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밤을 견디게끔 해 준다면 (1)
16. 무엇이든 밤을 견디게끔 해 준다면 Whatever Gets You Thru The Night (1) - 존 레넌 (1974)
틀라카엘렐과 네사왈코요틀 두 사람에게 작별인사를 한 시그리드 일행은, 부쩍 늘어난 짐(황금)을 힘겹게 끌고서 투슈판까지 돌아왔다.
멀리 동녘정착지와 유럽부터 투슈판을 거쳐 테노치티틀란까지 닿을 어마어마한 교역망의 규모를 도저히 저들의 지리 상식으로는 헤아릴 수 없던 테노치티틀란의 귀족들이었지만, 그런 교역이 엄청난 부와 영향력을 선사할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테소소목이 보내온 공물을 모조리 황금으로 바꾼 뒤에도, 선물을 빙자한 청탁은 계속 들어왔고, 그로 인해 황금 궤짝을 나르는 일을 떠맡은 인부들은 정말로 황금 보기를 돌덩이 보듯 하게 되었다.
이제는 이 아나왁 땅 곳곳에서 당당하게 설파되게 된 틀라콰나틀록 교리. 벌써부터 그 교리가 처음 설파된 제단을 찾아 투슈판을 방문하는 이들이 있었다.
생업이 바쁜 탓에 ‘꽃의 전쟁’에 나서지 못해, 시와코아틀 여신의 일가붙이쯤 되는 듯한 여인이 연기 나는 거울의 신의 힘을 빌려 기적을 일으키는 것을 목도하지 못한 이들이, 아쉬운 김에 투슈판 구경이라도 하러 들리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사제와 귀족의 시대는 끝났다며 떠들고 다니는 틀라콰나틀록 신도들의 등쌀을 못 이긴 투슈판과 그 주변의 와스테카 사제들은, 종종 없는 살림에 긁어모은 황금을 싸들고 시그리드를 찾아와 제발 하루라도 빨리 유럽에서 선교사들을 모셔와 달라고 간청하곤 했다.
하급 사제에서 졸지에 새 종교의 지도자 비슷한 무언가가 되어버린 올라카틀은, 뒤늦게야 저의 막중해진 지위를 깨닫고서 당황하였고, 틀라콰나틀록의 공동 창시자 격인 콜그림은 나 몰라라 배 타고 떠나가려 하였다.
분탕질 실컷 친 다음 원래 땅 주인들에게 분탕질 뒷감당을 포함한 일체의 자유와 권리를 돌려주고 떠나는 것이 바이킹의 전통윤리였으니, 딱히 콜그림 탓하기는 무엇한 일이었다.
그런 소동 속에서, 지금껏 조용히 통역을 자처하며 따라다니던 차바누샤아 노인이 시그리드 곁에 다가와 물었다.
“듣자하니, 앞으로 저 북쪽 얼음의 땅에서 아나왁 땅까지 교역을 트실 것이라 하더군요. 그러면 저는, 제 고향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제야 시그리드는 지금껏 콜그림과 올라카틀에 가려 상대적으로 묻혔을 뿐, 이 차바누샤아 노인 역시 고집스러움과 괴짜다움으로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껏 두 사람 뒤치다꺼리와 삼각동맹 창설 준비에 바빠, 이곳 아나왁에서 벌인 모험의 숨은 공신 차바누샤아 노인에게는 소홀했다는 미안함이 밀려왔다.
“미처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해요.”
앞으로도 계속 배를 타고 신대륙 동해안을 남북으로 오가려면 중간에 거점이 있어야 했고, 차바누샤아 노인이 머물던 땅, 시그리드의 추측대로라면 뉴올리언즈 부근일 땅은 꽤 좋은 입지에 있었다.
그러나, 딱 그 정도였다. 황금 산지인 데다가, 인구로 신대륙 북부 전체를 압도하는 아나왁과 달리, 미시시피 강 주변은 이미 문명이 붕괴해 있었고, 이렇다 할 특산품도 없었으니까.
물론 그것만 해도 차바누샤아 노인이 처음 요구했던 조건을 만족하고도 남았지만, 곧 엄청난 수익을 내게 될 아나왁-신대륙 연합-유럽 교역에서 미시시피 강 하구는 주변부에 불과하게 될 것이었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이 늙은이 여생에 다 갚지 못할 은혜를 입은 셈이긴 하지만... 염치 없이 간청드립니다. 재고해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아직 강 중류의 고향에는 제 동포들이 많이 남아 있을 겁니다. 그리고 강 상류까지 올라가면 여전히 많은 부족들이 살고 있고요.”
저의 고향에 온갖 이방인들이 많이 방문하던 시절을 애써 회상하며, 멀리서나마 들었던 부족의 이름을 나열하는 차바누샤아 노인이었다.
“어디 그뿐입니까. 강의 끝까지 올라가면 나오는 부족들은 정말로 인구가 많고 부유한데...”
그제야 시그리드 머릿속에 떠오른 게 있었다. 미시시피 강의 수운.
지금까지는 당연히, 아직 그 수운을 이용하기는 시기상조이리라 여겼지만, 만약 차바누샤아 노인의 동포들이 아직 강 주변에 살고 있고, 어떻게든 강가의 부족들을 다시 하나로 뭉칠 수만 있다면...
“아욘와에스님! 잠깐 도와주시겠어요?”
평생 못해볼 구경을 하고 만족스럽게 돌아가던 카니엔케하카(모호크) 전사들의 수장, 아욘와에스는 마침 할 일도 없던 터라 금방 달려왔다.
그리고 차바누샤아 노인이 기억을 헤짚으며, 자신이 아는 한 가장 멀리 살던 부족들의 이름을 되새기자, 시그리드가 기대하던 반응이 나왔다.
”전쟁추장께서는 치페와Chippewa라는 부족명을 들어보셨습니까?”
“아니, 노인장께서 그 이름을 어떻게 아십니까? 세줄기불꽃의 장남 오지브웨 사람들이 그렇게 불리기도 합니다만...”
“그야,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 대까지만 해도 종종 그곳에서까지 상인들이 찾아오곤 했으니까 그렇지요¹.”
이어지는 두 사람의 문답 속에서, 시그리드는 엄청난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우선은, 벌써 고향처럼 느껴지는 좋은희망까지 돌아가야 하겠지만.
1416년 늦봄. 거의 일 년만에 돌아온 좋은희망은 언뜻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변해 있었다.
오백 인구가 갑자기 일천으로 늘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유럽에서 넘어온 선교사 몇몇이 좋은거래와 좋은희망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사회 구조가 엉성하고 그만큼 토착 신앙의 힘도 약했던 니놀리노 사람들 몇몇을 필두로 아예 개종하고서 좋은희망 근처에 눌러앉는 이들이 속출했던 것이다.
(특히 구심점이 사라진 아베다분 노파의 마을은 그대로 흡수되었는데, 훗날 이를 알게 된 시그리드는 왠지 모를 씁쓸함에 사로잡혔다.)
처음 시그리드가 주변 부족들을 모았을 때 천막이 가득했던 공터에는 어느새 통나무집이 잔뜩 들어섰고, 만 초입에 세워져 있던 조선소는 마을 크기와 비례해 두 배로 커졌으며, 주변 벌목장에서 베어낸 나무를 실은 나룻배들은 끊임없이 항구를 오갔다.
그러나 시그리드의 이목에 마을의 빠른 성장보다 더 먼저 들어온 것은, 바로 이 ‘도시’ - 유럽 기준으로야 조금 큰 마을이겠지만 –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이었다.
“환영인사를 제대로 못 해줘 미안하구나.”
“이게 다 여기 후스 선생과 보헤미아인들 때문이니 이들을 탓하게나.”
임시의회를 대표하여, 금의환향은 아니어도 금과 함께 환향한 시그리드 일행을 맞이하러 나온 후스와 플레톤의 인삿말이었다.
“괜찮아요. 이렇게 다들 열심히 살아가는 것만 보아도 좋은 걸요.”
“글쎄, 멀리서 보면 좋아보이지만...”
“아, 거 참. 오만 고생 다 하고 온 사람한테 계속 그럴 거요?”
시그리드 보러 어린 아들 두고 여기까지 찾아온 스베인이 플레톤에게 핀잔을 주었다.
“뭔가 다툼이 있는 것 같긴 하던데요.”
“그게... 플레톤 선생 말마따나 우리 보헤미아 사람들 잘못도 없진 않단다.”
지난 1415년 한 해 동안 바다를 건너온 이민자는 자그마치 사천 명에 달했고, 그중 대부분은 후스와 지슈카를 따라 새 삶을 찾아나선 보헤미아인들이었다².
이미 일만을 넘긴 신대륙 연합 인구 중 과반을 차지하는 보헤미아인. 더구나 아직도 바다 건너에는 배편만 기다리는 이들이 많이 남아 있었으니, 신대륙의 소문을 듣고 몰려드는 프랑스인과 독일인들이 없었더라면 몇 년 내로 좋은희망의 이름이 ‘새로운 프라하Nova Praga’로 바뀌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었다.
“탐사대가 떠난 직후부터 우리는 시그리드 네가 가져올 황금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기 시작했단다. 네게는 미안한 얘기일 수 있겠구나.”
언뜻 들으면, 고생하는 사람은 내버려두고 저들끼리 되도 않는 궁리를 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시그리드의 검은 책에 들어 있는, 오지 않을 미래의 역사를 들어 알고 있던 후스와 플레톤은 이 고민을 미리 해둘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하였다.
“아녜요, 괜찮아요. 저라도 그렇게 했을 텐데요, 뭐.”
시그리드의 미래 지식대로라면, 그 ‘아즈텍’ 땅에서 시그리드가 황금을 들고 돌아오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리고 시그리드가 돌아오는 즉시, 황금의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질 것이라는 사실도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파울과 미콜라스 두 사람이 입을 모으기를, 지금 유럽 땅에서는 황금이 지극히 귀해졌다더구나.”
원 역사의 코르테스보다 훨씬 적은 양의 금만 가지고 돌아온 시그리드로서는, 금의 시세가 오르는 게 환영할 만한 일이었지만, 문제는 그 폭등의 정도가 극심했다는 데 있었다.
금화 대기근Great Bullion Famine은 원 역사보다 훨씬 가혹하게 유럽 전역을 휩쓸고 있었다. 이는 절반은 시그리드 탓, 나머지 절반은 에릭 잘못이었다.
시그리드가 지기스문트를 개심시켜 ‘관용’을 베풀게끔 만들면서 보헤미아 교회 재산이 압류된 것이 문제의 한 원인이었다. 전전긍긍하며 사태 추이를 지켜보던 나머지 유럽의 교회들은, 요한 23세가 비참하게 ‘자진’ 퇴위를 하게 되자 공황에 빠져, 부리나케 저들의 재산을 이곳저곳에 꽁꽁 숨겼다.
애초에 부정한 축재를 하지 않았으면 될 일이었지만, 대부분의 교회 성직자들에게 그런 지적은 사후약방문에 불과했다.
거기에 더불어 잉글랜드-덴마크 연합군이 프랑스를 무너뜨리면서, 알프스 이북 유럽의 금화 유통 중심지 노릇을 하던 프랑스의 도시들 역시 금화를 쓰는 대신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유럽 전역의 금광이 고갈되고 베네치아를 통해 외부로 금이 조금씩 유출되던 판에 소비심리가 완전히 얼어붙었으므로, 유럽의 금이란 금은 모조리 깊숙한 성과 교회 안쪽 금고에 묻혔다. 약탈로 전비를 충당하는 덴마크와 원래 부유하던 북이탈리아 정도를 제외하면 시장에서 금화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으며, 곳곳의 군주들은 급히 금화의 금 함량을 낮추기에 이르렀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우리가 아무런 견제 없이 시그리드 네가 구해 온 황금을 쓸 수 있는 것은 딱 이번 한 번뿐이리라는 게 명백했단다. 그 다음부터는 유럽의 군주와 상인들이 탐욕스러운 손길을 뻗쳐올 테니까.
그러다 보니, 금을 어떻게 쓸지를 두고 의견이 갈리고, 우리 대표들이 논쟁을 벌이다 보니 감정 싸움이 일어나고, 거기에 다른 이들도 휩쓸리고... 그렇게 되고야 말았지.”
후스와 다른 보헤미아 대표들은, 황금을 이용해 보헤미아의 도시에서 더 많은 장인들을 데려와야 한다고 보았다.
“물론 성경을 번역하고 찍어내기 위한 기반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게 모두에게 더 이롭다고도 본단다.
이 땅의 원주민들도 충분히 지혜롭고, 철제 농기구만 보급된다면 지금보다도 더 많은 소출을 거둘 수 있을 테지. 그렇다면 이 땅에 한 발 늦게 찾아온 우리는,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부족한 것들은 원주민들과 교역하는 게 맞지 않겠니?
부족한 나를 따르겠노라 말해준 우리 보헤미아 사람들은 그렇게들 생각했단다.”
반면 자급자족의 이상사회 건설을 원했던 플레톤은 생각이 달랐다.
“원주민들이 지금이야 농사짓고 사냥만 하고 살지만, 언제까지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지. 더구나 당장 우리는 나라를 칭하기에도 부끄러울 만큼 인구가 적고. 그러니 당장 유럽의 선공들을 모조리 모아 조선소를 확충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건너올 수 있도록 배편을 늘려야 하지 않겠느냐?”
시그리드 한 사람이 한바탕 유럽을 휩쓸고 지나가기 전만 해도, 섞일 이유가 하등 없던 이들이 하나로 묶였으니,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서 조금씩 갈등이 벌어지곤 했다.
보헤미아인들이 너무 많다는 데 은근한 불만이나 위기감을 느낀 이들은, 후스와 보헤미아인들이 순전히 저들 사람들로만 신대륙을 채우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을 품었다. 언제고 저들의 머릿수만 믿고서 저들 말과 믿음을 강요하러 나서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아예 이민의 활로를 확 터서, 더 많은 이들이 신대륙으로 넘어오도록 만들자는 게 보헤미아인 아닌 사람들 공통의 생각이었다.
“그나마 우리 중 그 누구도 시그리드 너의 미래 지식을 함부로 발설할 만큼 부주의하진 않았기에 다행이지. 바깥에서 언쟁 벌이는 이들은, 우리가 단순히 신대륙 연합의 앞날을 두고 논쟁을 벌인다고 여기고 있단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렇게 논쟁을 벌이면서도 다들 최소한의 규칙은 지키고 있다는 것, 그리고 독자행동을 하기보다는 우선 설득을 시키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충분히 좋은 현상이었다.
그렇게 결론을 지은 시그리드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표했다.
“저, 그게... 일단 길게 보면 후스 선생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하는데요.”
차바누샤아 노인과 아욘와에스 두 사람의 대화를 바탕으로 추정해보면, 긴집사람들 연맹을 거치면 미시시피 강 – 아마 다른 이름을 붙여야 하겠지만 – 을 따라 죽 남쪽으로 향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뉴올리언즈 쪽에서 투슈판까지 가는 항로가, 좋은희망에서 배로 바다를 가로질러 투슈판까지 향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고 빠르리라는 것은 굳이 따져볼 필요도 없었다.
더구나 아욘와에스 말로는, 옥수수 강을 거슬러오른 뒤 조금만 걸으면 금방 좋은거래까지 닿을 수 있다고도 하지 않던가.
“그런 조건을 생각해보면, 수운을 이용해서 교역을 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일 거에요.”
쇠붙이부터 온갖 사치품, 그리고 머스킷과 온갖 가축 등등. 신대륙 연합의 개척민들이 신대륙 전역의 시장에 공급할 수 있는 상품은 차고 넘쳤다.
“하지만 아직도 바다를 오가는 배편이 너무 적다는 것도 사실이지요. 또 언젠가는 반드시 이곳 땅에서 노블이나 그보다 더 큰 배들을 건조해야 할 테고요. 아직도 홀로 서기에는 우리 연합의 인구가 너무 적다는 것 역시 맞는 말씀입니다.”
허나 유럽의 군주들이 신대륙 연합을 견제하고 예속시키려 하기 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체급을 키워야 하는 입장에서는, 플레톤의 주장 역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누구 말이 맞다는 게냐?”
이 자리에서 스베인 다음으로 성격 급한 플레톤이 물었다. 허나 돌아오는 것은, 허무하리만큼 싱거운 답변.
“둘 다 하면 되지요. 실은, 두 분 뜻대로 다 이루고도 남을 만큼 금이 엄청나게 많거든요³.”
“아.”
그러나 싱겁게 끝난 – 보다 정확히 말하면, 잠시 해결이 미루어진 – 신대륙 연합 최초의 정치적 논쟁은, 대양 건너편에서는 훨씬 더 큰 파문을 일으켰다.
“아니, 그 책이 모두 사실이었단 말인가!”
“정말로 황금의 산이 있었다고?”
신대륙 개척 경쟁을 일으켜 덴마크를 견제하려던 프랑스 왕자 샤를의 농간이 불러온 뜻밖의 결과였다.
신대륙 임시의회의 결정에 따라, 사실상 신대륙 연합의 산업과 무역을 담당하는 공공기관 비슷하게 된 그린란드 회사 사람들이 보헤미아와 바스크 땅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거기에 그간 어쨌든 많은 편의를 보아준 덴마크 왕실에도 성의를 표하였으니, 곧 유럽 전역에 황금의 소문이 좌르르 퍼지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이란 다 거기서 거기였으니,
“그렇다면 그 『멋진 신세계』에 나온 다른 이야기도 모두 사실이겠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듣는다면 곧장 뒷통수를 후려갈길 참신한 논리(아님)가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그러면 얼른 우리도 개척단을 꾸려서, 그 황금을 가져와야...”
“멍청한 녀석!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살란 말이다! 무엇하러 그런 고생을 하려 하느냐?”
그리고 유럽의 귀족들이란, 대개 스스로 뭔가를 벌어들이기보다는 남이 벌어들인 것을 바탕으로 뭔가 명예롭고도 고상한 – 즉 쓸데없는 – 일을 하는 데 익숙한 무리.
“시그리드! 그 그린란드의 여걸과 결혼하는 자가 신대륙의 부를 독점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저기, 엊그제 교회에 가셨을 때는 바빌로니아의 대탕녀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
“멍청하긴. 아직도 모르겠느냐? 그것은 남들로 하여금 방심케 하고자 그리 가장했던 것이다! 다들 내가 시그리드 그분을 흠모하고 있는 줄 모르고 있을 테니, 이럴 때야말로 내 아들의 초상화를 재빨리 보내야 하지 않겠느냐?”
특히나 빠르게 끝난 신성로마제국 내전에서 줄을 잘못 타서 큰 피해를 입은 전 피사파 영주들이 먼저 반응했으니, 그간 열심히 그린란드의 하얀 마녀를 성토한 것이 참으로 무색하게 되었다.
물론, 정말 순수하게 시그리드가 검은 책의 지식으로 이루어낸 성과에만 이끌리는 사람도 아예 없지는 않았다.
허나 그런 자들마저도 더 밝은 미래를 꿈꾸며 경탄하기보다는, 어찌하면 이 지식을 제게 이롭게 쓸지만 고민하곤 하였다.
당분간은 시그리드와 연이 없을 머나먼 땅에서 찾아온 이방인 하산은 그런 이들 중 하나였다.
맑은 눈으로 희망을 품고 밤하늘을 바라보았던 이들은 모조리, 먼 서쪽에서 말 타고 달려온 굶주린 이들의 칼과 화살에 맞아 사라진 땅.
하산은 그 땅에 찾아온 이방인으로, 무너지지 않을 줄만 알았던 칸의 치세가 붕괴하면서 머나먼 동쪽에 덩그러니 남겨진 무슬림들 중 하나였다.
더 멀리 실라Sila⁴ 땅까지 갔다가 돌아올 길이 영영 끊어져버린 동포들에 비하면, 비단길 끄트머리에 남은 하산의 집안은 그나마 운이 좋은 축에 들었다. 황제의 총애를 받는 신하, 할릴 이븐 무함마드의 눈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할릴로부터 먼 서쪽의 동향을 면밀히 살피라는 명을 받고서 믿음의 고향인 두 성지의 땅에 남아 있던 하산은, 시그리드가 일으킨 일 덕에 실로 경이로운 무언가를 손에 넣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동쪽으로 돌아가는 배가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몸을 싣고, 반 년의 여정 끝에 그의 상전 할릴이 기다리는 땅으로 돌아갈 것이다.
“어르신! 참으로 좋은 소식입니다!”
돌아가서 할릴을 만나자마자 하산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머나먼 동쪽 땅에 사는 무슬림들 특유의, 그 땅의 이교도 말과 무슬림 말이 섞인 기묘한 혼성 언어로.
“좋은 소식이라?”
수염 없는 턱을 어루만지며, 야망 어린 충정이 가득한 할릴은 되물으리라.
“그렇습니다! 이것이라면 능히 황제 폐하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할릴은 제국의 미래가 바다에 있음을 굳게 믿었다. 굳게 닫혀버린 바닷길을 다시금 여는 것. 그것을 위해서라면, 충성스럽게 모셔왔던 그의 주군을 잠시나마 속이는 것도 능히 감수할 수 있는 일.
할릴이 지난 항해에서 하산을 뒤에 남겨놓고 온 것 역시, 바다 너머 땅에 황제의 마음을 살 만한 무언가가 있는지 수소문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⁵.
“저는 멀리 북쪽에서, 배교자 임금의 아우 메흐메트가 실로 무시무시한 총통으로 무장한 불사不死의 군대를 거느리고 주변을 정복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 군대는 칼날을 맞아도 다음날이면 말끔히 일어나고, 진중에 역병이 돌아도 끄떡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비방祕方은 불타버린 바그다드나 알 카히라(카이로)의 대학이 아닌, 프랑크인들의 땅에서 왔다고 하였습니다.”
“불사의 비방이라? 그런 허황된 말은 본관조차 믿지 않거늘, 어찌 그것이 지엄한 분의 뜻을 움직일 수 있겠는가?”
“헛소문이 아닙니다! 여기, 이것을 보십시오!”
하산은 할릴에게 책 한 권을 증거로서 보여줄 것이다. 아랍어를 모르는 할릴은 그 내용을 읽을 수 없겠지만.
“마침 아덴에 막 용한 의원 하나가 찾아왔는데, 그는 이 ‘알 말리움(말비욤)’의 비법을 프랑크(베네치아) 상인에게 사들였다고 하였습니다. 때마침 아덴에 역병이 닥쳤기에 저는 그 비법이 참임을 직접 겪어 알게 되었고, 천금을 주고 이렇게 비방을 베꼈습니다.”
저의 야심과 충심만큼 지혜로운 할릴은, 허황된 소문과 검증된 지식의 차이를 즉시 알아볼 것이다. 정녕 역병을 막을 수 있는 비방이라면, 이 땅에서도 능히 재현할 수 있으리라.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비방이 나온 지 십 년이 채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의원이 말하기를, 프랑크인들의 땅에 한 현명한 여인이 있어 이 비방을 고안해내었는데, 배교자 무사와 그 아우 메흐메트가 배운 총통의 제도와 불사의 비방 역시 그 여인이 가르친 것이라 합니다.”
솔깃해진 할릴은 되물을 것이다. 역병을 막을 수 있는 비방이 참이라면, 불사의 군대라는 소문도 참일 공산이 컸고, 그렇다면 불로불사의 비책이라고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었으니까. 적어도, 할릴의 주군인 황제는 그렇게 믿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여인은 아직 살아있을 터. 그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프랑크인들의 땅인가?”
“한때는 그러했으나, 지금은 아니라고 합니다. 성지에서 미스르(이집트) 땅을 지나면 바다가 나온다고 하지요. 그리고 그 바다 너머에는 우리가 지나온 것보다도 더 광활한 대양이 있다고 합니다. 이 여인은 비방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며 모은 돈으로 큰 배 여러 척을 만들어 그 대양 너머 땅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어차피 할릴의 목적은 예나 지금이나, 어떤 핑계든 계속 대면서 바다 너머 땅과의 교역을 이어나가는 것이었다. 불로장생의 비법을 얻기 위해 바다 하나가 아니라 셋을 가로질러야 한다면 오히려 더 좋은 일.
“반드시 이것을 상주하고, 다음 항해의 지원을 얻어내도록 하겠다. 그대의 공은 잊지 않겠다.”
그리하여 할릴 이븐 무함마드, 저의 주군에게 받은 이름으로는 태감 정화鄭和라 불리는 그가 천자의 마음을 움직여 다섯 번째 하서양下西洋(대항해)에 나서게 될 것인즉, 때는 바야흐로 영락永樂 15년(1417)이리라⁶.
유럽에서 들이닥친 구혼의 폭풍우에 쩔쩔매고 있던 1416년 가을의 시그리드에게는 머나먼 이야기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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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시시피 강은 철도의 보급 이전까지 북미 대륙에서 가장 중요한 교역로로 작용했습니다. 미시시피 강과 그 지류는, 서로는 몬타나와 뉴멕시코까지, 북으로는 미네소타까지, 동으로는 펜실베이니아까지 오가는, 북미 대륙을 절반쯤 가로지르는 거대한 수운망을 형성하기 때문이지요.
원 역사에서도 뉴잉글랜드와 퀘벡, 래브라도 지방에 유럽인들이 도착하면서 형성된 왐품wampum 교역은 미시시피 강 교역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15세기를 거치며 붕괴된 미시시피 강 교역망은 유럽인들의 재화가 유입되면서 부활하기 시작했고, 18세기 말에는 북미 동부 원주민 사회의 기축통화로 부상한 왐품이 미주리 강부터 텍사스까지 쓰이게 되었지요. 이러한 교역망의 발달은, 그 이전에도 비슷한 교역망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실제로 메소아메리카의 작물들이 오대호와 뉴잉글랜드까지 유입되기도 했지요.
2. 작중의 보헤미아인 이민자들은 원 역사에서는 후스파 중 급진파에 속했던 이들입니다. 몰락한 하급귀족과 도시민, 그리고 빈농들 위주로 구성되어 있던 급진파는 타보르Tabor에 요새를 짓고 그곳에서 공동생활을 영위했고, 이후 얀 로하치의 시온Sion 성처럼 비슷한 공동체 여럿이 형성되게 됩니다. 이러한 공동체 연합은 급진파 최후의 저항이었던 리파니Lipany 전투에서도 1만 명 넘는 병력을 동원할 수 있었을 만큼 그 규모가 컸지요.
3. 멕시코 일대의 금 매장량 자체는 안데스 산맥이나 알래스카 등지에 비하면 풍족하다 말하기 어려운 정도지만, 이전에 서술한 것처럼 메소아메리카에서는 오랜 세월에 걸쳐 사금 채취 등의 방식으로 금을 꾸준히 모으고 있었고, 그런 금은 화폐로 소비되는 대신 – 물론 화폐로 소비되었다 한들 메소아메리카 바깥으로 유출될 일은 없었겠지만- 예술품이나 장신구 등으로 쓰이곤 했습니다.
그 결과, 전성기를 구가하던 아스테카(아즈텍)는 콩키스타도르들에게 많은 양의 금을 선물로 줄 수 있었고, 이는 콩키스타도르들의 탐욕을 자극하여 역으로 아스테카의 더 빠른 파멸을 불러오게 됩니다. 예컨대 코르테스의 기록에 따르면, 콩키스타도르들을 군사적으로 막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모테쿠소마 2세는 코르테스 일행이 평화롭게 떠나는 조건으로 코르테스 한 사람에게만 금화 2,500 리브라Libra (대략 파운드와 유사합니다)를 약속했고, 그 아래의 부관들에게는 500 리브라, 병사에게는 인당 50 리브라를 약속했다고 합니다. 코르테스 한 사람에게만 약 1.13톤의 금을 약속한 셈입니다. 참고로 작중 초반에 시그리드 일행이 고틀란드 할양 문제에 휘말렸을 때 언급되었던 금화 구천 노블은 금 70.2kg에 해당합니다.
시그리드 일행은 메소아메리카 원주민들과 평화로운 협력 관계를 구축했기 때문에, 원 역사의 아스테카가 폭력적 방식으로 그러모은 부를 더 심한 폭력으로 갈취한 코르테스에 비하면 그 수익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훨씬 적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전에 서술한 것처럼 작중 시점의 유럽은 극심한 귀금속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로, 메소아메리카의 금이 한껏 고평가될 수 있는 시기에 해당합니다.
4.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 아래에서 통상에 능한 색목인들, 즉 중앙아시아의 무슬림 상인들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쌍화점』과 같은 고려가요로 잘 알려진 것처럼, 그들 중 일부는 한반도(‘알-실라’)까지 넘어와 거주했습니다. 적어도 조선 초까지는 한양에 무슬림 공동체가 유지되었다는 기록이 있지요.
5. 하산은 실존인물로, 시안西安 근처의 모스크에서 이맘으로 있던 인물입니다. 그는 몽골의 전성기에 중국 땅에 뿌리를 내린 중앙아시아 무슬림으로, 대항해를 준비하던 정화의 눈에 띄어 통역 겸 안내인으로 함께했습니다. 훗날 6차 대항해에서 정화 일행이 메카까지 갈 수 있던 것은 하산처럼 무슬림 세계에 발을 걸친 안내인들을 많이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6. 운남 지방의 다루가치 집안 출신이던 정화(본명 마화馬和)는, 이곳을 거점으로 버티던 원의 잔당에게 연루되어 명군에 포로로 잡히고 거세당합니다.
그러나 인생사 새옹지마라, 거세된 포로들이 환관으로 황족들에게 분배될 때 정화는 훗날 영락제가 되는 연왕 주체에게 배당되었고, 뛰어난 군사적 능력으로 금방 연왕의 눈에 들었습니다. 이후 정난의 변이 일어났을 때 정화는 장수로서 군공을 세워 공신 지위까지 올라갔고, 이 신임을 바탕으로 1405년부터 1433년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대항해에 나서게 됩니다.
한편, 정화의 아랍식 이름이 ‘할릴 이븐 무함마드’라는 것은 작중의 창작입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메카 성지순례를 다녀왔다는 점, 정화 본인이 모스크 중건을 후원하기도 했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그에게는 약하게나마 무슬림 정체성이 남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정화의 대항해는 ‘하서양’, 즉 중화의 땅에서 야만스러운 바다 건너로 간다는 뜻으로 불렸습니다. 1413년의 제3차 대항해를 기점으로 갑자기 기록이 풍부해지고, 불랑국(프랑크) 등 인도양 너머 세계에 대한 기록도 나타나는데, 작중에서 정화가 하산을 현지에 남겨두어 정보를 수집케 했다는 것은 이를 반영한 것입니다.
여담으로, 정화의 일곱 번 대항해가 정확히 언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기록에는 불명확한 점이 존재합니다. 실제로 정화와 함께한 이들이 남긴 기록과 『명사明史』의 기록 사이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예컨대 제5차 대항해(하서양)은 항해 당사자들이 남긴 비문에는 1417년 출항으로 되어 있는데, 『명사』에는 이것이 1421년으로 되어 있습니다. 명청대 사대부들이 얼마나 정화의 항해에 무관심했는지를 방증하는 한 사례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