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에 갇힌 고인물-116화 (116/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116화

12층 - Lv. 445 요정 마피아(1)

미궁은 게임 시절에도 소지할 수 있는 장비의 수가 썩 넉넉하지 못한 게임이었다.

무게도 무게거니와 부피도 따진다.

오랜 게이머라면 익히 알 수밖에 없는 격자 형태의 인벤토리가 부피라는 한계를 효과적으로 구현했다.

장비들은 무게 외에도 2*4칸이라거나, 4*6칸이라거나 따위의 형태로 자신의 부피를 뽐내었다.

이 인벤토리는 가방의 성능도 성능이지만 물리적 덩치가 클수록 더 넓었다.

현실이 되고 나자 오히려 그런 복잡한 부분은 사라졌다.

게임은 어디까지나 현실의 단순화인 법이지만 때로는 현실 그 자체가 게임보다도 단순할 수 있다.

사냥꾼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으나 파티원들은 더 이상 짊어질 공간이 없었다.

천둥의 망치를 휘두르는 오크 주술사도 체구에 맞게 튜닝된 플라즈마 라이플을 한 정을 손에 들었다.

철과 철이 맞부딪히는 전투야말로 진정한 전투라 여기는 영감님이지만 애초에 새로움을 쫓아 떠난 마당이다.

그로서는 상상도 못 할 마법 같은 무기들이 못내 신기한 모양이었다.

"이거 한 방에 마법 방벽이 펑펑 흔들리는 게 참 아찔했지. 원리 자체는 불의 마법과 크게 다를 바가 없나?"

잠깐 여유가 생긴 틈을 타 나름대로의 마법적 분석도 시도한다. 꼬마 마법사도 그에 동참했고 꼬맹이도 슬그머니 경청한다.

마법직 삼인방은 그럭저럭 죽이 잘 맞는 모양이다.

소녀는 스위치를 올리며 감동했다.

"광선검……!"

"쪼끄만 놈이 왜 그런 거에 감동을 해."

"베이더 경은 제 우상이라구요!"

이거 참 올드한 취향이군. 그렇다 해도 나쁜 것은 아니다.

이 게임의 제작자들 역시 올드한 취향이긴 마찬가지였기에 이 동네의 광선검은 실로 그렇게 작동한다.

플라즈마를 자기장으로 가둔다던가 어쩌던가. 과학적으로야 불합리한 겉멋이나 애초부터 마도공학이니 합리가 끼어들 공간이 없을 터.

나 역시도 마도공학 그 자체에는 조예가 깊지 않다.

깊을 필요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과학이 섞인 시점에서 모든 무기와 병기들은 일정한 관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관리를 받으려면 획득한 서버의 획득한 시대로 가는 수밖에 없다.

이건 현실적으로 지속 가능한 운용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무리해서 하고자 하면 못할 것은 없겠으나, 묠니르 정도면 이 시대에도 훌륭한 오파츠다.

[메인 던전] 따위에 진입하거나 대륙의 모든 시대를 샅샅이 긁어서 그런 장비들을 더 획득하는 편이 장기적으로는 수지가 맞다.

현실적으로 쓸모가 있는 것은 꽤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개인화기 정도다.

그리고 그것을 정비하는 것에 많은 공부가 필요치는 않았다.

막내가 이제 새롭게 총을 한 자루씩 들어보게 된 파티원들에게 기본적인 분해조립을 가르치고 있다.

플라즈마나 빔 라이플도 쏘다보면 청소를 해주어야 한다. 배터리도 갈아줘야 한다.

에너지 자체는 충분하되 그것을 사출 가능한 플라즈마로 가공하는 장치에 수명이 있기에.

이는 무기를 소모품으로 여기게 하는 게임적 시스템이기도 하지만 총기 레인저에게 부여된 페널티이기도 하다.

화력 자체는 별 대가 없이 손에 넣으니 다른 방향으로 숙련도를 추구하게 한 것이다.

그런 일이 빠르게 일어나는 동안 나는 나대로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잡혀 있는 유배자가 있다고?"

"예,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아마 유배자가 나타났단 말에 눈이 돌아가서 어떻게 붙잡고 해먹을 생각부터 했을 터이고…….

사실 일어나는 일들이 하도 큼직하니 겪지 못했을 뿐, 오히려 중세 판타지 시대에 더 자주 겪는 일이다.

유배자를 붙들어놓고 물장사를 하는 것은 누구나 생각할 법한 만한 일이다.

그래서 그만큼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중세에는 특히나 샘물은 ‘기적’ 그 자체로 보일 터니 더하다.

하지만 더 계획적이고 위협적인 유배자 사냥은 미래에서 이루어진다. 다 알고 하는 짓이니 걸려들면 더 빠져나가기 힘든 경우가 많다.

"구하실 생각이라면 저희도 기꺼이……."

"그건 생각을 해봐야지. 자 아는 걸 다 불어봐. 뭐 하는 놈들이었는지부터 해서 말이지."

그렇게 알게 된 것은 이미 3년이나 지난 일이라는 것. 그리고 요정들의 돈줄이나 다름없기에 아무튼 삼엄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것 정도다.

자살도 할 수 없도록 가사 상태로 만들어두었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이게 참. 우주 테마의 생존자가 지나치게 적어 홀수층이 정상 기능하지 않고 있다. 그리하여 짝수층처럼 기능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럼에도 유배자와 엮이게 되는 것이 또 우습다.

"왕국에서 온 놈들이려나?"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사냥꾼이 반문한다.

"규율의 신이 이미 움직이고 있었잖아. 이 미래를 만드는 것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우리가 맞을 거야. 아니 사실 그냥 우리가 다 한 수준이지. 하지만 가장 먼저 미래에 도착한 건 우리가 아닌 것 같단 말이지."

사냥꾼은 오랜만에 노련한 유배자의 면모를 발휘하였다.

생각해 보면 내 파티원이 되지 않고도 자력으로 왕국까지 도달할 수 있었을 법한 인재다.

"정말로 전멸해 버렸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지요."

"소문은 못 막아. 천사를 통해 여신님이 알려준 게 있지?"

"예, 극소수지만 먼저 통과하여 왕국에 도달한 고참급 유배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규율의 신도 아닐까?"

"있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미래 시대에 해당하는 스테이지는 아주 위험하다.

영웅이라 불릴 만한 강자들은 오히려 줄었을지언정 장비에 의한 개개인의 화력은 영웅에도 견줄 만큼 높다.

그리고 그런 화력을 내는 개개인이 지나치게 많다.

무대의 스케일도 너무 크다. 온통 변수투성이인 스테이지다.

결국은 운이다. 하지만 운의 폭이 너무 넓어진다.

강력한 유배자들이 그런 곳에 뛰어들다 보면 불상사를 겪어 억류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유배자에 대해 잘 아는 주민들이 자살을 막으면 정말로 언제까지고 붙들려 있기도 한다.

기력이 다해 죽는 순간까지.

그야말로 사냥당한 것이다.

"일단, 가능하면 구해보도록 하지."

"그러지요."

고개를 끄덕이긴 하지만 사냥꾼은 약간은 대화를 따라가기 힘들어하는 모습이다.

왕국 이후에 도달해 본 적도 없으니 조금 다른 세상이 이야기로 느껴지기는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뱀파이어 소드 마스터가 따라나서기로 했다.

"왜?"

"그냥……."

오래 묵은 뱀파이어 클랜 마스터의 입에서 나오기엔 상당히 실없는 소리였고 나는 추궁했다.

결국 프로보이는 한숨을 내쉬며 솔직해졌다.

"살아 있기 위해 이유를 찾는 것도 질렸습니다. 유배자 보기도 참 힘들어진 세상인데 얼굴이나 익히고 친분이나 좀 비벼보려고 그럽니다."

"아니, 왜? 한 행성을 갈라 먹고 있는 뱀파이어 클랜의 마스터라면 유배자를 부릴 수 있는 입장일 텐데."

숙이고 들어오는 것 또한 우리의 배경이 너무 거대한 탓이다.

절대다수의 유배자들은 대륙에서 먹히는 권력을 손에 넣지 못한다. 부평조처럼 떠다니는 삶일 테니.

"왜라뇨. 어차피 이 우주는 전부 유배자를 위한……."

프로보이는 문득 본심을 내뱉었다.

나는 대충 어느 정도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단 심증이 확신이 됨을 느꼈다.

프로보이가 말을 멈추었다. 순간적으로 내 표정을 읽었을 것이다.

"그렇게까지 자세하게는 보통 아무도 못 밝혀내는데?"

"오, 맙소사. 사실이었나. 그냥 제 심증이었습니다."

가끔, 정말로 가끔 아무런 논리 없이 진실에 도달하는 녀석들이 있다. 오래 살면서도 나사가 빠지지 않는 녀석들이 그런다. 드래곤이라거나.

일개 뱀파이어 출신이 그렇게 되는 것은 의외인 일이었다. 의외인 일이 산더미처럼 많은 회차지만.

"뭐, 그래서. 혹시 왕국으로 떠나고 싶기라도 한가?"

왕국에 사는 NPC들은 여러 서버에서 모여든 이들이다.

유배자와 친분이 생기고, 그 끝에 자신의 거짓됨을 알며 한 차원 위라고 할 수 있는 왕국으로 가고 싶어 한다.

흔히 일어나는 일이기에 왕국의 NPC 숫자는 딱히 줄어들지 않는다.

소드 마스터, 그것도 인간이 아닌 소드 마스터는 어찌 되었건 강력한 전력이다. 이놈을 데려가야 하나 하고 잠깐 고민을 하는데 프로보이가 먼저 고개를 저었다.

"저는 그냥 여기 살 겁니다. 뭘 새로 하기엔 너무 늦었어요. 책임……을 똑바로 지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런 부하들도 많고."

"그럴 수 있지."

"저는 딱히 강해서 살아남은 게 아닙니다. 살아남다 보니 나름대로 강해졌을 뿐이지."

그건 너무 겸손한 발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소드 마스터에 종족적으로도 [데이워커]에 도달한 뱀파이어라면 왕국에서도 환영받은 입장일 것이다.

꽤 여러 가지 의미일 수는 있지만.

"이렇게 얼굴이나 알아두고 싶군요. 전 앞으로도 살아갈 테고, 그렇다면 다시 마주칠 일도 있지 않겠습니까."

어찌 되었건 요정 마피아들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으로 이동할 수단이 준비되었다.

* * *

"이야……."

"마지막으로 사용하고 얼마나 긴 세월이 흘렀는지 모릅니다. 다행히 관리 시스템이 아직 살아 있어서 안전한 것 같습니다."

소녀가 감탄했고 난쟁이 무기상이 굽신거렸다.

행성의 중심부를 관통해가는 지하철 비슷한 무언가였다. 아니지 차라리 엘리베이터일까?

인공행성인 만큼 흔히 생각하는 행성급의 크기에 비하면 상당히 작은 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륙이라 불리던 과거 모행성의 절반은 되는 규모를 자랑한다.

미래 시대, 혹은 우주 테마는 이게 문제다. 지역적 스케일도 너무 커진다. 운송수단도 발전한다고는 하지만 환경 변화를 도무지 짐작도 할 수가 없다.

"요정 마피아랑 연락한 지는 오래되었고?"

"형식상의 접선만 하고 있지요. 여긴 그래도 도시라고 부를 만한 곳입니다. 행성 표면 대부분은 자리 잡은 세력조차 없는 진정한 무법지대니까요."

"이거 제대로 도착은 하는 거 맞지?"

"저쪽도 안 쓰고 있을 것 같긴 한데, 관리 시스템이 살아 있으니 유지보수는 계속되고 있었을 겁니다."

애초에 동맹의 실험을 통해 만들어지고 그대로 버려진 행성이다.

기존에 있던 모든 것을 다 파악하고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여기까지인가.

‘자연이시여, 뭐 아시는 것 없습니까?’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2차 요정 전쟁 이후 생각보다는 많은 요정들이 내 신앙을 이탈했다는 것뿐이네. 이런 식으로 흩어져 있는 내가 모르는 요정들은 모두 그런 이들이겠지.」

‘그 이탈이라는 거, 흠. 배신자들도 있겠군요. 그때 그 현장에 있었던.’

「그 결전 이후 신앙을 바로 배반하고 사라졌으니 이후 행적은 나로서도 확실히 알 수가 없지. 잎사귀 요정을 만나면 주의하도록. 요정의 수명이라면 아직 살아 있는 영웅들도 있을 테니.」

‘어째 프로보이는 좀 쉽더라니.’

요정 마피아의 구역 쪽에 자연의 신앙을 가진 이는 전혀 없다고 한다.

자연의 신앙이라는 것 자체가 자연이 좀 신비롭던 시절에나 쉽게 믿어지는 것이다.

오래 산 순수한 요정들이 살아남아 유지를 잘해줄 뿐, 새로이 신도가 되는 이들은 아주 적다.

「나도 뭐 도움은 못 되겠군. 대전사여.」

"여신님 신도는 왜 연방의 영역에만 모여 있답니까?"

「다른 영역에서는 탄압받으니 절로 모인 게지.」

혼돈의 교단의 압도적인 인구수도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동맹의 변방 중에서도 변방인 이 행성에 고블레타리아 연방은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진 않은 모양이다.

그럴 만도 하지.

건너편에서 무슨 일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미래의 나도 이런 부분은 설명해 두지 않는다. 정말로 그때그때 다를 수 있는 부분이니까.

영감님이 성녀에게 했던 말도 그렇다.

오크로서의 삶을 얼마 영위하지도 않았던 인간 성녀가 오크 주술사 스승의 말 한마디에 감화되어 성전을 일으키고…….

인간의 종교를 무력으로 통일하여 결국 인간이 동맹의 패권마저 잡게 했다.

성녀가 좀 순수한 인물상인 탓도 있겠으나 영감님의 최초 발언이 뉘앙스만 조금 달라졌어도 어땠을까?

그런 의미에서는 중세 판타지가 편하다. 그 시기에는 아무래도 역사가 크게 요동치지는 않으니까.

"혹시 모르니 마법 방어 준비해. 시스템 살아 있다고 하니 뭐 죽기야 하겠느냐마는."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마법직 셋이서 개개인을 보호하는 방어막을 준비했다.

그것이 완료되었음을 확인하고 기차가, 엘리베이터가.

아니, 젠장할 로켓이 발진했다.

"잠끄아아아악만 겁나 빠르즈아아아아낙."

"이야아아앗호 신난다!"

꼬박 한 시간을 그 속도로 이동했고 소녀는 그 시간 내내 신나 했다.

다른 파티원들은 녹초가 되었다. 특히 꼬마 마법사는 의식이 없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