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바이킹-50화 (50/116)

이민자의 노래 (1)

12. 이민자의 노래 Immigrant Song (1) - 레드 제펠린 (1970)

주님의 해 1412년은 참으로 다사다난한 해로 많은 유럽인들의 머릿속에 기억될 예정이었다.

먼저 새해 벽두에 잉글랜드 왕 헨리 4세가 흑사병으로 사망했다.

놀랍게도 그 아들이자 새 국왕인 헨리 5세를 비롯해 새 왕의 측근들 등 중요한 인물들은 흑사병의 검은 손길을 피해갔다.

“우리의 새 국왕께 축복 있으라! 단호히 이단을 정죄하시니, 어찌 복을 받지 않으시리오?”

“질병조차 그분을 해치지 못하니 이것이야말로 가호의 증거로다!”

헨리 5세가 즉위하자마자 이단 롤라드파를 탄압하는 데 열광한 성직자들은 이렇게 떠들곤 했다.

(궁에서 일하는 하인 여럿을 시작으로 퍼져나간 흑사병으로 런던과 그 주변의 빈민들이 많이 죽었지만, 딱히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헨리 5세는 아르마냑파와 기존에 맺었던 협약의 파기를 선언하고, 프랑스 재침공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르마냑파와 부르고뉴파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는 대가로 막대한 영토를 뜯어냈건만, 화약의 힘을 믿는 헨리는 처음부터 고작 그 정도 대가로 만족할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온 유럽을 뜨겁게 달군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가 있었다.

그해 여름, 그 공의회에서 이루어진 놀라운 일들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참으로 경이로운 행렬이 베네치아에서 보헤미아를 거쳐 독일을 종단했다.

후스가 이끄는 보헤미아의 이단자들, 빈란디아의 전제군주라는 한 소년이 이끄는, 겉은 초라하나 그 품은 지식과 교양은 모두를 감탄케 하는 그리스인 무리들. 그리고 그들 모두를 하나로 엮는, 세상 끝에서 온 마녀.

가는 곳마다 구경꾼들을 구름처럼 몰고 다니던 이들 무리는 곧 북해 연안에 닿았고, 홀연히 나타난 거대한 선박에 몸을 싣고서 유럽 너머로 떠나갔다.

그러나 아직 1412년은 끝나지 않았다.

1412년 가을, 졸지에 대립교황이 되어버린 요한 23세는 신성로마제국 내 피사파 제후들을 규합해 지기스문트의 파문을 선언했고, 피사파 제후들은 모라비아 변경백 욥스트를 새 독일왕으로 추대했다.

하지만 지기스문트는 공의회에 참석하는 대신 프라하로 향해, 작년부터 힘을 모으고 있었다.

“보헤미아 국민과 관용왕 지기스문트 폐하의 이름으로! 평화의 적들에게 죽음을!”

보헤미아 잔류를 선택한 프라하 민병대들 중 지기스문트가 약속한 막대한 대가에 넘어간 이들은, 불과 일 년 전에 십자군을 이끌고 쳐들어온 지기스문트를 위해 다시금 총을 들었다.

“세 나라의 국왕이시자 평민들의 벗이신 에릭 폐하를 위하여!”

그리고 잉글랜드의 프랑스 침공에 앞서, 미리 주변을 정리하고 지기스문트의 호의도 살 심산으로 에릭 역시 저의 신식 군대를 남하시켰다.

필리파 왕비에게 강요된 불명예에 반발하던 스웨덴 귀족들을 몰살한 바로 그 군대였다.

마르그레테 시절, 고작 슐레스비히 땅 하나를 놓고 홀슈타인 백국과 드잡이질하던 것은 이제 과거지사라고 강변하듯, 에릭의 신식 군대는 유틀란트에서부터 모라비아까지 행군하며 가로막는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¹.

마치 이제는 보헤미아 왕국군이 된 프라하 민병대가 합스부르크 가문의 기사들을 에멘탈 치즈 신세로 전락시키면서 비엔나로 진격한 것처럼.

‘자랑스러운 에릭 폐하의 신식 군대, 치졸하고 비겁한 모라비아 변경백 욥스트를 사로잡다!’

그리고 그 모든 사정은, 프라하에서 펴내던 책들을 빠르게 모방해 에릭이 펴내는 『진실』 지에 담겨 있었다. 욘의 세상에 있던 신문이라는 물건에 가까웠지만, 어째 그 내용은 뉴욕 타임스보다는 프라우다에 가까워 보였다.

“코펜하겐에 새로 차려진 인쇄소에서 거의 천 부씩 찍어내 흩뿌리는 글이라오. 노르웨이의 베르겐이든 스웨덴의 웁살라든, 어지간한 도시에서는 못 구해서 안달이라는군. 레이캬비크나 스칼홀트에서도 마찬가지고.”

험한 겨울 바다를 뚫고 막 단치히에서 돌아온 기푸즈코아 사람 미콜라스가 지난달 간행된 『진실』 지를 시그리드에게 건네주었다.

그린란드 회사 본부로 쓰이고 있는 가르다르 성당의 객관. 지금까지 밝혀진 바를 바탕으로 작성한 어설픈 신대륙 지도는 시그리드 뒤에 병풍처럼 걸려 있어, 화로 불빛에 고즈넉한 느낌을 더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에릭 폐하의 인기가 좋은가요?”

“좋을 수밖에 없지 않겠소? 본인 손으로 몰살한 귀족들의 재산이나 이권을 몰수해 죄다 ‘평민’들에게 흩뿌려주고 있으니.”

실제로는 에릭과 결탁한 상인들, 그가 저도 모르게 걷고 있는 ‘근대화’의 길에 합류한 이들에게만 그 이권이 돌아가겠지만, 평범한 사람들 눈에는 에릭이 가진 자들에게서 빼앗아 못 가진 자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처럼 보일 터였다.

“휴... 어째 함부르크를 떠날 때까지 한 번도 모습을 안 보이더라니.”

“응? 뭐라 하셨소?”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혼잣말이랍니다.”

마리엔부르크에서는 직접 시그리드의 방에 쳐들어오고, 피사에는 콘라트 레츠카우를 보내 끈덕지게 설득을 하던 에릭은, 정작 시그리드 일행이 수백 명 규모로 떠들썩하게 독일을 종단할 때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집착이 식었다기보다는 – 그랬으면 좋겠지만 – 시그리드의 생각이 바뀔 것이라 기대하는 쪽에 가까울 것이다.

에릭 자신이 뒤바꾸고 있는 유럽의 모습을 보고서, 미래는 이쪽에 있다는 것을 깨닫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터.

어쩌면... 에릭이 아예 틀린 건 아닐지도 모른다. 전쟁은 국가를 만들고, 국가는 전쟁을 만든다고 했던가. 기술은 그 자체로 길을 만들고 그 길로 사람을 이끄는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광기에 사로잡힌 에릭의 집착이 이끄는 그 길, 원 역사에서는 숱한 시행착오 끝에 그저 저의 욕심 차리려던 군주와 상인들이 향했던 길 바깥에서 다른 길을 찾는 것은 헛수고일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돌아오자마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고생이 많구려.”

시그리드는 머리 흔들어 잡념을 털어냈다.

“내년에 바닷길 트이자마자 ‘좋은 희망’으로 떠나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죠.”

“얘기는 전해들었소. 내년도 탐험 계획을 미리 짜두었다고 하던데.”

“네, 맞아요. 바스크 뱃사람 대표로서 검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린란드를 거쳐 신대륙으로 건너가는 항로는 유럽에서 그대로 북대서양을 가로지르는 항로에 비해 뜻밖의 이점 하나를 지니고 있었다.

동녘정착지에서 좋은 희망까지 가는 거리는, 대략 레이캬비크까지의 거리와 비슷한 정도.

따라서 보름밤 직전에 동녘정착지를 떠나면, 달이 이지러져 밤이 어두워지기 전에 바다 건너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는 봄철 항해에도 불침번만 세워두면 빙산의 위협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뜻했다².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개척민들을 빈란드 해안으로 보내야 하니까요.”

“그건 그렇지. 어디, 지도 보면서 얘기해보십시다.”

시그리드가 동녘정착지에 도착하자마자 열린 (그린란드 기준) 성대한 환영회. 그 환영회가 끝나자마자 시그리드는 파울과 함께 내년도 계획 작성에 착수했다.

1412년 여름까지, 주로 독일인과 그린란드인, 칼라알릿 사람들 위주로 꾸려진 개척대는 좋은 희망 근처에 벌목장 여럿을 마련했고, 바스크 사람들은 좋은 희망에 어업 전초기지를 세웠다.

그리고 그 너머, 아이슬란드에 아직 머물고 있는 개척민들을 수용할 곳을 찾아 남하한 탐험대는, 딱 한 곳을 제외하곤 적합한 곳을 찾지 못했다.

좋은 희망 맞은편의 ‘맑은 바다’ - 제발 안개가 걷히길 기원하며 그런 이름을 붙였다던가 – 섬. 원 역사에서는 ‘새로 찾은 땅Newfoundland’이라는 성의 없는 이름이 붙을 그 큰 섬은 숲이 울창하고 사냥감도 제법 있었으나, 농사짓기에는 대충 동녘정착지만큼만 적합했다.

‘개척자들의 만’(세인트로렌스 만) 주변의 다른 땅도 딱히 사정이 낫진 않았다. 그나마 좋은 희망 근처에 비해 원주민들은 덜 호전적이었지만.

“그런데 대체 왜 우리를 그렇게 경계하는지, 혹시 알려진 바가 있나요?”

“그들은 우리 유럽 사람들보다는 그 칼라알릿 사람들을 더 경계하는 것 같았소. 이갈리코 그 친구와 비슷하게 생겼고 말도 그럭저럭 통하는 부족들이 좋은 희망 북쪽으로 한 하루이틀 거리에 간혹 나타나곤 했는데, 아마 그것과 관련이 있지 않나 추정할 뿐이오.”

“그것도 내년에 해결을 봐야 할 사안이겠네요. 어떻게든 그들과 협력 관계를 구축해야 하니까요.”

‘굳이 그럴 것까지야 있느냐’하는 물음이 미콜라스의 목울대까지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원주민과 교섭하는 것은 바스크 사람들의 몫이 아니었고, 그보다 더 중한 일들이 많이 있었으니까.

“여하튼 내년의 탐험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 진행할 생각이에요.”

개척자들의 만, 이하 ‘개척만’ 주변은 대체로 수렵과 어업, 목축업 정도에만 적합했지만, 그나마 희망이 보이는 곳이 있으니 바로 만 서쪽 끝의 큰 강이었다.

검은 책의 지도와 대조해보면, 그 강을 거슬러 올라갔을 때 오대호가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리고 오대호를 따라 계속 대륙 안쪽으로 들어가면, 바로 원 역사 미국의 제조업을 책임졌던 도시들이 있던 자리가 나왔다.

“이쪽,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농경에 적합한 곳뿐 아니라 혹 노천 광맥 같은 게 있는지도 확인해야 할 거에요. 언제까지 철을 바다 건너에서 수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또 해안 근처에 좋은 철광석 산지가 꼭 있다는 보장도 없으니까요.”

“철광석? 하지만 우리 뱃사람들 눈에는 그 돌이 그 돌이지, 철광석을 구별하긴 어려울 텐데.”

“후스 선생님을 따라온 보헤미아 사람들 중에 광부 일을 하던 분들이 꽤 있답니다.”

보헤미아의 광산은 그 축복받은 입지와 더불어 보헤미아를 제국에서 가장 부유한 땅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바 있었다. 그런 광산에서 일하던 광부라면, 철광석을 구분하는 것쯤이야 여반장일 테다.

“그리고 다른 한 갈래는, 아직 이름이 안 붙은 개척만 남쪽의 섬(노바스코샤)을 빙 돌아서 더 남쪽으로 갈 겁니다.”

원 역사에서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넘어온 청교도들이 닿았던 땅. 그 땅에서 청교도들은 추수감사절이라는 명절을 새로 기념하게 되었다고 욘은 말했다.

이는 다시 말해, 그 땅에서는 농경이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쭉 남쪽으로 나아가다 보면, 우리와 교역을 할 만한 문명을 발견할 수도 있을 거에요.”

거기에 아즈텍과 마야 문명이 있다는 것을 설명할 방도가 없던 시그리드는 그렇게 얼버무렸다.

파울과 스베인이 아즈텍과의 교역 이야기를 납득한 것도, 어떤 확고한 증거가 있다기보다는 욘이 그렇게 말했다면 그런 것이려니 하고 믿었던 데 가까웠다. 이방인 욘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아즈텍 이야기를 벌써부터 하느니, 우선은 이렇게 얼버무리는 게 나았다.

심사숙고 끝에 미콜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려면 아예 좋은 희망에서 새로 배를 건조하는 게 낫겠지만, 개척만 남쪽으로 해안을 따라 남하하려면 우리가 타고 건너갈 노블 선을 계속 타고 가는 게 나을 것이오.

그 외에는 덧붙일 사항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군. 이대로 진행하는 것으로 알겠소.”

“고맙습니다.”

“별 말씀을 다.”

미콜라스는 시그리드의 감사를 겸허히 받았다. 오크니 제도의 커크월에서 만난, 세상에 물들지 않았던 은발 소녀는, 이제 그 세상을 한바탕 뒤엎고 돌아와 성숙한 여인으로서 이 자리에 섰다.

마녀라 불릴 만큼 불가능과 가능의 경계를 몇 차례나 무너뜨린 여인. 그러고도 처음의 그 순수함을 완전히 잃지 않고, 그때의 그 미소와 결연함, 그리고 겸손함을 그대로 품은 채 돌아온 여인. 그런 이라면 미콜라스의 존중을 받고도 남았다.

“그런데, 이제야 떠오르는 얘기지만 원래 여기는 원래 파울 주교님 자리 아니었소?”

“아, 그분은 지금 바쁘셔서요.”

“한참 논쟁 중이신가 보구만.”

옥스퍼드 대학에서 망명을 온 롤라드파 학자들에 이어, 후스와 플레톤까지 도착하면서, 동녘정착지에서는 그 옛날 붉은머리 에이릭 시절 이래 처음 있는 풍경, 즉 학술토론이라는 것이 벌어지게 되었다.

아마 북극권 근처에서는, 지금의 동녘정착지가 멀리 동쪽의 노브고로드 다음가는 학문의 중심지 아닐까, 그런 실없는 생각을 잠시 품는 시그리드였다.

“그러면 슬슬 일어나 보겠소.”

“네, 시간 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바깥에서 문 탕탕 두드리는 소리가 난 것은 그때였다. 미콜라스는 못 알아듣고 시그리드는 겨우 일상회화 정도만큼만 알아듣는 ‘로마어’.

“시그리드! 같이 눈사람 만들어요!”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떠날 때만 해도 들떠 있던 콘스탄티노스 황자는, 적어도 몇 년은 저의 고향과 가족을 보지 못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를 한참 늦게야 깨달았다.

다행히도 동녘정착지에는 그 침울함을 잠깐이나마 해결해줄 만한 것들이 여럿 있었다.

저의 리프로 삼겠다며 잡아다 키웠던 북극여우. 그 북극여우가 냅다 도망칠 무렵부터 슬슬 보이기 시작한 오로라. 그리고 그 즈음부터 끝없이 내리는 눈까지.

“황자님, 말씀은 고마운데요, 저는 조금 바빠서... 엇?”

문 열고 나선 시그리드는, 그사이 황자가 전제군주로서 저의 첫 봉신들을 거느리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헤헤, 제 신하들이에요.”

과연 저 ‘신하’들이 자신이 신하라 불리는 것을 알고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가르다르 동쪽 비탈의 옛 농장 곳곳에 땅을 파고 보금자리를 꾸린 칼라알릿 부족의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 따라온 개 한 마리.

마당 건너편에 어슴프레 보이는 눈 방벽과, 거기 어설픈 헬라스 글로 쓰인 ‘헥사밀리온 방벽³’이라는 문구.

“귀 빨개진 거 봐. 얼른 들어와서 불 쬐세요. 그런데 말이 어떻게 통했나 봐요?”

“방벽 쌓고 눈사람 만들고 있으니까 알아서 옆에 와서 같이 짓던데요.”

“아.”

칼라알릿 아이들이 신하든 친구든, 콘스탄티노스가 정말로 거느렸을 신하들보다는 충성스러운 듯했다.

칼라알릿 아이 하나가 저들 말로 떠들면서 콘스탄티노스 옷자락 – 고향에서 입던 귀한 옷은 정성스레 궤짝에 넣어 보관하고 있었기에, 지금은 거칠지만 따뜻한 가죽옷을 입고 있었다 – 을 잡아당겼다.

“어? 왜?”

언제 시그리드와 이야기하고 있었냐는 듯, 제 ‘신하들’에게 이끌려 마당 반대편으로 달려간 콘스탄티노스는, 동로마식 ‘충성’을 맛보았다. (즉, 뒤통수로 눈덩이가 날아들었다.)

지지 않겠다는 듯 황자도 손수 눈을 뭉쳐 던지고, 그렇게 아이들 뛰노는 소리가 어두컴컴한 동녘정착지의 낮을 뚫고 피요르드에 울리는 듯했다.

그 모습 어딘가가 아름다워, 시그리드도 자리에 가만 서서 감상하게 되었다.

멀리, 물개와 바다코끼리 사냥 전초기지로 다시 개발되고 있는 서녘정착지에서 돌아오는 카약 몇 척이 보였다. 가뜩 불어난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서는, 한겨울에도 식량을 계속 조달해야만 했다. 저기 실린 물개 고기와 지방은 살림살이에 꽤 도움이 될 터였다.

지난 여름에 좋은 희망에서 실어온 목재로 쌓아올린 목조 건물. 몇십 년간 신축 건물이라는 게 없던 동녘정착지였지만, 굴러온 돌과 같은 신축 건물들은 박힌 돌에 해당하는 옛 건물들과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플레톤 눈에야 흉물스럽겠지만, 시그리드가 보기에는 제법 좋았다.

저 어두컴컴한 하늘 아래, 다 같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다. 동쪽 비탈의 칼라알릿 사람들. 목재가 들어온 덕에 새로 보수한 집에서 예전처럼, 그러나 예전보단 훨씬 활기차게 살아가는 그린란드 사람들. 그리고 나무집에서 바다 너머로 갈 날을 기다리는 독일인과 보헤미아인, 헬라스인과 잉글랜드인.

성당 바로 밖 공터에 새로 지은 롱하우스 닮은 큰 나무집에서 ‘쾅’하고 문 닫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엥이, 순 야만인들 같으니!”

“플레톤 선생! 돌아오시오!”

창고와 회의장을 겸하는 그 건물은, 지금은 치열한 논쟁의 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신대륙에 세워질 새 공동체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그것을 결정할 시간이 생각만큼 많지 않을 것임을 깨달은 파울 주교의 주도로, 파울과 롤라드파 학자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논쟁.

거기에 후스와 플레톤이 합류하고, 바깥 물 먹었다고 그린란드 사람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멀리 돌아다닌’ 스베인이니 ‘현명한’ 콜그림이니 하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 전직 백송고리 용병단 사람들까지 종종 끼어들었으므로, 불에 기름 부었다고 하기도 모자랄 만큼 논쟁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논쟁이 안 벌어지기가 더 어려웠다.

그린란드 사람들, 얼어죽고 굶어죽지 않는 것만으로도 라그나로크 다음의 극락 세상이라며 만족할 이들에게 신대륙은 그저 생존의 장이었다. 겨울과의 투쟁이 종교의 자리를 갈음한 지도 오래.

생존을 위해서라면, 어느새 부활한 이교도 신앙쯤은 눈감아주어야 했고, 라그나로크를 꿈꾸는 이교도들도 교회가 차지한 그나마 비옥한 토지를 건드리지 않았다. 이방인 욘이 나타나 그 투쟁이 결국 무의미한 것임을 떠벌리기 전까지는, 서로 백안시할지언정 누구도 이 문제를 입 밖에 함부로 내지 않았다.

반면 후스와 롤라드파 학자들에게 신대륙은, 유럽에 남은 동포들을 돕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는 무대였다.

그리고 나머지 학자들 모두를 합친 것만큼 박식하고 그만큼 자부심 가득한 괴짜 플레톤에게 신대륙은, 구대륙에게 모범이 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보여줄 땅이었다.

그 견해 차이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 한 가지를 두고서 단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유럽 각지의 사람들을 모아서, 어느 한 군주에게 손 벌리지 않고 우리끼리 신대륙의 법도를 정할 수 있게 된 것은 좋다 치자.

그렇다면 이 새 공동체의 언어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그린란드 회사, 동녘정착지와 아이슬란드, 바스크 어부들을 대변하는 파울 주교는 그냥 지금처럼, 이런저런 언어가 섞여 쓰이는 상황을 유지하자 주장했다. 이렇게만 해도 딱히 삶에 불편은 없었고, 구태여 공용어를 지정한다면 오히려 불편만 늘어날 것이었다.

유럽 땅의 동포들을 일깨우길 바라는 이들에게, 유럽과의 인연은 단절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후스는 이제라도 라틴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척민 중 식자들과 그 외 중진들에게 지금부터 라틴어를 가르친다면, 일이 년 안으로 모두가 라틴어로 대화가 가능해지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유럽 땅의 야만인들과 근시 환자들에게 이상국가를 보여주길 바라는 플레톤에게, 이는 기껏 얻은 새 시작의 기회를 버리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플레톤은 헬라스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헬라스 땅은 문명이 시작된 곳이요, 그 언어는 모든 학문의 근원이 되는 이상적인 언어였으니까.

“하여튼 식견이라곤 없는 야만인들이라니까... 쯧쯧.”

시그리드가 후다닥 달려가 물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자네가 데리고 다니던 그 스베인 있지 않은가. 배움과는 담 쌓은 놈이 쳐들어와서 윽박지르는 꼴이라니, 참.”

파울과는 앙숙이었지만, 코펜하겐에서 작별할 때는 이미 꽤 친해져 있던 스베인이었다.

논쟁 소식을 듣자 브라타흘리드의 측근들과 함께 쳐들어가서는,

‘로마 말로 통일하느니 차라리 우리 그린란드 말로 통일하는 게 낫지 않겠소? 어르신은 제우스를 섬기지만 우리는 그 애비 오딘도 섬기니까, 우리네 말을 따르는 게 더 합리적이지.’

이런 억지를 부렸던 것이다.

스베인 딴에야 파울을 지원한다고 한 일이었지만, 나름 학구적인 토론을 하던 판에 밀고 들어와 억지를 부리니, 학술토론에 대한 기준이 콘스탄티노폴리스와 모레아의 수도 미스트라에 맞추어져 있던 플레톤에게는 무례함을 넘어 모욕으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공용어를 하나로 정할 필요는 있겠지만... 그게 꼭 어려운 언어일 필요가 있을까요?”

그간 이 문제에 깊게 관여할 여유가 없던 시그리드였지만, 언뜻 생각해도 플레톤과 콘스탄티노스 외 이백 명만 쓰는 헬라스 말을 신대륙 공용어로 지정하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어려운 언어라니? 문명인의 언어지!”

“하지만...”

“자, 이렇게 생각해보게나.”

시그리드의 고작 몇 달 배운 헬라스어 실력을 감안해 나름 쉬운 말로 풀어 설명하는 플레톤이었다.

“자네 말마따나 언어를 하나로 정해야만, 신대륙에서 우리가 직면할 수많은 일들을 제대로 처리하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네.

이왕 하나로 통일해야만 한다면, 당연히 문명인의 언어로 통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에게는 그럴 힘이 있으니, 문명인의 의무 또한 다해야 하네. 따지고 보면 그 라틴 말로 통일하자고 하는 후스 그자의 논리도 이것과 맞닿지 않던가.”

그게 훗날 제국주의자들의 논리와도 맞닿는 것이라는 게 문제였다. 왜 문명인들의 언어를 배워야 하는가? 그래야 문명을 베풀 수 있으니까. 문명을 베푼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문명인들에게 문명을, 때로는 억지로라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문법이 정교하거나 음운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저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에게 대포와 함대가 있었기 때문에 공용어가 정해졌을 뿐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헬라스 말이든 라틴 말이든 그걸 배운 사람과 배우지 않은 사람이 갈리지 않을까요?”

“배우면 그만 아닌가. 그 언어를 못 배울 만큼 아둔하다면야, 그 자체로 비문명인인 것이고.”

“바스크 사람들이나 칼라알릿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들이 왜 중요한가?”

“어, 선생님이 타고 다닐 배를 몰고, 선생님 잠자리를 데우는 화로에 들어갈 물개 기름을 마련해주니까요?”

아리스토텔레스식 경험적 논리에 무너지고야 마는 플레톤이었다.

“이왕 공용어를 정할 것이라면, 쉬운 게 최고 아닐까요?”

결국 빙빙 돌고 돌던 논쟁은, 약식 투표를 치르고 거기 승복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말이 약식 투표지, 종이도 부족하고 시간도 귀했으므로 그냥 동녘정착지를 돌아다니며 설문조사를 하는 데 가까웠다.

“이건 반칙일세.”

“제가 끼어든 게 말인가요?”

“아니... 휴, 되었네.”

시그리드가 ‘무조건 쉬운 언어랑 조금 어려운 다른 언어들 사이에서 뭐를 고르실래요?’하고 묻고 다니자, 거의 모두가 당연히 쉬운 언어가 낫다는 답을 내놓은 것이다.

논쟁에서 한 번도 거론되지 않았지만, 성도, 수도, 격도 없는, 문법적으로 가장 간단한 언어가 따로 있었다.

영어라고.

그러나 동로마 사람들 다음으로 수가 적은 잉글랜드 사람들 말을 공용어로 하자고 하면 당장 롤라드파 학자들부터가 부담감에 손을 휘휘 내저을 터였다.

“싫으시면 언어 정비 사업에서 빠지셔도 됩니다.”

“나 없이 나머지 사람들이 뭘 하겠나.”

그리하여 이름은 ‘이민자 공용어’로 하고, 지금의 영어를 기반으로 한 조금 다른 언어를 만드는 것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플레톤 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학자들도 끝을 보이지 않는 논쟁에 조금씩은 지쳐 있던 것이다.

어째 욘이 시그리드와 이야기 나눌 때 썼던 ‘현대’ 영어와 닯게 되긴 했지만, 아무튼 상관 없는 일.

중요한 것은 총칼이나 함포 대신 칼라알릿 사람들까지 포함해 그들 모두의 총의에 따라 결정한 선례를 남겼다는 점 아니겠는가.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흐발세이 앞바다를 오가는 빙산도 조금 줄어들 무렵, 마침내 닻을 올리고 돛을 펼친 노블 1호 ‘아마추’에 오른 시그리드는, 그러므로 기쁜 마음으로 서쪽을 보며 흥얼거릴 수 있었다.

“아아아, 아!”

겨울 내내 서쪽을 바라보며 흥얼거린 시그리드 덕에 노래 가사를 얼추 알게 된 스베인이 옆에서 함성을 함께 질렀다. (노래는 그의 재주 중에 들지 않았다.)

“아아아, 아!”

“우리 힘차게 노 휘저어 나아가니, 우리 목표는 오로지 서쪽 해안이로구나!”

1413년 4월 13일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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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래의 역사에서도, 화약무기의 보급이 가져온 군사혁신은 인구와 생산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북유럽 국가 스웨덴이 유럽 유수의 강대국으로 잠시나마 부상할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17세기 초 스웨덴 국왕이었던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이끄는 스웨덴군이 30년 전쟁에서 활약한 것을 시작으로, 스웨덴은 훨씬 체급이 큰 러시아에게 발트해 패권을 빼앗기기까지 약 백 년에 걸쳐 유럽 북방의 최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습니다.

2. 북극 해빙은 가을부터 발달해 한겨울에는 그린란드 남단 근처까지 닿고, 봄부터는 녹기 시작해 한여름에는 겨울의 절반 가량으로 줄어듭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기후변화가 본격화되기 전인 20세기까지의 이야기입니다.) 특히 봄에는 빠르게 해빙이 녹으면서 빙산이 해류를 타고 남하하는데, 특히 북아메리카 북동해안을 따라 남하하는 빙산은 예로부터 항해를 위험하게 만드는 장애물로 작용했습니다. 래브라도 해안을 따라 남하하는 빙산은 최대 북위 40도선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러한 빙산의 피해 사례로 가장 잘 알려진 타이타닉호의 경우 북위 41도 44분, 그러니까 동아시아로 치면 청진-하코다테 부근에서 빙산과 충돌해 침몰한 바 있습니다.

3. 헥사밀리온 방벽(6마일의 방벽이라는 뜻)은 원 역사에서는 펠레폰네소스 반도와 그리스 본토 사이의 좁은 코린트 지협을 가로지르는 방벽이었습니다. 모레아 전제군주령을 바탕으로 부흥을 꿈꿨던 마누일 2세와 그 뒤의 콘스탄티노스 11세는 이 방벽의 재건을 추진했지만, 이미 쇠망의 길로 접어든 제국이 고작 방벽 하나에 힘입어 투르크 군세를 막아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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