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말 한 필 (4)
14. 이름 없는 말 한 필 A Horse With No Name (4)
나와틀 말이 통하는 ‘문명인’들의 세계에는 보편적 진리 몇 가지가 있었다.
때맞추어 태양과 달, 비와 구름을 위해 희생을 바쳐야 한다는 것이라든가, 태양과 세상이 파멸과 부활의 순환을 거듭한다는 것처럼 거룩한 진리도 있었지만, 귀족pipiltin과 평민macehualtin의 구분처럼 세속적인 진리도 있었다.
모든 문명인들은 도시를 이루며, 각 도시는 ‘말하는 자’, 즉 틀라토아니Tlatoani라 불리는 왕의 다스림을 받는다는 것 또한 후자에 속하는 진리였다.
틀라토아니는 모든 사제들 중의 사제이자 모든 귀족들 위의 귀족이었으며, 도시를 대표하여 다른 도시의 인간이나 우주 곳곳의 신들에게 말하는 존재였다.
제단 위에서 위대한 틀랄록 신께 심장을 봉헌하는 자리에 투스판의 틀라토아니 쿠와우테목Quauhtemoc이 사제들과 함께 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쿠와우테목은 이 어려운 시국에서도 정성스럽게 포로들을 붙잡아, 그 포로들에게 희생의 영광을 베풀어주었다.
이토록 장엄한 제의로써 공경을 다하니, 어찌 틀랄록 신이 기뻐하지 않으시겠는가? 또 이 도시의 평민들은 얼마나 틀라토아니 자신과 사제들을 우러러보겠는가?
매년 소출은 줄어드는데 도시에 바치는 공물은 늘어난다며 불평하는 어리석은 평민들, 저 머나먼 땅에서는 이런 제사를 바치지 않아, 신들의 버림을 받고 도시 전체가 굶어죽기도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무지렁이들 또한 이 거룩한 모습에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들을 계속 올바르게 이끌기 위해서라도, 사제들은 계속해서 제의를 올려야만 했다. 천상의 태양이 인간의 심장과 성혈聖血로써 겨우 힘을 얻는 것처럼, 그들 또한 이 제의를 통해서만 백성의 경외를 자아낼 수 있었으니까.
그러므로, 경이로운 이방인들이 저들의 자랑스러운 도시에 입성하던 차, 하인으로 보이는 다른 이방인들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오던 한 거인이 영광스러운 제단 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감히 사제를 모욕하였을 때, 쿠와우테목은 틀라토아니, ‘말하는 자’로서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불경한 자들을 붙잡아라! 저들이 감히 틀랄록 신을 모욕하였으니, 이 모욕을 없던 일로 돌리기 전까지는 제의를 다할 수 없으리라!”
의례가 진행되는 동안 신전을 지키는 영광을 허락받은 투스판의 자랑스러운 전사들, 재규어의 가죽을 뒤집어쓴 전사들과 독수리 깃털 꽂힌 관을 쓴 전사들이, 도시의 부를 상징하는 흑요석 무기를 들고 달려나갔다.
저들의 수는 고작해야 이삼백이요, 그들 중 제대로 된 무기를 갖춘 자는 얼마 안 되었다고 하였다. 틀라토아니 쿠와우테목은 영광스러운 승리를 자신했다.
그러나 매정한 신들은 쿠와우테목에게 냉철한 지혜도, 제단에서 한참 떨어진 대로에서 이방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능히 훔쳐들을 수 있는 밝은 귀도 허락하지 않았으니, 그로 인하여 이방인 우두머리들이 다급히 주고받는 대화를 들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시그리드! 어찌할 테냐? 지금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틀라토아니의 지시에 따라 사방에서 전사들이 나타났다. 도시는 딱히 제대로 된 성벽은 없었지만 대로와 골목이 정교하게 얽혀 꽤 번듯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고, 도시의 지리에 밝은 방어자들이라면 이 전장의 이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을 것이었다.
“퇴각하려면 지금 퇴각해야 한다!”
“부두로요?”
“아니, 우리 배로! 부두 어디에도 방어하기 좋은 곳은 없었다!”
“대안은 없나요?”
“퇴각하지 않겠다면 공격하는 수밖에! 저기 저 제단으로 올라가 농성하는 것 외엔 답이 없다!”
얀 지슈카는 벌써 도시의 지리와 원주민들의 무장 수준을 꼼꼼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저들의 흑요석 무기는 갑옷을 입은 이들에겐 별 피해가 없겠지만, 갑주와는 연이 없는 카니엔케하카 전사들에게는 꽤 큰 타격을 줄 것이었다.
따라서 저들과 한판 붙어보려면, 진형을 이루어 버틸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거의 성채와 같이 높게 쌓아올린 저 저주받을 제단이 그나마 나은 선택이었다.
시그리드에게는 그런 계산까지 할 만큼의 군사적 재능은 없었지만, 대신 지슈카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이대로 퇴각하느니, 차라리 저들과 한 번 부딪혀서 우리가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보여준 다음 교섭하는 게 낫겠지요.”
시그리드는 여전히 공존에 대한 생각을 버리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이 땅의 사람들과 정상적인 교류를 할 수 없으리라는 점이 명백했다. 제단의 계단에 칠갑된 피와, 그 아래 굴러떨어진 시신이 이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알겠다! 전군, 들어라! 퇴로가 막히고 있으니, 대신 앞으로 돌격해 저 제단을 친다! 창병 앞으로! 검병은 양옆과 후방을 지킨다!”
지슈카와 함께 넘어온 그린란드 연대 사람들은, 용병 생활을 하며 얻은 자금으로 꽤 괜찮은 갑옷들을 차려입고 있었다. 그들이 맨 앞을 이루고, 머스킷을 든 소총수들과 활을 든 카니엔케하카 전사들은 자연스레 그 뒤를 채웠다.
“돌격!”
“진실은 승리한다!”
“식인종에게 징벌을!”
각각 전투 구호를 외치며, 싸워온 전장은 달랐으나 겪은 전투의 수는 똑같이 많았던 전사들이 하나의 몸처럼 진형을 이루었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다 쓰러진 콜그림을 주변에 부탁한 시그리드 또한 라이플을 잡고, 머스킷 사수들 사이에 섰다.
그리고 이쪽이 진형을 갖출 무렵, 재규어와 독수리 전사들 또한 빠르게 대열을 갖춘 채 달려나왔다.
“시그리드! 그룬발트 때 기억하느냐?”
“물론이죠! 전원, 사격 준비!”
그린란드 연대원들은 종종, 아직도 코펜하겐이나 프라하에서 굴렀던 시절이 꿈에 나온다고 농담을 던지곤 했다. 고작 몇 년 쉬었다고 사격 절차를 까먹을 리는 없었다.
“카니엔케하카! 귀를 막아라!”
출발하기 전 딱 두 번 합을 맞춰본 게 전부였지만, 이미 ‘천둥 대롱’의 힘을 잘 알고 있던 아욘와에스는 잊지 않고 주변에 지시를 내렸다.
머스킷이 사격하는 동안은 후열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장전하는 동안 이쪽의 활로 저쪽의 투석병과 투창병을 견제하는 것이 카니엔케하카 경보병들의 임무였다.
“물과 불처럼! 재규어와 독수리처럼!”
“강처럼 피가 흐르리라!”
나와틀어 전투 함성¹이 들려왔다. 제단을 지키던 전사들이 흑요석 날이 붙은 몽둥이 마쿠아후이틀을 위협하듯 휘두르며 달려나왔다.
“사격 개시!”
그렇게 물의 신 틀랄록을 기리던 도시의 거리에는, 비 대신 천둥이 몰아쳤다.
만만하게 보았던 이방인들이 갑자기 능숙하게 전열을 갖추고, 급기야는 천둥과 불꽃으로써 주변에 당해낼 자 없던 투스판의 전사들을 궤멸시켰다.
그나마 용기 있는 자들은 마쿠아후이틀을 휘두르며 전우들의 시체를 방패삼아 달려들었으나, 맨살은 능히 베어내던 흑요석 칼날은 이방인들의 ‘차갑고 빛나는 돌’로 만든 갑옷 앞에선 맥없이 쪼개질 뿐이었다.
그리하여 모두가 저 이방인들을 당해낼 수 없음을 깨닫고서, 울부짖으며 도망치고, 틀라토아니 쿠와우테목과 사제들 태반은 제단 위에서 어영부영하다가 통째로 붙잡히고야 말았다.
“이젠 어쩌면 좋겠소?”
그 어떤 부족도 꿈꾸지 못할 만큼 거대한 전투(수백 대 수백의 싸움)를 겪고 잔뜩 흥분해 있던 아욘와에스는, 상상도 못할 만큼 높은 제단 위에 올라온 뒤에야 막막함을 느꼈다.
이방인들이 세운 좋은희망이나 우애의 도시를 보고 엄청나게 큰 마을이라 경탄했던 아욘와에스에게는, 인구가 일이만에 족히 달할 이 투스판은 상상을 초월하는 무언가였던 것이다.
“추장을 붙잡은 것만으로는 저들을 완전히 제압할 수 없을 듯한데 말이오.”
“우선은 교섭을 해야지요. 저기 아래에 남은 이들 중에도 우두머리가 있을 테니까, 붙잡힌 사제와 왕들을 위해서라도 먹거리와 식수를 올려보내라고 요구를 하고, 그동안 어떻게든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놓으면 되겠지요.”
지슈카 또한 시그리드의 말에 동의하였다.
“생각보다 저들이 빨리 무너진 덕에, 왕을 붙잡았지 않소? 이 야만적인 행태를 버리겠노라 장담을 받아내면 될 것이오.”
투스판은 근처의 다른 도시들에 비하면 꽤 큼직한 축에 들긴 했지만, 그래본들 도시의 전사들은 다 모아봐야 이삼천에 불과했다.
물론 한줌에 불과한 시그리드와 지슈카의 탐사대에게는 그것만 해도 꽤 큰 부담이긴 했다. 더구나 저들이 민간인들을 무장시켜 수를 엄청나게 불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러니 이렇게 수뇌부 태반을 생포하여 교섭을 강요할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좋은 일이었다. 경악스러운 인신공양 현장을 목도한 지슈카는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우리의 신들을 버리고, 제사도 치르지 말라는 말인가? 차라리 우리를 죽여라! 이 거룩한 제단을 우리의 피로 물들인다면, 신들께서도 오늘 행해진 불경이 오로지 너희의 잘못임을 아시게 될 터!”
악에 받힌 틀라토아니가 이렇게 외치는 것을 보고서는, 조금 생각이 바뀌었지만.
그나마 온건하고 현명한 사제들은 이렇게도 말했다.
“내 감히 추측컨대, 그대들이 그토록 뛰어난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피를 많이 흩뿌리기 때문일 것이오. 그렇다면 그대들 또한 이미 피로써 신들을 나름대로 모셔온 것 아니겠소? 우리와 그대들이 다른 것은, 제단을 쌓고 신을 섬기느냐, 아니면 전장에서 신을 섬기느냐, 그 차이뿐이겠지.”
나름의 중재안을 내놓는 이도 있었다.
“그대들이 인신공양을 금기로 여긴다는 것은 알겠소. 하지만 이 세상은 희생 없이는 유지될 수 없소이다. 우리 또한 비단 사람만을 바치는 게 아니라, 절기에 따라, 또 모시는 신에 따라 인형을 바치기도 하고, 새나 다른 짐승을 바치기도 한다오.
그 ‘돼지’와 ‘닭’이라는 짐승을 받아들이고, 그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제사에서는 모두 제물을 대체하도록 하겠소. 다만 사람의 심장을 바치는 제의만은 양보할 수 없소이다.”
이 무시무시한 무기를 든 이방인들이, 이 땅을 모두 불태우거나 사람의 피를 흘리는 것보다는 교역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을 눈치 챈 이들도 있었다.
문명에서 멀리 있다 하여 지혜마저 없는 것은 아님을, 아니, 오히려 문명에서 멀기 때문에 지혜가 더욱 절실하다는 것을 시그리드와 지슈카가 새삼스레 깨닫는 사이, 어느새 밤이 찾아왔다.
저녁무렵 소나기가 한바탕 퍼부은 덕에, 역한 피비린내는 조금 사라져 있었다. 그렇다고 횃불에 비춰 보이는 계단 곳곳의 붉은 기가 빠진 건 아니었지만.
“콜그림 아저씨, 좀 괜찮으세요?”
“아, 예, 아씨.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무렵 조금 정신이 돌아온 콜그림은, 피라미드 – 탐사대 중에서 ‘피라미드’라는 말을 알고 있는 건 시그리드 혼자였지만 – 중턱에서 경계를 서고 있었다.
“아까 그 일은...”
“그 깨달음은 그대로 제 머릿속에 있습니다. 뭐랄까, 머리는 조금 식었지만 받은 인상은 그대로 남아있달까요.”
와야 할 라그나로크가 이곳의 인신공양 때문에 늦춰졌다는, 그 비약 가득한 믿음을 여전히 모종의 계시라고 믿고 있는 듯하였다.
시그리드는 문득, 그들의 조상들이 정신에 이상이 있는 이들을 ‘신의 손길이 닿은 이들’로 대접하곤 했다는 욘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아씨만 괜찮으시다면, 이곳 사람들에게 차근차근 제가 받은 그... 계시랄까, 깨달음이랄까 하는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듣자하니 어차피 한동안 이 제단 위에 머물러야 할 것 같더군요.”
소나기가 그치고서 맑게 개인 밤하늘에 보름달이 떴다. 아마도 이 느닷없이 나타난 이방인 걱정에 잠을 못 이루고 있을 도시가 발 아래에 그대로 보였다.
“뭐, 저야 괜찮긴 한데요... 엇? 누가 오고 있어요!”
처음 왕을 포로로 잡았을 때 주변에 전했던 요구에 따라, 식량과 물을 전하러 온 이들일 것이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린 건지, 아니면 그들의 믿음에 이런 ‘부정한’ 일은 밤에만 행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딱 보아도 평민인 듯한 짐꾼들. 그들을 이끄는 것은 처음 시그리드 일행을 맞이하러 나왔던 사제보다 훨씬 초라한 복장을 한, 간신히 사제임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인 젊은이.
제단 위에 붙잡혀 있지 않은 귀족과 사제들 중에서도, 가장 힘 없고 가장 집안 한미한 이가 아마 반강제로 이 임무를 떠맡게 된 것이리라².
“마법사들의 신, 위대한 지혜의 신 나왈필리Nahualpilli를 섬기는 사제 올라카틀Ollacatl이 강력한 이방인들에게 예를 표하니, 부디 저와 인부들, 그리고 불행을 맞이한 우리 도시의 존귀한 분들께 자비를 베풀어주시길 청합니다.”
잔뜩 긴장한 듯한 젊은이가 인부들 앞으로 나아와 고개를 숙였다. 곧 인부들이 무어라 기도 비슷한 것을 외우더니, 조심스레 제단을 올라 콜그림과 시그리드 곁에 짐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사이 콜그림은 통역 차바누샤아 노인을 세워두고 올라카틀에게 말을 걸었다.
“거 말 좀 물읍시다.”
“네? 저, 제게 말씀이십니까?”
“사제라고 하지 않으셨소? 이곳 사람들이 믿는 신들에 대해 묻고 싶은 게 있소.”
“그, 그런 것은... 저는 그저 평민 사제인 데다가 말직에 있어서, 도저히 답해드릴 길이 없습니다.”
“우리를 이 도시에 맞이한 사제도 그렇게까지 고관은 아닌 것 같던데, 잘만 떠벌리더군.”
그제야 이 거인이, 이 모든 소란을 시작한 주범, 경건한 제의가 이루어지는 제단 앞에서 사제의 멱살을 잡은 이였다는 것을 떠올린 올라카틀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이해한 바가 맞다면, 그대들은 계속 희생을 바침으로써 이 세상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것 같더이다.”
“그,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이 세상이 유지되어야 하오?”
“예?”
“이곳까지 오면서 이미 많은 마을들이 파멸을 맞은 것을 보았소. 여기, 통역을 해주시는 차바누샤아 어르신네 고향이 그러했고, 우리 고향 그린란드 또한 비슷한 운명에 처했다가 겨우 살아나고 있고.
그대들이 그토록 열심히 희생을 바치고 있는데도 이 모양이란 말이오. 그렇다면 이 세상의 이치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니오?”
“저희가 희생을 바치고 있기에 이 정도나마 세상이 유지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만큼 희생을 바쳤는데도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라면, 둘 중 하나일 게요. 신을 섬기는 방법이 잘못되었거나, 잘못된 신을 섬기고 있거나.”
화들짝 놀란 올레카틀은,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그 와중, 어느새 긴장은 조금 풀리고, 이 이방인이 꺼내는 기묘한 논변에 조금씩 빠져들기 시작했다.
“위대한 신들을 모욕하면 안 됩니다! 신들께서 희생하셨기에 오늘날 우리 모두가 이 땅을 밟고 태양과 달을 머리 위에 이고 있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또한 위대한 신들을 믿소. 그리고 그들이 선하다는 것도 믿소. 그리고, 그토록 선한 신들조차 이 세상의 악과 고통을 쓸어 없애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소. 같잖은 제물 따위로 그들을 도울 수 있었다면, 진작에 이루어졌겠지. 그렇다면 신들을 섬기는 방법이 잘못된 것이오.”
“허나 정성껏 제사를 지내는 것 외에 무슨 방법이 있단 말입니까?”
“무엇을 하긴? 세상의 그릇됨이 신들조차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라면, 우리가 그들을 도와야 하지 않겠소?”
“우리가 신들을 돕는다고요?”
이방인들이 점령한 제단 근처의 주민들은, 언제 저들이 내리는 벼락이 내리칠지 알지 못해, 두려움 속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있었다.
허나 벼락은 치지 않고, 도리어 두런두런 나와틀 말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왔으므로, 그리고 이 땅의 고난과 신들의 뜻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므로, 하나둘씩 야음에 숨어 제단 아래로 모여들었다.
언제 피칠갑을 했냐는 양, 달빛 아래 아름답게 빛나는 제단에 선 사내는 이렇게 말했다.
“명예롭게 투쟁하며 살다가 죽는 자는 발할라에 들어, 최후의 그날을 위해 힘을 모은다고 우리 옛사람들은 말씀하셨소. 그 영광의 전당에는 끝없는 고기와 술이 있고, 모두가 즐겁게 살아가며 마지막 날을 준비한다고 하였지.”
신들은 선하지만 전능하지는 못하다. 이것이 콜그림이 플레톤에게서 에피쿠로스의 역설을 들었을 때 내린 결론이었다.
그런 신들이라면, 고작 전장에서 죽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발할라 대신 다른 곳으로 망자의 혼을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콜그림이 겪어본바, 전쟁은 전사 몇몇이 아니라 그 뒤에서 쇠를 두들기고 화약을 만들고, 보급품을 나르는 이들과 함께 치르는 것이었으므로.
이미 여기서부터 콜그림은 그가 그토록 심취해 있던 신화의 원본에서 벗어나고 있었지만, 플레톤이 자신이야말로 옛 헬라스인들의 종교를 계승했다 자부하는 것처럼 콜그림 또한 아무런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전승이 있기는 합니다. 삶에서 역경을 겪은 자들, 태어나면서부터 불행했던 자들과 가장 비참하게 죽은 자들은 틀랄록 신의 가호를 받아 가장 깊고도 안락한 아홉 번째 저승 틀랄로칸Tlalocan에 든다고 하는데...”
“허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오. 우리의 전승에 따르면, 신들이 우리에게 행복한 내세를 마련해준 것은 바로 이 잘못된 세상을 함께 불태우기 위해서요.
라그나로크의 그날이 오게 되면, 이 세상을 그토록 괴롭게 만든 모든 악에 맞서, 신들과 함께 우리 모두가 전장에 나서는 것이오! 그 전쟁에서 모든 신들과 모든 악은 함께 파멸하고, 잘못된 세상 또한 함께 불타 사라지게 되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우리 모두의 영혼을 바치는 것이지.”
“우리 자신의 영혼을 바친다...”
“그렇소. 우리 모두가 신들과 힘을 합쳐 이 잘못된 세상의 파멸을 이끌면, 그 파멸 뒤에 살아남은 우리의 후손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라그나로크의 가르침이외다.”
그 파멸 속에서도 살아남을 이들이 있음을, 시그리드나 얀 지슈카 같이 인간 가운데의 초인이 있어 능히 파멸 속에서도 인류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임을 확신하는 콜그림은 거리낌 없이 라그나로크와 그 징조들에 대해 말할 수 있었다.
이미 큰겨울 핌불베트르는 닥쳤다. 유럽에는 그 다음 징조, 골육상쟁과 끝없는 전쟁이 일상이 되는 늑대의 시대가 닥쳤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려면, 두 마리 늑대, 스콜과 하티가 태양과 달을 따라잡아 삼켜야만 했다. 그래야만 비로소 헬의 개 가름이 세 마리 수탉과 함께 울부짖고, 요툰헤임의 거인들과 발할라의 에인헤랴르가 소집되며, 펜리르와 요르문간드가 깨어날 테니까.
“따라서, 내 생각에 그대들이 제물을 바침으로써 태양과 달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것은 오히려 신들의 거룩한 뜻에 반하는 일이오.
나는 이렇게 믿소. 우리가 죽어 발할라에 들게 되면, 그리하여 영예로운 라그나로크의 날에 신들과 함께 전장에 서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궁극의 희생이자 신들에 대한 보답 아니겠소?
우리의 영혼이 신들과 함께 불타오르고, 마침내 잘못된 세상을 재로 돌리고 후손들은 비로소 황금과 정의의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면, 그만큼 거룩한 희생이 어디 있겠소?”
이 잘못된 세계에서 괴로움을 뚫고 투쟁하며 열심히 살아간 이들은, 사후세계에서 안락하지만 유한한 즐거움을 누리고, 마침내 신들과 함께 세상의 그릇됨과 맞서 싸운다. 그리고 궁극의 희생을 바침으로써,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낸다.
콜그림은 선하지만 전능하지 못한 신을 믿고 싶었다. 신이 전지전능하다면, 그들 그린란드인들은 신에게 버림받은 셈이었으므로.
한 사람의 목숨이 너무나 덧없이, 그간 세상에서 흘린 피땀과 눈물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양 지워져버리는 매정한 세상.
눈과 얼음 대신 무성한 초목이, 추위 대신 가뭄이 사람을 지워버리는 이 땅에서 고통받으며 살아가던 사람들은, 어느새 콜그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다섯 번째 태양이 다스리는 이 세상이 언젠가 끝나고, 여섯 번째 태양의 세상이 새로이 열리리라는 것은, 이 땅의 우아스텍 사람들, 그리고 그 너머 모든 사람들에게도 상식이었으니까.
다른 제물은 필요가 없으며, 오로지 자신의 영혼이라는 완벽한 희생으로써 신들에게 공경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은, 차마 제물을 마련할 수 없는 서민들에게는 너무나 듣기 좋은 이야기였으니까.
그리고, 항상 파멸과 기근이 도사리고 있는 이 세상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그 생각, 비천한 자신들조차 신들과 나란히 서서 모두를 구원하는 대업에 함께할 수 있다는 그 생각, 지금껏 그들을 괴롭혀 왔던 잘못된 세상에게 궁극의 복수를 할 수 있다는 그 생각이 너무나 달콤하고 아름답게 들려왔으니까.
차마 콜그림과 하급 사제 올라카틀 사이의 진지한 이야기에 끼어들 수 없던 시그리드는, 문득 욘이 해주었던 세계의 종교 이야기를 떠올렸다.
힌두교의 신들. 유지의 신 비슈누와 파괴의 신 시바.
그때만 해도 시그리드는 왜 인도의 하층민들이 시바를 그토록 사랑한다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콜그림과 올라카틀, 그리고 통역을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차바누샤아 노인을 돌아보면서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한 깨달았다.
어느새 콜그림 한 사람의 주장에서 콜그림과 올라카틀, 차바누샤아 세 사람의 대화로 바뀐 세계의 종말과 재창조 이야기.
그 속 어디에도, 더 많은 공물을 사제들에게 바치라는 이야기는 없었다. 아니, 애초에 사제들이 필요한 까닭이 없었다. 각자 영혼을 제물로 바치면 그만일진대 무슨 사제가 필요하며 무슨 공물이 필요하겠는가?
정교일치가 이루어진 이 땅에서는 적어도 당분간은 자생적으로 등장할 수 없었을 교리는, 폭발적으로 투스판 시에 퍼져나갔다.
평민의 아들이었던 올라카틀부터, 이 기쁘면서도 아름다운 새 진리에 탄복하여 도시 곳곳에서 사람들을 모아 콜그림이 서 있는 제단 앞으로 데려오곤 했다.
매정한 듯 보였던 신들은 사실 그들 모두의 편이요, 아군이자 동맹이었으며, 이 부정하고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고자 큰 계획을 세워두었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는 잘못이며, 이 땅 어디에도 그런 헛소리를 귀기울여 들을 사제는 없을 것이라고, 어찌 지금껏 해 왔던 아름다운 제의에 먹칠을 하겠느냐고 올라카틀을 감히 가로막을 사제와 귀족들은 죄다 제단 위에 붙잡혀 있었다.
제단 아래에 남은 이들 중에도 뭔가 수를 써 보려던 자들이 있었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거 참... 콜그림 그이가 이교도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구려.”
닷새가 지날 무렵, 훌쩍 늘어난 투스판 시 사람들 앞에서, 이제는 더듬더듬 나오게 된 나와틀 말까지 중간에 곁들여가며 신나게 라그나로크 – 나와틀 말로는 ‘틀라쿠아나틀록’- 이야기를 늘어놓는 콜그림을 보며 얀 지슈카가 말했다.
“그래도 덕분에 이야기가 통하게 되었으니 다행 아닐까요?”
“그건...”
떨떠름해 하면서도 차마 부정은 못하는 지슈카였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이 새 교리가 널리 퍼질 수 있도록 우리도 뭔가 수를 써 주는 게 어떨까요?”
“그게 가능하겠소?”
아무래도 군사가 아닌 이런 쪽 일엔 밝지 못한 지슈카가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아마 우리보다도 더 저 인파를 보고 놀랐을 사람들이 있을 거에요. 그들의 도움을 받으면 되지요.”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반신반의하던 지슈카는, 금방 시그리드의 말뜻을 알아듣게 되었다.
그들에게 도움을 줄 사람이 바로 제단 안쪽에 고이 모셔져 있었으니까.
“제발 우리를 풀어주시오! 저 끔찍한 이단이 퍼지는 것만은 막아야 하오!”
틀라토아니와 고위 사제들은 하나같이 창백한 얼굴이 되어 간청하였다.
“대신 인신공양이랑 식인을 멈추겠다고 약속하셔야 해요. 우리가 가져온 가축을 받아들이고, 제물이 필요할 때면 사람 대신 그 가축들을 바친다고 맹세해 주세요.”
“안 하겠소! 다시는 안 하겠소! 모든 신들과 우리의 조상께 맹세코!”
그러나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시그리드에게 사실상 항복하고는, 저들끼리 급히 대책회의에 들어간 귀족과 사제들은 도저히 뾰족한 수를 찾을 수 없다는 데 절망했다.
“이것은 분명 세상의 파멸을 불러오게 될 것이오.”
“그렇지만 어찌 할 방법이 없잖습니까? 저 이단을 받아들이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안 그러면 당장 사제들을 공경하지 않는 무지한 평민들이 속출할 겁니다! 당장 저 아래 모인 이들에게, 그간 있던 일은 싹 잊고 다음 제사를 준비하게 옥수수 가루를 바치라고 한다면 누가 받아들이겠습니까?”
포로의 심장을 백날 바친다 한들, 자기 자신의 영혼만한 제물은 없을 것이다. 모든 백성들이 제 몫의 제물은 제가 바치겠노라 한다면, 당장 사제들이 존재할 까닭은 사라지는 셈이었다.
“그러면 무력이라도 써야지! 불손한 자들에게 가르침을 주려면 회초리도 불사해야 하는 법 아니오?”
“그렇게 도시 안에서 치고박고 하고 있으면, 주변 도시들이 가만 있을 리 없잖습니까?”
남의 심장은 거리낌없이 제물로 바치던 사제들이었기에, 오히려 저들이 그 꼴이 되는 것은 가장 두려워하곤 했다.
이 투스판 시가 이웃 도시들에게 점령당한다면, 가장 ‘영광스러운’ 포로가 되어 신들에게 바쳐지는 ‘영예’를 누리는 것은 귀족과 사제들이지, 도시의 근간을 이루는 평민들이 아닐 것이었다.
“그만! 이렇게 된 이상 우리는 이 이단들을 상대로 장기전을 꾀해야 하오.”
제법 엄숙하게 틀라토아니 쿠와우테목이 말했다.
그러나 그 ‘장기전’이란 것은 말이 그럴듯하지, 내막을 들여다보면, ‘일단은 저놈들에게 맞춰주는 시늉을 하면서, 그네들 입맛에 맞는 사제 노릇을 하자. 당장 이단을 척결한답시고 날뛰다가 우리가 먼저 척결당하게 생기지 않았는가?’하는 말이었다.
“더구나, 신들께 공경을 바치지 않아 재앙이 닥쳐온다면 저 평민들 또한 깨우치는 바가 있을 것이오.
어디, 그뿐인가? 이 이단이 다른 도시까지 퍼져나가면 우리 모두가 아나우악 땅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니, 평민들 또한 부끄러움을 알고 다시 올바른 길로 돌아올 것이외다. 우리 귀족들의 명예도 실추되겠지만, 우리가 얻게 될 교역의 실리를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대가요.”
아나우악 땅에서 바닷가에 위치한 도시는 그리 많지 않았다. 옛날에야, 저 멀리 동쪽에서 배를 타고 오는 상인들이 암염이나 보석 등을 팔곤 했지만, 그 땅에 파멸이 닥쳐온 이후로는 그런 교역도 끊겼다. 그러니 바닷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점 하나를 제외하면 바닷가의 이점은 거의 없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이 경이로운 이방인들의 탐나는 무기를 투스판 홀로 독점할 수도 있다는 뜻.
“틀라토아니의 말씀이 옳습니다.”
“자, 그렇다면 백성들을 향해 나아가십시다. 그들을 올바르게 이끌어야지.”
그러나 투스판 시의 귀족들이 손쓸 기회도 없이, ‘틀라쿠아나틀록’ 이단은 널리 퍼져나갔다. 상인들은 어느 도시에나 있었고, 그 상인들이 듣기에도 이 틀라쿠아나틀록 교리는 제법 마음에 들었으니까.
특히 부유하다는 이유만으로 사제들에게 공물을 뜯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저 자신은 틀라쿠아나틀록 교리가 약속하는 구원에 이끌렸노라 철석같이 믿고 있겠지만.
다른 것은 모두 포기하고, 우선 사제직이라도 지켜보려고 필사적으로 새 교리를 가다듬고, 그럴 때면 콜그림이나 올라카틀이 뭔가 딴소리를 하고, 눈물을 머금고 겨우 가다듬은 교리를 다시 뜯어고치는 일이 투스판 시에서 벌어지는 동안, 소란은 온 아나우악 땅으로 번졌다.
몇몇은 이 교리를 이용해 권력을 얻고자 노리기도 했고, 몇몇은 이 교리를 빌미삼아 반대파를 숙청하기도 했다.
예컨대, 테노치티틀란에 정착한 야만인 메시카Mexica인들 – 스스로 ‘아즈텍’이라 자처하는 – 을 용병으로 부려, 주변을 모두 장악하고 아나우악 최대의 세력으로 성장한 아즈카포찰코Azcapotzalco 시의 우에이 틀라토아니(황제) 테조조목Tezozomoc은 후자에 들었다.
“신들을 도와서 세상을 파멸시킨다... 그 신들의 우두머리는, 끊임없이 투쟁하는 지혜로운 신이고. 저 메시카인들이 그런 신을 믿지 않던가? 소위 틀라쿠아나틀록 신앙이란, 우이칠로포치틀리라는 그 신을 믿는 자들이 퍼뜨린 이단이 틀림없다.”
메시카인들 또한, 테조조목의 정복이 일단락된 지금, 저들에게 어떤 운명이 닥칠지를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우선 메시카인들이 몰래 여기저기 맺고 있는 동맹들을 불경한 이단이라는 명목으로 쳐낼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저 이단은 아무튼 메시카인들이 퍼뜨린 것이라며 견강부회한 테조조목은 금방 주변에 피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텍스코코Texcoco 시의 틀라토아니 익스틀릴소치틀이 아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암살당한 까닭이었다.
고작 나이 열넷에 불과한 그 아들 네자왈코요틀Nezahualcoyotl은, 이 모든 난리의 근원인 동시에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이방인들의 소문에 이끌려, 머나먼 동쪽 바닷가로의 망명길에 올랐다.
--- *** ---
1. 흑요석 날을 박은 몽둥이(마쿠아후이틀)와 투석, 투창 정도가 가용한 무기의 전부였기에, 메소아메리카의 전쟁은 효율적인 인명 살상보다는 적의 저항 의지를 꺾고 포로를 많이 노획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게 되었습니다. 그중 일부가 바로 작중 서술된 전투 함성이었는데, 그 함성의 내용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메소아메리카의 전투가 보통 용맹을 떨친 전사들과 고위 지휘관들의 위력 과시 및 무력시위로 시작하였던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비슷한 이유로 아즈텍 고위 지휘관들은 화려한 장식과 깃발로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곤 했는데, 이는 훗날 코르테스가 아즈텍군을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는 데 한 가지 원인이 되었습니다.)
2. 본문 중에 언급된 것처럼, 이 무렵의 메소아메리카 사회는 기본적으로 귀족과 평민의 두 계층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평민들은 전공을 세워 부사관이나 정예병에 해당하는 독수리 전사가 될 수도 있었고, 평민들 중 가장 존중받는 계층인 상인이 될 수도 있었으며, 심지어 사제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분의 벽이 있었기에, 일정 이상의 출세는 불가능했지요. 예컨대 이론상으로 사제단의 고위직은 사제들 중에서 재능과 인품을 인정받은 이라면 누구든 임명될 수 있었지만, 실제로는 귀족 출신들이 세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