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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126화 (126/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126화

12층 - Lv. 917 요정 마법사(1)

"이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랭커라도 나타난 것인가."

요정 마법사는 그 생각을 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미 한 파티가 이곳에 와 있다.

그렇다면 상당한 시간이 지나기 전까지는 다른 유배자 파티가 난입할 수 없다.

서든데스가 없는 층이라면 적어도 석 달이다. 벌써 또 다른 유배자가 이곳에 도착했을 리가 없다. 다짜고짜 공격할 일은 더욱더 없고.

그럼 그 천사는 NPC인가?

예나 지금이나 평생 한 번 보기도 힘든 종족이다.

그 가능성도 지나치게 희박하다.

그렇다면, 저 파티 기준의 시간에선 미래에서 온 동료다.

요정 마법사의 주관으로는 아득히 오래전에 들었던 이야기지만 시간의 신전의 존재를 알고 있다.

저 파티가 왕국의 입구에 도달했을 때는 시간의 신전이 있었다고 들었다.

만약 지금 저 파티의 전력이 아직도 왕국 이전이라면 가능한 일이다.

그 시점에서 요정 마법사는 갑작스레 들이닥친 천사가 시간 여행을 통해 도착한 것이라 확신했다.

인연의 문제다.

저 유배자 파티에 대한 전설은 많이 남아 있음에도 그는 이 시대에 다시 저 파티를 만나본 적이 없다.

연을 가진 NPC와 지속적으로 엮이게 만드는 것이 미궁이다.

저 파티의 기준에서는 우주 시대의 요정 마법사를 만나는 일이 처음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저 파티는 아직도 왕국 이전이다.

말 같지도 않은 난이도에 경악함과 동시에 납득했다.

그가 500년 전 보았던 수완은 굉장했다.

왕국 이후 파밍을 하고 도착한 곳이 이 행성이었다면 샤크마에게 쩔쩔맬 리가 없다.

모든 아귀가 착착 들어맞는다. 그렇다면 사실로 간주해야 한다.

천사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이런 위력이라면 그 소녀다.

이 사실을 그의 고용주에게, 아니, 동료에게 전할 필요가 있었다.

요정 마법사는 서둘러 주문을 짜 올렸다. 직접 구현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스킬이다.

아득히 뻗어 나간 [마인드 맵]의 끝자락에서 금빛이 번뜩인다.

샤크마는 아마도 한 번 죽었다. LFV를 가진 채로 나서지는 않았다.

탑 어딘가에 있으리라.

저 천사가 곧바로 다시 덮쳐올지도 모르니 시간이 없다. 빨리 합류해 방침을 정해야 한다.

곧이어 주문이 완성되고.

주변의 모든 소음이 사라졌다.

아직도 세상을 밝히고 있는 빛의 원소 또한 멈춘다.

정지한 시간 속에서 요정 마법사는 또 다른 주문을 짜 올렸다. 샤크마처럼 손짓 수준의 수인으로 구현할 수는 없으나 충분히 빠르다.

주변에 비치는 잿빛 땅이 크게 일그러지더니 샤크마의 실험실이 되었다.

리치는 창밖을 보고 있는 채로 정지해 있었다.

요정 마법사는 그 상태로 다가가는 대신 약간 떨어진 곳에서 시간을 다시 움직였다.

그러기가 무섭게 샤크마가 돌아본다. 시퍼렇게 타오르는 안광이 서늘하다.

"그런가. 뭔가 더 숨기는 게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시간 계통을 다루는군."

"은퇴한 유배자에게 이런 한 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염병 하는 소리. [마인드 맵] 없이 시간을 다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요정 마법사가 살아남은 것은 전적으로 100년의 세월이 쌓아준 죽음을 감지하는 직감 덕분이었다.

어찌나 오랜만에 죽음이 도사린다고 경고를 해대는지, 거의 본능적으로 시간을 멈추게 했다.

도대체 무엇이 그에게 이런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별일 아니라고 넘기기에는 단순히 직감뿐만 아니라 [위기 감지]와 [예언]마저 경고하고 있었다.

시간 정지를 거의 끝까지 소모한 다음에야 요정 마법사는 그 원인을 알았다. 이쪽을 향하여 전력을 다해 비행하고 있는 천사.

점처럼 보이지만 저것이 천사인 이상 금세 들이닥치리라.

그랬기에 요정 마법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이후 일어난 일을 보면 아주 현명한 판단이었다.

요정 마법사는 빠르게 자신이 깨달은 사실을 샤크마에게 공유했다.

샤크마는 그 사실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군, 그럼 저건 시간의 천사겠군?"

"싸워서는 안 됩니다. 이길 수 없습니다."

"내 생각도 그렇다. 도망치는 게 옳겠군. 유배자 감옥으로 가주겠나? 명목상의 리더로 내세울 유배자가 필요하군. 계단을 통해 넘어가야겠어. 나는 시간을 끌도록 하지."

요정 마법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 말이 아닙니다. 시간의 신전을 통한 시간 여행을 무력화할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샤크마는 순간 멈칫했고, 그의 오랜 연구를 통해 알게 된 지식들을 머릿속에서 재조합했다.

"그렇군. 미래에서 온 저 유배자를 현재의 유배자가 인식하게 만든다면 강제로 송환 될 테니."

그렇다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승리를 손에 넣기 직전의 순간으로.

"그 어둠 속에 있었던 유배자가 생각보다 적음을 아십니까?"

"양동인가. 좋아 가서 생포하도록. 그리고 말은 편하게 하지. 우리는 동료가 아닌가?"

요정 마법사는 피식하고 웃었다. [시간 정지]를 보여주지 않았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제안이다.

이 패까지 까고서야 비로소 동등해졌다.

"그러지."

* * *

사냥꾼과 소녀, 막내, 그리고 꼬마 마법사는 이미 폭발이 치명적일 범위에서는 벗어나 있었다.

속도가 무엇보다 중요했기에 쉬지 않고 달린 덕이다.

애초에 포위망을 벗어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농밀하고도 짙은 어둠은 모든 감각에 제한을 두었으며 탐지도 힘겹게 하였다.

적들도 마찬가지였다.

가뜩이나 적아를 구분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일점 돌파는 쉬웠다.

요정들은 갑작스러운 맞닥뜨림에도 불구하고 알고 있었다는 듯이 대응했다. 요정이라는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성분이 상대를 죽이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기분이다.

하지만 두 발로 뛰어 총탄을 피할 수 있는 현재의 소녀를 어쩌지는 못했다.

물리적으로 그 어떤 마법도 총기도 소녀에게 닿지 못했다.

소녀가 음속보다 빠르게 달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수나 술사의 조준보다 빠르게 달릴 수는 있다.

가뜩이나 정확한 사격이 힘든 환경은 소녀 같은 암살자 계통에 발 걸친 이를 극도로 유리하게 만든다.

소녀는 벽을 차고 위에서 덮치고, [대시]를 활용하여 변칙적이다 못해 기묘한 움직임을 발휘했다.

몇몇 강력한 요정도 있었다.

하지만 사냥꾼과 막내의 지원 사격 속에서 소녀는 그야말로 미쳐 날뛰었다.

정령사나 마법사는 애초에 소녀의 상대가 될 수 없다. 본디 암살형 전사인 힘살자의 밥인 존재들이다.

그렇다고 쌍검사 등의 본디 정면에서 치고받는 요정들이 유리한 것도 아니었다.

소녀는 그저 스펙으로 찍어 누르라는 가르침을 확실하게 실천했고, 힘살자라는 실존하지도 않는 클래스의 힘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암살자인 동시에 전사다.

빠르게 제압하고 달렸다. 꼬마 마법사는 이동 관련 보조 마법을 유지하기 위해 남은 마력을 모조리 짜내었다.

마법사의 단점은 유지력이다.

기이할 정도로 효율 좋게 마법을 구사하는 아저씨와 달리 여전히 스킬에 상당 부분 의존하는 꼬마 마법사는 마력이 거의 바닥나고 있었다.

가뜩이나 회복할 시간은 넉넉히 주어지는 일정은 아니었다.

마력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서는 3일은 휴식이 필요하다.

10층부터는 쉬었다기보다는 숨만 돌린 채로 전진하고 있다.

마법사들의 여력이 바닥날 시점이었다.

마법사는 당연히 신체 능력이 높지 않으나 지능 몰빵형 스탯 분배를 해온 꼬마 마법사는 더했다.

지쳐서 뒤처지려 했기에 소녀가 꼬마 마법사를 안아 들었다.

자세가 이상하다. 공주님 안기는 아주 부끄러운 자세다. 공중에서 한 바퀴 돌려 등에 업었다.

비명을 지르는 꼬마 마법사에게 속삭였다.

"마력 거의 없지? 고생했어. 이제 쉬어."

"총이라도 쏠게요!"

"아냐, 그러다 내가 맞아."

"네에……."

최소한의 호신 도구로 라이플을 하나 들려주긴 했으나 시험 사격을 해보았을 때 모두 차마 무슨 말을 하지 못했다.

마력이 고갈된 마법사는 빈 깡통이나 다름없지만 차라리 깡통이기만 한 게 더 나은 경우도 있는 법이다.

그보다는 키 차이가 나서 업고 있는 자세가 불편한 것이 더 신경 쓰였다.

‘얘는 다리도 기네.’

어딘가 불편하다.

미래에서 온 나는 좀 더 길쭉해져 있을까?

물론 소녀는 그 모습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중앙 구역에 도달하고, 유배자들이 억류된 감옥으로 추정되는 곳에 도착했다.

그와 동시에 뒤편에서 전술핵이라도 떨어진 마냥 폭발이 일어나고 낮이 찾아왔다.

사방에 흐르는 빛을 보며 꼬마 마법사가 숨을 삼켰다.

사냥꾼은 아예 바닥에 굴렀다. 폭압은 사람을 가볍게 날려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사상자가 생기지 않은 것이 기적이다.

무슨 일이 있을 것이라고 각오는 했으나 상상 이상의 전개였다.

그 와중 소녀는 대충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깨달았다.

미래에서 온 자신이 무언가를 했고, 그래서 도시가 온통 개박살이 났다.

감탄보다는 걱정을 먼저 했다. 꽤나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구조물들이 눈에 띄게 휘청였다.

대지는 사정없이 진동하며 어떠한 물리적 충격이 가해졌는지를 알리고 있다.

소녀는 여신님께 기도했다.

‘아저씨 살아 있죠? 제발 그렇다고 말해줘요.’

「살아 있다. 그보다 지금 조심해야 할 문제가 하나 생긴 것 같은데.」

여신님께서 그렇게 말하자마자 그 문제가 눈앞에 나타났다.

"어라, 선배님. 오랜만이네요."

요정 마법사가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소녀는 검을 들었다. 화기나 다름없는 광선 단검이 아니다.

10층에서 요정 쌍검사가 사용하던 쌍검이다. 아슬아슬하게 단검이라고 부를 수 있는 길이다.

[단검 마스터리]에서 판정하는 단검의 범주는 다른 마스터리에 비해 여유롭게 적용되는 편이다.

소녀는 마력을 불어넣어 검신에 얇은 막을 형성했다.

마법사를 상대하기에는 물리적 실체가 있는 편이 더 낫다. 마력 전도율도 더 좋고 덧씌우는 마력 이외의 다른 변수도 생기지 않는다.

일단은 파티원들이 전투태세를 취한 상황에서 사냥꾼이 신중하게 앞으로 나섰다. 혹시 저 선배님이 우호적일 경우를 생각한 행동이다.

여신님이 날카롭게 경고했다.

「마법! 손동작을 잘 봐라. 혹은 입 모양을!」

소녀가 검을 내뻗었다. 전격이 달려나간다.

번개보다 빠르게 움직인 것은 아니다. 모든 전격은 빛이나 다름없는 속도로 탄착하지만 대신 전조가 있다.

마력의 선이 이어지며 실제로도 스파크가 튀는 그 순간, 소녀의 검이 마법을 베어낸다.

커지려던 번개가 힘없이 쪼그라든다. 소녀는 마력을 담은 칼날을 한 바퀴 돌리며 식혔다.

전격이 검에 닿는 순간 전기가 흐르며 달아올랐다.

아주 강력한 번개다. 이 무기가 고대의 [히어로 유닛]이 쓰던 것이 아니었다면 더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흐음, 번개에 대응하는 법을 배웠군."

요정 마법사는 그의 입장에서는 500년 전에 했었던 전투를 떠올렸다. 저 소녀는 그 시점으로부터 오래 지나지 않았을 텐데, 무서울 정도로 성장이 빠르다.

저런 유배자가 간혹 있다.

랜덤 생성 NPC 유배자라고 생각되지만 비상할 정도로 높은 초기 스탯을 들고나오는 자들.

고정 네임드 유배자라고 생각하며 상대할 필요가 있다.

"이러면 어떨까?"

요정 마법사의 마력이 움직였다.

사냥꾼의 사격이 날아간다. 마법이 완성되기 전에 저지하기 위함이다.

그 사격 솜씨를 믿는 소녀 역시 달려들었다.

마법이 취소되고 마법 방벽으로 방어를 한다면 그 순간 소녀가 도달할 것이다.

[강격]을 동반한 일격은 제아무리 단단한 마법 방벽이어도 쪼개버릴 수 있다.

지금 소녀가 휘두르는 검에 깃든 물리력의 두 배라면 그야말로 바위조차 으깨진다.

그리고 요정 마법사가 사라졌다.

* * *

멈춰 선 시간 속에서 요정 마법사는 등골이 오싹함을 느꼈다.

이전에도 느꼈으나 이 파티는 묘하게 체계가 잘 잡혀 있다.

적으로 상대하지 않았기에 그러려니 했을 뿐, 적으로 마주하게 되자 전율이 인다.

자신의 과거 파티가 이랬던 적이 있었다면 그가 이렇게 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동료라는 것에 크게 실망했던 기억은 차라리 NPC가 되어 살아가는 방향으로 그의 삶을 인도했다.

요정 마법사는 한숨을 내쉬며 걸었다.

어차피 모두가 멈춰 있다. 우선은 저기 뒤편의 다른 녀석들부터 처리하자.

소녀는 일대일로 상대하는 것이 좋으리라.

가장 먼저 제일 골치 아픈 사냥꾼이다.

[시간 정지]는 지극히 사기적인 만큼 여러 가지 제약도 같이 달려 있다.

예를 들자면 시간이 멈춘 와중에는 마력도 움직이지 않는다.

마법은 마법사가 체내에 부유한 마력만으로 만들어지는 현상이 아니다.

대기 중에 존재하는 마력의 비중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시간이 멈춘 동안 캐스팅을 끝마쳐 둘 수는 있다. 그러나 발현은 시간이 다시 흐르고 난 후에나 이루어진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지극히 강력한 마법임은 틀림없다.

지금 구현하는 마법들은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순간 적들을 덮친다.

요정 마법사는 잠깐 고민했다.

이들을 전부 생포할까? 아니지 그럴 이유는 없다.

사냥꾼은 골치 아프니 여기서 확실히 죽여두자.

[익스플로전]을 캐스팅하여 입안에 처넣어준다.

그러기 위해 굳이 수염 난 중년 사내의 입을 손으로 벌렸다. 그리고 힐링 포션을 머금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러면 죽을지 살지는 확률에 달렸군."

힐링 포션이 이미 작용 중이라면 머리가 터져나가도 살아남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투 불능은 확실하다.

"잘 배웠군. 정말로 잘 배웠어."

그 사내는 고참으로서의 요령이나 꼼수를 후배들에게 베푸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배신당할 걱정 따위는 전혀 하지 않는다는 듯 말이다.

한 번 적으로 돌아설 마음을 먹자 여러 가지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들이 떠오른다.

덩치 큰 거한에게도 똑같은 작업을 했다.

마지막으로 요정 마법사는 본 적이 없는 장신의 여성 마법사.

척 보기에 강력해 보이지는 않는다. 심지어 마력도 고갈되었다.

그렇다면 이걸로 충분하다.

요정 마법사는 꼬마 마법사의 머리를 크게 돌려찼다.

추가로 옆에서 잔해를 주워 명치를 가격했다.

[시간 정지]는 마력을 많이 잡아먹는다. 어느 정도 사소한 곳에서는 아껴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소녀.

요정 마법사는 몇 가지 마법을 더 설치했다.

특히 소녀는 생포하여 미래에서 온 자신을 보게 만들 필요가 있다.

전격을 중심으로 간신히 죽지만 않을 정도의 마법들이 세팅되었다.

갑작스레 많은 마법들을 남발하다 보니 마력이 빠르게 소모된다.

이미 3할 정도가 소모되었다.

그래도 이것으로 끝날 테니 문제없다.

조금 물러선 채 손가락을 튕겼다.

시간이 다시 흐른다.

무수한 마법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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