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처럼 굶주린 (1)
20. 늑대처럼 굶주린 Hungry Like The Wolf (1) - 듀란 듀란 (1982)
신대륙의 황금은 온 유럽을 홀리기에 충분했다.
그린란드 회사 사람들이 이주민을 모으러 다니는 곳마다, 테소소목의 황금은 흩뿌려졌고, 그만큼 권력자들의 욕망도 불타올랐다.
그 욕망이 가장 많이 모여든 곳이 바로 기옌Guyenne 지방의 중심지이자 비스케이 만을 바라보는 항구인 보르도Bordeaux였다.
피레네 이남의 동포들만큼 조선업과 원양어업에 능한 바스크인들은, 제노아 자본과 잉글랜드 왕의 권력에 이끌려 도시로 향했다. 전쟁에 휩쓸려 살길을 잃은 농민들은, 날품팔이라도 하고자 나날이 커져가는 조선소에 모여들었다¹.
런던과 제노아의 밀정들은 북해 항구들을 돌며 그린란드 회사 소속의 뱃사람들을 매수하였고, 제노아가 대서양에 관심을 쏟을수록 지중해를 독점할 수 있을 뿐더러 한자 동맹도 절로 견제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 하에 베네치아 역시 (웬일로) 제노아의 뒷통수를 치기는커녕 그 뒤를 봐주었다.
1417년 가을, 노블보다도 더 거대한 범선, 보르도에서 건조된 맨오브워Man-of-War²가 대서양 횡단에 성공했다. 반反 에릭 파벌에 줄을 댔다가 함부르크에서 쫓겨난, 출세욕에 불타는 선장 위트레히트의 지몬³은 보르도를 떠난 지 두 달 만에 열대의 낙도에 도달했다.
“이 섬을 ‘구원자Heiland’로 명명하니,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리기 위함이라.”
십자가와 함께 상륙한 지몬이 남긴 말이었다. 실제로는 이 땅의 황금이 그 자신을 파산으로부터 구원해주길 바란 것이었지만.
섬에는 그저 황금 장신구 약간이 있을 뿐이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황금을 대신할 노예로 비용을 충당하면 그만이었으니까.
구원자 섬에 파멸을 선고하고 서쪽으로 향한 지몬은, 마침내 육지를 발견했다.
해안가 쳄포알라틀Cempoalatl의 사람들은, 북쪽 투슈판으로 향하던 이방인들이 졸지에 남쪽으로 떠밀려왔다 여길 뿐이었다. 어설픈 공용어 단어 몇 개를 주워들은 게 전부였던 쳄포알라틀의 상인들은, 지몬의 프리슬란드 억양 섞인 저지 독일어와 이방인들의 공용어를 분간하지 못했다.
‘구원자’ 섬에서 붙잡혔던 노예 하나가 목숨을 걸고 탈출해 해안까지 헤엄쳐오는 일만 없었더라면, 필요한 식량을 마련하자마자 동쪽으로 사라진 배는 아마 쳄포알라틀 사람들의 기억에서 그대로 잊혀졌을 것이었다.
물론, 지몬은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그깟 노예쯤이야, 바다에 점점이 흩어진 섬 어디를 가든 넘쳐났으므로.
“이 모든 일이, 타이간Taigan⁴ 각하의 대담한 결단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다시 한 번 대서양을 가로지르게 된 위트레흐트의 지몬은 이 대선단의 후원자인 태감 정화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를 올렸다.
실로 그러했다. 동쪽에서 나타난 정화가 그 재물을 아낌없이 풀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대선단이 대양을 건너는 것도, 그리고 그린란드 회사가 독점하고 있는 대양 너머의 황금을 빼앗는다는 계책이 몇 년 이르게 실행되는 것도 모두 요원한 일이었을 테니까.
“그대의 노고가 있었기에 우리 천조의 사람들이 능히 이 바다를 건너올 수 있었다. 그대의 공은 반드시 금상 폐하께도 상주토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각하. 하오면...”
지몬이 말꼬리를 늘어뜨렸다.
그 뒤에 함축된 요청이 무엇인지, 지몬과 정화 모두 익히 알고 있었다.
배로는 열다섯 척, 사람으로는 일천 하고도 팔백에 달하는 대선단. 그중 대명 황제의 명을 받드는, 보선단에서 정화가 가리고 가려 뽑은 인원은 칠백에 달했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병력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병력이 필요했다.
지난해 이방인들이 벌인 패악질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타이노Taino 원주민들은, 이방인들이 식수 보급을 위해 상륙하자마자 화살로 된 환영인사를 건네었던 것이다.
‘남부 바빌로니아’에 하얀 마녀가 구축한 거점을 이 대선단의 위엄으로 제압하고 필요시 강제로 점령한다는 지몬의 계획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이런 조그만 섬에서 손실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반호叛胡의 난행은 안타까운 일이니, 어찌 돕지 않을 수 있으랴? 군사를 움직임이 마땅하리라.”
지몬은 저 원주민들이, 작년에 복속되기를 자처하였던 무리로 알 수 없는 이유로 저들을 배신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유럽의 가장 음험한 음모조차 중화의 기준으로는 소꿉놀이에 불과하였은즉, 정화의 눈에는 그 속내가 훤히 들여다보였지만. (대역죄인의 구족을 멸하기는커녕 고작 눈알이나 뽑고 그치는 로마인들을 프랑크인들은 음험하다 일컫곤 하였으니, 그 정사의 조야함을 족히 짐작할 수 있었다.)
천자를 대리하는 태감 정화의 명이 선단 전체에 전해지고, 믈라카와 마자파힛의 험난한 바다를 누비던 거친 바닷사람들, 필요에 따라 수군도, 해적도 되는 사내들이 곧 명을 받들어 섬으로 향했다.
조그만 배들이 수면에 닿아, 파도와 함께 섬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던 정화에게, 익숙한 하산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무엇이 말인가?”
“이 땅 사람들에게도 중화의 위명과 황제 폐하의 은덕을 알리는 것이 사행使行의 뜻한 바 아니었던지요.”
“솔직히 말하게. 그저 본관이 저 어리석은 오랑캐에게 농락당하는 것은 아닌가, 그것을 염려하여 묻는 것 아닌가?”
하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쪽이든, 서쪽이든, 이 세상에서 목숨이란 한없이 가벼운 것. 하산은 고작 야만인 몇 명 죽어가는 것에 연민할 만큼 순진하지 않았다.
“저 영국의 추장도, 이태리의 상인들도, 모두 호가호위를 바랄 뿐이지. 본관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저 오랑캐들이 무엇을 꾀하든, 어떤 계책을 마련하든 하찮을 뿐이라는 것도.”
정말로 대서양 너머에 불로불사의 처방이 있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런 허황된 목표를 위해서 만금을 흩뿌릴 수 있을 만큼, 천하의 끄트머리까지 사람을 보낼 수 있을 만큼 중화의 물산이 풍족함을 만천하에 뽐내는 것만이 중요했다.
그러므로 정화는 지몬과 그 뒤의 제노아 상인들, 그리고 잉글랜드 왕 헨리의 계획을 간파하였음에도 조용히 그에 따랐다.
“그대도 보지 않았는가? 저 구라파라는 땅은 실로 빈곤하니, 저들이 살길을 찾아 바다를 건너고 정교한 기계를 만들어내는 것 또한 이 때문일세.”
보르도의 조선소에서 헨리가 농노 수백을 갈아넣으며 맨오브워 대선단을 꾸리는 동안, 정화와 하산은 구라파 남쪽을 두루 돌아보았다.
민호民戶의 빈곤함. 그 빈곤이 무색할 만큼 웅장한 교당敎堂(교회)과 제후의 성채들. 그 주인들에게 팔기 위해 발달한, 중화의 물산보다도 더 정교한 온갖 완물玩物들.
예교禮敎가 없었으므로 치자治者는 수탈만을 알았고, 그 덕에 구라파의 오랑캐 추장들은 정예한 군사와 뛰어난 장인들을 거느릴 수 있게 되었다.
저들의 교종敎宗(교황)이 고승(추기경)들의 간언을 받아들여 승려의 청빈을 외치자, 오랑캐 추장들은 얼씨구나 하면서 줄어든 십일조만큼 저들이 걷는 세금을 늘렸다. 멀리 북방의 에릭이라는 자를 본따, 총통을 만들어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둥, 배를 만들어 교역으로 국운을 바로세워야 한다는 둥, 온갖 핑계를 대면서.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정화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설령 저들이 계책을 성사시켜, 바다 건너의 황금을 손에 넣는다 한들,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게야. 결국 저들 영국인이든, 아니면 저들을 질투한 다른 이들이든, 진정으로 물산이 풍족한 땅인 우리 중화에 입조入朝하게 될 터.”
저 황금에 굶주린 자들에게 천하의 황금을 모두 준다 한들 어찌 만족하랴. 반드시 더 많은 것을 얻고자, 또 얻은 것을 빼앗기지 않고자 또 한 번 아수라처럼 물고 뜯으리니.
그리 된다면 반드시, 무한한 경쟁에서 한 발짝 앞서기 위해, 다들 앞다투어 태감 정화의 나라가 있다는 땅, 풍요로운 중원에 찾아와 칭신稱臣하며 교역을 청하게 되리라.
지금쯤 막북에 있을 그의 주군 영락제와 마찬가지로, 정화가 바라는 것은 오직 그뿐, 사이四夷를 모두 중화의 아래에 두는 것뿐이었다. 다만 영락제가 자신이 바라는 바가 바다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음을 알지 못하기에, 부득불 주군을 속여가면서까지 진정한 충성을 다할 뿐.
“그것을 위해서라면 야인의 목숨 따위 중하지 않고, 또 잠시나마 오랑캐들에게 농락당하는 시늉을 하는 것 또한 감내할 수 있는 일일세.”
해변에 도착한 정화의 선원들이 원주민과 대치하고 있던 잉글랜드와 제노아 용병들에게 합류했다.
곧 총통이 불을 뿜었고, 동쪽에서 온 사람들은 각자 저들의 말을 외치며 달려들었다.
오직 저들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작 활과 나무 몽둥이 따위를 들고서 상상을 초월하는 적에게 맞선 타이노 전사들. 그러나 그 용기가 암만 굳세다 한들, 강철과 화약에 비할 바는 되지 못하였다.
벼락소리와 비명. 죽어가는 사람과 죽이는 사람의 외침. 의기양양한 승리의 선언까지. 모든 것이 허무하리만큼 빠르게 흘러갔다.
근처 마을을 뒤져 모아들인 노획물들이 해안에 그득하게 쌓이기 시작했다.
공학자 테오도로스는 지난 늦가을, 증기기관 투자가 확정되면서 아예 야네크네 철공소 근처에 공방을 차리기 시작했는데, 시그리드는 – 그리고 도매금으로 플레톤도 – 이왕 신문 사업을 시작한 길에 증기기관 공방 완공까지 보고 갈 심산으로 아직 환영에 남아 있었다.
곧 환영에 닿을 첫 배편에, 본격적으로 이 땅에서 강철을 제련하기 위해 필요한 장인과 자재들이 실려 있을 예정이었던 것이다.
그 다음 배편은 오스트리아 대공 프리드리히가 보낸 티롤Tyrol 금광의 광부들, 그리고 점점 구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조선공들의 몫. 시그리드는 그들과 함께 남쪽 우애로 향할 작정이었다.
그러던 차에 뜻밖의 화물, 즉 다급하게 적힌 쪽지 한 장이 날아왔으니, 여간 당황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큰일이네요.”
에릭이라는 연줄 덕에 신대륙 연합과의 교역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한자 동맹에게, 정화의 도착은 천재지변과 같았다. (정화가 괜히 하늘의 사자天使(천조의 사신)를 자처하는 게 아니었다.)
언제고 보르도에서 신대륙을 노리는 함대가 출발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차에, 갑자기 상상을 가볍게 뛰어넘는 물주가 나타났으니, 어찌 경악스럽지 않겠는가.
“어디 보자... 뭐? 카타이의 사절 타이간? 카타이는 어디고, 타이간은 또 누구인가? 그리고 대체 왜 이 땅에 찾아오려 하는 건가?”
옆에서 쪽지를 훔쳐본 플레톤이 경악하며 물었다.
“카타이는 중국이고, 타이간은 아마 무슨 관직이 아닐까 싶은데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더 큰 문제는, 분명 이곳 신대륙으로 향하겠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우리 귀에 그 소식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거지요.”
이 무렵 그린란드 회사 소속 바스크 뱃사람들의 한 해는 이런 식으로 흘러가곤 했다.
봄에 고향을 떠나 바다를 건너고, 가을이 되기까지 계속 대서양을 횡단한다. 유럽에서는 사람을 싣고, 좋은희망에 도착하면 모피와 담배, 황금, 기타 특산품을 싣는다.
그렇게 한 번, 잘하면 두 번 왕복하면 대서양은 거칠어지고, 반면 남쪽 바다는 평온해지는 계절이 돌아온다. 겨울부터 이듬해 늦봄까지는, 투슈판과 우애, 좋은희망을 오가면서 교역품을 나른다.
대충 이렇게 한 해 바짝 벌면, 그 이듬해에는 좋은희망이든 기푸즈코아 고향에서든 한 해 내내 편하게 살 수 있었다. 물론 다들 그런 것은 아니었고, 겨울철에 포경을 하거나, 여름철에 그린란드를 오가거나, 아니면 여전히 끝을 보이지 않는 개척만 어장에서 고기잡이만 하는 이들도 많았다.
여하튼 이처럼 연중 배편이 끊이지 않았으므로, 올 봄에 보르도를 떠난 정화의 선단은 지금쯤이면 환영이든 희망이든, 우애든, 아니면 어디 중간쯤에서든 누군가의 눈에 띄어야만 했다.
그런데 아직껏 소식이 없다가, 이제야 함부르크발 급보로 그 소식을 듣게 되었으니, 가능한 경우의 수는 단 둘뿐.
“중간에 태풍을 만나 가라앉았다던가-”
“하지만 그렇게 바다가 거칠었다면 함부르크에서 막 도착한 산 도밍고 호도 무사하진 못했겠지요.”
“그렇다면 다른 쪽으로 간 게로군.”
지금의 빈란디아에서 바깥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곳이라면, 답은 뻔했다.
“아나왁. 그쪽이 목표일 거에요.”
무작정 그곳에 인도가 있다고 믿으면서 대서양을 횡단한 콜럼버스보다야 훨씬 나은 동기였다. 적어도 아나왁의 황금은 유럽을 휩쓴 테소소목의 보물들을 통해 그 존재가 검증되었으니까.
시그리드가 뭔가 불길한 예감을 받을 무렵, 발칵 문이 열리고 지슈카가 들어왔다.
“시그리드, 나와봐야 할 것 같다.”
“네? 무슨 일인가요?”
“우애에서 급보가 닿았다. 투슈판에서 진작 돌아왔어야 할 배가 이제야 도착했는데, 남쪽 땅에서 습격을 당했다더구나. 급하게 출항하느라 물자를 챙기지 못해, 악어습지 쪽에서 식량을 조달하느라 늦었다는 모양이다.
그리고... 투슈판이 함락되었다고 한다.”
“네? 함락되었다고요? 누구한테요?”
제발 카타이의 타이간이나 그 비슷한 무언가만은 아니길 바랐지만, 시그리드의 불길한 예감은 더 안 좋은 쪽으로 빗나가고야 말았다.
그로부터 한 달 전.
바닷가 도시 투슈판은, 틀라콰나틀록 신도들에게는 성지는 아니지만 그 비슷한 무언가 정도로 인식되는 도시였고, 그 외 사람들에게도 어느새 제법 중요한 도시가 되어 있었다.
그 까닭은, 당연히 이방인들의 배가 투슈판을 거점 삼아 오가기 때문이었다.
투슈판의 틀라토아니 콰우테목과 사제들의 탄원에 힘입어 바다를 건너온 가톨릭 선교사들이 활동을 시작한 곳도 바로 투슈판이었다.
그 선교사들의 수장은 도미니코회 수도사, 팔켄부르크의 요한이라는 자였다⁵.
튜튼 기사단과 연이 깊은 집안 출신이던 요한은, 그린란드의 하얀 마녀, 바빌론의 대탕녀에 대해, 딴에는 경건한 의분義憤이라 여기는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다.
당연히 정의가 승리하고, 마녀에게 온당한 처벌이 내려질 줄 알았건만, 항상 패배하는 것은 마녀가 아니라 그 반대편의 사람들이었다.
결국 마녀가 승승장구한 끝에 죄악의 땅 바빌로니아로 넘어가는 것까지 본 요한은, 그때부터 복수의 칼날을 갈았던 것이다.
허나 이 바빌로니아 땅에 건너가, 사악한 이단으로부터 참된 신앙에 호소한 이들을 구원하고, 반격의 기반을 만들겠다는 야심은 첫 단추부터 빗나가고야 말았으니, 그가 들었던 것과 현지 사정은 상당히 달랐던 것이다.
“세상의 파멸을 바라는 이교도 무리라니! 저들을 얼른 쓸어 없애지 않고 무엇한단 말이오!”
“솔직히 말해, 이 사람 또한 그런 심정이오. 허나 대체 무엇으로 저들을 개심케 할 수 있겠소?”
그사이 몇몇 사제들이 공용어를 익힌 덕에 틀라토아니 콰우테목과 뜻이 통하게 되었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더욱 복장이 터졌다.
“본인이라고 어찌 옛날의 올바른 신앙으로 돌아가기를 바라지 않겠소이까.”
“올바른 신앙이라니, 그 무슨 말씀이시오?”
“그야, 이 거룩한 제단에서 희생의 심장이 훨훨 불타고 영광스러운 피가 계단을 적시던 시절 얘기지.”
어떤 사제들은 이런 현실에 절망하지 않고, 얼떨떨함에서 벗어나자마자 차선책을 택했다.
즉 교회의 가르침이 의외로 이 땅에 원래 존재하던 혐오스러운 이교도 신앙과 맞물리는 면이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 공용어 하는 이가 많아진 지금의 투슈판에서는 금방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이었다 – 문화의 차이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며 선교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팔켄부르크의 요한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이 이교도들은 죄악 그 자체요! 모조리 뿌리를 뽑아야 해! 모두 붙잡은 다음, 일일이 물어야 하오. 세례나, 화형이냐!”
“그 말씀을 저 시장에 나가서 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 혐오스러운 희생의 우상숭배는 우리의 복음으로 금방 극복할 수 있지만, 저 틀라콰나틀록이라는 것은 더욱 어려운 상대입니다. 지금은 사람들의 마음을 살 때에요.”
그러나 요한은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고, 정화의 대선단이 투슈판에 당도할 무렵에는 명색이 선교사들의 수장임에도 아랫사람들에게 백안시 당하는 신세로 전락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마침내, 요한은 그간 은인자중하며 기다리던 기회가 찾아왔음을 깨달았다.
바다를 가득 메우다시피 하며 건너온, 참된 신앙의 사람들.
그 사람들과 함께 온 승객들이 좀 많이 거슬리기는 했지만, 저의 우군 하나 없는 상황 속에서 살짝 실성하기 직전까지 갔던 요한에게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빌어먹을! 대체 저렇게나 황금이 넘쳐나는데, 우리에겐 교역을 허용치 않겠다니!”
마침 요한이 나타났을 때, 위트레흐트의 지몬은 분노에 가득 차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
“소문은 들었소. 일찍이 노예로 잡은 이교도가 감히 우리를 모함했다지?”
“아아, 그렇습니다, 신부님! 그 이교도가 퍼뜨린 중상모략이 이 도시의 지도자에게까지 닿은 모양입니다.”
이미 부두에는 그득 재물이 쌓여 있었다. 네사왈코요틀을 시작으로 승마가 귀족들 사이에 유행으로 빠르게 부상한 덕에, 틀라카엘렐이 걱정했던 것과 달리 아나왁 내륙의 귀족들은 흔쾌히 저들의 마지막 남은 황금 장신구를 풀어 교역품으로 내밀었던 것이다.
그 광채는, 멀찍이서 훔쳐보았을 뿐인 시몬이 욕심에 눈 멀도록 만들기에 충분할 만큼 황홀하였다.
“우리와 함께 온 귀빈의 체면을 보아서라도, 교역을 허용해 달라. 꼭 저 북녘의 이방인들하고만 교역할 것은 없지 않느냐. 그렇게 간곡히 청했건만, 끝내 뜻을 굽히지 않더군요.”
“그것은 그 콰우테목이라는 자가 거짓으로 세례를 받은 간사한 이교도이기 때문이오.”
두 사람 모두 속편한 거짓을 늘어놓았다. 콰우테목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받은 것이긴 했지만 어쨌든 정식으로 세례를 받긴 했고, 또 지몬은 ‘교역을 허용해 달라’ 청한 것이 아니라 ‘이제 훨씬 강력하고도 정의로운 나라가 바다 너머에서 찾아왔으니 북쪽의 근본 없는 부랑배들과는 연을 끊어라’라고 요구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올바른 일을 해야지! 부두에 가득 쌓인 황금이 이교도들을 위해 쓰이는 것을 용납할 게요?”
“참으로 옳으신 말씀입니다!”
“이 도시의 군대는 보잘것없소. 이제 막 철기로 무장한 정도에, 그 옛날 한줌 이방인들에게도 맥없이 함락당했다고 하지.
내 이곳의 지리는 잘 꿰고 있으니, 힘을 합한다면 능히 정의를 이룰 수 있을 것이외다.”
“아, 잘 된 일입니다. 저와 함께 온 귀빈 역시, 우리와 함께 그들의 군주들도 이 도시의 추장에게 모욕을 당했다고 고하면 흔쾌히 협력을 허용해줄 것입니다.”
그렇게 정화의 무관심과 지몬의 욕심, 요한의 악의가 겹쳐, 투슈판에는 재앙이 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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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적으로 기옌은 보르도를 중심으로 하는 아키텐 지방, 특히 비스케이 만에 면한 지역을 이르는 말이었습니다. 아키텐 여공작 엘레오노르(사자심왕 리처드의 어머니)가 잉글랜드의 헨리 2세와 혼인한 이래 잉글랜드와 기옌의 인연은 백년전쟁 시기까지 이어졌습니다. 백년전쟁을 거치며 기옌의 주인은 여러 차례 바뀌었는데, 작중에서도, 원 역사에서도 헨리 5세는 프랑스의 내분을 이용해 재차 이 지역의 주인으로 인정받은 상황입니다. 원 역사에서 프랑스는 이후 1451년에야 이 지역을 수복할 수 있었고, 1472년에 최종적으로 기옌을 국왕 직할령으로 삼게 됩니다.
중세 서유럽에서 관습적으로 통용된 해양법 올레론법Laws of Oleron에 의거하여, 기옌의 영주는 피레네 이북 해안지대에 거주하는 바스크인들에 대한 종주권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 지역의 바스크인들은 원양어업에 종사하는 특성상 잉글랜드 눈치를 보아야 했고, 기옌의 영유권이 프랑스로 넘어간 지 한참 후인 1498년까지도 기옌의 바스크 어부들은 잉글랜드 국왕에게 어업세를 납부했습니다. 작중에서 잉글랜드 국왕 헨리 5세가 이들을 이용해 신대륙 진출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2. 15세기를 거치며 대형화된 카락 – 작중 노블의 근간이 되는 캐러벨보다 한 세대 뒤의 배입니다 - 은 포르투갈을 거쳐 잉글랜드에도 도입되었고, 헨리 8세 시기부터는 이러한 배 중 전투에도 적합한 배들을 맨오브워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후 맨오브워는 전투함 전반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19세기까지 통용되었지요. 작중에서는 헨리 8세가 아닌 헨리 5세 시기에, 약 수십 년 앞서 같은 표현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3. 위트레히트의 지몬은 15세기 초에 함부르크를 중심으로 활동한 선장으로, 1401년 급양형제단의 북해 지부라 할 수 있는 ‘나눠먹기단Likedeelers’ 수괴였던 클라우스 슈퇴르테베커를 사로잡으면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해적 사냥꾼 겸 한자 동맹 해군으로 활동하였고, 덴마크의 에릭이 한자 동맹과의 전쟁에 나서자 동맹 소속으로 참전하기도 했지요.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그는 1425년 시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433년에는 함부르크의 명예 시장으로 임명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후대의 연구는 지몬의 공적이 부풀려졌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사실 클라우스 슈퇴르테베커는 지몬의 기함 ‘얼룩소’가 진수되기도 전인 1400년에 사로잡혀 처형당했고, 그를 붙잡은 것도 지몬이 아닌 다른 선장들이었다는 것이지요. 만약 그렇다면, 출세욕에 불타는 지몬이 자신의 공적을 부풀리기 위해 거의 수백 년간 통용된 거짓말을 지어냈을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4. ‘태감太監’은 현대 중국어로는 ‘Tai4Jian4’으로 읽지만, 작중 시점은 물론이요 한참 뒤인 19세기까지도 행정 표준어로 통용되던 관화에는 구개음화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정화의 관직명 태감이 ‘타이간’이 된 것은 이 때문입니다.
5. 팔켄부르크의 요한은 실존인물로,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튜튼 기사단을 가장 맹렬하게 변호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도미니코회 소속이었고, 튜튼 기사단과 밀접한 연이 있는 포메라니아 출신이었지요. 그는 이교도뿐 아니라 이교도를 옹호하는 기독교인도 모두 말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심지어 폴란드왕 요가일라는 암살당해야 마땅하다고 역설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으로 인해 폭군살해tyrannicide에 반대하던 장 제르송과 대립하게 되었고,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영향력 높던 제르송과 공의회주의자들의 눈밖에 나고야 말았습니다. 결국 1417년 요한은 로마에 연금되었고, 그 뒤의 행적은 전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