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안개 (4)
11. 보랏빛 안개 Purple Haze (4)
흑해와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부산해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거리를 지나며 봄을 흩뿌렸다.
마누일의 교회 통합을 진심으로 지지하는 이들. 설마 그가 진짜로 투르크인에게 공동황제의 직위를 허용할지 반신반의하는 이들. 아무 정견 없이 비관에만 빠져 있던 이들.
그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천 년을 이어져 온 로마라는 이름에 대한 자부심.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릴 공의회에서 결코 도시의 몰락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수는 없다는 허영이, 지금껏 그 어떤 황제나 외적도 이루지 못한 단합을 이루어내고 있었다.
“회칠! 벽에 회칠들 새로 하십시오! 서방인들에게 깔끔한 도시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생석회, 내가 모두 사겠소!”
“수석 수렵관protokynegos 바타체스 님의 호의입니다! 그냥 공짜로 가져가시면 됩니다!”
부유한 상인 귀족들은 사재를 출연하고, 그럴 여력은 없지만 시간은 남는 빈민들은 기꺼이 저들의 일손을 보탰다.
“라틴인들에게 진정으로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교양입니다!”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은 모두 모이십시오! 퀴도네스 선생께서 무료로 신학 속성강의를 하고 계십니다!”
귀족들은 기꺼이 지식인들의 무료 강연회를 후원했고, 그깟 학문이 무슨 소용이냐며 냉소하던 항만 노동자들은 그런 자리에 조심스레 발걸음을 하곤 했다.¹
허나 이 도시에 머문 지 넉 달 째인 시그리드에게는, 쇠락했지만 아직 과거의 위대함을 모두 잃지는 않은 도시의 아름다움도, 새로 꽃피기 시작한 희망도 감상할 겨를이 별로 없었다.
“시그리드! 무지개 얘기 마저 해줘요!”
“아니, 황자님, 또 어떻게...”
공의회 준비로 온 황궁이 분주한 틈을 타, 어린 콘스탄티노스 드라가시스 황자가 교육 담당 환관들을 따돌리고서 수행원 몇몇과 통역 – 그 옛날 마누일이 서유럽을 순방하던 시절 독일어를 익힌 자들이 꽤 있었다 – 만을 거느리고 나타나곤 했던 것이다.
“제가 멀리서 온 사람이라 신기하게 여기는 건 이해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함부로 궁 밖을 다니시면 안 돼요. 저만 아니라 황자님의 아버지 되시는 분께도 폐가 될 수 있는데...”
“그럼 폐가 안 되게 잘 지켜주면 그만이잖아요? 길 잃은 어린 황자를 그냥 내버려두고 가실 건가요?”
일곱 살 먹은 황자치곤 제법 예리한 발언이었다. 황자에게 끌려 나온 이들은 ‘부디 황궁에서 사람이 나올 때까지만 황자님을 잘 붙잡아주십시오.’하고 눈으로 간청하고 있었다.
“휴... 알았어요. 비프로스트 얘기 마저 해드리면 궁으로 돌아가실 거지요? 약속하세요.”
욘이나 콜그림이 제게 온갖 이야기를 해주었던 것도, 실은 자신이 꼬마 시절에 끝없는 물음으로 퍽 귀찮게 했기 때문이었던 것 아닐까? 문득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지게 되는 시그리드였다. 욘의 떠벌이 기질을 생각하면 다소 타당성이 낮은 가설이었지만.
“어, 그건 좀 아쉬운데... 리프도 한 번 쓰다듬게 해주세요.”
맹금의 본능은 어디 갔다 두었는지, 마치 욘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해적의 앵무새마냥 시그리드 어깨와 머리 위를 오가던 리프가 눈치없이 푸다닥 내려앉았다.
낯선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여기 계셨구만.”
평범한 도시의 귀족처럼 생겼지만, 그 날카로운 눈매 탓에 진짜 평범한 귀족이라기보다는 무언가 비범한 사람이 평복하고 나온 것이 확연히 드러나는 젊은이였다.
그 곁의 통역이 독일어로 저의 고용주가 한 말을 옮겨주었다.
“그대와 말이 통하는 통역을 찾느라 고생이 많았소. 바랑인²들이라면 다 말이 통할 줄 알았는데, 이름만 바랑인이지 저들 조상 말을 죄다 까먹었더라고. 결국 갈라타와 페라 구역을 샅샅이 뒤진 끝에 겨우 입 무거운 이 사람을 찾았단 말요.
내 성의를 봐서라도 조금 시간을 내주는 게 어떻겠소?”
“그, 우선 통성명부터 하는 게 어떨까요?”
“하, 생각만큼 눈썰미가 좋지는 않군그래. 이 ‘로마’와 그 주변을 두고 각축을 벌이는 굵직한 인물들 중에 그대가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딱 하나뿐이지 않겠소?”
그 말대로였다.
“메흐메트 첼레비?”
시그리드는 저도 모르게 콘스탄티노스 황자를 저의 뒤에 숨겼다.
“그린란드의 이름 높은 마녀를 만나뵙게 되어 영광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딱히 그런 마음은 들지 않는군.”
무사의 개종은 오스만 내부의 갈등뿐 아니라 주변의 정세 전체를 뒤바꾸어놓을 사건이었다. 루멜리아 주변의 기독교도 봉신들은 – 자기 자신이 등 뒤에서 칼에 맞아 죽지 않기 위해서는 – 메흐메트와 모든 연을 끊고 무사에게 충성을 바쳐야 할 것이요, 반대로 무사 아래의 무슬림들 중 적잖은 수는 메흐메트의 편으로 돌아서야만 할 것이었다.
그리고 오스만의 가문에서 배교자가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겨우 메흐메트가 다시 복속시킨 아나톨리아의 옛 봉신국들은 다시금 들고 일어나거나 충성의 대가를 더 요구할 명분을 얻는 셈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철부지 형제의 개종을 묵인하는 건 내게 손해가 막심하다오. 마누일 어르신과 멍청한 아우 녀석이 이런저런 대가를 제시하긴 했지만, 그것만으론 좀 부족해서.”
“언제고 다시 기회를 잡아 이야기를 나누는 건 어떨까요?”
“왜, 그 뒤에 있는 황자 때문에 그러시오?”
콘스탄티노스가 마치 자신이 시그리드를 지키기라도 하겠다는 양, 등 뒤를 빠져나와 메흐메트 앞에 섰다. 그 당돌함에 메흐메트는 차가운 웃음으로 답해주었다.
“이런 일들도 경험해 보는 게 교육의 일환 아니겠소?”
아직은 어린아이였던 콘스탄티노스는 금방 움찔하며 시그리드 곁으로 한 발 물러났다.
“하하, 황자 또한 내 말에 동의하는 모양이로군.”
시그리드는 차라리 메흐메트를 빨리 떼어놓는 쪽이 낫다고 판단했다.
“알겠어요. 그러니까 이번 공의회를 묵인하는 대가를 더 달라는 말씀이시지요?”
“거칠게 말하자면 그렇소.”
“무사 폐하께 드리려고 했던 머스킷 설계도랑, 우리 연대가 쓰고 있는 전술을 정리해둔 글이 있어요. 그 정도라면 족하겠지요?”
메흐메트 또한 잠깐이나마 그 이죽거리는 미소를 지우고, 사무적으로 답했다.
“어차피 내 아우의 개종이 확실시되게 되면 그 아래에서 내 편으로 갈아타는 자들이 꽤 나올 테고, 무사에게 그대가 넘긴 것들은 그대로 나의 것이 될 것이오. 그러니 그 정도로는 부족하오.
그대들이 실제로 쓰고 있는 머스킷 몇 정을 설계도와 함께 견본으로 보내시오. 공의회가 열리기까진 아직 좀 남았으니, 그대 아래서 실전을 겪은 부관들 중 독일어를 아는 자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소.”
“좋아요.”
“여전히 내 손해인 것 같긴 하지만.”
다시금 능글맞으면서도 어딘가 차가운 미소를 탈 쓰듯 짓는 메흐메트였다. 이번에는 시그리드도 지지 않고 응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이렇게 찾아오셨지요.”
“그야, 나는 무사의 선택을 존중하고, 또 상이한 이들의 공존이라는 공의회의 그 거창한 대의에 공감하니까.”
물론 진짜 그럴 리는 없었다. 메흐메트의 눈빛은 그 이상의 무언가를 노리고 있음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었지만, 검은 책에 독심술 비법이 적혀있지는 않았기에 메흐메트의 노림수가 무엇인지 알 길은 없었다.
“그리고 재밌기도 하거든. 내 아우 무사도, 꽉 막힌 에우티미오스도 이 공의회가 진짜 성공하리라 믿지는 않고 있소. 다른 이들이 저와 똑같은 의심을 품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하기에 그냥 묻어가고 있을 뿐이지.
진심으로 공의회를 준비하고 있는 건, 그 후폭풍이 어떻게 미칠지,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지 여부도 모르지만 어쨌든 뭔가 하긴 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우리 마누일 어르신 한 분뿐이오. 평생의 모험을 준비하시느라 요새 부쩍 술이 늘으셨더군. 부르사 시절 그 양반의 주량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를 아는 몇몇 사람들이나 알아보겠지만.”
“아들 앞에서 아버지 험담을 하다니, 이게 무슨 짓인가요?”
“못할 게 무엇이겠소? 언젠가 알긴 알아야지. 아버지의 위업만큼이나 그 흠결 또한 직시할 수 있어야 훗날 훌륭한 군주가 될 수 있는 것 아니겠소?”
메흐메트가 진심을 담아 대꾸했다. 당장 저부터가, 그토록 위대한 줄 알았던 아버지의 나라가 실제로는 로마인들의 나라에 비해 딱히 나을 것도 없는 모래성임을 온몸으로 겪으며 깨닫고 있지 않던가.
“마누일 어르신은 범부凡夫의 심장을 가졌지만, 그 안목만은 독수리에 비견할 만하시거든. 뭐, 그 조상과 일가친척들은 죄다 사자의 심장에 두더지 눈깔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런 치들보다야 마누일 어르신이 훨씬 낫다 하겠소.”
아버지 험담을 하지 말랬더니 이제는 그 조상까지 도매금으로 모욕하는 메흐메트였다. 스스로 나라의 기반을 파괴한 팔레올로고스 가문의 황제들을 생각해보면 딱히 틀렸다고만 하기도 어려운 평가였지만.
“하지만 가장 재밌는 건 역시 그대요, 시그리드.
이런 엄청난 일을 거리낌없이 벌이면서도, 모든 일의 시작점이자 중재자로서의 역할만 하고서 손을 떼더군.”
“그야, 저는 군주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대의 재주로는 군주와 같은 힘을 손에 넣을 수도 있었지. 그 이단들의 여왕으로 군림하면서, 아니면 그대의 고향 땅의 명목상 군주라는 그 덴마크 왕의 봉신이나 그 이상의 무언가가 되어서.”
“저는 누구도 지배하고 싶지 않아요. 그저 함께 나아갈 뿐이지요.”
“뭐, 그것도 재밌는 생각이긴 하군. 그러나 남들과 함께 나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남들 손에 일을 그르치게 될 위험도 내포하게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게요.
어디, 그대가 만들어낸 이 엄청난 연극이 주연 배우 없이 얼마나 잘 지탱될 수 있을지, 바다 건너에서 지켜보도록 하겠소. 나는 썩 훌륭한 관객은 못 되어서, 꼭 무대 위에 간섭을 해야 직성이 풀리거든.”
메흐메트는 끝까지 그 웃음을 지우지 않으며 돌아섰다.
“여하간 그 머스킷이라는 물건은 잘 쓰도록 하겠소. 내 모자란 아우 덕에, 조만간 불충한 봉신들 여럿이 내 신앙심까지 문제삼으며 봉기할 것 같거든.”
‘그게 될 리가 있겠느냐’ 반신반의하면서도, 분위기에 휩쓸려 다들 묻어가게 된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설마 투르크 왕의 개종이 사실이라 믿고서 온 서방에서 모여드는 일이 정말 일어나겠는가?’
놀랍게도 그 일이 정말로 일어났다. 장 제르송과 공의회주의자들 중 그 누구도 언변으로는 어디 가서 질 사람들이 아닌 데다가, 그들 손에 인쇄술이라는 신무기까지 들려 있었으므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투르크인이 황제가 되는 것을 로마인들이 정말 받아들이겠는가?’
반대해야 할 사람들은, 온 유럽에서 몰려드는 사람들 앞에서 그만 그런 생각을 버리고야 말았다.
“플라톤! 플라톤을 보자!”
“여기 알렉산드리아의 프톨레마이오스가 남긴 원고가 많이 남아 있다 들었소!”
“얼른 도서관 문을 여시오! 현기증 날 만큼 오래 기다렸단 말이오!”
돈벌이에 눈이 먼 베네치아인들은, 배 빌려주는 장사를 하는 김에 그리스 철학자들의 원고를 미끼 삼아 온 이탈리아의 소위 인문학자들을 끌어모았다.
도서관을 운영하던³ 콘스탄티노폴리스의 귀족과 성직자들과는 일말의 협의도 없이, 그들이 베네치아인들에게 돈만 내고 그 도시로 향한다면 도서관의 문이 활짝 열리리라 장담했던 것이다.
도서관의 사서들은 금시초문인 이야기에 경악하면서도 그 열기에 한 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4백 년간 유지된 동서 교회의 분열이 그리 쉽게 봉합되겠는가?’
그러나 동서 교회의 교리 차이는, ‘원칙적으로는’ 어느 한쪽이 옳지만, 다른 한쪽 역시 ‘교부들의 가르침과 역사적 전통을 존중’한다는 명목으로 옳다는, 지극히 모호하면서도 차마 반박할 수 없는 논리로 호도되고야 말았다.
그러한 차이를, 향후 공의회 정례화를 통해 조금씩 좁혀가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 마찬가지로 별 내용 없는 결론을 지어놓고서 동서 교회 통합을 축하하는 이들에게 볼멘소리를 하는 성직자들도 없지는 않았다.
(귀족들과 달리 성직자들은 눈치가 없다고 해서 곧장 등에 비수가 꽂히거나 술잔에 정성스레 마련한 독이 들어가진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내용 없이 통합이라고 우기기만 하는 공의회지만, ‘공존과 화합’이라는 그럴듯한 대의명분이 붙었기에 그런 목소리는 금방 억눌리고야 말았다.
하나뿐인 진리를 견지해야 한다고 누군가 이견을 낼 것 같으면, 곧장 ‘그래서 4백 년간 그 진리를 견지한 너희는 투르크 왕을 개종시킨 적 있느냐’하는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논리가, 그렇게 훼방을 놓다가 아예 개종이 무위로 돌아가버리면 책임질 것이냐는 무언의 압박과 더불어 그들을 찍어눌렀던 것이다.
그런 사정을 알 턱 없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사람들 눈에는, 서방인들이 우르르 몰려와 만장일치로 공의회의 결단에 찬성하는 것처럼 보였으므로, 무사의 개종과 공동황제 즉위에 반대하던 이들도 어느새 주변의 ‘눈치 챙겨라’ 하는 압박에 ‘모이시스 1세 오토마니코스’의 등극을 환영한다 말하게 되었다.
아무리 억지라 할지라도, 설령 서로 진심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할지라도, 동방과 서방, 기독교와 이슬람의 공존이라는 환상은 이제 와서 허황되다 폭로하기에는 너무 판이 커져버렸다.
그렇게 모두가 차마 반발하지 못하는 사이, 공의회는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이단과 이교도 어느 한쪽에도 관용적이지 않던 오도네 콜론나 추기경은,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콜론나 가문에서 교황을 내겠냐는 욕심에 그만 저의 양심을 팔고야 말았다.
그리하여 마음에도 없는 악수와 화합의 축배, 온갖 의전과 요식행위 끝에 형식상으로만 동방교회에 대한 수위권을 인정받는 교황 마르티노 5세가 즉위하게 되었다.
“... 또한 같은 이치로, 본 공의회는 시그리드 리프트라사와 그린란드 회사의 이른바 ‘신대륙’ 혹은 ‘빈란디아’ 개척 계획에서 그 자체로 이단적인 요소를 발견하지 못하였으니, 설령 이단이 그들의 도움을 받아 신대륙으로 이주한다 할지라도 이는 그린란드인들의 책임이 아님이다.
그린란드인들이 후스의 이단이나 다른 이교도의 잘못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 한, 그들은 즉각적으로 정죄되어야 하는 이단이 아닌 모두를 그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신대륙으로 이주토록 도울 수 있으며, 교회는 여기에 대해 행위 그 자체로는 문제를 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마르티노 5세는 공의회주의자들의 정중한 권고와 요청, 그리고 에우티미오스를 비롯한 동방교회 대표들의 의견을 모두 듣고 심사숙고한 끝에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처음부터 그 결론이 정해진 것과 다름없다는 점은 굳이 짚지 않는 것이 예의였다.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사안들, 예컨대 어떻게 하면 이 ‘1교회 2체제’에 가까운 허울뿐인 교회통합을 느슨한 상태로나마 유지할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오가는 동안, 공의회 참관을 명분으로 모인 속인들은 그들 나름대로 평화의 도래를 축하하곤 했다.
“고마워요, 박사님.”
“나야말로 고마워해야 할 것 같구나. 이런 엄청난 일이 내 생전에 이루어질 수 있을지 어찌 알았겠느냐.
후스 그이에게 언제고 올바른 교회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말을 전해다오.”
공의회가 열리고 있는 블라헤르네 궁전에 딸린 포르피로게니토스 궁에서는, 이 공의회의 대의와 성과를 기리는 연회가 열렸다.
동서 각지에서 모여든 귀빈을 맞이하기에는 영 검소한 연회였는데, 결코 재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공의회의 정신을 받들기 위함이라는 것이 공식적인 설명이었다.
허나 시그리드에게는 암만 연회가 조촐하다 한들 그리 중요치 않았다. 동녘정착지 입맛에는 이 정도만 해도 상상을 초월하는 진수성찬이었거니와, 마침내 그린란드 사람들이 신대륙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마지막 문턱까지 넘게 되었다는 생각에 절로 배가 불렀던 것이다.
“네, 후스 선생님을 뵙게 되면 꼭 전해드릴게요. 이곳 유럽에서든 바다 건너편에서든 들어주실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어떻게 할 계획이니?”
“우선은 베네치아를 거쳐서 보헤미아로 돌아가야겠죠. 그 다음에는 함부르크를 거쳐서 그린란드로 돌아가고요.”
안타깝게도 지브롤터 쪽은 마린 왕조의 내전과 포르투갈의 개입으로 영 혼란한 상황이라,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배를 타고 그대로 바다를 건넌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설령 서지중해의 정세가 평안했다 한들, 지중해에서 쓰이는 선박과 대서양에 적합한 선박은 차이가 있었기에 한 번쯤 갈아탈 필요는 있었겠지만.
“그리고 아마 신대륙으로 건너간 다음에도 저는 몇 번은 더 유럽을 오가야 할 거에요. 중간에 파리에 들릴 일이 있으면 꼭 선생님을 찾아뵙고 소식을 전해드리도록 할게요.”
개척민들을 계속 받고, 개척에 필요한 온갖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서라도 한동안은 유럽에 신세를 계속 져야 할 것이었다.
제르송은 물론이요 유럽의 그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오직 그린란드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 아즈텍의 황금을 평화로운 교역으로 손에 넣고, 그것을 더욱 값진 무언가로 바꾸기 위해서라도 대서양을 넘나드는 교역은 필수였다.
한편, 시그리드가 제르송과 이야기를 나누며, 겨우 넘은 문턱과 그 문지방 너머의 새로운 과제들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다른 이들 또한 삼삼오오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누일 2세는 문득 그 모습을 보며, 무슨 마법이라도 걸린 것 같다는 실없는 상상에 잠시 빠졌다.
이 공의회가 아니었더라면 로마인들의 황제가 지닌 알량한 권세로는 도저히 모으지 못했을 이들. 온 기독교 세계와 그 너머에서까지 모인 귀빈들이, 전장이 아닌 연회장에서, 칼 대신 술잔을 들고 담소하는 모습.
따지고 보면 지난 서너 달이 줄곧 마법과 같았다. 블라헤르네 궁에서 같은 성직자들과 함께 만찬을 즐기고 있을 에우티미오스는 그런 생각을 언짢게 여기겠지만, 그 외 모든 콘스탄티노폴리스 시민들은 마누일과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마누일이 알기로 이 세상에 마법은 없었다. 그저 보기 좋은 연극일 뿐. 모두가 행복해질 수는 없지만, 행복하다는 시늉은 할 수 있는 것처럼, 도저히 공존할 수 없는 이들이 환상이 주는 이익에 이끌려 공존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화합하기에 그들은 너무나 달랐고, 앙금은 한두 번 만남으로 없애기에는 너무가 깊었다.
그렇지만 이 순간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 않은가? 마누일은 저의 실없는 상상을 조금만 더 이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축하드립니다, 폐하. 자, 우리 시대의 평화를 위해.”
주최측에서 눈치껏 준비한 대추야자주를 담은 술잔을 들어보이며 메흐메트가 다가왔기에, 그 상상은 끝내 끊어지고야 말았다.
“자리를 빛내주어 고맙소. 자, 공존을 위해.”
마누일 2세는 메흐메트의 축배에 응답하면서도, 그 의중을 슬그머니 떠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도시에 활력이 돌아오는 것을 보니 기쁘구려. 듣자하니 참으로 많은 이들이 이 도시의 거리를 찾았다던데, 개중에는 심지어 변복한 귀빈들도 적지 않았다더군.”
즉 ‘네 녀석이 지난날 내 아들 콘스탄티노스와 시그리드 앞에 나타나 수작을 부렸음을 모르지 않는다’라는 뜻이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저 또한 길거리에서 많은 이들을 보았지요.”
“이곳에 걸음한 보람이 있다고 하더이까?”
‘고작 갈리폴리와 약간의 연공, 머스킷 정도로 만족하고 떨어질 일이 아니지 않느냐’하는 물음.
그러나 메흐메트는 능구렁이 웃음으로 답했다.
“그렇지요. 어찌 보람차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 순간을 보면서 말입니다.
기독교도와 무슬림이 화합하고, 기독교인들 안의 이단이라 불리는 자들에게도 관용이 베풀어지고, 심지어 제 아우 무사가 그 주역으로 우뚝 서지 않았습니까?”
“그리 보아주시니 고맙소.”
“그런 대의 앞에서라면야 소소한 의심 정도는 내려놓음이 마땅하겠지요.
심지어 바다 건너 미지의 땅에도 그 대의를 퍼뜨리겠다, 그리 말하더군요. 폐하께서 그런 대의를 위해 관대한 타협안을 제시하셨는데, 제 아우가 거기 응하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대체 무슨 꿍꿍이냐 따져묻는 듯한 마누일의 추궁하는 눈빛. 메흐메트는 슬슬 자신이 준비한 비수를 꺼낼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가이자 유수의 문명국으로서, 로마 또한 그 대의에 동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하여 공의회를 열지 않았소이까?”
메흐메트는 그 웃음을 잃지 않은 채, 연회장 건너편의 시그리드를 향해 술잔을 치켜들었다.
“공의회나 투르크인 공동황제 정도로는 조금 모자람이 있지요.
저기, 그린란드의 시그리드를 보십시오. 로마인들의 잣대로는 영락없는 야만인이겠지만, 오히려 이 공의회에서 정의롭다 선포된 대업을 이룩하고자 기꺼이 미지의 땅으로 나아가겠다 하지 않았습니까?
폐하, 그러니 우리 또한 거기 함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능하신 신의 이름으로, 만약 제 또 다른 사랑하는 아우 무스타파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된다면 기꺼이 그 녀석을 신대륙으로 보내겠습니다.
신대륙 한쪽에는 서방인들, 다른 한쪽에는 우리 무슬림, 다른 한쪽에는 로마인들. 이렇게 모두가 어우러져 개척을 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마법은 깨졌다.
떠들썩하던 연회장에는 정적이 내렸고, 그 누구보다도 먼저 메흐메트의 속셈을 꿰뚫어 본 마누일의 이마에는 주름이 새겨졌다.
“진정으로 대의를 위한다면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만약 무스타파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된다면 오스만 가문의 상속자이자 정당한 술탄으로서 그 아이에게 신대륙으로 향할 것을 명할 심산입니다.”
오스만 왕위쟁탈전에서 아직껏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또 다른 왕자, 무스타파 첼레비. 마누일이 언제고 메흐메트를 견제하기 위한 놀음패로 쓰기 위해, 아나톨리아의 반反 메흐메트파 토후의 힘을 빌어 그를 숨겨두고 있다는 것은 몇 사람 알지 못하는 비밀이었다⁴. 그중 하나가 메흐메트라는 것은 불행한 일이었지만.
즉 메흐메트가 선의를 가득 담은 듯한 말투로 호기롭게 제안한 것은, 실제로는 이런 뜻이었다.
‘너희가 억지로 내 아우를 공동황제로 삼고 루멜리아를 가져가려거든, 팔레올로고스 가문에서도 사람 하나쯤은 버리는 성의를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
공동황제직을 투르크인에게 빼앗긴 셈이 된 마누일의 장자 요안니스. 마찬가지로 고분고분하게 투르크인이 황제 자리에 오르는 것을 좌시하진 않을 차남 안드로니코스와 삼남 테오도로스.
그들 중 누구도 버릴 수는 없었다. 제국의 안녕을 위해서라도.
만약 메흐메트의 제안대로 누구 하나를 보냈다가는, 그 즉시 새로운 반란의 씨앗이 뿌려지리라. 투르크인을 축출하고 루멜리아와 더불어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제관까지 독점하기 위한 반란.
반면 그 제안을 일축했다가는, 지금껏 그 거창하면서도 허울뿐인 ‘대의’를 운운하며 이룩한 오늘의 성과가 모조리 부정당할 꼬투리를 남기는 셈이었다.
결국 마누일 2세가 로마인들의 황제로서 할 수 있는 선택은, 아비로서의 도리, 인륜을 저버리는 것뿐.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애써 치켜올리고, 흐를 것만 같은 눈물은 애써 집어넣으며, 혼신을 다해 호탕한 시늉을 하면서.
“하하! 그것 참 좋은 생각이오! 마침 우리 콘스탄티노스에게 물려줄 영지가 없던 참이었지. 공동황제의 땅을 빼앗을 수는 없는 일이요, 이미 모레아와 테살로니키에는 아들들이 있으니까.”
이렇게 한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요, 요안니스와 안드로니코스, 테오도로스가 반란을 일으킬 빌미 역시 아예 끊어 없애지는 못할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그나마 나은 선택이었기에, 사랑하는 아들 콘스탄티노스를 버림패로 내미는 수밖에 없었다.
제국 안에 독을 푼다는 메흐메트의 속셈에 놀아나는 것을 알면서도, 그나마 이것이 제게 건네진 독을 그나마 조금만 머금는 방도임을 알았으므로.
그날 밤, 연회가 끝난 포르피리게니토스 궁전의 가장 깊숙한 침소에서는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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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로마 제국이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지닌 무역 거점으로서의 가치 하나에 의존하여 버티는 수준으로 영락하면서, 도시의 삶의 질 또한 추락하게 됩니다. 15세기 초중반 도시를 방문한 이탈리아인들은 도시 내에서 점차 벌어지던 빈부격차, 그리고 전반적인 침체와 곤궁함, 절망적 분위기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로마의 문화적 유산은 상당히 남아 있었습니다. 멸망 직전까지도 교회의 성직자들과 세속 학자들은 강연회, 낭독회 등을 열곤 했고, 마누일 2세 역시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자신의 관점을 퍼뜨리고 지지자들을 결집하려 노력하곤 했지요. 여기 동참한 지식인들은 제국의 높은 문화적 수준이 얼마 남지 않은 자산 중 하나임을 직시하고, 대중 교육의 중요성을 설파하기도 했지요.
2. 가는 길에 만나는 해적들을 역으로 약탈하며 예루살렘까지 항해한 노르웨이 국왕 시구르드 1세나, 스웨덴에서 출발해 조지아를 거쳐 페르시아까지 간 것으로 추정되는 ‘멀리 돌아다닌 잉그바르’의 용병단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전성기의 바이킹들은 지중해와 흑해까지도 자유자재로 드나들곤 했습니다.
개중 상당수는 북구어로 ‘거대한 도시(미클라가르드)’라 불린 콘스탄티노플에 머물며 용병 생활을 하곤 했습니다. 동로마에서는 바랑인Varangian이라 칭해진 이들 용병들은 제국의 정예 근위대로 활약했지요. 스웨덴 각지의 ‘그리스 룬석’이나 아이슬란드의 사가 몇몇은 이런 용병들이 오랜 복무 후 고향으로 금의환향하거나 아예 콘스탄티노플에 말뚝을 박고 살았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제국이 몰락하면서 근위대조차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형국이 된 뒤에도 바랑인 몇몇은 계속 콘스탄티노플에 남아 뚜렷한 정체성을 유지한 채 살아갔던 듯합니다. 15세기 초 도시를 방문한 이탈리아인들은 스스로 바랑인이라 자처하는 집단이 남아 있었음을 언급하고 있지요. 이들이 ‘진짜’ 바랑인들이었는지, 아니면 잉글랜드 용병들이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16세기까지 존속한 크림 고트족 사례처럼 동로마 영향권 내의 소수민족들이 끈질기게 정체성을 유지한 경우들을 감안하면 이들이 바이킹의 후예들이었을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3. 콘스탄티노플에 남아 있던 고전 문헌과 신학 서적 상당수는 4차 십자군의 약탈과 그 이후의 자연재해 등을 거치며 많이 소실되었지만, 동로마 멸망 시점까지도 교회에 부속된 도서관이나 귀족들의 개인적인 서적 콜렉션 등의 형태로 적지 않은 텍스트가 남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4. 형제들과 함께 티무르 제국의 수도 사마르칸트에 억류되었던 무스타파 첼레비는 1405년 아나톨리아로 돌아와 반독립 내지는 독립 상태가 된 투르크계 토후국들을 전전하게 됩니다. 그가 정확히 어떤 시점에 마누일 2세의 손을 잡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무사가 몰락하고 메흐메트가 오스만의 유일한 지배자로 서게 되자마자 무스타파가 금방 루멜리아에 나타나 反메흐메트 봉기를 일으킨 것을 보면 마누일 2세는 제법 오랫동안 무스타파를 이용할 계획을 준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무스타파는 금방 제압당하고 동로마 제국령으로 도피했으나, 1421년 메흐메트가 요절하자 다시금 제국의 도움을 받아 루멜리아를 장악합니다. 그러나 무사와 달리 무스타파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했고, 아예 메흐메트의 아들 무라트 2세까지 무너뜨리고 오스만의 유일한 계승자가 되고자 무리한 원정을 나서게 됩니다. 하지만 무라트 2세는 그 아들 메흐메트 2세가 정복자가 될 수 있는 기틀을 다졌다는 평을 들을 만큼 유능한 군주였고, 무스타파는 금방 패배해 처형당하게 됩니다.
메흐메트와 무스타파가 모두 사망하면서, 마누일 2세의 대 오스만 외교전략도 파국을 맞이하게 됩니다. 무라트 2세는 결국 1422년 루멜리아로 넘어와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했고, 이어서 제국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펠레폰네소스 반도까지 유린하게 됩니다. 결국 마누일 2세는 굴욕적인 평화조약에 서명하고 실의에 빠진 채 1425년 수도원으로 은퇴하게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