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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132화 (132/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132화

13층 - Lv. 775 용암망치 강습사단(3)

완벽한 포위였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군은 순순히 물러났다.

알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연방의 주둔지까지 함께 이동했다.

연방의 물건들은 아무튼 제멋대로인 제국이나 종족별 규격이 존재한다는 동맹과는 다르게 철저하게 통일된 모습이었다.

고블린과 뱀파이어라는 기묘한 조합의 국가가 발생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어 나에게도 생소하기 그지 없다.

고블린의 체구에 맞춰진 덕에 군용 차량들은 비좁다.

파티원들이 여러 차량에 나눠서 타게 되었다.

나는 물론 지휘 차량이다.

자신을 스펜서 중령이라 밝힌 고블린 중령은 오들오들 떨며 나를 맞이했다.

나는 최대한 이 친구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앉아 있었다.

주둔지는 임시로 조립된 것 치고는 굉장히 그럴싸한 강철 컨테이너들이 늘어서 있었다.

비주얼에서 절도가 느껴지기는 쉽지 않은데, 도대체 이 군대의 군기는 어느 정도인 것일까?

"위대한 혼돈 앞에 영광 있으라!"

어느 순간 우리를 대상으로 한 경례만 구호가 변했다. 좀 더 간결했을 건데.

가장 가까운 연대의 주둔지로 향하자 모든 간부들이 이미 모여 있다.

그들이 오크의 전투함성만큼이나 굉장한 성량으로 경례를 올려붙였다.

타오르는 열정을 도무지 주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름대로 나이를 먹은 고블린들이 몸을 떤다.

나는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생해야 했다. 일단 모두 자리에 앉혀야겠다.

경례를 받아주지 않자 손도 내리지 않는다.

깍듯하게 받아주자 그제야 숨을 내뱉는다.

가만 보니 숨도 멈추고 있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군.

연대장이 더듬더듬 말했다.

고블린답지 않게 기골이 장대하며 호탕하게 수염마저 기른 대령이 수줍은 새색시가 따로 없다.

"후퇴 지원에, 아니! 후방 돌격 지원에 깊이 감사드리며, 이렇게 뵙게 되어 제 가문의 무한한 영광을, 앗, 아니. 그, 아무튼 정말 제가 지금 행복하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니, 이 고블린들이! 전쟁할 생각이 없어!"

그만 버럭하고 말았는데, 그 바람에 공기가 바짝 얼어붙는다.

질책도 못 하겠다. 내가 무언가 입을 떼는 순간 그것은 곧 여신께서 노래하는 분노가 된다.

미치겠군.

다시 분위기를 어떻게 살살 달래서 복구한 후에 이곳의 상황과 전황이 어찌 돌아가는지에 대한 정보를 요구했다.

다음 층으로 향하는 계단은……. 나중에 생각하자고.

정보 작전 쪽 병과로 보이는 이들이 부리나케 달렸다.

병사로 보이는 고블린들과 뭔가를 한 아름 가져온다.

그걸 기다리는 동안 다른 간부들도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나도 신경 쇠약이 올 것 같다.

파티원들 역시 모조리 상석에 앉아 설레는 눈빛만 잔뜩 받고 있으니 거북한 모양이었다.

그 와중 내 옆의 소녀가 슬쩍 손을 잡아 온다.

여신님께서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아크캬카카각, 우리 대신관이 이렇게 당황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왜 그 저번에 카크리쉬가 죽었다는 소릴 들었을 때가 가장 비슷하군. 오랜만에 참 즐거워.]

‘대체 애들한테 뭘 하신 겁니까? 저번에 잠깐 보았을 때도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사실 내가 뭔가 했다기보다는 그 요새의 대장 고블린 기억나나?]

‘아 선동에 재능 있어 보이던 그 노인네 말이군요.’

[그 친구의 유전자는 대대로 그런 방향으로 축복받았던 모양이라서 말이야. 지금 지도자이자 대신관 대리도 그 후손이야.]

‘그거 독재 아닙니까?’

[독재는 뭘, 내가 독재하는 건데. 너도 말이야.]

여신 아래 평등하지만 유배자는 또 다른 문제라는 식이다.

그래 어째 독재자가 된 기분이더라. 그런 국가였지.

왕정국가의 왕과는 미묘하게 또 다른 기분이다. 정말 어색하기 짝이 없다.

[뭐든지 다 하는 것 같으면서 이런 것은 또 좀 거북한 모양이군? 의외야.]

‘원래는 솔로 유저라서 말입니다. 해본 게 신 요정제국의 요정왕과 유배자 길드의 길드장뿐이군요.’

여신님은 잠깐 침묵했다.

[고생이 많았겠군.]

‘저 사실 솔직하게 말하라고 하면 요정 별로 안 좋아합니다. 그거 해본 이후로는 좋아할 수가 없더군요. 요정왕은 NPC를 위한 자리 아닐까 합니다.’

[그럴 만도 하지.]

어찌 되었건 여신님은 자신의 대전사가 당황하는 것이 즐거운 모양이었다.

가만 보면 이 분도 참, 남의 불행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는 것 같다.

신좌에 앉아본 입장에서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거긴 정말로 심심한 곳이니까.

NPC를 가장 NPC로만 보게 될 수밖에 없는 위치다.

그러니 감정 이입할 유배자를 찾아 관심 가지고 하루 종일 살펴보고, 혹여 죽을세라 어여삐 여기는 것도 어쩔 수가 없고.

이제는 단순히 신앙과 계약 관계 이상이 여신님과 나 사이에 있다고 생각하므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럼 고생하라고~]

어딘가 소녀의 성대모사 같은 상큼한 목소리로 마지막 신언을 날리고 다시 구경꾼으로 돌아간다.

잠깐 대화하는 사이에 브리핑이 준비되어 있었다.

어느새 연대장이 앞에 서 있고 작전과장으로 보이는 고블린이 심호흡을 하며 지시봉을 건넨다.

홀로그램이 떠오르고 주요 재원부터 하여 부대 연혁까지 지나가기 시작한다.

일단 여신님의 위엄을 유지하기 위해 근엄한 태도를 고수하자.

"아니, 이런 걸 바란 건 아닌데. 그냥 지도를 좀 편히 볼 수는 없겠나?"

연대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작전과장은 사색이 되었다.

"진정하라. 디테일을 중시하는 그 마음가짐만은 잘 받았다."

표정이 확 밝아진다.

코인에 물려도 이것보단 일희일비가 덜하겠다.

소녀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큭큭댄다.

복화술과 마법을 응용하여 소녀에게만 들리도록 목소리를 전한다.

"야, 쟤들 또 표정 안 좋아지잖아. 참아."

"넵."

그렇게 지도를 내 눈앞에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종이로 된 그런 게 아니다.

입체로 떠오른 홀로그램은 주둔지 주변은 실시간으로 표기해 주고 있다.

그리고, 지휘부 주변은 고블린들로 가득 차 있군.

그 아이돌 팬덤 같은 그런 건가?

아니지 그보다는 교황 성하를 한 번이라도 뵙고 싶어 모여든 신자에 가깝겠지.

혼란하다. 혼란해.

몇 가지 기호들이 떠오르고 문자 또한 제법 생고하다.

일찍이 본 적이 없는 형태의 국가다 보니 내 방대한 언어 라이브러리에도 없는 것이다.

그 사실을 눈치챈 작전과장이 슬며시 묻는다.

"위대한 대전사님, 혹시 주석이 필요하시다거나."

"떽!"

뭔 놈의 떽이야.

연대장이 버럭하며 불경한 태도를 나무란다. 작전과장이 완전히 쭈그러들었다.

머리가 아프다.

나는 작전과장의 말이 맞다고 두둔했고 이제는 연대장이 사색이 되었다.

쌍으로 아주 미치겠군.

그리고 그 와중 갑자기 헬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지휘부 내 간부들이 눈만 데굴데굴 굴린다.

홀로그램에 표시되지 않는 행차라면 보안을 위해서일 것이고 그렇다면……. 높으신 분이군.

대한민국 육군에서 단련된 육감이 빛을 발한다.

길이 갈라지고 우르르 들어오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가장 앞에 서 있는 고블린의 계급장이 별……, 아니, 왜 막대 사탕 같은 느낌이 들지?

저거 롤리팝 아니지?

[사실 영관급 계급장은 별사탕이라네.]

아직 소녀가 손을 잡고 있었기에 여신님이 응답했다.

이런 미친 신.

어쨌든 두 개인 것 보니 사단장?

그 본인이 가장 우렁차게 자신의 관등성명을 대며 사단장임을 밝혔다.

"본 사단에 찾아주신 대전사님의 선택에 정말 무궁한 영광을 느끼며……!"

그래도 이 친구는 짬이 되어서인지 말은 안 더듬네 그려.

라고 생각했으나 오산이었다.

갑자기 픽 쓰러진다.

한숨도 못 쉬겠다. 그 순간 분위기가 끝장나버릴 테니. 나는 근엄하게. 아주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하게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 앞에서 쓰러졌다고 숙청당하지는 않겠지? 혹시 모르니 언질은 해두자.

그 바르바로이가 데려온 젊은 뱀파이어들은 아주 침착하고 냉정하며 감정이 메마른 친구들이었군 그래.

군의관이 뛰어들어와 한다는 소리가 너무 감격에 겨워 기절했다고 한다.

좋아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또 소음이 들려왔다. 마찬가지로 홀로그램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는다.

헬기와는 조금 다른 소리. 이건 소음의 형태가 추진체의 느낌인데.

그럼 착륙하려는 수직이착륙기 정도 되나?

그리고 군단장이 뛰어 들어왔다.

* * *

"벌써 피로해졌어."

"고블린들에게는 정말 신이 따로 없군요."

나는 고개를 흔들며 순식간에 마련된 호화 컨테이너 속으로 들어갔다. 파티원들은 휴식 직후에 다시 시작된 호화로움에 기뻐하거나 당황해했다.

"잠깐 나는 할 일이 있어서 그럼."

현재 지상에서 가장 높으신 분인 군단장을 마지막으로 다른 방문은 없었다.

연방군 우주군 규정에 의거하여 군단장은 지휘권을 나에게 양도했다.

속으로는, 아니, 그래도 되는 건가. 이 나라 군법은 도대체 어떻게 되어 처먹은 거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일단 받아들였다.

어차피 명목상일 뿐이다. 실제 지휘체계는 그대로일 것이다.

전황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만이 필요했고 그에 대한 정보는 충분히 얻었다.

온갖 군사기밀을 탈탈 털어 가져다 바치려는 꼴이 나로 위장할 수단이 타국에 있다면 연방이 그날로 멸망할 것 같다.

나는 번쩍번쩍하는 소파에 주저앉아 눈을 감았다.

약식으로 마법진을 그리고 마력을 순환한다.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해 영감님이 옆에서 지켜봐 주기로 했다.

정령계로 빠져든다.

이 세계에 겹쳐진 또 다른 세상이 시야에 떠오른다.

보이는 것과 달리 한 발짝이라도 잘못 디딘다면 영혼째로 소멸하여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곳.

그러나 계약에 의거하여 나를 부르는 선이 그어지고 길이 이어졌다.

천천히 걸어가자 그 끝에 실피드가 보였다.

기억하던 마지막 모습은 아직 새끼 드래곤이었다.

지금은 트롤만큼 거대한 실버 드래곤의 모습이다.

세월이 500년, 한 서버의 자연 그 자체인 정령왕이 제대로 성장하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제대로 된 자아조차 희박하여 시키는 대로 따르기만 하던 모습과는 다르게 먼저 말도 걸어온다.

[오셨군요.]

지극히 온화한 태도다.

다행이군.

유배자로서 정령과 계약을 했을 때, 여러모로 발생하는 문제점 중 하나가 정령은 가지고 다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서버에 종속된 개체이기에 왕국에서 불러오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계속 왕국에 있을 수는 없다.

결국 서버의 정령계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니 이 실피드는 나와 계약한 지 500년이 지난 상태다.

그사이에 내가 자리를 비운 공백도 많았을 것이며 혹여 사이가 틀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대비는 그것을 위한 것이었다.

‘이번 층에선 네 도움이 필요하다는군.’

미래의 나는 13층에 대해 아주 짧은 단서만을 남겼다.

정령왕을 사용할 일이 있을 것이라는 정도.

실피드가 모습을 바꾸었다. 단발에 단정하고 귀여운 이목구비. 음?

소녀다.

소녀와 똑 닮은 모습이지만 은발에 더 차분한 분위기와 표정을 하고 있다.

인간형을 취할 때 본능적으로 가까운 존재의 모습을 취한 건가.

아니, 대체 왜지?

쌍둥이처럼 닮았지만 분위기가 지나치게 다르니 전혀 다른 사람 같다.

실제로도 다르지만.

실피드가 결코 원본 소녀가 지을 수 없는 우아한 미소로 대답한다.

[기꺼이, 아버지.]

넌 또 왜 아버지냐. 딸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군.

미래에 오기 전의 실피드는 정령계로 들어가도 파닥거리며 내 주변만 날아다니는 쪼꼬미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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