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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90화 (90/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90화

9층 - Lv. 99 파티 리더들(1)

[파이어 노바]인가?

아니, 그건 아니다.

그냥 무기에 뭔가 속성이 서려 있는 모양이다.

낙하하며 지진 같은 걸 일으킨 스킬은 뭐지?

저렇게 내려찍는 스킬이 있었던 거 같은데.

요정 리더는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며 입맛을 다셨다.

손아귀에서 피가 흐른다.

최대한 힘을 분산시켰는데도 이 모양이다.

국소적 지진과도 같은 충격에 넘어진 것이 큰 문제였다.

다섯 번의 섬광 같은 연격은 방어구마저 헤집어놓았다.

양손에 대거? 쌍검사? 대거로? 대체 왜? 아니지 암살자인가?

하지만 생각할 시간도 없다. 한 손인데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완력으로 찍어 누른다. 젠장, 이년은 오우거인가? 그럼 무기가 둘이면 더 좋지. 아주 미치겠군.

그나마 마력을 다루는 건 아직 미숙한 점이 있어 보여 다행이다.

확실한 것은 주변의 파티원들이 재빠르게 지원사격하지 않았다면 이미 죽었다는 것이다.

아직 어두운지라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자그마한 몸집의 여자아이다.

하지만 얼얼한 손의 충격은 진실이다.

요정 리더의 눈에 작은 소녀는 인간 사이즈의 오우거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고블린 이상으로 잽싼.

열매를 아낄 상대가 아니다.

사격을 피해 물러나는 소녀에게 보랏빛 열매에 크게 흠집을 내어 던진다.

이게 뭔지 모른다면 좋겠지만…….

쾅 하고 터지는 폭발 속을 헤치고 도리어 뛰어든다.

복장은 어딘가 사제 같은 옷. 잎사귀 요정?

저게 보통 급이 좀 되는 장비다.

암살자가 천 옷을 입고 있다면 레어 아이템 수준은 되는 거겠지.

역시 나만 운 없어.

안 좋군. 실력도 뛰어난 상대가 장비도 좋다. 그리고 인간이 아닌 것 같다.

인간과 아주 흡사한 외모면서 이렇게 신체 능력이 뛰어난 종족이 있나?

잘 모르겠다.

빌어먹을 미궁은 알 수 없는 게 너무 많다.

혹시 그냥 태생이 사기인 종류일까?

그럴 수도 있다.

어쨌든 직감이 말한다. 지금 무언가를 아낄 상황은 결코 아니다.

"결투의 신이시여……."

전쟁의 신은 전쟁을 다룬다. 다 대 다의 싸움에 더욱 특화된 경향이 있다. 개인의 강화보다는 단체의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결투의 신은 한 개인에게 극적인 신체 강화를 이룩할 수 있게 해준다.

다만 결투의 모든 권능은 사용자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거나 후유증을 준다.

가능한 쓰고 싶지 않지만…….

몸에 깃드는 신성이 불편하다. 하지만 힘만큼은 차오른다.

날아드는 소녀와 부딪힌다. 쾅하고 대기가 진동한다.

밀려나지 않고 받아낼 수 있었다.

상대의 약간 놀란 눈빛이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

"X 같은 년, 지금까지 다 힘으로 찍어 누르고 다녔겠지? 태생이 깡패긴 해? 응?"

약간의 도발. 통했을지도 모르겠다.

상대가 무기를 휘두르는 데 힘이 더 실린다.

외견으로 나이를 평가할 수 없는 곳이지만 어딘가 어리다는 느낌이 든다.

이것도 직감일 뿐이지만.

검격이 교차한다.

양손으로 휘두르는 대거는 강력하지만 리치가 길지는 않다.

끊임없이 뒤로 물러나는 형태긴 하지만 방어해낼 수 있다.

와, 이거 삐끗하면 즉시 죽겠네. 겁나 살벌한데?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아니라 폭음에 더 가깝다. 요정 리더는 슬슬 무기의 내구도가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 검은 좀 오래 썼지. 그렇다면야.

대강 앞으로 다섯 번?

날이 빠지는 것이 보인다. 시각으로 알 수 있는 내구도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쓰다 보면 감으로 알게 된다.

유배자의 경험이라는 것이다.

문득 지금이란 생각이 들었다.

[강격]

챙 하는 소리와 함께 요정 리더의 검이 빛이 되어 흩어진다.

내구도가 다하는 무기는 마지막 순간에 방어력을 무시하는 공격을 적에게 가한다.

우습게도 그것은 서로 합을 겨루는 와중 박살 나도 그렇다.

마력으로 흘리는 잔기술 따위는 통하지 않는 충격이 상대에게 전달된다.

[강격]으로 두 배가 된 충격이.

팔이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타격이었겠지만 상대의 강인한 손목은 결코 부상을 입지는 않는다.

"미친, 사람 맞아? 오우거지 너?"

"꽃다운 소녀에게 무슨 말을!"

꽃다운 애가 힘은 무슨 고릴라도 팔씨름으로 이기겠네.

강렬한 타격의 순간은 상대를 물러나게 한다.

그 틈에 등에 멘 쌍검을 뽑았다.

둘 다 롱소드.

요정 리더는 잎사귀 요정이다.

잎사귀 요정은 정령사 혹은 민첩 쌍검사에 특화되어 있다.

* * *

오두막과는 거리가 좀 있고, 포위진은 막 시작되려는 위치.

사냥꾼은 신중하게 돌파하려고 했다.

그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파티원에 오크가 있는 것을 깜빡했다.

주술사였던 오크는 전사로서 도끼를 들고 돌격했다.

당연하지만 그 누구에게나 들릴 정도로 거대한 함성을 내지르면서였다.

막내 또한 감화된 모양인지 같이 소리를 지르면 돌진한다.

"으와아아아아!"

"여신님의 분노를 받아라!"

"오! 그거 좋군! 신의 분노를 받아라!"

여신님이 정신을 못 차리고 웃으며 사냥꾼에게만 신언을 내렸다.

「으하핳, 나는 분노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유쾌해서 좋네.」

사냥꾼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시위에 화살을 메겼다.

이 활도 오래 썼다. 슬슬 내구도가 끝나 가리라.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활이 빛이 되어 사라진다.

사냥꾼은 한숨을 내쉬며 다른 활을 꺼내 들었다.

활이란 건 생각 이상으로 만들기 쉽지 않다.

대부분의 유배자들은 누가 만든 것을 주워 사용한다.

사냥꾼 역시 그렇다. 일단 이건 요정제가 아니라 의욕이 사라진다.

하지만 시간의 신전까지 도달하려면 힘을 내야 한다.

사냥꾼은 상상했다.

자신이 요정이 된 듯한 상상을.

이렇게 하면 사격이 더 편해진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이미지의 힘일까?

날아간 화살이 상대의 어깨를 꿰뚫는다. 리더는 꽤나 가혹한 조건을 내걸었지만 생각 외로 힘들지는 않았다.

앞에서 라인을 잡아주는 두 전사가 지나치게 든든하다.

때아닌 오크의 출현은 적들의 시선을 완전히 집중시켰다.

어째서 저렇게까지 오크를 신경 쓰는지 모르겠다.

집중되는 공격은 막내가 무리 없이 받아낸다.

적 전사들은 영감님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크게 휘둘러지는 도끼는 오크의 근력을 담아 적들을 밀어낸다.

어째 며칠 전보다 더 근육이 선명해진 것 같은데 기분 탓일까?

오크라는 종족은 근육에 특화되어 있는 부분이 있어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곧 중과부적에 부딪힌다. 적들 역시 나름대로 역전의 용사들이다.

영감님은 결국 주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흠, 도끼로 주술을 쓰면 좀 별론데."

막내가 [방벽]을 펼친다. 주술이 힘을 발휘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압도적인 힘의 격류. 그것이 주술이니까.

"냉기의 원소가 아주 많군. 물과 냉기는 또한 표리일체이니."

본신의 마력보다는 주변의 마력을 끌어다 쓰는 주술에게 환경은 극단적일수록 유리하다.

틈만 나면 눈보라가 몰아치는 설원은 그런 점에서 아주 좋다.

주변의 온도가 변했다. 냉기가 빨려 들어온다. 아니,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열이 모두 방출되었다. 냉기는 결국 열의 부재이니.

급격한 온도 변화는 주변의 유배자들에게 뜨거움마저 느끼게 했다.

그것에 당황하면 안 되었다. 곧바로 주술의 파괴적인 격류가 떨어져 내린다.

얼음이 달린다. 순간적으로 녹아내린 눈밭 위를 달린다.

바닥에서 솟구치듯 일어난 얼음의 가시들이 온 사방을 질주했다.

물리적인 공격을 동반하지는 않았다.

닿은 자들은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느꼈다.

얼음이 하반신을 타고 올라온다.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잡을 것은 아무것도 없음에도 무언가 붙잡겠다는 듯이.

한순간에 일곱 명이 얼음 동상으로 변했다.

막내가 감탄하며 물었다.

"영감님, 저 사람들 안 죽은 겁니까?"

"내버려 두면 죽겠지. 그래도 꽤나 쓸 만한 유배자들인데 그리 금방 죽기야 하겠나."

기가 질린 다른 유배자들이 멈칫한다. 그들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이내 누군가 명령했다. 후퇴다.

"흠, 다음을 도모할 생각인가. 좋지. 이건 아주 소모가 커서 연발은 못 한다네."

"허허."

사냥꾼은 그 모습을 조금 뒤편에서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헬창 오크 노인네는 다행스럽게도 2층의 그 공포스러운 주술사가 맞았다.

박쥐 몇 마리가 하늘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 * *

포격이 날아든다.

숫제 박격포다.

아니, 잠깐만 진짜 박격포네?

안 된다 이놈들아!

[마투사]라는 직업의 가장 큰 장점은 마법의 발동 속도다.

비록 사정거리가 바로 손 앞 수준까지 줄어들지만 폭발을 일으킨다면 그 폭압 정도는 원거리에 영향을 미친다.

얼른 지붕 위로 몸을 형성하고 마법을 구현한다.

단순한 폭발. 이름은 없는 마법.

바르바로이가 무너지는 성의 지붕을 통째로 날려버렸던 것처럼은 하지 못하나 날아드는 포탄 하나 정도는 어떻게 할 수 있다.

구경이 작다. 하긴 도수로 운반하려면 60㎜ 정도가 한계이긴 했으리라.

이딴 것도 있단 말이지? 클레이모어가 설치된 것에서 뭔가 많겠거니 싶긴 했으나 이 정도면 병기고를 털어온 수준이다.

박격포는 용납할 수 없지.

나는 뒤를 보았다. 꼬마 마법사가 입을 쩍 벌리고 나를 본다.

"좋아! 네가 지휘해!"

"네? 네에?"

"그 꼬맹이 잘 챙기고!"

물론 이쪽도 지켜는 보고 있을 것이다.

임시 동료들은 가능하면 살려줄 생각이긴 하지만 내가 자리를 비우면 또 어떨지 모르지.

햇빛이 닿고 있긴 했기에 몸이 따갑다.

짧은 시간은 괜찮지만 지속적인 노출은 뱀파이어로서의 생명력을 갉아먹는다. 박쥐로 흩어져 나무 그림자 사이로 날아든다.

이미 비행 정찰 중이던 박쥐들이 발사지점은 특정했다.

다시 한 발 날아간다. 아주 수준급이군.

2발째를 저지하느라 다시 시간을 지체했다. 내 움직임이 적에게 알려졌으리라.

도착한 곳에는 4인 1조의 포병들이 보인다.

바위 난쟁이가 넷이다.

세상에 종족 카드를 어디서 저렇게 주워 먹었담?

난쟁이들이 갑작스레 출현한 내 모습에 당황하며 총기를 집어 든다. 아주 빠르다.

난쟁이는 중세 판타지 시대에선 타고난 힘으로 중무장 전사 정도를 하는 것에 두각을 나타내는 정도지만 그린스킨 그룹에는 밀린다.

이들의 진가는 화기가 통용되는 이후다.

종족 특성 자체가 화기의 전문가들이다.

그렇기에 스킬도 그쪽 계통이 많다. 직접 보정은 없는 총기 레인저기에 탄 소모를 줄이거나 탄을 공급하는 정도의 보조적인 스킬이다.

그나마도 종족 스킬이기에 총기 레인저의 끝을 보고자 하면 강제되는 종족.

거기에 어찌 되었건 종족 특성으로 사격술에도 보정이 따로 들어가고 말이지.

그래서 난쟁이들의 사격은 엄청나게 빨랐다. 우리 사냥꾼도 따라 할 수 없을 정도다.

나는 그냥 맞으려고 한 건 아니지만 피할 수가 없었다.

음속의 탄들이 내 몸을 때린다. 그래 봐야 심장만 지키면 된다.

몸 뒤편으로 심장 부위만 따로 박쥐로 만들어 빼돌린다. 나는 무적이다!

퍼포먼스성으로 그냥 맞으면서 뚜벅뚜벅 걸어갔다.

바닥에 튀는 피는 즉시 박쥐가 되어 다시 날아오른다. 권능의 힘이다.

내 몸 바깥에 있는 피도 즉시 박쥐화할 수 있다. 어차피 내 지배하기에.

"으아악! 괴물이다!"

"총이 통하지 않아!"

박쥐들은 날아들며 뭉친다. 늑대로 변한다. 핏빛 털을 지닌 늑대들이 난쟁이들을 물어뜯으려고 했다.

"거기까지다! 바르바로이!"

번개가 내리쳤다.

늑대들이 모조리 통구이가 된다.

나는 미간을 한껏 찌푸렸다.

이러면 피를 회수할 수 없다. 열량에 불타버렸다.

번개가 튀는 망치를 쥔 오크가 나타났다.

위풍도 당당하게 함께 나타나는 다른 오크들.

창병이 둘에 대검을 든 녀석이 또 하나 더 있다.

오크답게 전원 전사다.

오크 카드를 넷을 먹은 놈들도 있네? 어떻게 한 거지?

"흠, 귀족적으로 잘생긴 얼굴에 붉은 망토. 확실히 바르바로이군. 진짜로 저런 걸 동료로 만들 수 있을 줄이야."

오크 리더인 듯한 녀석이 힐링 포션을 과감하게 자신의 무기에 던져 깨트린다.

번개가 번뜩이며 호응한다.

어라 저거 [묠니르]잖아? 좋았어. 아주 좋아.

이 녀석들은 인간이 아닌 자신들이라면 나를 회복시키지 않고 상대할만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묠니르]의 번개는 일단 신성을 띈 번개니 일반적인 ‘바르바로이’였다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바르바로이로 오해받고 있으니 연기를 해주자.

한껏 귀족적인 말투로.

"이 버러지 같은 녀석들이! 감히 내 오두막을!"

망토를 펄럭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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