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를 꿈꾸며 (5)
22. 캘리포니아를 꿈꾸며 California Dreamin' (5)
명이 바닷길을 버리는 일이 없도록, 저의 생전에 반드시 그 길을 뚫고 활짝 열어버리겠다는 정화의 집념은 실로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너희들 중 고과가 좋지 못하여, 필시 이 머나먼 땅에서 기약 없이 기다리는 신세 되리라 두려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렇다면 본관을 따를지어다.”
저를 따라 한 번 태평양을 왕복하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다음번 항해에 대동하여 고향 땅 밟게 해주겠노라 맹세하니, 마침내 선원 스물 두 명을 모았다. 시그리드가 들었다면 ‘패자부활전’이라 평하였을 방법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백오십일 안에 바다를 오가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치 않은 모든 것을 버린다.”
사람이 많을수록 식량과 식수를 많이 실어야 하고, 짐이 늘어나면 배가 커지며, 배가 커지면 자연스레 느려지기 마련.
따라서 정화는 다른 선원들과 마찬가지로 콩나물과 카카오만을 먹고, 암만 목이 불타듯 말라도 다른 선원들처럼 고작 한 모금 물로 견디면서 수만 리 바다를 건넜다.
마침내 술루에 도착하자, 산동성에서 죽은 아비를 대신해 즉위한 술탄이 그를 반겼다. 그러나 정화는 고작 사흘을 휴식한 후 다시 동쪽으로 향했다.
그 어떤 연회도, 선물도 마다하고 떠난 정화는, 다만 자신의 인감이 동봉된 밀서 한 통을 다음 조공길에 북경으로 보내달라 청하였을 뿐이었다.
그리하여 조만간 깨지기 어려운 기록을 세우고 돌아왔으니, 너무나 빠르게 바다를 오간 덕에 오히려 식수도, 식량도 떨어지지 않아, 정화 포함 선원 스물셋 전원이 아카풀코에 닿자마자 그대로 혼절하긴 했어도 명이 끊어진 자는 없었다.
“서씨의 비법이 없었더라면 우리 중 적어도 절반은 죽었으리라.”
이틀 뒤에 정신 차린 정화는 이렇게 평했다.
시그리드가 정녕 정화가 성공하여 제가 바다 건너갈 구실을 만들어주기를 바랐던 것인지, 아니면 정화가 그 명줄을 부지해야만 대양 가로지르는 교역로를 뚫기가 용이해지리라고 냉정하게 판단한 것인지는 정화도 알 수 없었다.
허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무역풍이 부는 곳을 시그리드가 미리 짚어주지 않았더라면 이토록 빠르게 바다를 가로지를 수 없었으리라는 점이었다.
1420년은 태평양과 대서양이라는 두 대양이 전례 없는 대항해의 시기를 맞이한 해로 기록될 것이었다.
1420년 한 해 동안, 육천 명에 달하는 빈농들이 유럽을 떠났다. 수익을 위해 선창을 꽉꽉 채운, 느리고 낡은 코그 선이 쉴 새 없이 ‘빙해氷海 항로’, 즉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를 경유하는 북대서양 항로를 오갔다.
개중 몇몇은 폭풍에 휘말리기도 했고, 몇몇은 대서양 직항로에 도전했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신대륙 연합에 도착한 계약직 하인의 수는 육천을 한참 밑돌았다.
잉글랜드와 제노바의 배는 쉴새없이 투슈판과 악어습지 반도의 신생 식민지 ‘헨리타운Henrytown¹’을 오갔다.
카스티야의 어리고 유약한 국왕 후안 2세를 보좌하는 섭정들은, 좋은희망의 조선소에서 조선 수요 상당 부분을 담당하게 되면서 일감을 잃은 바스크 조선소에 카스티야 해군을 위한 군함 건조를 의뢰했고, 신대륙에 ‘누에바 카스티야Nueva Castilla(새로운 카스티야)’ 부지를 물색할 탐험가를 고용했다².
“그리고 사람이 늘면 문제도 생기기 마련이지. 우리 연합이든, 다른 식민지든. 이대로라면 몇 년 내로 카스티야도 폭풍만이나 악어습지 반도 어딘가에 식민지를 차리려 들 테다.”
가을철 의회 참석차 찾아왔다가 아직껏 떠나지 못하고 있는 얀 지슈카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당장 여기 벌어진 난장판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지 않으냐.”
신대륙의 호국경과 장관들은, 가을철에 의사당을 겸하는 것이 아예 상례로 굳어진 이곳 상공회의소의 난장판을 손수 정리하고 있었다.
올 가을 의회는, 부족민들 쪽이든 연합 개척민들 쪽이든 언쟁과 드잡이질이 회기 내내 벌어졌다. 그나마 시그리드가 거하게 자금성 털어먹는 얘기로 주의를 돌렸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더라면 난장판이 된 것은 이곳 회의소만은 아니었을 것이었다.
당장 오늘만 해도, 헌법 얘기가 과열되는 바람에, 집기 한둘이 부서지고, 좋은거래 의원 군나르와 함께 놀러 온 스베인이 보안관 디폴트와 함께 정회(물리)를 선언한 터였다.
사건은, 계약직 하인들의 지위에 대한 말다툼에서 시작되었다.
헌법 초안에 떡하니 신대륙 연합의 모든 인간은 민족과 신앙과 무관하게 동등한 권리와 존엄을 지닌다고 명시하고 들어가기로 했는데, 이는 이교도 원주민이나 그린란드인들을 배려한 조항이라기보다는, 후스파 보헤미아인과 가톨릭 독일인의 멱살잡이를 막기 위함이었다.
그러면 계약직 하인들도 ‘모든 인간’에 포함되는가? 계약에 따라 그들의 권리를 제약한다면,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가? 계약이 만료되는 순간 그들은 자동으로 연합의 국민 지위를 획득하게 되는가? 아니면 별도의 자격을 갖춰야만 하는가?
백송고리당의 플레톤은 플라톤주의자였기에, 그리고 지지자 다수를 차지하는 독일인들은 그냥 법규와 규칙을 좋아했기에, 이러한 모든 조항을 헌법으로 규율하기를 바랐다. 반면 보헤미아인들은 저들의 창의성과 노력, 근면함으로 일구는 농장의 일에 무슨 큰 법규 같은 것이 개입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 다녀와야지. 왜 우리 시그리드 앞길을 가로막으려 하는가? 지금이 아니라면 이렇게 일이 년씩 편하게 자리 비울 여유도 없을 걸세.
자네도 보았겠지만, 이게 어디 하루이틀 사이에 끝날 논쟁은 아니잖은가?”
시그리드가 답하기도 전, 플레톤이 나름 같은 당 사람이라고 시그리드를 옹호했다. 결코 시그리드가 명나라 가서 그 땅의 철학과 윤리학 서적을 번역가와 함께 챙겨오겠노라 약속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무튼 그랬다.
시그리드 부재시 권한대행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이론상으로야 공동 전제군주인 콘스탄티노스 황자가 적임자겠지만, 실제로는 다들 얀 지슈카를 떠올릴 것이었다.
그리고 시그리드도 지슈카의 능력과 인망 양쪽을 모두 믿었기에, 회기가 시작하자마자 호국경 부재시 국방장관이 그 직을 대행하게끔 하는 게 어떻겠냐고 운을 뗀 바 있었다.
“그러니 시그리드가 자리를 비우면 가장 좋은 건 자네 아닌가? 내가 자네라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얼른 떠나라고 열심히 등을 떠밀 텐데.”
권력에 별 관심 없는 건 시그리드와 마찬가지인 지슈카로서는 질색팔색할 일이었다.
“몇 번 말씀드렸지만, 저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가 아니면 지슈카 아저씨가 지도자로 적격이라고 믿고 있어요. 그리고 무력충돌이라도 벌어진다면, 저는 총 좀 쏘는 것 외에는 큰 도움이 안 되고요.”
“하지만 네 재능은 다른 누구에게도 없지 않느냐. 네가 없는 동안 뭔가 사건이 발생한다면...”
지슈카가 말하는 시그리드의 재능이, 단순히 미래의 지식을 머릿속에 담고 있다는 뜻만은 아님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미래의 지식이야, 어떻게든 시그리드가 중국으로 떠나기 전 검은 책 주해본을 완성하고자 밤샘을 하고 있으니 그렇게까지 큰 문제는 되지 않았지만, 그 지식을 이용해서 모두가 화합하는 길을 여는 것은 아직껏 시그리드 한 사람 외에 그 누구도 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더더욱 시그리드가 지금 다녀와야 한다는 걸세. 내 말했잖은가. 앞으로 최소한 몇 년은 지금 같은 갈등이 이어질 테고, 그 뒤로도 심해지면 심해졌지 사그라들지는 않을 걸세.”
“그리고 이번에 벌어진 갈등은 아마 영영 해결할 수 없는, 앞으로도 우리가 계속 붙들고 가야 할 갈등이기도 하지요.”
그간 조용하던 후스도 끼어들었다.
1420년의 의회는 창설 이후 가장 논쟁이 많이 벌어진 의회라 할 만했다. 새벽땅사람들과 긴집사람들이 언쟁을 벌이고, 가재당과 백송고리당이 드잡이질을 벌였다.
플레톤의 그리스어 강의라는 미끼에 낚여 졸지에 다시 조교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든 담쟁이항구 대학 – 줄여서 담쟁이대학이라고도 불렀다 – 학자들은, 나만 당할 수 없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실현코자 옥스퍼드와 파리의 동료들을 초빙하는 편지를 부치러 왔다가 그 논쟁에 휘말리곤 했다.
인구 이만 명의 신대륙 연합에 갑자기 계약직 하인 오천여 명이 나타나고, 본격적으로 옥수수 강 남쪽과 대단한 강 교역로가 개척되기 시작했으니, 들쑤셔진 곳이 한둘이 아니었다.
새벽땅 사람들과 긴집사람들 또한 이 현상에 대해 반응이 갈렸다. 이미 연합과의 교역에 깊게 관여하게 된 부족 사람들은 쌍수 들고서 환영했고, 심지어 저들도 유럽의 남아도는 인력을 계약직 하인으로 부리는 데 동참할 생각을 하기도 했다.
‘굳이 피를 흘려가며 포로를 붙잡아 가족으로 삼느니, 왐품과 모피로 하인들을 데려와 가족으로 삼는 쪽이 훨씬 평화롭고 올바르지 않은가?’
반면 맨 처음 보헤미아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도착할 때보다도 더 빠르게 개척지가 넓어지고 촘촘해지는 것을 본 이들은, 조금 더 확실하게 저들의 권리를 보장받길 원했다.
‘저들은 옥수수 강 북쪽에 정착지를 늘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은근슬쩍 어기고 있소! 새 정착지를 꾸리는 게 아니라, 정착지에 딸린 농장을 개간하는 것뿐이라더군.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우리가 살 땅은 남아나지 않을 게요!’
‘솔직하게 말하시오. 그냥 저 이방인들한테서 이 기회에 단단히 한몫 받으려고 하는 것 아니오? 우리 부족은 강가 근처에 사는데도 아직껏 교역의 이익을 잘 보지 못했소. 이번에 이방인들이 그 석탄인가 하는 검은돌을 캐다가 대단한 강 하구로 내려보낼 것이라 하기에, 마침내 볕 들 날 왔다고 좋아하고 있었단 말이오!
그렇게 막무가내로 이방인들 쥐어짜다가, 저들이 차라리 딴 데 가서 마을 꾸리겠다며 떠나가게 되면 우리 부족의 피해는 그대 부족에서 보상해줄 것이오?’
인간의 욕심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건만, 그 욕심이 열매를 맺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이는 스스로 일하여 부귀해지고자 하는 마음보다 남의 것을 빼앗아 편하게 부귀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하여 가산을 일궈놓는다 한들, 언제 역병이나 전란, 가뭄이 덮쳐와 모든 것을 무위로 돌려놓을지 모르는 일. 그러니 어찌 함부로 관습과 전례를 어기고 다른 일을 꾸밀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제는 얘기가 달라졌다. 지난 수 년간의 경험은, 신대륙 연합뿐 아니라 연합과 교역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점을 분명히 깨우쳐주었다.
부유해지고자 하는 자는 누구든 근면히 일하고 또 치열하게 궁리하여 언제든 재산을 불릴 수 있게 되었다.
애써 모은 왐품으로 오다와 상인에게 쇳조각 화살촉을 사면, 훨씬 쉽고 빠르게 사냥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사냥한 짐승의 가죽을 벗겨 팔면, 더 많은 화살촉을 마련할 수 있었고, 나아가 아예 배 한 척을 제 것으로 삼아 직접 상행에 나설 수도 있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거대한 마을 좋은희망을 오가는 마을의 추장과 가을마다 동행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요, 세상의 모든 귀한 물건이 모이는 그곳의 시장에서 뭔가 엄청난 보물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
“사정이 이러하니, 차라리 지금부터 정면으로 돌파하는 쪽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장 원주민들 사이 다툼이 어떻게 잦아들었는지, 지슈카 장관께서도 보지 않으셨습니까.”
원주민 부족들 안에서도 꽤 자주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하였다. 가을철 좋은희망에 모여들었다가 벌어졌던 싸움은 그 일부에 불과했다.
아직까지는 오다와 상인들을 매개로 교류하는 게 전부인 세줄기불꽃 의회에서도, 그들의 수도 격인 큰거북섬에서 한 번 대차게 언쟁이 벌어졌다고 했다.
다섯 부족들 모두가 이방인과의 교류에 찬성하고 있는 긴집사람들 내에서도, 교역 확대로 점차 이익을 보는 자와 비교적 소외되는 자가 나뉘면서 다툼이 벌어진다고 하였다.
개중에는 현명한 척 하면서 이방인 우두머리 시그리드가 사악한 주술을 부려 모두의 마음을 어지럽혔다고 혀를 차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던 중, 시그리드가 갓 준공된 자금성을 알뜰하게 털어먹고 홍무제가 세운 해금령도 겸사겸사 허물 방책을 슥 꺼냈다.
서쪽에 있다는 또 다른 대양. 그 너머의 거대한 나라의 손님 후대하는 대추장에게, 이곳에는 흔하지만 그곳에선 귀하다는 인삼을 거하게 바치고 선물을 엄청나게 뜯어, 아니, 받아오자는 제안.
‘만약 정화가 제때 돌아온다면’이라는 단서를 앞에 붙이긴 했지만, 문자도, 복잡한 사회적 제도도 없는 사회에서 살아온 원주민 대표들에게는, 바다 건너가기를 바라는 시그리드 속마음이 훤히 읽혔다.
그리고 이 묘한 생김새의 이방인 대추장이 하는 일은 대체로 기상천외하면서도 크나큰 성공을 가져오곤 했으니, 소소한 다툼에 눈이 멀어 그 제안을 제때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만한 손해도 없을 것이었다.
‘싸우는 건 나중으로 미루고, 우선은 힘을 합쳐서 큰 보물을 얻어옵시다!’
‘그래, 지금은 약초를 모을 때요. 싸울 때가 아니라.’
약초 다루는 치유술사들은 추장들의 요청을 받아, 각각 다른 방식으로 부르곤 하는 이 사람 모양 약초를 보존하는 비법을 공개했다³.
“우리라고 다르지는 않을 겁니다. 당장 우리가 지금까지 큰 다툼 없이 여기까지 온 것도, 시그리드 덕에 계속해서 외부의 재정을 끌어올 수 있던 덕이 컸지요. 그러지 않았더라면, 한정된 자원을 두고서 어떻게든 갈등이 터졌을 거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원한이 맺혔을지도 모릅니다.”
원주민들의 역사와 지리를 처음으로 기록하면서, 그 사정에도 조금 밝게 된 후스가 제 나름대로 교훈을 도출하였다.
“도약을 위해서는 토대가 있어야 하는 법이지요. 장차 유럽을 구하고,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갈등을 넘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비단 영혼뿐 아니라 물질 또한 준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후스의 결론에 잠시나마 숙연해진 장중 분위기를 깨뜨린 것은 역시나 플레톤이었다.
“그냥 오만한 카타이 황제의 금고를 털어오겠다는 도둑질 계획인데, 그렇게 말씀하시니 퍽 멋들어지게 들리는구려.”
“도둑질이라니, 좀 말이 심한 것 같은데요.”
시그리드가 가볍게 딴지를 걸었다.
“네가 뭐라고 말하든, 여기 후스랑 지슈카가 좋아하는 말대로 진실이 승리하는 법이다.”
“그렇지요. 헌법 서두의 그 장광설이 논쟁 끝에 자연스레 사라진 것만 해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이번에는 후스가 플레톤의 아픈 구석을 찔렀다.
“뭐라고? 그 얘기가 왜 여기서 나오는 게요?”
백송고리당과 가재당은 헌법을 두고 멱살잡이까지 했지만, 플레톤이 처음 제안한 헌법 서두가 너무 장황하다는 데는 동의했던 것이다.
‘빈란디아, 혹은 신대륙이라고도 불리는 이 땅에 각각의 의지와 희망, 이상을 품고 건너온 유럽의 제諸민족 및 이들과 함께하게 된 연합의 사람들, 자유와 정의, 그리고 고대 헬라스의 현인들이 밝게 드러낸 진리와 지혜에 대한 사랑으로 하나된 우리들은...’
그것이 조금 줄어들어,
‘신대륙에 건너와 자유와 진리에 대한 사랑으로 뭉친 우리들은...’
이렇게 되었다.
그리고 바닥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새 초안, 이곳저곳 트집을 잡힌 끝에 거창한 표현들은 죄다 잘려나가고, 미사여구를 사랑하는 사람은 너무나 조악하고 건조하다고 통탄할 법하게 변한 헌법 조항 서두는 이렇게 시작하였다.
‘우리 국민들은We the People...’
세줄기불꽃 의회의 드넓은 영역 너머에 사는 대평원의 여러 부족들, 거대한 강 주변에 문명을 이루었다가 산산히 흩어져버린 문명의 후손들, 드나드는 이방인들을 바라보며 마보라는 사내가 진실을 말했다고 통탄하는 타이노 부족들, 그리고 메시카인들이 오가는 아나왁의 모든 도시들까지.
빈란디아의 어지간한 사람들은, 어떤 말을 쓰고 어떻게 살아가든, 선물을 주고받고 교역을 하는 데는 익숙하였다. 척박하고도 가혹한 자연환경을 다스릴 재주가 마땅치 않았기에, 부족한 것을 나누고 머나먼 땅의 소식을 조금이라도 먼저 들을 필요가 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쪽에는 흔한 약초를 머나먼 땅에 선물하여, 인심 후하기로 유명하다는 그 땅의 대추장/우에이 틀라토아니/기타 등등에게서 왕창 대가를 받아오자는 시그리드의 계획은 꽤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평범한 상인이 그런 제안을 했다면야 미친 소리 관두라며 쫓아내든, 용한 치유술사를 소개해주든, (틀라콰나틀록 교리가 퍼지기 전이었다면) 제물이 되는 영광으로 후대하든 했겠지만, 그 제안을 꺼낸 사람이 바로 시그리드 아니던가.
시그리드가 무슨 내기에 지면서 영락없이 바다 너머로 직접 가게 되었다는 얘기가 퍼지자, 더욱 많은 부족들이 동참의 의사를 표했다.
시그리드가 사절단을 이끌고 간다면, 그만큼 그 사절단은 안전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뭔가를 건져서 돌아올 공산이 컸던 것이다.
물론 신대륙 연합처럼 그 수장이 직접 가지는 않고, 대신 그럴듯한 지위나 인망이 있고 재주도 있는 젊은이들을 보내곤 했지만.
1421년 새해가 밝자마자 소문이 퍼지고, 교역로를 따라 오가는 재물의 양이 늘어날수록 더욱 빠르게 정비되는 도로와 수운 덕에 시그리드의 제안에 호응하는 답변이 빠르게 좋은희망과 투슈판으로 전해졌다.
“너무 오래 나라를 비우는 것을 두려워하셨지요? 소관이 작은 꾀를 내었으니, 이대로 바다를 건너 입조하시기만 하면, 금방 후대를 받으시고 뜻한 바를 이루실 수 있을 것입니다.”
투슈판과 아카풀코 사이 테노치티틀란에서 시그리드를 만난 정화가 말했다.
“작은 꾀라고요?”
“예, 소관이 황은을 입어 먼 바다로 나감에, 언제고 해난을 당하여 중원 땅을 다시 못 밟게 될 수도 있음을 걱정하였습니다.
이에 지극히 밝으신 금상 폐하께옵서 인감을 내려주셨으니, 그러한 때가 되면 인감을 글과 함께 보내라 말씀하셨습니다.”
즉 불가피한 사정으로, 긴히 보고해야 할 사안을 본인이 직접 고하지 못하게 될 경우 인감을 대신 보내라는 뜻이었다.
정해진 전례에도 없고, 더구나 중간에 어느 오랑캐가 관인을 탈취하여 위조할 수도 있는 것이었으니, 대명의 황제 영락제가 연왕 주체 시절부터 자신을 충실히 모셔온 이 환관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시그리드로부터는 그저,
“잘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라는 짤막한 반응만 이끌어내고 끝이었지만.
“헌데 제가 청하였던, 그 계책은 어찌 되었는지...”
“아, 걱정 마세요. 내기의 조건은 충실히 이행할 생각이랍니다.”
“저 사절단이 그 계책의 일환인지요?”
“말하자면 그렇지요.”
신대륙 연합이 하나. 노르웨이 국왕에게 딸린 땅이지만 딱히 외교권까지 넘긴 적은 없는 – 그야, 그린란드가 외교를 할 일이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으니까 – 그린란드가 둘.
긴집사람들 다섯 부족. 세줄기불꽃의 삼형제 부족. 새벽땅 사람들의 일곱 부족. 교역의 강 강가에 살지만 아직 세줄기불꽃이나 긴집사람들, 새벽땅 사람들 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세 부족.
메시카 상인들이 옮긴 말을 듣고서 우르르 아나왁과 그 너머에서 모여든 사절들.
“대명이 온 하늘 아래에 덕을 베푼다는데, 같은 하늘을 이고 있는 입장에서 한 번쯤 찾아가는 게 마땅하지 않겠어요?”
51개국 사절단 – 그중 진짜 나라꼴을 갖춘 곳이 얼마나 되는지는 묻지 않는 것이 예의였다 – 의 수장, 신대륙 연합 호국경 시그리드 리프트라사가 순진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껏 정화가 바다에 나가, 조공 사절이라고 각지에서 데려왔던 이들. 그들이 속한 나라를 다 합쳐봐야 쉰하나는커녕 그 절반인 스물다섯에도 미치지 못할 터인데.
시그리드는 정화가 경약하든 말든, 저의 ‘원대한’ 계획을 그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설명해주었다. 사신 접대로 인해 너무나 과중한 비용이 발생하게 만듦으로써, 아까워서라도 명나라 조정이 해상교역에 나서게끔 만든다는, 황당무계하면서도 왠지 시그리드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계책.
입이 떡 벌어진 정화에게, 갑자기 다른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떠오른 것은 그때였다.
눈앞의 저 사절단들. 저들 중에는 고작해야 여진 야인의 일개 위소와 비등한 규모의 부락에서 온 자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화는 이제 어떻게든 그 사실을 숨겨야만 했다.
자신이 황상을 기망했다고 탄핵당하기라도 한다면, 해금령을 끝내고 대명의 명운을 다시금 바다 위로 이끈다는 대계는 그날부로 끝날 테니까.
정화의 명운은, 그리고 정화의 평생의 꿈은, 이제 시그리드 한 사람을 따라 이 계책을 성사시킬 수 있느냐에 오롯이 달리게 된 셈이었다.
“신이시여...”
한때 투슈판이 불타건 말건, 이 오랑캐 땅의 오랑캐 부족들에게 하등 관심이 없던 정화는, 이제 이 땅의 대표 시그리드 리프트라사에게 완전히 목줄이 매인 셈이 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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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 역사에서 잉글랜드가 처음으로 아메리카에 세운 식민지 이름은 제임스타운Jamestown이었습니다. (실제로는 그보다 이십여 년 전 세워진 로어노크Roanoake 식민지도 있었지만, ‘크로아토아Croatoan’이라는 정체불명의 기록 한 줄만 남기고 식민지 주민 전원이 사라졌지요.) 작중 잉글랜드는 제임스 1세가 아닌 헨리 5세가 재위 중인지라, 식민지 이름이 헨리타운으로 정해졌습니다.
2. 작중 시점에서 카스티야(레온 왕국 포함)는 아라곤 왕국과 함께 이베리아 반도의 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상황입니다. 이미 레콩키스타는 거의 끝났고, 최후의 이슬람계 국가 그라나다는 카스티야와 아라곤, 포르투갈의 대립 사이에서 근근이 버티고 있는 상황이지요. 카스티야와 아라곤은 모두 해상교역에 큰 관심을 두고 있었고, 상당한 규모의 해군을 육성하였습니다.
지중해와 대서양 양쪽에 걸쳐 있던 양국의 해상세력은, 훗날 통일된 스페인이 오스만 투르크와 지중해 패권을 두고 경쟁하면서 동시에 신대륙과 동아시아, 네덜란드와 벨기에까지 영향력을 투사할 수 있는 근간이 됩니다. (여담으로, 카스티야 해군은 백년전쟁에서 프랑스를 지원하기도 했는데, 이때 생긴 잉글랜드와의 악연은 한참 뒤인 엘리자베스 1세 시기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3. 인삼은 다른 식물뿌리와 마찬가지로 수분 함량이 높아, 그 자체로는 보존이 쉽지 않습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삼을 자연건조하여 보존성을 높이는 기법이 등장했지요. 유럽인들과의 접촉 이전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인삼 활용이 정확히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는 고증하기 어렵지만, 인삼을 약재로 쓰기 위해 건삼 혹은 백삼이라고도 불리는 자연건조 인삼을 널리 썼을 개연성은 충분히 존재합니다.
이러한 건조 인삼은 비록 생삼보다 보존성은 높지만, 약효 면에서 특출난 이점이 없을 뿐더러 너무 오래되면 바스라지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인삼 무역에 진심이었던 조선에서는 어떻게든 인삼의 부가가치를 높이고자 노력했고, 이러한 노력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인삼 재배의 확립과 대량 증포기술(=홍삼)의 개발로 이어지게 되지요. 물론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그럴 것 없이 그냥 필요할 때마다 숲에 가서 뽑아 쓰면 그만이었을 테니, 백삼 이상의 보존법은 등장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