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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62화 (62/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62화

8층 - Lv. 159 여단 본부(7)

기술력의 격차는 그 무엇보다 안전하고도 강력한 화력 투사를 가능하게 해준다.

사냥꾼은 몹시도 아까워했으나 나는 그냥 여기서 대부분의 총탄을 소비하기로 했다.

총이라는 게 그 자체적 성능에 의존하는 바가 참 크다.

잘 통하는 적에게는 세상 사기지만 박히지 않는 적에게는 암만 때려 박아도 피해다운 피해를 주지 못한다.

활은 더 세게 쏠 수 있지만 총은 더 세게 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수비를 맡은 수비대장들의 지휘는 대체로 정확했다. 이 성은 인간의 나라 외곽, 이종족 인접 지대에 위치해 있는 만큼 정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올라오는 애들만, 그리고 치명적인 애들만 노려. 트롤은 쏘지 마. 그리고 오크랑 오우거도 반드시 머리를 쏴. 두꺼운 근육 때문에 몸은 치명상을 못 입힐 때가 많아."

"저 총 처음 쏴보는데 괜찮은 걸까요?"

"아까 연습했잖아."

엎드려쏴를 시킬 환경은 아니지만 PRI는 확실히 시켰다.

"총이란 게 냉병기를 밀어내고 주류를 차지한게 다른 이유가 아니야. 다루기 쉬워서야."

"저 오히려 활은 쏴봤는데. 나름대로 잘 쏜다구요."

"너희 집은 진짜 왜 화기가 금지니?"

"그러게요."

몰려드는 오크들의 머리에 한 발씩 박기 시작한다.

나는 활을 들었다. 옆에는 거치된 대물 저격총이 있다.

사냥꾼은 조금 아쉬워했지만 돌격 소총 사수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게 생각하는 듯했다.

막내는 오히려 씨익 웃으면서 만지작 거렸다.

"AK가 더 손에 맞긴 하지만. 이건 그 K 뭐시깁니까?"

"오, 한국 총이지. 알아?"

"쏴봤습니다."

"거기도 한국 총이 흘러들어가?"

"그럼요. 온 세상의 무기가 다 모이는 곳일 겁니다."

평행 지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꽤 재밌는 일이긴 하다.

이제 슬슬 자기 이야기를 좀 더 해도 되는 사이가 아닐까 한다.

소녀는 우려와는 달리 곧잘 쏴 맞추었다.

"이거 생각보다 쉽네요? 대충 쏴도 맞아요!"

그야 이 녀석 신체능력을 생각하면 말이지.

총기 레인저의 자질은 그냥 시력과 침착함 그 이상은 없다.

물론 극에 달한다면 건카타 같은 거도 할 줄 알아야 하니 이야기가 다르지만, 누구든 그냥 쥐여주면 쉽게 살상력을 발휘한다는 점이 아주 훌륭하다.

총만 구하면 된다 총만. 안정적인 총탄 수급처도 구하고 말이지.

"그런데 이거 아깝지 않습니까?"

막내가 조심스레 묻는다. 그러면서도 사격은 빗나가지 않는 것이 아주 그냥 숙련된 사수다.

사다리를 걸치던 오크들이 머리에 총탄을 맞고 나자빠진다.

"전설을 만들어둘 필요가 있으니까. 지금 주변에 다들 기겁한 거 보이지?"

"오우."

아군일 병사들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훈련받은 나이트 크로우의 궁수들 역시 마찬가지다.

유배자에 대한 좋은 소문이건 안 좋은 소문이건 이런 식으로 퍼져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편인 유배자는 착한 유배자다.

마력이 확 피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몇 명의 주술사들이 성문 위에서 치명적인 위력을 내고 있는 우리부터 제거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요정 마법사도 캐스팅을 끝마쳤다.

손뼉을 친 후 팔을 벌리자 손 사이를 노니는 전격이 맺힌다.

"주술은 마력 간섭을 할 수가 없으니 참. 피곤하이."

이 양반 실력이라면 여기서 째려보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마법 공격을 무효화하겠지만 그린스킨의 마법직은 거의 주술사뿐이다.

번개가 내달린다. [체인 라이트닝]은 먼 곳에서 함께 거대한 불덩이를 만들어내고 있는 주술사들을 구워버렸다.

그러고도 끊임없이 새로운 탄착점이 생겨나며 진영을 헤집었다.

나는 그 혼란을 틈타 사격을 했다.

대주술사급은 보통 지휘관도 겸한다.

전선에 나서 큰 규모의 방어막을 치려던 대주술사 하나가 방어막째로 터져 나갔다.

지휘관급만 몇몇 저격하자. 그린스킨은 이런 일로도 사기가 떨어질 리는 없는 족속들이다. 하지만 멍청한 것만큼이나 지휘 체계가 마비되었을 때의 지리멸렬함도 커진다.

주술사급이나 오크 지휘관급들이 하나둘 쓰러지자 그래도 어느 정도 대열을 갖추고 전진하던 트롤들이 마침내 폭발했다.

크와아아악!

옆에 있는 오크들을 집어던지기 시작한다. 우스운 점은 이게 또 묘하게 효과적이란 점이다.

날아온 오크 중 반절은 죽었으나 나머지 반은 신이 나서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냉병기를 들고 대기하던 병력들이 교전을 시작했다.

성벽 위로 끊임없이 오크들이 투척된다.

고블린들은 전날 밤 습격에 모두 전사한 모양인지 보이지 않는다.

미처 막아내지 못한 적의 마법 또한 작렬한다. 불길과 번개가 성벽의 일부를 훑고 지나갔다.

구멍이 난 곳을 메우러 나이트 크로우의 인원들이 달려간다.

오크들이 사다리를 걸치는 것을 소녀가 희희낙락하며 방아쇠를 당긴다.

사다리가 기우뚱하더니 쓰러졌다.

"총신 과열 주의하고."

강제 냉각은 무기 수명을 깎아 먹지만 총기는 어차피 탄 수급이 문제인 무기다.

마법으로 식히며 혹사해도 무방하다.

다 쓰고 나면 어딘가 파묻어두자.

트롤 몇몇들이 모든 공격을 무시하고 육탄 돌격한다.

들고 있는 아름드리나무는 그 자체로 공성추와 다를 것이 없다. 서넛의 트롤이 성문에 살아서 도달했다.

찌르듯이 밀어 넣는 고목이 성문에 가 부딪힌다.

영주 휘하의 마법사들이 방어막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마력이 일그러질 정도로 집중된다.

트롤들은 격렬하게 고목을 휘두르다가, 부러지자 내던지고 주먹질을 시작했다.

"저 총알 다 떨어졌어요! 으랏챠아!"

소녀가 날아오던 오크 하나를 날아 차기로 날려버리며 내 옆에 착지한다.

나는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성문이 위험해 보이는데. 트롤은 6층에서 많이 상대해 봤지?"

운석의 여파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들은 거의 대부분이 트롤이었을 것이다. 잔당을 정리했던 소녀는 트롤과의 싸움을 아주 많이 겪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럼요! 저 못생긴 녀석들의 목을 따고 오면 되는 거죠?"

"그래. 엄호한다."

나나 요정 마법사는 계속해서 전투를 유지할 체력이 부족하다. 소녀는 그런 면에서 결코 지치지 않는다.

위험하다면 내려가겠지만 여러 가지 포화를 뚫고 달려올 수 있는 녀석들은 거대하고 둔한 괴물들뿐이다.

마법으로 요격당하는 것만 막는다면 마음껏 날뛰리라.

"저도 내려가면 되겠습니까?"

막내가 불안하게 소녀를 바라본다.

"아니, 너는 큰 거 날아오면 막아야지."

때마침 거대한 화구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트동트가 단독으로 만들어내었던 것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을 정도의 원소 덩어리다.

"저거 막아내라!"

"막아지는 겁니까?"

"방패 재질이 좋아서 가능해!"

성벽을 녹여버릴 생각인지 천천히 다가오고 있다.

나와 막내가 함께 그 방향으로 달려갔다. 성벽이 통째로 녹아 구멍이 생기면 이 성은 무너진다.

백병전이 시작되면 인간은 이길 수 없다.

태양이 하나 더 떠오른 것같이 후끈한 열기가 닥쳐온다.

수비대장에게 말해 병사들을 물렸다.

어차피 그린스킨들도 이 방향으로는 접근할 수 없다.

아군 마법사들이 절망적인 표정이었다.

막내가 [방벽]을 일으킨다.

[파이어볼]과 달리 주술의 화염구는 폭발 대신 지속적인 열량을 투사하는 종류다.

나는 막내가 벌어준 시간 동안 최선을 당해 주술을 약화시키고 통제를 빼앗아왔다.

상대 주술사들의 통제에 혼란이 발생함이 느껴진다.

화구가 점차 흐릿해졌다.

「주술도 할 줄 아나?」

‘혼돈이시여. 전 못 하는 게 없습니다.’

내가 거의 녹초가 될 정도로 노력한 끝에 성벽은 녹아내리지 않았다.

되돌려 줄 수는 없었다. 여러 주술사들이 합세한 공격을 최대한 흩어 약화시키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능력치로는 힘이 달린다.

7층에서 노획한 싸구려 지팡이가 빠직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제길. 유일하게 마법사다운 점이었는데.

막내는 저번에 그랬듯이 온몸에 화상을 입었으나 씩씩하게 포션을 들이켠다.

방패가 너무 달아올라 조금 내려놓고 식혀야 했다. 내구도가 슬슬 위험할지도.

"푸하, 죽겠네."

수비대장이 달려와 급하게 치하했다.

다른 곳에서 또 이런 공격이 벌어지지는 않고 있다.

요정 마법사가 제때 요격하고 있는 덕분이다.

그린스킨들이 마침내 물러났다.

시체의 산, 피의 바다라고까지는 하지 않겠으나 녹색 피부의 괴물들은 엄청나게 피를 흘렸고 소득은 없었다.

소녀가 후다닥 성벽을 타고 올라왔다.

지금 저 녀석이 잡은 트롤만 스물 가까이 된다.

땀을 닦는 수비대장을 향해 말했다.

"안심하지 마. 끝이 아닐걸?"

고블린을 모두 소모했다. 그린 스킨은 기필코 오늘 끝낼 생각이다.

뿌우우우 하는 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린 스킨의 주둔지로부터 무언가 달려오기 시작했다.

"저게 뭡니까?"

"몬스터로군?"

"아니……."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니리라. 지금 오크 제국이 자리 잡은 땅은 대륙의 정중앙이다.

호수 정도 말고는 물이 없는 곳.

그런 곳에 서식하는 몬스터들이 있다.

사족보행을 하는 거대한 도마뱀. 아니 그냥 공룡이다.

뿔이 난 공룡들이 달려온다.

그 위에 못지않게 거대한 괴물을 태우고.

"라이딩 트롤이라니. 세상에."

"좋아, 아직은 할 만해. 아직은."

이건 슬슬 뱀파이어들이 죽을 각오를 하고 나와 줘도 힘들겠는데.

살아는 나가야지. 후퇴각을 재고 있자니 요정 마법사가 신음했다.

"이건 정말 큰일이군."

보는 방향이 하늘이다. 나도 신음했다.

"와이번 라이더? 선 넘네."

트롤은 너무 무거워서 타지 못한다. 와이번에 올라타는 것은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오우거들이다.

앞 다리가 없는 드래곤의 아류들이 크게 날갯짓을 하며 날아온다.

입에는 벌써 불의 원소가 넘실넘실 흘러나오고 있다.

수비대장들이 비통하게 소리쳤다.

"모두 엄폐하라!"

순식간에 도달한 브레스의 불길이 성벽 곳곳을 크게 가로지른다.

꿋꿋이 맞서 응사하는 궁병들이 있었으나 모두 구워졌다.

요정 마법사가 비명을 지르다시피 마법을 쏘아냈다.

와이번 하나가 날개에 구멍이 나 추락한다.

타고 있던 오우거가 사선으로 내리꽂히듯 낙하했다.

덮쳐오는 불길을 보며 요정 마법사를 안고 뒹굴었다. 몸을 날린 자리를 화염이 달군다.

이미 주술에 의해 달구어진 성벽이 더욱 달아오른다.

와이번들 상당수가 브레스를 뜨겁게 달아오른 성벽에 집중하는 것이 보였다.

"빨리 빠져나가죠."

"안 돼! 젠장! 안된다고! 마법의 신이시여! 젠장할!"

요정 마법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권능이 일어난다. 마법의 신이라고?

증폭되는 마력이 온 사방을 덮는다.

"유배자인 거 들키면 안 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지금 그게 중요해 보이나?"

냉기의 방어막이 성벽을 감싼다.

나이트 크로우의 궁수들도 몇몇이 놀란 눈으로 이쪽을 돌아보고 있다.

직접적으로 성벽을 냉각하려고 했다가는 열수축으로 깨져버릴 것이다.

별수 없이 나도 힘을 보탠다.

하지만 이건 좀 아닌데. 이미 전황을 글러 먹고 있다.

전쟁의 신이 얼마나 노한 거지? 선전 포고는 좀 과했나?

아니지, 본질적으로 열 받은 이유는 카크리쉬의 사망이다.

내가 건드려서 여길 쳐들어온 건 아니잖아.

대체 어느 똥통에 처박아 익사시킬 녀석이 카크리쉬를 이렇게 빨리 조져서 오크 제국을 열 받게 한 거야.

짝수 층의 운빨은 이것도 참 문제다. 나 말고 다른 유배자가 무슨 짓을 하는지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내 손을 떠난 일이다.

2층에서 카크리쉬를 깨우는 걸 방해하지도 말아야 했는데.

트동트가 얌전히 영웅을 기리는 의식까지 치르게 내버려 두었다면 온전 1,000레벨 [히어로 유닛]이었을 거고 그러면 죽지도 않았을 거다.

하, 빌어먹을 정말.

여신이 속삭인다.

「조금만 더 버텨봐. 교섭 중이니까.」

처음 듣는 말이다.

"교섭 말입니까? 무슨?"

「자연의 신은 나보다 더 많은 권능을 행사할 수 있을 것 아니냐.」

무슨 소린지 파악하기 이전에 이 여신이 뭘 하려나 싶었다.

‘지금 자연의 신에게 빌고 있습니까?’

「이런 젠장, 그렇게 표현하지 마. 맞는 말이긴 한데. 너도 그 녀석 마음에 들었지 않냐.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그놈에게 머리라도 숙여야지.」

‘그렇게까지 안 해도 괜찮습니다. 대체 왜 그러십니까? 우린 그냥 도망치면 되는데.’

「너희 파티의 소녀 말이다. 행운이 엮여 있겠지? 그런 걸 데리고 다닌다면 지금 입지를 안 다져두면 나중에 위험할 텐데.」

말은 그렇게 해도 충분히 곤란한 상황이 아니냐는 뜻이었다.

여신은 그 말을 끝으로 침묵했다.

맵 리롤 정도가 아닌 이상 혼돈의 권능으로 어떻게 될 상황도 아니고. 맞는 말이긴 하다.

혹시 짝수 10층을 고려하고 계신가?

보스 짝수 층, 지금까지의 경향으로는 어떤 게 나올지 도저히 알기 힘들 정도의 난관이다.

다른 파티의 도움은 의미가 없다. 여기서 업적을 만들어두고 미궁 주민의 협력을 얻어야 한다.

나이트 크로우 펜던트를 그때 쓸 생각이긴 하지만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젠장, 이 상황을 어찌 해석해야 하지? 신에게 이 정도까지 호의를 받아본 적은 없는데.

그런 와중에도 착실하게 냉기의 방어막은 뚫려가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린스킨의 공룡 기마대도 도착하기 직전이다.

성벽에 구멍이 뚫린다면 그 자리로 열기를 무시하고 돌입할 생각이리라.

융해되어 녹아내리는 암석을 아랑곳하고 강행 돌파하며 돌입하는 공룡 탄 트롤이라니.

우리 편이면 가슴이 웅장해질 장면이다.

나는 여신에게 부르짖었다.

‘파티원들 빨리 뒤로 빠지라고 좀 전해주십쇼. 이건 도망가야 합니다. 여긴 뚫려요.’

「있어봐. 자연이 드디어 오케이 했다.」

‘예?’

신성력이란 것은 마력과는 또 다른 힘이다.

결국 마나를 기원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신의 색깔이 아주 진하게 묻어나고 만다.

공간이 크게 울렸다.

거대한 권능이 작용할 때는 언제나 공간이 진동한다.

미궁의 신은 회차를 초월하지 못할 뿐, 시간과 공간을 넘어 그 어느 곳에나 동시에 존재한다.

시야가 닿지 않더라도 매개해 주는 다른 신의 신도가 있다거나 한다면 발현한다.

「잠깐 너를 빌려주기로 했다.」

그 말을 끝으로 혼돈과의 연결이 끊어졌다.

대신 6층에서 사제의 손을 잡고 보았던 메세지가 내려온다.

[자연의 신이 당신을 돕고자 합니다.]

나는 자연의 신을 섬긴 적이 있다.

이게 무슨 권능인지는 안다.

몸 주변을 휘감는 신성력의 여파를 신의 뜻대로 흘려보낸다.

[자연의 신이 당신의 능숙함에 흡족해합니다.]

아지랑이처럼 녹색의 물결이 흔들린다. 흔들리던 공간에 전장이 멈춘 것처럼 보였다.

오우거들도 트롤들도 모두 함성을 멈추었다.

수비병들도 입을 다물었다.

날아가던 화살마저 멈춘 듯했다.

신이 이곳에 임하고 있다.

자연의 권능은, 여러모로 유틸에 특화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편리하고 유용한 힘은 숲이 있는 곳이라면, 대자연의 기운이 머무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신도가 이동할 수 있는 [숲의 길]이다.

나무가 자라난다.

달려오던 트롤과 공룡들 사이에 나무들이 우후죽순 솟았다.

부딪혀 쓰러지고 구른다.

덩굴이 얽히며 쓰러진 트롤들을 옭아맨다.

자연의 신이 지켜볼 때, 그 권속과 숲에서 싸우는 것은 자살행위다.

한순간 찬연한 녹색 기운이 감도는 울창한 숲이 조성되었다.

그리고 나무가 갈라지듯 비켜서 길을 만들었다.

정령들이 춤추기 시작했다.

불과 얼음, 바람과 대지가 아련하게 흔들린다.

마법도 발현하기 시작한다.

붉은 화염과 푸른 냉기를 손끝에 맺은 채 귀가 뾰족한 요정들이 걸어 나온다.

그 뒤에 정령을 한 마리씩 데리고 동물 귀의 요정들도 나타난다.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 상황이 호전되었다는 것보다도, 혼돈의 여신이 대체 자연의 신에게 무엇을 약속하고 이런 지원을 받아내었는지가 걱정이었다.

연결이 끊어진 여신께 물을 수는 없었다.

[자연의 신이 전쟁의 신에게 전쟁을 선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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