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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71화 (71/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71화

8층 - Lv. 195 요새 사령관(2)

신을 해본다면 알 수 있는 것인데, 신들끼리는 커뮤니티라고 부를만한 것이 있다.

100년의 시간을 넘어 신좌에 도달한 전설적인 유배자들.

그리고 다시 영겁의 세월 동안 무수한 세계를 겪으며 그곳을 다스리는 신으로서의 삶.

한 번 신좌에 앉으면 다시 일어설 방법은 많지 않다.

도전자가 나타나 자신을 꺾거나, 스스로 도전자에게 신좌를 넘겨야만 한다.

대부분은 전자이지만 애초에 도전자가 나타나는 일도 드물다. 신이 패하는 일은 더욱 드물다.

신이란 하나의 회차에 아득한 세월 동안 묶여 있는 죄수다.

그런 이들 사이에 친목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이상하리라.

다만 어떠한 종족의 종족신이나 다름없는 몇몇 신좌끼리는 서로 사이가 나쁘기도 하다.

신도끼리 적대하는 역사를 쌓아왔으니 신들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앉았던 신좌는 그런 것에서는 자유로운 편이었다.

애초에 신좌에 앉은 목적부터가 내 입맛대로 내 신도들을 육성해서 최강의 군단을 만들어보자 뭐 대충 그런 거였는데, 실패한 이유가 다른 신들의 견제였다.

어느 한 세력이 지나치게 커지면 다른 신들은 연합을 한다.

그만큼 신들의 사회는 생각 이상으로 긴밀하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신이라는 직함과 신좌로부터 발하는 권능, 그리고 신도들로부터 말미암은 영향력.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한 단계 높은 존재인 것 같은 신이라 해도 결국은 유배자이며 인간이다.

세속적이라 실망하기에는 애초부터 별다를 것 없는 사람들이다.

[자연의 신이 당신의 계략을 아주 훌륭하다 칭찬합니다.]

‘별말씀을요.’

대장 고블린은 따로 설득할 필요도 없었다.

나 역시 그린스킨 팩션의 소속으로 활동하며 느낀 것인데, 야성신의 고블린들은 어딜 가나 불만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

건드리면 툭 터지는 풍선이라기에는 절대적인 전력 차이가 너무 크기에 억눌려 있을 뿐이다.

물론 의심받았다.

정말로 고위 암살자라면 고블린일지라도 높은 입지가 보장된다.

노예계층에서 탈출하여 오크나 오우거를 부리는 입장이 될 수도 있다.

애초에 암살자도 절대적인 레벨 격차가 크면 트롤 전사고 뭐고 그냥 마주 싸워 이긴다.

그런 고블린은 전쟁신의 총애를 받으며 제국의 수도에 머물게 된다.

일개 여단의 암살자로 지낼 리가 없다.

그러니 대장 고블린의 의심은 타당했다.

하지만 때로는 합리나 개연성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속삭였고, 보여주었다.

고위 악마가 인간과의 계약을 위해 후려치듯이 고블린의 작은 사고관에 새로운 발상을 불어넣었다.

이 요새를 함락시키고, 너희들을 천대하는 신을 버리지 않겠냐고.

"하지만 신을 등진다면 천벌이 내린다."

신이 실재하며, 권능을 휘두르는 세상.

날 때부터 그런 곳에서 태어나 전쟁의 신도인 부모 밑에 자라고, 전쟁의 신도뿐인 환경에서 생활했다면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 이외의 세계란 없는 것과도 다름없으니까.

그러니 묻는다.

자유와 혼돈의 여신에 대해 아는가?

수염이 덥수룩해질 정도로 오래 살아온 대장 고블린은 그의 삶 한구석 귀퉁이에 놓아두었던 사실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자유를 노래하는 혼돈의 신……."

오는 신도를 거절하지 않으며 가는 신도 또한 붙잡지 않는다.

자유 접미는 대륙의 주민들에게는 그런 식으로 인식된다.

그 신도는 어디에나 있으며 어디에도 없다. 자유로이 대륙을 방랑하는 이미지다.

뭐, 혼돈이 자유를 달고 있다면 보통은 말라 죽어가지만.

그건 유배자들의 인식일 뿐이고.

게임적으로 자유 접미를 가진 신은 신도가 떠날 때 징벌할 수 없다.

하지만 반대로 다른 신의 신도가 자유의 신에게 넘어갈 때도, 신도에게 징벌을 내리지도 못하게 막는다.

그야말로 ‘자유’의 신인 셈이다. 신앙의 자유.

늙은 고블린이 감격으로 몸을 떨었다.

그의 작은 뇌가 팽팽 회전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지는 물을 필요도 없다.

"혼돈의 신께서 우리를 받아주는가?"

"물론이다. 대신관의 이름으로 약속한다. 케륵."

게임 끝.

* * *

정말 우스운 일이다.

실질적으로 이 요새의 모든 물류와 행정을 처리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는 고블린들이 정작 노예계층이라니.

물론 비교적 군사적이며, 중대한 내용은 오크 주술사들이 처리하곤 한다.

요새 사령관은 트롤답게 힘자랑에만 관심이 있지 행정적인 부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특별히 게으르고 무능하다기에는 이 요새 자체가 변방의 한직에 가까울 테니 어쩔 수 없다.

중국의 역사에 빗대자면 인간은 대륙 변방의 야만족이며 천명을 쥐고 있는 중원의 패자가 그린스킨이다.

조금 멍청한 젊은 트롤이 이 요새를 맡고 있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고블린들에게 장기간 누적되어온 불만은 내 상상조차 초월했다.

"오……, 이건 정말 진심인가?"

"무섭네요. 고블린……."

독을 다루는 것은 고블린의 종족특성에 가깝다. 암살자가 천성인 것도 그 덕이다.

본능적으로 생명체에게 해가 될 만한 조합을 알아낸다.

물론 이 척박한 땅에서 구할 수 있는 독은 많지 않았다.

"흠, 똥독이라니."

인분이 얼마나 독한지 아는가. 생식한다면 정말로 독살당할 수도 있을 수준이다.

고블린들은 기꺼이 거름이 되기 전의 똥들을 퍼서 식사에 넣었다. 인분은 아니지만 그린스킨의 배설물이 더 독하면 독하지 덜할 것 같지는 않다.

독에 정통하니 그것을 더 치명적으로 만드는 법을 아는 녀석들도 있었다.

주로 암살자 출신이었다.

폭풍울음 여단의 탈영병인 암살자들은 이미 나와 파티원들이 진짜로 여단의 탈영병이 아님은 깨달았다.

내 계획은 상당히 급조였으며, 허술한 부분이 많으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미 고블린들에게 그 사실은 아무래도 좋은 것이었다.

적어도 우리 파티가 혼돈의 신을 섬기는 것만은 진실이었기에.

날 때부터 신이라는 굴레를 지고 핍박받으며 살아온 이들의 분노다.

[자연의 신이 전쟁의 신은 트롤이라 특히나 고블린을 홀대했다고 일러바칩니다.]

이 양반도 태도가 조금 이상해지기 시작한다.

[자연의 신이 당신을 지켜보는 것이 아주 즐겁다고 합니다.]

그야 뭐. 어지간한 고참이라도 이런 식의 생각을 해보기만 하지 실행하지는 않는다.

미궁 내에서 경험적으로 얻을 수 있는 지식과 바깥의 정리된 게임적 지식은 다르다.

‘가능할까?’와 ‘가능하다.’의 차이는 크다.

내가 언제나 신의 총애를 받게 되는 것은 이런 부분도 크다.

유배자로서 100년을 채운 후에도 무수한 유배자를 신도로 받아 살아가는 신들이다.

그런 신들이 보기에도 나는 기상천외한 짓을 많이 하는 것으로 보이는 게지.

‘자연이시여, 아직 끝이 아닙니다.’

고블린들이 알아서 준비하는 동안 재능이 있는 어린 녀석들을 추렸다.

이 요새에도 새로 태어난 어린 고블린들은 많았다.

모아두고 하나하나 체크한 결과 마법적 재능이 뛰어난 쌍둥이가 하나 있었다.

사령술을 가르치자. 오늘 하루 속성으로 기본만 주입하는 것이니 제대로 구사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 재능이라면 종족적 특성과 결부하여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발전할 수 있으리라.

전쟁과 죽음의 신 아래에 있는 고블린과 야성의 신 아래에 있는 고블린은 다른 존재가 아니다.

사령술에 능한 고블린 주술사는 제대로 가르친다면 이 대륙에서도 만들어낼 수 있다.

대항할 의지만 심어주고 끝낸다면 내가 없을 경우에는 피시식 하고 꺼지는 잿불에 불과하다.

고블린들에게 미래를 대비할 힘을 길러 나갈 수 있게 밑바탕을 깔아준다면, 변방의 요새에서 시작된 불길이 활활 크게 번져나가리라.

[자연의 신이 어서 가서 그린스킨의 나라를 무너뜨리라고 응원합니다.]

[자연의 신이 손뼉을 치며 좋아합니다.]

전쟁의 신이랑 원래부터도 사이가 정말 나빴던 모양이다.

왕국 이후에 접하게 될 다른 서버들의 꼬라지가 아주 볼 만하겠다. 거기서 대판 싸워대고 있으니 사이가 이 모양이겠지.

* * *

불과 하루 만에 다음 새벽 시점으로 결행일이 결정되었다.

그 바람에 우리는 남은 폴리모프 포션을 거의 소진했다. 이제 넷이서 쓸 정도의 양은 없다.

비상시에는 도시로 잠입해 어떻게든 살아서 다음 계단에 도달하는 용도로 쓰려고 했는데 일이 너무 잘 풀렸다.

소녀가 혼돈께서 얼마나 어처구니없어했는지 전해왔다.

「중간에서 누가 지휘하듯 방법을 제공하고 앞장서버리니 일사천리로구나. 바깥에서는 무슨 붉은 혁명의 주역이었니?」

‘어허, 큰일 날 말씀을 하시는군요. 저는 자본주의를 사랑합니다. 그런데 그런 건 또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먼 옛날 내 신도 중에서 볼셰비키가 어쩌고 하는 소리를 하루 종일 하는 녀석이 있었지.」

‘별의별 사람이 다 있군요. 살아 있습니까?’

「수십 년 전에 죽었어.」

뭐 그러시겠지. 특정 사상이나 신앙에 심취한 이들은 대부분 미궁에 적응하지 못한다.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아 새사람이 되거나, 난민이 되어서조차 적응하지 못하고 경원시되다가 삶을 마치지 않을까.

미궁에서 그런 것은 아무 쓸모가 없는데도, 바깥에서의 삶을 버리지 못하는 유형들이다.

이건 솔직히 이해는 못 하겠다.

대장 고블린은 지식이 없을지언정 지혜는 있었다.

실질적인 진행은 모두 자신이 했으나, 여기서 대표로 나서는 것이 늙어빠진 노인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혼돈의 사도여. 네가 앞에 나서는 것이 가장 모양이 좋다. 영웅은 잘생겨야 한다."

해가 지고, 고블린과 초병이 아닌 대부분의 병력들이 잠을 자거나 자기들끼리 사소한 싸움이나 일으키고 있다.

조그맣고 약한 고블린이 밤늦게까지 오크나 오우거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고블린들이 무리 지어 어디론가 향하고 있음을 깨달은 이들조차 개의치 않았다.

그들에게 고블린이란 약해빠진 주제에 위대한 제국에 기생하는 거머리 같은 것들이다.

모아두고 보니 고블린의 숫자는 엄청나게 많았다.

이들은 이제 모두 내 사연을 알고 있다.

사실 나도 잘 모르는 사연이다.

내가 적당히 꾸며낸 것에 살이 덧붙여졌다.

마지막으로 고블린을 했던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나와 달리 대장 고블린은 노련하게 나를 영웅으로 포장했다.

비극을 만들어내고 사연을 깔았다.

본디 내가 하려던 작업이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대장 고블린은 이 모든 작업을 그 짧은 시간 동안 끝마쳤다. 이미 이 요새의 고블린들을 장악하고 있던 그의 입지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솜씨다.

"이 정도면 가만히 내버려 두었어도 언젠가는 터지지 않았겠습니까?"

"아니지, 그렇게는 되지 않아. 물론, 속으로는 백 번 천 번 더 생각하고 고민해 본 흔적이 느끼는 실행력이긴 하지만…… 이 땅에는 신이 있으니까."

"주님이 계시면 사탄 또한 있는 법이지요."

"사탄은 악마 네임드야."

막내가 빙긋 웃었다.

"비유입니다. 전쟁의 신이 우리 여신님 반만큼만 자애로우셨다면 어땠을까 합니다."

소녀의 표정이 괴상해지는 것을 보니 여신님께서 신언으로 파닥거리고 있는 모양이다.

급조된 단상으로 올라선다. 무수히 많은 고블린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솔직히 이 정도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쉽게 날로 먹었다.

좀 꼬드겨보다가 안 되면 집어치우고 날라버릴 생각이었다.

뭔가 미래의 내가 안배한 것이 있겠지 하면서.

그런데 아주 잘 풀렸군. 혹시 미래의 나는 8층에 파티원을 보내지 않았을 수도 있나?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는 않을 거다. 당장 이 요새를 함락시킬 수 있냐도 아직 확실치 않다.

처음의 급습 이후에 전황이 어떻게 돌아갈까?

고블린들이 승리할 수 있을까?

아직 모르는 미래다.

그 불안은 지금 모여 있는 고블린들에게도 존재할 것이다.

나는 단상 위에 올라서서 말했다.

고블린의 성대로 최대한 위엄 있는 중저음으로, 마법적 연출은 필요 없다. 분위기는 충분히 고조되어 있다.

첫 문장은…… 그래.

"동지들이여! 혁명의 때가 왔노라!"

* * *

"아저씨 혹시 바깥에서 사이비종교 교주였어요?"

"바깥이 아니라 미궁에서 해봤는데."

"저 완전 넘어갈 뻔했어요. 고블린 얼굴인데도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이미 넘어왔잖아."

"고블린 아저씨한테는 안 넘어갔었어요!"

[자연의 신이 소녀의 풋풋함에 흐뭇해합니다.]

보나마나 혼돈께서도 비슷한 반응이시겠지.

"일단 우리가 할 일은 요새 사령관을 잡는 거야. 그놈만 죽이면 어떻게든 된다."

"어차피 그린스킨들은 지휘관의 유무는 크게 안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건 맞는데 지휘관이 제일 센 놈이라 그래."

"그 용암망치 대대의 대대장이라는 트롤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요새 사령관 열 놈이 덤벼도 대대장 하나를 못 이길걸."

사냥꾼은 그것을 누가 얼마나 강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혼란스러워 보였다.

"대대장이 엄청나게 강한 거야. 여기 요새 사령관이면 아주 한직이라고. 그래 그 군사 계급으로 하면 대위 정도려나."

"대대장은 중령이겠군요."

밀리터리에 관심이 많아 보이는 미국인답게 잘 알아듣는다. 현실의 군사 계급은 개인의 전투력을 반영하지는 않지만 그린스킨은 좀 다르다.

약하면 진급을 못 한다.

"고블린들이 상대하기 힘든 녀석들 위주로 제거해야 해. 제1 목표는 트롤이다."

파티원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고블린이 되었음에도 인간이던 시절의 특징적인 면모는 남아 있다.

"아무리 우리 정체가 불문명한 걸 다른 고블린들이 이미 안다고 쳐도 말이야."

"인간임을 들키는 건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다들 그 점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군."

따라서 장비 대부분은 바깥에 숨겨두고 왔다. 소녀의 주 무기라 할 수 있는 대거도 크기가 맞지 않게 되어 두고 왔다.

지금 소녀가 소지한 단검은 원래는 투척용이다.

사냥꾼은 훨씬 조잡한 활밖에 가지지 못했으며, 막내의 방패는 말할 것도 없이 가져올 수 없었다.

다른 장비도 비슷하다. 제대로 된 무장을 한 고블린은 이 요새에 없다. 암살자라 한들 좀 더 멀쩡한 거적때기를 걸쳤을 뿐이다.

게다가 [폴리모프 ? 고블린] 포션이라면 사실 디버프 포션이라고 봐야 한다.

단순히 신체 능력 자체도 인간일 때에 비하면 상당히 저하되어 있다.

단순히 트롤 하나 잡는다고 생각하기에는 우리 쪽이 약하다.

"실질적으로 트롤에게 먹히는 무기는 그거뿐이야. 잘해야 해."

고블린의 체격으로도 숨겨 들어올 수 있는 무기 중에서 유일하게 트롤에게도 유효한 화력이 나오는 것.

사냥꾼이 가진 플린트 락 권총이다.

가능하면 이걸 목구멍이나 눈구멍에 쑤셔 박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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