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79화
8층 - Lv. 1230 대성녀(2)
성직자가 뒤에서 버프와 힐만 넣는 시대는 이미 21세기가 개막하면서 저물었다.
그렇다 해도 미궁의 성직자는 고위직이 된다면 유난스러울 정도로 전투적이었다.
온갖 이종족과 신앙이 뒤섞인 데다 역사를 뒤틀려고 하는 유배자들도 끊임없이 얼굴을 비추는 땅.
그런 곳에서 살아가기 위한 신앙은 결국 힘으로 귀결된다.
명확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신을 섬기는 종교끼리도, 단순히 피부색이나 문화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도.
단지 그런 이유만으로 얼마나 많은 전쟁이 벌어졌던가.
차라리 유배자가 평화에 기여하는 세계일지도 모른다.
[자연의 신이 자기합리화는 좋지 않다고 말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배자는 원래 자기합리화의 생물 아닙니까.’
성녀나 성인이라 함은 그런 전투의 정수와도 같은 성직자다.
자비와 자애 역시 그들의 덕목이겠으나, 교단의 톱에 올라서는 것에 가장 중요한 덕목은 결국 힘이다.
교단을 지키며, 교인들을 보호하는 힘.
하루도 빠짐없이 전투와 전쟁의 불씨가 피어오르는 땅이다. 힘은 충분조건이 아닌 필요조건이다.
인간은 개중에서 특히나 성직자들의 힘이 강한 종족이다.
인간의 나라는 대체로 하나의 종교를 중심으로 묶여 있지 않으며, 다양한 신앙이 공존하고 있다.
교단끼리의 각축전은 더욱 거세게 마련이다. 외적만이 적은 아니다.
같은 인간끼리의 분쟁에서도 힘은 중대한 사항이다.
고위 성직자란, 그중에서도 시성을 받은 성녀나 성인들은 교단이 배출해낸 최고의 전투 병기다.
그리고 대성녀 메이릴리스라는 이름의 [히어로 유닛]은 그 전투 병기들 중에서도 최강의 존재로 이름 높다.
전대물이라면 컬러풀한 파워 레인저 중에서도 블랙이나 골드쯤 되는 존재다.
그 위용을 멍하니 감상하며 소녀가 말했다.
"불공평해요."
"네가 할 소리냐?"
"하지만 진짜로 불공평하잖아요. 저도 손에서 빔이 나가는 재능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거 날개에서 나가는 건데."
"아이 말이 그렇다고요."
농담이 아니라 나름대로 진지한 듯하다.
이런 말에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대성녀 메이릴이 천재인 건 맞아. 신성 주문에 있어서는 비할 바가 없는 천재지. 이 대륙의 역사에도 몇 없을 거야."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어둡고 괴로운 과거가 그 뒤에 있다.
상식적으로도 단지 재능이 뛰어날 뿐인 것으로 저 나이에 저런 전투력을 가질 수는 없다.
마인드맵을 가진 유배자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소녀는 곰곰이 생각하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리고 착한 아이답게 바로 납득했다.
"으음, 제가 잘못한 것 같아요."
"그렇지?"
"저도 남들이 넌 그냥 힘세게 태어나서 좋겠다고 그러면 엄청 화났어요. 그 어릴 때 으. 안 좋은 기억이 좀. 잠깐만요. 우웩."
갑자기 창백해지더니 헛구역질을 시작하는 것이 뭔가 트라우마라도 떠올린 모양이다.
마찬가지의 일이긴 하다.
초인적인 신체와 운동신경을 타고났다고 아무나 이 아이처럼 싸울 수 있게 되는 것 역시 아니다.
등을 슬슬 문질러준다.
"나도 노력했다고, 죽을 만큼 굴렀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음, 지켜야 할 사람들에게 그렇게 대할 수는 없더라고요."
"가정교육을 잘 받았네. 히어로는 원래 서비스업이지. 부모님께서 아주 훌륭하신 분이셔."
"미궁을 클리어하면 같이 인사드리러 가요."
"뭔 개소리야 그건?"
창백했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소녀가 몸을 꼬며 발그레해진 얼굴로 말한다.
"상견례?"
뭐라고 입만 벌렸다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소녀가 입을 삐죽인다.
"이씨, 무시하지 말고 뭐라고 말 좀 해봐요. 무안하게."
"그러라고 입 다물었다."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은 그렇게 평온한 대화가 오가더라도 별문제 없을 정도로 상식을 벗어나 있다.
나야 익숙하지만 다른 파티원들에게는 별로 그렇지도 않다.
소녀만 헛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다.
막내는 아예 무릎을 꿇더니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다른 신의 위엄에 올리는 기도를 보고는 여신님께서 격하게 반응한 모양인지 소녀가 킥킥대었다.
"여신님께서 자기도 저 정도는 보여줄 수 있다고 막내 아저씨를 말리네요."
막내는 조용히 대답했다.
"저는 눈앞의 이 이적 또한 주님의 뜻이라 믿습니다."
저기서 ‘주님’은 여신님이다. 막내는 다른 신들을 주님이라고 부른 적이 없다.
여신님은 한참을 생각한 끝에 이해했다.
막내가 보기에는 다른 신들도 죄다 여신님 아래다.
그걸 깨닫고는 오히려 부끄러워 몸을 비틀고 있다고 한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런 와중에도 신성이 번쩍이고, 폭력과 야성으로 무장한 트롤이 무기를 휘두른다.
잘 벼려진 거대한 도끼가 신성의 결정체와 부딪히며 불꽃을 일으킨다.
다시 한번 십자가가 땅으로 메다 꽂혔다. 트롤이 비명을 질렀다.
곳곳에 십자가 모양의 성흔이 새겨진 대지는 슬슬 성역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내가 비상탈출을 고려하고 있을 무렵 드디어 대대장의 숨이 다했다.
전쟁의 신은 격렬하게 저항하지 않았다. 상당히 아까운 개체이나 이 대륙의 오크 제국은 크다.
거기에 신이라면 메이릴을 본 적이 있을 것이며, 그렇기에 승산이 없다는 것 역시 안다.
아예 화신 삼아 강림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일일까?
그건 아니다.
용맹한 트롤 전사는 마지막으로 주먹을 휘두르며 그의 삶을 마감했다.
그 주먹은 성녀의 손바닥에 가로막혔다. 하지만 선 채로 꼿꼿하게 숨을 거둔 그 시신을 보면 누구도 이 트롤을 나무랄 수는 없을 것이다.
그저 상대가 나빴다.
성녀는 고개를 살짝 숙여 묵례했다. 그리고 빛으로 트롤의 시신을 불태워 버렸다.
"아, 저 아까운걸."
"강한 트롤을 재료로 뭔가를 만들면 더 고성능입니까?"
"물론이지. 고레벨 트롤의 심장도 꽤 중요한 포션 재료야."
사냥꾼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어쨌든 지금 대성녀에게 함부로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저 묵례가 나름대로의 경의라면 더욱 그렇다.
빛이 되어 흩어지는 귀중한 소재를 보며 한숨 쉬고 있자 성녀가 공중에 떠 어디론가 날아갔다.
곧 사방에서 엄청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제대로 보이는 거리는 아니지만 도주하던 용암망치 대대의 병사들이 다져지는 소리일 것이다.
눈과 귀가 가장 좋은 소녀에게는 좀 더 똑똑히 보였던 모양이다.
"저건 뭐라고 봐야 하죠? 공격 헬기? 아닌데 그것보단 더 센 거 같은데."
"아가씨, 저런 건 건쉽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건쉽이라. 적절하군. 판타지 건쉽이야."
어쨌든 저 건쉽은 우리 건쉽이다. 다행스럽게도 말이다.
용암망치 대대의 잔존 병력은 성녀의 격렬한 추격섬멸에 시달렸으나 폭풍울음 여단은 그렇지 않았다.
여단은 이미 현대전 교리상으로는 전멸 판정을 받을 정도로 타격을 입은 상태였다.
성인은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인간의 영토는 넓고 지켜야 할 교인도 많다. 공격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패잔병이나 다름없는 여단의 잔존 병력들은 그 덕에 천벌을 면제받을 수 있었다.
허겁지겁 도주하는 그린스킨의 부대를 보며 사냥꾼이 말했다.
"늘 하는 말이지만, 제 유배자 생활 평생 이렇게 정신없고 거대한 규모의 전쟁에 휘말려보기는 처음이군요."
"그게 정상이야. 왕국까지 가기 전이면 애초에 이런 인카운터는 뜨지도 않아요. 와이드맵도 안 떠. 미궁이 본격적인 판을 깔아주는 건 원래 왕국 이후라는 말이지."
"저는 시간의 신전에 도달할 수만 있다면 족합니다."
"그래."
사냥꾼은 요즘 들어 부쩍 말수가 줄었다.
정확하게는 말 자체는 늘었다. 별것 아닌 일에도 피식거리고, 웃고, 즐거워했다.
하지만 유배자로서의 독기가 빠지고 있다고 할까.
그는 소녀와 반대로 내게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그냥 감탄하고 고개 끄덕이고, 말은 많아졌으되 늘어난 것은 잡담이다.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다. 도전자를 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으니 안주할 땅으로 돌아가게 된 것으로 만족하는 게 좋을지도.
그러나 그 모습은 마치 끝을 앞둔 노인처럼 보였다.
실제로도 어딘가 머리의 희끗희끗함이 늘어난 것 같다.
"요정 카드 하나 구할 수 있으면 좋겠네."
"요정 카드 말입니까?"
"수명을 생각하면 말이야."
사냥꾼은 잠깐 멍해지더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리더에겐 몇 번을 감사해도 모자라겠군요."
"시간의 신전은 내가 만든 게 아냐. 우연히 뜬 거지."
"그게 아가씨 덕분이라면 결국 리더 덕분이기도 합니다."
"그래, 뭐 그렇게 생각하면 고맙지. 마지막까진 제대로 일해줘."
"예."
기도를 끝마친 막내는 그런 모습을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저는 형님이 떠나고도 두목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는데."
"그렇다면 필요한 곳에 두고 가시지요."
"내 이전 회차의 길드원들이 우리 막내 반의반만큼이나 충성스러웠다면……."
"그럼 저를 못 만났잖아요!"
빽 소리 지르는 소녀에게 귀를 막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 조용히 시켰다.
트동트가 걸어오고 있었다.
어딘가를 조금 다친 듯, 절뚝이는 걸음걸이다.
소녀가 약간 물러나더니 막내의 뒤로 숨었다.
사냥꾼도 약간 쓴웃음을 짓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는 어리둥절하게 웃고만 있다.
늙은 오크 주술사가 말했다.
"약속한 대로 다 해내었네. 그러면 이제 내 부탁을 들어줄 차례지."
"살려준 걸론 모자랐나?"
"아참, 다른 시간대의 당신이었군, 다시 설명해야겠어."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택도 없는 이야기면 무시해버릴 생각이었다. 이미 일은 다 벌어졌는데 어떡하실?
물론 성녀가 트동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면 곤란해지긴 할 거다.
나이든 트동트가 성녀를 거둔 케이스에서는 대부분 성녀가 의지할 기둥의 역할을 하는 게 트동트다.
성녀의 좁은 세상에서 교단을 벗어난 세상은 없다.
갓 태어난 아기 새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나에게도 자유를 주게."
"뭐?"
"그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하더군."
"아니, 잠깐만. 잠시만 있어 봐."
늙은 트동트가 성녀를 대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패턴이 있다. 가장 흔한 것은 그저 떠나 보내주며 은퇴하는 것.
어딘가 한적한 땅에 오두막을 짓고 다시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다음으로 흔한 것은 그린스킨 팩션으로 돌아가는 것. 이 경우에는 배신자로 몰려 처형당하기도 하며, 반대로 아무 일 없이 전장에 나서기도 한다.
그 이외의 경우는 사실 거의 없다.
드물게 성녀를 따라 인간의 나라로 이주하는 것일까?
하지만 지금 저 얼굴은 그런 의미가 아닌 것 같다.
"내 늙었지만 이제라도 새로운 삶을 살아볼까 하네. 젊은 시절 그리 치열하게 불태웠음에도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없지."
트동트는 그렇게 말하며 오크 주술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로브를 벗어던졌다.
그 아래에 나이가 들어 축 늘어진 몸이 드러났다.
야성 신의 가호를 받아 부풀어 올랐을 때와는 다르게 주름지고 초라한 몸이다.
내던진 로브는 아주 낡아빠져 있었다. 주술사들의 로브는 대체로 그렇다. 지위를 나타내는 복장이다.
한번 입게 된다면 결코 벗지 않는다. 다른 것으로 바꾸지도 않는다.
어차피 수선을 못 할 정도로 헤졌다면 옷의 주인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불길이 일었다. 로브가 불탄다. 마법적 불길은 금세 낡아빠진 로브를 불태워 없앴다.
회백색의 재가 남았다.
그마저도 곧 불어오는 바람에, 먼 곳에서 성녀가 일으킨 파괴의 여파로 불어온 바람에 흩날렸다.
아주 상징적인 행동이었다.
주술사의 자리를 내려놓는다.
그저 야생의 오크답게 상반신을 내놓는다.
한 번 주술사가 된 그린스킨이 그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은퇴를 뜻한다.
상체를 가리는 것은 자신의 본능을 억제하고 대신 지혜로 이끌겠다는 뜻이다.
그린스킨 사회에도 지혜로운 자는 필요하니까 말이다.
이제 트동트는 주술사가 아니었다. 다시 사회적으로 주술사의 지위에 오를 수는 없다.
"유배자는 여러 시간과 세계를 떠돈다지. 나를 자유로 만들어주게. 전쟁의 신도, 그린스킨도, 그 누구도 나를 모를 곳으로 데려가 주면 좋겠군."
"음, 이런 부탁은 또 처음인데."
자진해서 유배자를 따라나서는 NPC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꼬맹이 같은 경우는 내가 적극적으로 그렇게 만들 예정이기도 하고.
나는 말투를 바꾸어 존대했다. 이 늙은 주술사는 그럴 만한 일을 내게 해주었다.
"좋습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밥값 하셔야 합니다."
"내 그리하지."
꼬맹이를 가르치는 동안 일할 마법직이 파티 있다면 좋은 일이다.
내 경우에는 이제 화력은 강력하지만 원거리 마법 행사에는 제약이 크다.
이미 마인드맵을 그쪽으로 타버렸다. 마투사는 원거리 마법 구사가 여의치 않은 클래스다.
그때 꼬맹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저기 아빠, 저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응? 그래 맞아. 너 지금 어디 있니?"
"저기 구석에 묻혀 있을 거예요."
지친 얼굴의 트동트가 꼬맹이를 보았다. 은발에 적안. 그리고 흡혈귀. 흔해 빠진 외모는 아니다.
"으음……."
늙은 오크가 눈만 껌뻑이다가,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이런!"
그리곤 곧장 뒤돌아서 달리기 시작했다.
깜빡한 물건을 두고 온 것 같은 그런 모습.
"저도 저 오크 주술사가 저렇게 부랴부랴 달려와서 구해준 것 같아요."
"흠, 크게 다치지는 않았고?"
"네."
그럼 된 거지.
"넌 이제 여기서 돌아가는 거냐?"
"그렇다고 아빠가, 어 그러니까 미래의 아빠가 말했어요."
공존할 수는 없다. 현재의 꼬맹이가 미래의 꼬맹이를 인지한다면 어차피 역소환된다.
시간의 신의 권능은 영구적인 것이 아닐뿐더러 여러 가지 제약이 있다.
"고생했다. 뭐 바라는 건 없니? 미래의 내가 잘 안 해주는 거라거나."
"뽀뽀해 줘요."
"어, 입술은 아니지?"
"볼에요!"
차갑지만 보드라운 볼에 마찬가지로 차가운 내 입술이 살짝 닿는다.
꼬맹이는 만족스러워하며 배시시 웃었다.
"뭐, 미래의 나는 이런 것도 잘 안 해주니?"
"음, 엄마가 별로 안 좋아하는 거 같아서 해달라고 안 해요."
"와……."
"아가씨 그건 좀……."
"누님……."
부럽게 꼬맹이를 바라보던 소녀도 화들짝 놀라 손사래를 친다.
"네네? 아무리 그래도 이런 꼬맹이한테 그런 짓은 안 하거든요! 추하게 그렇게 질투하는 바보가 어디 있어요! 미래의 나! 무슨 짓을 하는 거야!"
꼬맹이가 소녀를 변호하듯 나선다.
"그게, 엄마 잘못이 아니라 그냥 제가 미안해서예요. 엄마는 그…… 아니다. 이건 말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흠, 통제되는 게 더 좋은 정보도 있지. 어쨌든 과거에 간섭하는 거니까."
미궁의 시간 여행은 결정론적이지 않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알게 된 미래 그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불필요하게 미래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다면, 혹은 정보의 종류에 따라서는, 달라지는 수도 있다.
그런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는 시간의 신의 신도를 해보았을 때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저건 아마도 운에 관한 이야기일 거다.
운이 좋아 무슨 일이 일어났는데, 그 사실을 미리 알게 됨으로써 무산될까 우려하는 것이다.
시간의 신이 행운의 신의 영역을 간섭하는 식이 되는 바람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닐까 한다.
"반대 볼에도 해줄까?"
꼬맹이가 기쁘게 반대편도 들이민다.
소녀가 부러워했다.
"저도! 저도요!"
나는 무시했고, 일부러 꼬맹이에게는 쪽 소리가 크게 나도록 했다. 꼬맹이는 싱글벙글하며 나를 꼬옥 안아준다.
꼬맹이가 소녀를 돌아본다.
"엄마도 지금 많이 해두세요. 나중에는…… 아, 말하면 안 돼요."
소녀의 표정이 약간 이상해졌다. 그러나 개의치 안고 팔을 벌리며 다가온다. 치한 같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이다. 애송아. 나는 비싼 남자야."
"불공평해!"
"좀 더 귀여웠어야지. 우리 꼬맹이만큼. 어?"
"너무해!"
뭐 어쨌든 웃으며 전송했다.
소녀는 꼬맹이를 껴안고 비비적거렸다. 꼬맹이는 사냥꾼과 막내를 보고도 꾸벅 인사했다.
꼬맹이가 눈을 감자, 시간의 신을 상징하는 짙은 황금빛이 피어오른다.
바닥에 금빛 시계판이 나타난다. 시곗바늘이 회전하기 시작한다.
신성력의 흔적 약간만이 남고 꼬맹이는 사라졌다.
대신 트동트가 황급히 의식이 없는 꼬마 하나를 안아 들고 달려왔다.
"아직 살아 있네. 피가 필요할 것 같네만? 나는 오크라서 어찌 못하겠군."
소녀가 피를 내어 먹였다. 엄마라더니, 흠.
나는 날이 더 밝아오기 전에 햇빛을 차단하는 망토를 둘렀다.
떠나간 것과 같은 인물이지만, 다른 인물인 현재의 꼬맹이도 함께였다.
"그런데 말이야. 얘가 아마 너보다 연상일걸?"
"네에? 정말요?"
바르바로이 클랜의 꼬마 흡혈귀는 그래 봬도 스무 살은 넘었다고 기억한다.
곧, 성녀가 돌아왔다. 그녀는 나를 보고, 기절한 꼬맹이를 보고, 자신의 스승도 보았다.
"저의 신께서 당신에게 전할 말이 있다고 하십니다."
[자연의 신이 참 인기가 많은 남자라며 웃습니다.]
그럼요. 제가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