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말 한 필 (1)
14. 이름 없는 말 한 필 A Horse With No Name (1) - 아메리카 (1971)
막대한 식량을 좋은거래 일대에 흩뿌리며 신대륙 연합의 의지와 역량을 과시한 것을 끝으로, 신대륙 정착지 주변의 굵직한 세력과의 관계는 얼추 정리된 셈이었다.
좋은희망 의회라 불리게 된 원주민 협의체. 점점 팽창하는 이로쿼이 연맹의 위협에 대응해 한창 대책을 모색하던 차, 막 나타난 개척민들의 손을 덥석 잡은 ‘우애’ 주변의 원주민.
그리고 일단은 그 미심쩍은 담배 무역 제안을 받아들이기를 선택한 이로쿼이 연맹, 즉 긴집사람들의 다섯 부족.
오대호 북쪽의 세줄기불꽃 의회는 좋은거래에서 너무 멀기도 했거니와, 이미 그 구성원인 오다와 사람들이 모피 교역에 뛰어들었기에 굳이 시그리드의 개척자들과 갈등을 빚을 이유가 (아직은) 없었다.
그러니 이제는 짤막하게 끝난 좋은거래 구출 작전의 비용을 감당할 차례였다.
좋은거래 일대에 푼 건어물과 유제품은 – 훗날 배탈을 호소하는 이들이 나타났지만 안타깝게도 환불은 불가한 일이었다 – 귀하게는 팔릴지언정 먹을 수는 없는 모피로 교환되었다.
그린란드 회사 사장으로 잔뼈 굵은 파울이, 어찌어찌 바스크 어부들과 잘 협상해, 그들이 잡은 생선을 모조리 개척민들에게 넘기는 대신 그 대금을 모피로 받아가도록 하였지만, 그마저도 삼천에 육박하는 인구를 모두 먹여살리기엔 아슬아슬했다.
“왜 이렇게 삶이 어려운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씨. 이 땅에 닿으면 만사형통일 줄만 알았는데요.”
콜그림이 시그리드에게 탄식하듯 말했다.
가혹한 겨울의 문턱. 유럽으로 돌아가는 올해의 마지막 노블선 두 척이 모피와 담배를 싣고 며칠 내로 떠나면, 그때부터 내년 봄까지는 굶주림을 견디면서 버텨야 할 터였다.
“그래도 어떻게든 잘 풀려나가고 있잖아요. 내년이 되면 더 나아질 테고요.”
시그리드는 희망을 잃지 않고 있었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애써, 나날이 줄어드는 식량 재고에서 눈을 돌리며 내년을 기대하고 있는 것처럼.
실제로 이는 무책임한 낙관만은 아니었다.
어쨌든 좋은희망과 푸른들판 등 개척지에서는 벌써부터 온갖 가축이 잘 정착하여 살고 있었다. 아이슬란드의 추운 겨울을 견디는 양과 닭, 돼지, 소에게 뉴펀들랜드 해안의 기후쯤은 아무것도 아니리라.
벌써부터 몇몇 농장에서는 유제품과 달걀을 생산하고 있었고, 그것을 본 주변 원주민들도 이 가축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또한 남쪽의 왐파노악과 레나피 사람들은, 그들 주변에 정착한 유럽인들이 어려운 지경에 처했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기꺼이 저들의 식량을 나누어주었다¹. 올해는 정착지를 세우고 적합한 농지를 찾는 데 바빴던 남쪽 개척지 사람들도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할 것이었다.
“그리고 남쪽에서는 농지를 찾던 중에 소철bog iron도 발견했다고 하고요. 보헤미아 사람들이 도착하면 금방 철기를 자급자족할 수 있을 거에요.”
“그 얘긴 저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철이 지천으로 있다면 애시당초 교역의 강을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지 않았느냐 볼멘소리하는 놈들도 있었지요. 그 덕에 새 배필 얻은 스베인 대장한테 금방 한두 대씩 얻어맞고 입을 다물었지만요.”
욘이 딱히 뉴욕 주변의 제철업을 이야기한 적은 없었으니 그 매장량이 그렇게까지 대단한 것은 아니겠지만, 나이아가라 폭포를 넘어갈 것도 없이 당장 급한 철의 자급자족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엄청난 호재였다².
후스와 함께 온 보헤미아인 선발대는 대체로 프라하 주변의 농부들이었지만, 내년부터 넘어올 이들 중에는 보헤미아의 부유한 도시 출신들이 더 많았다. 개중에는 보헤미아를 그토록 부유하게 만든 근원인 광산업과 제철업에 종사하던 이들도 적지 않았고.
“그러니 조금만 참으면 될 거에요. 우리가 동녘정착지에서 숱하게 겨울을 견뎌냈던 것처럼요.”
콜그림은 시그리드의 위로에 고마움을 표했다. 사실 그의 근심은 목전에 닥친 굶주림이 아니라, 유럽이든 그린란드든, 이곳 빈란드든 항상 궁핍과 고통, 갈등이 도사리고 있는 현실 그 자체에 대한 것이었지만, 굳이 시그리드에게까지 그런 고민을 털어놓을 이유도, 그 고민을 제대로 형언할 방도도 아직은 없었던 것이다.
차라리 현명한 플레톤 선생을 찾아가면 어떨까. 좋은거래에 머물 때부터 품어 왔던 고민까지 합쳐서 물어본다면, 뭔가 명쾌한 답을 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품으며 콜그림은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아씨, 플레톤 선생님께서는 아직 여기 머물고 계십니까? 뭐 몇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러는데...”
“네. 우리 사이 얘기지만 남쪽 로마인 분들께 단단히 삐지신 것 같더라고요. 본인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도시 이름을 제멋대로 정했다고.”
물론 그것 때문만은 아니요, 시그리드 본인의 요청도 있었다.
“어차피 결혼식 끝나고 배가 출항하기 전까진 계속 여기 계실 테니까, 편하게 찾아가시면 될 거에요.”
모호크 족 전사들이 물러난 직후, 스베인은 카나스탓시에게 정식으로 청혼을 했다.
그때만 해도 긴집사람들이 시그리드의 제안에 응할 것이라는 확실한 보장이 없었기에, 잠시 여유를 되찾았을 때를 노린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긴집사람들은 덜컥 담배 무역에 나서는 대신 모피 독점은 포기한다는 데 동의했고, 대충 ‘이제부터 부부다’ 하고 끝낼 작정이었던 스베인도 조금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거창하게, 좋은희망의 교회 같은 곳에서 식을 올리는 게 낫지 않을까?
신앙의 문제쯤은 가뿐히 잊어먹은 이 발상에 카나스탓시는 흔쾌히 동의했다. 테웨론도 아예 이방인들의 본거지까지 가서, 무너지기 직전까지 간 부족을 되살릴 무언가를 얻어올 심산으로 딸의 혼삿길에 따라왔다.
그 결과가 지금 좋은희망과 푸른들판 등지에서 숱하게 입방아에 오르고 있는 결혼식이었다.
양심적으로 도저히 교회에서 두 이교도의 결혼을 축복해줄 순 없던 후스와 파울은 손사래를 쳤기에, 주례를 보아줄 번듯한 사람은 플레톤 하나만 남았다. (교회 임대 문제는, 테웨론이 은근슬쩍 저의 마을에 선교사를 받아들이겠노라 운을 떼면서 금방 해결되었다.)
“아니다, 아예 그냥 같이 가시는 게 어떨까요? 안 그래도 찾아뵈려던 차였는데.”
시그리드가 선뜻 제안하니 콜그림도 순순히 따랐다.
식량 문제 때문에 지난 여름에 잠시 이민자 행렬이 멈추기는 했지만, 그것이 좋은희망 정착지의 성장을 가로막지는 못했다.
한참 전에 세워진 조선소에서는, 개척만 근처를 돌아다닐 작은 어선들이 건조되고 있었다. 남쪽에 철공소가 세워져 공구와 철제 자재를 자체조달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이상도 시도해볼 수 있으리라.
말이 학교지, 실제로는 정기 교역소 기능을 겸하는 교류의 장이 되어버린 곳에서는, 미크막 사람들이 메이플 시럽을 가져와 주변에 막 ‘한 번 먹어보시라, 죽여주는 맛이다³’ 하며 권하고 있었다. (미크막 사람들은 입 험한 뱃사람들에게 공용어를 배우는 바람에 험한 말을 먼저 배우곤 했다.)
시그리드와 콜그림은 그 작은 북새통을 뚫고, 헤니히네 여관 겸 상점에 도달했다.
“단장, 또 뵙는구려.”
“그럼요. 신대륙 최고의 여관인데 자주 찾아와야죠.”
반경 수천 마일 내에 여관은 이곳 하나뿐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허나 무뚝뚝한 헤니히는 시그리드가 인사 대신 던진 가벼운 농에 사뭇 진지하게 답할 뿐.
“플레톤 선생과 그 디미트리오스라는 화공은 모두 뒤편 방에서 기다리고 있소.”
허나 시그리드는 저 한결같은 무뚝뚝함 이면에 깊은 정이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지난번에도 그린란드 연대 사람들이 멀리 서쪽 좋은거래에 포위당했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저의 총을 챙겨 따라나오지 않았던가.
시그리드는 객실 문을 두드렸다. ‘객실’이라는 표현을 겨우 만족할 만큼 좁고 누추한 방에 모두 들어가긴 곤란했으므로.
곧 플레톤과 화공 디미트리오스 두 사람이 따라나왔다.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배은망덕한 놈들이 이 늙은이의 지혜가 귀한 줄 모르고 있으니, 그놈들보다야 오히려 자네들 사이가 더 편하다네.”
화공 디미트리오스는 어색하게 플레톤과 시그리드 사이를 번갈아 쳐다볼 뿐.
“원래는 두 분을 따로 만나뵈려고 했답니다. 플레톤 선생님께는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부칠 편지 작성을 부탁드리고, 디미트리오스 선생님께는 유럽에 보낼 담배 사용설명서 삽화를 부탁드리려고 했거든요.”
두 사람 모두 ‘고작 그것 때문에 불렀나’ 하는 눈빛이었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니 그 정도로는 두 분 재주의 낭비에 가깝겠더라고요.”
플레톤이 철학자와 화공의 재주를 한 범주로 묶는 우愚를 지적하려 했으나, 시그리드는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아마 지금쯤 유럽에는 이곳 신대륙에 대해 많은 낭설과 오해가 퍼져 있을 거에요. 제가 편지 작성을 부탁드리려 했던 것도, 귀한 아드님을 이 먼 곳까지 보내신 마누일 폐하가 걱정되어서 그랬던 거였고요.
이왕 그렇게 이곳의 실정을 알릴 바에야, 그림까지 곁들여서 상세하게 보내는 게 낫겠다 싶더라고요. 지금 유럽의 어지간한 도시에는 인쇄소가 차려졌다고 하니까요.”
굳이 사람을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보낼 것도 없이, 맨 앞에 ‘로마인들의 황제 마누일 폐하께 부치는 서문’을 첨부하여 인쇄한다면, 이 좋은 돈벌잇감을 놓치지 않을 유럽의 상인들은 금방 불법복제본을 찍어낼 것이다. 그리고 그 불법복제본을 가장 많이 찍어낼 곳은 보나마나 베네치아일 테고⁴.
그리고 베네치아에서 책을 찍어내면 필시 그중 최소 한 부는 콘스탄티노폴리스로 향할 것이었다.
“그래서, 플레톤 선생님께는 지금까지 세워진 정착지들 이야기랑, 이곳에서의 험난하지만 보람 있는 삶에 대해 소개하는 글을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이왕이면 주변 부족들과 우리가 지금까지 어떤 관계를 구축했는지도 함께 써주시면 고맙겠고요.”
영락없는 이교도 야만인들인 원주민들에 대해 그나마 편견을 덜 담아 글을 써줄 수 있는 사람은 플레톤 하나뿐이었다. 그의 박식함이야 더 말할 것이 없기도 했고, 더구나 그의 눈에는 헬라스인이 아닌 모든 인간들은 동등하게 야만인이었으니까.
“그리고 마지막에는 라그나르의 아들 스베인과 테웨론의 딸 카나스탓시의 결혼 이야기도 써 주는 거지요. 두 사람에겐 허락도 받았답니다.”
“그런데 두 사람, 저기 교회에서 식을 올린다 하지 않았던가? 기독교로 개종도 안 했는데?”
“스베인은 옛날에 아마 세례는 받았을걸요? 그리고 정 그 부분이 걸린다면야 그냥 안 쓰면 그만이죠, 뭐. 그리고 설령 누가 트집을 건다고 하더라도, 바다 건너에서 뭘 할 수 있겠어요?”
시그리드가 어깨를 으쓱하자, 저 본인부터도 교인은 아니었던 플레톤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뭐, 나야 교회 얘기는 쏙 빼놓고 이곳에서 우리가 이루어내고 있는 일들을 기술하는 데는 찬성일세. 저 동쪽의 우매한 자들에게 우회적으로나마 깨우침을 줄 수 있다면야.”
“그리고 디미트리오스 선생님께는 삽화를 부탁드리고 싶어요. 결혼식 모습까지 포함해서요. 어차피 바다 건너에서 목판화로 만들려면 완성도 높은 복잡한 그림은 어려울 테니, 편하게 스케치만 그려주시면 되겠습니다.”
“단순한 스케치라 하시면, 대략 어느 정도를 말씀하시는지요?”
장래가 촉망받는 화공으로, 바다 건너에 새로 전제군주국 하나를 세울 때 필요한 인재로 꼽혀서 이곳까지 온 디미트리오스였다.
그런 디미트리오스 앞에, 시그리드가 검은 책에 끼적거리던 대충 그 정도의 수준으로 그린 그림을 보여주었다. 그 옛날 코펜하겐 건물 벽에 그렸던 백송고리 용병단 홍보 그림 정도의 수준.
“저... 이건 좀...”
“대신에 책에 ‘삽화: 디미트리오스’는 꼭 명시토록 할게요. 전 유럽에 이름을 떨칠 기회 아니겠어요?”
디미트리오스는 놀랍도록 빠르게 세태와 야합했다⁵.
“흠. 때로는 단순함에도 나름의 미가 있기 마련이지요.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용감한 개척자들과 그 땅의 원주민들이 함께 일구어내고 있는 신대륙 빈란디아의 풍경과, 개척자들의 흥미롭고도 교훈적인 일화와, 그 땅의 지리와 환경에 관한, 디미트리오스 흐리스토둘로스의 삽화를 곁들여 게미스토스 플레톤이 쓴, 로마인들의 황제 마누일 2세께 바치는 보고서』, 줄여서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가 편찬된 배경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배편이 떠나가고, 1415년 봄이 찾아왔다.
남녘의 개척자들이 주변 원주민들의 호의로 겨울을 근근이 날 수 있게 된 덕에, 이곳 북쪽의 개척자들 또한 생각만큼 심한 기근에 시달리진 않았다. 하루 한 끼나마 꼬박꼬박 챙겨먹을 수 있었고, 심한 독감을 앓는 이들이나 임산부들에게는 추가로 식량을 배급할 만큼의 여유는 있었다.
물론 굶어죽지 않는다는 것과 배불리 먹는다는 것 사이에는 꽤 큰 격차가 있었고, 좋은희망 사람들은 대개 겨울 전에 비해 꽤 살집이 줄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그들은 살아남았다.
해를 넘기고, 마침내 부활절을 맞이한 좋은 희망은, 없는 살림에 저들 나름의 방식으로 부활절을 쇠는 사람들의 이런저런 솜씨로 꽤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이쪽 골목에는 독일식, 저쪽 골목에는 바스크식. 질 수 없다며 어설프게 양쪽을 따라한 – 심지어 교회에 잘 나가지도 않으면서 – 그린란드 사람들의 장식까지.
아직은 찬 봄바람을 맞으며 그 골목 한쪽 공터에 모인 ‘시그리드네 패거리Sigrid’s Party.’
긴 겨울밤에 배곯이를 잊으려고 시작한 오목 클럽이 어쩌다가 모임 하나를 칭할 만큼 커졌는데, 대개는 그린란드 사람들을 포함해 시그리드와 죽이 잘 맞는 사람들끼리 모인 친목 모임이었다. (존 윌슨 중령에게 오목과 알까기를 알려준 한국군 연락장교는, 그 놀이가 이렇게 퍼지게 될 줄은 짐작도 못했으리라.)
물론 개중에는 아직 우애의 도시로 돌아가지 못하고 로마인들의 대표로서 새로 임명되어 이곳에 머물게 된 플레톤처럼, 딱히 시그리드와 죽이 맞는다기보다는 다른 이들과 더 죽이 맞지 않아 이쪽으로 오게 된 이도 있었지만.
“이제 슬슬 올해의 일을 시작할 때가 되어서 밝히는 것이지만, 제가 여러분들을 이렇게 모은 데는 나름의 속뜻이 있었답니다.”
“아니, 1419년에 연다는 그 선거에 대비하기 위한 것 말고 다른 속뜻이 있었다고요?”
불량배 한스가 물었다.
“네? 아니, 그게 속뜻 맞긴 한데...”
“시그리드 아가씨, 그거 아세요? 제가 ‘떠벌이’라는 말을 배울 때, 우리 남편이 딱 아가씨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었는데.”
벌써부터 조금씩 배가 불러오기 시작한 카나스탓시 – 곧 스베인과 아버지 테웨론 등과 함께 좋은거래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 가 시그리드를 놀렸다.
“뭐, 어쨌든 지금부터 슬슬 준비하긴 해야죠. 아무튼 그래서 시작은, 지금보다 더 남쪽 땅을 탐험하면서, 우리 정착지에 도움이 될 만한 교역로를 더 만드는 거랍니다.
절 지지해주시기로 한 분들께는 미리 말씀드리는 게 마땅할 것 같아서요.”
봄이 찾아오면서, 여기저기서 올해 시그리드의 행보에 대한 말이 많이 나오고 있었다.
‘옥수수’라는 이 땅의 새 작물의 이름을 따서 ‘옥수수 강’이라는 이름이 붙은 강. 우애 시 옆을 흘러 바다로 나가는 그 강을 타고 올라갈 것이라는 둥, 현지인들이 ‘천둥 폭포Ongiara’라 부르는 큰 폭포 서쪽의 땅을 탐사할 것이라는 둥.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정착이 시작되고, 어쩌면 1419년이 되기 전에 개척지 전체의 인구가 일만을 돌파할 수도 있을 터. 그러다 보니 다들 부지불식간에 저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야기를 자아내기 시작한 것이리라.
아무래도 저들이 사는 곳 주변에 저들 마음에 맞는 개척자들이 모이면 모일수록, 앞날의 온갖 고난을 견뎌내는 것뿐 아니라 다른 개척자들과 원주민들 앞에서 목소리 내는 데도 유리할 테니까.
“앞으로 남은 4년. 그 안에 사람들이 공존의 가치를 깨닫도록 하는 게 제 목표에요. 언어가 다르고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서로 다투기에는, 서로 떨어져 살 수 없을 만큼 긴밀하게 엮이도록 만드는 거지요.”
결국 사람이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다투는 쪽이 더 손해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리라.
그러려면 우선은 황금이, 모두에게 필요한 것을 굳이 한쪽을 약탈하거나 착취할 필요 없이 마련할 수 있게 해주는 황금이 필요했다.
하지만 아직은 여유를 가지고 생각해도 괜찮을 것이다. 플로리다 반도를 거쳐 멕시코 만까지 들어가는 여정은 거리로 치면 거의 좋은희망에서 런던까지 가는 여정에 가까웠고, 기후가 달라지면서 발생하는 풍토병 문제며 언어의 장벽이며, 선결되어야 할 과제가 많았다.
“교역로라면 어느 쪽인가요?”
“일단은 옥수수강 쪽이지요. 농사짓기엔 그 강 유역이 더 낫고, 또 긴집사람들과 무역을 하는 데도 그쪽이 낫고요.
궁극적으로는 더 남쪽으로 가야 하겠지만, 그건 조금 시일이 필요해요. 차근차근 준비를 한 다음에 가도 늦지 않다고 봅니다.”
하지만 시그리드네 패거리 모임이 끝나고 정확히 이틀만에, 시그리드는 이런 말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생각했던 시절이 제게도 있었답니다.”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를 거치지 않는 직항 항로로 유럽에서 돌아온 기푸즈코아 사람 미콜라스가, 충격적인 소식을 들고 왔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바스크인’이라고 통칭하기도 어려울 만큼, 신대륙 개척자들에게 살짝 못 미칠 만큼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뱃사람들.
좋은희망에 도착한 뱃사람들을 맞이하러 나온 벗과 애인들, 그리고 겨울 사이 배운 오목으로 뱃사람 지인들을 털어먹을 생각이나 하는 못된 작자들 사이에서 시그리드를 찾은 미콜라스가 물었다.
“그 정도로 심각합니까?”
“어... 네. 당장 준비가 되는 대로 남쪽으로 향해야 할 것 같아요.”
미콜라스가 들고 온 충격적인 소식은, 바로 『멋진 신세계』가 나오자마자 범람하기 시작한 불법복제판과 관련이 있었다.
미콜라스가 칼레를 거쳐 함부르크에 닿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멋진 신세계』에서 (플레톤이 대필한) 시그리드의 서문을 삭제하고 엉뚱한 내용들을 덧붙인 판본이 유통되기 시작했다.
저작권법도 없는 세상이니 누가 해적판을 일일이 막겠냐만, 문제는 그 시기와 내용이었다.
“고작 몇 달 사이에 그만한 내용을 덧붙여서 찍어냈다는 건, 어떤 음흉한 의도가 있다고밖에는 볼 수 없으니까요.”
미콜라스가 귀환하기도 전에 불법복제판이 나왔으니, 그가 함부르크의 인쇄소에 찾아갔을 때 이미 어딘가에서 감시하고 있다가 그 원고를 잽싸게 베껴내었다는 것 외에 다른 설명은 불가능했다.
이는 그만큼 신대륙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뜻.
“그만한 내용이라면...”
“여기 보세요.”
‘빈란디아의 데스포이나 시그리드 리프트라사.’
디미트리오스의 화풍과는 영 맞지 않는, 당대 서유럽의 미인상에 맞게끔 그려낸 상상의 초상화. 그 아래에는 깨알같이,
‘미혼. 구혼자를 찾는 중.’
이라고 써 있었다. (일단 에릭은 용의선상에서 제외되는 셈이었다.)
허나 더 큰 문제는 한참 뒤에 있었다.
“우애의 도시 필라델피아와 교역의 도시 베네벤도Benevendo(좋은 거래)에는 황금이 넘쳐난다. 또한 필라델피아 남쪽에는 황금의 산이 있으며...”
시그리드가 펼쳐보인 짝퉁 『신세계』 구절을 더듬더듬 읽은 미콜라스가 물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알기로 이 주변 어디에도 황금은 없을 텐데요.”
“그게...”
아직 ‘라틴 아메리카’에는 라틴인이 닿은 적도 없었고, 아메리카라는 이름도 아직 붙지 않았으며, 그 땅에 누가 사는지 아는 것도 시그리드와 임시의회 사람들이 전부였다.
시그리드의 망설임이 무슨 의미인지 얼추 짐작한 미콜라스가, 눈치껏 시그리드를 골목으로 데리고 가 물었다.
“아니, 진짜 황금의 산이 있단 말입니까?”
“아마 그럴 거에요. 그러니까 문제지요.”
누가 어떤 의도로 이런 내용을 집어넣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대로 이런 헛소문이 퍼진다면, 곧 어떤 어리석으면서도 언변 하나는 좋은 재주꾼 몇몇이 후원자를 구해 대서양 항해를 시도할 것이었다.
노블이 그린란드 회사의 전유물인 것은, 그것을 쓸 만한 곳이 회사 하나뿐이었기 때문이지 결코 다른 이들에게 기술이 없기 때문은 아니었다. 더구나 재작년에 미콜라스가 개척하는 데 성공한 신대륙 직항로 소문도, 지금쯤이면 유럽의 소문 밝은 뱃사람과 상인들은 다 알고 있을 터.
‘필라델피아 남쪽의 황금’을 찾아나선 이들이, 원 역사의 콩키스타도르들처럼 먼저 멕시코 해안에 닿는다면, 시그리드의 계획은 완전히 틀어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시그리드는 존 F. 케네디가 아니었으므로, 항공모함 8척을 불러내 카리브해를 봉쇄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방법은, 미리 멕시코 땅으로 나아가 그곳 사람들과 미리 관계를 맺고, 훗날 다른 유럽 나라의 사람들이 찾아오더라도 허무하게 온 중남미가 그들에게 짓밟히지 않게끔 돕는 수밖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결코 부드럽게만 진행되진 않을 남방 탐사에 있어 코르테스보다 훨씬 유능하고 겸손하며 경험도 풍부한 사람이 시그리드 편에 있다는 점이었다.
“올해 넘어올 보헤미아 사람들은 지슈카 선생님께서 직접 이끈다고 했지요?”
“네, 제가 전달받기론 그랬습니다만...?”
“임시의회 분들과 더 상의를 해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남방 탐사 일정을 앞당겨야 할 것 같네요. 보헤미아 사람들이 도착하는 대로 진행할 수 있도록요.”
--- *** ---
1. 원 역사에서도 뉴잉글랜드의 원주민들은 아사와 동사를 앞둔 청교도 개척자들에게 식량을 지원해주고, 세 자매 농법을 전수해주기도 했습니다. 훗날 추수감사절에 얽힌 미담이 창작되는 데 영감을 주기도 한 이 호의는, 사실 순수한 선의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시 북미 동부는 이미 유럽인들이 퍼뜨린 질병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뒤였고, 소빙기 기후변화까지 닥치면서 부족들 간의 무력충돌도 빈번해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유럽인 개척민 주변의 왐파노악 부족연맹 등이 보기에, 농업이나 어업 등 생존에 필요한 기술은 없지만 동시에 원주민들에겐 없는 야금술과 조선술을 갖춘 – 일례로 북미에서 처음으로 범선을 건조하는 데 성공했지만 정작 농사는 못 지어서 14개월만에 철수한 포펌Popham 식민지가 있습니다 – 유럽인 이민자들은 이상적인 협력 대상자(혹은 호구)였습니다. 가깝게는 근처의 다른 부족들부터 멀찍이는 허드슨 강 동부로 확장을 시도하는 이로쿼이 연맹까지 온갖 위협이 도사린 상황에서, 원주민들은 저들의 새 이웃들의 호의를 식량 지원을 통해 사들이고자 했던 것이지요.
2. 북미 동부 일대에는 아이슬란드나 스칸디나비아와 마찬가지로 빙하기를 거치며 형성된 늪지가 많이 있었고, 역시 북구와 마찬가지로 이런 늪지대에는 철광석이 침전되어 있었습니다. 뉴잉글랜드 개척민들도 금방 이런 소철 – 여기에 대해서는 이전 아이슬란드 에피소드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 – 을 발견했고, 1646년에는 북미 최초의 철공소인 소거스 철공소Saugus Iron Works가 보스턴에서 고작 15km 떨어진 곳에 세워지게 됩니다.
3. 캐나다의 특산품 메이플 시럽은, 유럽인들 도착 전부터 이미 지역의 특산품이었습니다. 알공킨계 부족들은 메이플 시럽을 일종의 에너지 드링크와 감미료로 널리 썼고, 맨 처음 도착한 프랑스 탐험가들과 그 다음 도착한 개척민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이를 권하곤 했습니다. (즉 작중의 ‘함 무바라’는 고증인 셈입니다.)
4. 최초의 근대적 특허법과 저작권법은 15세기 말 베네치아에서 제정되었습니다. 이는 뒤집어 생각하면 그만큼 베네치아에서 특허와 저작권 위반이 횡행하였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원 역사보다 반세기 가량 빨리, 그것도 인쇄기 제작법까지 친절하게 동봉된 형태로 인쇄술이 퍼진 작중 시점에서는 그런 양상이 더 일찍 나타났을 것입니다.
5. 화공 디미트리오스는 가공의 인물입니다. 다만 동로마 미술 전통 일부가 엘 그레코 같은 크레타 학파의 뛰어난 예술가들을 통해 서유럽 전통에 흡수된 점을 고려하면, 디미트리오스의 ‘세태와 야합한’ 화풍의 결과로 서유럽 미술사가 원래 역사에서 크게 뒤틀리진 않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