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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159화 (159/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159화

15층 - Lv. 1567 미래 황제(3)

당연히 사냥꾼이 화려한 건카타를 구사할 수는 없다.

그가 배운 것은 그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면 되는가에 대한 최소한의 지침이다.

황제가 민첩 전사 계열이거나 아예 암살자였다면 성립하지 않았을 싸움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오크였고 민첩 전사일 확률은 없다.

황제가 돌진한다.

소녀의 눈에는 충분히 느렸던 움직임이 사냥꾼의 눈에는 번개가 번뜩이는 속도로 보였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일직선이다.

그리고 오크가 총알보다 빠를 수는 없다.

푸른 냉기가 날아든다.

전기톱이 탄환을 쳐내려고 했으나 이미 지친 상태다.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실패했다.

푸른 폭발이 일었다.

황제는 몸이, 발이, 팔이.

얼어붙었다.

꼬맹이의 [파이어 볼]이 날아든다.

그리고 연발하는 총탄이 작고 빠른 화염을 사정없이 내뿜는다.

총탄은 정확하게 얼굴만을 노렸다.

평범한 실탄 무기라 생각했지만 탄 하나하나에 불의 원소가 깃들어 있다.

작지만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의 폭발이 한 발 한 발에 내재되어 있다.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타들어 가는 팔에 미간을 잔뜩 찌푸린다.

황제는 판단해야 했다.

의외로 대미지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력 공격은 저 마법사 꼬맹이다. 총격에 당장 죽을 일은 없지만, [파이어 볼] 같은 것이 바로 옆으로 떨어지면 위험하다.

여벌 목숨도 없다.

하물며 저 작은 뱀파이어는 제국의 역사에 새겨진 재앙의 마녀.

지금 반드시 죽여야 할 대상 중 하나였다.

그러나 조금 전의 소녀만큼 강한 녀석들이 아니다.

가장 앞에 서 있는 중년의 인간 사내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별다른 스킬도, 별다른 능력도 없는 놈이다.

단지 들고 있는 무기가 제법 고급품일 뿐.

그럼 저 사수부터 빨리 처리하는 것이 좋다. 어쭙잖은 거리 재기를 걸어오다니 가소롭다.

포션은 빼앗아도 쓸 수 있다. 저 허리춤의 병이 탐난다.

지참하고 있던 힐링 포션 팩은 다 떨어졌으나 당장 큰 부상은 없다. 체력적으로도 아직 최소한의 여유는 있다.

저 사수를 잡고 그 포션을 쓸 수만 있다면 승산이 높다.

발을 크게 구른다. 주변의 잔해들이 살짝 떠올랐다.

몇 개는 차서 날리고 다른 몇은 전기톱의 날로 때렸다.

몸이 크게 회전한다.

우악스러운 근력과 무기의 동력에 잔해들이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튀었다.

온 사방으로 튀는 쇳조각들은 이제 열기가 아닌 소녀와 황제의 피로 붉게 물들어 있다.

사냥꾼은 무릎을 꿇고 오른팔을 들어 시야를 지키는 선에서만 방어했다.

파편이 팔에 박히고 몸을 밀려나게 했지만 결코 눈을 감지 않는다.

그랬기에 다시 한번 황제의 돌격을 포착했다.

냉기가 불을 뿜었다.

황제는 다시 멈칫해야 했다. 발이 순간 얼어붙어 기동력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일단은 회피.

지근 거리까지 날아든 파이어 볼이 폭발했다.

황제는 얼어붙은 몸을 전력으로 굴려 피해내었다.

[익스플로전]과 달리 [파이어 볼]은 큰 폭발을 일으키는 마법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 조각난 우주정들의 연료가 피에 뒤섞여 사방에 흐르고 있다.

불길이 일었다.

사냥꾼은 잠깐 망설인 끝에 불길 속으로 전진했다.

전진하면서도 자동 권총은 눈을 노린다.

최대한 시야를 가리고 급소를 방어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황제가 다시 움직이는 순간 냉기 서린 탄환이 날았다.

차가운 폭발과 함께 황제가 또 멈칫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불길이 타오르는 바람에 얼음 폭발의 위력이 조금이나마 상쇄되었다.

황제가 달려들었다. 얼어붙은 발을 억지로 뜯었다. 피부가 찢어져 피가 튄다.

전기톱이 굉음을 내며 사냥꾼의 눈앞까지 다가왔다.

신체 능력 차이가 있으니 달려서 도망치긴 힘들다.

사냥꾼은 침착하게 무릎을 꿇고 몸을 낮추어 사격 자세를 잡았다. 지금 빗나가면 죽는다.

그때, 재생되었지만 그럼에도 눈에 확 들어오는 상처가 보였다.

사냥꾼은 그대로 냉기를 하반신으로 쏘았다.

이번엔 황제가 필요 이상으로 펄쩍 물러났다.

"이런 제길, 유배자들은 다 거길 노리는 취미라도 있나?"

말없이 응사.

오른쪽의 탄이 바닥난다.

저지력이 사라진다.

황제도 그 사실을 눈치챘다.

상대의 전법은 단순.

결정적인 순간엔 냉기로 발을 묶고 그 이외의 상황에선 화염탄으로 접근을 불허.

최대한 거리 유지를 하며 마법사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형태다.

본래라면 맞으며 돌격해도 좋을 것을.

소녀와 뜻밖의 혈전을 벌이며 대부분의 방어구는 의미를 상실한 상태였다.

실혈도 컸기에 몸이 완전히 제 말을 듣지 않는다. 그다지 정상은 아님을 느낀다.

지금이 기회다.

장전할 시간을 주지 않아야 한다.

전기톱을 교차하고 달려나간다.

리볼버, 여섯 발을 쏠 수 있는 실린더.

지금까지 몇 발을 쐈지?

네 발이다.

두 발이 남았다.

다음 사격은 빗나갔다.

황제가 그리되도록 움직였다.

화염은 모두의 시야를 가린다.

사냥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그의 레벨업 포인트는 대부분은 이동 수단에 투자되었다.

[신속] 스택은 말할 것도 없으며 몇 가지 획득한 스킬도 거리 벌리기에만 특화되어 있다.

순간이나마 레벨이 아득히 높은 전사가 따라잡지 못할 속도로 물러난다.

황제는 한쪽 전기톱을 집어 던졌다.

이 녀석들을 상대로 하나씩 들 필요는 없을 것 같았기에.

실제로 그것은 의표를 찌른 행동이었다.

사냥꾼이 눈을 질끈 감았다.

막내가 달려들지 않았다면 실제로 위험했을 것이다.

괴력이 전기톱을 쳐낸다.

실린 힘이 막내조차 순간 주춤할 정도였다.

피해는 말할 것도 없다.

방패를 잃고 마스터리도 잃은 그저 힘센 남자는 맨손으로 톱을 막았고 그대로 팔을 잃었다.

사냥꾼은 그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얼굴을 보지 않았다.

그도 민첩은 높다.

정밀한 동작에 관여하는 스탯은 머릿속이 어떻게 당황하고 있건 떨림 없이 재장전을 마치게 해준다.

그리고 고개를 드는 순간 황제가 눈앞에 있었다.

뒤로 구르며 사격.

맞았다.

황제는 멧돼지처럼 돌진한다.

드르륵하며 다시 총구가 불을 뿜고.

전기톱은 개의치 않고 전진.

으아아아악 죽나. 역시 하지 말걸 그랬나.

비명이 머릿속에서만 울리고 박쥐가 날아들었다.

쾅 하고 폭발.

사냥꾼은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었다.

* * *

꼬맹이는 [파이어 볼]을 날린 후, 병을 들고 달렸다. 꼬마 마법사의 것을 빌려왔으며, 사냥꾼의 지시대로 소녀부터 구하기 위해서다.

소녀의 상처는 심각했고 생명이 위태로워 보일 정도였다.

살려낸다고 당장 전투에 다시 참여할 수 있을까? 모른다. 그래도 살려야 한다.

상처는 나아가지만 신음만 흘린다.

눈을 간신히 뜨는 듯했으나 비틀거린다.

뱀파이어의 근력은 인간보다 강하기에 들쳐 맬 수 있었다.

발이 땅에 질질 끌리거나 말거나 달렸다.

불길로 사방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몸이 조금 타들어 가는 기분이 들었다.

기분 탓이 아니었다.

머리카락에 불이 붙었다.

마력을 가해 끈다.

밀폐된 공간의 온도가 점점 올라간다. 낑낑대며 화마 속을 뚫고 들어왔던 복도로 나가려 했다.

불길 사이로 날아가는 전기톱이 보였다.

그리고 달려드는 막내도.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몸에서 박쥐를 하나 분리한다. 그 안에 마력을 가득 담았다.

구현할 마법은 [익스플로전].

해본 적은 없다.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하려면 이거다. 직접 조준하기엔 정밀할 자신이 없다. [익스플로전]은 사정거리가 짧다.

박쥐가 그냥 나는 걸로도 부족하다 몇 가지 마법을 더해 마법 걸린 박쥐를 추진하다시피 집어 던졌다.

빠르게 날아간 박쥐는 날개를 펴고 위치를 잡는다.

황제가 사냥꾼을 베어버리기 직전에 폭발했다.

사냥꾼이 힘없이 날아간다. 큰 부상을 입은 막내도 마찬가지다.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하게 죽는 것보다는 낫다.

황제는 폭압에 날아갔고 화상을 잔뜩 입었으나 치명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강인한 전사는 그대로 땅을 박차고 다시 일어섰다.

꼬맹이는 주변의 불길을 움직여 벽을 쳤다.

하지만 소용없음을 안다. 파이어 월 정도는 저런 전사를 막을 수 없다.

"죽어라!"

전기톱 소리가 울렸다.

소녀가 눈을 떴다.

* * *

사냥꾼도 눈을 떴다. 의식은 아주 잠깐 날아갔다.

머금고 있던 포션은 어느새 삼켰다.

그 덕에 간신히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날아간 위치가 좋지 않았다. 하반신은 움직이지 않는다. 불타는 고철이 널려 있는 환경이었다.

다리가 이미 타오르고 있다. 저 고통 덕에 깨어난 걸지도.

일단 병을 들었다.

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바닥에 던져 깨트렸다.

이 와중에도 희미하게 그 생각이 든다.

내 유배자로서 마지막 병이다.

이제 이것은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

충격의 와중에도 양손의 총기는 놓지 않았다.

열기가 뜨겁다. 살갗이 지금도 타는 것 같다.

사방이 연기와 유독한 가스로 뒤덮여간다.

숨도 쉬기 어렵지만 움직여야 했다.

앞으로 앞으로.

불길이 휘몰아치며 황제를 덮치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하지만 저건 원소 대미지를 가할지언정 저지력은 없다.

불은 원래 물리적인 충격을 줄 수단이 한정된 계통이다.

그래서 소녀가 비틀거리며 막아서고 있었다. 빨갛게 달아오른 쇳덩이 중 그나마 날카로운 것을 휘두른다.

어느 쪽이나 한계로 보였다.

사냥꾼은 달렸다. 스킬 쿨다운이 돌아온 것은 없다.

이동 수단도 없다.

정신이 흐릿하다.

가족이 보고 싶었다.

문득 불타는 눈앞의 장면에 무언가가 겹쳐졌다.

두 딸.

큰딸은 꼭 소녀 같은 나이였다.

요정은 사춘기도 없는지 좋다고 달라 붙어오는 귀여운 아이.

둘째 딸이 꼭 꼬맹이 정도 나이다.

칭얼거리다가도 안아주면 곧잘 방긋방긋 웃는 나이.

적어도 눈앞에서 어떻게 되는 걸 볼 수는 없었다.

아무 이유도 없다.

아무 생각도 없다.

그대로 달려가서 황제를 들이받았다.

당연히 꿈쩍도 하지 않는다.

도리어 당황한 것은 소녀다.

황제가 그 틈을 노려 공격한다. 소녀가 밀려났다. 무기라고 부를 수도 없던 쇳덩이가 찢기며 피를 튀긴다.

꼬맹이가 어쩔 줄 몰라 한다.

황제는 이미 사냥꾼을 안중에도 두고 있지 않았다.

먼저 처리해야 할 대상이 눈앞에 있으니까.

사냥꾼은 바보처럼 흐흐하고 웃었다.

오크의 허리를 안고 밀어 넣으려고 했으나 되지 않는다.

비로소 자신에게 총이 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들어 올린다.

쏜다.

화상을 입어 흉측해진 오크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진다.

한쪽 눈가에 맞았다.

외눈의 황제가 귀찮다는 듯이 사냥꾼을 내려다보았다.

다시 사격.

또 사격.

황제가 거칠게 사냥꾼을 떨쳐낸다. 힘없이 날아간다.

몸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완전히 회복이 되지 않았나.

혼미해지는 정신 속에서 다시 소녀를 향해 내리쳐지는 톱.

이동기 중에 가장 쿨다운이 짧은 것이 그때 막 돌았다.

마지막 힘을 다해 앞으로 내디뎠다. 스킬이 발동되며 속도가 증폭된다.

톱 앞에 몸을 던지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생각할 정신이 없다.

누군가 탄식하는 소리.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

쿵 하는 소리.

예리하고 섬뜩한 소리.

붉게 물드는 시야.

암전.

인생의 커튼처럼 닫히는 어둠.

그 직전에 가족의 웃는 모습.

추억 한 켠에 빛바랜 사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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