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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73화 (73/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73화

8층 - Lv. 195 요새 사령관(4)

크게 숨을 들이쉬고, 잠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숨을 내쉰다.

끓는 주전자처럼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실제로는 찰나다.

아빠라고? 그게 무슨 소리인지는 좀 더 있다가 생각을 하자. 우선은 이 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상상 이상으로 전쟁의 신이 화가 많이 났다.

다른 서버의 신도들도 신경 쓰고 있을 테니 꽤나 바쁠 거라 여겼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그린스킨이 이토록 패권을 쥐고 있는 곳보다 더 곤란한 곳이 있을 법도 한데.

"마법 어디까지 배웠어?"

기껏해야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어딘가 멍한 눈동자가 살짝 위를 향해 움직인다.

무언가 외웠던 사실을 되새기는 듯한 모습.

"단거리 [블링크] 가능하다고 말하랬어요."

"역시 나군. 뭐가 필요한지 확실하게 알고 있어."

소녀가 움직인 방향이 어디일까?

요즘 부쩍 내 걱정이 많아진 느낌이라 불길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돌아오고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 방화가 아니라 마법적 화염이라는 걸 느낄 정도로는 가르쳤다.

그렇기에 그 위험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지금 같은 경우에는 어떤 식으로건 지원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니 타당한 판단이다.

이런 것도 어느 정도 고민되는 부분이긴 하다.

소녀가 나에 대해 가지는 애착을 어디까지 내버려 두어야 할까?

중요한 순간에 일을 그르칠 정도라면 좋지 않다.

방향은 마력을 흘리며 내가 지시한다. 본인도 구사하는 법만 알 뿐이지 섬세하게 조정하는 숙련도는 높지 않은 모양이다.

애초에 스킬로서의 [블링크]지 직접 구사하는 마법은 아니다.

나도 공간 계통 마법은 가능하면 직접 쓰지 않는다. 아무 보정 없이 쓰기에는 과하게 위험하다.

마력도 터무니없이 많이 처먹는다.

꼬마 흡혈귀가 아주 익숙하게 마력 지시를 받아들여 마법을 구현한다.

눈앞의 시야가 물리적으로 일그러지고, 다른 공간이 나타났다.

고블린의 모습을 한 소녀가 불길의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가 나타난 내 모습에 깜짝 놀랐다.

갑작스레 세워진 [파이어 월]은 바깥에서 보니 더욱 규모가 컸다.

전체적으로 스킬셋이 화염계 원소마법사, 그중에서도 쉽고 강력한 타입이다.

썩 숙련도가 있어 보이는 마법 구사는 아니었다.

그런 마법은 구현하는 모습만 보아도 벌써 짬이 느껴지는 법이다.

보아하니 재능의 방향성이 이미 마법의 숙련도보다는 마력 쪽으로 몰린 모양.

확실치는 않지만 기초도 빈약했을 것이다. 이런 타입은 바르바로이도 많은 고민 끝에 육성하므로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방치되어 있었을 확률이 높다.

클랜이 터졌을 시점에서는 전력이 아니었으려나.

그렇다면 현재의 꼬마 흡혈귀를 내가 영입한 시점에도 즉시 전력은 아니다.

"디스펠 해."

마법이 만들어지는 동안 소녀가 얼떨떨해했다.

"저기, 아저씨? 뭐죠? 왜 사람으로 돌아왔어요? 쟤는 누구예요?"

"알몸 될 거니까 눈 감을게."

"네?"

미래의 나는 현명하게도 꼬마 흡혈귀에게 망토를 많이 입혀서 보냈다.

그것도 인원수에 맞추어서 네 벌이다.

소녀는 [디스펠]을 당하고 깜짝 놀랐으며 나와 같은 바바리맨 상태가 되었다.

"이제 이 단검은 너무 작네요……, 저 애가 누군지는 조금 있다가 들을게요."

불길을 헤치며 전진하는 트롤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소녀가 단검을 한 바퀴 돌리며 고쳐 든다. 꼬마 흡혈귀가 품속을 뒤적이더니 다가가서 막대 하나를 하나 내밀었다.

"우와, 이거 뭐예요? 신기하다."

대거라고 부를 만한 전투용 단검이지만 디자인이 꽤나…… 미래적이다.

완전한 직사각형의 막대는 검집이었다. 손잡이도 인체 공학은 내다 버린 직사각형이라 그냥 흰 막대기로 보였다.

하지만 소녀가 쥐자 손 모양대로 그립이 잡힌다.

"뭔지 알 것 같은데. 마력을 밀어 넣어봐."

희끄무레한 빛이 대거를 감싼다.

"오오, 오러 블레이드? 맞죠?"

정확히는 먼 미래에 과학으로 구현한 오러 블레이드다.

마법과 과학이 공존하는 시대에선 서로가 서로를 분석하고 모방하며 발전해 나가는 법이다.

"내구도 얼마 안 남았을 거다. 아껴 써."

"왜죠?"

"내구도 많이 남은 걸 보낼 수는 없잖아. 무기는 소모품이니까. 당장 쓸 게 있어야지."

소녀가 살짝 인상을 찌푸린다.

혼자 답에 도달하긴 힘들 것 같아서 정답을 알려준다.

"미래에서 누가 와 있을 거라고 했지? 이 녀석이야."

꼬마 흡혈귀가 눈을 깜빡인다. 그리고 소녀에게 말했다.

"어, 미래의 엄마보다 조금 작아요. 진짜로 과거구나."

소녀가 얼어붙었다.

"엄마? 엄마!? 엄마?!?"

소스라치다 못해 팔에 소름이 돋은 것이 물리적으로 보이는 상황.

명백한 패닉이다.

파티원들이 패닉에 빠지는 일은 자주 겪는다. 나 역시 그럴 때가 있으니 탓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 패닉에서 어떻게 건져내냐인데. 소녀의 경우에는 차라리 쉽다.

"꼬마야, 날 뭐라고 불렀는지 한 번만 더 말해보지 않을래?"

꼬마 흡혈귀는 별다른 고민도 없이 대답한다.

자연스러운 것이 평소에도 있는 일인 모양이다.

"아빠는 아빠예요."

소녀의 눈이 커지고 둥글어지고 가늘어지더니.

"아야!"

상상의 세계에 너무 깊이 빠져들기에 내가 머리를 쥐어박았다.

"대충 알겠지? 조금 있다가 정리하자. 조금 있다가. 나도 방금은 애가 아빠래서 식겁했어. 알겠지?"

"으음. 히히. 아무튼 좋아요."

머릿속이 꽃밭이다. 아무래도 좋다는 스위치가 들어간 모양이다.

미래에서 온 아이가 나를 아빠, 소녀를 엄마.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지?

* * *

00:25

인간으로 돌아온 채, 제대로 된 마법사도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기껏해야 레벨 200은 되려나 싶은 트롤 녀석 하나 처리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소녀의 단검이 불을 뿜는다. 물리적으로 불이 맞다.

미래의 과학은 오러 블레이드를 흉내 내려고 노력했지만 그 불가해한 절삭력을 고스란히 따라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도달한 결론이 플라즈마를 가두는 장치다.

막대한 열량으로 상대를 태우고 녹여버리는 것이나 오러 블레이드나 결과는 비슷하다.

밀도 높은 마력의 열량은 단분자 커터나 다름없는 오러 블레이드와도 서로 부딪힐 수 있는 힘마저 주었다.

그런 미래 병기가 소녀의 손에 들어갔다.

전쟁의 신의 가호를 둘둘 감고 있던 트롤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그럼에도 신이 전폭적인 지원을 퍼붓자 결정타가 부족했다.

뒤늦게 합류한 사냥꾼의 사격이 눈을 꿰뚫지 못했다면 질질 끌려 위험에 처했을 가능성이 있다.

[샤프 슈팅]의 보정을 받아 내부에서 폭발하는 케찰코아틀산 화염탄은 트롤의 뇌를 노릇노릇하게 구워버렸다.

전쟁의 신이 아무리 힘을 쏟더라도 죽음에서 돌아올 힘은 없다.

이후에 특히나 위협적인 트롤이나 오우거들을 처리하는 일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쉬웠다.

체계적인 마법 지원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원래부터 공격력이 남다른 소녀가 장비도 좀 치트가 달린 걸 쥐었다.

말이 필요가 없다.

꼬마 흡혈귀는 [파이어 월]로 구획을 갈라버리고 각개 격파하는 식의 전술적 지원을, 나는 파티원들의 모습 은폐에 힘을 썼다.

고블레타리아들의 현재 인식이 변할 여지를 주면 안 된다.

저들의 기억 속에 지금의 혁명은 오롯이 고블린의 손으로 이루어 내었다고 남아 있어야 한다.

인간인 우리의 개입이 퍼지는 순간 그게 좀 이상해진다.

유배자인 것은 결국 들키겠지만 지금은 숨겨야 할 때.

투명화를 걸고 끊임없이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전쟁의 신과 몇몇 주술사들의 투명화를 벗기려는 시도까지 방어해내야 했다.

힘겨웠으나 오래 지나지 않아 다시 전세가 뒤바뀌기 시작한다.

오크는 육체적으로도 고블린이 해볼 만한 상대다.

대부분은 똥독이 올라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으니 집요하며 필사적인 고블린들의 공세에 하나둘 쓰러져갔다.

사냥꾼과 막내도 투명화가 걸린 채 바깥으로 나가 무장을 하고 다시 돌아왔다.

요새 사령관을 포함하여 주전력이라 할 만한 병력 대부분이 무력화되었다.

"이제 우린 빠져나가자."

"어, 더 안 도와줘도 되나요?"

"아슬아슬한 승리여야만 가치가 있는 거야. 내가 아까 사령관의 시체에 세심하게 칼집 내두는 거 봤지?"

위장이다. 고블린의 무기로 고블린의 힘으로 쓰러뜨렸다는 증거로서 남겨둔다.

그리고 그 주변에 죽은 다른 고블린의 시신을 가져다 두고 불을 질렀다. 손에는 단검을 쥐여주었다.

재가 된 고블린 시체, 화염의 도가니에서 박살난 피륙과 함께 그런 게 흩어져 있다.

숙련된 암살자도 절대로 구분하지 못할 지경이다.

혁명을 이끌었던 의문의 고블린은 이곳에서 적의 대장과 함께 장렬하게 산화한 것이다.

뭐, 이야기가 잘 풀리면 그렇게 되어줄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대장 고블린이 그렇게 포장할지도 모른다. 쓸데없이 수완이 좋은 노인이었다.

그렇게 다들 불타는 요새를 뒤로했다.

* * *

03:00

화마가 모든 것을 삼켰다.

긴 세월 동안 핍박받아온 고블린들은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되었다.

아직도 타오르고 있는 요새 덕에 야심한 시각임에도 주변이 환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보이지 않았다. 단상 위에서 모두에게 지금의 삶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온당 누려야 할 권리가 어떤 것인지 설파했던 고블린이었다.

몇 명이 그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존재인 것마냥 종적이 묘연했다.

그와 함께 다니던 다른 세 고블린마저 보이지 않았다.

일부는 승리를 축하했다. 대부분은 아직 실감 나지 않는 상황에 주저앉아 얼떨떨했다.

춥지는 않았다.

그 무엇보다 거대한 모닥불이 바로 옆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어쩌면 마음속에서도 그 모닥불이 함께 타오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 *

05:00

얼어붙은 땅은 생각 이상으로 많은 습기를 머금고 있다. 몇 날 며칠은 불탈 것 같았던 요새의 화재도 기세를 거의 잃었다.

긴장이 풀리며 부상당했던 고블린 몇몇이 유명을 달리했다.

그들의 시신은 새로운 신께 바쳐졌다.

보랏빛 화염이 타오르며 그들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간다.

모두가 새로운 신께 경배했다.

수색이 시작되었다. 그들을 새로운 신으로 인도해 준 고블린이 다친 채 어디선가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얼마 가지 않아 요새 사령관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트롤임에도 불구하고 미처 회복이 끝나지 않은 무수한 상처들이 싸움이 격렬했다는 것을 증명했다.

동시에 시신임에도 서려 있는 무시무시한 신성이 그들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새로운 신께서는 자애롭게도 보랏빛 후광을 내리셔 버린 신의 공포로부터 그들을 보호했다.

그 옆에서 다른 시신도 발견되었다.

불이 옮겨붙고 숯이 되어버린 바람에 누군지 알 수 없게 된 고블린이었다.

낡아빠진 단검을 쥐고 있었다.

대부분의 고블린들이 비탄에 잠겼을 때, 대장 고블린은 홀로 침묵했다.

그는 신께 기도를 올렸다.

‘신이시여, 저희를 당신께 이끈 그분은 어떠하신 분입니까?’

응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지난 수십 년 삶에는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전쟁의 신은 고블린을 제대로 된 신도로 여기지 않았다.

그저 길러주는 가축이나 다름없게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다를지도,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고블린들만큼은 신의 총애를 얻을지도.

그렇게 생각했으나 과한 생각이었을까?

그리고 실망감이 밀려올 무렵 여신께서 응답하셨다.

「죽은 자를 기려라. 혼돈의 권속들이여. 너희들을 해방시킨 어느 이름 모를 암살자를 길이 후세에 남도록 하라. 그리 한다면 내 언제나 너희와 함께할지니.」

모두가 똑똑히 들을 수 있는 신언이었다.

지금 살아남은 것은 무기질적인 신탁으로서조차 신을 배알한 적이 없는 고블린들이었다.

다시 한번 모두가 무릎을 꿇었다.

검게 탄화된 영웅의 시신은 할 수 있는 최선의 예우를 다해, 그들이 아는 모든 지식을 짜내어 모셔졌다.

대장 고블린은 일말의 미심쩍음을 안고 있었으나 곧 외면해 버렸다.

신께서 그리하라 하셨다.

다른 모든 암살자들 또한 그리하였다.

진실은 때때로 방해가 된다.

불필요한 진실이라면 기꺼이 묻어둘 수 있다.

* * *

이제야 슬슬 지평선의 끝이 불긋불긋하며 먼동이 터오려 한다.

나는 바쁘게 소녀의 손을 붙잡고 여신님께 해야 할 말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빨리 그 자리를 뜨라고 좀 전해주십쇼. 어차피 그 요새는 다 불타버렸으니 고블린들이 새로 정착할 땅이 필요할 겁니다. 용암망치 대대도 회군하겠지요. 남아 있으면 떼죽음입니다."

「알았다. 그런데 어디로 보내야 하냐?」

"우선은 북부로 일단 밀어 올립시다. 정착할 만한 땅은 여신님도 한번 알아봐 주십쇼. 숲도 꽤 고블린들이 살기 좋은 편이니 빈 숲이 있다면 나쁘지 않을 텐데."

그때 자연의 신이 의외의 발언을 해왔다.

[자연의 신이 카크리쉬의 유적이 있었던 숲이 비어 있다고 말합니다.]

"예? 거긴 요정 마을이 있지 않습니까. 제국으로부터 독립했다곤 쳐도 요정들이 고블린을 좋아할 리는……."

[자연의 신이 그 땅의 모든 요정들은 인간의 성으로 왔다고 말합니다.]

"허어, 고향을 버린 겁니까?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생각으로?"

[자연의 신이 ‘그래서 요정 국가는 언제?’라고 말합니다.]

"거, 작은 따옴표까지 쓰실 거면 그냥 신언 쓰시지 말입니다."

「그래, 그냥 신언 쓰면 얼마나 편한데. 폼 잡기는.」

[자연의 신이 그런 버릇 들면 나중에 큰일 난다며 고개를 젓습니다.]

"그러고 보면 자연이시여, 대체 혼돈께서 무슨 약속을 하신 겁니까?"

여신께서 갑자기 침묵하신다.

[자연의 신이 혼돈이 하위신으로서 종속되겠다며 먼저 제안했다고 말합니다.]

미친.

"오……, 그냥 저를 좀 믿어보라는 거에 말입니까? 소멸이 낫지. 이봐요. 말 안 해요?"

그때, 자연의 신이 신언을 보내왔다.

「큭큭큭큭, 정말 재밌는 신도요 신이로군. 걱정 말게 혼돈의 권속이여. 나는 그걸 거부했으니까. 단지 그 정성이 가상해 너를 믿어보았을 뿐이지.」

냉막하고도 서늘한 사내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럼에도 너무나 감미롭다. 사람을 홀릴 듯한 목소리.

꽃잎 요정이시군.

[자연의 신이 그래서 신언을 아낀다고 말합니다.]

"이건 그럴 수 있지. 그보다 여신님? 안 나오십니까?"

여신께서는 끝내 다시 응답하지 않으셨다.

소녀의 얼굴이 슬슬 과부하가 걸릴 것 같기에 손도 놓아주었다.

[자연의 신이 다른 신들도 이 모습을 봐야 하는데 라며 고개를 흔듭니다.]

"그래, 좋아. 이제 우리 뉴 페이스의 이야기를 좀 들어볼까?"

소녀의 귀가 쫑긋한다. 꼬마 흡혈귀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만히 앉아서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는 듯했다.

소녀와는 반대로 감정도 옅고 표정도 적다. 어딘가 학대받은 아이의 이미지가 있다.

바르바로이 클랜의 잔당이면 지금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긴 하겠지.

"아빠랑 엄마가 무슨 소리인지부터 들어볼까?"

사냥꾼과 막내도 흥미진진하게 우리를 지켜보는 가운데 꼬마 흡혈귀가 나를 가리켰다.

"아빠는 클랜 마스터니까 아빠예요. 항상 아빠라고 불렀어요."

바르바로이 이야기인가? 동쪽에서는 그러기도 한다. 좋아 뭐 이건 그렇다 치자고.

"아니에요. 아빠가 먼저 아빠라고 부르랬어요."

"그래……?"

꼬마가 이젠 소녀를 가리킨다. 입을 오물거리면서도 또박또박 말한다.

"엄마는 뱀파이어는 아니지만 아빠랑 사귀니까 엄마예요."

""엥?""

같은 신음이 동시에 나왔으나 나는 어이없음이었고 소녀는 기쁨이었다.

그게 왜 그렇게 된 거지?

사냥꾼과 막내는 웃음을 못 참아 배를 잡고 구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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