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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98화 (98/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98화

10층 - Lv.335 황제 친위대(3)

"아주 굉장한 짓을 하는군. 이런 건 어떻게 아는 거지?"

마법의 활용도야 이루 말할 필요 없이 다양하다.

하지만 늙을 대로 늙은 오크 주술사도 이런 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기본적인 것이야 안다.

밀폐된 공간에서 화염을 다루면 공기가 사라진다.

모래 따위를 곱게 가루 내서 뿌린 다음 불을 지르면 폭발한다.

그 어떤 단단한 것도 열과 냉기를 번갈아가며 가하면 취약해진다.

경험적으로 아는 것이다.

더 먼 옛날, 신화 속에나 전해져오는 시대라면 모를까.

지금은 그 정도가 대부분의 마법사들이 아는 전부다.

능력 있는 마법사들은 대개 실험을 할 정신이 없다.

지위가 있다 보니 그런 쪽의 일에도 치인다.

트동트도 그랬다. 제아무리 전사로서 도끼를 들고 설쳐댄다지만 그건 향수일 뿐이다.

달리 말하면 주책이다. 스스로도 안다. 하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벗어던진 대주술사의 직책은 그만큼 무거웠다.

순수한 의미에서 주술을 연구하고 배움에 열중했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열팽창이라. 흠. 흥미롭군."

없던 학구열도 생겨날 정도의 활용이다.

트동트는 투명한 방어막 앞을 미친 듯이 몰아치는 열풍을 보며 그리 생각했다.

과정을 되새겨 보자.

처음에는 충격이 터져 나왔다.

공기를 매질로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충격파.

큰 거 한 방.

정면으로 그런 걸 받아내는 건 너무 마력 소모가 크다.

묠니르와 그루터기 요정 궁수가 함께 땅을 파냈다. 일행은 그 속으로 들어갔고 파낸 땅의 위쪽을 마법적 방벽을 세워 막았다.

혹시 몰라 막내가 방패를 들고 대기한다.

굉음? 파열음? 하여간 큰 충격파와 함께 가장 먼저 지나갔다.

트동트는 저게 뭔지 안다. 오크의 영웅이라 불리는 자들이 너무 빠르게 뭔가를 던질 때 가끔 일어나던 현상이다.

물론 지금 보이는 것은 그것보다 훨씬 파괴력 있는 힘이었다.

무방비하게 맞닥뜨린다면 광분한 트롤이 전력으로 휘두르는 몽둥이에 정통으로 맞은 것과 비슷한 위력 아닐까?

뒤이어서는 끔찍한 열기가 불어 닥쳤다.

좁은 공간에서 한순간에 초고온으로 달궈진 공기는 급격하게 팽창했다.

처음의 충격파는 그로 인해 발생한 전조에 불과하다.

이미 처음에 비하면 많이 식었을 텐데 그럼에도 온 사방이 열기로 달아오름이 느껴진다.

대장간의 용광로는 자주 보았다. 그 내부만큼은 아니더라도 철이 시뻘겋게 달아오를 정도의 온도는 되어 보인다.

물론 가열된 공기의 온도를 유지할 마법은 없다. 빠르게 식어간다.

그럼에도 밀폐된 공간이다.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미로의 복도를 깨끗하게 치워 버리고 태워 버리는 광란의 열풍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뜨거워지면 공기가 커진다는 것은 알았지. 하지만 이런 위력을 낼 수 있을 줄은 몰랐군."

잠시 후, 마침내 미로 내부에 몰아치던 파멸이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던 그루터기 요정 궁수가 해맑게 말했다.

"굉장하네요. 그런데 이제 우리는 어떻게 나가죠?"

"당신도 마법을 좀 다루지 않나?"

정말로 오크에 대한 편견조차 없는지 아니면 그만큼 자연의 신에 대한 신앙심이 투철한 건지.

요정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기는 열을 잘 전달하지 못한다더군. 그래서 이런 식으로 마법을 짜면……."

트동트는 이젠 그의 파티 리더가 된 유배자 사내가 알려준 것을 다시 요정에게 가르쳤다.

요정은 신기하다는 듯 경청하더니 성공적으로 몸 주변에 고정된 공기의 막을 만들었다.

그 안쪽은 냉기의 마력이 순환하도록 짜여 있다.

열을 최대한 차단하도록 섬세하게 만들어졌다.

"이걸 계속 직접 유지하긴 힘드니 술식을 새겨서 만들어왔지."

마법 스크롤이라고 부르기엔 조잡하지만 경지에 이른 마법직이라면 어렵지 않게 다룰 수 있다.

트동트는 자신과 막내를, 요정은 사냥꾼과 자신을.

그렇게 마법이 구현되었다.

엄폐하고 있던 공간의 장벽을 치웠다.

후끈한 열기가 닥쳐온다. 한여름의 공기라기보다도 숯가마의 공기다.

"덥군요. 좀 끔찍하게."

"조금 더 시원하게 할게요."

사냥꾼의 투덜거림에 요정이 친절하게 온도를 더 낮추어 주었다.

* * *

"앗, 검을 챙길걸!"

"굉장히 좋은 검이었던 것 같은데 아직 남아있지 않을까요?"

두 사람은 오들오들 떨며 열풍이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 소녀가 죽은 요정의 장비를 아쉬워했다.

루팅을 생각하기도 전에 신호가 떨어진 탓이다.

"그래도 지금 집어 들기엔 너무 달궈지지 않았을까?"

"으음."

꼬마 마법사가 로브 자락을 찢으려고 했다. 제대로 되지 않아 소녀가 잡고 찢었다.

"이건 왜?"

"이걸로 싸두면 되지 않을까요?"

소녀가 반색했다. 안 그래도 쓰던 대거는 슬슬 내구를 다해간다.

8층부터는 직접적인 전투가 의외로 적었기에 아직도 쓰고 있는 것이지 사실은 진작 보내주었을 무기다.

"후우."

그러고 소녀가 새 무기 생각에 히히덕거리고 있는데 달뜬 신음 같은 소리가 들린다.

옆을 보니 꼬마 마법사가 상기된 얼굴로 입술을 핥고 있다.

묘하게 요염해서 부럽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땀을 굉장히 많이 흘리고 있다.

"물! 물 마셔."

꼬마 마법사는 지능 몰빵인지라 아직도 유배자라기보다는 일반인에 가까운 체력밖에 없다.

이제 힘에도 투자하고 있으나 레벨 자체가 썩 높지가 않다.

꼴깍꼴깍하며 아기 새처럼 물을 받아 마신 꼬마 마법사가 눈으로 감사를 표한다.

요정 사제의 로브 덕인지 소녀는 그렇게까지 덥다고 느끼진 않았다.

커다란 여동생이 아주 귀여워 보이기 시작했다. 돌봐준다는 감각에 소녀의 마음에 무언가 뿌듯함이 차올랐다.

열풍이 지나가고 파고들었던 땅에서 밖으로 나왔다.

바닥이 뜨거워 신발이 쩍쩍 들러붙는다.

지옥 같은 환경이었다.

습기란 습기는 싹 날아가고 바짝 건조한 열기만이 남아 있다.

소녀는 얼른 가서 검을 찾았다. 열풍에 휩쓸린 쌍검은 근방에서 발견되었다. 날은 조금씩 달아오르려던 참이었다.

보기 끔찍했을 시신은 어디로 갔는지 알지도 못하겠다. 다행한 일이다.

꼬마 마법사는 마력을 온존할 생각 자체를 버렸다. 이곳에서 버티는 것만 해도 일이다.

싸움이 일어날 것 같지도 않다.

그러다가 숨이라도 한 번 잘못 들이쉬면 폐가 타버릴 테니.

* * *

생각보다 유적이 튼튼했다. 이 정도 압력은 못 버틸 거라 생각했는데 폭심지조차 무너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미로의 천장에 폭발을 몇 방 더 먹이자 가운데부터 주저앉기 시작한다.

마법은 전혀 마법적이지 않은 물리적 공격에 묘하게 강하다.

마력 자체가 원래 단순한 물리적 충격에는 저항력을 가진 힘이다.

꼬맹이는 열심히 연습한 대로 자신 주변의 공기를 완전히 차단하고 열전도도 감쇄하는 방어막을 짜내었다.

조금 위태해 보이긴 하지만 애초에 뱀파이어고 그렇게 생사가 달린 문제는 아니다.

나 역시 그렇다.

여긴 폭심지 주변이라 기온이 펄펄 끓고 있다. 아직도 네 자릿수 아닐까?

이런 환경에서는 화상도 문제지만 호흡할 공기를 냉각하는 것이 가장 관건인데 뱀파이어는 그냥 숨을 안 쉬면 된다.

공기를 완전히 차단해 버리면 되니 참 쉽다.

기온도 문제없다. 더위 타는 시체 본 적 있는가? 체온은 몸이 타버릴 정도가 아니면 전혀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작열지옥이나 다름없기에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시커멓게 그을린 살풍경한 미로의 내부는 체르노빌을 연상케 한다.

방호복 없이 들어오면 죽는다.

요정 제국이 만들어둔 마법진은 기대 이상의 출력을 내주었다.

오래 쓸 생각도 아니고 화끈하게 과부하시켰더니 다시는 쓸 수 없게 되었지만 상관은 없다.

이미 미로 전체가 더없이 끔찍한 함정이다.

잘 구워진 트롤의 시체가 보인다.

이건 아마 재가 되어 날리는 와중에도 재생을 하다가 결국 숨이 끊어진 것이다.

그러니 형체라도 남아 있지.

오크거나 고블린이었던 것 따위는 형체조차 없다.

막대한 압력에 복도가 뒤틀리고 갈라져 있다. 무너져 길이 막힌 곳도 많았다.

생존자가 없나? 그럴 리는 없는데.

꼬맹이에게 마법탐지를 사용하게 시켰다. 내가 사용하면 범위가 너무 좁다.

아직 동시에 유지할 능력은 없다. 꼬맹이는 조심조심 내 곁에 붙어 내 마법적 방호복 안으로 들어왔다.

새어 나가는 마력 없이 섬세하게 다룬다. 이건 정말 재능의 영역이다. 숙련된 전투 마법사도 섬세함 면에서는 부족한 이들이 많다.

꼬맹이가 멈칫했다. 잠깐 동안 고민하며 이런저런 시도를 해본다. 그러다가 질문한다. 결국은 막힌 모양이다.

"지금 제 마력을 함부로 방출하면 우리를 둘러싼 공기 차단이 깨지는 것 아닌가요?"

미래의 꼬맹이는 처음엔 마법 배우는 걸 별로 안 좋아했다고 그랬는데.

학구열이 그리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기준이 좀 다른 걸까.

"맞아, 평범하게 하면 그런데. 마력이라는 건 결국 마나의 움직임이잖아. 그러면 처음부터 체내의 마력만으로 짜는 게 아니라……."

마력탐지는 사실 마법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아니다. 마력으로 하는 반향정위 같은 거라서 그냥 기술이라고 하는 편이 더 옳다.

그러니 잡기술도 많다.

꼬맹이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10초간 더 생각하더니 해내었다. 대단하군.

"어, 음. 생각보다 많이 살아 있어요."

"몇 명 정도?"

"열…… 둘?"

그 정도면 오히려 생각보다 적다.

꼬맹이는 눈앞의 참상을 보고는 그저 누가 살아 있다는 것마저도 신기했던 모양이다.

예측했던 것보다 좀 더 큰 화력이 나오긴 했다.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저쪽도 탐지를 걸어온다.

이 참상을 일으킨 원인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는 태도다.

황제 친위대라고 했지.

종족 간의 균형을 생각하여 그린스킨에 속한 모든 종족들이 속해 있다. 아무리 멍청한 그린스킨들이라고 해도 정치는 있다.

가장 먼저.

쾅!

오우거 하나가 들이닥쳤다.

마법진 과부하와 폭압을 버티느라 얼마 남지 않았던 벽의 강화 마법도 날아갔다.

오우거치고도 크다. 거의 트롤 같다.

꼬맹이가 얼른 달아났다. 전투 시에는 근처에 숨어 있으라고 했다.

나는 대뜸 휘둘러지는 강철 몽둥이를 막아내려고 하지 않았다.

풀스윙의 주먹질. 그 끝에 마력이 눈에 보일 정도로 맺힌다.

고레벨 전사의 공격과 비교해도 느리지 않은 마법 발현 속도.

마투사의 마법은 특별히 속성을 집어넣지 않는다면 무속성이다.

순수한 마력의 폭발은 물리적 충격이 된다.

상대의 방향으로 온전히 지향성을 지닌 폭발이 오우거의 몽둥이와 맞닿았다.

폭음이 울린다. 나는 꽤나 밀려났다. 단순 완력으로는 비교할 수 있는 체급이 아니다.

오우거는 밀려나지는 않고 재차 공격을 이어왔다.

하지만 큰 위기에 처했음이 보인다.

방금의 타격으로 주변을 유지하고 있던 보호막이 증발했다. 우주에서 우주복이 찢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화상으로 피부가 짓무른다. 호흡을 멈춘 것이 보인다.

뒤로 물러나며 몇 번 더 폭발을 일으킨다.

오우거는 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떻게든 나를 으깨고 함께 죽겠다는 생각이었다.

당연히 이루어지지 않는 꿈이다.

격한 움직임에 나를 방호하는 마법도 유지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몸이 조금 타는 정도는 아무런 타격도 아니다.

오우거는 결국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숨을 참지 못했다. 폐가 타들어가고 몸이 속부터 불타오른다.

쓰러진 오우거의 몸이 열기에 일그러진다.

꼬맹이가 한 번 더 마법탐지를 걸었다.

다른 황제 친위대의 생존자들이 급격하게 멀어지고 있다.

상황은 알 것 같았다.

신좌에 처음 앉으면 의외로 그렇게 낯선 느낌은 들지 않는다.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유닛들이 전적으로 내 말을 듣지는 않는다 뿐.

전쟁의 신은 이 유적을 발굴해 내는 것이 이 서버의 패권을 잡는 데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가장 중요한 임무 목표인 셈이다.

그러니 주시하고 있었으리라.

이미 지긋지긋하게 자신을 괴롭힌 유배자 하나가 또 나타나지 않을지.

저 오우거는 신의 명을 받들어 상황을 보러왔고, 나를 죽일 수 있을지 간을 보았다.

힘드니 봉인된 고대의 전사들을 먼저 깨울 생각인 것이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오우거의 시야를 통해 내 얼굴을 본 전쟁의 신이 얼마나 깜짝 놀랐을지 궁금하군.

[자연의 신이 전쟁의 신에게 말을 걸었으나 응답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많이 화난 것 같습니까?"

[자연의 신이 지금 혼돈의 여신이 전쟁의 신을 엄청나게 놀리는 중이라고 말합니다.]

아주 신나셨나 보군. 전쟁의 신이랑도 아는 사이셨나?

하긴 트롤인 것도 알고 계셨고 신으로서도 고참이신 것 같으니 연이 없기도 힘들다.

[자연의 신이 신난 혼돈의 여신을 보며 흐뭇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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