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바이킹-106화 (106/116)

압박 아래서 (4)

24. 압박 아래서 Under Pressure (4)

억울하게 노비로 굴러떨어진 김득경이, 집안의 원수 김도련과 그 뒷배 노릇한 고명한 대신들에게 원한을 갚고자 지핀 불길은, 경복궁의 편전을 모조리 불사를 기세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 옛날 상왕 시절에는, 가짜 노비를 뇌물로 주고받는 게 아니라 진짜 노비들을 사고파는 정도만으로도 족히 트집을 잡아 피바람을 불게끔 할 수 있었다.

뒤늦게야 금상이 누구의 아들인지 깨달은 이들은, 대체 주상께서 노비의 제도 자체를 혁파하자 하신 말씀의 뜻이 무엇일지 혼신의 힘을 다하여 궁리하였다.

이번 일을 기화로 삼아, 반드시 저 공신들을 쳐내고 금상의 치세에서 권세를 누리겠노라 작정하였던 이들 또한,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저쪽 농장의 노비들을 두고 불꽃이 치솟기에, 불장난도 하고 부채질도 할 겸 탄핵과 고발을 한가득 마음속에 쟁여두고서 입궐했는데, 그 불꽃이 이제 저들 농장까지 태울 지경이 된 것이다.

김도련에게 직접 뇌물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 뇌물 받은 조말생, 조연 등으로부터 따로 챙긴 바가 있었기에 이 일에 바로 연루되지는 않은 영의정 유정현이, 이 불편한 침묵 속에서 딴에는 문무백관의 으뜸이라고 조심스레 나섰다.

“주상께옵서 하늘이 내린 백성을 아들딸처럼 아끼시니, 성총의 밝음은 실로 종사의 홍복이요, 성은이 넓고도 두터움은 가히 하해에 비할 만합니다.

다만 어리석은 신이 감히 생각건대, 상께서 일찍이 사찰에 딸린 노비를 폐하였으니, 이는 불씨佛氏의 설을 따르는 자들이 강상과 윤리에 어두워 능히 노비를 사람답게 대하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이제 사대부가 부리는 노비를 마저 폐하고자 하신다면, 어찌 이것이 선비를 높이는 법도라 하겠습니까?”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부드러우면서도 가차없는 하답.

“김도련과 같은 천한 무리와 결탁하여 농장에서 부리는 노비의 수를 불리는 것이 선비의 법도인가? 그런 용렬한 선비는 학문과 도의를 논하기에 앞서, 먼저 스스로 밭을 갈며 수양함이 마땅할 것이다.”

유정현의 입이 틀어막히고, 그 귀한 시간을 틈타 겨우 짜낸 논리를 다른 중신들이 꺼내려던 차, 주상의 옥음이 한 발 앞서 모두의 입을 틀어막았다.

“내 일찍이 왕후 서씨에게서 합중국 땅의 정사를 들었다. 그곳은 사람이 농사짓기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아, 인구는 적고 미처 개간치 못한 황지荒地가 많은데, 이에 서씨의 국인國人들이 창안하기를,

‘구라파 땅에서 사람을 모아 우리 농장의 노비로 삼으면 족히 일손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 다만 본디 양인이던 자를 천예賤隸로 떨어뜨림은 인륜에 어긋나니, 노비처럼 부리되 마땅히 기한을 정하고 그 직역을 세습치 아니하게 하며, 새경을 주고 의식衣食을 마련함에 부족함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하였다고 한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오는 서씨의 이름. 그제야 몇몇 대신들은 그간 주상께서 서씨와 사실상 독대를 하였다는 것을 떠올리고, 아무런 쓸모 없는 기물이라 치부하며 별 감흥 보이지 않았던 것을 뒤늦게 후회하였다.

“서씨가 이를 아름답게 여기기는커녕 도리어 슬퍼하여, 굳이 그러한 일을 벌이지 않고도 족히 백성이 풍족하게 살 수 있도록 스스로 교역을 트고자 바다를 건넜다 하니, 이제 생각건대 기자께서 금법을 두어 노비의 법을 만든 것도 백성을 가르치기 위함이지 결코 노비의 수를 늘리기 위함이 아니리라.”

이제 모든 포석이 깔렸다.

김도련에게 노비를 뇌물로 받아 치부하려던 이들은, 졸지에 기자의 아름다운 뜻을 이용해먹은 모리배가 되어버렸다. 이들을 물어뜯으며 저의 잇속 챙기려던 이들 또한, 고향에 노비들이 일구는 논밭 한 뙈기 없는 자가 없었던 고로, 계속 임금의 편을 들며 공신들 자리를 뜯어낼 수도, 목청 높여 공신들을 계속 탄핵할 수도 없었다.

중신들 중 정말로 청백리 축에 드는 허조가 나아와 계하였다.

“전하의 하교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 하나 없으니, 흐린 눈이 밝아지고 막힌 귀가 뚫리는 듯하옵니다.

다만 노비의 제도는 행해진 지가 오래되어, 도성만 하여도 노비의 수가 일만 구를 넘을 것입니다. 이들을 갑자기 폐하는 것은 불가하니, 욕속부달 욕교반졸欲速不達 欲巧反拙(서두르면 성공하지 못하고, 완벽을 꾀하면 도리어 서툴러진다)이라는 공자의 말씀이 이를 가리킨 것이 아니겠습니까.”

노비를 폐한다는 터무니없는 주상의 말씀, 그리고 일국의 고관대작들이 모두 양민을 노비로 삼는 무뢰한에게 뇌물을 받았다는 터무니없는 비리. 둘의 숨막히는 대치 속에서 어느 한 쪽도 신경쓰지 않고 할 말을 우직하게 하는 허조였다.

“그러므로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우선 노비의 역이 부모 중 한쪽을 통해서만 이어지는 구제舊制를 다듬고, 백성을 널리 품고 길러 양인의 수가 절로 노비보다 많아지도록 하며, 또한 노비들에게도 선한 행실을 권면하여 스스로 덕행이나 근면으로 면천할 길을 널리 엶이 가하다 하겠습니다.

이리하면 한두 세대 안으로 공효가 있을 것이요, 서너 세대가 지나면 노비의 수가 지금의 절반보다도 적게 될 것이며, 인구는 늘고 국용은 풍족해질 것입니다.”

허조를 응원하던 대신들은, 이어지는 문답에 다시금 절망하였다.

“허나 이미 드러난 잘못을 거리낌없이 고쳐야 마땅할진대過則勿憚改, 어찌 지금 드러난 죄상을 즉시 다스리지 않겠는가? 경의 진언을 받아들인다면, 반드시 전조의 전민변정도감을 복설하여, 노비를 두고 부림에 무도함이 털끝만큼이라도 있었다면 반드시 그 죄상을 밝힘이 좋겠다.”

언뜻 주상이 한 발 물러난 것처럼 보였지만, 이는 범이 물러나고 승냥이가 들어온 격이라. 전민변정도감이 유별나게 금상에게 반하는 듯한 신료들의 농장만 열심히 살피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하였다.

하지만 매정하게도 허조는 그 말씀이 참으로 옳다 하며 대신들 사이로 돌아가고야 말았다.

그 뒤로도 어떻게든 허조가 돌리다 만 주상의 마음을 마저 돌려보려는 이들이 하나둘씩 나와 진언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그제야 대신들은 깨닫게 되었다. 지금껏 상왕의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충녕대군 시절부터 유명했던 금상의 지재.

금상은 상왕과 같이 사람을 능히 죽일 수 있는 권위도, 실제로 그리할 수 있는 과감함도 없었으나, 그런 권위와 과감함을 굳이 갖추어야 할 필요도 없었다.

“전조 고려에 노비가 많았던 것은, 힘 없고 농지도 없는 협호狹戶(서민)들이 권세가의 노비가 되어 국역國役을 피하고 다른 권세가들에게 침탈받는 것을 면하기 위함이었다.

무릇 농사일이란 땅과 일손을 가장 귀하게 여기니, 만약 지금 노비를 폐하는 데서 그친다면 반드시 이름만 노비가 아닐 뿐 폐단은 더욱 커질 것이다.

세력 있는 자들은 그 위세로써 양민을 노비처럼 부릴 것이요, 그것을 두려워한 양민들이 다시 그나마 도리를 지키는 권문權門을 찾아 스스로 의탁할 것이다.”

노비를 없앨 수 없다는 현실론을 개진할 작시면 주상이 먼저 나서서 그것을 꺼내고,

“허나 그렇다 하면 이 사세를 고칠 방안을 강구해야 하리라. 나라의 주인과 그를 근시近侍하는 신하들로써 백성을 위할 방도를 마련치 않는다면 누가 이 일을 맡겠는가?”

고상한 대의를 내세워 그 현실 이야기를 미리 틀어막아 버리니, 한 발 두 발 늦어지던 신료들의 대답은 이제 주상의 자문자답을 따르기에도 벅차게 되었다.

그나마 죄인처럼 조용히 있던 황희, 원체 사람됨이 물렀던지라 공신들과 신진 관료들 모두 별로 신경쓰지 않던 맹사성 등등은, 주상의 말씀이 조금씩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미 지쳐버린 신하들은 강물과 같이 흐르는 주상의 옥음이 멈추는 곳에서 그만 내려버리고야 말 것이다.

“... 그러므로 내 생각건대, 모든 일의 근본은 나라 안의 모두가 오로지 농사일만을 이익으로 알기 때문이로다.

상공의 일을 말업으로 칭하는 까닭은, 그것이 오직 이利를 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공의 이로움을 완전히 폐한다면 이 또한 폐단이 된다.

따라서 농사일 대신 새로 이익될 바를 찾고, 그것을 한 사람이 아닌 공公에 맡긴다면, 이 어찌 폐단을 피하고 올바른 이익만을 남기는 길이 아니겠는가?”

그 뒤에 깔린 웅대한 계획, 함부르크에서 신대륙을 거쳐 대명까지 향하는 거대한 교역료의 한 톱니바퀴로 조선을 참여시키려는 계책의 전모를 이해하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너희가 서씨가 제안한 교역의 방안을 받아들인다면, 노비의 일은 가볍게 다루고 넘어가겠다’라는 주상의 뜻을 놓치는 이도 없었다.

그리고, 주상이 단순히 교역으로 나라의 이익을 삼는다 한 것이 아니라, 공公을 언급하셨다는 것도.

『예기』에도 이르기를 천하가 공을 위하는 것天下爲公은 대동大同이 이루어질 때의 일이라 하였으니, 다시 말해 제도가 그때에 미치지 못하는 지금의 공公이란 ‘김 공’, ‘이 공’ 소리 듣는 높으신 분들이 각각 제 몫을 챙긴다는 뜻이었다.

노비를 모두 빼앗기고 패가망신하느니, 차라리 지금 잘못을 뉘우치고, 몇몇 노비는 풀어주는 시늉도 하고, 그 다음 교역의 이익에 살짝 발을 걸치는 쪽이 낫지 않겠는가?

이미 노비제 폐지라는 폭풍에 휘말려 넋이 절반쯤 빠졌던 이들은, 결국 저들이 불과 며칠 전에 천부당만부당하다 하였던 제안을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소리로써 덜컥 받아들이기에 이르렀다.

시그리드의 제안은 어느새 개국통상開國通商이라는 그럴듯한 이름까지 붙은 채 도성 저자에서 떠들썩하게 거론되기에 이르렀다.

상국인 명이 해금령을 내렸는데 그 번국인 조선이 개국을 논한다는 것이 도의에 어긋난다고 하는 이는 없었다. 딱히 명이 조선에 해준 것도 없고, 더구나 정녕 무역이 그토록 크나큰 이익을 가져온다면, 그 이익의 일부를 떼어서 조공하면 그만이라고들 여겼던 것이다.

그렇게 세세한 사항들이 조정되고, 대신들이 눈치껏 석고대죄를 하고, 정말로 죄가 중한 정탁이나 조말생 등은 - 몇몇 눈치 없는 간관들이 죽음으로 치죄할 것을 간하기까지 했으나 - 직첩만 거두고 귀양을 보내는 동안, 도성에서도 유별나게 조용한 곳이 몇 곳 있었다.

그중 하나는 바로 상왕이 거하는 수강궁이요. 다른 하나는 양이 사절들이 머무는 모화관이라.

“주상께서 현명하고도 너그러우니, 이처럼 사냥으로 만년의 낙을 삼아 소일한답니다.”

느닷없이 상왕이 시그리드와 다른 사절들을 광주廣州 사냥터로 초대한바, 시그리드 일행은 이방원을 따라 낯선 땅 산천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 와중 함부로 도성을 드나들지 못하는 몸이 된 폐세자 양녕대군은 또 좋다고 따라와서, 아버지 곁을 지킨답시고 시그리드만 바라보고 있었다.

“저도 아드님 덕택을 보게 되었네요.”

조선 국왕 이도가 ‘킹 세종’이 아니었을까 슬슬 의심하고 있던 시그리드가, 몰이꾼들이 숲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것을 보며 말했다.

빈말은 아니었다. 황제 한 사람의 의중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는 명과의 교역에서 쓸 만한 대리인 겸 담합 상대를 찾는다는 시그리드의 구상이, 이도 덕택에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성공을 거두었으므로.

명이라는 시장을 활짝 열어주고, 나아가 신대륙 연합을 대신해 그 시장으로의 판로를 관리해줄 이들을 구하게 된 셈이었다.

“전하 또한 뜻을 이루셨고, 주상께서도 마침내 이 늙은이의 그늘을 벗어나게 되셨으니, 꼭 한쪽의 은덕만을 칭할 것은 아니라 하겠습니다.”

아직 사냥이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을 터라, 상왕은 시종하는 무관들에게 명하여 여흥 삼아 마상재馬上才를 선보이도록 해두었다.

아직도 초원 어디선가 울루스부카吾魯思不花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을 환조(이자춘)의 대부터, 가별초家別抄를 통해 내려오던 기마술.

테츠코코의 틀라토아니 네사왈코요틀의 승마술을 부러워하던 아나왁 사람들은 조선 무관들의 마상재를 보고서 눈을 번뜩였고, 딱히 말에 별 관심 없던 이들도 이 기묘한 구경에 하나같이 기뻐하며 떠들었다.

허나 권력자들을 여럿 만나보고, 인질로도 잡아보고 왕자 여럿을 속하에 거느리기도 했던 시그리드는, 상왕의 뜻이 다른 데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떠들썩한 와중 이렇게 다가와 말을 붙이는 것은, 필시 남들의 이목이 마상재에 쏠려 있는 틈을 타 뭔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함이리라.

“마치 국왕께서 어르신의 그늘을 벗어난 것을 기뻐하시는 듯하군요.”

“모든 아들은 언제고 아버지의 품을 떠나야 하는 법입니다. 저는, 아니, 저만이라도 그 이치에 따라야 하겠지요.”

‘저만이라도’라는 구절에 은근한 한이 서려 있어, 조선말이라곤 ‘Annyŏnghaseyo’밖에 모르는 시그리드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다만 그날이 이토록 빠르게, 그리고 이토록 기쁘면서도 섭섭하게 닥쳐올 줄은 몰랐기에 다소 놀랐을 뿐입니다.”

“기쁘면서도 섭섭하다고요?”

“아들이 영명한 것을 아비가 기뻐하지 않는다면 어찌 아비라 하겠습니까.”

한때 이방원은, 자신이 아들 충녕대군을 이해한다고 여겼다. 저 역시 형제들 중 가장 총명하였으며,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능히 꿰뚫어볼 수 있었기에.

그러나 이제야 비로소 깨닫고 있었다. 저의 어리석은 형 방간과 자신의 차이. 그것보다도 몇 곱절은 더 큰 차이가 자신과 아들 사이에 있다는 것을.

고작 닷새 사이에, 개국통상의 실무가 논의되고, 뼈대가 생기고, 살점이 붙기 시작했다는 것은 수강궁에도 곧이곧대로 전해지고 있었다.

공납하는 토산품을 각지 실정에 맞게 다시 정비한 다음, 그 토산품 중 대국에 팔만한 것을 추려내어 신대륙 연합의 인삼공사 무역선에 싣는다. 무역선은 바다를 다시 건너기 전 조선에 들려, 조선의 몫을 넘겨준다.

교역의 대부분이 강남 명주(닝보)에서 이루어질 것을 감안해, 조선은 조운으로 오가기 편리하면서 뱃길도 그나마 용이한 진도를 양측의 무역 거점으로 정비한다.

또한 인삼이 완전히 명에 널리 퍼지게 되면, 그때부터는 양국이 인삼의 거래량을 조절하며 값을 조율한다. 바다를 오가면서 소통하기가 어려우니, 신대륙 연합은 진도에 상관商館을 두고, 조선은 아카풀코에 상관을 둔다. 그리고 조선 측에서 만든 장부와 신대륙 연합 인삼공사의 장부를 서로 공개하여 오해의 소지를 막는다.

이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는 이가 바로 주상이었다. 주상의 발목을 잡을 법하던 이들은, 날아오르는 주상의 그림자를 쫓기에도 바빴고, 그 가운데서 새로 설치될 관아들과 그 이권을 받아 챙기는 데도 급급하였다.

무력과 술수로서 정국을 이끌어나갔던 상왕 이방원에게는, 큰 기쁨이자 충격이었다.

“그렇지만 섭섭할 일까지는 아닐 텐데요.”

“비록 이 늙은 몸이 지재 또한 쇠하였고, 애초에 총명조차 두 분 전하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고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강궁에 머물며 한 발 물러나 지켜보다 보니, 보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사실 보인다고 자신할 수도 없었다. 이방원 자신이 봉황이라면, 아들 도는 그 봉황마저도 들새처럼 여기며 날아가는 대붕大鵬과 같았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되는 것은 아버지 마음이라. 아들이 자신보다 뛰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저열한 질투심 아니냐는, 아버지 이성계의 목소리 빌린 마음 속 자책自責을 달게 받아들이며 이방원은 말했다.

“이 늙은이에게도 한때 꿈이 있었습니다. 그 꿈을 펼치면 이 나라 조선을 하늘과 땅이 열린 이래 한 번도 나타난 적 없던, 실로 요순의 백성조차 부러워할 만한 그런 나라를 만들고자 하였지요.”

그러나 이방원의 총명함은 그만큼은 되지 못하였다. 선죽교에서 피를 흩뿌린 이래로 항상 그의 마음속 어딘가에서 들려오던 자책하는 소리는, 고작 이런 것을 위하여 정몽주를 죽이고 배다른 형제를 베었으냐 비아냥대곤 했다.

현실의 벽은 높았고, 그 현실의 벽을 이용하여 임금 대신 저의 뜻을 내세우고자 하는 신하는 많았으며, 그러려는 속뜻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는 사대부는 더더욱 많았다.

결국 이방원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으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수밖에 없었다.

“감히 용렬한 사람이 뛰어난 이, 그것도 일국의 국주인 주상의 마음속을 어찌 헤아리겠냐만, 두려워하는 것은 주상도 언제고 그런 벽에 맞닥뜨리지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따라서 이방원은, 아들에게 확고한 왕권뿐 아니라 그 왕권을 위협하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견제할 수 있는 조정을 물려주고자 하였다. 자신이 지금 뒤집어쓴 업보에 한층 두터운 죄악을 더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이 도중에 잃어버렸던 그 중도를 아들은 능히 지킬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번 일로 아들은 아버지가 정해준 중도에서 벗어나고야 말았다.

어쩌면, 아들은 이번 김도련의 악행을 조용히 묻어주는 대신, 이방원의 명을 받들어 충녕대군을 세자로 추대하였던 중신들에게 명예롭게 물러날 길을 마련해주었을지도 모른다.

그 빈자리에 각각 흠결은 있을지언정 유능함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새로운 신료들을 채우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수족도 되고, 때로는 자신이 지나칠 때 막아주는 역할도 하도록 만들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도는 그 대신, 시그리드라는 이방인과 몇 번 독대하며 깨달은 바를 바탕으로, 지금껏 조선의 그 누구도 그린 적 없던 구상을 내놓게 되었다. 조정에는 이 전례 없는 움직임에 찬동하는 이들과 ‘어어’ 하며 끌려가는 이들만 남게 되리라.

그리고 임금이 공公을 말했으므로, 두 갈래의 신료들 모두 이 새로운 정사에 참여하며, 저들의 지분을 하나씩 마련해갈 것이다. 견제하거나 충언하는 신하도 없이 앞으로 달려가는 주상이 실족할 때까지, 그 지분은 조금씩 늘어날 것이요, 마침내 저들의 주군을 가로막게 될 것이다.

“유학자들뿐 아니라 법가의 사람들도 억말抑末(상공업 억압)을 말한 것이 이 때문이겠지요.

농사를 짓건, 농사꾼을 부리건, 농지는 사람이 능히 옮길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하된 자로서 전주佃主(지주)이기도 한 자들은 군주의 뜻을 아예 어기려 대역을 모의하지 않고서야, 순순히 군주를 따를 수밖에 없지요.”

“개국통상에 동참한 신료들이 언젠가 권력의 통제를 벗어날 것을 두려워하시는군요.”

“과연 영명하십니다.”

아무리 총명한 사람이라도, 제 등 뒤는 보지 못하는 법.

그렇게 등 뒤에 비수를 꽂아가며 임금의 자리까지 올랐던 이방원이 잘 아는 진리였다.

“물론 늙은이의 헛된 두려움에 그칠 공산이 훨씬 클 것입니다. 아무리 사물의 이치를 바꾸는 일에 그만한 뒤탈이 따르기 마련이라지만, 영명한 주상이시라면 능히 이를 극복해내실 수 있으시겠지요.

다만, 전하께서 그런 날이 올 때 주상께서 밟으실 수 있는 주춧돌이라도 하나쯤 마련해주신다면 감사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하였습니다.”

때마침 숲으로 들어간 몰이꾼들이 사냥감을 찾았음을 알리는 바람에 대화는 거기서 끊어지고야 말았다.

군사훈련을 겸하는 사냥. 몰이꾼들이 마치 능숙히 적진을 교란하는 유군遊軍처럼 큼직한 멧돼지와 사슴, 노루 따위를 몰고 나오는데, 그사이 조금 이상한 녀석도 하나 있었다.

“오첼로틀Ocelotl(재규어)이다!”

지켜보던 아나왁 사람 하나가 외쳤다.

“아니! 훨씬 더 큰데?”

“오첼로틀 정령이다!”

저만한 대호大虎라면 어디 가서 산신령 대접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았으니, ‘오첼로틀 정령’이라는 말도 딱히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사냥감을 몰아온다는 것이, 하필 그 사냥감 노리고서 도사리고 있던 범까지 함께 몰고 나온 것이다.

정말 영험한 눈썰미라도 있는지, 자신이 인간들의 흉계에 넘어갔음을 깨닫고서 딱 상왕과 시그리드 있는 쪽으로 달려오는 대호.

상왕이 소싯적 하던 대로 활시위에 화살을 재던 차, 시그리드가 한 발 빨리 양해를 구하곤 머스킷에 불을 당겼다.

대호가 풀썩 쓰러지고, 화약 소리에 말 여럿이 놀라 기수 한둘이 자빠졌으며, 어떻게 시그리드를 잘 해볼 생각이던 양녕대군도, 마냥 곱상한 줄만 알았던 여인네가 산채만한 범을 잡았다는 데 뒤늦게 놀라 자빠졌다.

광주 사냥터 한쪽에 마련된 숙소로 들어온 시그리드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는 리프와 놀아주고 있었다.

사냥매에도 일가견이 있던 상왕이 리프를 보며 평하기를, 해동청에 족히 비할 만한 사냥매지만 버릇이 잘못 들어, 주인을 따르는 신하가 되어야 할 매가 마치 벗을 따르는 것처럼 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분명 범상한 사냥매라면 들판으로 날려보내야 할 정도로 나이가 꽤 들었을 텐데도 아직도 몇 해 묵지 않은 어린 매처럼 젊어보이는 것이 기이하다고도 하였다.

두 가지 평 모두 시그리드 마음에 쏙 들었는데, 저도 그 얘기를 알아들었는지 오늘따라 리프도 유독 시그리드 쓰다듬는 손길 따라 비비적대고 있었다.

허나 리프가 흥이 나는 것과 별개로, 시그리드는 다른 생각에 마음이 팔려 있었다.

“국왕의 위엄을 확고히 할 방법이라.”

급진적인 개혁에 필연적으로 따를 후폭풍. 그것이 적절한 견제와 충언을 통해 해소되는 대신, 쌓이고 쌓이다가 어느 순간 잠깐 못된 마음 품은 자의 손에 의해 터져나올 것을 걱정하는 상왕이었다.

그 급진적 개혁의 수혜자인 시그리드 입장에서, 국왕으로 하여금 속도를 조절하라 청할 수도 없는 법. (솔직히 이도가 보여준 총명함을 생각하면, 시그리드가 설득할 수 있을지도 의문스럽긴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왕의 위엄을 보태줄 방도라도 강구하는 게 좋을 것이었다.

‘... 짧은 시일 동안 그런 수를 내기는 어려울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조그만 도움이라도 주신다면, 늙은 몸이 흙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아들 주상과 전하 두 분의 개국통상을 돕도록 노신老臣들을 열심히 부추기도록 하겠습니다.’

이방원의 말을 곱씹으며, 방도를 고심하던 차.

문지방 너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구세요?”

수하에 응하는 대신 후다닥 달아나는 소리.

결국 시그리드는 호신용 피스톨만 들고서 밖으로 나왔다.

담을 넘는 익숙한 인영이 보인 것은 그때였다.

“멈추세요!”

시그리드 외침 소리를 들은 스베인이 문 열고 뛰쳐나오는 소리도 들렸다.

“누구냐? 멈춰라!”

더욱 황망하게 달아나는 인영.

그 그림자의 정체를 알 법도 했던 시그리드는, 잠깐 고민한 뒤 방아쇠를 당겼다.

일부러 빗나가게 쏜 총.

그리고 총성과 함께 주저앉는 익숙한 인영.

스베인이 후다닥 달려가 붙잡아오니, 예상한대로 양녕대군 이제의 모습이 횃불 앞에 드러났다.

“어, 잠깐? 그러고 보니...”

저의 모습을 보고서 노여워하기는커녕,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시그리드.

양녕대군은 그 미색에 취하는 대신, 뒤늦게 소름이 제 등뼈를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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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 초의 노비는, 자칫 사병이 될 수도 있고, 또한 신진 사대부와 고려의 구 토호 세력들이 모두 그 재산으로 삼는 존재였기에, 이미 사실상 조선이 된 공양왕 시기부터 격렬한 논쟁과 개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논쟁은 세종조에 이르러, 성리학 윤리와 제도 하에서 노비제를 관리하는 쪽으로 귀결되게 됩니다. 즉 고려 말부터 신진사대부들 사이에서 공유되던 인식, ‘노비도 하늘이 내린 백성天民’이라는 인식과, 노비제의 기원이 바로 기자가 팔조금법을 세웠던 데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노비제를 유지하되 이를 성리학 질서 내에 편입시키려 한 것이지요.

종모법을 통해 노비의 수를 제한하고, 관노비의 출산휴가를 보장하는 등 노비에게도 최소한의 인권과 복지를 보장하는 한편, 주인과 노비의 관계가 군신 사이 관계와 같다는 논리로써 노비가 주인을 고발하는 것을 엄금하는 조치가 이루어진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살필 수 있습니다.

2. 앞서 서술한 것처럼, 세종 초, 상왕 이방원이 실권을 계속 쥐고 있던 시절 조정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신료들은 모두 태종의 친위세력이라 할 만한 이들이었습니다. 또한 이들은 양녕대군을 폐하고 충녕대군이었던 세종을 새로 세자로 삼는 논의를 개진하는 데 있어서도 ‘총대를 맨’, 즉 세종에게 있어서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인물들이었지요.

상왕 시절 이방원의 정략적 면모를 완전히 알 수는 없지만, 그가 자신이 1422년 56세 나이로 급사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임을 감안하면 언제고 이들 공신 세력도 토사구팽할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1422년, 세종과 매사냥을 다녀온 뒤 갑자기 병석에 눕게 되자, 황희를 기용할 것을 비롯해 조정의 중신들을 견제할 수 있는 인사들 여럿을 추천한 것은 그러한 의도의 산물로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허조는 이러한 세종의 인재 기용 전략에서 벗어난 예외적인 경우로, 조선 개국 전부터 관료 생활을 했던 원로이면서, 다른 동시대인들과 달리 부정부패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을 뿐더러, 태종과 세종 두 임금에게 거침없이 직언을 하면서도 관직생활을 이어나간 인물입니다.

3. 몽골의 벼슬을 받고 여진족들을 거느리기도 했던 군벌 집안이 세운 나라답게, 조선은 의외로 승마술로 이름난 나라였습니다. 특히 말 위에서 펼치는 곡예인 마상재는 조선 후기까지 이어졌고, 조선통신사들이 일본을 방문할 때 꼭 무관들의 마상재 공연을 펼쳤지요. 심지어 접경지대라는 특성상 말을 구하기 쉬웠던 의주의 경우, 기생들의 마상재가 지역 명물로 알려질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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