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127화
12층 - Lv.917 요정 마법사(2)
요정 마법사가 멈춘 시간 속에서 마법을 설치하는 행동은 소녀와 파티원 입장에서는 한순간에 불과했다.
가장 오랜 경험을 가진 여신님이 제일 먼저 반응했다.
「시간 관련 마법이다. [시간 정지]인 것 같다. 일단 피해!」
오로지 소녀에게만 한 말이었다. 다른 이들은 반응할 능력이 되지 않았다.
사냥꾼과 막내는 갑작스레 일어난 폭발에 삼켜졌다. 그 옆에 있던 꼬마 마법사 역시 휘말려 날아갔다.
여신은 신도 셋의 의식이 꺼지는 것을 느꼈다.
소녀도 공격받은 것은 마찬가지다.
허공에서 갑작스레 피어난 전격이 소녀를 포위했고 작렬했다.
감전되어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가운데에도 강인한 육신은 의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소녀는 언젠가의 경험을 되새기며 강제로 [대시]를 통해 거리를 벌린다.
위험 수준의 전격이 몸을 타고 흐르자 소녀가 입은 요정 사제의 로브에서도 마법이 떠오르며 저항한다.
바로 그 직후에 소녀가 빠져나간 공간에서 불꽃이, 폭발이 일어난다.
약간만 늦었다면 죽었다.
전격으로 손상된 신경 등은 입에 미리 머금고 있던, 그리고 이미 삼켜둔 힐링 포션으로 복구된다.
요정 마법사의 존재를 깨닫자마자 모든 파티원들이 포션을 삼켰다. 좋은 대응이었다.
몸이 치유되며 순식간에 몸의 컨트롤이 돌아온다.
요정 마법사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비웃듯이 바라보았다.
"그 사제복, 훌륭한 물건이지. 하지만 이제 내구도가 다한 모양이군."
사실이었다. 마법을 잃고 평범한 천 조각으로 돌아간다.
이제는 방어구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찢어져 옷의 기능조차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변태 영감탱이!"
"허허, 볼 것도 없는 몸인데 무슨."
사실이라 더 화가 난다.
하지만 소녀는 냉정해졌다.
상대는 여유를 보이고 있다.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일이다.
일련의 대화가 오가는 도중에도 여신은 사태를 파악하고 해법을 제시했다.
「캐스팅이 아주 빠르다. 아마 스킬로 구현한 [시간 정지]다. 어중간한 거리에 있으면 죽어. 아주 멀거나 아주 가까워야 해.」
소녀는 곧바로 알아들었다. 그리고 거리를 다시 좁혔다.
마력이 움직이기도 전에 달려들었다. 여유는 곧 방심이다.
중첩된 [대시]가 소녀를 한 줄기 빛으로 만들었다.
마법이 완성되기 전에 찌르기!
닿지 않았다. 요정 마법사가 또다시 사라졌다.
「뒤.」
여신님이 속삭인다. 소녀는 거의 척수반사로 그 지시에 반응해 뒤돌려 차기를 날렸다.
야생의 그 어떤 맹수와 비교해도 우위인 근력과 반사 신경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퍽하고 터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불꽃이 일어났다. 몸 내부에서부터 타들어 가는 듯한 무시무시한 열기.
온몸이 익어가는 느낌이 들지만 아직 힐링 포션의 효과가 끝나기 전이다.
사실상의 임사체험 끝에 소녀는 다시 살아났다.
눈앞에는 낭패한 모습의 요정 마법사가 인상을 쓰고 있었다.
한쪽 팔이 터져 나갔다.
아무렇게나 내지른 일격이지만 따로 보정이 없는 마법사의 육체를 짓이기기엔 충분했다.
「이제 여벌 목숨이 없군. 그래도 저 마법사는 발동에 지연 시간이 없을 정도는 아니야. 너희 리더 수준은 아니란 거지. 그럼 반응할 틈은 있다. 사라지는 순간 공격받는 것이라 생각해. 지연 시간은 0.1초 정도. 그 정도는 회피할 수 있겠지?」
미궁에 들어오기 전의 소녀라면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런 속도의, 아니, 그 이상의 속도를 내는 공격을 아저씨와 대련하며 수없이 받았다.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으로 온몸의 근육이 조여진다.
약간의 떨림이 즐겁게 느껴졌다.
아, 죽으면 안 되는데.
하지만 재밌어.
이기면 아저씨가 칭찬해 주겠지?
뭐 해달라고 할까.
요정 마법사가 다시 슬쩍 손짓했다. [시간 정지]가 아니었다.
뇌격.
소녀는 피해냈다. 연이어 화염과 냉기, 온갖 원소 마법이 소녀를 덮친다.
거의 노딜레이의 마법 폭격이었으나 이미 어떤 야생동물보다도 기민하게 움직이는 소녀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마법은 빠르되 술자의 조준이 도저히 따라가지 못한다.
빛이 번쩍였다. 피했으나 유도되어 날아오는 마법이다.
이런 마법은 위력이 약하다.
육탄으로 받아내려고 하다가 움찔했다.
방어구가 없는 상태다.
검으로 베어낸다.
물리적 충격을 가하는 [매직 미사일]이다. 손바닥이 조금 저렸다.
이어지는 뇌격, 또 뇌격.
그리고 소녀의 몸에 박히는 표식.
유도되는 뇌격.
하지만 타이밍에 맞춰 베어낸다.
소녀의 경험만으로는 완전히 읽어낼 수 없다.
하지만 여신님께서 계속 지켜봐 주고 있다.
신좌에 도달한 전사는 마법사를 상대하는 요령을 누구보다 잘 안다.
요정 마법사는 [시간 정지] 없이 상대를 쓰러뜨리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법도, 소녀도 멈춰 섰다.
연속된 공방 사이 아주 잠깐 함께 숨을 돌리는 타이밍.
짧은 공방이었지만 서로 타격을 주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렸다.
양쪽이 모두 이 전투가 쉽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 * *
천사가 된 소녀는 확실히 강력했다. 그래, 내가 상정하던 이상으로 말이다.
박쥐인 상태로 몸을 복구할 혈액이 없다.
7층에서 가득 채워둔 [피의 샘]이 바닥을 드러냈다.
이대로 추가적인 혈액의 섭취가 없다면 내 목숨이 위험하다.
"야! 손 뻗지 마!"
"앗 아아, 뭔가 귀여워서 그만."
신성을 가득 머금은 천사의 손길이 지금 내게 닿는다면 치명적이다.
비틀비틀 일어난 영감님이 소녀를 보고 입을 벌렸다.
"오, 몰라보겠군그래."
"많이 컸죠? 후후."
"아니, 난 그 얘기는 아닌데."
영감님이 뭐라 하건 천사 소녀가 자랑하듯 팔을 펼치고 한 바퀴 돈다.
확실히, 키도 더 자랐지만 얼굴에 젖살이 빠지며 여러모로 어른스러워진 느낌.
저 스스로도 그걸 알고 보여주려는 점은 여전히 아이 같지만, 어쨌건 외견은 비로소 20대가 되었다는 느낌이다.
이건 큰 문제다. 하루 이틀이 지난 게 아닌 것 같다. 잘 자라긴 했는데. 너무 많이 컸다.
"잠깐만, 시간이 얼마나 더 흐른 거야? 그쪽 미래에선 시간의 신전까지 도달하는 데 며칠이 더 걸리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석 달 정도는 더 걸렸어요."
입맛이 쓰다. 시간을 얼마나 내다버린 거지?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그거 혹시 연방을 있는 대로 다 부르고도 그렇게 된 거야?"
"네, 그게 좀 어쩔 수가 없어서."
골치 아픈 일이군.
"저는 그럼 리치 잡으러 갈게요!"
천사 소녀는 당장에라도 가버릴 것처럼 말하고는 아주 천천히 떠올랐다.
그러곤 아쉽다는 듯이 내 쪽을 머뭇머뭇 돌아보다가 날아갔다.
나는 날개를 흔들어주었다. 소녀가 만족한 듯 사라진다.
날아간 것이겠지만 너무 빨라 보이지가 않는다.
애초에 박쥐는 눈이 나쁜 편이다.
나도 날아올라 초음파를 쏘아내며 주변을 살핀다. 보나 마나 시간의 천사일 테니 [시간 정지]를 활용하여 우리를 구해냈다.
이렇게 둘 장소도 미래의 내가 지정했던 모양인지 탑 근방이다.
꼬맹이는 마력이 다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축으로 형성된 대마법이 박살 나며 그 충격에 기절해 있다.
이건 내버려 두는 것이 옳다.
프로보이는 어쩐지 농도 짙은 신성에 활활 타오르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주술사인 영감님이 신성을 끌어내어 불쌍한 뱀파이어를 구해냈다.
"헉헉, 대체 무슨, 아니. 대체 어떻게 되고 있는 겁니까 이거?"
온 사방을 채운 빛부터가 놀랍다. 그리고 뱀파이어니 그것이 영 불편하다.
일단 나는 지금 나름대로 목숨이 경각에 달한 상태다.
프로보이의 피라도 빨 수 있으면 좋겠지만 뱀파이어끼리의 흡혈은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다.
피가 필요한데 이 자리에는 인간이 없다.
그렇다면 인간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유배자 구출하는 쪽으로 합류해야겠는데."
영감님의 어깨로 날아가 앉았다. 흡혈을 통해 육신을 복구하기 전까지는 꼼짝없이 날짐승 포유류다.
"그, 천사를 보는 건 처음인데. 그 리치를 이길 수 있는 것은 맞나?"
그러고 보면 7층의 그 얼치기 천사를 만났을 때 영감님은 파티에 없었다.
"상성 상으로는 짜고 치는 것처럼 완벽한 우위지요. 천사는 마법에 강하고, 리치는 물리에 약하고. 심지어 신성과 빛 속성에도 약하지 않습니까."
내가 샤크마라면 어떻게 판단할까? 승산은 거의 없다.
최악 중의 최악의 상대다. 무슨 수를 써도 이길 수 없을 지경.
하지만 오래 묵은 리치라면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는 구멍도 생각하고 있었으리라.
예를 들자면 이곳에는 계단이 아주 많고. 유배자도 아주 많다.
군대가 찾아온다면 언제건 쓸려 나갈 수 있는 땅.
유배자를 앞세워 다음 층으로 이동하는 것은 시공간마저 초월한 탈출로가 될 수 있다.
* * *
샤크마는 빛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눈부신 빛, 그리고 타오르는 신성력.
오랜 연구의 결과로 샤크마는 저것이 [신성한 분노]라는 스킬임을 알고 있다. 천사라는 종족의 고유 스킬.
모든 어둠 속성의 부정한 존재들에게 큰 타격을 주는 화염을 온몸에 두른다.
눈부시고도 새하얀 화염은 불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오로라 같았다.
그 아름다움에 감탄할 수는 없다.
샤크마는 저것에 불태워질 부정한 존재이기에.
가장 먼저 LFV를 옮겼다.
정해진 마법을 통해 은밀한 비처로 전송되었다. 결국 들킬 장소지만 한동안은 괜찮다.
적어도 그가 저 천사를 붙들고 있을 만큼의 시간은 벌어주리라.
아무리 천벌을 받아 가루가 되고, 신성한 화염에 휩싸여 타오르더라도 LFV만 멀쩡하다면 리치는 죽지 않는다.
빛이 모여들었다.
어둠을 밝히는 빛은 아니었다.
새카만 어둠이 빛을 낸다.
검은빛이라고 불러야 할 이것은 어둠 속성의 구현이다.
단순한 빛의 부재가 아닌 원소로서 구현화된 어둠은 아이러니하게도 빛과도 같은 성질을 띤다.
그 유배자가 만들어낸 기묘한 어둠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지금 이 도시에 흐르는 실체가 된 빛과 마찬가지로.
빛과 어둠이란 본디 같은 것의 양면이다.
그렇기에 서로에게 치명적이다.
리치가 내뻗은 손바닥 앞에서 칠흑 같은 마법진들이 나타난다.
일렬로 길게 나열된 수십 개의 마법진은 차곡차곡 쌓이듯 늘어서 원통의 모양이 되었다. 마치 포구와도 같은 모습이다.
마법이 구현되고, 검은 광선이 뻗어나갔다.
소리 없이 발사되는 어둠의 포화는 치명적인 마법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허공에 수놓이는 화가의 붓질이다.
그러니 쭉 뻗어 나가는 어둠은 어쩌면 광선이라 부르기엔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허공을 파먹은 것처럼 공허한 선들이 무수히 그인다.
천사는 날아오는 모습 그대로 아무런 관성조차 느껴지지 않는 움직임으로 광선을 피했다.
하지만 리치의 등 뒤에는 이미 또다른 어둠이 맺히고 있다.
수십 수백 줄기의 어둠이 뻗어 나간다.
허공에 수놓인 선은 그대로 밀도 높은 암흑이 되어 쏟아져 내려온다.
비처럼 쏟아지는 어둠에 빛으로 가득 찬 도시가 파먹힌다.
다시 드리우는 어둠을 반기듯 잠겨들며 일렁인다.
천사는 리치의 마법적인 시각으로도 거의 포착하기 힘든 속도로 움직이며 광선의 사이를 파고들었다.
앗 하는 순간 눈앞에 천사가 도달했다.
일격.
사각과 육각형의 견고한 마법진들이 셀 수 없이 떠올랐다.
천사 소녀는 그 방벽의 형태에, 그리고 견고함에 놀랐다.
기동력에 특화된 기천사의 눈은 순식간에 상대가 펼친 방벽의 약점을 포착할 수 있다.
하지만 없다.
마력이 한없이 균등하게 퍼져 수백 겹의 방벽을 쌓아 올린다.
서로 오미조밀하게 끼워 맞춰진 785겹의 견고한 마법 방벽.
약점 따위는 없다.
그 정중앙에, 오로지 힘으로.
마지막 순간에 날개가 떨며 가속한다.
내지르는 단검의 첨단이 한순간에 음속을 넘어서 폭음을 일으킨다.
방벽이 으깨졌다.
기천사의 눈은 으깨지는 방벽의 개수마저 셀 수 있다.
속력은 곧 힘.
그대로 돌격한 물리적 충격이 마주치는 순간에만 400여 개의 마법진을 박살 냈다.
이어서도 빠른 속도로 방벽이 찢겨 나간다.
리치의 해골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하지만 과연 무한에 가까운 마력을 지닌 데미 리치. 단순한 방어에도 쏟아붓는 마력의 밀도가 다르다.
일순간이나마 함선을 기동시킬 정도의 마력이 평이한 방어에 퍼부어져 있다.
그러니 그 밀도도 압축된 전함이나 다름없는 느낌이다.
결국 가속을 동반하여 처박은 단순한 돌격은 힘이 다했다.
소녀는 자세를 바꾸며 다시 한번 마력을 담아 힘껏 더 내지른다.
날개가 또 한 번 떨린다. 맑고 청량한 소리와 함께 몸이 가속한다.
[신성한 분노]가 그에 반응하여 타오르기 시작했다.
신성력의 결정체인 하얀 화염이 마법을 잠식하고 분해한다.
남은 200여 개의 마법진이 한순간에 흩어졌다.
그렇게 시간을 번 리치가 마법을 캐스팅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움직이는 마력은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어디론가 공간이동.
공간이동에 대해서는 이곳에 있을 때 배웠다.
마법사가 순간이동을 하는 순간, 아주 짧지만 그 자리에 순간이동의 마법이 그대로 남는다.
지나치게 순간적이기에 어지간한 속도로는 따라갈 수 없으나.
무수한 고위 종족 중에서도 빠르기로는 수위를 다투는 기천사는 해낼 수 있다.
[초신속]
[대시]의 상위 스킬을 발동.
한순간 가속함과 동시에 이후에도 지속되는 이동속도 관련 버프가 켜졌다.
그러는 새 연속된 타격으로 남은 방벽은 불과 네 겹.
닿나?
그리고 리치가 사라졌다.
리치가 열어낸 공간의 틈이 미처 사라지기도 전에 천사가 빨려 들어간다.
도착 지점은 우주 공간이었다.
따라올 것을 알았다는 듯 리치가 연속된 순간이동으로 거리를 벌린다.
천사가 해골을 쫓는다.
어둠이 뭉클 솟구친다. 광활하게 펼쳐진 별들을 배경으로 리치는 음산하게 손을 벌렸다.
항성의 근방이 아닌 우주 공간은 그야말로 어둠이다.
관념적으로도 어둠이요, 물리적으로도 어둠이다.
마법에 있어 원소라는 것은 결국 술자의 인식에 의해 실체가 되는 것.
지적 생명체들의 보편적인 우주에 대한 인식이 어둠인 이상, 대기권 바깥의 우주는 그 풍부한 어둠의 보고다.
주술처럼 본격적이지는 않더라도 마법사 역시 특정 원소가 많은 곳에서 같은 속성의 마법을 구사한다면 이득을 본다.
어둠이 마법에 의하여 실체화하고 검은 장벽들이 겹겹이 세워지며, 눈부신 검은 빛들이 터져 나왔다.
이제는 격류라는 말조차도 부족하다. 시야에 들어오는 어둠의 규모만 따지더라도 산맥과도 같다.
움직이는 검은 산맥이 소녀를 향하여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소녀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중요한 것은 어둠에 잠식되지 않는 것이다.
그럴 경우 떠오를 수 있는 안 좋은 기억들. 몇 번이고 플래시백 되는 악몽.
정신을 건드리는 어둠 속성의 특성만이 천사에게 위험할 수 있다.
7층에서 보았던 어둠에 물든 천사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천사는 자신의 종족을 아직 잘 모르고 있었다.
천사가 단순히 빛의 속성만을 띈 종족이었다면 서로가 서로의 상극이니 위험했을 수도 있겠으나.
본디 천사는 악을, 어둠을 멸하기 위해 존재하는 종족이다.
소녀는 온몸의 마력을 아낌없이 짜내었다.
어둠이 몸에 닿지도 못하도록, 빛을 퍼뜨린다.
[신성한 분노]가 그에 호응하듯 커진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마력이 소모되지만, 소녀는 활활 타오르는 눈부신 빛과 신성의 덩어리가 되었다.
공기 저항조차 없는 우주 공간에서 천사가 돌격한다.
기교는 필요 없다. 정직하게, 앞서는 힘으로, 빛이 되어 전진한다.
한 줄기 섬광이 번뜩이고, 리치가 불러낸 모든 어둠이 산산히 스러졌다.
압도적인 상성의 우위는 물량의 공세를 모두 의미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샤크마는 이를 딱딱거리며 웃었다.
소녀는 그 웃음의 의미를 안다.
신성으로 불타는 검이 두개골을 베어내고 그 아래의 다른 육신만 소멸시켰다.
불이 꺼지고 데미 리치의 두개골은 박살 나지 않은 채 남았다.
신성으로 엄중하게 봉인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두개골만.
샤크마는 자신이 사로잡혔음을 깨달았다. 이러면 불사성이고 뭐고 소용없다.
입을 열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공기가 없다.
소녀는 약간은 어색하게, 마법적인 목소리를 내었다.
[여기서 그 골통을 쪼개봐야 저 아래 어디선가 부활하잖아요? 그렇죠?]
리치는 의외의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다.
[그건 좀 아쉽군. 하지만 넌 돌아갈 자신은 있나? 여기가 어딘지 알고?]
소녀가 헹 하며 미소 지었다.
[제가 또 기억력은 좋아서 길을 두 번은 안 잃더라고요.]
사실이 아니다. 그냥 이럴 수도 있을 것 같아 표식을 남겨두었다.
빛으로 이어진 자신의 마력의 흔적을 본다.
소녀는 잠깐 동안 날개를 예열하듯 떨고는 주인이 사로잡힌 도시로 날아갔다.
두개골을 품에 소중하게 안은 천사라는 것은 또 우스운 장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