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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47화 (47/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47화

6층 - Lv. 95 폭풍 울음 여단(4)

첫 번째 운석이 지상을 파고든 순간, 땅거죽이 그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부풀었다.

터져 나오는 눈과 토사가 수십 미터나 솟구친다.

물 위에 돌이 떨어진 것처럼 대지가 출렁였다.

파문이 채 한 걸음도 퍼져나가기 전에, 다음 운석이 내리꽂혔다.

진동하는 대지에 균형을 잃은 트롤 한 마리가 머리에 맞았다.

퍼석하고 터져나가는 머리통은 그대로 땅거죽의 일부가 되었다.

압도적인 물리력에 머리 잃은 육신이 산산이 분해된다.

터져나가는 모습이 피 주머니가 폭발한 것처럼 잔인했다.

트롤의 잔해가 분무처럼 허공에 번질 때, 이제는 거의 동시에 도착한 다른 운석들이 땅의 품에 안긴다.

세상이 빛과 소리로 지워졌다.

* * *

땅이 흔들렸다.

겪어본 적이 없으나. 이 정도면 진도 7은 가뿐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울림이었다.

소녀는 배운 대로 땅을 파낼 듯한 기세로 손발에 힘을 넣고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이렇게 납작 엎드려 확실하게 붙어 있다면 흔들린다곤 해도 그로 인한 대미지는 받지 않는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놀이동산에서 타본 탬버린 모양의 기구가 떠오른다.

위, 아래, 그리고 좌우, 앞뒤로 온몸이 사정없이 흔들린다.

땅에 처박히고 구릉에 부딪히고 날아오는 돌멩이에 얻어맞고.

온 세상이 악질적인 놀이기구가 된 느낌이었다.

머리도 한 번 크게 땅에 처박은 후에야 주변이 조용해졌다.

멀미가 날 것 같은 고개를 들어 가장 먼저 아저씨를 찾았다.

일시적으로 스탯이 1이 된다고 했다. 반드시 의식을 잃을 것이라고.

그러니 여파로부터 지켜줘야 한다고.

막내에게 맡겨진 임무였다.

소녀의 근력은 충분할지 모르나 체구가 작아서 무리였다.

덩치 큰 거한이 온몸으로 파티 리더를 지켜내었다.

의식 없이 늘어져 있는데 안색이 눈에 띄게 파리하다.

여신이 꽤 위험한 짓이라고 말했다.

괜찮냐고, 성공한 것 맞냐고, 기도를 올렸으나 응답이 없다.

권능을 임의로 조작한 여파로 기절한 것은 마찬가지라고 곧 깨달았다.

소녀의 걱정 어린 시선을 눈치챈 막내가 엄지를 들어 보였다.

본인의 몸을 돌보지 않은 덕에 곳곳에 심한 찰과상을 입은 모습이었다.

소녀가 달려가 병의 액체를 조금씩 끼얹었다.

상처에서 옅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회복된다.

막내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나서야 마법이 작렬한 곳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머리가 깨져 피가 흐르나 보다. 한쪽 시야가 가려졌다.

포션을 찍어서 문지른다. 금세 피가 멈춘다.

지형이 바뀌어 있었다.

주둔지가 있던 평야가 이제는 달의 표면을 연상케 하는 울퉁불퉁한 곰보가 되어 있다.

운석 하나하나의 크기가 작았던 모양인지 크레이터가 크지는 않았다.

그러나 크고 작은 호수들이 잔뜩 생겨날 만큼의 깊이는 되었다.

미처 증발하지 못한 피가, 녹아내린 눈이, 그 속으로 흘러들어 열기를 식힌다.

즉시 기화되어 피시식 하는 소음과 수증기가 솟구쳤다.

화산 분화구라도 생겨난 모양 같아 보였다.

"피해!"

사냥꾼이 소리쳤다.

소녀는 무엇을 피해야 하나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오우거가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으악!"

전력을 다한 옆으로 다이빙. 아예 [대시]까지 곁들이자 금방 거리가 벌어진다.

오우거는, 아니, 오우거였던 것은 끔찍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처박히고 다시는 움직이지 못했다.

이어서 많은 것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충격을 빗맞은 것들은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그 여파에 날아올랐고, 이젠 떨어지고 있었다.

하늘에서 피륙과 대지의 일부가 쏟아져 내리는 것은 진귀한 경험이다.

체감으론 10분 정도 되는 느낌의 시간 동안 잔해들이 흩뿌려졌다.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그 위협이 지나가고 나자 햇빛이 비쳤다.

눈을 뿌릴 준비 중이던 구름이 걷혔다.

이 얼어붙은 땅에서는 오랜만에 볼 수 있었던 태양이리라.

공교롭게도 가장 마지막으로 날아온 잔해는 깃대였다. 퍽하고 강철의 깃대가 바닥에 꽂힌다.

부러진 채 걸레짝이 된 깃발에서 간신히 번개를 형상화한 문양을 알아볼 수 있었다.

폭풍 울음 여단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소녀는 다시 한번, 참상을 보았다.

대지엔 뒤늦게 불이 일고, 암석이 용암이 되어 흘러내리고 있다.

식어서 호수가 되려면 한참이나 걸릴 모양이다.

미리 예정된 대로 사냥꾼이 지휘를 시작했다.

"거기 요정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잠깐 돌봐주겠나?"

고양이 귀가 끔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눈표범들은 요정들이 마법으로 재워두었기에 이제야 어리둥절하게 주변을 둘러보며 깨어나고 있다.

뀽뀽거리는 모습이 퍽이나 당황해 보였으나 곧장 알아듣는다.

창백한 얼굴의 파티 리더를 그중 한 마리의 등 위에 올렸다.

소녀가 호다닥 달려와서 떨어지지 않도록 묶는다.

요정들의 눈치를 살짝 살피자 약간은 겁에 질린 듯한 기색이 보인다.

그 대상은 그들의 파티 리더다.

사냥꾼은 순간 망설였다.

이들에게 맡겨도 될까?

하지만 곧바로 고개를 젓는다. 요정들은 대체로 인간 이상으로 선하고 성실하다.

그루터기 요정이 아니더라도 그 점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걱정을 상대도 깨달은 모양이었다.

"괜찮아. 우리가 너희를 어떻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쓰게 웃는 얼굴 위로 귀가 축 늘어진다.

"대마법사님은 잘 모시고 있을게. 천천히 돌아오도록 해."

귓가에 쨍쨍 울릴 거 같은 톤이 아니라 조용하고 진중한 목소리.

사냥꾼은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 * *

소녀의 체감과는 달리 운석우들의 충돌로부터 아직 3분도 지나지 않았다.

막내가 먼저 앞으로 나선다.

소녀는 그 뒤편에서 방어를 넘어오는 것들을 상대하기 위한 포지션을 잡았다.

사냥꾼은 화살을 시위에 매겼다.

파티 리더가 없는 전투는 처음이나 다름없다.

비록 상대가 만신창이라곤 하지만 쉬운 전투라고 할 수는 없다.

사냥꾼 역시 나름대로의 경험이 있는 유배자다.

끊임없이 느껴온 짝수 층의 심상찮음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주둔지가 통째로 날아갔음에도 그 근처에서 살아남은 병력을 추스르고 있는 주술사들이 그 증거다.

오크 주술사라.

저건 20층 가까이는 가야 나오기 시작하는 놈들인데.

빗맞은 트롤이나 오우거들도 살아 있다.

특히 트롤은 이미 상처 따위는 없었다는 듯 건재하게 움직이고 있다.

사냥꾼이 화살을 쏘았다.

[샤프 슈팅]

주술사의 머리가 박살 난다.

그리고 화살의 마력으로 벼락이 떨어졌다.

천둥소리에 놀라는 동안 계속해서 화살이 날아간다.

리더는 이번에 쟁여둔 특수 화살을 다 써도 좋다고 말했다.

사냥꾼은 다 써도 좋은 게 아니라 다 쓸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다.

거대한 괴물 몇몇이 달려오기 시작한다.

사냥꾼은 오금이 저림을 느꼈다.

정말 할 수 있는 게 맞았을까? 저딴 걸 맞고도 살아서 달려오는 녀석들인데.

마침내 다가온 트롤이 길쭉한 팔을 휘두른다.

막내가 문짝으로 받아내었다. 몇 가지 스킬이 발동하며 무시무시한 괴력을 흘려 넘긴다.

트롤은 인간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튼튼함에 당황했다.

그 틈에 사냥꾼의 화살이 한쪽 눈에 박힌다.

재생한다고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약간의 신경이 무뎌진 순간, 작아서 눈에 잘 보이지도 않았을 소녀가 움직였다.

1층에서 처음 보았을 때도 어딘지 인식하기 힘든 움직임이었다.

미궁의 보정을 더 강하게 받고 있고, 리더로부터 단련 받은 지금은 그저 속도가 눈으로 좇기 쉽지 않을 정도다.

트롤의 목이 반쯤 베였다.

괴물이 고통에 입 벌리며 손을 뻗는다.

기울어지는 목을 다시 원위치로 붙이려고 한다.

짧은 섬광이 몇 번 지나친다.

트롤의 질긴 가죽이 피를 쏟아내었다. 거구가 무릎을 꿇는다.

재생도 살아 있을 때나 일어난다.

소녀가 굴러떨어진 머리 위에 착지했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손을 내밀어 브이를 그린다.

"일단 한 마리!"

사냥꾼은 그만 웃고 말았다.

그래 파티에 정상이 아닌 사람이 하나 더 있지.

* * *

레벨 업 때의 자르르한 느낌은 평소라면 쾌감이지만 힘 스탯 1이라는 극단적인 몸 상태에서는 과한 자극이 될 수 있다.

하물며 한 번에 20 이상이 폭발적으로 울려대면 죽을 것 같다.

뭐라고 해야 할까, 감기 걸려서 온몸이 쑤시고 만신창이인데 자가발전으로 쾌감을 꽂아버리는 느낌?

그걸 스무 배로 곱하자.

어지럽고 추운데 동시에 몸이 몹시도 흔들리고 있다.

그래서 나는 토했다.

"으악! 이 녀석, 아니, 이분, 어. 그게 아니라 음. 대마법사님? 아무튼 토했어!"

"우욱! 냄새!"

"야! 그러다가 혼나! 우리 야영지에 그런 게 떨어질지도 몰라!"

이 호들갑은 잎사귀 요정들이군.

몸이 아주 아무렇게나 묶여 있다. 투박하지만 절대 떨어지지는 않게 되어 있다.

누구 솜씨인지 알 것 같군.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아직 스탯이 돌아오지 않았다. 대강 30분가량 효과가 지속되니 그 이상 지나진 않았을 것이다.

고양이 귀가 대답한다.

"야영지까지 다 왔어요, 조금 천천히 오느라 이제 20분가량 지났을까."

그럼 요정 사제가 마중 나오겠군.

잎사귀 요정의 지도자는 예외 없이 사제들이다.

신관이라고 부르는 다른 종족들과 달리 잎사귀 요정들은 사제라는 명칭을 고수했다.

미궁은 사소한 곳에서 종족별의 문화를 드러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이건 내 입장에선 좋은 점이다.

그들의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내비치기만 해도 대부분의 종족은 유배자에게 너그러워진다.

야영지 앞에 도달하자 묶고 있던 결박을 단검으로 베고 비틀비틀 일어선다.

땅이 울렁인다.

아니, 내 시야가.

힘 스탯 1은 좀 심하긴 하다. 만약 이게 0이 되면 죽는다. 사인은 자신의 체중을 견디지 못해 압사.

그렇다면 1은 자연히 쇠약사할지도 모를 위기 정도는 되는 법이다.

그래도 뭐, 전투가 없는 이상 죽기야 하겠나 싶다.

사제는 아주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맞았다.

따뜻한 천막에 들어서니 한결 몸이 나아진다.

나는 의식을 잃어 알지 못하지만 마력의 파장은 멀리까지 퍼져나갔으리라.

사제가 그것을 감지하지 못했을 리는 없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유성은 장관이다. 하늘에서 내리꽂히는 마법은 육안으로도 잘만 관측되었을 게 분명하다.

사제의 태도가 한결 공손하다.

"신께 들었습니다. 유배자 중에서도 주목받고 계시는 분이라 하시는군요."

"주목?"

주목받을 일을 했던가? 잠깐 생각을 해본다. 내가 했던 일 중 요정과 관련된 일.

흠, 2층에서 오크의 전력에 어느 정도 손실을 주긴 했다.

하지만 4층은 전혀 연관이 없었고.

자연과 순결의 신이 내게 주목할 이유는 딱히 없다.

하지만 신이란 것들은 원래 제멋대로다. 당장 우리 여신님만 해도 항상 투덜투덜 불만이 많으시니.

대량의 신도를 거느린 힘 있는 신이라면 일단 그런갑다 하고 납작 엎드리는 편이 좋다.

원래 팩션 우호도 관리의 핵심은 신과의 친목질이다.

[자연의 신이 그대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흥. 그래 봐야 안 넘어가지. 자연을 섬기는 뱀파이어라니 어찌나 어색한가.」

‘여신님은 좀 조용히 하십쇼. 신언은 들리지 않습니까.’

「쟨 나 같은 하꼬신한테는 관심 없을걸?」

‘하꼬라는 말은 또 누구한테 배웠습니까?’

「그놈은 저 녀석한테 넘어갔어.」

‘그건 애석하군요.’

그런데 감사씩이나 표한다고? 방금의 [미티어 스웜]이 숲에 작렬하기만 했어도 지랄했을 거 같은데.

숲이 없는 툰드라 지대라 망정이지.

어쨌건 지금은 합당한 예의를 표하자.

지금보다 요정 그룹의 우호도를 쉽게 올려둘 방법은 달리 없다.

2층의 시신이 미궁의 시스템적으로 발견처리 되더라도 그건 우발적인 사고였다고 우길 만큼의 신뢰를 쌓으면 된다.

그린스킨을 완전히 저버린 이상 요정이라도 잡아야 하는 법.

나는 사제 앞에서 지난 세월 동안 갈고 닦은 요정의 예법을 취했다.

약지와 소지를 접은 채 오른손을 심장 위에,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며 무릎을 꿇고, 허리는 20도가량 숙인다.

왼팔을 받들 듯이 들어 올리며 정자세를 유지.

사제가 침묵하더니 내 왼손을 잡아 일으켜 준다.

이제 일어서서 묵례.

이건 고대 요정의 예법이다. 외부인인 남자가 지체 있는 요정 여성을 처음 볼 때의 인사.

당연하지만 요정 제국이 붕괴한 후에는 신이나, 신을 섬기는 자들만 기억하고 있다.

실제로 사제는 조용히 베일을 걷었다.

순결의 신을 섬기는 사제가 얼굴을 드러낸다는 것은 완전한 신뢰를 뜻한다.

"과거에 우리의 동지였던 분이시군요."

"지나긴 일이지만 어찌 마음 한편에 같은 생각이 없겠습니까. 다시 뵙고 도움이 되어 기쁩니다."

"당신을 환영합니다."

[자연의 신이 놀라워합니다.]

「너 진짜 여기서 갑자기 갈아타는 건 아니지?」

‘혼돈이시여. 좀 진정하십쇼. 안 그럽니다.’

앞으로는 요정의 우군으로서 행동한다.

덤으로 난쟁이 마을도 다시 가서 생색 좀 내고.

성녀와 트동트에 대해서는 교섭은 포기한다.

힘으로 어떻게든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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