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박 아래서 (3)
24. 압박 아래서 Under Pressure (3)
장영실의 호군護軍 벼슬은 정4품이요, 또한 그가 어찌 그 호군 벼슬까지 제수받았는지는 도성 사람들이 주지하는 바였다. 번듯한 고관들이야, ‘그래본들 잡기雜技가 재주의 전부인 천출’이라며 백안시하곤 했지만, 어지간한 도성 백성은 물론이요 사헌부의 젊은 관리들에게도 호군 벼슬는 하늘까지는 아니어도 족히 구름쯤은 되는 높은 입지였다.
따라서 원래대로라면 조용히 묻혔을지도 모르는 김득경의 고발은, 장영실이 멋모르고 그의 뒷배 되어주기를 자처하면서 곧장 사헌부로 들어가기에 이르렀다.
“나랏님 총애를 받으시는 사직 동량 같으신 호군 나리 덕택에 소인이 억울함을 풀게 되었습니다요.”
고변을 마치고 돌아나서는 길. 김득경이 아첨하니, 그 속마음은 모르고서 그저 안쓰러운 마음으로 김득경과 함께 사헌부를 다녀온 장영실은 말했다.
“자네의 말대로라면 그 김도련이라는 자는 천하의 악한인데, 지금껏 관이 이를 알지 못하였다니 필시 도성의 고관이든 군현의 수령방백이든 그 뒤를 봐주는 자가 있을 듯허이. 허나 사헌부까지 소장이 전해졌으니, 반드시 진상이 밝혀질 것일세.”
“예, 그렇습니다. 덕분에 소인네 흉금에 품고 있던 원한이 모두 풀릴 단초를 얻었습죠.”
아마 지금쯤 사헌부는 발칵 뒤집혔으리라. 복수불반분復水不返盆이니 이제 장영실은 김득경과 한 배를 탄 사이가 되었다.
이 일에 연루된 쟁쟁한 고관대작들이 결코 쉬이 저들의 죄를 인정하진 않겠지만, 김득경이 뒷배로 삼은 장영실은 임금의 총애를 받을뿐더러, 권세는 측천무후와 같고 미모는 서시 뺨친다는 외국 여주女主를 독대하기까지 하였다지 않던가.
관복 차림으로 황망히 사헌부로 달려가는 이들과, 더더욱 황망한 표정으로 일에 연루된 고관들의 집으로 달려가는 이들. 그들이 어지럽게 저자를 교차하고 있었으나, 인맥이 두텁지 못하였던 장영실은 이를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못하였다.
육분의를 진상하며 얻은 몇 시간의 독대 기회.
그러나 그 시간동안 도저히 실권 없는 왕을 움직여 조선을 대명무역 전초기지로 삼을 방법을 마련할 수 없었으므로, 논의는 ‘다음 이 시간에’라는 아쉬운 결론만 내리고 파하고야 말았다.
하지만 처음 길 뚫기가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쉬웠다. 조선 국왕 이도는 육분의보다도 더 대신들의 관심을 받지 못할 기물 몇 가지를 떠올리고, 시그리드는 그중 자신이 큰 문제 없이 선물할 수 있는 것을 고르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머-스-킷? 허, 이 이름을 어찌 진서로 옮겨야 할지 모르겠구려.”
“왜 그런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 설명하자면 복잡한데요...”
남아도는 머스킷 한 정을 선물로 들고 찾아와 군기시軍器寺에서 이도를 만난 시그리드가 머리를 긁적였다.
‘총통’하면 자다가도 깬다는 소문이 있는 군기시 터줏대감 최해산崔海山은, 지금 강화도에서 추왜별맹선追倭別猛船이라는 새 전선을 만드는 일에 바빠 도성에 없었다. 최윤덕이나 황보인 같은 이들도 때마침 외직을 맡아 도성에 없었다.
그 외에도 조말생처럼 무비武備에 관심 있는 대신들 몇몇이 있었는데, 금일 아침에 상참常參할 때만 해도 서씨가 총통 바친 일에 눈을 번뜩이던 이들이 그사이 무슨 일이 생겼는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자리에는 시그리드와 정화, 스베인, 그리고 조선 국왕과 왕비뿐이었다.
왕비 심씨를 대동하고 나온 것은, 혹 사랑하는 아내 심씨²가 저와 시그리드 사이를 오해할까 걱정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였고, 사관이나 간관의 입을 봉하기 위함이기도 하였다. (실제로 간관들이 대체 어디서부터 걸고 넘어져야 할지 알지 못해, 두서없는 상언을 막 올리다가 임금에게 차례로 논파당하고, 사관마저 어어 하는 사이에 간관과 함께 물러나게 되었으니 효험이 있는 계책이었다.)
“언뜻 보아도 참으로 유용한 병기요. 물소뿔에 비하면 유황과 초석은 오히려 구하기 쉽고, 또한 활에 비하여 배우고 익히기 용이하니, 이러한 병기가 왜구나 여진 야인이 아닌 아국에 먼저 전해진 것 또한 실로 고마운 일이로소이다.”
비록 지금은 현존하는 전력만으로도 족히 국경을 지킬 수 있어 그 쓸모가 적겠지만, 언제고 조종 祖宗께서 지키시던 옛 강역을 되찾을 때 진가를 발휘하게 되리라³.
그러나 지금은 그것을 논의할 때가 아니었으니, 이 무기를 어떻게 부를 것이며 또 어떻게 양산할지 고민하는 일은 뒤로 미뤄야 할 것이었다.
“그나저나, 혹시 지난번에 나누었던 얘기에서 더 떠올리신 게 있으신가요?”
“안타깝게도, 가야 할 곳의 방위는 알아냈으나 막상 그리로 향하는 길은 보이지 않는구려.”
지난번 육분의를 빌미삼아 나눈 독대에서, 이도는 시그리드의 인삼 담합 구상의 허점 몇 가지를 짚으면서, 동시에 자신이 떠올린 개선안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처음에는 물론 어설픈 이야기도 많이 있었지만, 시그리드가 검은 책에 적힌 미래의 경제학 이론 몇 토막을 거론하니, 마치 해면sponge이 물 빨아들이듯 그것을 흡수하더니만,
‘무릇 물건의 값어치란, 시중에 많이 풀릴수록 헐해지기 마련이요 적게 풀릴수록 귀해진다는 그대의 말은 참으로 이치에 닿소. 허나 인삼의 값을 그토록 좌지우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대국에 인삼이 충분히 통용되어 누구든 쉽게 인삼을 구할 수 있어야 할 것이오. 그래야만 인삼을 바라는 이들이 끊이지 않을 터이니.
따라서, 인삼만으로 교역에 힘쓴다면 적어도 몇 년간은 서로 손해를 보면서 대국에 인삼을 넘겨야 할 것이오.’
언뜻 OPEC을 생각하고 담합 구상을 떠올린 시그리드가 놓쳤던 점, 즉 1950년대의 세계는 석유 없이 살 수 없었지만 지금의 중국은 아직 인삼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점을 짚기도 하고,
‘하지만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방도가 없지는 않을 듯하오. 아국 조선의 물산 중에는, 인삼이나 초피 외에도 사행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강남으로 넘긴다면 충분히 시장에서도 팔릴 수 있는 특산품이 없지 않소이다.
또한 바다 건너의 왜인들도 대국이 해금령을 내린 뒤로는 교역이 끊기다시피 하여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하오. 그대의 말대로 ‘제멋대로 하는 교역(자유무역)’이 모든 백성에게 이롭다면, 그대가 황제 폐하에게 청하여 받은 특권을 아국 조선이 함께 누린다 한들 부끄러움은 없을 것 같구려.’
인삼 담합을 구축하기 위한 초기 비용을, 신대륙 연합의 무역선을 통해 해금령을 우회함으로써 자체조달한다는 방안을 떠올리기도 했던 것이다.
아마 시그리드와 플레톤과 후스를 한 사람으로 합한다면 저렇게 될 수도 있으리라. 그 덕에 시그리드는 왜 황희를 비롯한 조선 관리들이 국왕을 은연중 어렵게 여겼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토록 총명한 이도마저도, 끝내 한 가지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였다.
“여전히 상공업 하면 질색하는 대신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이냐, 그 말씀이시로군요.”
“저들에게는 저들의 욕심이 있소. 그 욕심의 일부는 천박하나 일부는 의리에 닿아, 하나를 떼어놓고 다른 하나를 취할 수만은 없으니, 어려운 일이외다.”
오늘도 벌떼같이 황희를 처벌하라는 상소가 도 앞에 쌓이고 있었다. 오늘의 독대를 마치고 돌아간다면, 마치 목판으로 찍어낸 듯한 그 상소를 가득 마주해야 하리라.
황희를 벌하자고 외치는 것은, 단순히 황희 한 사람을 처벌하라는 뜻만이 아니었다. 이 기회에 확실하게 조선이 앞으로 농사짓는 이들의 나라 - 보다 올바르게는, 농사꾼을 거느린 이들의 나라 - 로 서게끔 확언해 달라는 뜻이요, 부디 자신들이 그러한 나라의 신하로서 후대에 기억될 수 있도록 임금의 총명한 지재를 베풀어 달라는 뜻이었다.
이 판을 깨뜨리고 싶어도 깨뜨릴 힘이 없었다. 또 자신이 정녕 그것을 깨뜨려야만 하는지, 그 다음에 새로운 무언가를 바로 세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대와 말을 주고받을수록 새삼스레 느끼는 것이지만, 이 교역은 반드시 그대뿐 아니라 아 조선국에도 크나큰 이익이 될 것이오. 비록 권도權道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 이 말업으로써 백성들을 널리 이롭게 하고, 그 편의를 위할 수 있다면, 한 나라의 국주國主로써 이를 택하지 않음이 도리어 잘못일 것이외다.”
젊음의 치기 탓일까? 도도 어느새 시그리드가 말하는 광활한 세상과, 그 세상이 약속하는 이익의 이야기에 잔뜩 넘어가고야 말았다.
저들이 타고 온 거대한 배. 그것이 대양을 누비면서 옮길 온 천하의 귀한 물건들. 사랑하는 아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설탕부터, 때로 답답함을 느끼게 할지언정 그 아끼는 마음만은 진심 중에서도 진심인 아버지가 무병장수하는 데 도움이 될 약재.
백성들이 비로소 편리하게 저화楮貨를 쓸 수 있게끔 해줄 나라의 튼튼한 재정. 그리고 아직 시그리드도 두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다지만, 저들 사는 빈란디아의 남쪽 나라에 있다는 무한한 금은까지.
“허나 이 한 사람이 바라는 것이라 하여 다른 사람들의 바람을 함부로 짓밟을 수 없으니, 이토록 고민할 뿐이구려.”
지난번에 이어 오늘도 빙빙 돌 기미를 보이는 이야기. 문득 도는 궁금하여 시그리드에게 물었다.
“이전에 말하기를, 그대의 나라도 비슷하다고 하였소.”
“아, 그렇지요. 사람이라면 동쪽이든 서쪽이든 욕심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더구나 우리 신대륙 연합에는 유별나게 목소리 큰 사람들도 많고요.”
“한 번 들어보고 싶구려.”
어차피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면, 다른 이야기라도 하는 게 유익하리라.
어쩌면 그저, 학자로서의 이도가 바다 너머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였기 때문에 그런 청이 불쑥 튀어나왔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야기는 어느새 그 선거까지 닿고, 거기서 바다 건너온 이야기로 흘렀으며, 사신들 수십 명을 모아도 들을 수 없었을 황제의 이야기까지 거론되었다.
이번에 떠나면 다시는 볼 일이 없는 사이이기에, 그리고 나라 크기와 무관하게 수많은 이들을 이끄는 자리에 있다는 공통점 덕분에 비로소 터놓을 수 있는 흉금.
의외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과는 처지가 사뭇 다르면서도, 어떻게 하면 지금껏 없던 더 나은 나라를 만들까, 어찌하면 옛 세상에서 그랬듯 새 세상에서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사람의 욕심을 초석과 기둥으로 삼아 반듯한 집을 만들까, 그런 고민에 흠뻑 빠지려던 차.
멀찍이서 ‘전하!’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색이 되어 달려오는 이들은 승정원의 대언代言(후대의 승지)들이요, 그들이 체신도, 군왕 앞에서의 위엄도 따지지 못하고 이토록 황망히 달려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들고 온 소식이 중함을 알기 때문이라.
그렇게 조선 국왕 이도는, 바라지도 않던 보도寶刀를 손에 쥐게 되었다.
사헌부에서 입계한바, 이 김도련 사건에 얽힌 중신들은 다음과 같았다.
가장 죄상이 중한 병조판서 조말생은 김도련에게 양민 출신의 가짜 노비 24구를 받았고, 그 외에 받은 토지와 은병, 비단 따위를 합하면 값이 족히 780관貫에 달하였다. 아예 거기에 재미를 붙여, 제 아랫사람을 부려 김도련이 거짓 노비의 후손들을 붙잡고 그들의 송사를 가로막는 일을 돕기까지 하였으니, 그 덕에 다시 노비 18구를 더 얻었다.
또한 지금 좌의정으로 있는 이원, 우의정인 정탁, 곡산부원군 연사종, 찬성사 조연 등등도 모두 김도련에게 노비를 받았으며, 조말생으로부터도 다시 이런저런 뇌물을 받았다.
“그리고 그뿐이 아닙니다.
이원과 정탁이 갑자기 재물을 얻었는데, 어찌 영상인 유정현이 알지 못하였겠습니까? 영상인 유정현이 이러할진대, 지금 정승과 판서의 반열에 있는 자들 중 이 죄에 연루되지 않은 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죄를 알면서도 고하지 아니하였다면 이는 기군欺君이요, 죄가 되는 줄도 모르면서 스스로 재상의 재주가 있다 여겼다면 이는 망상罔上입니다.”
사헌부를 필두로 언관들이 일제히 상소를 올리고, 죄인으로 몰린 대신들은 함구할 뿐.
언뜻 보기에는 저들의 죄를 알고서 부끄럽게 여기는 듯하였으나, 실제로는 그것이 아님을 도는 잘 알고 있었다.
유정현, 이원, 정탁, 조말생 등등. 사건에 연루된 이들은 모두 아버지께서 대권을 잡는 데 공을 세운 중신들. 그리고 아버지의 분부를 받들어 도 자신이 세자가 될 수 있도록 조정에서 여론을 이끌었던 신료들.
애초에 그처럼 위세가 높았으니, 김도련이라는 그 비천한 사내도 저들을 찾아가 청탁한 것이리라.
반면 연루되지 않은 자들, 지금 목청 높여 뇌물 받은 대신들의 처벌을 외치는 자들은, 끝까지 도 자신을 세자로 세우는 데 반대했던 이들, 그리고 최근에 출사하여 상왕의 공신들로 조정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발견한 신진세력들이었다.
“전조 말에 전민변정도감을 두어, 세도가들이 양인을 노비로 삼아 우마의 절반도 안 되는 값에 거래하는 참혹한 세태를 바로잡고자 하였다. 그때 그대들의 선진先進들이 이 도감에 관여하여, 마침내 양민이 함부로 노비가 되는 폐단을 바로잡았다.
엄연히 하늘이 내린 백성天民에 속하는 노비가, 이로 말미암아 비로소 우마의 두세 곱절은 되는 값으로 거래되게 되었다. 그대들이 김도련에게 회뢰賄賂(뇌물)로 받은 노비들을 받았을 때도 그 덕에 이익을 크게 보았으리라.”
도가 냉담한 눈빛으로 도열한 신하들을 흩으니, 상왕께서 저들을 지켜주시리라 믿고 뉘우치는 시늉만 하는 자가 절반이요, 이번 일을 기화奇貨로 삼아 반드시 저 공신 늙은이들을 쳐내겠노라 다짐하는 자가 절반이라.
아니, 이는 어지러워진 마음이 눈을 가린 것이다. 어찌 자신의 이미 침침해지고 있는 눈이 사람의 마음속을 꿰뚫어볼 수 있겠는가.
“저들의 권세가 모두 아득한 조종의 성은에서 나온 것인데, 이를 모를 수 없는 자들이 감히 죄를 범하였으니 실로 천인공노할 일입니다. 바라옵건대 밝으신 처단으로써 도의를 드러내시옵소서.”
“신 등은 이러한 일이 있음을 짐작하였으나, 저들의 위세가 두렵고 또한 징계할 증거가 없어 차마 서경하지 못하였으니 역시 죄가 가볍지 않사옵니다. 이 죄를 덜고자 이토록 간언하오니, 바라옵건대 모두 국법으로써 다스리시옵소서.”
도는 어제 저녁, 시그리드와의 독대를 뜻하지 않게 일찍 마치고서 바로 수강궁으로 향하였다.
과연 아버지께서도 미리 들어 알고 계셨다.
‘주상 뜻대로 하십시오.’
대신들의 죄가 명백하니, 그들을 처벌하지 않는 것 또한 임금의 위엄에 어긋나는 일.
비록 이 일에 연루된 공신들은 모두 상왕의 수족과 같은 이들이었으나, 이도와 폐세자 이제의 아버지 이방원은 수족은 물론이요 혈육마저도 필요하면 내칠 수 있는 사내였다.
‘다만 한 번 뽑은 칼은 쉬이 자루에 넣을 수 없음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지금 도의 앞에 엎드리다시피 한 모든 신료들 또한, 마음속에 똑같은 생각을 품고 있으리라.
폐세자를 건의하고 충녕대군을 새 세자로 삼자고 역설하였던 이들을 쳐낸다면, 결국 이는 왕통의 문제로 비화할 수밖에 없고, 한 번 피를 흘리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결코 어렵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그것은 훗날의 일이었다.
지금 제게 쥐어진 칼을 휘둘러, 더 나은 앞날로 향하는 길을 가로막는 잡목을 베어낸다면, 언제고 칼을 휘두른 대가를 치르게 된다 한들 감수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 생각에 천착하기에는, 그리고 권력의 달콤함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그 상상에 취하기에는, 이미 도는 너무나 많은 것을 들어 알고 있었다.
시그리드는 도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였던 다른 군주들을 이야기했다.
앞길을 안다고 자신하여 한껏 칼을 휘두른 끝에, 이제는 그 칼이 자신의 손과 같이 되어버려 죽기 전까지 내려놓을 수 없게 된 사내. 머나먼 서쪽 혹은 동쪽에 있다는 에릭이 있었다.
또한 앞길을 찾다가 끝내 포기하고, 대신 그 누구도 다른 길을 찾지 못하도록, 자신이 멈춘 곳에서 함께 멈추게 만듦으로써 길찾기라는 행위 자체를 막으려 하였던, 보다 가까운 곳의 황제가 있었다.
그리고 또한 시그리드가 있었다.
앞날이라는 험난한 바다를 넘어가고자 하면서도, 동시에 자기 주변의 그 무엇도 차마 짓밟거나 버리지 못해, 항상 고민하면서 주변 모두를 아우르고자 어려운 고민만을 하는 여인.
셋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결국 도의 성정과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길, 가장 어리석고 어려운 길뿐이라는 게 조금은 우스웠다.
그러나 생각이 거기에 미칠 무렵, 이미 마음은 확고히 정해져 있었다.
“곰곰이 생각건대, 아국에 노비가 생긴 것은 기자의 유제遺制로, 팔금법八禁法으로써 남을 노비로 삼아 그 죗값을 갚게 하는 데서 말미암았소.
헌데 전조 말에 이르러 법도가 크게 흐트러지니, 힘없는 백성을 억지로 노비로 만들고, 부모 중 하나가 천인이라면 반드시 그 자식도 대대로 노비로 삼도록 하니, 양민의 수는 나날이 줄어들고 나라의 재정 또한 궁핍을 면치 못하였소.
이처럼 도리에도 맞지 않고, 나라의 이익에도 닿지 않는 것이 노비의 제도요. 현인께서 어찌 노비의 굴레가 당대를 넘어 후대까지 대대로 이어지도록 하고자 그런 제도를 세우셨겠소? 이에 상왕께서 종부법從父法을 세우셨으니, 그 뜻은 바로 하늘이 내린 백성을 아끼고 양민의 수를 늘림에 있었소⁴.
그러나 간악한 무리가 도심道心을 흐트리매, 끝내 중신의 가운데서도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김도련과 같은 지방의 천한 자들과 어울려 악행을 일삼는 자가 나타나고야 말았소.”
시그리드와 함께 머리 맞대면서 어떻게 중신들을 설득할까 고민할 적에, 잠깐 거론되었던 술법이 하나 있었다.
대체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몰라도, ‘높은 공High Ball’이라고도 불린다는 방법.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먼저 꺼내, 다른 이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매달리며 결국 원하는 곳으로 모두의 논의를 이끌고 가는 기법이었다.
“생각건대, 이는 결국 노비가 있기에 벌어지는 폐단이오. 그러니 장차 노비를 폐하면 이러한 폐단을 영영 뿌리뽑을 수 있을 것이외다.”
노비라는 것은 모든 사대부들이 가지고 있는 것. 그들이 대신 논밭을 갈고 소출을 바쳤기에, 거족은 거족으로 남을 수 있고 한미한 집안에서도 총명한 자제 한둘쯤은 벼슬길로 내보낼 수 있는 법이었다.
따라서, 남이 노비를 불법으로 취했다는 좋은 빌미를 잡고 열심히 비방하려던 이들은, 그토록 한껏 목청 높였다가 저들의 집마저도 홀라당 불탈 위기에 처했음을 깨닫고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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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약무기로 유명한 최무선의 아들 최해산은 그 아버지의 뒤를 따라 신무기 및 수군 함선 개발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작중 시점에서는 왜구들이 애용하던 빠른 선박을 따라잡을 수 있는 배를 만들라는 지시에 따라 강화도와 양화진을 오가며 전함을 개발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세종대 수군 강화 노력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는데, 다양한 함선이 개발되기는 했지만 그로 인해 유지비용이 너무 높아져버리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결국 조선 중기에 판옥선이 개발될 때까지 조선 수군의 주력은 값싸게 대량으로 운용할 수 있는 조운선을 군용으로 개조한 맹선 위주로 채워지게 되었지요.
2. 세종대왕이 비단 현대뿐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성군의 대명사로 꼽혔듯, 그 아내인 소헌왕후 심씨는 조선조 내내 왕비의 모범으로 꼽혔습니다. 시아버지 태종의 손에 친정인 청송 심씨 집안이 거의 멸족까지 갔음에도 불구하고, 심씨와 세종 사이의 금슬은 매우 좋았습니다. 1426년 한양에 대화재가 일어나자, 부재중이던 세종과 세자(훗날의 문종)를 대신해 진압을 진두지휘하는 등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카리스마를 보이기도 했지요.
여담으로 세종이 고기를 좋아했듯 소헌왕후는 단 것을 좋아했다고 전해지는데, 고기와 달리 설탕은 당시 류큐를 통한 수입으로만 구할 수 있는 사치품이었기에 소헌왕후의 한이 되었다고 합니다. 말년에 병상에 누워 있을 때도 설탕의 맛을 보고자 하였는데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해, 훗날 문종이 류큐에서 들여온 설탕을 뒤늦게 영전에 바쳤다는 일화가 실록에도 전합니다.
3. ‘조종이 지키시던 옛 강역’이란 바로 4군 6진 지역을 말하는데, 실제로 세종은 압록강 상류 및 두만강 유역에 설치된 4군 6진을 이렇게 지칭한 바 있습니다. 이는 고려가 삼한을 일통하였기에 고구려의 옛 강역에 대해서도 지배의 명분을 가진다는 전통적 관념뿐 아니라, 실제로 이성계와 그 조상이 함경도 지방과 간도 일부 지방을 실효지배하는 군벌 집안이었다는 사실과도 맞닿는 인식이었지요.
4. 원 역사에서 세종은 태종이 세운 종부법의 폐단을 해결하기 위해 종모법을 도입합니다. 두 법제는 공통적으로 노비의 수를 효과적으로 제한하고, 이를 통해 노비도 하늘이 내린 백성이라는 성리학적 윤리와 국가재정의 충당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이루는 데 그 뜻이 있었지요.
그러나 이는 노비의 수를 늘려 농장 경영의 수익을 제고하고자 했던 사대부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조항이었고, 결국 세조대에 이르러 종부법과 종모법은 사실상 일천즉천, 즉 부모 중 어느 한쪽이 노비일 경우 소생도 무조건 노비가 되는 쪽으로 변화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