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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141화 (141/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141화

14층 - Lv. 459 잊힌 자들(2)

클리어가 불가능한 것은 게임이 아니다.

미궁은 어쨌건 게임의 형식을 취했던 무언가다.

아니, 사실 이게 원본이고 개발자 놈들이 뭐 이상한 존재여서 게임으로 뒤늦게 만들었을 수도 있긴 하지.

하지만 닭이 먼저건 달걀이 먼저건 게임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기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길은 있다.

진공 상태에 내던져진 우리 파티원들은 모두 같은 메시지를 보았고, 숨을 참았다.

일단 완전 허허벌판의 우주 공간은 아니었다.

그건 우주에서 자유 비행이 가능하거나. 적어도 제한적으로는 비행이 가능한 시기에나 나타난다.

안 그러면 알아도 반드시 죽기 때문에 미궁이 허용하지 않는다.

폐활량에 문제가 있을 인원들부터 빠르게 산소통이 분배된다.

그리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고 그런 게 필요할 일도 많지 않다.

칠흑의 복도를 마법의 불빛으로 밝히자 14층의 무대는 한눈에 보기에도 잔뜩 낡아빠진 선체의 내부였다.

한때 내부를 채웠을 공기는 이미 우주 공간의 저편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인공 중력도 유지가 되지 않으니 몸도 멋대로 둥실 하고 떠오른다.

파티원들은 각자 붙잡을 수 있는 곳을 붙잡았다.

자칫 잘못해 우주 공간의 미아가 되면 방법이 없어진다.

함부로 움직이면 산소의 소모가 커진다. 약속된 수신호에 따라 꼬맹이와 나만 움직이기로 했다.

소녀가 따라나서려고 했으나 일단은 막았다.

꼬맹이가 박쥐로 변하려 했다.

내가 막았다. 여기선 박쥐가 날 수 없다. 꼬맹이도 그 사실을 곧바로 깨달았는지 대신 늑대로 변했다.

약간의 마법적 테크닉으로 바닥에 발을 붙인다.

시범을 보여주자 어색하지만 곧잘 따라 했다.

애초에 이 아이는 재능을 빼면 아무것도 안 남는 수준의 NPC이니 이런 부분만큼은 편하다.

다른 마법사들도 그 모습을 보고는 흉내 내려 하지만 쉽게 되지 않는다.

마법이란 게 원래 그렇다.

진짜 실력은 크고 아름다운 술식에서 나오지 않는다.

의외로 [파이어 볼]은 물론이요 그 이상의 고위 마법도 구현 자체는 어렵지 않은 경우가 많다.

구현에 필요한 마력과 그것을 다루는 최소한의 소양. 그거면 충분하다.

화력만 높은 마법들은 생각 외로 술식이 복잡하지 않은 덕이다.

하지만 그게 실전성이 있냐면 전혀 다른 문제다.

필요한 순간 빠른 속도로 안정적인 구현할 수 있는가?

일단 이게 문제고, 그 외에도 자잘한 응용으로 넘어가면 능력 없는 마법사들의 밑천이 드러난다.

내 경우에는 타고난 재능도 있었지만 긴 세월 간의 반복 숙달과 훈련으로 습득한 능력이다.

꼬맹이는 정도 이상으로 복잡하지만 않으면 그걸 아주 쉽게 따라 한다.

복사해서 붙여넣듯이 말이다.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재능이지만 달리 말하면 저런 능력이 있는데도 발전은 지지부진하다.

미래의 꼬맹이가 했던 말이 허언은 아니었다.

곧잘 학습하는 것 같고 욕구도 있는가 했더니 그냥 너무 쉽게 배워 그리 보였을 뿐, 그다지 마법을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다.

요즘도 보면 대부분은 멍하니 지낼 때가 많다. 무감각한 인형처럼 시키는 일만 할 뿐이다.

바르바로이가 데려갔다가 돌려준 후에 좀 나아졌나 싶었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다.

약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게 되었다.

긴 세월 동안 너무 아무런 감정 없이 지내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것 아닐까?

일단은 지켜보려고 했는데 말이야.

* * *

바르바로이 클랜은 용인들에게 밀려나기 전에도 쇠락해가고 있던 클랜이었다.

꼬맹이의 작은 머릿속에는 그때의 기억이 아직 선명했다.

스무 해를 조금 넘긴 삶의 대부분은 그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으리번쩍한 바르바로이의 모습도 아직 그 기억을 아직 덮어쓰진 못했다.

인간들은 당연하게도 뱀파이어를 배척한다.

다른 종족들이라고 별다를 것은 없다. 걸어 다니는 시체라는 것은 생리적 혐오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오히려 유배자들이 뱀파이어의 존재를 더 쉽게 받아들였다.

언데드라는 것은 사실 원래부터 그러한 존재다.

죽었음에도 연명하는, 산 자를 갈취하는 괴물.

박해받고 핍박받은 기억밖에 없다.

여러 종족이 얽힌 채 흩어져 지내는 동방의 환경은 뱀파이어가 무사히 정착하기 힘들었다.

좋은 추억이라곤 없는 상태는 방어기제를 학습시켰다.

클랜원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었냐면 그렇진 않았다.

선함은 여유에서 나온다.

힘든 상황에서도 선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어린 자신을 뱀파이어로 만들었던 이는 그런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선한 행동이 좋은 결과를 담보하지는 못한다.

안 그래도 형편이 좋지 않던 클랜이다. 착하고 선량하던 그는 그래서 죽었다.

꼬맹이는 버려졌다.

최소한으로 챙겨주는 것이라 해봐야 클랜 마스터였던 바르바로이.

클랜 내에서 괴롭힘은 없었으나 보살핌도 없었다.

역할도 없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뭔가를 배우기도 전에 뱀파이어가 되었고 당연히 뱀파이어로서의 기능도 숙련되지 못했다.

마력은 그럭저럭 다루었으나 체내에 흘리는 일에는 능숙하지 못했다.

동방의 주류 마법에는 영 어울리지 않는 재능이었다.

그래서 그 재능은 발견되지 못했다.

할 줄 아는 것이 없으니 역할도 없다.

애물단지도 이런 애물단지가 없다.

사실 지금도 꼬맹이는 자신의 재능을 그다지 자각하지 못했다.

너무 쉽게 이루어지니 성취감도 없기 때문이다.

칭찬을 받는 것도 그것이 칭찬인지 잘 모르겠다.

꼬맹이는 이미 아무런 생각도 하기 싫었다. 고민해 봐야 괴로울 뿐이다.

가만히 있어도 그다지 죽을 걱정이 없는 뱀파이어의 육신은 그런 태도를 더욱 가속시켰다.

정착된 태도는 간단하다.

누군가 시키면 그 일을 할 뿐. 그에 대해 어떠한 감상도 없다. 그냥 멍하니, 시간이 흘러가는 게 좋다.

지금도 그렇다.

늑대의 모습으로 새 아빠가 구현한 마법을 따라 하는 것은 쉬웠다.

선명하게 보이는 빛이 뽀송뽀송한 늑대의 네 발에 모여든다.

충분할 정도의 흡입력을 발휘할 만큼이 되자 마력을 움직이는 것을 멈추었다.

몸이 바닥에 고정된다.

딱 중력이라고 느낄 만큼의 무게감으로 붙었다.

이런 미세한 마력의 운용은 처음에는 좀 어려웠지만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쓸모없다고 내쳐지지는 않을 것 같았기에 꼬맹이는 스스로에 만족했다.

그리고 더 이상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다음 지시를 받기 위해 고개를 들어 새아빠를 본다.

별과 선들의 집합.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세상.

꼬맹이가 뱀파이어라고 인식하고 있는 형태의 선과 빛들이 움직인다.

머리라고 인식하는 부분이 그녀를 본다.

그 안의 선과 별들이 꿈틀꿈틀하며 움직였다.

아직 잘 모르겠지만 저게 칭찬하는 표정이라는 것을 최근에 배웠다.

사실 그녀가 보는 세상이 모두 마력이라는 것도 얼마 전에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 * *

내가 조급했던 것일까?

누구나 때로는 자신에게 의문을 던진다.

나는 언제나 자신 있지만 이런 미친 듯한 환경은 나에게도 새롭다.

너무 조급하게 달린 것일까?

꼬맹이는 시키는 대로 순순히 에어포켓을 찾아 떠났지만 불안을 금할 수가 없다.

여러모로 노력해 보았지만 아직 잘 모르겠단 말이야.

내가 읽는 것에 능숙한 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똑똑하다고 믿는 녀석들이다.

그런 녀석들이어야 이용가치가 있으니까.

꼬맹이처럼 아무런 감정의 기복도 없는 이들은 보통 의지 자체가 희박하다. 저런 아이를 어찌 다루어야 할지는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보통은 굳이 저런 걸 고치는 거보다야 대체할 만한 다른 사람을 구하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체할 방법이 없는 지금 상황이다.

그동안 바르바로이 클랜에 고정적으로 출현하는 마법 재능의 소유자는 약아빠졌거나 조금 의기소침하더라도 멀끔한 정신이 박혀 있는 녀석들이었다.

미래에서 온 꼬맹이도 나름대로 맹랑했기에 그리 믿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것 아닐까?

뭔가 해야 할 것 같은데.

어쨌건 나는 움직인다.

에어포켓은 반드시 어딘가에 존재한다.

보통 처음 이런 상황을 겪는다면 그 사실조차 알 수 없기에 사망하지만 말이다.

이건 미궁이 하는 최소한의 난이도 조정이다.

어떻게 보면 좀 편할 수도 있다.

꼭 우주 스테이지가 아니더라도 환경이 극단적이라면 그것 자체도 난이도의 일부로 판정된다.

공기가 없는 상태는 더없이 높은 난이도이기에 그만큼 적이라 할 만한 것들은 약하기 마련이다.

뱀파이어다 보니 숨을 전혀 쉴 수 없음에도 별다른 고통이 없다.

숨을 쉬지 않아도 된다면 우주의 진공 상태는 맨몸으로도 생각만큼 심각하게 유해하지는 않다.

체내의 공기압 정도로는 몸이 풍선처럼 터질 리도 없으며, 열전도 할 대기가 없으니 그다지 추위를 느끼지도 않는다.

숨만 안 쉴 수 있다면 별것도 없다.

언데드에게는 세상 유리한 환경이다.

그러니 당연히.

이런 곳이라면 적 또한 언데드이다.

빛을 감지하고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스멀스멀 기어오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인다.

* * *

우주는 꼬맹이의 시각으로는 아주 시커먼 검은빛의 덩어리였다.

그것은 우주가 어둠의 원소로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배웠다.

진공이라 하더라도 물질이 없는 것일 뿐이며 그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인 마나는 존재한다.

밀도로는 풍부하다고는 할 수 없더라도 우주의 광대함을 생각하면 절대량만큼은 압도적이다.

이 광활한 우주는 대부분 어둠의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마력이 희박한 것은 사실이기에 꼬맹이는 쉽게 적을 알아볼 수 있었다.

군데군데 부서지고 구멍이 나서 우주로 노출된 공간을 지나고 복도의 안쪽으로 들어섰다.

무언가 꿈틀대며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꼬맹이는 불빛을 껐다.

빛이 세상을 비추지 않더라도 꼬맹이의 눈에는 세상의 모습이 간략하게나마 보인다.

흐릿하게 흩뿌려진 어둠 속에서 짙은 어둠들이 뭉클뭉클하며 걸어 나오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조금 전에 배웠다.

저것을 제압하려고 들면 안 된다.

그 무엇보다 막대한 어둠의 원소가 존재하는 우주 공간에서 오랫동안 방치된 언데드.

언데드의 근간은 당연히 어둠의 원소다.

단순한 좀비일지라도 무시무시하게 강화된 상태다.

꼬맹이는 조심스럽게 마력을 흘려 좀비를 유인했다.

빛이 사라지자 정확한 위치를 볼 수 없게 된 좀비 몇몇이 비척이며 허공을 날아온다.

우악스러운 완력으로 폐허가 된 함선의 복도를 붙잡고 점차 전진.

꼬맹이는 천천히 물러났고 우주 공간으로 구멍이 뻥 뚫려 있는 곳까지 왔다.

좀비들은 계속 전진했고 구멍의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이름을 붙일 필요도 없는 간단한 마법.

단지 물리적 충격을 만들어낼 뿐인 염동력에 더 가까운 것.

좀비들이 잠깐 팔을 떼는 순간 그것이 발동했다.

적중당한 것들이 우주선 바깥으로 튕겨 나간다.

입을 열어 무어라 말하는 듯하지만 공기가 없어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무한한 공간 너머로 멀어지기 시작하는 좀비들을 잠깐 보고 있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꽤나 아슬아슬했지만 아직 공기가 남아 있는 방을 찾을 수 있었다.

의료시설로 보이는 격리된 공간이었다.

단단히 밀폐할 필요가 있어 튼튼하게 만들어졌으며, 동시에 함선의 중심부 가까이에 있었기에 아직도 파손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사실 우주 공간에서는 물건이 거의 상하지 않기는 한다.

진공만큼 보존력이 좋은 환경이 또 어디 있을까.

선체의 파손은 우주를 떠도는 작은 암석들이 충돌하며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 광활한 공간에 그런 일은 아주 드물게 일어난다.

가는 길을 치워야 하긴 했기에 좀비들을 어떻게 끄집어내고 간신히 그 방에 도달했다.

언데드가 아닌 파티원들은 슬슬 얼굴이 노랗게 변해가고 있었다.

이거 공기 괜찮긴 하겠지?

마력 탐지를 살짝 걸어본 후에, 단거리 공간이동으로 모두 안쪽으로 이동했다.

별다른 방법이 없기에 일단 그냥 숨을 내쉰다. 나쁘진 않았다.

"후아, 이거 정말 힘든데요?"

"세상에 다시없을 숨 막히는 경험입니다."

"환경에 의한 죽음은 포션으로도 어떻게 안 되니까 말이지. 그래도 꽤 가까운 곳에 있었군. 산소는 많이 남겼나?"

"절반 정도 소모한 것 같습니다."

"비상용으로는 떡을 치겠군."

소녀가 잔뜩 인상을 쓴다.

"계속 이렇게만 움직여야 해요?"

"여기 공기를 마법으로 둘러서 활동할 수는 있지. 하지만 그러면 전투는 좀 힘들 거고."

적어도 근접 전사는 거의 봉인되는 환경이다.

근접해서 치고받거나 빠르게 움직일 수가 없으니까.

"너무하잖아요!"

"그래서 보통 파티로 움직이는 거지. 가면 갈수록 이렇게 제약이 걸리는 환경이 많아질 거야."

"저도 마법을 익혀야겠어요!"

"좋은 생각이야. 영감님 강의 좀 부탁드립니다."

숨을 헐떡이던 오크 노인이 고개를 든다.

"응? 나 말인가? 주술을 가르치려는 건 아닐 텐데."

"기본기 말이죠."

소녀의 얼굴이 노래졌다.

"앗, 잠깐만요 공부인가요?"

"달리 할 것도 없잖아."

"으으. 하지만 알겠어요."

뭐 언데드 파티원이 한 둘 있어서 나쁠 것 없는 건 이런 환경적인 문제 때문이긴 하니까.

"그런데 꼬맹이는 어디 있냐?"

"돌아오라고 전하긴 했는데요."

"이런 젠장. 역시 보내는 게 아니었나?"

하지만 시킬 수밖에 없었다. 파티원들을 전부 질식사시킬 수는 없으니까.

소녀가 손을 잡는다.

여신님께서 말을 걸어왔다.

「언데드가 너무 많은데? 일단 내가 인도하여 구석으로 숨겨놓았다. 뱀파이어도 생명 활동이 없으니 쉽게 들키지는 않겠지만 구원이 필요해 보이는군.」

다행스럽게도 당장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같이 이야기를 들은 소녀가 이상하다는 듯 묻는다.

"같은 언데드 아니에요? 왜 노려지는 거죠?"

"어둠의 원소에 푹 절여져 있는 놈들이라 그래. 여긴 다른 원소가 없으니까 뱀파이어 몸에 있는 색다른 마력만으로도 살아 있는 것이라고 인식해버리는 거지."

그렇다고 어둠을 받아들여버릴 수는 없다. 어둠의 원소가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나쁜 방향으로 뛰어나니까.

내가 밖으로 나가려는데 소녀가 내 손을 꼭 붙잡더니 말했다.

"우리 딸, 잘 챙겨 와야 해요!"

"어……, 응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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