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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162화 (162/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162화

????층 - 심연(2)

3일 차.

첫날이 최소한의 생존을 확보하는 시간이었고 둘째 날이 정보를 확보하고 지낼 곳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셋째 날인 지금, 당면 목표는 무기 확보.

무기라고 할 만한 것이 남은 게 별로 없기에 그래야 했다.

상당수의 총기가 망실되거나 파손되었다.

200여 명의 병사들 대다수가 무기가 없다.

그러니 찾아야 한다. 고블린들은 각자 조명을 하나씩 들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혐오체들이 깨어날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 녀석들의 반응성은 얼마나 오래 동면을 했는가에 달렸다.

이번 회차에선 [심연]의 네 자릿수 층으로 진입하는 파티가 아주 드문 모양이었다.

대강 느낌이 온다. 도전자라고는 씨가 말라버린 왕국이겠군. 오래 묵은 왕국은 그렇게 되기도 한다.

더 이상 무언가를 외부에서 찾지 않고 내수로만 돌려도 문제가 없을 정도의 사회가 구축된다면 그렇다.

그때부터 미궁 탐사는 더 이상 생존의 수단이 아닌 수익의 수단이 된다.

그 정도 인프라가 존재한다면, 이번 회차의 왕국은 의외로 낙원에 가까운 왕국이 맞는 모양이다.

그 나름의 문제는 산적해 있겠지만.

층의 외곽에 떨어진지라 급조한 주둔지 주변에는 혐오체의 숫자가 썩 많지 않았다.

하지만 장비다운 장비를 구하려면 깊숙이 들어갈 필요가 있다.

고블린들은 생전 처음 보는 괴이한 괴물들에게도 겁먹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여신님의 가호가 함께한다.

거기에 막내의 괴력이 빛을 발했다. 그는 특히나 이런 일에 앞장설 수 있는 인재였다.

장비가 모두 먹통이 된 상황에서 올 힘 탱커 특유의 괴력은 그야말로 인간 중장비다.

고블린들이 열렬한 흠모의 시선을 보내었다.

막내의 경건한 신앙은 고블린들에게도 깊은 감명을 주었다.

물론 내 파티의 일원이라는 점 또한 영향을 주었겠지만 그럼에도 막내의 신앙은 고블린들과 훌륭한 공감대를 조성한다.

아르카나조차도 쓰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우리 종족의 오랜 염원은 육체적 강인함이었지요. 그린 스킨이 아님에도 저리 거대한 체격, 강인한 육체, 무시무시한 괴력, 그리고 한없이 신실한 신앙. 저런 인간을 싫어할 수 있는 고블린은 거의 없을 겁니다.]

대다수의 병사들에게는 막내가 아주 눈부신 여신의 성기사로 보이는 모양이다.

솔직히 나는 이해하기 힘든 감성이다. 어쨌든 막내는 대단한 인기를 누렸고 성공적으로 수색작업을 지휘했다.

종족적인 마초 선호 사상이라. 정말로 어렵군.

사실 지금까지도 막내는 꽤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급박한 상황이었으며 우리가 후다닥 지나가는 상황이라 체감이 덜했을 뿐.

전체적으로 심연에서 흔히 일어나는 사기저하와 심리적 문제로 인한 집단 붕괴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곳의 환경은 분명 가혹하지만 고블린들은 그것마저 포용하며 받아들이는 듯했다. 여긴 어찌 되었건 꿈에 그리던 여신의 영역이니까.

그리 오래 수색하지 않았음에도 인간 중장비 막내가 잔해들을 마구 파내며, 발굴을 진척시켰다.

"이건 아무래도 저희 물건이 아닌 듯합니다. 아 그러니까 저희 우주 말이지요."

심연은 미궁의 쓰레기통이다. 서든 데스로 무너져 내리거나, 혹은 그 쓸모가 다한 홀수 층 아공간의 파편들이 쏟아져 내린다.

이곳에 있는 물건들은 대부분 어느 유배자나 NPC의 유품일 것이다.

실패한 유배자들의 유품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이런 깊은 곳으로 도달한다.

그리고 이리 깊숙이 가라앉았다면 허투루 볼 수 있는 장비는 없다.

가치가 높은 물건일수록 더 심연의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탐사자의 전리품이 되는 법이니까.

소녀는 새로운 무기를 찾았다.

"내구도가 좀 아슬아슬해 보이긴 하지만 아다만타이드 대거로군."

"오오…… 저 이거 들고만 있는데도 공격력이 느껴져요. 전 이제 무적이에요."

막내도 새로운 방패를 찾았다. 정확하게는 그것은 방패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문짝이었다.

"그립군요."

"어, 그게 그립다고?"

"들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사용하기 좋게 만들어둔 방패보다 그저 무식하게 튼튼한 문짝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도대체 어느 세계에서 만들어낸 문짝인지 모르겠다. 미스릴 문짝이라니. 형태로 보아서는 감옥인데…… 감도 잡히지 않는군.

미스릴을 세공할 만한 설비는 없었으므로 임시로 손잡이만 달아주었다. 막내는 만족스러워했다.

고블린들은 그 문짝을 무슨 성물마냥 신성시하기 시작했다.

기도를 왜 저기다 대고 하는 거지? 나한테 대고 기도를 하는 인원이 줄어서 좋긴 한데.

소녀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온다.

"고블린들이 저보고 천사님이라고 하는데 대체 왜죠?"

"음, 그건 말이지."

15층의 카드는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미치겠군.

* * *

4일 차.

혐오체들은 아직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체 얼마나 여기서 동면하고 있었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다.

심연 깊은 층은 나름대로 파밍이 짭짤한데 그럼에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니.

왕국에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의아할 정도다.

왕국에 있는 여신님의 유일한 신도인 천사는 정보수집 같은걸 시키기 보다는 대체로 자유롭게 내버려 두었다.

아마 달리 시킨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을 것이다.

애초에 어마어마한 주목을 몰고 다니는 중일 테니 어쩔 수 없기도 하고.

의문은 있다. 하지만 형편에는 좋았다. 혐오체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기 전까지 완전히 요새를 만들 수 있을 듯했다.

잔존 병력 중에서는 공병도 있었다. 학자라 부를 정도는 아니겠으나 현장에서 무언가 급조하는 것엔 도가 튼 이들이다.

그리고 여기서 또 막내 역시 능력을 뽐내었다.

"제가 속했던 갱단은 썩 부유하지는 않아서 쓰레기장에서 뭘 주워다 무기를 만드는 일도 비일비재했습니다."

이제 슬슬 슬럼가의 신부님? 그런 느낌마저 들기 시작한다.

누구보다 흉악하게 생긴 대머리가 저리 자애로운 미소를 띨 수 있다니.

그리하여 급조로 포대와 벽이 만들어졌다.

"어쩌면 저는 처음부터 이곳에서 혼돈의 신도가 될 운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막내는 자신이 살았던 세계의 기술과 고블린들의 기술이 거의 차이가 없다며 웃었다.

그 말은 아무래도…… 막내가 미궁의 ‘바깥’에서 온 게 아니라는 증거가 되어버리겠지만 그는 만족하는 모양이다.

어차피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르카나와 의논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은 본 드래곤을 되찾아야 한다. 그래야 수비가 된다.

하지만 살아 움직이는 어둠은 수색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불빛이 닿는 범위 내에서만 무언가를 인지할 수 있다.

[필요하다면 이 어둠을 잠깐 물리는 마법을 만들어보겠습니다.]

"그런 건 나도 할 수 있어. 하지만 효율이 너무 나쁘단 말이지. 조명탄마냥 펑펑 터뜨리며 다닐 수도 없고."

찾아야 할 것이 많다. 너무 많다. 파밍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문제다.

여기서 버티며 장비를 주워 모으고 개조하여 저층으로 기어 올라가야 한다.

어떻게 세 자릿수 층까지만 올라간다면 여신님과 다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탈출은 어렵지 않다.

아마 여신님도 목이 빠져라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 * *

소녀는 조금 조바심을 느끼고 있었다.

최근 겪은 일들은 하루하루가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익숙해졌다거나, 대충 알 것 같아졌다고 생각하면 다시 새로운 일이 일어났다.

그것을 사냥꾼과 꼬마 마법사는 체념으로 받아들였다. 이 둘의 목표는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영감님은 호기심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이상하고 알 수 없는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상황 그 자체를 즐거워했다.

막내에게는 그저 신앙생활일 뿐이었다. 저지른 죄업을 치르는 중이라 여기니 흔들릴 이유도 필요도 없다는 태도.

그나마 늘 불안해하는 꼬맹이는 소녀와 공감해 주는 대상이었다.

얼마 전까지는 말이다.

요즘 꼬맹이의 관심사는 마법뿐이었다. 하루 종일 영감님과 붙어 있다.

소녀도 같이 마법 공부를 하기는 하지만 전사이자 암살자로서의 마법 소양을 기르는 소녀와는 방향성부터가 다르다.

그리고 솔직히 이론 마법의 영역을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 와중 소녀는 자신이 고립되었고 느끼기 시작했다.

연속되는 괴이한 상황에서 혼란과 공포를 느끼는 것은 그녀뿐이다.

이유는 알고 있다. 이 중에서 아저씨의 등을 목표로서 따라가고 있는 이가 소녀뿐이다.

다른 이들은 뒤따라갈 뿐 옆에 서려고 하지는 않는다.

잡은 목표가 지나치게 높으니 현실적인 한계가 벽이 되어 세워진다.

직전 층의 추태도 있고 하여 소녀는 바닥 근방까지 내려간 자존감을 느꼈다.

어쩔 수 없다. 13층은 그냥 구경꾼이었다.

14층은 해내야 할 때 해내지 못하고 불상사를 만들 뻔했다.

모두 그녀가 바라는 일은 아니었다.

미궁의 전투 방식과 시스템에 점점 익숙해지며 어느 정도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저씨가 있는 위치는 여전히 아득하다.

물론 시무룩하게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다.

아저씨가 점점 더 굉장해 보일수록 소녀는 자신의 마음이 깊어지는 것 역시 느꼈다.

잘난 남자가 취향이었던 걸까? 처음에는 그냥 첫인상으로 호감을 가졌다.

자신만만하고 잘생긴 사람.

그다음에는 끊임없는 역경과 그것을 이겨내는 모습.

솔직하게 말하여 남자였어도 반했을 거라 생각한다.

거기에 끝이 없는 강함.

명시적인 스펙이 전부가 아니라는 듯 적들을 농락한다.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마 정말 제대로 싸운다면 그것도 사실이 아닐 것이다.

소녀는 아저씨가 무언가에게 진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소녀가 보기에 느껴지는 아저씨의 모습이다.

여신님은 좀 다르게 보는 모양이었다.

「확 자빠뜨려 그냥. 저놈 저거 생각보다 숙맥이야. 거기에 제 자신이 위태로운지는 잘 모르는 멍청이지. 한 발 떨어져서 봐야만 보이는 게 있는 게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아주 완벽한 리더다. 정말 더없이 이상적인 존재.

하지만 결국은 연기라고.

저 남자 또한 사람이라고.

굳이 꼬맹이를 엮어 가족 놀이라는 명목으로 붙여준 것도 그 때문이다.

여신님은 누구에게나 정신 안정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녀 자신이 그것을 찾지 못해 죽으려 했다고 하면서.

「뭐어, 난 좀 오래 살긴 했지.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러니 보고 싶다고 말한다.

도전자로서 살아온 유배자로서의 삶은 덧없었다.

결국 끝을 보기는커녕 제대로 출발선에 서지조차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 신이 되었다.

여신님은 그렇게 말했다.

「네놈들 모두 저놈에게 의지하고만 있지 않나. 나는 현장에 없다. 입으로만 떠드는 것은 결코 진실한 위안이 될 수 없어. 사람이 사람다우려면 서로에게 의존할 필요가 있다. 너의 아저씨는 이 파티의 정신 안정제지만, 그럼 저놈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무엇이 있나?」

동시에 아저씨에게 이 회차에 남을 동기를 부여. 여신님은 미궁의 끝을 보고 싶어 한다.

그러니 아저씨가 굴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럴 조짐이 있다면 미연에 차단한다.

소녀는 웃으며 되물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여신님은 그냥 좋은 사람이네요."

「사람 좋은 짓을 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것일 뿐이지. 인간은 누구나 선할 수 있는 환경에선 선하려고 해. 난 악신의 신좌에 선택받았으니 그리 선하진 않았을 것 같군.」

거기에 추가로 말하길.

「사실 난 꼭 사랑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애착이 필요한 거지. 안 되겠다고 판단하면 훌훌 다음 회차로 넘어가 버릴지도 모를 놈이야. 난 그 꼴은 못 본다. 네가 좀 묶어주면 딱 좋지. 사랑이면 더 좋고. 그만한 족쇄가 어디 있겠나.」

"예쁜 말 좀 쓰면 안 돼요? 족쇄라니."

「말이야 어쨌건 말이지. 분명히 저놈도 관심은 있거든? 자빠뜨리면 절대 거절 못 할 놈이야.」

자연의 신 역시 그 음모에 동조했다. 극적으로 엮인 사랑 전선이다.

그렇게 가족 놀이라는 모양으로 일단 엮었다.

여신님은 그 후에도 닦달했다.

여기서 주저한 것은 오히려 소녀다.

"으으, 부끄러운데."

여신님부터 어이없어했다.

자연의 신도 기가 막혀 했다.

"아니 그렇지만요……. 저 이게 첫사랑이라……. 음, 처음에는 정신이 없었지만 계속 같이 있다 보니 뭐랄까. 일단 제가 덮치고 뭘 해야 하는 거죠? 대체 뭘 해야……."

이 발언은 그럴 수도 있다며 신들에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여전히 앞에 했던 행동들 때문에 지탄받았다.

그리고 잘 모른다는 발언은 신들의 한숨으로 돌아왔다.

일단 아무도 믿지 않는 듯했다.

"으아아! 저 사실 연애는 소설이랑 만화로밖에 모르거든요! 그러니까 일단 졸업은 하고 나서요. 아저씨 방패막이도 그거니까."

「음……. 너도 모쏠?」

"여신님 같으면 괴물 때려잡는다고 학교도 잘 안 나오는 애한테 접근하겠어요?"

그 시무룩함에 진정성을 느낀 신들은 마음의 준비를 좀 더 하는 것을 윤허하였다.

막상 하려고 하니 바짝 잡히는 마음의 브레이크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마침내.

원래라면 졸업장을 받았을 날이 되었다.

여긴 끊임없이 보고 있는 신들도 없다.

더 실행하기 좋은 환경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막상 시도하려 하니 자신이 생기지 않았기에, 소녀는 현재 함께 있는 가장 가까운 또래에게 상담해 보기로 했다.

"……언니?"

꼬마 마법사가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인가 하는 눈으로 소녀를 보았다.

소녀는 자진 납세했다.

"사실 제가 더 어립니다. 용서해 주세요."

꼬마 마법사가 피식 웃는다.

"그럼 지금부터는 잠깐만 내가 언니 할게?"

"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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