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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92화 (92/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92화

9층 - Lv. 99 파티 리더들(3)

열매의 폭발은 분명 정통으로 명중했다.

안타깝게도 전사는 제때 [점멸]을 사용하지 못했다.

요정 리더는 입맛을 다시며 다른 파티원의 눈치를 살폈다.

솔직히 파티원 하나가 죽은 것은 아쉽지 않다.

연차가 된다면 그런 것에 연연하는 이는 드물어진다.

하지만 연차가 안 되는 일부 파티원들의 관리에 문제가 생길 수는 있다.

다행스레 그런 태도를 보이는 파티원은 없었다.

이래서 리더가 되면 피곤하다. 신경 쓸 게 너무 많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상대가 달려왔다. 폭연이 흩어지기도 전에 달린다.

끼얹은 힐링 포션으로 회복 중인 모습이다. 화상이 아직 사라지고 있는 중이었다.

반응이 조금 늦었다. 자신에게 달려온다고 생각해 버렸다. 그럴 리가 없는데.

요정 리더가 한순간 놓친 틈에 마법사가 쓰러졌다.

근접전을 위한 무기를 빼 들지도 못했다.

모두가 방심한 순간이었다.

이어서 궁수도 쓰러진다.

뒤늦게 따라가지만 방법이 없다. 파티의 전사는 방금 유명을 달리했기에 저지력을 가진 파티원이 없었다.

종횡무진 움직이는 모습에 한발 앞서 아군의 앞을 가로막는다.

실패였다.

[대시]에 한계가 없다는 듯 압도적인 기동력을 자랑한다. 숨이라도 찰 법한데 흐트러진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각자 이런저런 중위 스킬들을 보유한 파티원들이지만 반응하기 힘들 정도로 갑작스러웠다.

조금 더 퍼뜨려 놓아야 했는데.

그야말로 일망타진이다.

간신히 따라잡았을 때는 이미 주변의 모두가 쓰러진 후다.

쌍검의 검격이 속도를 위해 낮은 자세를 취한 소녀를 찍어 누른다.

서로 달리던 주력도 있어 눈 위를 한참이나 미끄러졌다.

긴 발자국이, 아주 긴 발자국이 꼬리처럼 늘어진다.

나무에 부딪혀서야 멈춰 섰다.

"휴우, 이제 일대일이죠, 언니?"

"난 너 같은 동생 둔 적 없는데."

"까칠하셔라."

쾅!

손이 저릿저릿해지는 타격. 처음과 전혀 달라짐이 없는 완력이다.

이쪽은 이미 저 소녀를 따라다니기 위해 [대시]를 함께 쓰며 지쳤다.

힐링 포션도 체력은 회복시켜 주지 않는다.

젠장. 젠장!

* * *

훌륭하다. 언제 상대가 방심할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적들은 소녀의 레벨을 확실하게 몰랐고, 어느 정도로 최적화된 마인드맵 세팅이 되어 있는지도 몰랐다.

스킬을 남들보다 더 가지고 있다는 건 굉장한 장점이다.

각자 나름대로 히든카드를 가지고 있었을 요정 리더의 파티원들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소녀가 리더와 바짝 붙어 있었기에 그랬다.

그 후엔 끝난 줄 알고 방심하고 있었기에 그랬다.

[대시]를 얼마나 남발할 수 있는지 역시 잘 숨겼다.

태생적으로 타고난 비현실적인 능력치는 일찍 드러낼 필요가 없다.

뭔가 다른 보정으로 해내고 있을 거라고 믿게 만드는 편이 무조건 이득이다.

적당히 숨길 것은 잘 숨겼고, 드러낼 것은 잘 드러내었다.

만점을 줘야겠군.

요정 리더가 마지막으로 각을 만들어 시전한 [공간 베기]도 알고 있다는 듯 회피했고 일부는 막아내었다.

이건 제대로 쿨다운을 세고 있었다는 뜻이다.

사실 마지막엔 조금 위태로웠다.

막을 틈을 주기 위해 내가 피로 바늘을 만들어 날렸다는 것은 비밀로 하자.

요정 리더는 억울할 것이다.

회심의 일격이 적중하려는 순간 발목이 따끔하며 디딤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으니까.

바늘은 다시 피로 흩어진다. 완전범죄다.

소녀는 주변에 적이 더 있는지 확인한 후, 아무도 없자 제대로 다 기절시켰는지 확인했다.

승리가 확인되자 주먹을 꽉 쥐며 좋아한다.

그러고는 박쥐를 찾아 두리번거리더니 곧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팔짝팔짝 뛴다.

아주 빨리 배우는 아이다. 이 정도면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진 않겠다.

영감님 쪽도 끝나가는 것 같고. 이 오크들도 정리하는 게 좋겠군.

총기에 대한 대응과 [묠니르] 같은 위험한 무기도 학습시켜 볼까 했는데 아직 이른 것 같다.

나는 회피를 멈추고 대지를 향해 마법을 발현했다.

폭발, 또 폭발.

이름 없는 무수한 폭발의 마법이 대지를 수놓는다.

땅거죽이 들고일어날 정도의 폭발에 난쟁이들은 모두 날아갔다.

물리적으로 슝 하고 날아가서 거리가 벌어졌으니 잠깐은 전장 이탈이다.

오크들은 버텨내었으나 당황했다.

무기에 깃든 번개도 마력으로 어떻게 상쇄해 낼 수 있다.

내 마력은 거의 바닥을 보이고 회복되려면 한참 걸리겠지만 이후의 전투라고 할 게 없다.

인간은 권능이면 충분하다.

폭발, 다시 폭발.

번개마저 튕겨낼 정도로 온 사방이 터져 나간다.

발 디딜 대지마저 전부 들고일어나서 보이지 않는다.

직접적으로 오크 리더를 노리지 않더라도 지형이 변하면 운신이 불편해진다.

오크 리더가 망치를 내려쳤다.

번개가 온 사방을 향해 내뻗는다.

그럴 땐 물러나 주면 된다.

그리고 다시 돌입.

다른 오크들은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살상력을 위해서라기보단 멀리 처날리기 위해 폭발을 일으켰다.

어느새 뿔뿔이 흩어졌음을 안 오크 리더가 분노하며 포효했다.

그리고 후퇴를 시작한다.

어랍쇼? 뭔가 이후 플랜도 있었던 건가.

야! 망치는 두고 가.

그런데 정말 두고 갔다.

크게 회전하며 대지에 닿은 [묠니르]가 온 사방으로 번개를 내뿜는다. 내재된 충전량을 모두 내뱉는 모양이다.

고스란히 설치 장애물처럼 되었다. 이 번개의 장벽을 뚫고 가면 죽는다.

돌아가기엔 어차피 놓칠 것 같다.

마침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천천히 사냥하도록 하자.

언데드인 내가 직접 망치를 들 수는 없기에 일단 영감님을 불렀다.

원소를 다루는 주술사니 번개가 깃든 무기를 다루기 편할 것이다.

나중엔 막내에게 줘야겠지만 저 번개의 원소를 견딜 능력이 필요할 것이다.

영감님은 망치를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자신의 도끼를 보고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이 이런. 난 무엇을 골라야 할지……."

"쌍수로 쓰시는 건 어떻습니까?"

"이걸 말인가?"

오크니까 가능하다. 인간은 저걸 한 손에 하나씩 못 든다.

"놓치신 겁니까?"

한 10년은 늙은 것 같은 표정의 사냥꾼이 물었다.

나름대로 짬이 되는 고참들은 소녀나 나에게 몰린 것 같고, 저쪽은 그냥 숫자가 많은 잔챙이들을 상대했다.

하지만 그 잔챙이들도 사냥꾼만큼의 연차가 되는 녀석들이었다.

영감님이 실질적으로 다 맡아 해결했다곤 하나 엄청나게 힘들었으리라.

그나저나 뭔가 더 있나? 박격포반은 적극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걸 챙겨왔을 정도면 뭐가 더 있어도 이상하진 않고.

오두막으로 돌아갔더니 꼬마 마법사와 꼬맹이가 사로잡혀 있었다.

"우, 우리를 보내줘!"

패닉에 빠진 건가?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다. 이대로 있으면 죽는다고 생각하기라도 한 걸까.

"물어!"

"으르렁 왕!"

코믹한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지만 소녀는 정말로 빠르다.

탁탁탁 하고 다들 기절해 나자빠졌다.

피주머니 저장고로 옮기자. 하는 김에 힐링 포션도 압수해서 뿌렸다.

밥 먹인 게 아깝네. 제길. 좀 잘해주려고 했더니.

너무 정신이 극에 몰려 있었다.

나는 소녀를 불러서 칭찬해 주고 쓰다듬어 주고 안아주었다.

꼬리가 있었다면 온 사방을 향해 맹렬하게 흔들렸을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어때, 조금 걸리기 시작했다며?"

내가 이렇게 죽여도 될까? 라고 생각했던 잠깐.

이건 사실 중요한 요소다.

정말로 인간의 마음이 없는 사이코패스라면 끝의 끝에 가서 곤란해질 수도 있다.

충분한 힘을 쥐고 난 후 통제 불능이 되는 수도 있으니까.

이 아이의 심경 변화는 이해가 간다.

처음에는 좀 더 가볍게 생각했고, 조금 지나고 나니 더 현실적으로 와 닿았던 거지.

모두가 그렇다. 처음에는 고통스럽다가, 어느샌가 세상이 게임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시간이 더 지나면 다시 현실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좀 다른 현실, 바깥과는 다르고 이상하게 뒤틀려 있으나 그럼에도 현실.

모두가 이런 과정을 거친다. 소녀는 조금 그게 빠를 뿐이다.

"자, 본 게 많겠지 이번엔?"

"네에."

소녀가 조금 수줍게 말한다. 아니 왜?

그러거나 말거나 하던 말은 계속하자.

"너보다 강자일 수도 있는 입장의 유배자들도 많이 봤고, 여전히 약자이면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유배자들도 많이 봤지."

한 번의 패배와 한 번의 승리도 겪었다.

"어떠냐. 좀 오만했지? 넌 구원자가 아냐."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저도 그냥 미궁에서 살려고 발버둥 치는 일개 유배자인 거네요."

약육강식.

인간의 최소한의 도리는 지키되 결국 여긴 미궁이다.

내가 그 사실을 백만 번을 설명하더라도 한 번 직접 느끼는 것보다 못하다.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아는 것은 다르다.

약간이라도 남아 있던 소녀 속의 문명인이 이제 많이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으리라.

"제 바깥에서의 직업이 뭐였건 간에 여기 사람들까지 구할 필요는 없는 거군요. 이건 게임도 아니고 현실도 아니에요. 그냥 미궁이에요."

"이야, 너 똑똑하다. 난 그거 아는 데 몇 년 걸린 거 같은데."

"제가 아저씨보다 낫나요?"

그럼, 난 이거 완전히 게임인 줄 알았어. 꽤 오랫동안.

사실 지금도 그 생각 자체는 변하지 않았으나, 그것과는 별개로 하나의 현실로서 대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 되는 거야. 처음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사람 찌르고 다니진 말고. 그렇다고 문득 사람을 못 죽이게 되지도 말고."

"네에."

"그냥 적당히 중간쯤에 있으면 되는 거다. 미궁의 법칙이라는 게 별거겠어."

미궁에서 통용되는 방식, 그걸 말로는 설명한 적이 있다. 그걸 진짜로 가슴에 품게 되는 건 결국 시간이 지나고 나서다.

현대인이건, 중세인이 건, 이 세계 나름대로의 방식에 적응하는 게 갑자기 되는 게 아니니까.

가만 보면 오히려 소녀가 가장 정상이다.

막내는 투철한 신앙심으로 어딘가 맛이 가 있고, 사냥꾼은 경력도 어느 정도 되지만 투철한 요정 사랑으로 정신무장이 끝나 있다.

미친 파티로군.

"잘했어. 잘했어."

다시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자기가 먼저 머리를 비벼댄다.

그러더니 갑자기 [대시].

엉?

쪽.

그리고 역방향 [대시], [대시], [대시], [대시].

"야! 이거 성추행이야!"

"아, 어차피 사귈 거라는데 난 몰라요!"

엄청난 속도로 멀어진다. 내가 쫓아가서 때릴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너무 빨라서 못 쫓아가겠는데.

아주 신나서 그러는 것 같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돌아올 테니 묠니르까지 두고 도망간 오크 놈들이 무슨 속셈인지나 생각해 보자.

* * *

여궁수는 잡일을 담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했다.

대충 시키는 것만 하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다.

매번 리더가 되어 행동하긴 했다. 고참은 드문 존재였고, 그 고참들이 자신을 받아주는 건 더 드문 일이었다.

9층 정도에서 이렇게 많은 고참들이 우글거리는 모습도 본 적이 거의 없다.

이게 더 편하다.

그렇지만 배울 것이 없는가에 하고 다른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대화 속의 낯선 단어를 어렵지 않게 캐치했다.

그녀의 새로운 파티 리더와 오크 파티 리더의 대화였다.

"너무 강한데, 인간만 아니라고 어떻게 되는 게 아니야. 마투사였어."

"마투사라니, 큰일인데. 그건 뱀파이어와 너무 잘 맞는 클래스 아니오?"

"젠장할. 묠니르를 두고 왔어."

난쟁이 리더는 작전에 참가하지 않았다. 지킬 게 있다면서 여궁수 외 몇 명과 여기에 남았다.

다른 난쟁이들이 총과 박격포를 들고 끙끙대며 포위진까지 갔다가 오크들과 함께 후퇴한 참이다.

난쟁이 리더가 말했다.

"[캣틀링건]을 써야겠군. 발견해 놔서 참 다행이긴 한데."

"좋아, 묠니르만으로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멍청했다. 특수 무기를 처음부터 써야 했어."

"이젠 뭐, 이미 저쪽과는 척을 져버렸으니 누가 이걸 드느냐도 의미가 없고, 버스는 떠났군."

"처음부터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는 것도 좋았을 텐데."

"그러면 파티는 다 버려야 하니."

"누가 그러고 싶겠냐고."

잘 알 수 없는 대화였지만 여궁수는 꼼꼼하게 기억해 두었다.

특수 무기라면 소문처럼 들어는 본 적이 있다.

미궁의 비정상적인 부분을 극대화한 정신 나간 무언가라고 알고 있다.

구체적인 건 그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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