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에 갇힌 고인물-165화 (165/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165화

????층 - 심연(5)

16일 차.

[심연]의 성질은 때로는 이득이 되어 돌아온다.

이곳이 마법사의 무덤이라 불리는 이유는 단지 마력의 회복이 불가능해서만은 아니다.

샤크마와 그 부하 요정들이 겪었듯이 심연의 살아 있는 어둠은 많은 것을 차단한다.

그것은 시야나 감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이상의 여러 가지기도 하다.

이곳의 조명은 정상적인 환경보다 먼 곳까지 뻗어가지 못한다.

그러면서 어둠의 장막은 남아 있다.

마력 그 자체의 흐름을 차단하는 심연의 어둠은 달리 말하면 에너지의 흐름을 차단한다.

열기는 아주 강렬했으나, 행성의 조각을 포장하고 있는 두꺼운 어둠을 완전히 뚫어내지 못했다.

그리하여 불타오르는 이 계층의 환경에서도 중심과 멀리 떨어진 곳은 조금 더울 뿐 충분히 살만했다.

원래 이곳에 있었을 혐오체들은 어리석게도 저 불길을 향해 돌진했던 모양이다.

어둠의 장막 속은 놀랍도록 깨끗했다.

아르카나는 지금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쓸 수 있겠군요. 차라리 다행입니다.]

"맞아, 좀 당황하긴 했지만 저건 활용도가 높아."

높은 에너지는 곧 막대한 마력이라는 의미도 된다. 그것은 애초에 같은 것이기에.

* * *

18일 차.

꽤 괜찮은 결과가 나왔다.

몇몇 공병의 임기응변과 마법사들의 마법적 지식이 동원되자 태양열판과도 비슷한 마력공급처가 생겼다.

배터리도 마법사들도 회복을 도모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살아 있는 자가 이런 식으로 마력을 회복하는 것은 아주 위험부담이 큰일이기에 언데드인 셋만이 사용한다.

마법을 자유롭게 구사해도 문제가 없어진 것만으로도 많은 문제가 해결되었다.

열기를 차단하고 있는 어둠이 걷히지 않는 선에 심연을 온통 밝게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식량이 슬슬 바닥을 보이고 있다.

연방의 전투식량은 몹시도 고열량으로 제조되지만 표류한 지 3주가 다 되어가는 마당에는 한계가 온다.

인원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리고 심연에서 식량을 구할 방도는 없다.

* * *

20일 차.

대령이 제안해 왔다.

"병사들이 굶주립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한번 죽고 언데드로 되살아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제정신인가 약간 의심을 가졌다. 하지만 대령의 호흡, 시선, 맥박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이 지휘관은 아주 합리적인 사고 끝에 도출한 결론을 내게 전달하고 있다.

어이가 없어 옆을 보자 아르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전투 손실을 대비하여 언데드가 되는 것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닙니다. 유능한 사령술사는 적고 제국의 병력은 많으니까요. 마침 여기엔 저와 스승님이 계시는군요.]

뱀파이어의 존재 덕분일까. 언데드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못해 친근한 수준이다.

나는 차마 거절할 수 없었고 고블린들은 남은 최후의 식량을 파티원들에게 모아주고 자결했다.

그리고 다시 해골이 되어 일어났다.

사냥꾼이 헛웃음을 지었다.

[이런 말하기는 그렇지만 이제 저 고블린들이 너무 낯설게 느껴집니다. 살고자하는 의지를 저런 식으로 내버릴 수 있는 생물이라니. 믿기지 않는군요.]

광신.

지금까지는 우리 광신도였기에 미처 느끼지 못했던 위화감이 한 번에 몰려오는 듯 했다.

하지만 정작 그 말을 하는 사냥꾼은 나름대로 언데드의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

[피로가 없다는 것만 한 장점은 또 없군요. 아직도 움직이는 건 좀 어색합니다만.]

고블린들의 훈련과정에는 언데드 병사가 되는 것도 있었다. 그들은 사냥꾼보다 빠르게 스켈레톤 고블린의 몸에 적응했다.

희우가 몸을 떤다.

"이건 좀……."

꼬마 마법사도 불편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영감님 역시 표정이 아주 나빴다.

꼬맹이는 사령술의 작동 원리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막내는 그저 기도했다.

고블린들은 정말로 누구도 주저하지 않았다.

* * *

25일 차.

더 많은 마력 충전 장치를 만들었다.

언데드가 된 병사들은 열기에 훨씬 더 큰 저항력을 가졌으며 활동도 더 쉬웠다.

심지어 휴식도 필요 없었다.

대량의 마력을 휘둘러도 아무런 지장이 없을 정도가 되자 아직도 뜨거운 행성의 파편 가까이로 가볼 수 있었다.

단순히 계단을 수색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이거 그거잖아?"

반짝이는 카드가 허공에 떠있다. 빛으로 가려져 형태는 확인할 수 없다.

잠깐 생각한 결과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15층 보스전의 히든 던전은…… 행성 내부에 있었다. 아주 깊은 곳에.

이건 정말로 찾을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이게 이곳에 있음은, 그야말로 행운의 인도겠지.

어떻게 보면 예정조화이기도 하다.

희우는 천사가 되어야 하며, 그렇다면 어디선가 천사 카드가 나와야만 했다.

여기였다는 뜻이다.

희우를 불러왔다.

불타는 지옥 속에서 마력을 두르고 움직이는 희우는 싱글벙글하며 달라붙었다.

이걸 데이트 같은 걸로 생각하는 건가?

함께 보낼 시간이 썩 많지 않기는 했다.

주로 희우는 한가했으나 내가 격무에 시달렸다.

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마력 관리에 힘썼다.

더 많은 야매 배터리를 만들었고 더 많은 조명장치를 만들었다.

언데드가 된 병사들은 언뜻 생각하면 심연의 어둠에 면역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다.

어둠에 속한 존재가 되었기에 정신을 유지하려면 더욱 더 빛이 필요하다.

그 외에도 마력은 다다익선이라는 점도 있었다.

실피드를 부를 수도 있을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어려울 것 같기는 하다.

희우가 카드를 향해 손을 뻗었다. 불길 속에서 단련된 금빛의 카드에서 빛이 벗겨진다.

그 무늬는 날개가 달린…….

"잠깐만, 아니잖아?"

미래가 어긋났나?

귀가 뾰족한 요정 실루엣이 그려져 있다. 동물귀도 아니고 꽃잎도 그려져 있지 않다.

이건 그루터기 요정이다.

조금 당황했으나 마찬가지로 당황한 희우의 얼굴을 보자 정신이 돌아온다.

그렇군. 10층이다. 천사 카드가 나온 것은 10층이었다.

이런 젠장할 거기서 먹고 와야 했다.

그랬으면 수십 배는 편해졌을 텐데.

한숨 한번을 쉬고 말았다.

로그라이크건 로그라이트건 도무지 뜻대로 안 되는 것이 매력인 장르다.

이런 해프닝 조차도 익숙하다 못해 지겹다.

* * *

26일 차.

다음 층으로 이동했다. 카드는 당연하게도 사냥꾼에게 양보했다.

사냥꾼은 텅 빈 눈구멍으로 눈물을 흘릴 기세였다.

이 자그마한 카드 한 장이, 다른 의미로 그의 유배자 평생을 걸고 갈구해 왔던 물건일지도 모른다.

나는 슬쩍 속삭였다.

"끝났었지?"

[예?]

"이제 유배자 아닌 거 아니냐고."

사냥꾼은 해골이었기에 표정을 숨길 수 있었을 것이다. 턱관절이 떨렸기에.

"넘겨짚은 건데 잘 걸려드네. 아내한테는 그러지 마."

사냥꾼이 씁쓸하게 이를 딱딱거렸다.

[좋은 요정입니다. 그런 의심은 하지 않지요.]

"그게 요정의 매력이긴 해."

사냥꾼이 소중하게 카드를 품고 떠나기 전에 나는 작게 감사를 표시했다.

"알리지 않아줘서 고마워."

[부끄러워 그랬을 뿐입니다. 100년 동안 이룬 것이라곤 이런 것뿐인걸요.]

"그래. 그렇다면야 뭐."

서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것이 있다.

사냥꾼은 자신의 진정한 죽음을 담보로 희우 앞을 막아섰음을 말하지 않았다.

어찌 되었건 죽더라도 다음이 있다는 것은 마음의 마지막 보루가 된다.

아직 초회차에 불과한 희우나 막내는 사냥꾼이 그대로 죽을 수 있었음을 안다.

그러나 그것이 영원한 죽음일 수도 있었다는 것은 모른다.

이러한 사정이 알려져서 어떤 심경의 변화를 낳을지는 모르나 좋은 것은 아니리라.

작은 가시는 마음 한구석에 박혀든다.

그 존재를 잘 모를 수는 있지만 언제고 아프게 찌를 준비를 하고 있는 성가신 것이다.

자신의 헌신을 남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간직하는 것은 생각보다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남자는 그렇게 해주었다.

사냥꾼은 카드의 사용은 유예했다.

그는 심연의 환경에서는 요정으로서의 자신보다 언데드 해골인 자신이 더 쓸모 있다고 여겼다.

* * *

32일 차.

두 계층을 더 지났다.

최초의 계층에서 요새화하고 사냥했던 혐오체들은 충분히 양질의 장비를 제공했다.

그랬기에 이 군대의 사냥은 가속되는 면이 있었다.

심지어 이제는 병사들이 부상을 입지도, 피로를 느끼지도 않는다.

그러니 혐오체를 제거하는 속도도 빨라졌다.

물론 이미 깨어나 있는 혐오체들은 사방에서 몰려들었지만 마법을 동원할 수 있게 된 우리의 화력을 쉬이 뚫어내지는 못했다.

몇 번인가 아슬아슬했던 상황에서는 영감님의 묠니르나 내가 혐오체들을 유인했다.

위기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충분히 안정적이었다.

바로 저번 회차에서도 심연은 이런 식으로 공략했었다.

물량은 제법 많은 상황에서 정답이다.

중과부적이란 말이 괜히 있을까.

그리고 다음 계층으로 넘어갔을 때, 우리는 뜻밖의 생존자를 마주했다.

"아니? 대전사님?"

초췌한 모습과 너덜너덜한 장비들, 그리고 마찬가지로 피폐한 모습의 다른 일부 장병들.

나보다는 아르카나가 먼저 반응했다.

[살아 있었군!]

소드 마스터는 먼저 나에게 예를 표한 후, 마찬가지로 아르카나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기력이 쇠하였음에도 그 자세에는 흔들림이 없다.

내가 뭐라 말할 틈도 없이 조치가 결정되었다.

아르카나는 단순한 언데드보다 훨씬 공을 들였고 소드 마스터라는 격에 맞게 데스 나이트로 다시 태어났다.

사실 나는 어차피 말릴 수는 없었을 것 같다. 식량은 여전히 없다.

* * *

35일 차.

일곱 계층을 더 전진했다.

데스 나이트가 합류한 후 전진이 더욱 편해졌다.

희우와 다른 파티원들의 전장 투입을 멈추었다.

식량을 아껴야 한다. 칼로리도 아껴야 한다.

데스 나이트가 희우의 역할을 대신했다.

이 시대의 소드 마스터가 사격술이 부족할 리가 없으며 필요에 따라 혐오체들을 유인하는 것 역시 훌륭하게 해내었다.

저 소드 마스터는 여러 계층을 넘나들며 가능한 많은 고블린 병력을 구조하려고 했었다고 한다.

보아하니 여신님이 미처 신경 쓸 여력이 없었던 대부분의 병력은 아주 여러 곳으로 흩뿌려진 모양이다.

해치운 혐오체의 뱃속에서 연방 제식 장비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아주 약식으로 간단하게 내가 축복했다.

나의 행동과 그들의 신앙으로, 고블린들은 전사자가 여신님의 곁에서 행복하리라 진심으로 믿고 있다.

이런 일은 자주 겪더라도 찝찝하다.

막내를 제외한 파티원들은 고블린들과 조금 소원해졌다.

하지만 고블린들의 태도는 한결같다.

그리고 대령은 비로소 의무로부터 해방되었다.

장군들이 몇 명 추가로 합류한 덕이다.

일선에서 물러났었으나 한 때 현장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굴렀던 그들은 추억을 회상하며 지휘봉을 잡았다.

고블린들의 조직력이 더 나아졌다. 연방에는 똥별이라는 개념이, 아니, 똥사탕?

좋아, 집어치우자. 하여튼 간에 그런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다.

능력에 따라서 일하는 것은 여신께 바치는 헌신이며 결과로서 받는 것은 공산적인 평등이니 군문에 정치가 끼어들 자리가 없는 것이다.

보고 있나 마르크스? 그대의 이상은 여기서 제대로 구현된 것일지도 모른다.

신이란 개념을 상정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 * *

47일차.

이십 계층을 더 전진했다.

아끼고 아끼던 식량이 마침내 완전히 떨어졌다.

이미 파티원들은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와 꼬맹이 역시 혈액을 섭취한다는 행위를 하기 힘들 정도로 인간과 오크 멤버들이 쇠약해졌다.

희우조차도 이미 전선에 투입하지 못한지 시간이 꽤나 흘렀다.

추측건대 아직 지나야 할 계층이 많다.

희우야 카드를 얻을 것이니 언데드화하는게 문제는 없겠지만.

뱃속 깊은 곳에서 찜찜함이 올라온다. 본인은 별다른 고민 없이 승낙했다.

꼬마 마법사나 트동트도 께름칙해 보이지만 방법이 없음을 알기에 승낙했다.

막내는 여신님의 뜻이라면 따르겠다고 한다.

이 친구도 사람은 좋은데, 고블린들과 어울리더니 약간 이상한 느낌이 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군.

그때, 악마가 나타났다.

"이런 곳에 인간과 언데드들이라니 참으로 드문 일이로군."

붉은 피부에 검은 머리, 산양처럼 생긴 뿔, 콧수염을 기르고 외알 안경에 정장을 입은 신사였다.

나는 반색했다.

"우리의 신 혼돈의 이름으로 거래를 요청한다! 계약은 불허한다!"

"뭣? 대전사? 잠시만. 혼돈의 신이 살아 있었는가?"

차분하던 악마의 동공이 흔들린다.

카드로 등장하는 플레이어블 종족의 하위 분류는 보통 셋이 있다.

악마 내의 하위분류에서도 순수 마법사 종족인 데몬, 배틀 메이지류의 물리 마법 하이브리드 전문의 데빌.

그리고 눈앞의 누가 봐도 악마입네 하는 특징적인 모습의 종족이 전투보다는 유틸리티 마법 계통의 전문 종족인 이블이다.

그들은 흔히 서버와 심연 온갖 차원의 파편을 떠돌며 나타나는 방랑 상인 같은 존재로 특성적으로는 이끼 난쟁이의 상위호환이기도 하다.

요컨대 지금 우리에게 밥을 팔 수 있는 놈이 나타났다.

"제길, 그럼 어쩔 수 없지. 혼돈의 대전사를 홀대하는 것은 상도덕에 어긋나니."

악마 특유의 부조리한 계약이나 거래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정직하게 가치를 매기고 물건을 거래했다.

식량이 아주 잔뜩 생겼다.

"좋은 거래는 아니었어. 하지만 다음에 다시 볼 때는 더 좋은 일이 있겠지. 부디 죽지 마시게."

악마는 투덜거리며 떠나갔다. 정직한 상업은 수지가 맞지 않는다나 뭐라나.

오랜만에 배불리 먹은 희우는 허리 쪽 체형이 살짝 변할 정도가 되어서 잠들었다.

그 곁에는 이제 완전히 엄마로서 따르는 꼬맹이가 팔을 살짝 물어 피를 마신다.

그러면서도 마력 조작의 정밀도를 올리기 위한 연습을 하고 있다.

둘 다 참으로 귀여운 모습이긴 한데.

흠, 이제 나는 잘 모르겠다.

* * *

66일 차.

거의 육십 계층을 더 전진했다.

세 자리 수 계층이 가까워지는 티가 났다.

혐오체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대신 2층과 3층의 사이에 방문한 심연에서 보았던 촉수가 충만한 괴생명체나 끔찍한 외형의 슬라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체로 혐오체를 유인할 때에도 최대한 직시하지 않으려고 하며 움직였던 희우는 이제 그냥 전투에 참가할 수 없게 되었다.

혐오체보다 훨씬 약하지만, 숫자는 더욱 많다.

석 달. 흠. 석 달이라고 했지? 더 빨리 끝낼 수 있겠는걸?

* * *

79일 차.

끝이 다가온다고 하자 모두 훨씬 더 열심히 전진했다.

쉬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해골 고블린들은 이제 계단을 찾는데도 요령이 생겼다.

애초에 혐오체에 비하면 하잘 것 없이 약한 몬스터들만 등장하고 있기에 두려울 것도 없다.

무려 일백 계층을 더 전진한 끝에 드디어 거대한 골렘이 나타났다. 등에 신전을 쿵쿵거리며 정해진 위치를 맴도는 녀석들.

세 자리 수와 네 자리 수 층의 경계에는 반드시 심연의 신전이 등장한다.

여신님께 기도했다.

「죽은 줄 알았잖아!」

일단 버럭하고 화를 내고 있지만 묘하게 울먹이는 느낌이 있다.

「쿠훌쩍. 이 파티가 다 죽었으면 나도 다시 죽으려고 했다! 왜 더 빨리 오지 않고!」

‘아니, 왜 그 석 달 정도 뭔가 문제가 생길 거라고 알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네놈한테나 석 달이지! 심연 깊은 곳의 시간 흐름은 나도 알 수가 없단 말이다! 신이 이렇게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데! 빼애애애액!」

심연의 탈출구가 열렸다.

우주가 나타났다.

전쟁의 신이 우주에 남기곤 상흔에서 충분히 멀리 떨어진 위치였다.

부랴부랴 마중 나오는 함대들이 있었다.

나는 가장 먼저 그것을 물었다.

"전쟁은 끝났나?"

힘차게 경례를 올려붙인 함장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다만 대전사님께서 귀환하시기 전까지 승리를 선포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곳에서는 8년이 지났습니다!"

"음……? 동맹은?"

"요정왕이 쿠데타를 일으켜 복권했습니다!"

아, 그 양반 유폐되어 있었다던가.

자연의 신이 웃었다. 이 목소리도 오랜만이군.

「요정의 힘을 결집하는 게 참 쉽지 않았지.」

좋아, 요정왕은 내게 우호적이니 좋은 일이라고 하자.

일단 심연의 끈적끈적한 어둠에서 오래 지내다가 나오니 우주의 칙칙하고 공허한 어둠은 산뜻하게 느껴졌다.

파티원들은 모두 8년간 이곳에서 대기했던 우리 전용 수송선으로 들어가 드러누웠다.

몸도 마음도 충분히 힘겨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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