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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149화 (149/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149화

14층 - Lv. 2200 어둠의 정령왕(6)

시대가 시대인지라 마법사의 입지가 과거와 같지는 않다.

마도공학은 분명 마법과 맞닿아 있는 무언가지만 그 갈래는 전혀 다르다.

마법사가 개인이 힘을 휘두르던 시대의 상징이라면 공학자는 기계가 힘을 휘두르는 시대의 상징이다.

효율로 따지자면 전자는 결코 후자를 이길 수 없다.

물론 이 시대에도 여전히 마도공학이 아니라 개인의 마법 자체를 연구하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과거보다 더욱 체계화되고 정리된 부분이 있어 발전상은 있다고 하겠다.

그렇지만 안 그래도 적던 인구가 바닥을 기고 있음은 별수 없다.

하지만 연방은 아직 우주 시대가 찾아오기 전,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최초의 그 마을을 아주 소중히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그에 따라 그 당시의 상황을 신화로 만들고 그곳에 있었던 이들 역시 신격화된다.

여신의 사도라는 식으로.

여신의 대리인은 나고 말이지.

하지만 최초의 연방은 언제 스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작은 공동체에 불과했다.

재능 있는 고블린 쌍둥이 자매를 찾아 사령술을 가르친 것은 조금이라도 더 제국과 전쟁의 신을 골치 아프게 만들 생각으로 뿌린 씨앗이다.

그 씨앗이 발아하여 훌륭하게 자란 결과물을 감상하자.

불꽃놀이가 시작된다.

군대에 비견되는 강력한 마법사는 예전에도 드물었고 지금은 더욱 드물다.

그리고 군대는 과거보다 강해졌고 마법사는 과거보다 줄었다.

새로이 그런 마법사가 탄생하기는 힘드니 군대를 연상케 하는 힘을 가진 마법사들은 죄다 과거의 인물들이다.

우리 파티 또한 이 우주의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전설이겠으나 연방의 신화 그 자체 중 하나인 최초의 사령술사가 전면에 나섰다.

그녀가 부리는 언데드 드래곤과 함께.

내 제자는 내가 만들어낸 물건을 어찌 사용해야 할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잔존한 함대의 포격을 엄호 삼아 정령왕을 지키기 위해 일어선 다른 어둠의 정령들을 뚫어낸다.

결과적으로 고블린들의 지원은 절묘했다.

홀로 뚫어낸다면 시간이 지체되었을 것이다.

빗발치는 포격들이 어둠의 상급 정령이나 대정령에 해당하는 것들의 시선을 돌렸다.

거대한 사이즈의 정령왕에 비하면 날아가는 뼈다귀 드래곤이 한없이 왜소해 보인 탓도 있으리라.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본능으로만 움직이는 짐승과도 같은 것들은 용이 물고가는 여의주가 얼마나 파괴적인지 아직도 깨닫지 못했다.

그 덕에 본 드래곤은 어려움 없이 모든 방어가 벗겨진 채 아직도 몸을 뒤틀고 있는 정령왕에게 근접할 수 있었다.

육체를 형성한 이상 핵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존재할 것이다.

드래곤의 입이 벌어진다.

노심을 분해하여 그 마력을 고스란히 뿜어낸다.

정령왕은 비로소 정신을 차렸지만 바로 눈앞에서 막대한 힘이, 제 자신이 내뿜었던 것이 몇 배로 증폭된 힘을 돌려받았다.

스탯부터 다를 것인 본 드래곤은 나처럼 단발에 모든 힘을 쏟아내지 않고도 감당할 수 있었다.

주변의 모든 어둠마저 잡아 뜯어 파괴력으로 바꾼다.

원소의 마법적 집합체가 아닌 물리적 육신은 그렇게 강하지 않다.

상상하기 힘들 만큼 거대한 육신이 너무나도 쉽게 갈라진다.

두르고 있던 어둠을 다시 복구하여 막아내려고 했으나 리치가 그것을 막아서는 것이 느껴졌다.

정령왕은 오랫동안 힘겹게 저항했으나 결국 산산조각이나 우주의 먼지가 되었다.

정령계나 다름없던 상태의 공간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육안으로는 달라지는 것이 없어 보였다.

오직 마법적인 시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이들에게만 지금 일어나는 일이 보일 것이다.

무수한 공간이 조각난다.

조금 더 오래 시간이 주어졌다면 정말로 독립된 다른 세계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파생 차원이 그렇게 사라졌다.

주변이 온전한 실물 우주로 돌아오는 과정을 꼬맹이는 정말로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평소와 달리 초롱초롱해진 그 눈빛에 나는 의아함을 느꼈고 질문했다.

"왜? 저게 재밌어?"

그럴 수는 있다.

불꽃놀이 싫어하는 아이가 어디 있겠나.

물론 뱀파이어의 나이를 외견으로 평가할 수는 없겠으나 정신은 육체에 잡아끌리는 수밖에 없다.

편견일 수도 있지만 오래 사는 종족들은 동심도 오래 유지한다. 그래, 뭐 요정이라거나 말이지.

그리고 그건 언데드도 마찬가지다.

사실 소녀보다 나이가 많은 쪼그만 딸내미는 반짝이는 눈을 들어 나에게 말했다.

"아빠, 저 마법이 배우고 싶어요."

나는 일단 침묵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지금까진 배운 게 아닌가?

* * *

놀랍게도 사실이었다.

진짜 정말로 놀랐다.

꼬맹이는 마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정확히는 자신의 인식은 그랬다.

배우려는 의지도 없었고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해온 모든 마법적 행위는 그냥 내가 시키니까 할 수 있어서 한 것뿐이었다.

비로소 8층에서 만났던 미래에서 온 꼬맹이가 했던 말이 이해가 된다.

마법을 제대로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는 말.

나로서는 미심쩍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걸 곧이곧대로 믿기에는 현재의 꼬맹이가 너무 쉽게 이것저것 알려주는 대로 해내더란 말이지.

나름대로 관심 있게 듣는 것 같기도 했고.

재능의 크기가 불러온 오해였다.

나는 시간선마다 약간씩 달라질 수 있는 오차 정도로 생각했고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랜덤 NPC인 우리 딸내미는 바르바로이 클랜의 일원으로 출현한다는 것 외에는 회차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때로는 소년이기도 하며 사이코패스이기도 하고 마법적 재능만 타고난 바보일 수도 있다.

당연하지만 얼마나 전도유망한 능력치를 가지고 태어나느냐도 그때그때 조금씩 다르다.

조금씩 말이다.

이번에는 조금씩이 아니었다.

물렀다.

소녀가 가져오는 변화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해서 얕보고 있었다.

"보인다고?"

"네."

일부러 아주 복잡한 형태로 마력을 움직이며 그 형태와 경로가 보이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이었다.

마력을 눈으로 보는 것은 마법을 다루는 이들의 기본 소양이다.

하지만 그것은 훈련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처음부터 그럴 수 있는 인간은 거의 없다.

하물며 내가 노심을 만들고자 인위적인 트랜스 상태까지 만들어가며 집중력을 끌어올렸을 때의 그 상태.

마력의 한 올 한 올이 모두 눈에 들어오는 동시에 그것을 자신의 몸처럼 느끼는 상태.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은 정말로 어렵다.

대부분의 마력을 볼 수 있다는 사람들은 각기 다른 해상도로 마력을 본다.

그리고 개인이 도달할 수 있는 해상도의 최대치는 재능의 크기에 비례한다.

일시적으로 그것을 끌어올릴 방법은 내가 한 것 같은 정신적 도핑.

그래서 마법직들은 뭔가 이상한 걸 피곤 한다. 지구에서도 신내림을 받는 무당들은 이상한 걸 빨 때가 있지 않나.

정신적 고양은 마법적 능력의 구사에 중요하다.

물론 그걸 잘 짜올리는 것은 고양보다는 냉철한 이성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마법은 그래서 어렵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노심을 만들 때의 수준의 해상도는 맨정신으로는 불가능하다.

마법에 파묻혀 사는 정신병자들도 쉽게는 못 따라 한다.

그건 완전한 재능의 영역으로, 노골적으로 말해서 최소한 나 정도는 타고나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기초 스탯이 증명하는 대마법사 수준의 재능에 더해 쉬지 않고 마법에 매진해 온 지난 97년이 있어야 말이지.

도핑 없이 그 정도 해상도를 구현할 수 있었던 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내 치열한 삶의 곳곳에는 언제나 마법이 있었다.

나는 이 미궁을 반드시 클리어하고 싶었으니까.

헌데 꼬맹이는 날 때부터 그런 상태였으며 오히려 정상적인 시야로 세상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내가 가장 먼저 가르쳐야 할 것은 마법이 아니었다.

"그래, 그럼 우선 세상을 멀쩡하게 볼 수 있는 방법부터 배우자꾸나."

꼬맹이는 약간 불만스러운 듯 입술을 삐죽였다.

하지만, 아까 내가 한 노심 만들기부터 시작할 수는 없잖니 얘야.

* * *

약간의 텀을 두고 경험치가 쏟아져들어 온다.

나야 익숙한 일이지만 한 번에 너무 대량의 경험치가 들어오면 실신하는 유배자도 있다.

칼로리를 찾아 고칼로리 음식에서 맛있음을 느끼게 진화한 혓바닥처럼 미궁의 시스템은 유배자들이 경험치의 획득에 쾌감을 느끼도록 만들어졌다.

그 짜릿한 감각이 지나가고 어둠의 정령왕이 두 번 다시 부활할 일 없을 정도로 깨끗하게 정리되었음을 알았다.

레벨 업은 기대 이상이었다. 정령왕은 보통 2~3천 레벨 정도니까 그럴 만은 하다.

꼬맹이를 데리고 놀고 있자니 제자가 돌아왔다.

리치는 우선 나에게 공손하게 인사했다.

그리고 리치답게 이빨을 살며시 딱딱거리며 미소 지었다.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으신 스승님이시군요. 각기 다른 시간대의 스승님을 뵐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신비한 일입니다.]

내가 어찌나 잘 가르쳤는지 샤크마 못지않아 보인다.

[언니에게 더 잘해주셨으면 합니다. 아마 과거에 제가 뵌 스승님은 이미 제게 이 이야기를 들었겠지만요.]

미래와 과거는 그런 것이다.

이런 식의 사승 관계는 참 신기한 일이긴 하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기에 더더욱 말이다.

리치는 크게 더 할 말은 없는 것 같았다.

마땅히 스승이 나타났고 위기에 처했다면 뵈러 가는 것이 제자 된 도리이며, 실제로 과거에 봤던 내가 그리 부탁도 하였다는 모양이다.

"물론 그렇게 할 거야."

리치가 떠나기 전에 생각이 났다. 나는 그 고블린 쌍둥이에게 이름을 지어준 적이 없었다.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땐 아직 연방이라는 거대한 불꽃이 될지 알 수 없었던 작은 불씨에 불과했다.

"이름이 뭐야?"

돌아서던 리치는 멈칫하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더니 이를 딱딱거리며 웃었다.

[아르카나입니다. 언니는 아르주나입니다. 꼭 잊지 말고 붙여주십시오. 저는 이 이름을 꽤나 좋아하거든요.]

왜 타로 덱과 인도의 신 이름이 나란히 붙어 있는 거야?

어감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그냥 가져다 붙였나? 나다운 이유긴 하군.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야. 하지만 그 이름을 내가 정한 건지 너희들이 정한 건지 잘 모르겠군."

[세상의 신비 아니겠습니까.]

미궁 바깥이라면 그게 뭔 놈의 세상의 신비야 라고 말하겠지만 이곳에서 살아가는 NPC들에게는 미궁이 곧 세상이다.

다 유배자가 잘못 한 것 같군.

아르카나는 그렇게 물러갔다.

* * *

현재 막내는 계속해서 기절해 있었기에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사냥꾼이 붙잡고 설명했다.

그동안 미래 막내는 나에게 꾸벅 인사하더니 떠나갔다.

이제 슬슬 가까운 미래인지라 크게 나에게 하고 싶은 말도 없는 듯하다.

다음 층.

15층만 넘긴다면 저 시간의 신전을 사용하는 시간대니까 가깝다면 아주 가깝다.

다만 석 달의 유예가 있었다고 했는데 그게 언제인지 모르겠군.

여기서 계단을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석 달이나 걸릴 일 같지는 않다.

실제로 그랬다.

아무 활약이 없었던 소녀가 심통이 났다.

"저 저저저 마법 배울 거예요! 열심히 배울 거예요!"

"우주전 하고 싶어?"

"공중전도 더 멀쩡하게 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글쎄, 미궁엔 별의별 환경이 다 있어서 일반적이지 않은 자연환경도 널려 있다.

화중전(火中戰)이라고 하면 뭐가 떠오를까?

10층에서 비슷한 걸 하긴 했군.

두 명이 마법에 대한 의욕을 불태우기 시작했으니 우리 파티의 미래가 창창하군.

검에 마법을 깃들게 하는 정도는 능숙하면 능숙할수록 좋다.

우리 여신님도 창에다 대고 보조마법 정도는 거실 텐데.

「그걸 못 하면 도전자를 어떻게 했겠나. 그나저나 마법의 신이 미쳐 날뛰고 있군.」

‘그 양반은 왜 그런답니까?’

「제발 이 파티의 한 명만 신도로 삼아달라더군. 이전에 그 짓을 했을 때, 그 동네 마법의 신은 안 그러던?」

‘아 그땐 마법의 신 자리가 공석이었습니다.’

「저런. 왕국의 역사가 좀 짧은 회차였나 보군.」

‘여기가 너무 긴 것 아닐까요?’

「그건 맞지.」

그렇긴 했다. 그 회차는 왕국도 아직 개척이 덜 된 상태였고 신들도 약한 편이었다.

보통 오래된 왕국이 존재하는 회차에서는 신 후보자들이 널려 있기에 공석인 경우가 잘 없다.

마법의 신 같이 메이저한 신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회차의 신들은 아주 강력해서 마음에 든다.

왕국에 존재하는 유배자 풀도 아주 깊고 넓다는 뜻이다.

이번 회차는 왕국조차 하드 모드다.

실제로 왕국에 가 있는 천사를 통하거나 자연의 신이 슬쩍슬쩍 전해주는 정보로 판단하기에도 그렇다.

공고한 길드 카르텔들 사이에서 미쳐 날뛰는 난이도의 신규 서버가 엄청나게 관심받고 있다는 모양.

솔로 클리어를 포기한 시점에서 주변 인재풀도 아주 중요해진다.

내 파티는 가능한 재능만을 보고 엄선하겠지만 그 이상의 협력 인원도 분명히 필요하다. 한 파티만으로는 못 하는 일도 있다.

괜히 길드를 굴렸던 저번 회차가 가장 클리어에 근접했겠는가.

물량이 짱이야.

이 만고불변의 진리를 너무 늦게 깨달았을지도.

하지만 독고다이해서 익힌 것도 많으니 결과만 좋으면 땡인 걸로 해두자.

이후, 3일 정도 휴식하기로 했다. 마법사들의 회복을 위해서다.

그 와중 꼬마 마법사가 슬쩍 내게 알려주었다.

"드래곤?"

"네……."

그렇겠지 용혈이지. 그게 아니면 그런 도핑 효과를 낼 수는 없지.

대충 알겠군. 다음 층은 아마도 대회전이다.

제국의 멸망을 보게 되는 층이 아닐까?

이 추세대로 드래곤이 나타나려면 그것밖에 없다.

실피드와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다.

연방과도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고.

휴식은 파티원들이 하는 거지 내가 하는 게 아니군그래.

조각난 정령왕의 파편도 잔뜩 챙겨놓자. 아주 귀한 거 맞다.

이 오래된 배의 무덤에서 찾을 수 있는 건 다 찾아봐야겠다.

어둠의 정령왕이 딱히 보물을 꿍쳐놓을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원래 오랫동안 손길이 닿지 않은 난파선이 잔뜩 있다면 뭐가 있어도 있다.

특히, 과학적인 것이 아닌 마법적인 물건이라면 옛것이 좋은 것이란 말은 있는 그대로의 물리적 사실이다.

우주 개척 시기 초기의 함선도 어딘가에 있겠지?

물론 그 이전에 여신님의 주관으로 [심연]의 저편으로 사라져 다시 현실 우주로 돌아오지 못한 장병들에 대한 추모 의식을 했다.

전설 속의 대신관이 직접 주관하는 추모식에 참여한 고블린들은 자랑스럽지만 동시에 슬퍼 보이는 표정이었다.

제국과의 전선은 괜찮냐고 하니 동맹이 알아서 하지 않겠냐는 대답이 돌아오더라.

미친놈들.

다음 층으로 넘어가기 전에 휴식을 결정하자, 고블라초프 서기장이 서둘러 찾아온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바로 다음 날 대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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