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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117화 (117/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117화

12층 - Lv. 445 요정 마피아(2)

게임을 하다 보면 개발자의 악의를 느낄 때가 있다.

그런 악의는 대부분 상상도 못 한 곳에 상상도 못 한 강적을 배치한 것을 보며 느낄 수 있는데, 로그라이크는 맵의 구성이 그때그때 달라지니 배치를 통해 그리 느끼지는 않는다.

그럼 어떻게 느끼냐고 하면 상대가 전조를 강렬하게 뿌려댄다. 너는 지금 아주 큰일이 났다 같은 신호.

예를 들자면 위험하고 강력한 네임드에게 기묘한 습관이나 특성을 설정해둔다거나.

인간의 위대한 마법사이자 [히어로 유닛] 샤크마 또한 그렇다.

샤크마는 이상할 정도로 마력에 대해 높은 공감력을 타고난 돌연변이에 가까운 천재다.

그 덕에 그의 마력은 굳이 식별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을 만큼 개성적이다.

마법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별다른 장비 없이도 꽃가루가 떠다니듯 식별 가능한 수준.

거기에 샤크마는 보통 수명을 다해 늙어 죽지 않는다.

나이 들고 강력한 마법사들이 흔히 영생을 위해 시도하는 것.

이 시대라면 그는 강력한 리치 혹은 데미리치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인간 히어로 유닛들이 그렇듯이 이자 또한 결함을 내포하고 있는데, 미친 마법사라는 점이 그렇다.

괴팍하고 골치 아픈데 힘은 또 터무니없이 강력한 리치.

보통 별다른 유배자의 개입 없이 이 시대까지 흘러왔을 때 보게 되는 샤크마의 상태다.

* * *

프로보이가 여기까지 온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요정 마피아들에 관해 뭔가 더 아는 거 없어?"

"어떤 것 말입니까?"

"그들에게 뒷배가 있다거나, 혹은 그들이 끔찍하게 살해당했다거나.

"전자는 알 거 같은데 후자는 모르겠는걸요."

그 뒤에 들은 내용은 일종의 도시전설 같은 것이었다.

사실 요정 마피아는 더 많은 유배자들을 억류해 두고 있으며 그 일은 어딘가에서 사주한 것이라고.

"그렇게 많은 유배자들이 이곳에 나타났나?"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간혹 나타나곤 하지요. 아, 물론 제 기준에서의 가끔이니 인간 정도의 수명이면 평생 몇 번 못 봤을 겁니다. 다른 곳에 비하면 빈도가 높은 편이긴 하지요. 어쩌면……."

"생각한 게 맞을 거야."

불운한 유배자에게도 미궁은 일정 규칙하의 불운을 제공한다.

유배자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정말 어디든지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뭔가 진행하며 확률에 변동이 생겼거나, 혹은 단순히 재수가 더럽게 없어서 난이도가 극도로 올라간다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곳에 나타난다.

난이도가 높으려면 적어도 그 환경이 험악한 곳이거나, 아주 위협적인 적이 있어야 하고 그런 곳은 한정되는 탓이다.

즉, 위험한 곳일수록 유배자는 더 많이 나타난다.

그런 의미에서 이 행성은 충분히 위험했고, 유배자가 많이 나타날 만 했다.

당장 내 옆에서 오오거리면서 자신이 알게 된 정보를 되새기는 뱀파이어 소드 마스터도 다시 제대로 싸우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다.

난쟁이들 역시 마찬가지고.

하지만 여기서 끝이면 11층에 비해 뜨뜻미지근한 감이 있다.

실제로 쉽게 이겨내기도 했고.

소녀가 낀 난이도에 비하면 좀 스무스한 느낌이 있다.

그러니까 여기에 계단이 있다는 것은 지금 거의 확정되었다.

원래 계단은 가능하면 뭣 같은 곳에 있다.

"이건 달려야겠는데. 정확한 위치만 파악하고. 최대한 빠르게 다음 층으로."

소녀는 꽃가루처럼 떠다니는 마력을 손으로 잡아보려 하다가 말했다.

"이 마력의 주인 많이 위험해요?"

"아직 인간일 때라면 몰라도 리치는 고위 언데드라서 사실상 고위종족이야. 그 성녀가 천사가 되었다고 생각해 봐."

"도망치죠. 싸우는 건 좀 많이 아닌 것 같아요."

특히 NPC 마법사는 스킬로 구현하는 것이 아닌 만큼 더 위험하다.

자작 마법 같은 것은 나라도 예측하기 힘들다.

어디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위험한 적이다.

프로보이는 그런 리치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 있단 말이지. 이렇게 눈에 띄는 마력이면 알려져 있겠지?"

"이런 현상 자체는 엄청나게 예전부터……. 그러니까 제가 여기 정착했을 때도 이미 이랬습니다. 꽃가루 같으니까 요정들이 뭔가 한 건가 했는데."

"그게 몇 년 전이야?"

"행성이 버려진 직후죠. 백 년 좀 넘었나?"

"그때 동맹은 이미 철수했었고?"

"예."

흠, 그 생각을 해봐야 했다. 동맹이 버린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사실 굳이 버릴 이유도 없다.

위치가 애매하고 딱히 이점이 없는 지역이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 개조하면 거점으로라도 쓸 수 있었을 것 아닌가.

그런데 동맹이 무언가에게 밀려난 것이라면?

그리고 요정 마피아라는 게 사실 누군가의 사병력이라면?

괴팍한 리치는 흔히 부하를 거느리는 법이다. 악당의 보스답게 말이지.

샤크마라는 네임드 특성상 이것은 또 흔한 일이었다.

그리고 보통 그렇게 조직을 꾸리는 이유는.

"유배자들 계단으로 떠난 적 없는데도 사라진 적 많지?"

"음, 그야 뭐. 그냥 죽었나 그랬죠."

나는 빠르게 행성을 관통하는 로켓 시설에 사용한 흔적이 있나를 살폈다.

거의 없었다. 오랜 시간 버려진 채, 로봇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남겨진 흔적으로 추측건대 요정 마피아는 이 시설의 존재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흩날리는 듯한 특징적인 마력 또한 아주 옅었다.

밀폐된 곳에 오랜 세월 조금씩 스며들어온 것처럼.

‘자연이시여 뭐 아시는 바 없습니까?’

「그 리치가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까지는 알지. 나를 배반한 요정들이 발붙일 곳이 많지 않았으리라는 것도.」

자연을 배반한 끝에 전쟁의 신을 섬기게 된 요정들의 사례는 역사에도 남아 있다. 그린스킨의 제국에서 대부분의 요정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요정의 수명은 너무나도 길다. 돌아갈 곳이 사라진 그들은 대안을 찾아야 했을 것이다.

"우호적이길 기대하는 건 미친 짓이겠군."

이것은 달려야 하는 문제다.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프로보이를 보았다.

"일단 다음 층까진 같이 가지."

"예?"

"돌아올 수 있을 거야."

프로보이의 생각은 꽤나 가벼웠다. 요정 마피아들 사이에서 제 한 몸 빼내는 것을 못하리라곤 생각을 못 했던 탓이다.

하지만 불가능해졌다.

설명을 듣고 납득은 했으나 오래 산 뱀파이어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이참에 연방의 일원이 되는 건 어때?"

"그게 됩니까?"

"여신께서 허하실 테니."

"……세상은 돈이죠."

"공산주의도 사유재산을 허락하지 않는 건 아닌데."

"아무튼 싫습니다."

안 봐도 여신님께서 낄낄대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 * *

요정들은 꽤 오랜 시간 이 행성에서 살았다. 백 년이 넘어가면 오래 사는 요정의 입장에서도 인간의 십 년과 비슷한 감상을 가지게 된다.

그들은 폐쇄적인 인공행성에서도 유달리 폐쇄적인 형태의 도시를 만들었다.

인구는 의외로 많았다. 갈 곳 잃은 요정들이 자리 잡을 곳은 이 우주에 흔치 않았다.

특별히 먼 과거에 자연의 신을 배신하지 않았던 요정들도 많이들 몰려들었다.

인간에 의해 동맹에 더 이상 발붙이기 힘들어진 탓이다.

단명하지만 권력을 쥔 인간들의 질투는 그만큼 대단했다.

어여쁘고 영원한 젊음, 그리고 타고난 다양한 재능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요정은 완벽한 종족이긴 했다.

임신 기간 역시 십 년에 달하는 바람에 인구가 늘어나기가 극도로 힘들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그렇게 고향을 떠나 방랑하는 일부 요정들은 그 과정에서 꽤나 포악함을 몸에 익힐 수 있게 되었다.

이유 없는 적의, 해결할 수도 없는 적의는 새하얀 도화지를 쉬이 물들인다.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순찰을 돌던 그루터기 요정은 거칠게 침을 뱉었다.

가래침이다.

옆에 있던 전우조 하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길을 걸으며 연초를 태워대었다.

대체로 자연과 ‘순결’의 신 아래에서는 허가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시대가 발전할수록 이런 식으로 일탈을 범하는 요정들은 늘어났다.

요정은 아름다우며 순수하고 고결해야 한다.

순결 접미는 특히나 그런 점을 강조하는 성향의 신좌였다.

그리고 사실 요정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렇게 타고난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모든 개체가 그럴 수도 없다.

최초 요정 전쟁 시절의 배신자들부터 하여, 근래 들어 동맹의 일원이기를 포기하는 요정들까지.

모두 시대의 물결이 범람하여 점점 자극적인 오락거리들을 늘어놓는 이상 어쩔 수 없는 흐름이다.

물론 그런 일탈을 행하는 중이라 해도 근본은 성실하다.

10년 동안 같은 곳을 순찰하는지라 바닥이 반들반들해졌음에도 성실하게 구석구석을 살핀다.

때로는 마법조차 동원했다.

마법사라는 단어의 뜻이 마법 카트리지를 능숙하게 다루는 자를 뜻하게 된 이 시대다.

그럼에도 그루터기 요정들은 진정한 의미의 마법사였다.

그런 성실함 끝에 평소와 다른 점이 발견되었다.

"여기 문이 있었나?"

"아니, 분명 그렇지는 않았을 건데."

마법이 바닥을 칠한다. 비교적 나중에 개발된 흔적을 찾는 마법이다.

마력이 흐르며 지나간 생체 반응을 감지한다. 불과 몇 분 전에 이곳을 통해 상당한 인원이 빠져나왔음을 알 수 있었다.

당장 이곳에 침입자가 없으니 들여다보아야 했다.

안쪽은 잘 알 수 없는 시설이었다.

그루터기 요정 하나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결론을 냈다.

"이거 잘 모르겠지? 그럼 유배자 아닐까?"

유배자는 이상하게 이 행성에, 이 요정의 도시에 자주 나타나는 것들이었다. 요정들은 고용한 고용주는 자신의 존재로 말미암아 유배자를 끌어들인다고 설명했었다.

"보고! 보고하러 가자!"

"순찰은?"

"마저 돌고 갈까?"

"응, 그러자."

이 도시의 주민들은 죄다 수명이 아득한바, 느긋하다.

상관도, 고용주도 살아가다 보면 있는 여러 가지 일에 크게 연연해 하지 않는지라 그렇게 보고가 몇 분 더 늦춰졌다.

* * *

뼈다귀 손이 움직인다. 오래된 리치는 유배자의 힐링 포션에 손가락을 담갔다.

치직거리는 소리가 나며 뼈가 손상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고통은 거의 없었다.

실질적인 대미지도 없었다.

이것이 신성 속성에 완전히 면역이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큰 약점 중 하나가 극복되어감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고통이란, 언데드에게 없어야만 하는 감각인데 성수도 아닌 이런 액체가 말이지."

그것에 어떤 법칙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안다. 그 법칙이 아주 불가해하다는 사실 역시 안다.

하지만 리치는 그 법칙마저 자신의 것으로 하고 싶었다.

미궁이라는 것 자체가 인격을 가진 괴팍한 무언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계속 그랬다.

"유배자가 더 있으면 좋겠군. 이왕이면 강하고 오래된 것으로."

마음 같아서는 신을 하나 잡아 오고 싶다. 신이란 것들은 그 무엇보다 오래된 유배자인 동시에 누구보다 많은 유배자를 겪어온 자들이니.

하지만 신좌는커녕 [왕국]의 입구조차 찾지 못했다.

이 우주 어딘가에 그런 입구가 있으리라는 사실을 추론해 내는 것에 그쳤을 뿐이다.

"쯧, 저번에 한 파티가 수명이 다해 죽어버렸던가. 좋지 않군."

표본의 부족은 큰 문제다. 그들의 몸에 깃든 [스킬]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흥미는 많았다.

"그 왕국에서 온 놈들이 더 필요한데."

어찌 된 일인지 흘러드는 유배자들은 죄다 약해빠진 것들뿐이다. 마치 이곳에 올 실력이 안 되는데도 미궁의 변덕에 의해 떨어진 것처럼.

좋지 않은 일이었다.

연구대상은 강할수록 더 좋으니까. 그 미궁의 법칙을 더 몸에 많이 깃들이고 있으면 좋으니까.

"신이 안 된다면 그것들이라도."

이 우주에 전설적인 유배자 파티가 하나 있다.

연방의 설립에 크게 관여하였으며 끊임없이 연방의 위기마다 나타나 구원했다는 전설적인 유배자들.

그 리더는 혼돈의 여신의 대전사이자 대신관이라고 했다.

이 우주의 생물이라면 모를 리가 없다.

그만큼 연방에서 지겹도록 떠들어대니까.

리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기지개를 켰을 때, 강아지 귀의 잎사귀 요정 하나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게."

팔에 독수리 형태의 정령을 얹은 채 들어온 요정 정령사는 침입자가 있다고 알렸다.

꽤 큰 무리의 유배자로 추정된다고.

"계단을 발견했다는 보고는 없지 않았나?"

다른 것은 몰라도 계단의 존재만큼은 즉시 자신의 귀에 들어오게 되어 있다. 그걸 위한 순찰이다.

리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가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침실을 마지막으로 사용한 지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났다. 언데드는 잠을 자지 않으니 당연하다.

그리하여 그곳으로 가서 문을 열었더니 떡 하니 계단이 자리하고 있었다.

"호오."

해골이 음산하게 이빨을 딱딱하고 부딪혔다. 웃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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