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려보자꾸나 (1)
23. 그려보자꾸나 Imagine (1) - 존 레논 (1971)
홍무 10년(1377), 명태조 주원장 가라사대,
“자고로 환관 가운데 난을 일으키는 자가 많았다. 이제 법을 세워, 환관이 장차 조정의 정사에 간여치 못하게 하고자 하니, 지난 일을 교훈삼아 후대에 경고하기 위함이니라¹.”
하였으니, (하초下焦 멀쩡한) 주변의 대신들 중 이 그 말씀을 듣고 탄복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뒤이어 태조가 『맹자』를 읽고, 감히 일개 서생이 군주를 폐하니 벌하니 운운하는 구절에 이르자 격분하여,
“이 맹자라는 늙은이가 지금 살아 있다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외쳤는데, 추나라 사람 맹자는 죽은 지 이미 어언 일천팔백 년이 지났기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허나 맹자의 언행이 궁중의 사대부 마음 속에 살아 있었으므로, 주원장은 대신 선비들 – 그러니까, 환관 억누른다는 말에 환호하던 바로 그 대신들 - 이라도 족치기로 작정하였다.
헌데 궁궐에서 환관과 선비를 모두 내친다면, 당최 일을 맡길 사람이 없었다. 이 난제를 어찌 해결할 것인가?
훗날 영락제가 되는 연왕 주체는 답을 내리기를, 그래도 선비보다는 환관이 낫다고 하였다. 이 답은 최고의 답안이었으니, 그 외 다른 답안은 모조리 그 응답자와 더불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하여, 환관을 중용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조용히 묻히고, 환관들이 곧 천자의 수족으로서 군을 거느리기도 하고 번방藩邦에 나가 천조의 위엄을 떨치기도 하였는데, 그 으뜸이 바로 정화였다.
허나 정화 한 사람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티베트 출신 환관 후현侯顯은 티베트불교 고승들을 대명의 편으로 포섭코자 제 고향 땅을 오갔고, 색목인 내관 이달李達은 사마르칸트의 궁궐에 손님으로 머물며, 티무르의 후손이 혹여 엉뚱한 마음 품지 않는가 살폈다.
정화와 함께 군공을 세웠던 여진 환관 왕언王彦은 요동진수태감으로 임명되어 산해관 밖의 제 겨레를 통솔하였고, 고려국 의주 사람이던 환관 황엄黃儼은 조선이 혹 요동을 도모할 작정은 하지 않는가 감시하는 중임을 맡았다².
자신이 마침내 완전히 이 은발 여인에게 목줄 잡힌 신세가 되었음을 깨닫자마자 바로 공용어를 익힌 정화는, 이처럼 환관의 권세가 하늘 바로 아래까지 닿은 작금의 정국을 최대한 주군을 욕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우회하여 설명해주었다.
“... 상황이 이와 같으니, 우리가 있는 재주를 모두 모은다면 예법의 문제는 겨우 무마할 수 있겠습니다.”
곁에서 예에 맞지 않네, 오랑캐가 방자하네 떠들 법한 무리는 모두 자금성의 전각 그늘에 숨어 수군댈 뿐이니, 정화와 시그리드가 꾀를 모은다면 한쪽은 체통(과 머리통)을 잃지 않은 채로, 다른 한쪽은 배에 그득 하사품을 실은 채로 이 전례없는 입조를 조용히 마무리지을 수 있으리라.
물론 굳이 그렇게 만천과해瞞天過海할 것도 없이, 오랑캐 추장 하나하나가 예를 배우고 진심으로 신복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경우에 들겠지만, 그 51개‘국國’ 추장들 중 오십 명의 면면을 살핀 정화는 그렇게 될 공산이 내일 갑자기 시그리드 머리칼이 검게 변할 공산보다 적다는 결론을 내린 지 오래였다.
“네? 미안해요. 못 들었어요.”
시그리드가 딴소리를 했다.
정화로서는 허탈한 일이었다. 시그리드가 홀로 뱃전에 서서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기에, 대명에 당도한 뒤의 일을 심도 있게 논의하기에 적기라 여겨 다가가서는 한참을 떠들었건만.
“아, 오해하실 만도 하셨겠네요.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니라, 여기 이 물건을 보고 있었거든요.”
“이건... 유리가 아닙니까?”
지금껏 중국에서 유행하던 페르시아 유리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맑으면서도 곱게 세공된 유리. 보헤미아 장인들과 테노치티틀란 장인들의 협업으로 나온 물건이었다.
“네, 맞아요. 바다로 나온 김에 실험해보고 싶던 게 있었거든요.”
그제야 정화 눈에도 시그리드 앞에 놓인 기물이 들어왔다. 바닷물 가득 담은 넓은 대야 위에 비스듬히 얹어놓은 평평한 유리판.
“여기 이 바닷물이 증발하게 되면, 수증기가 유리판에 막혀 응결되지요. 기울어진 유리판을 따라 흘러내린 민물 물방울은 여기, 유리판 끄트머리에 대놓은 갈대 대롱을 타고 이 잔에 모이게 되고요.
양이 충분하진 않지만, 비상용 식수를 이걸로 충당할 수 있을 테니 나름 배의 짐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³.”
신대륙 연합 소속 배들이 다른 군주들의 배보다 더 빠르고 안전하게 항해하는 데 소소한 도움을 줄 기술.
그간 그린란드에서는 유리를 구할 길도 없거니와, 굳이 바닷물을 민물로 바꿀 것 없이 도처에 널린 얼음과 물을 녹이기만 하면 그만이었던지라 딱히 선보일 기회가 없던 기술이기도 했다.
그것을 제 손으로 뚝딱 만들어, 느리기는 하지만 어쨌든 사람 몇몇이 급한 대로 갈증 해소할 만큼의 물은 나오는 것을 확인했으니 시그리드로서는 꽤 보람찬 일이었다.
그러나 정화는 지금 시그리드의 이런 재주에 감탄할 여력이 없었다.
“그 비상한 재간으로 다른 일을 대비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소관 홀로는 도저히 저 사절단에게 예법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다시 한 번 간결하게, 자신의 실패한 노력들을 요약해주는 정화였다.
명나라 사람들이 저들이 쓰는 방언인 오어吳語로 ‘큰 배大船’라 부르던 것이 그대로 공용어에 편입되어 다이슨Dyson이라는 이름이 붙은 신형 범선. (이유는 몰라도, 왠지 중원의 부를 남김없이 빨아들일 것 같은 작명이었다.)
이 배에 오르기 전후로 정화는 사절단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천조 대명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인지, 그 물산은 얼마나 풍족하며 인구는 얼마나 많은지, 황제의 위엄은 얼마나 높으며 그 권세는 어떠한지를 설명하였다.
그리하면, ‘아, 그렇구나’ 하면서 공경하는 마음으로 예법을 배우겠다고들 할 줄 알았던 것이다.
‘대명의 황제께옵서는 지극한 덕으로써 만천하를 아우르시니, 복속함이 마땅한 일이오. 어찌 그 덕을 흠모하여 입조를 하면서 예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겠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도 이미 그 덕이 미치고 있었다는 말씀이시오?’
‘실로 그렇소. 무릇 저 황상의 덕은 저 북극성과 같아, 한곳에 붙박이로 있으되 밤하늘의 모든 별이 주변을 도는 법이외다.’
적도 가까이를 지나고 있던지라 북극성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다행히 비유는 잘 먹혀들어간 듯했다.
그런데, 긴집사람들 사이에서 사절로 뽑힌 추장들이 저들끼리 뭐라 소근대더니, 이렇게 정화의 속을 두세 번쯤 뒤집기에 족한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 명이라는 부족 연맹이 그렇게나 대단하고, 그 대추장께서 우리를 위해 그토록 신경을 써 주신다면 공경해야 마땅하겠군.’
‘그렇소이다.’
‘헌데 우리 긴집사람들은 수백 년 전부터 위대한 평화의 법에 따라 살아왔소. 그대가 섬기는 대추장의 연맹은 고작 오륙십 년 전에 세워졌다 하지 않았소?
그러니까 그대 말처럼 명의 대추장이 정령들에게 잘 기도를 해서 우리에게도 덕을 베풀어주었다면, 지금 대추장 집안 말고 그 전에 있었다는 위안Yuan, 元 사람들에게 먼저 감사를 표해야 하지 않겠소? 사람이 의리가 있어야지.’
졸지에 친원파를 양성하는가 하면,
‘그 위안 사람들 전에는 송Song, 宋이라는 부족 의회가 있었다지 않았소? 긴집사람들보다도 더 전통이 오래된 우리 세줄기불꽃 사람들은 그때부터 따져야 할 것 같은데...’
애산에서 궤멸한 송나라 사람들의 혼백이 들으면 얼씨구나 할 만한 언사까지 나왔던 것이다.
그러고는 하나같이 말하기를,
‘중국은 크나큰 땅이고, 그곳의 마을 하나가 신대륙 연합 전체보다 사람 수가 많다고 하셨지 않소? 그러므로 우리는 중국의 대추장에게 경의를 바칠 것이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을 다스리는 대추장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니까.
허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 대추장의 다스림을 받는 것은 아니잖소? 제 것이 아닌 무언가를 제 것이라 우기게끔 만든다면 이는 잘못된 일이오. 손님된 도리로 어찌 주인을 속여서 잘못을 범하게 만들겠소?’
‘제국’이라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개념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던 아나왁 사람들도, 긴집사람들이나 세줄기불꽃 쪽의 이런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긴커녕 도리어 맞장구를 쳐주었다.
손님이 멀리서 찾아와서 ‘당신네 나라 대단하다’ 칭찬해주는 것만으로 족하지, 굳이 누가 누구의 신하니 뭐니 따질 게 있다는 말인가?
만약 중국 천자가 만천하에 교화의 덕을 베풀었으니 그를 따라야 한다면, 마찬가지로 중국 천자는 지금까지 사람의 심장을 바쳐 다섯 번째 태양을 유지해준 자신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었다.
‘우리,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다. 결국 왕이든 황제든 다 높은 사람인 건 마찬가지 아니오? 시그리드나 나나, 그런 이들 대하는 데는 도가 텄소.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신대륙 연합 대표가 아닌, 브라타흘리드 농장 주인 – 아직도 소유권은 스베인에게 있었다 – 으로서 그린란드 사절로 참석한 스베인은 껄껄 웃으며 정화의 어깨에 턱 손을 올렸다.
여태껏 들었던 모든 무엄한 언사 중에서도 이것이 으뜸이었다.
스베인이 말하는 ‘임금 대하는 도’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도리가 코펜하겐과 프라하에서 어떻게 실천되었는지, 정화는 좋은희망에 면면이 전해지는 그린란드 연대 무용담을 통해 익히 들은 바 있었다.
“... 상황이 여차하니, 우리라도 잘 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간난신고를 겪으며 위엄이 많이 깎여나갔는지, 아니면 시그리드와 생사를 당분간 함께하게 된 김에 제 속마음을 조금 더 드러내기로 작정했는지, 정화는 시종 진솔한 말투였다.
“저도 딱히 예법을 깍듯하게 지킬 생각은 없는데요.”
이 무슨 날강도 심보냐고 할 만도 한 반응이었지만, 시그리드는 오히려 당당했다.
하사품 가득 실은 수레의 묵직한 바퀴 소리와 텅 빈 곳간에 절망한 호부 관원들 통곡하는 소리가 북경에 새로 닦인 대로에 울려야만, 비로소 정화의 꿈도 이루어질 테니까.
명의 깃발을 단 배가 바다를 누비게 될 테니 정화도 좋고, 지금껏 그 어떤 중국 황제도 신대륙에서 사람 찾아오는 진기한 경험은 한 적 없었으니 영락제도 좋고, 신대륙에 지천으로 널린 인삼을 베네치아 사람들이 유럽에 후추 팔듯 비싸게 팔 수 있으니 시그리드도 좋고.
“말하자면 서로 좋은 거래를 하는 셈인데, 굳이 과하게 굽히고 들어갈 필요는 없을 테니까요.”
“그리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정화는 한숨을 푹 쉬었다. 시그리드가 눈치껏 저의 태양열 증류기에 모인 맑은 민물을 내밀어주었다.
아직 시그리드도 마셔본 적 없는 민물이었기에, 따지고 보면 이 역시 따뜻한 배려라기보다는 인체실험에 가까웠지만, 정화는 딱히 개의치 않는 듯 시원하게 그 물을 들이켰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다행히 밝으신 황상께서는 이 부족한 사람을 깊게 믿고 계십니다.
제가 받고 있는 과분한 총애와, 전하의 심모원려를 합친다면, 어떻게든 황상의 위엄을 거스르지 않고, 심기 또한 어지럽히지 않으면서, 흠례欠禮(결례)로 말미암을 논란을 피해 갈 방도를 마련할 수 있겠지요.”
부디 이 상황을 엄중히 인식하고 자신과 힘을 합쳐 이번 북경 입조를 제대로 성사시켜보자는 말.
“잘 되었네요. 그러면 조금 더 자세히 정세를 논해 볼까요?”
불감청일지언정 고소원이라.
지금껏 하서양의 대업을 이루면서, 수많은 나라들로 하여금 입조케 하고 – 물론 이번만큼 많은 ‘나라’의 사절들을 대동한 적은 없었지만 – 그 과정에서 벌어졌던 소소한 마찰도 직접 다룬 바 있던 정화였다.
이런저런 절차를 설명하고, 그 절차마다 어떤 착오와 갈등이 벌어졌는지를 또 상세히 다루었다.
“비록 황상께서는 아직 해외 제국諸國의 사무보다는 막북과 새외塞外의 복속에 더 열중하고 계시기는 하지만, 원방遠方에서 입조하는 사절에게는 지극히 관인寬仁하시어 많은 은덕을 베푸셨습니다.”
예컨대 왜국과 유구국 사신들이, 진상하려던 방물 일부를 빼돌려 사사로이 교역한 사건이 수시로 벌어졌고, 심지어 연호조차 틀린 엉터리 국서를 들고 찾아오는 일이 빈번히 있었다⁴.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상께서는, 머나먼 땅의 오랑캐가 예를 모르고 오직 이익만을 아는 것이 부득이한 이치이니, 죄를 묻지 않음이 옳다 말씀하시어 휼형恤刑(형벌을 가볍게 함)의 아름다움을 보이셨습니다.
유구와 왜가 멀다 한들, 이 태평양에 비하면 이웃 마을에서 마실나오는 것에 불과하지요. 가운데서 모함하는 자가 없다면, 그리고 전하께서 지금과 같은 마음을 지켜주신다면, 우리의 대계는 겨우 성사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운데서 모함하는 사람이라고요?”
“소관 입으로 스스로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소관은 금상께서 보위에 오르신 뒤 행실을 삼갔습니다. 오직 이 하서양에 모든 것을 걸었기에, 조정에 따로 적이 없습니다. 물론 지존이신 금상 한 분을 모시는 환관들이 감히 그 안에서 파당을 나눈다는 것부터가 잘못이겠지만요.”
즉 누가 끼어들어 시그리드의 사절단을 모함할 일은 없다는 말이었다.
지금 태평양을 건너고 있는 사람들 중 대명 조정의 사정에 가장 밝은 정화가 그렇다는데 무어라 더 토를 달겠는가?
허나 정화 또한 알지 못하는 바가 있었으니, 자신이 불로불사의 약을 찾아 하서양에 나서기로 하였을 때부터 이미 공사중이던 자금성 한쪽에서는 저를 질투하고 미워하는 무리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영락 19년(1421), 정월을 맞이하여 북경을 도성으로 삼으니, 지난해 섣달 초엿샛날 전에 범한 죄 중 강상綱常을 범한 대죄인을 제한 모든 죄인을 사면하고 백성 아끼는 은덕을 베풀었다.
그리고 같은 해 4월, 다시금 조칙을 내려 하유하기를, 장차 형벌을 집행할 적에 『대명률』에만 따를 것이요, 죄를 캐묻고 벌을 내리는 데 있어 망령됨이 있다면 반드시 벌할 것이라 밝혔다.
이 추상같은 말씀에 어리석으면서도 지혜로운 백성들은 감읍하고, 지혜로우면서도 어리석은 사인士人들은 형벌이 백성을 올바르게 이끄는 대신 오로지 한 사람의 뜻대로 좌지우지되는 것을 한탄하였다.
반면 다른 데 온통 정신이 쏠려 좋아하지도 한탄하지도 않는 사람도 있었다.
“정화, 그 눈 퍼런 놈이 곧 돌아올 게요. 듣자하니, 불로불사의 처방을 얻지는 못했지만 그보다 훨씬 나은 무언가를 찾았다더군.”
소록국 동왕이, 자신에게 맡겨진 정화의 관인이 지닌 무게를 깨닫고, 즉시 가장 좋은 배와 가장 뛰어난 선원을 구하여 북경으로 부친 정화의 밀서.
대명의 황제 한 사람만 알고 있어야 할 그 내용을 태연자약하게 발설하는 자 있으니, 바로 고려국 의주 사람인 내관 황엄이라.
“같은 황씨끼리 정이 있으니 내 특별히 그대에게만 알려주는 사정이외다.”
마치 인심 쓰는 것처럼, 눈앞의 조선 사람을 툭툭 치면서 말하는 황엄.
그 황엄과 마주 앉은 사내. 하필 성이 같아, 어찌 네놈 같은 상것 내시와 본관 같은 명문거족의 대신이 ‘같은 황씨’란 말이더냐 외치고픈 마음을 꾹 누르며, 수모 애써 참는 사람은 바로 조선국 사신 황희였다.
“대인의 은덕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영락제 주체의 명을 충실히 받드는 환관들은, 저들의 주군에게 한 점 흔들림 없는 충성을 바쳤다. 그러나 더러는 주군을 향한 충성 말고도 다른 것을 마음에 담을 수 있을 만큼 그 도량이 넓은 이들도 있었다.
정화는 충심을 채우고 남은 빈자리에, 바다를 향한 꿈을 담았다. 일개 환관으로서 대명의 앞날을 바꾸고자 하는, 진정한 충심의 소산이라고도, 월권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하서양이 그렇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반면 대부분의 환관들에게는 그런 꿈은 없었고, 다만 도저히 채울 길 없는 제 아랫도리의 허전함을, 알량한 권세 놀음과 재산 갈취로써 채우고자 할 뿐이었다.
황엄도 그런 축에 들었다. 일찍이 조선에 와서는, 사람을 때려죽이지를 않나, 제주도에서 불상을 가져오더니 조선왕을 데려와 그 앞에 절을 하라고 시키지를 않나, 참으로 민폐가 컸다. 아마 고려의 하찮은 집안 사람으로 태어난 원한과, 몸이 온전치 못한 원한을 그렇게 푸는 면도 있었으리라.
그러한 내력을 잘 아는 황희는 속으로 부들댈지언정, 겉으로는 감사함을 만면에 가득 띄웠다.
허나 그러면서 슬쩍 묻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애초에 남원 유배지에서 몇 년은 더 허송세월할 줄 알았던 자신이, 주상의 명을 받아 사신으로 오게 된 까닭이 따로 있었으니.
“소관은 소방小邦의 사람인 데다가, 비루한 식견에 과분한 덕을 입어 중임을 맡았을 뿐입니다. 산기슭에서는 산봉우리의 광경을 상상조차 할 수 없으니, 바라건대 상국上國에서 보이는 바가 무엇인지 듣고자 합니다.”
이미 바쳐야 할 뇌물도 다 바쳤으니, 이제 정화 얘기로 운을 띄운 까닭이 무엇이냐 묻는 것이었다.
“정화 그자가 찾은 것은, 바로 인삼이라 합디다. 인삼 하면 고려요, 고려 하면 인삼이었는데, 정 태감이 이제 인삼이 잡초처럼 널린 섬을 저 먼바다 한가운데서 찾았다는 게요.”
일부러 그러는지, 아니면 습관 탓인지, 계속 ‘고려’ 운운하며 조선의 신하인 황희의 속을 긁는 황엄.
하지만 황희는 그런 데 쏟을 심력이 없었다.
‘비록 내 국통國統을 염려하여 건저建儲(세자 책봉)의 일에 반대키는 하였으나... 참으로 금상의 예지叡智는 해동의 고금을 둘러보아도 제일이로구나!’
소위 ‘서왕모’의 불사 처방은 이미 북경을 통해 한양까지 들어와 있었고, 밝으신 주상께서는 격물치지를 논하시며 그것을 시험케 하신 바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고작 맑은술을 여러 번 증류하여 얻은 독주만으로도 엄청난 효험이 있었고, 무시무시한 역병도 서왕모의 비술을 쓰니 능히 막을 수 있었다.
바로 그렇기에, 바로 등용하기에는 영 께름칙하지만, 그 재주를 썩히기에는 아까운 황희가 해배解配되어 사행길에 오르게 되었던 것이다⁵.
먼 바닷길에 나간 정화가 돌아오지 못하고, 다만 천방국天方國(메카)에 머물던 함대만 먼저 돌아왔다 하였으니, 필시 곡절이 있으리라고 성상께서는 판단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무언가 곡절이 있으리라는 그 판단은 놀랍게도 들어맞았다.
‘서왕모’가 고안하였다는 불사의 처방이 정말로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효능이 있다면, 서왕모를 찾아 먼 바다로 나간 태감 정화가 불로불사의 비약 대신 무한한 인삼을 찾아 돌아온다는 말도 아예 거짓은 아닐 공산이 컸다.
“헌데 이러한 일은 가볍게 논할 수 있는 바가 아닌 듯하온데...”
“바로 그렇소! 함부로 입에 올려서는 아니 될 일이지. 허나 그대도 생각해 보시오. 본관이 그런 생각을 못하였을 리가 없지 않소? 다 크나큰 계책이 있어서 하는 말이외다.”
“계책이라 하시면 무엇을 이르심입니까?”
“지난 십여 년간 정 태감이 하서양을 운운하며, 황상의 총애를 등에 업고 바다 위에 흩뿌린 재보만 족히 금으로 수천 근은 될 것이오. 이제 소위 불사의 비방에 이어 인삼까지 들어오게 된다면, 앞으로 정 태감이 더욱 큰 배로 더 많은 낭비를 한다 한들 막기가 곤란할 터.
아시겠소? 정화 그치를 가만히 내버려두면, 비단 조선뿐 아니라 우리 천조 대명 또한 잘못된 길로 향하게 될 것이오!”
황희는 공손히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야,
‘이 천한 고자가 무슨 망발을 하는가! 대명의 국운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영달을 위해 음험한 짓을 꾸미는구나!’
하였지만.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정화가 천방국 너머 불랑국(프랑크)에서 들여왔다는 불사의 비방. 그 덕에 정화의 명성은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한없이 올라갔고, 고작 배 타고 멀리 나간 것만으로 황상의 총애를 거듭 두텁게 받게 되었다는 것은 사대부뿐 아니라 같은 환관들 사이에서도 질투를 사기 족했으니까.
서얼로 태어나, 선죽교에 피바람 흩뿌리던 시국을 거치며 오늘에 이른 황희였다. 생각이 그에 미치자, 황희의 등뼈를 타고 소름이 돋쳐왔다.
‘황엄 이자가 조선 사람인 내게, 궁중의 기무機務를 가볍게 털어놓았다... 함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터. 이미 정화를 쳐내기로 다른 사람들과 작당하여, 제 파벌을 꾸려놓은 게로구나!’
여진 야인들의 인삼 교역에 한 발 걸치며 적잖은 이익을 취하였을 요동진수태감 왕언.
아니, 고작 그 정도로는 충분치 않다.
“듣기로, 세인世人들 또한 종종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더군요.”
조심스레 떠본즉, 곧장 걱정하던 답이 나온다.
“참으로 그렇소! 문장에 밝은 이들이든, 경의經義에 통달한 이들이든, 다 같이 한탄하기를, 해외의 오랑캐가 중원의 법도를 어지럽히고, 바닷가의 장사치가 중원의 농민을 업신여기는 것은 온당치 않으니 반드시 다스려야 한다 하고 있지.”
단순히 정화를 질투하는 이들인지, 아니면 정화의 하서양 뒤에 있는 깊은 뜻을 간파한 이들인지, 둘 다인지, 어느 쪽도 확실치는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미 지난 몇 달 사이, 엄연히 다른 나라 사람인 자신에게까지 이런 얘기를 할 만큼 황엄이 물밑에서 세력을 모았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조선은 이미 여기에 연루되어 있었다. 황희의 뜻도, 성상의 뜻도 중요치 않았다. 이미 조선이 무언가를 해보기도 전, 이미 그 땅에서 인삼이 나온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 인해 조선은 이 사태에 끌려들어가게 되었다.
“저희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바다 밖의 일을 어찌 장담하겠소? 올해가 될지, 내년이 될지, 아니면 오 년 뒤가 될지는 모르지만, 아마 정화는 언젠가 돌아올 것이오. 그리고 그들이 언제 오든, 조선의 사신 누군가는 항상 북경에 머물고 있겠지.
그리고 그 뒤에는 반드시 입조하는 오랑캐가 따를 것이오. 밝고 인자하신 황상께서는 그 오랑캐가 아무리 무례하고 무엄하다 한들 너그럽게 받아들이시겠지.
황상 폐하께서 해외海外의 만이蠻夷들에게는 유독 인덕을 베푸시니, 정화와 같은 모리배로 말미암아 이것이 폐단으로 굳어지려 하고 있소. 허나 천조의 제일가는 번국인 조선은 고려 시절부터 이미 예의를 알았는데, 어찌 무례한 오랑캐와 같다 하겠소?”
정화가 먼바다로 나간 이래 이름조차 생소한 먼 나라의 사신들이 입조하곤 한다는 것도, 그리고 그들이 간혹 무례함으로 인해 물의를 빚기도 한다는 것도 모두 황희가 들어 아는 바였다.
“조선은 지금껏 해온 대로 사대事大의 예를 다하기만 하면 되오. 우리는 그 모범으로써 해외의 오랑캐를 다스리는 법도 세울 것을 황상께 주청할 것이니.”
황희는 마음속으로, 부디 정화가 빈손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하였다.
황엄이 어떤 음모를 꾸미든, 거기에 휘말릴 조선에게 좋은 일은 아닐 테니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바로 그 무렵 서왕모, 그러니까 시그리드 리프트라사는 술루 술탄국을 거쳐 북경으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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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는 『명통감明通鑑』에 실제로 전하는 주원장의 발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당장 주원장 본인도 통치 후기로 갈수록 황제 전제권력 확보를 위해 환관들에게 조금씩 의지하는 경향을 보였고, 이는 영락제 시기를 거치면서 본격화됩니다. 환관의 전횡이 움츠러드는 것은, 환관보다도 한 술 더 뜨는 간신 엄숭이 나타난 가정제 시기, 그리고 전횡을 하려고 해도 휘두를 황제권력 자체가 없었던 만력제 시기 정도가 전부였지요.
2. 왕언, 황엄, 후현, 이달은 모두 실존인물입니다. 특히 이중 후현은 『명사』에서 평하기를 그 공이 정화에 버금간다고 할 정도였지요. (물론 『명사』가 청대에 편찬되었음을 고려하면, 청을 통치하던 불교도 만주족에게 티베트가 특히 중요하였기에 그런 평가가 덧붙여졌을 가능성도 있겠지만요.)
그러나 영락 연간에 활약한 이들 환관들은 대부분 후대에 영향을 주기는커녕 그 행적조차 제대로 전하지 않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흥미 위주긴 해도 정화의 하서양이 민간에서 그럭저럭 기억되었던 것과는 대비되는 부분이지요.
이중 황엄이 정말로 고려 출신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고려/조선 출신 환관들을 의도적으로 사신으로 보내던 명나라 전기의 관행에 비추어볼 때 실제로 고려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가 태종 이방원으로 하여금 자신이 제주도에서 가져온 불상에게 절을 하도록 시켰다는 이야기는 1406년의 일로, 『국조보감』 같은 조선 쪽 기록에 전합니다.
이처럼 축재와 ‘갑질’로 악명을 떨쳤던 황엄은, 분명하지 않은 이유로 영락제 사후 실각하여, 자신은 부관참시를 당하고 남은 가족들은 노비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시기상으로 보았을 때, 영락제 사후 한왕 주고후가 반란을 일으킨 것에 얽혀 화를 입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3. 이런 방식으로 증류하여 해수를 담수화하는 방법은, 대항해시대는 물론이고 지금도 썩 효율이 좋지는 않습니다. 중간기착지에서 식수를 채우고, 비가 내릴 때마다 빗물을 받아서 도중에 추가적으로 식수를 보충하는 방식으로도 대항해시대 범선들은 충분히 식수 수요를 감당할 수 있었지요. 그렇지만 작중 시그리드가 말한 대로, 비상용 식수를 마련하여 평소에 싣고 다니는 물의 양을 줄이는 정도로는 쓸 수 있을 것입니다.
4. 영락제는 비록 해상무역에 큰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정화의 하서양을 통해 조공무역이 부흥한 것 자체는 긍정적으로 보았던 듯합니다. 작중에서 언급된 류큐 사절의 비리 및 외교적 결례는, 실제로 1404년(영락 2년), 1411년(영락 9년) 등등 몇 번이나 벌어진 바 있는데, 모두 영락제 본인의 명에 따라 무죄로 처리한 바 있지요.
5. 이전에 짤막하게 카메오로 언급된 황희가 본격적으로 등장했습니다. 1418년, 태종 이방원이 양녕대군을 폐세자하고 충녕대군을 새로 세자로 세우는 데 반대했다가 세종 즉위 후 탄핵당해 남원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는데, 원 역사에서는 1422년에야 해배되어 복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