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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146화 (146/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146화

14층 - Lv. 2200 어둠의 정령왕(3)

판타지의 꽃이라 불리는 클래스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마법사다.

경지에 도달한 전사나 궁수, 사수, 혹은 암살자 등도 경천동지하며 기상천외한 힘을 보여주지만 마법의 다채로움만은 따라갈 수 없다.

애초에 현실적인 미궁의 전투에서 마법적 요소를 아예 배제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살아 있는 생명체의 육신은 아무리 스킬 보정을 떡칠해도 한계가 있다.

거기에 추가로 깃드는 또 다른 힘이 마법이다.

그래서 수많은 고참 유배자들은 본직이 따로 있다 하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마법적 조예를 가진다.

본업이 마법사이더라도 다른 물리적 클래스의 소양을 겸비하는 것 역시 물론이다.

자연의 신은 처음에는 검사로 시작하여 점차 마법을 익혀가다가 전업 마법사의 길을 걷게 된 케이스였다.

마법의 신좌에 앉아 마땅한 것이 그 자신이라 생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마법의 신이 얼마나 정신 나간 자인지 아는 이제는 납득할 수 있다.

어찌 되었건 그는 마법사였으며 그것도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전문 분야로서 마법을 다루어온 자였다.

그런 그의 입장에서 혼돈이 어디서 물어 온, 혹은 어디서 혼돈이 물려버린 이 유배자의 존재는 지극히 흥미로웠다.

이 유배자의 본직이 마법사임은 의심할 여지조차 없다.

지금껏 보아온 다채로운 발상과 고찰이 그 추론을 지탱한다.

그렇지만 이번만큼은 이게 옳은가 하고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태풍을 다루며 날씨를 바꾸는 것이 마법사라 한들.

그 마법사도 태풍은 피해간다.

그것을 상대로 무언가 해낼 수 있는 마법사는 적으며, 할 이유도 없다.

미쳐버린 고블린들의 지원 병력이 조만간 도착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때까지 시간을 벌 수단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닐까?

저런 정면 승부를 꼭 해야 할까?

자연의 신이 보기엔 현명한 판단이 아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 그렇겠지 하는 생각 역시 들고 만다.

오랜 세월 무수한 유배자를 보아왔음에도 보지 못한 비범함이 저 남자의 행적에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한 번씩, 아니, 꽤 자주 그냥 미치광이 같기는 하다.

그였다면 전혀 다르게 진행했을 것이다.

이런 미친 난이도를 만들어주는 저 소녀까지는 괜찮다.

이미 튜토리얼 구간에서 왕국 이후에도 못 잡는 메인스트림들을 잔뜩 물어다 주는 행운의 화신이니까.

행운의 신이라는 대신격의 총애를 받건 뭐건 하여간 관련이 있을 저 소녀만은 살려 데려가야 한다.

그 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냥 훌훌 달려 넘어가면 될 문제를 어떻게든 꾸준히 매듭지어 이득을 뽑아내며 나아가고 있다.

감탄을 금하기 힘든 일이다.

죽게 생긴 리스크를 모두 감내하고 자신의 지지 기반을 착실하게 다진다.

좀 더 나중에 해도 될 일이라 생각하는데도 미궁의 진행도를 압축하기에 여념이 없다.

유배자로서 좀 더 높은 곳을 지향한다면 NPC와의 관계는 아주 중요하다.

많은 고참들이 그 사실을 안다.

하지만.

한 서버의 지배자.

그런 입지에 도달한 유배자는 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의 기세만 본다면 과거에도 미래에도 그의 적을 모두 치워버릴 생각인 게 분명하다.

자연의 신은 지금도 왕국의 소식을 들어 알고 있다.

가뜩이나 이번에 새로 열린 이 서버의 특이성에 대한 논란이 오고 가는 와중이다.

이 파티가 왕국에 도달했을 때 어떤 파란이 일어날지 기대된다.

신의 입장에서도 이 남자가 여기서 죽는 일은 없을 거라는 묘한 확신 덕분이다.

* * *

눈이 번쩍였다.

지능 도핑을 때리고 메테오를 갈길 때도 이렇게 집중하지는 않았다.

그때는 말은 그렇게 했어도 스탯 보정이 빵빵하게 들어온 상태에서 밥 먹듯이 하던 걸 한지라 진짜로 실패할 거란 생각은 크게 안 했다.

실패하면 죽는 건 똑같았으니 걱정했지.

거기에 여신님께 모든 패를 까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었다.

그건 일단 보정이 부족한 게 문제지 기술적으로는 그리 힘들지 않았단 말이다.

물론 내 기준이긴 하지만.

그러나 지금은 아무리 숙달된 상황이라 해도 실패할 가능성은 있는 작업이다.

조용히 신중하게만 진행하는 게 아니라 나에 대한 적의를 가진 거대한 태풍을 상대하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서로가 서로에 겨눈 칼끝이 닿기 전에 내가 먼저 쳐내고 찔러야 한다.

이론이나 정답이 있는 분야가 아니다.

순간의 판단, 순간의 테크닉, 순간의 임기응변.

그런 것들이 모여 온전한 하나의 기술이 된다.

우선 최초의 흐름을 잡아야 한다.

거세게 몰아치는 어둠의 격류를 잠깐이나마 미리 만들어둔 방벽들이 버티는 와중이다.

이미 장악해 둔 주변의 공간에 주인 없는 어둠이 닿는다.

그것의 방향을 돌린다.

완전히 내 것으로 할 여유는 없다.

꺾이기 시작한다.

미칠 듯한 한 방향의 흐름 사이에서 몇 개의 줄기가 이탈한다.

벗겨낸 어둠이 아직 방벽이 남아 있는 동안 내 주변으로 모여든다.

흐르는 힘은 죽이지 않는다.

조금씩 방향만을 틀어 빙글빙글 돌도록 만든다.

아무리 간접적인 간섭이라 해도 태풍을 상대하는 것이다.

머릿속에 불꽃이 튀는 듯했다.

영혼이 쥐어 짜이는 기분이었다.

현재 내 스탯과 스킬 상태에서의 한계는 나 자신이 가장 잘 안다. 지금 한순간을 위해 영혼에 약간의 손상마저 감수한다.

마인드 컨트롤을 위해 기계를 이미지화한. 나는 마력을 다루는 기계.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이성적으로만 판단해야 하고 수치로 이미지화해야 한다.

잠깐이라도 몰아치는 힘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순간 우주의 먼지가 되어버릴 것이다.

영혼을 쥐어짠 결과, 한순간 나라는 캐릭터가 가진 능력치 이상의 마력 장악력이 발동된다.

거진 130% 수준.

그리하여 어둠의 정령이 아무렇게나 쏟아낸 힘은 내 주변에서 방향성만 달라진 채 맴돈다.

고삐를 조금씩 늦춘다. 한 번 흐름이 생기면 내가 직접 힘으로 비틀어 넣지 않아도 새로 들어온 힘이 어느 정도 그것에 순응하게 된다.

본디 내 마력으로 만들어졌던 방벽에 점차 어둠이 깃들었다.

상대방의 마력을 흡수하진 못해도 보강에 사용하는 정도는 할 수 있다.

방벽의 색이 짙어지고 점차 검게 변해간다.

당장에라도 무너질 듯 휘청거리던 방벽이 점차 공고해져 갔다.

불쌍한 소환수들은 휩쓸려 사라진 후다.

물론 이대로는 시간 벌이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시간 벌이를 더 튼튼하게 해둘 필요는 있다.

흐름을 거역하지 않는 형태의 마력 장벽이 세워진다.

뾰족한 첨단을 중심으로 좌우로 흐름을 갈라내는 형태.

그것을 완성하고 앞부분의 방벽을 철거한다.

산산이 조각나 흩어진 뒤로 흐름에 거역하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버티는 유선형의 아름다운 형태가 나타났다.

방벽에 부담이 한결 덜어졌다.

자연스레 방벽을 강화하는 것에 소모되던 장악력도 여유가 늘어난다.

가동률이 90%대로 내려간다.

이때쯤 눈이 침침했다.

실오라기 한 올까지 보이던 시야가 슬그머니 흐려진다.

정신통일. 정신통일.

좌우로 갈라져 흐르는 어둠의 뒤편으로 그 일부를 안쪽으로 끌어들일 형태를 만든다.

계속해서 헤엄치지 않으면 아가미로 물이 흘러들지 않아 죽어버린다는 어느 바다 생물의 아가미처럼.

좌우로 갈라진 흐름의 일부가 방벽의 뒤편, 내 몸의 주변, 그리고 내 몸의 후방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다시 또 회전.

최초의 흐름이 워낙에 거셌기에 현재의 내 장악력으로는 방향을 틀어버리는 정도밖에 할 수 없다.

그리고 멈춰서도 안 된다.

계속해서 회전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더욱더 가속하게 해야 한다.

마력이란 것은 마나의 흐름.

빠르면 빠를수록 더욱 강해진다.

맨 처음 흘러들어온 줄기를 회전시키는 것은 역시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단단한 틀이 구축된 속에서 흘려 넣는 것이기에 계속해서 새로운 어둠이 흘러든다.

이미 뭉쳐져 회전하던 구체는 그 힘을 받아 점점 가속한다.

위아래로 지나치는 어둠은 가능한 흘려낸다. 그것까진 감당할 수 없다.

좌우에서 들어오는 것들만 조금씩 끌어들여 내가 만들어낸 흐름에 합류시킨다.

그것을 조금 더 반복하자 이제는 나 자신이 힘을 가하지 않아도 절로 그리 돌아가는 시스템으로 구축되었다.

내 마력장악의 가동률이 급격하게 내려간다.

이젠 50%대.

이제는 방벽을 유지하기 위해 직접 조작하여 끌어들이던 어둠도 바로 뒤편에 생성된 검은 구체 둘에게 떠넘긴다.

맹렬하게 회전하며 더욱더 가속하고 있는 두 구체에서 몇 오라기씩만 빼 와 앞으로 흘려 넣으면 된다.

자급자족이 따로 없다.

여기까지 왔으면 안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내 마력의 9할 정도는 가장 처음에 버티는 것에 거의 소진되었다.

남은 1할은 이제 남의 마력이 흐를 방향을 잡는 데에만 조금씩 소모될 뿐이다.

닥쳐오는 힘에 비하면 한 줌조차도 되지 못하는 마력이었으나 그것을 종자로 계속해서 불려 나가는 시스템의 구축이 끝났다.

그렇다면 이제 파밍의 시간이다.

이 마력 수집 시스템 자체의 크기를 점점 키워서 저놈이 쏟아내는 힘을 모아야 한다.

* * *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까?"

이 질문을 한 사람은 영감님이었다.

파티원 중 리더를 제외하고는 가장 마법에 조예가 깊은 늙은 주술사다.

하지만 그조차도 어둠의 격류 속에서 언뜻 내비치는 저 기괴한 형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질문을 받은 대상자는 신이라고 불리는 위대한 유배자였다.

「나도 모르겠는데. 난 전사지 마법사가 아니야.」

"허허."

여신님은 깔끔하게 저것을 이해하기를 포기했다.

물리적 공격 수단에 마력을 활용하는 방식이야 빠삭하지만 완전히 마법사의 영역으로 간다면 아리송하다.

날아오는 [메테오 폴]을 어떻게 지워버릴 수 있는지는 알지만 그걸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모른다.

순수 전사로서의 삶이었기에.

「정 궁금하다면 나중에 자연의 신에게 한번 물어보지.」

"정말 감사드립니다."

신에게 이런 걸 물어볼 수 있다는 건 축복이 틀림없다.

한 명의 마법직으로서, 늙은 오크 주술사는 종족을 배신하기를 너무 잘한 것 같다며 스스로의 선택에 만족했다.

그가 알던 모든 것보다 수백, 어쩌면 수천 년은 앞섰을지도 모르는 마법 이론이 시현되고 있다.

마법직이 이걸 어떻게 참느냔 말이다.

* * *

일어나고 있는 일을 온전히 이해한 것은 현재 이 우주에 단 두 명뿐이었다.

그중 하나인 자연의 신은 실로 오랜만에 신좌에서 벌떡 일어나 있었다.

벌어진 입이 다물리지 않는다.

요정의 입이 어떤 식으로 찢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 하겠다.

자연의 신은 경악을 넘어 기겁했다.

자잘한 발상의 다름이나, 새로운 수단은 이미 이 남자가 수없이 보여준 참이었다.

하지만 이건…….

그 자신에게 하란다고 할 수 있을까?

방법이야 지금 하는 모습을 보아서 깨달았다.

흐름을 잡는 최초의 장악력 행사.

그 후엔 새로이 들어오는 흐름 또한 그에 순응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정교한 틀 짜기.

그래도 말이다.

제아무리 의사가 없이 휘둘러지는 주인 없는 힘이라 할지라도, 그 힘은 태풍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그 태풍 속에서 풍력 발전기를 즉석에서 만들어 돌리고 있는 꼬락서니다.

하물며 거기서 끝난 것도 아니다.

"저거, 저 뒤랑 저 뒤에 있는 구체 두 개는 그건데."

일정 수준 이상으로 가속된 마력의 구체는 어느 임계점에 도달하는 순간, 투입된 힘 이상의 것을 생산해낸다.

아득해질 정도인 속도의 흐름 속에서, 그 중심부로 말려들어 간 마력들은 더 이상 회전할 곳을 잃게 된다.

구체의 정 가운데로 찌그러진 마력들은 결국 움직임을 멈추고 입자인 마력의 상태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일이 반복되다 보면……

"핵융합 마력로……."

많은 종족들이 우주로 진출할 에너지의 근원이 된 기술.

끊임없이 마력을 토해내는 압도적인 효율의 에너지원.

현재에도 수많은 함선들을 움직이며 행성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는 기술.

한 개인이 자력으로 그것을 구현했다.

물리적 실체조차 없는 상태로!

"이거 원. 가상 마력로라고 불러야 하나?"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인가 자기 입으로 말하면서도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마법의 신이 이 꼴을 보아야 했는데!"

신좌고 뭐고 다 팽개치고 강림할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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