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33화
4층 - Lv. 325 바르바로이(2)
마투사는 마법을 구현하는데 딜레이가 전혀 없는 마법사다.
본질은 마법사이되 전투는 전사에 더 가깝다.
소드 마스터는 반대로 본질은 전사이되 전투는 마법사에 좀 더 가깝다.
마투사의 마력 소모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소드 마스터의 마력 소모는 생각 이상이다.
종족의 차이를 감안해도 먼저 소모되는 것은 더스번일 터였다.
소드 마스터는 한쪽만 남은 눈을 불쾌하게 깜빡였다.
로드급 뱀파이어가 있다는 사실까지는 알고 왔다.
그런 정보는 뱀파이어 사회 내에서 쉽게 새어 나온다.
그들이 차도 살인을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고성에 있는 것이 클랜 마스터 본인임은 미리 알지 못했다.
이 또한 차도 살인이다.
정보를 흘린 녀석들은 공멸을 원하는 것이다.
낭패였다.
바르바로이는 원래부터 이 땅에 자리 잡고 있던 클랜은 아니었다. 동쪽에서 무언가에 쫓기듯 나타난 무리다.
여러모로 정보도 부족했다.
검기를 크게 뽑아내어 휘두른다.
뱀파이어는 박쥐가 되어 흩어진다.
개중 일부가 걸려들어 베어냈지만 남은 박쥐들이 모여들어 다시 형태를 이루었다.
재빨리 각도를 바꾸어 찌르기를 넣자 격렬한 반격이 돌아온다.
마력을 아낌없이 구겨 넣은 폭발은 달구어진 폭압만으로도 머리카락을 태워버리는 느낌이다.
소드 마스터로서도 몸을 최대한 사리는 수밖에 없었다.
합을 겨루어서는 안 된다.
서로 치명상을 입히는 형태가 된다면 생명력이 더 질긴 뱀파이어가 승리한다.
더스번은 폭발이 일어나기 직전, 마력의 흐름을 검기로 베어냈다.
김이라도 빠지듯 달아오른 마력이 파괴되지 못하고 흩어진다.
로드가 박쥐로 흩어버린 육신의 일부는 깊은 자상을 입었으나 혈액이 맴돌며 다시 차오른다.
인간이라면 분명 비슷한 수준의 상대건만, 재생을 할 수 없는 인간이 훨씬 불리했다.
더스번이 손짓으로 사인을 보낸다.
대기 중이던 부하 궁수의 화살이 약간 비는 타이밍에 맞춰 날아들었다.
성수에 재워둔 신성한 화살이다. 적중하면 검기 이상으로 치명적이다.
바르바로이가 필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강제로 만들어 낸 틈이다.
반월형의 검기를 날린다.
몸도 동시에 돌격.
아주 크게 내려 벤다.
피할 수 없어야 할 일격.
하지만 뱀파이어는 거의 자신의 팔을 폭파하며 그 추진력으로 물러난다.
인간이면 불구가 되겠으나, 괴물은 팔을 다시 만들어낸다.
회심의 일격이었건만, 심장에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았다.
대신 미처 피하지 못한 검기에 뱀파이어의 허리가 분단된다.
미끄러지듯 갈라진 상하체가 또다시 박쥐로 분해되며 흩어졌다.
감각적으로 나타날 방향을 안다.
번뜩이며 사출되는 검기. 그리고 마력을 방출하며 가속 돌격.
소리마저 흐릿해질 속도의 돌격이다.
박쥐들 사이에서 손이 불쑥.
탁하고 불길한 마력의 불꽃에 휘감은 손이다.
날아가는 검기를 통째로 잡아채 던져 버렸다.
더스번의 찌르기가 그사이에 몸통에 도달했다.
푹하고 시체에 칼을 꽂는 섬찟한 느낌.
그대로 옆으로 베지 않았다.
세로로.
날이 아닌 검면으로 힘을 준다.
통째로 잡아 뜯는다.
검기를 두른 검은 결코 부러지지 않는다.
내구력 자체는 크게 인간과 다를 것 없는 흡혈귀의 육신이 세로로 갈라진다.
거인이 힘으로 잡아 찢은 듯한 끔찍한 광경이다.
그러나 심장이 걸리진 않았다.
다시 한번 쏟아지는 내장들이 박쥐로 흩어졌다.
그러나 날지 못하고 죽어 떨어지는 것들이 많다.
좀 희망적이로군.
방금 것은 좀 컸다.
로드의 얼굴이 확연하게 창백해졌다.
더스번은 그리 생각하며 말을 건넸다.
"슬슬, 힘에 부치나 본데?"
"글쎄?"
로드가 손가락을 튕긴다.
틈이라 생각했으나 다른 손이 이쪽을 겨누고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 자체를 베어낸다.
갈라진 폭압이 먼지를 피워 올렸다.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죽은 박쥐들의 시체가 한 줌의 혈액으로 녹아들고.
불그스름한 안개로 화한다.
그대로 놈에게 빨려 들어간다.
눈에 띄게 회복된다.
소드 마스터는 이를 악물었다.
피에 대한 지배력이 어느 정도인 거지?
더스번의 오랜 경험을 들추어 봐도 이런 수준은 본 적이 없다.
지원 사격으로 날아온 부하의 마법이 흡수되려는 박쥐들을 불태운다.
그래도 진정하자. 이렇게만 하자. 끊임없이 소모하게 하는 중인 것은 분명하다.
회복한다 한들 점점 소모되고 있다.
하얀 얼굴이 점점 더 창백하게 질려간다.
조금씩이지만 확실하게 몰아붙이고 있다.
이대로만 간다면 승리는 확정적이다.
혹여 저 괴물이 발악할 수는 있지만.
보다 심한 파괴를 시도한다면 그것도 틈이다.
그때야말로 심장이 두 조각으로 갈라질 것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유배자들이 그만큼 큰 피해를 입힌 덕이다.
검을 조금 빗겨 든다. 더 크게 베어내기 위함이다.
조금 아슬아슬하지만 분명 이길 수 있다.
더스번은 그리 생각했다.
뱀파이어 로드가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튀길 때까진 그랬다.
* * *
생존이 중요한 게임에서 극단적인 유리대포는 그렇게 고성능이라 할 수 없다.
안정성이 너무나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유리대포들이 그렇듯이 로망만큼은 철철 넘쳐 흐른다.
지능이 계통이 대표적으로 화력에 미친 클래스다.
민첩 계통은 하나의 대상을 확실하게 조지는데 특화되어 있는 감이 있으며 힘은 안정성과 근접전에 특화된 경향이 크다.
단일 스탯 클래스라면 그러한데, 보통 상위직이라고 취급받는 것은 스탯을 둘 이상 사용하는 종류다.
소드 마스터가 그러하고 마투사가 그러하다.
힘과 지능의 조합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게임에서 가장 화력에 미쳐버린 클래스를 만들어낸다.
지능의 화력과 힘의 근접전이 합쳐진 결과다.
근접이라 위험부담이 크니까 대신 그만큼 고화력.
밸런스상 너무나도 당연한 디자인.
하지만 쉬이 납득하는 것도 모니터 너머로 볼 때나 그렇고, 현실이 된 후 다시 보면 대체 이게 뭔가 싶다.
더스번 경의 검격이 바르바로이를 추격한다.
뱀파이어 로드는 무시무시하게 표정을 일그러뜨린 채 뒤로 물러났다.
그러며 손을 떨치자 폭발이 일어난다.
소드 마스터라고 한들 방어성능은 거의 없다.
더스번 경이 검기로 폭발을 형성하는 마력을 베어 약화하거나 무효화하며 옆으로 피한다.
부서진 검기가 그랬듯, 미완성된 파괴적인 마력이 사방으로 흩뿌려져 불을 질렀다.
홀이었던 장소에 불탈 물건은 이미 남아 있지 않다.
돌을 조금 달구곤 꺼진다.
이들의 전투는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 직업들이다. 방어는 없다.
달리 유틸리티도 없다.
그래서 이기기 위해선 오히려 어느 정도 화력을 제한하며 서로 사리게 된다.
마투사는 마법을 쓰되, 원거리를 버렸다.
지근거리에서 격투를 섞어 마력을 격발한다. 극한의 화력을 내뿜는 것에만 집중한 변태 같은 클래스다.
소드 마스터도 크게 다를 건 없다.
절삭력에 모든 것을 걸어 마법마저 베어낸다.
하지만 전사로서 내구력을 아예 포기한 종잇장이다.
그 둘의 결전은 그야말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로망 덩어리였다.
물론 그 웅장함을 계속 감상할 시간은 없었다.
"혹시 회복약 필요하오?"
부대장 정도 되어 보이는 마법사가 캐스팅을 멈추고 묻는다.
낙오 클랜의 잔당들은 어렵지 않게 격멸된 모양이었다.
나이트 크로우는 거의 피해 없이 모두 홀에 도착했다.
일부 지원이 가능한 궁수들이 더스번 경의 싸움을 돕는다.
후드를 벗는 얼굴은 제법 앳되어 마치 소년 같아 보였다.
스물도 안 되었으려나, 하지만 말투는 늙수그레하다. 아마 사연이 있기야 하겠지.
"조금 나눠주신다면 감사하게 쓰지요."
우리가 보유하고 있던 힐링 포션은 전부 소모했다.
사전에 준비한 대로 모두 바르바로이에게 딜링으로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병 속의 걸쭉한 붉은 액체는 썩 좋은 냄새가 아니었다.
소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 가벼운 화상에 그것을 덕지덕지 발랐다.
모두 당장 위중하진 않아도 전투력에 영향을 미치는 크고 작은 상처가 많다.
샘물처럼 즉시 회복시키는 수준은 아니지만, 어찌 되었건 소독과 아픔을 줄여주는 정도 효력은 있다.
마법사가 황급히 방어막을 펼쳤다.
싸움의 여파로 튕겨 나온 불꽃이 마력의 막에 부딪혀 비껴간다.
나는 입맛을 다시며 더스번 경의 전투를 보았다.
소드 마스터는 뱀파이어의 생명력으로도 버티기 힘들 정도의 공격력을 가지고 있다.
바르바로이는 우리를 상대할 때처럼, 적당히 맞아줄 생각으로 달려들지 못했기에 큰 파괴를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생매장 같은 것은 시도 않는다.
이제 뱀파이어의 종족 특성인 [피의 샘]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을 것이다.
혈액을 저장한 만큼의 급격한 재생을 할 수 있지만, 샘물로 끊임없이 피해를 입었으니 소모가 엄청났으리라.
물론 [피의 샘]의 남은 용량은 혈색이 점점 더 창백해지는 것으로 대강 파악할 수 있다.
이제 심장을 꺼내 던지는 것 같은 묘기는 확실히 불가능하다.
그러면 죽을 테니까.
"이제 쉬시오. 정말로 우리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주었소."
애늙은이 마법사가 미소 지으며 치하했다.
그리고 사과했다.
"당신들 같이 용맹한 유배자는 처음 보았소. 항상 목숨 여러 개인 겁쟁이들이라 생각했는데 당신들은 아니더군. 내 사과드리지."
이런 평가는 나쁘지 않다.
특별히 종족을 바꾸지 않으면 유배자는 인간이다. 나이트 크로우는 인간을 지키기 위한 단체다.
그리고 꽤나 강력한 축에 속한다.
그런 이들과의 우호도는 큰 도움이 된다.
더스번 경과도 다른 짝수 층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한번 만난 토착 NPC와는 계속해서 엮인다. 그게 미궁의 법칙이다.
"경께서 우세하군. 곧 끝날 듯하오."
애늙은이는 그렇게 낙관적으로 전황을 보고 있었다.
아마 아닐 텐데?
확실히 바르바로이는 지금 궁지에 몰려 있긴 했다.
그렇게 보일 것이다.
‘뱀파이어 로드’라는 명칭 자체는 단순히 뱀파이어의 격을 나타내는 단어다.
조건은 클랜을 만들어 이끌 능력을 갖춘 뱀파이어.
자신의 권속을 만들고 지배할 수 있는 능력.
실제로 클랜 마스터이냐와는 조금 다르다.
성으로 진입하기 전에 내가 클랜 마스터급은 아니길 바랐던 가장 큰 이유는.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지?"
클랜 마스터이기에 들고 나오는 고유한 장비.
즉, 템빨이 무서워서다.
* * *
"우와아, 우와, 이거 뭐예요?"
소녀의 몸에 난 작은 생채기에서조차 피가 조금씩 빨려 나간다.
피에 대한 광대한 지배력.
바르바로이가 걸치고 있는 망토 [핏빛 날개]의 효과다.
바르바로이(이민족)이란 이름답게 항상 다른 곳에서 떠밀려 왔다는 설정을 가진 클랜이다.
그럼에도 자리 잡은 경우를 꽤 자주 보게 된다.
이번에 쫓겨난 걸 보니 뭔가 재수가 없었겠으나, 아주 상대하기 껄끄러운 클랜 마스터다.
뱀파이어라는 종족에게 있어 저것보다 좋다고 할 수 있는 아티팩트는 거의 없다.
유지력을 극단적으로 올려준다. 마법사로 등장하는 바르바로이와의 상성도 지나치게 좋다.
저게 있기에 인간과의 싸움에서 바르바로이는 너무나도 유리해진다.
약간의 생채기만 내도 된다.
그렇다면 회복수단이 마련된다.
이 소모전의 끝에 인간의 승리는 없다.
나는 싱긋 웃었다.
애늙은이 마법사가 다시 캐스팅을 시작한다.
어깨를 짚으며 말렸다.
"이건 이제 제가 어떻게 해 보도록 하지요."
소녀에게서 돌려받은 아카샤의 눈을 뽑아 든다.
상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보랏빛에 검은 진주가 박혀 있는 불길한 마력의 단검……. 이건, 심연의 성물……."
오히려 내가 조금 놀랐다.
이 녀석 왜 아카샤의 눈을 바로 알아보는 거지? 그건 토착 주제에 심연의 존재도 안다는 뜻인데. 절대 평범한 마법사가 아니다.
그래도 이건 나중에 생각하자. 당장 설명을 아낄 수 있는 것은 형편에 좋다.
"뭘 하려는지 알겠죠?"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심연으로 추방하려는 것이군."
처음부터 클랜 마스터급이면 이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소녀의 영향인지 무엇인지.
정말 철저하게 아슬아슬한 클리어만 가능하도록 맞춰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여기서도 그냥 더스번 경이 싸우는 사이에 계단을 통해 지나가 버린다는 방법도 있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정답은 아니다.
2층에선 어땠던가.
거기서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아카샤의 눈이 아니더라도 세계수 묘목의 일부라도 가져왔거나, 트동트와 좀 더 다른 관계를 구축했거나.
그랬다면 어떤 식으로건 활로가 다시 열리긴 했으리라.
최소한도로 무언가는 얻어 가야 한다.
무시하고 지나가서는 점점 더 힘들어지기만 하다가 결국 전복당하리라.
풀 파밍은 무리라도 진행을 위해서 뭐건 챙겨야 한다.
이번 회차의 짝수 층 난이도는 그 정도 수준이다.
그리고 당장 4층에서 내가 챙길 수 있는 것이라면.
나이트 크로우와의 우호도.
인간의 땅이라면 어디서건 통할 정도의 커다란 이득이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바르바로이의 [핏빛 날개]를 분리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스륵하고 내 오른손에 단검이 나타난다.
정말 잘 써먹고 있는 [점멸 단검]이다.
쿨다운은 돌았다.
파티원들에게 손짓하여 이곳에서 물러나게 했다.
혹여 휘말리게 만들 수는 없다.
사냥꾼이 조용히 모두를 데리고 물러난다.
마법사에게 묻는다.
"우선 저 천장을 다 날려버릴 수 있습니까?"
홀은 무너지다 말았다.
쏟아지던 잔해를 바르바로이가 폭발로 치워버렸지만, 더 위층에서 쓰러진 잔해들이 서로에게 기대며 햇빛을 상당히 차단하고 있다.
마법사는 알아듣는 게 빨랐다.
[파이어 볼]이 날아가고 천장에 난 구멍이 커졌다.
햇빛이 닿는 면적이 조금 더 늘었다.
더스번 경도 이쪽의 의도를 눈치챘다.
햇빛은 뱀파이어에게 피해를 주며, 재생도 막는다.
바르바로이를 견제하는 척 검기를 날려 몇 군데 더 빛이 들어올 구멍을 만든다.
뱀파이어 로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겠지만 막을 틈이 없었다.
전황은 좋지 않게 흘러간다.
지금도 지속된 전투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많은 사람의 피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 회복이 흡혈귀의 소모를 조금씩 따라잡는다.
오히려 사람을 물려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그렇게 지원 중인 병력을 물리면 더스번 경이 고립된다.
진퇴양난이다.
이후 더스번 경은 집요하게 바르바로이를 햇빛 아래로 내몰려고 했다.
다른 나이트 크로우의 대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빛을 쬐는 동안은 회복이 멈추지만, 다시 그늘로 들어가면 깨끗하게 재생한다.
조금이라도 더 큰 출혈을 강요한다.
지금부터는 모두가 생각한다.
햇빛 아래로 뱀파이어가 완전히 노출되냐 마냐가 바로 이 전투의 열쇠라고.
딱, 그 인식이 필요하다.
급박한 와중, 아카샤의 눈의 존재를 지속적으로 의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연막.
심리의 사각.
그리고 하나 더.
[핏빛 날개]
이건 고유 장비다.
본래라면 분리할 수 없는 물건이다.
클랜 마스터가 후대에게 계승할 때만 물려주는 ‘장비’라기보다는 권능에 가까운 무언가다.
정상적으로 취득하려면 저 클랜에 들어가 계승을 받아야 한다.
유배자에게 가능할 리가 없다.
하지만 내가 왜 그것이 실제로는 ‘장비’임을 알고 있을까?
심연의 신의 권능은 그걸 분리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추방의 메커니즘과 뱀파이어의 박쥐 떼가 꼬여서 생긴 버그 아닌가 싶지만 되더라.
이유를 억지로 찾자면 심연이 시간처럼 성향을 나타내는 접미가 붙지 않는 대신격이라서일까.
원래 미궁의 법칙 그 자체인 상위 신격들은 간섭의 폭이 다르다.
일단, 네임드 고유 장비 탈취는 게임 시절에도 불가능하던 짓이었다.
게임이 현실이 되어 달라진 점들이 모두 나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건 아니다.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한다.
어차피 심연은 게임 시절에도 버그가 많던 곳이다.
어떻게 [핏빛 날개]를 먹을 수 있으면 이번 회차에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마침, 신앙도 혼돈이다.
이 게임에서 혼돈 신앙이 정석 플레이인 유일한 종족.
그게 뱀파이어다.
좋아, 정말 오랜만에 설레기 시작했어.
이번엔 정말 날로 좀 먹게 좀 해 주십쇼.
나 뱀파이어 플레이 싫어하진 않는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