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바이킹-104화 (104/116)

압박 아래서 (2)

24. 압박 아래서 Under Pressure (2)

조선왕 도는 용상에 앉자마자, 그간 세자 책봉이며 즉위며 하는 일로 인해 미처 챙기지 못했던 일, 즉 북경에서 사신들이 가져온 ‘서왕모의 비방’을 실제로 증험하는 일에 착수했다.

마침내 주정酒精으로써 상처가 곪는 것을 막을 수 있음을 확인하였고, 나아가 그렇게 얻은 주정을 급히 사람에게 먹이면 잠시나마 아픔을 잊게 하는 효험이 있음을 알았다.

또한 모든 역병에 공히 적용되는 이치는 아니지만, 두창과 같은 몇몇 역질을 그 병을 막 앓은 사람의 두즙痘汁으로써 미리 막아낼 수 있음을 또한 확인하였으니, 도는 베네치아와 레반트, 아덴과 캘커타를 거치면서 원형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된 말비욤이라는 이름 대신 서씨신두법西氏神痘法이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¹.

서씨신두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두즙痘汁을 알맞게 계량하는 일이니, 양이 과하면 사람을 죽이는 독이 되고, 부족하면 효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해낸 사람이 바로 공조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장영실이었다². 정교한 저울을 만들고, 딱 정해진 양의 딱지와 체액만 채취할 수 있도록 기타 기물을 만들었으며, 어명 받들어 이 모든 것을 상세한 기록으로 남기기까지 하였으니 호군 벼슬을 받음직하였다.

이처럼 동래 기생의 아들이 그 눈썰미와 손재주 덕에 면천이 되고 벼슬살이까지 하였으므로, 같은 노비들은 은근히 그를 우러러보고, 신두법의 효험을 굳이 보려 할 만큼 저들 목숨을 아끼는 잘난 사람들은 저들이 누구의 은덕을 보았는지도 모르고서 장영실을 질투하곤 했다.

따라서, 적당한 사람에게 묻는다면 장영실이 어디 사는지 알아내는 일은 딱히 어렵지 않았다. 번듯한 사람들이야 그런 천한 사람 거처를 알아 무엇하겠느냐 하겠지만, 모화관에서 허드렛일 하는 천인들은 반대로 장영실이 새로 옷을 해 입기만 해도 엄청난 일인 것처럼 떠들곤 했던 것이다.

시그리드는 이번 사행길 무역이 신대륙 인삼 탓에 완전히 죽을 쑨 탓에 죽상을 짓고 있던 역관 하나를 꼬드겨, 값비싼 능라비단을 대가로 - 물론 그 비단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까지 알려주지는 않았다 - 전속 역관으로 고용하였다. 거기까지가 어려웠지, 장영실의 집을 찾는 것은 의외로 쉬웠다.

“아이고, 누추한 분들께서 어찌 이리 귀한 곳에...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그게 아니라...”

갑자기 저의 집앞에 상국 환관과 합중국 여주女主 서씨가 나타나니, 당황한 장영실은 한동안 버벅거렸다.

하늘 같은 임금님과 그 하늘 위의 또 다른 하늘인 임금의 아버님. 그런 분들과 대작하던, 딱 보아도 귀해 보이는 외국 임금이라는 분이 저의 집 앞에 불현듯 나타나니, 평상심 유지하기란 참으로 난망하였다.

“저기, 그렇게 어렵게 대하지 않으셔도 괜찮은데요.”

“성은이 통촉하옵니다, 아니, 망극하옵니다.”

장영실도 사람인지라, 호군 벼슬을 얻게 된 이후로는 허리가 조금 빳빳해졌다. 그 전까지 저를 천출이라 멸시하던 양민들을 소소하게 괴롭히기도 하고, 저를 잘 대해준 사람을 찾아가 생색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방금 전까지 경복궁에서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던 서왕모 일행이 이렇게 눈앞에 나타나니, 어쩔 수 없이 권세 앞에 굽신대는 옛 버릇이 나오고야 말았다.

마냥 굽신대고 고개 조아리는 통에 정상적인 대화 자체가 안 될 지경.

“아무래도 ‘그걸’ 꺼내야 할 것 같은데.”

“그러게요.”

장영실이 지구 반대편 따뜻한환영에서 아직도 증기기관 개량에 매진하고 있을 테오도로스와 성품이 비슷할 경우에 대비하여 미리 준비해온 물건을 주섬주섬 꺼내는 시그리드였다.

따뜻한환영의 보헤미아-메시카 유리 공방이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하면서, 그린란드 회사의 어지간한 고참 선장들은 하나씩 들고 다니게 된 항해용 망원경이었다.

“마당에 계실 게 아니라, 얼른 여기 마루에라도 오르시면... 아니지, 그, 뭐냐, 용상? 의자? 그거라도 가져와야 하나? 대체 어떻게 대해드려야... 엥? 그게 뭡니까?”

장영실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차마 떠올릴 엄두조차 못 내는 생각이지만, 기이한 기물을 보게 되면 일단 만져보기를 원하고 나중에는 그 원리를 궁구하게 된다는 점에서 장영실과 그 임금은 비슷한 면이 있었다.

시그리드가 망원경을 꺼내 한 번 들여다보는 시늉을 하니, 마침내 장영실도 입 놀리기를 멈췄다.

“이야, 이건...”

시그리드가 잠깐 건네준 망원경을 들여다본 장영실은, 스베인이 도로 채간 망원경에서 두 눈을 떼지 못했다.

“몇 가지 질문에만 답해주시면, 이걸 실컷 구경하게 해 드릴게요.”

“뭐든 말씀하십시오.”

온 마음이 망원경에 쏠린 장영실은, 언제 그토록 황망하게 중언부언했냐는 듯 건조하고도 똑부러지게 답했다.

“혹시 이 나라 국왕께서 유별나게 좋아하시는 게 있나요? 그러니까, 다른 고관들이나 상왕 전하 말고 딱 국왕 전하께서만 특출나게 흥미를 가지고 계신 것 말예요.”

여느 궁인에게 묻는다면, ‘육선肉饍(고기반찬)’이라 할 것이요, 상왕이나 다른 사대부에게 묻는다면 서적이라 하겠지만, 그러한 것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지간한 선비라면 다 즐기는 것이었다. (이는 호학好學을 자부한 만세사표 공자가 수업료로 육포 열 조각을 받았다는 사실로부터 증험할 수 있는 진리였다³.)

“그, 흠... 소인이 임금님 모습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소인이 만드는 기물들에 어지간한 양반님네들은 별 감흥을 드러내지 않으시곤 합니다.”

저도 이제는 양반의 반열에 들건만, 망원경에 넋이 팔린 장영실은 평소 습관대로 답했다.

“하지만 정말로 신기한 기물이라든가, 모두에게 이롭게 쓰일 법한 물건이라면 사람들도 구경을 오지 않을까요?”

조선 국왕의 의도가 시그리드로 하여금 자신과 독대할 만한 명분을 만들게 하는 데 있다면, 구경하는 사람이 적거나 아예 없어야만 했다.

“그건 그렇습죠... 당장 소인이 어명 받들어 신두법에 필요한 기물을 만들 때도, 양반댁 들락거리는 의원이니 뭐니 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도와주기도 하고 참견도 하곤 했으니까요.”

“그러니까, 정말로 국왕 전하 한 분 빼고 다른 사람들은 구경 올 엄두도 못 낼 그런 게 있을지를 여쭤보는 거예요.”

공조에서 허드렛일 하던 시절까지 돌아가 잠시 옛 생각에 빠졌던 장영실은, 곧 뭔가를 떠올렸다.

“어디 보자, 농기구 같은 것도, 당상관쯤 되면 다들 고향에 농장 한둘씩은 꾸려두고 계시니까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을 테고...

아! 천문이라 하던가, 그, 하늘의 별을 볼 때 쓰는 그런 기구들은 확실히 양반님네 관심이 적긴 합니다. 주상 전하 한 분을 제하면, 고작해야 소인네 옛 상관이시던 불곡佛谷 영감님(이천)이나, 지금 좌랑 벼슬을 하고 있는 백저伯雎 도련님(정인지)쯤이나 찾아와서 이것저것 물어보시고 구경을 하실 뿐이지요.”

“천문학이라고요?”

시그리드가 언뜻 생각해도 그럴듯한 발상이었다.

당장 4원소설과 우주의 원리에 관해 몇 시간, 아니, 며칠에 걸쳐 떠들 수 있는 - 그리고 종종 그렇게 하기도 하는 - 플레톤도, 막상 테오도로스가 증기기관 설계를 언급하면 ‘또 저만 아는 소리 한다’ 하면서 슬슬 자리를 피하거나 화제를 돌리곤 했다.

플레톤만큼 노골적이지는 않았지만, 후스도, 그리고 담쟁이 대학의 학자들도 자연철학이라면 모를까 공학자들의 영역인 기술에 있어서는 별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그런 철학자들 혹은 철학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다스리는 이 나라에서도 비슷할 것이다.

“잠깐, 그러면 더 멀리 갈 것도 없이 이 망원경을 고대로 바치면 되지 않겠느냐? 망원경으로도 별이나 달은 볼 수 있으니까.”

가만 듣던 스베인이 끼어들자, 정화가 딴지를 걸었다.

“하지만 그 망원경으로는 다른 것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궁금해서라도 찾아오는 이들이 꽤 많을 것입니다.”

스베인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고, 모화관에서 여독을 풀고 있을 다른 원주민 사절들도 기나긴 항해 중 최소 한두 번식은 망원경을 들여다 보았더랬다. 심지어 저 망원경 탓에 투슈판에서 고배를 마셨던 정화조차 눈치껏 요청하여 몇 번 구경을 한 바 있었다.

“그러면 이 망원경에 들어간 렌즈를 빼내서, 딱 천체관측에만 쓸모가 있는 물건으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정화와 역관을 통해 시그리드의 말을 전해들은 장영실은, 익숙한 불길함을 느끼면서도 그만 묻고야 말았다.

“어떻게 그런 물건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허나 천만다행히도, 시그리드는 ‘그건 네가 해야지’라고 마냥 떠넘기기만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제부터 같이 고민해 봐야지요? 일이 잘 풀리면 꼭 선생님 이름도 국왕 전하께 말씀드릴게요.”

여전히 시그리드가 약속한 망원경 구경에 정신이 팔려 있던 장영실은, 자신의 이름과 재주가 임금님 앞에 자주 거론되는 것이 썩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점을 미처 따지지 못하였다.

그렇게 스베인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로, 정화는 통역관으로 만들어 놓고, 망원경으로 만들 수 있는 여러 가지 기물을 함께 떠올리던 중, 마침내 시그리드는 검은 책 한쪽에 적힌 단어를 떠올렸다.

“육분의sextant!⁴”

“네?”

“이 망원경이랑 항해할 때 쓰는 직각기cross-staff를 합쳐서 새로운 관측 기구를 만드는 거예요!”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던 장영실도, 시그리드가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다가 통역에 한계를 느끼고서 직접 종이에 연필로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하니 금방 논의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어디 보자... 소인은 천문기구는 만들어도 정작 천문은 잘 모릅니다만... 그러니까 이걸로 별을 보면서, 그 별이 얼마나 높이 떠 있는지를 헤아릴 수 있는 기구를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네, 맞아요. 그러니까...”

한 번 개념을 익힌 장영실은, 금방 저의 머릿속에서 시그리드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궁리에 빠진 탓에, 송구하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시그리드 손에서 연필을 채간 장영실은, 금방 뭔가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북신北辰(북극성)의 고도? 그런 것은 저 서운관(관상감의 옛 이름)의 말직들이나 살필 일 아닌가?”

“북신은 하늘에 붙박이로 있는 별인데, 애초에 그 고도를 따져 무엇할까.”

“완물상지玩物喪志라 하였네. 지금 우리가 그런 것을 논할 때인가? 당장 저 황희를 어떻게 벌줄지, 그것이야말로 종사와도 얽힌 큰일일진대...”

왕후 서씨가 육분의라는 물건을 만들어 주상께 바치고자 한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조선국 고관대작들은 하나같이 이러한 반응을 보였다.

그나마 천문에 조예가 있는 이들도, 고작해야 형혹(화성)이나 태백(샛별)이 이십팔수 중 어떤 방위에 나타나는지, 목성이 어떠한 별자리를 침범하는지 따위를 신경쓸 뿐.

역법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별의 운행을 정확히 측정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마련이었으나, 그런 이들은 대개 중신의 반열에 들지 못하였으므로 서씨가 만들었다는 기기를 구경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참으로 훌륭한 창안이요, 만고에 귀한 재지로소이다. 어찌 하루이틀 사이에 이러한 기물을 만들었다는 말이오?”

시그리드를 시험한 것은 시험한 것이요, 그 결과물이 신기한 것은 별개의 일이다.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그날 밤 시그리드에게 입궐을 허락한 도는, 연신 육분의를 들여다보며 찬탄하였다.

물론 그 찬사의 절반가량은, 저의 의도를 간파하고 이런 독대 아닌 독대 자리를 만들어낸 시그리드의 재치를 향한 것이었다.

“거인의 어깨에 서 있었을 뿐인 걸요.”

그러나 그 재치와 솜씨의 절반 이상은 장영실과 정화, 스베인 등등의 것임을 잘 아는 시그리드는 그만 무안할 뿐. 남의 재주 덕임을 밝히려다가, 그만 아직 태어나지 않은 또 다른 천재의 말을 도용하고야 마는 시그리드였다.

“이게 다 호군? 그런 벼슬을 하고 있는 장영실 선생님 덕이랍니다.”

“장 호군이 또 한 번 놀라운 솜씨를 보였구려. 그의 재주는 실로 노반魯班에 비하여도 손색이 없으니 아국의 보배와 같소.

헌데 이것으로 북신을 바라본다니, 이는 무엇을 위함인가? 남경과 북경, 그리고 우리 한양의 밤하늘이 같지 않다는 것은 일찍이 들어 알고 있다. 혹시 그 차이를 이것으로 측정하여, 땅의 거리를 알 수 있는 것인가?”

“앗, 어떻게 아셨나요?”

천문 문답은 그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다. 시그리드는 자신을 가르치던 욘의 기분을 이해하게 되었고, 도는 왕후 서씨가 참으로 떠벌이 기질이 있음을 비로소 알았다.

“... 그대의 말대로 위도에 따라 북신의 높이가 달라지려면, 이 땅은 반드시 둥글어야 할 터. 허나 이는 천원지방의 이치에 어긋나니 이 어찌 된 것이오?”

“어, 원래 지구는 둥근데요... 여기 정화 씨가 그 산증인이랍니다.”

문답을 주고받으면서도, 도는 자리에 함께하던 몇 안 되는 관리들에게 눈짓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개중 가장 선임인 이천이, 정인지 이하 젊은 관료들 두셋과 함께 문지방 너머로 조용히 사라졌다.

이천은 입이 무겁고, 정인지는 도가 막 세자가 되었을 적 사제의 연을 맺었던 권우의 제자이니 따지고 보면 도의 동문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마저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고, 이천은 비록 무관 출신이지만 그러한 속사정을 눈치껏 알 만큼 궁궐을 오래 드나든 사람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이어지는 문답 가운데서 스르르 눈이 감기던 사관, 조선왕이 여느 역관보다도 더 유창하게 관화를 한다는 사실에 아직도 경악하고 있는 정화, 그리고 스베인뿐이었다⁵.

이번에는 시그리드가 눈짓할 차례였다.

결국 그날 사초의 마지막 기록은 이렇게 끝났다.

‘녹지국綠地國(그린란드) 정사 수왜인이 합중국 왕후 서씨와 함께 상을 뵈었는데, 그가 사관을 번쩍 들어 밖으로 끌고 나가니 차마 뒤이은 일은 적지 못하였다. 아아! 양이의 무도함이 이와 같으니 참으로 통탄스러운 일이로다!’

선왕 이방원이 아직 세자였던 시절, 사행을 떠나 연왕이던 주체를 독대한 일이 있었으나, 외국의 군주가 친히 찾아와 경복궁 한편에서 조선 국왕과 독대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마 전조 고려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왕건이 견훤을 맞이한 이래 처음 아닐까.

허나 도는 그런 잡상을 오래 붙들지 않았다.

“제가 황 경을 통해서 전한 제안 때문에 이런 자리를 만들고자 하셨던 것이겠지요?”

시그리드가 먼저 물었다.

“그대가 짐작한 대로요. 그대의 나라에서 사람이 찾아온 일은 그 어떤 전적典籍에도 없는 것이요, 또한 외국의 사신이 찾아와 단순히 이익을 얻고자 특산물을 교역한 일은 있었으나 함께 장구한 이익을 나눌 방도를 논한 것은 이번이 또한 처음이오.

아직 나라의 제도가 제대로 세워지지 못하여, 많은 대신들은 자칫 이것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까닭이 되지 않을까 근심할 뿐이라오.”

아무리 독대하고 있다지만, 한 나라의 군주로서 다른 나라 사람에게 모든 속마음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일.

그러나 시그리드는 이도가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을 바탕으로 충분히 그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정화의 예상대로, 국왕에게는 아직 실권이 없고, 선왕 이방원과 그의 세력이라 할 수 있는 공신들이 조정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

그리고 그들 대신들은 이제 막 세워진 나라가 상인과 장인들의 것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어찌 그들을 마냥 탓할 수 있겠소? 그들 또한 한 사람의 선비요 사람일진대, 나아가 뜻을 펼치고자 하는 마음이 있고 또 그 마음 이면의 욕심이 있기 마련.”

고려의 권문세족들이 횡포를 부리는 것을 참다 못해 들고 일어난 사대부들. 그들은 이 땅에서 농사짓는 이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기를, 그들이 저들의 땅을 가지고 대대로 편안히 생업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도는 알고 있었다. 그 ‘농사짓는 이들’이란 실제로 농사짓는 백성과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노비를 부려 농장을 일구는 사대부들이 농자천하지대본을 말하는 까닭은 꼭 농사꾼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요임금이 말하였듯 도심道心은 미약할 따름이요 인심人心은 위태로울 뿐이라. 사대부들은 그저 세상을 올바르게 하고자 할 뿐이요, 그 올바름이 저의 이익과 맞기에 외치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알려 하지도 않을 뿐.

그것이 권문세족이 전횡하던 전조 말의 참담한 때보다는 훨씬 나음을 알기에, 도 또한 차마 대신들을 내칠 궁리는 하지 못하였다.

“나라의 크기나 인구로는 비할 수 없지만... 우리 신대륙 연합과도 조금은 비슷한 고민이네요.”

더 나은 삶과 더 나은 세상을 향하는 사람의 욕심. 그것을 어떻게 틀어막고 이끌지,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어디까지 올바르다 할 수 있을지.

좋은희망을 떠날 적부터 시그리드를 따라다녔던 고민은, 이곳 조선의 실권 없는 젊은 국왕의 마음 속에도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우리가 만나게 되었으니, 반드시 완고한 마음에 틈을 낼 길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오.”

그 길이란 무엇인가?

대신들로 하여금 그 생각을 조금은 고치게끔 만들고, 새 나라 조선이 상공에 힘입어 백성의 이익을 더욱 두텁게 할 수 있음을 믿게끔 만들 길.

지금까지 조선이 그래왔던 것처럼, 그저 임금의 손에 칼이 들려 있기에, 선죽교의 핏빛 대나무가 되지 않기 위하여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요, 이치로 따지고 도리를 논하였을 때 올바르다는 것을 스스로 알기에 따르게끔 만들 길.

그러나 그 길은 하루아침에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결국 시그리드는 다시 한 번 새로운 창안을 하기로 도와 합의를 하고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도도, 시그리드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흐름은 시작되고 있었다.

이때를 즈음하여, 머나먼 함길도에서 상경하여 마포의 보잘것없는 주막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는 김득경金得卿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 김득경은 천민은 아니었으나, 분명 관아의 기록에는 노비로 되어 있었는데, 이는 바로 집안의 원수 김도련金道練 때문이었다.

김도련의 집안은 그 아비의 대부터 못된 짓으로 크게 치부하였는데, 바로 양민을 억지로 노비로 삼은 다음, 이 새로운 노비들과 그들에게서 빼앗은 재산 일부를 권세가에게 바쳐 법의 엉성한 그물에서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김도련의 아비는 고려의 권신 임견미에게 청탁하여 가짜 노비 수백 구口를 얻었는데, 고려가 망하면서 이들 모두를 잃었다. 그러나 아비가 적반하장 격으로 얻은 화병으로 죽은 뒤에도 김도련은 잘못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이 가짜 노비들과 그 후손까지 모두 옭아매어 노비로 만들고자 하였으니, 김득경의 집안 또한 그렇게 멀쩡한 양민이었다가 갑자기 노비로 떨어지고야 말았다.

문제는 김도련이 그 아비보다 교묘하여, 대신 한 사람에게 줄을 대는 대신 저의 ‘노비’들과 그 재산을 골고루 뇌물로 바쳤다는 점이었다. 선왕을 도와 임금으로 만든 공신들 중 김도련의 가짜 노비들이나 그 재산을 받지 않은 자가 드물었다.

집안에 숨겨둔 재산에 힘입어 도망쳐 나온 김득경은 그 이후로 한양에 머물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허나 상왕으로 물러난 이방원은 도통 세상 떠날 기미가 아니 보이고, 그를 도운 덕에 공신이 된 대신들은 새 임금의 조정에서도 위세가 등등하니,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매일같이 조바심에 버둥댈 뿐.

그러던 차, 도성 천민들이 모두 우러러보는 사내 장영실 이야기가 김득경 귀에 들어왔다.

호군이라는 벼슬이 얼마나 높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다른 나라 임금이라는 서씨가 친히 찾아가 뭔가 중요한 궁리를 함께 했다는 소문이 파다하였으니, 필시 그 권세가 엄청날 것이었다.

그만하면, 상왕의 위세를 등에 업은 김도련의 뒷배들도 충분히 이겨내고 원통함을 풀어줄 수 있지 않겠는가? 김득경은 그러므로 곧장 장영실을 찾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속으로야, 천한 얼자인 장영실보다 진짜 양민인 자신이 훨씬 낫다고 여겼지만, 어쨌든 그 앞에서는 억울하게 노비로 떨어진 저와 다른 이웃들의 사정을 평생 노비 노릇한 사람처럼 한풀이하듯 늘어놓을 것이었다.

매일같이 외우고 있는 집안의 원수들, 그 이름을 하나하나 열거하면 천출인 장영실이 두려워하며 발을 뺄 수도 있으니, 반드시 장영실의 도움을 받아 이 일이 사헌부까지 들어간 뒤에야 원수들의 이름을 밝힐 것이었다.

지금 정승 노릇을 하고 있는 정탁과 조연. 곡산부원군 연사종, 판서 벼슬을 하고 있다는 조말생.

자신이 지금 어떤 파란을 이 나라에 일으키려 하는지는 조금도 알지 못한 채, 정탁과 조연 같은 인물들이 바로 상왕의 수족과 같은 이들이요, 영상으로 있는 유정현과 더불어 양녕대군의 폐세자와 충녕대군의 건저를 건의하거나 동참하였음을 짐작도 못한 채,

김득경은 장영실을 찾아 한양의 거리를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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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두법은 실제로 청대에 인두법을 부르던 명칭 중 하나입니다. 명대부터 중국에서 발달한 인두법은 청대에 이르러 최대한 정확하게 투여량을 조절하여 인두법의 단점인 높은 치명률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발달했는데, 18세기 말~19세기 초에는 조선에서도 접종이 시행되기에 이릅니다. 이는 정약용의 『종두설種痘說』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지요. 작중에서 큰 저항 없이 백신 접종이 퍼진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라 하겠습니다.

2. 장영실의 초기 생애에 대한 기록은 지극히 부실합니다. 『세종실록』의 15년 9월 16일자 기사에서, 세종대왕 본인이 직접 장영실의 출신을 언급한 것을 바탕으로 그나마 추론할 수 있을 뿐이지요.

이에 따르면, 장영실의 아버지는 원나라 말 소주·항주 출신이었고, 어머니는 동래부 기생이었다고 합니다. ‘소주 아니면 항주’라는 애매한 언급과 장영실의 특이한 성씨(한국에 흔한 張씨가 아니라, 중국에는 흔하지만 - 예: 蔣介石- 한국에서는 희성인 蔣씨입니다.)를 감안하면, 실제로 장영실의 아버지는 원나라 말 해상교역에 종사하던 상인 혹은 뱃사람으로, 그 출신조차 확실히 알 수 없을 만큼 장영실의 어머니와 짧은 만남을 가졌을 뿐이었다고 추측해볼 수 있겠습니다.

또한 같은 기록에서 세종대왕은 장영실의 천한 출신에도 불구하고 ‘태종께서 보호하셨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이미 태종 연간에 장영실이 그 재주를 인정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 1442년 장영실이 파직당할 때, 고령을 이유로 장영실의 형을 면한다는 언급이 없는 것을 감안하면, 장영실은 세종대왕보다는 손윗사람이지만 황희나 조말생 같은 세종 초의 중신들보다는 손아랫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3. 공자는 속수束脩 이상의 예물을 가져온 사람이라면 누구든 제자로 받았다고 자부하곤 했습니다. 이는 『논어』에 보이는 구절이지요. 속수란 곧 마른고기 열 조각을 묶은 것을 말하는데, 실제로 선진시대에 통용되던 예물 중 가장 간소한 것에 해당하였습니다. 물론 공자의 뜻은 거창한 예물을 바치지 않더라도 배우기를 바라는 모두를 가르치겠다는 포부를 드러내는 데 있었을 것입니다.

4. 이전에 직각기에 대해 설명하며 잠시 곁가지로 언급되었던 육분의가 다시 등장했습니다. 그 모양이 60도 원호와 같기에, 원을 육등분하였다 하여 육분의라는 이름이 붙었지요. 직각기와 육분의는 관측자가 바라보는 별이 정확히 수평에서 몇 도를 이루는지를 측정하는 기기로, 비단 천문관측뿐 아니라 원양항해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기구였습니다. 육분의를 만드는 데 꼭 망원렌즈가 필요하지는 않지만, 경통에 렌즈를 쓰게 되면 정밀하게 북극성의 고도를 측정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그 성능을 비약적으로 높여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5. 세종대왕이 정말로 관화 회화가 가능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대에는 아직 교양으로 관화를 익힌 사대부도 남아 있었고, 실제로 1423년까지 관화로 치는 문과 시험(이문과)이 유지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세종은 초급 관료들의 ‘교양과목’ 중 하나로 실전 중국어, 즉 이문을 유지하려 하기도 했지요.

따라서 당대 기준으로도 유별나게 중국어를 포함해 다양한 언어 및 언어학을 깊게 파고들었던 세종대왕이 어느 정도의 관화 구사능력을 갖추고 있었을 개연성은 충분히 존재합니다. 이러한 재능과 꾸준한 관심은 결국 세종대왕 최대의 치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훈민정음 창제로 이어지게 되지요.

김도련 뇌물 사건은 조선이 개국 초의 유혈낭자한 정치문화를 넘어, 세종이 마침내 제대로 된 친정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뜻대로 조선을 바꿔나가기 시작한 계기였습니다.

이 김도련 사건을 처음으로 고발한 김득경은, 원 역사의 조선에서는 태종 사망 직후인 1422년에 처음으로 소를 제기합니다. 그리고 석연찮은 이유로 4년간 이 사건은 사헌부 안에 계류되어 있다가 1426년에 비로소 문제로 불거지게 되지요.

이를 계기로 세종은, 태종의 급사 이후에도 계속 정국을 주도하며 임금인 자신을 좌지우지하려 하던 태종의 친위세력을 모두 쳐내고, 오직 자신의 국정운영을 따를 수 있는 이들로 주변을 채우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태종의 구신들을 숙청하거나, 그들의 명예를 완전히 실추시키지는 않음으로써, 조선이 비로소 태조~태종 시기의 피로 피를 씻는 시대를 벗어났음을 주변에 알리게 되지요. (그리고 김도련 부자의 악행으로 노비가 된 이들은, 그 와중에 그냥 그대로 노비로 남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작중에서는 시그리드의 개입으로 인해 장영실이 훨씬 일찍 출세하면서 일이 엉뚱한 쪽으로 굴러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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