하께서 이 머스킷을 얻으실 기회의 문이 다 닫히지는 않았거든요.”
“그대는 아름다운 만큼이나 관대하군! 우선 그대의 조건을 듣겠소.”
“이야기가 술술 진행되니 좋네요. 자, 저희가 바라는 바는 이렇습니다...”
그리고 시그리드는 무사에게 자신이 생각한 묘안, 콩가루에 비교하면 콩가루가 항의할 만한 콘스탄티노폴리스 내부의 분열을 매듭짓고 동서교회 통합에 기꺼이 동의하게끔 만들 법한 방안을 설명했다.
가운데서 통역을 맡던 마누일 흐리솔로라스가 몇 번이나 경악하면서 시그리드에게 자신이 들은 게 맞느냐 반문하는 소소한 일이 있었다.
다 듣고 난 뒤 무사의 반응은 이러했다.
“귀를 의심하게 되는군.”
“흐리솔로라스 선생님께서 아까 지으시던 표정을 그대로 짓고 계신 걸 보면, 제대로 들으신 게 맞을 거에요.”
“내가 대체 왜 그런 제안을 따르리라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소.”
“그야, 만약 제 제안을 거부하신다면, 저희 일행에게 사과하실 뜻이 없는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하! 그렇다 한들 그대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뭐, 많지요? 예컨대 바다 건너편, 메흐메트라는 분께 이 총을 건네드릴 수도 있고요.”
“뭐라고? 그대는 내가 그것을 방관하리라 믿는가?”
“우리가 여기서 일제사격을 퍼부으면 폐하께서 도망치실 수 있으실까요? 그것부터 걱정하는 게 좋을 텐데요.”
그제야 무사는 자신이 수백 친위대만을 데리고 왔다는 것을 깨닫고서 개탄했다.
만약 이 자리에 파울 주교가 있었더라면, 태연하게 군주 하나를 겁박하는 모습을 보고서 죄 많은 어른들이 선량한 소녀에게 때를 묻혔다 한탄하겠지만, 지금 그는 동녘정착지에서 롤라드파 학자들과 함께 시그리드의 신대륙 건국에 수반될 각종 문제들을 해결할 방안을 고심하느라 바빴다.
그리고 파울 대신 시그리드 곁을 지키는 스베인이야, 조상의 지혜를 체득한 시그리드에게 푸근한 아버지 미소를 보낼 뿐.
“빌어먹을. 저 무기가 정말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단 말이지?”
“그거야 쓰기 나름이지만, 적어도 이쪽은 총을 들고 있고 저쪽은 들지 않고 있을 때, 딱 그 한 번은 승리를 쉽게 가져올 수 있겠지요.”
그 한 번의 승리가 무사에게는 시급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택도 없는 무력 시위도, 베네치아 상선을 가로막는 과감한 짓도 하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이는 도시가 1453년에야 함락된다는 사실도, 고작 맨몸의 군사 수천 명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은 어림없다는 것도 잘 알던 시그리드가 부분적으로나마 꿰뚫어본 점이기도 했다.)
더구나 이 무기의 위력에 대한 증거는, 멀리 서쪽에서부터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통해 전해진 소식부터 바로 옆의 찰리 베이가 떠드는 증언까지 차고 넘치는 판이었다.
갈등을 거쳐 답이 나오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신이시여, 미천한 인간을 용서하소서. 좋다! 좋아! 저 저주받을 머스킷을 위해서라면야 광대 노릇 한 번쯤 못하겠는가!”
“광대까진 아니고, 배우쯤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게 그거지!”
나름 진지하게 무사에게 연기를 부탁하는 입장이던 시그리드로서는 영 억울해지는 반응이었다.
모든 것을 잃고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도망치던 쉴레이만은, 그를 알아보지 못한 평범한 농민의 손에 목숨을 잃고야 말았다.
그러나 생전의 쉴레이만을 알던 이라면, 그가 평범한 농민에게 목숨을 잃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 수밖에 없었다. 그 ‘평범한 농민’은 보통 사람들보다 유난히 가까이서 마누일 2세 팔레올로고스를 섬기는 자였으리라는 것도.
다 늙은 로마의 독수리는, 마지막으로 남은 성한 발톱 하나를 어찌하면 잘 쓸 수 있을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후대의 역사가 중 누구도 이를 알지 못할 것이니, 역사를 남김으로써 진실과 거짓을 정하는 자들은 에디르네나 부르사가 아닌 저 삼중성벽 안쪽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쉴레이만을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죽임으로써, 한때 그의 동맹이던 마누일은 저의 몸값을 한껏 올려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경매에서 승자는 무사가 아닌 메흐메트였고, 무사는 어떻게든 그 마음을 바꿔보고자 이렇게 도시를 포위했다.
루멜리아와 아나톨리아 양쪽에 걸쳐 오스만 가문의 유일한 후예가 존재하는 것보다는, 루멜리아와 아나톨리아 각각에 술탄이 따로 있는 쪽이 콘스탄티노폴리스에게도 이로울 것임을 마누일이 이해하리라 기대하면서⁴.
그러나 그 기대는 무참히 깨어졌다.
그렇다면, 바다 너머의 메흐메트가 마누일이 내준 배를 타고 건너와 에디르네 앞까지 닥쳐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그 결판에서 메흐메트를 꺾을 무기라도 선점하는 게 나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품으면서 – 그리고 지금 자신의 우스꽝스러운 행색을 최대한 의식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 무사는 성벽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삼중성벽이 잘 보이는 야트막한 언덕. 그 뒤에 숨은 시그리드와 스베인은 무사 첼레비가 백기를 흔들며 성벽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잘 되려나?”
“그랬으면 좋겠는데... 엇? 이제 시작하려나 봐요!”
“야! 야! 쉿! 조용히 해라!”
“흐리솔로라스 선생님! 통역 부탁드릴게요!”
“어? 어. 알겠소.”
지난 봄에 지기스문트를 협박할 때 썼던 확성기. 그 깔대기를 입에 가져다 댄 무사가 곧 미리 약조된 대로 외치기 시작했다. 로마인들이 어떤 음모를 꾸밀지 모르니 그들이 쓰는 말은 꼭 익혀야 한다는 부왕 바예지트의 지시에 따라 배웠던, 억양 짙은 로마 말.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시민들이여! 두 번째 로마의 국민들이여! 나, 바예지트의 아들 무사의 말을 들어주시오!”
그가 입은 것은, 진중에서 구할 수 있던 하얀 천으로 어설프게 구현한 흰 토가였다.
(그 옛날 욘이, 우연히 바드말 옷감 한 동을 구하게 되자 그것으로 『벤허』 흉내를 낸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랬다가 귀한 옷감으로 뭐 하는 짓이냐며 방직소 아주머니들에게 거하게 혼났지만.)
곧 성벽 위에 구경하러 나온 시민들이 줄을 섰다. 충분히 사람들이 모였다고 판단이 서자, 무사는 이어서 외쳤다.
“지금 그대들의 황제가 서방 교회와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 그대들도 모두 들었을 것이오!
지금껏 이 도시를 괴롭게 하고, 또 지금도 도시의 교역을 독점하면서 그대들에게는 그저 먹고 남은 찌꺼기만을 던져주는 서방인들! 그대들의 자랑스러운 교회가 그들 아래로 들어가게 된단 말이오!”
그리고 돌아오는 열렬한 반응.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우우, 투르크인은 꺼져라!”
한편, 그들 중에는 여론몰이를 위해 각각 황실과 교회에서 은밀히 모은 바람잡이들도 섞여 있었다.
황제와 총대주교가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 꼭대기에서 밀실 회동을 하고 있는 바람에 이 뜻밖의 사태에 어떤 지령도 내려오지 않았고, 결국 그들은 자신이 받은 돈만큼의 값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제길! 투르크 두목도 아는 진리를 왜 우리는 모르는지!”
“뭐? 네놈 말 다 했냐? 너 투르크 앞잡이지!”
어쨌든 교회 통합에 반대 혹은 찬성하고, 투르크인 또는 라틴인을 모욕하는 언사로써 주변 여론을 환기하는 것이 그들이 푼돈이나마 벌어 일용할 양식을 마련할 방도였던 것이다.
“말 잘 한다!”
“개돼지의 말을 잘 하는 것이겠지, 사람 말은 아닌 듯한데!”
곧 바람잡이들에게 이끌린 시민들도 한두 마디씩 보탰다.
그사이 무사의 연설은 이어졌다.
“시민 여러분! 나 무사는 루멜리아의 군주가 되고자 하오! 그러나 루멜리아가 그 진주이자 여왕인 콘스탄티노폴리스 없이 홀로 설 수는 없는 법! 시민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오!
바라건대 나를 공동황제로 추대해 주시오!”
‘황제’라는 말이 나오자, 성벽 위에 갑자기 침묵이 내렸다.
“마누일 폐하는 훌륭한 분이시니, 나는 루멜리아의 술탄인 동시에 로마인들의 공동황제로서 그분을 돕고, 동시에 시민 여러분이 반대하는 서방 교회에의 굴종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막겠소!
또한 그리하면 우리 루멜리아의 풍족하고 값싼 농산물이 도시 안으로 자유롭게 들어갈 것이며, 그대들이 우리 루멜리아로부터의 공격을 두려워할 일도 없어질 것이오!”
이번을 포함해 열여덟 번이나 이루어진 도시 포위. 그중 한 번도 도시를 포위한 군세의 수장이 선거 유세를 한 적은 없었다.
심지어 모두가 까맣게 잊은 진정한 로마의 법도대로, 흰 토가(비슷한 무언가) 차려입고 시민 상대로 연설을 하고 있었으니, 어찌 로마의 카이사르Kaiser-i Rum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으랴?
시민들 중 먼저 띵한 상태를 빠져나온 이들이 걸쭉한 욕설을 담아 외쳤다.
“꺼져라! 우리가 그런 수작에 넘어갈 줄 아느냐!”
“우리가 암만 너희 투르크인만큼 프랑크인을 미워한다지만, 암만 그래도 마호메트 추종자들을 상전으로 모실 일은 없다! 차라리 죽고 말지!”
그러자 무사는 답했다. 아니, 답하려다 말고 멈칫하며, 시그리드 일행이 숨어 있는 언덕 쪽을 바라보았다.
저런 반응이 나왔을 때 뭐라 답할지도 미리 들은 바 있었다. 도저히 가볍게 입에 올릴 수 없는 답.
아나톨리아 곳곳에 할거한 옛 봉신국들과 상종할 길을 끊어버릴 답.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올 답.
그러나 무사 그는 애초에 메흐메트를 완전히 꺾을 생각도 없었고, 그럴 재주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저 루멜리아 한 곳의 술탄으로만 인정받으면 그만.
시그리드는 그 망설임을 보고서, 저의 곁 새장에서 리프를 꺼내 날려보냈다.
‘그래서 총 안 받을 건가요?’라는 신호.
결국 무사도 마음을 정한 듯, 결연하게 외쳤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미사를 드릴 만한 가치가 있소!”
그리고 또 침묵.
언덕 뒤편에서, 날아오른 참에 쥐 한 마리까지 붙잡고 돌아온 리프를 어루만지며 시그리드가 말했다.
“자, 이제 저렇게 하면 사람들은 결정해야 할 거예요. 교회 통합에 찬성하느냐, 아니면 외부의 적인 투르크인들과 한 편에 서서 교회 통합에 반대하느냐.
정말 순수하게 통합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자칫 무사의 편을 든다는 소리를 들을까 두려워하며 목소리를 줄이겠지요.”
충격 속에서 무사의 연설을 듣는 성벽 위의 시민들을 만족스레 바라보며 시그리드가 설명했다.
“야, 너 참 대단하다. 욘이 이런 재주도 알려줬다고?”
스베인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시그리드는 살짝 들떴다.
“사실 욘이 살던 나라도, 저 도시보다는 훨씬 강대했지만 어쨌든 둘로 쪼개져 있는 건 비슷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네. 공화당이랑 민주당이라고, 서로 앙숙인 파벌이 있었다네요.”
1968년 대선에 미 공군의 아버지 커티스 르메이가 미국독립당 부통령 후보로 나서는 바람에, 이 시기를 거쳤던 모든 공군 내 유권자들은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제3당이든 뚜렷한 정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⁵.
다행히도 베트남전을 두고 시그리드와 논쟁을 벌인 이래, 욘과 시그리드 두 사람은 서로 동의하지 않기로 동의하였으므로 정치적 관점으로 둘이 다투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그런데 그 공화당이랑 민주당이 하나로 뭉칠 때가 종종 있었는데, 바로 외부의 적이 있을 때였대요.
지금 저 도시도 교회 통합이랑 반대로 갈려 있지만, 저렇게 무사 씨가 가서 양자택일을 강요한다면야 얘기가 달라지겠지요.”
그러나 시그리드가 모르는 것도 있었다.
미국인들은 당당하게 흑인을 노예로 부릴 권리를 인정받으려고 내전을 벌여 같은 백인들을 쏘아죽일지언정, 상대를 견제하기 위해 소련의 힘을 빌린다든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멕시코에게 캘리포니아를 팔아치우든가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얼레?”
성벽 위의 침묵이 깨질 때면, 무사를 욕하면서 하나된 콘스탄티노폴리스로서, 국론이 단합된 모습으로 무사의 부모님과 조상, 예언자 무함마드 등등을 창의적인 수사법으로 모욕하는 반응이 일치단결하여 나올 줄 알았다.
헌데 저것은 무어란 말인가.
“그래! 저놈이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못 받아줄 것도 없지 않으냐?”
“뭐? 네놈 제정신이냐? 투르크인을 황제로 모신다고?”
“그러는 너야말로 프랑크인 앞잡이로구나! 몇 두카트 받고 일하냐?”
“말 다했느냐? 투르크 놈들이 네게 금으로 된 목줄이라도 주었느냐?”
“그런 네놈 어미야말로 갈라타Galata 구역에서 제노아인들과 뒹구는 논다니 아니냐?”
누군가는 투르크인들이 개종하고서 루멜리아를 가져다 바친다면야 공동황제쯤은 할 수도 있지 않느냐 여기고, 그 공동황제가 사실상 차기 황제와 같은 뜻임을 아는 자들은 상대의 머릿속에 마귀가 들지는 않았나 의심하고, 꼭 공동황제가 차기 황제일 것까지는 없지 않으냐 생각하는 자들은 주먹을 들었다.
또한 정말로 투르크인을 황제로 모실 생각은 없던 이들도, 이렇게 하면 황제 마누일 또한 경각심을 가지고 교회통합 같은 허튼소리는 집어치우지 않을까 생각하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그 난리가 범상치 않음을, 그전까지 벌어지던 사소한 언쟁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수비대 지휘관은 뒤늦게 행동에 나섰다.
“성벽을 비워라! 성벽을 비워!”
“시민 여러분, 내려가시오! 도시의 분열을 적 앞에서 보여줄 셈인가!”
그러나 성벽 위가 썰렁해진 다음에도, 도시 시민들로 이루어진 수비대들은 저들끼리 토론하고 언쟁 벌이기를 그치지 않았다. 예로부터 언쟁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시민들의 취미였던 것이다.
그리고 왁자지껄하니 들려오는 메아리는, 성벽 위에서 옥신각신 다투던 이들이 땅에 닿은 뒤에도 마찬가지로 다투고 있음을 – 아니, 이제는 떠밀려 아래로 떨어질 위험도 없으니 더욱 마음껏 – 증명하고 있었다.
“어째 불장난이 지나쳤던 것 같은데.”
스베인이 말했다.
“그러게요.”
어이 없는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던 시그리드는 마누일 흐리솔로라스에게 염치 없이 물었다.
“그, 마누일 폐하께서 많이 화를 내실까요?”
아까부터 이미 아연실색하여 있던 흐리솔로라스로부터는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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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로마 제국 말기, 제국의 군사력이 형편없이 추락하고, 이탈리아 도시들의 무역을 중계하는 거점으로서 겨우 생존하게 되면서, 그간 존재했던 동로마 제국 내의 정치구도 역시 크게 바뀌게 됩니다. 군사귀족 대부분이 몰락하고 대신 상업에 종사하는 귀족들이 나타났으며, 얼마 남지 않은 인구에 대해 영향력을 크게 발휘하는 교회의 발언권이 높아지게 되었지요.
이전부터 언급된 에우티미오스 2세는 이 시기의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였습니다. 그는 마누일 2세의 외교정책에 반대했는데, 일례로 1416년, 마누일 2세가 공석이 된 몰다비아 대주교직에 자신을 지지하는 성직자를 교회의 동의 없이 임명하자, 에우티미오스 2세는 황제에게 그런 권한이 없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내세운 바 있습니다. 또한 그는 동서 교회통합을 목소리 높여 반대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담은 서한집과 논문을 저술하기도 했다고 전하지만, 그런 텍스트 대부분은 실전되어 버렸습니다.
2. 이 ‘정체불명의 문양’의 정체는 1970년대에 들어서야 밝혀집니다. 놀랍게도, 9~11세기 사이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방문했거나 용병(바랑인 근위대)으로 머물던 바이킹이 남긴 룬 문자였던 것이지요. 다른 지역에서도 발견되는 비슷한 문장, 그리고 식별이 가능한 인명 일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하기아 소피아 룬 문자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하프단 왔다 감.’
3. 콘스탄티노플은 화약무기나 내통자 없이는 도저히 공략할 수 없는, 고대 축성술의 정수를 모아놓은 요새였습니다. 작은 곶에 위치한 콘스탄티노플의 남쪽은 마르마라 해, 북쪽은 금각만Golden Horn으로 보호받고 있었고, 그나마 육지에 맞닿은 한 면은 그 유명한 테오도시우스 삼중성벽으로 방어되고 있었지요. 그 덕에 콘스탄티노플은 동로마 멸망시까지 스무 번에 걸친 공방전에서 18승 2패라는 전적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바다에 맞닿아 있다는 점은, 도시가 포위당하거나 포위의 위협에 직면한 상태에서도 바다를 통한 교역과 물자 보충을 가능케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동로마보다 우세한 해군력을 지닌 적을 상대로는 도시의 방어력이 떨어지는 결과를 낳기도 했는데, 제4차 십자군 당시 베네치아, 그리고 아예 육지로 배를 옮겨 금각만 상류에서 공격을 감행한 메흐메트 2세가 노린 약점이 이 부분이었지요.
4. 지난 화부터 언급된 오스만 내전에서 가장 유력해 보였던 쉴레이만이 자기 자신의 오만과 무사-메흐메트 동맹의 공세로 무너지면서, 오스만의 술탄 자리를 둘러싼 싸움판에는 루멜리아를 장악한 무사와 아나톨리아 쪽을 장악한 메흐메트만 남게 됩니다.
이중 무사는 자신이 루멜리아쪽 오스만 투르크의 수장으로, 아나톨리아 쪽의 군주인 메흐메트와 병존하는 식의 느슨한 연합을 주장했고, 반대로 메흐메트는 자신이 홀로 오스만의 술탄으로서 우뚝 서고자 했지요.
결국 원 역사에서 1411년 콘스탄티노플 포위는 고작 몇 달 만에 싱겁게 끝나버리고, 마누일 2세는 메흐메트의 손을 잡아 그에게 배를 빌려주는 등 적극적으로 협력합니다. 자신의 부하들과 발칸의 옛 오스만 봉신국들까지 메흐메트의 편에 가담하는 상황에서도 무사는 메흐메트의 군세를 몇 번이나 물리쳤지만, 결국 1413년 차무를루 전투에서 분전 끝에 패배하고 메흐메트에게 살해당하게 됩니다.
5. 미군 내 유권자들은 대체로 자유주의-우파 성향이 우세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몰표가 나오지는 않는데, 이는 미국독립당이나 자유당 등, 보다 더 정치색이 뚜렷한 다른 정당들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미 공군의 아버지이자, 쿠바 미사일 위기 등 굵직한 사건을 거치면서 점차 미국 지도부에게 불만을 품게 된 커티스 르메이는, 전역 후 1968년 남부 보수파들끼리 민주당에서 탈당해 세운 정당인 미국 독립당에 스카우트되어 조지 월리스의 러닝메이트로 대선에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미국 독립당이 열심히 민주당 표를 까먹었듯, 르메이 역시 핵무기 사용에 대한 돌직구 발언으로 열심히 독립당의 표를 깎아먹었지요. 어쨌든 미국 독립당은 제3당치곤 상당한 득표(13%)를 기록했고, 그 덕에 근소한 차이로 공화당의 닉슨이 민주당의 험프리를 꺾고 백악관에 입성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