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119화
12층 - Lv. 1350 데미 리치 샤크마(2)
샤크마는 당황보다도 먼저 흥미를 느꼈다. 오래되다 못해 언데드가 되기를 선택한 마법사들은 대체로 그 모양이다.
유배자들에 대한 전설은 이래저래 많이 남아 있다. 샤크마는 그 대부분을 수집했다.
그리고 조금은 기대하고 있었다.
수집한 전설 속의 유배자들은 더없이 강력함 힘을 부리는 불굴의 전사들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전설이니만큼 과장이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이야기의 절반만 되더라도 위대한 영웅이다.
샤크마는 그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총기가 보편화되고 화기가 당연해진 시대에는 영웅이라 불릴 만한 이들이 너무 적었다.
이빨을 딱딱 부딪치는 이상으로 웃을 수 없는 늙어빠진 해골 마법사여서 그리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해는 한다. 제아무리 위대한 마법사라 한들 홀몸으로 군대를 상대로 이겨낼 방법은 없다.
전사나 정령사여도 마찬가지다.
시대의 발전은 위대한 전사요 영웅이던 이들도 한 개인으로 전락시켰다.
지금에서야 함대와도 단신으로 대적이 가능한 것은 드래곤 정도일까.
샤크마 자신도 전함 몇 척이 상대라면 모를까 본격적인 전쟁에서 활약할 방법은 거의 없다.
그러니 그런 거대한 집단을 상대로는 귀찮게 굴 뿐이다.
수지가 맞지 않게 굴어 위치를 얻어내고 유지한다.
전쟁이 시작된 마당에는 더욱 자유로울 수 있다.
유배자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 역시 그런 불편함의 발로였다.
샤크마는 옛날 사람이었고, 한 명의 영웅이 전장을 뒤집어 놓던 시절의 사람이었으며, 바로 그 영웅 중 하나였으니까.
영웅다운 일을 해본 적은 없으나 그리 기대받았고 내심 그것을 즐겼다.
강대한 힘은 곧 권력이며 그 어떤 국가도 그를 쉬이 대하지 못했다.
지금처럼 치우고자 한다면 못할 것은 없으나 더러워서 피해 가는 존재가 아니었다.
자존심 센 늙은 마법사는 그래서 더 강해지기를 원했다.
섭리에 벗어난 힘을 구사하는 유배자는 좋은 소재다. 그 연구에 진척이 잘 없는 것이 문제였지.
지금 눈앞에 나타난 유배자 파티는 그 갈증을 해소시켜줄 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전술이 아주 세련되었다.
리치는 실로 몇십 년 만에 전투다운 전투를 겪게 되었는지 생각하고는 전율했다.
몇십 년 정도가 아니다. 몇백 년이다.
과거 같았으면 눈도 마주치지 못했을 것들이 총기라는 것을 들고 깔짝대는 일이 흔했다.
단련된 몸과 마력에서 만들어지는 굳건한 힘을 보이는 자는 없었다.
유배자들은 비교적 낫긴 했다. 그들은 제 몸을 다룰 줄은 알았으니까.
그러나 지금 이 파티만큼 제대로 된 이들은 없었다.
우선 리치는 상대방이 익힌 기술을 탐색해야 했다. 그가 오랜 세월 쌓아온 마력의 규모는 일개 마법사라기보다는 핵융합 마력로에 더 가깝다.
반복되는 대치상황을 원한다면 그럴 수 있다. 막대한 마력으로 방어에만 치중하면 된다.
물론 이건 그의 입장에서나 대치이다.
상대는 필사적인 와중이었다.
연계는 아주 깔끔했다.
심지어 근접해 오는 셋은 그의 마력방벽을 쉽게 뚫어낼 정도다. 언데드가 아닌 생전의 육신이었다면 등장함과 동시에 사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심장이나 다름없는 LFV만 지켜낸다면 그는 불사다.
마력을 통한 재생능력은 고갈될 리가 없는 그의 마력 용량을 생각할 때 그저 불사의 다른 말일 뿐이다.
그러니까 리치는 여유롭게 상대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주기적으로 날아드는 신성한 번개가 조금 고통스럽긴 하지만 그 자극마저도 신선하게 다가올 정도다.
저런 수준의 유물을 가지고 다니는 유배자는 처음이다.
한없이 발전한 현재의 기술로도 구현할 수 없는 위대한 옛 시대의 유산.
저 또한 아주 탐이 나는 물건이다.
* * *
나는 공격을 포기했다.
물론 마투사의 화력은 분명 끔찍하게 강력하다.
하지만 리치는 본디 마력량만큼은 드래곤에 비견되는 존재다.
오로지 마력의 용량만을 생각하여 만들어진 언데드가 리치다.
고대의 마법사들이 수명과 살아 있는 몸의 한계를 탈피하고자 만들어낸 비술의 결과물.
해골이라는 형체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본질은 마력 생명체라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마법이 더 잘 먹히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리치의 경우는 순수한 물리공격에 더 취약하다.
흘러넘칠 정도의 마력이 인간형의 해골에 응축되어 있다.
내가 일으키는 그 어떤 공격 수단도 단지 저 막대한 마력의 존재만으로 약화된다.
밀도가 너무 다르니 부딪혀서 성과를 낼 수가 없다.
게임적으로 말하면 리치는 마법 저항력이 무시무시하게 높은 괴물이다.
반면 소녀와 프로보이의 공격은 효과적으로 마법 장벽을 찢어발기며 그 내부까지 침투한다.
하지만 네임드 리치쯤 된다면 LFV에 타격을 주는 게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
베이고 부러진 뼈다귀도 금세 다시 짜맞추어지며 형태를 되찾는다. 저 해골은 현실에 리치의 영혼을 고정하기 위한 매개체일 뿐 본질이 아니다.
나는 대신 방어에 주력했다.
샤크마는 끊임없이 주문을 사용하기 위한 수인, 소매틱을 행한다.
성대가 없는 리치의 발성은 그 자체로 마법이기에 다른 마법을 구현하기 힘들다.
그러니 손짓이다. 손이 여러 가지 모양을 취하고 심지어 발까지 동원하기 시작한다.
그 끝에는 갈비뼈의 움직임마저 마법적 의미를 띄기 시작한다.
죽을 힘을 다해서 그것을 막아내었다.
그 물리적 움직임이 마법이라는 현상이 되기 전에 끊어낸다.
소녀와 프로보이도 나만큼 정밀하진 못하더라도 간간히 상대의 마법을 베어냈다.
그러나 리치는 그 와중에도 몇 가지 스킬마저 구현한다.
LFV에 순간적으로 소녀의 검이 닿을 뻔했다.
번쩍이며 실드가 나타난다.
저건 마법이 아니다.
아무런 전조도 없고 법칙도 없이 그저 나타나는 [스킬]이다.
그리고 마법사는 자력으로 저런 스킬을 어디서 획득할 수 있는 NPC가 아니다. 간간히 사용하는 [대시]도 마찬가지.
연구의 결과물이라고 봐야 한다. 이렇게 고명한 수준에 도달한 샤크마는 처음 본다.
방치되고 방치당한 결과일까?
극악의 난이도로 왕국에서의 간섭이 최소화된 서버이니만큼 방치되어 제멋대로 지낸 NPC가 너무 많다.
고참 유배자들은 보통 어떤 의도를 가지고 NPC들을 움직이려 하니 어느 정도 패턴이 생긴다.
이렇게 기록적으로 방치당한 샤크마도 드물 것이다.
알아서 연구하고 수련하기 좋아하는 노마법사는 너무 강해져 있었다.
* * *
갈비뼈를 움직이는 소매틱은 그나마 최근에 연구했던 것인데, 외부에 설치하는 마법진의 역할을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었다.
이것까지 대응할 수 있을까 하며 기분 좋게 던져본 떡밥은 큰 만족감으로 돌아왔다.
근접하여 덤벼드는 세 명 중 하나, 뱀파이어 마투사로 보이는 사내는 자신이 지닌 마법적 특성을 최대의 효율로 활용 중이다.
마법사로서의 기본적인 스펙은 비교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발동 속도, 즉 마력에 대한 간섭과 반응 속도만큼은 기본기의 차이가 이렇게 벌어져 있는 상황에서도 동등한 수준이다.
대신 그 범위는 한없이 좁다. 그래서 떨쳐내려고 해보았다.
짧은 거리의 순간이동, 혹은 스킬을 동반해서 해보려고 했다.
물리적으로 거리를 벌리기에는 동료들이 훌륭하다. 물리 공격수에 해당하는 다른 두 명이 악착같이 따라붙는다.
특히 소녀가 뱀파이어 소드 마스터만큼이나 빠르고 정밀하게 움직이는 것은 인상적이다.
순수한 인간일 텐데?
마법적으로 거리를 벌리기에는 그 짧은 블링크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한순간의 깜빡임 같은 마법.
전조도 구현도 찰나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인데.
뱀파이어 마투사는 그마저도 반응하고 중간에 끊어낸다. 완전히 막아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간이나 시간을 건드는 마법은 약간의 오차만으로도 치명적일 수 있다.
그 사실을 알고 정확히 치명적일 정도로만 간섭해 온다.
샤크마는 마침내 자신이 큰 마법을 발동하는 일이 불가능하리라고 인정했다.
대신 의지만으로 작은 것부터 이루어 내기로 마음먹었다.
* * *
생각의 속도는 빛의 속도와도 같다. 그러니 그것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해야 할 것은 예측이다. 예측하고도 정확히 그게 무엇일지는 모른다. 그러니 대충 뭉개야 한다.
마법전이란 생각의 속도, 두뇌 회전의 싸움이다. 노마법사의 소매틱이 한순간 공허해졌다.
이건 실제로 그렇다기보단 감각에 가까운 것이다.
마력을 움직이려는 시도는 하지만 페이크다. 저 손짓의 끝에는 아무런 마법도 없다.
방향이 움직임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작은 마법이다. 생각만으로 구현되는.
이런 순간이 올 거라고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주변의 마력에 한 번에 간섭한다.
리치의 몸에서 흘러나온 해일과도 같은 마력이 먼저 잠식해 버리기 전에.
물론 그래도 한계는 있다. 금방 그 해일 같은 마력에 뒤덮여 적의 색으로 물든다.
하지만 그것이 완전히 넘어가 폭발이나 번개나 화염이나 냉기가 되기 전에.
내가 먼저 폭발로 바꾸었다.
그리고 마투사의 폭발은 지향성을 부여할 수 있다.
* * *
아주 한순간 샤크마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그 틈은 제법 컸다.
끊임없이 재생성 되던 수십 겹의 마력방벽이 일순 날아갔다. 자기 자신의 마력을 통해서였다.
이것은 일종의 마법적 카운터 펀치였다.
자신의 마법 행사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지 있는 그대로 공개하는 마법사는 잘 없다.
마법전에서 암호화는 중요하다. 자신이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발현 직전까지 적에게 숨기는 행위.
이것은 마력 수용량, 순간 마력 방출량, 통제 정밀성 따위의 스펙과는 무관하다.
실력 있는 전투 마법사가 귀한 이유다.
이것까지 캐치할 수 있을 거라고 미처 생각 못 했다.
그래서 방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서로 마구 펀치를 날리고 가드하는 와중, 마법전의 순수한 기량에서 한순간 밀렸다.
자신이 퍼트린 마력을 순간적으로 저 뱀파이어가 제어했다. 대기 중의 마나와 뒤섞여 자신의 마력이 되려는 단 한 순간에 말이다.
아주 한순간이었다. 샤크마도 하려고 하면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와중에 할 수 있냐고 말하면 장담은 못 한다.
스스로의 마력으로 인한 카운터 펀치를 맞았기에 샤크마는 완전히 무력해졌다.
짧은 틈이지만 그사이에 해골로 된 몸이 조각조각 해체되며 부서진다.
두 검사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라이프 포스 베슬을 향해 양쪽에서 찌르기가 뻗어온다.
번개를 두른 망치가 다시 한번 날아와 번뜩인다.
이건 웃어넘길 위기가 아니다.
그의 생에 다시없을 소멸 위기의 순간이었다.
샤크마는 [스킬]을 발동했다.
마지막 순간, 옛 유물의 번개가 LFV에 살짝 스쳤다.
리치는 끔찍한 고통에 휩싸인 채 사라졌다.
* * *
"이런 젠장, [점멸 단검]이잖아?"
[점멸 단검]은 많은 유배자들이 익혀는 두는 스킬이다. 전투에 활용하기는 아주 까다롭더라도 도주에는 그만한 게 없다.
대체 언제 날린 거지? 본적이 없다. 그리고 그런 쥐구멍을 준비할 만한 성격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네임드는 확실히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달라진 모양이다.
소녀와 프로보이가 주저앉았다.
뱀파이어인 프로보이는 정신적인 문제였고 소녀는 체력적으로 소모가 커보였다.
살아 있는 인간의 한계다.
"우와, 진짜.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영감님 처음 봤을 때 같아."
"뭡니까 저건? 이 행성에 저런 괴물이 있었다고? 요정 마피아 놈들만 신경 썼는데."
가장 편하다면 편했던 포지션의 영감님이 멋쩍게 다가온다.
"묠니르의 번개 용량도 반 정도는 소모된 것 같군."
"회복하고 다시 찾아오면 힘들 겁니다. 일단 최선을 다해 달립시다. 제발 사냥꾼 쪽에서 계단을 찾아야 하는데."
소녀가 흥분과 피로로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마지막에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았는데 추격하면 안 되나요?"
"아마 완전히 안전한 곳까지 순간이동으로 가버렸을 거야. 저 정도 급의 마법사는 한번 시야 밖으로 놓쳤으면 추격 못 해. 안티 매직 장비가 있으면 좋았을 텐데."
뱀파이어의 신체는 피로가 없다. 정신적 피로가 육체적 피로로도 누적된 소녀와 다르다.
프로보이와 나는 일단 움직이기로 했다.
"넌 체력 온존해."
"앗, 괜찮은데."
"좋으면서 튕기지 말고."
소녀가 냉큼 업혀들었다.
[대시]로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수준의 체력 괴물이 방금의 일전만으로 거의 방전되었다.
스탯빨 덕에 회복도 그만큼 빠르겠지만 이런 소모 자체가 이미 가공할 노릇이다.
"후우, 안 되겠는데. 미래의 내가 알려준 것보다 더 위험해. 다음 층부터는 그냥 여신님을 통해서 연방 함대를 계속 불러대야겠어. 특히 15층은."
"좋은 생각인 것 같군."
영감님이 동의했다.
그리고 나는 한 가지 변수를 더 생각하고 있었다. 샤크마가 있는 곳이라면 시간의 신전을 통해 누군가가 나타날 만하다.
아직 꼬맹이 이외에는 소모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누구일까?
저 괴물을 때려잡을 수 있는 녀석이라면…….
그리고 지금 나타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