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에 갇힌 고인물-166화 (166/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166화

16층 - 시간의 신전(1)

요정왕의 쿠데타는 여러 신들의 개입이 있었다.

규율과 금전의 신은 자본주의라는 어느 서버를 가도 잘 먹히는 사상을 바탕으로 상당한 세력을 구축한 신이었다는 모양이다.

모난 정은 돌을 맞기 마련이다.

뒤늦게 이 서버에 다른 유배자들이 일부 합류하기 시작했던 모양으로 마법의 신과 결투의 신이 연방에 협력했다.

혼돈의 교단은 단지 서버 하나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기에 용인받았다.

요컨대 대부분의 신들은 교세가 거의 없다시피 한 혼돈의 교단에 서버 하나를 통째로 넘기는 선택을 했다.

당장의 경쟁자인 규율의 신이 파이를 크게 차지하는 꼴은 보지 못했던 모양이다.

원래 신좌에 앉는다는 것은 이런 살벌한 정치 외교적 땅따먹기를 시작한다는 뜻이긴 하다.

"그럼 제가 할 일은 없겠군요."

「그래, 신들의 시간은 왕국의 기준이니 우리는 8년간 규율을 견제해 왔지. 동맹은 여러 신들이 갈라 먹었다. 규율의 교단은 여전히 강력하지만 동맹을 홀로 좌지우지할 정도는 아니고 말이야.」

그 와중에 패망한 제국의 잔당들 역시 동맹에 흡수되었다.

그린 스킨들로서는, 특히 오우거들은 연방의 아래에 들어가는 같은 자본주의 국가의 그늘에 지내길 원했다.

「공산주의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일부 고블린들도 동맹으로 향했지. 사실 거기가 정말로 연방이지. 우리 연방은 이름만 연방이지 않나.」

여신님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너희들이 무사히 돌아와서 정말로 다행이다. 내 마지막 꿈들이여.」

"우리가 그 정돕니까?"

「다른 신들에게 너를 열심히 알리고 있긴 한데 콧방귀를 뀌는 놈들이 너무 많군.」

하기야, 신들은 본질적으로 도전자였을 수밖에 없다.

모두가 클리어를 위해 아등바등 노력하다가 결국 벽에 부딪힌 후 신좌의 선택을 받은 자들이다.

미궁의 죄수들은 어찌 되었건 탈옥을 바란다.

"왕국에서 설득해 봐야겠군요."

「가서 너희들을 구하러 왔노라고 선언하도록 하라.」

"분부 받들겠습니다."

「다른 놈들 반응이 너무 기대되는군. 후후.」

문제가 한 가지 있기는 했다.

8년? 8년이 지났다고?

왕국에 있는 천사에게 연락을 해봐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이 친구는 8년간 정말로 아무 욕심 없이 행복하고 평안한 삶을 보내고 있었다.

애초부터가 출세가 목적이 아니었으니 어느 길드에도 적을 두지 않고 신분을 숨긴 채 지낸 모양이었다.

여신님이 최대한 편의를 봐주었다고 하니 딴마음 품을 이유도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한들 백수가 따로 없더군. 이렇게 발전한 왕국은 처음이고 너무 마음에 든다며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거나 잠만 자더라. 파밍이고 뭐고 다 관심이 없더군.」

‘천사같이 수명이 긴 종족이 된다면 시간관념도 좀 달라지는 케이스가 있지요.’

「나도 저리 느긋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는데.」

천사를 미리 보내둔 것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 되었다.

왕국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 이미 8년 동안 뿌리내린 동료 있다는 건 큰 장점이다.

어차피 곧 보게 될 테니 변심하지 않았음만을 확인했다. 당장 눈앞의 일에 집중하자.

전쟁의 신이 벌여두고 간 트롤링은 아직도 모든 것을 심연으로 빨아들이는 구멍이 되어 남아 있다.

일반적인 서든데스라면 미궁의 주민들은 인식조차 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저것은 인식 가능한 재해다.

심지어 연방은 저곳을 성지로 지정한 모양이었다. 여신의 땅, 심연으로 통하는 길이라며.

천만다행으로 계단은 좀 더 멀쩡한 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게 광활한 우주 공간의 어딘가였다는 게 문제지만 8년간에 걸친 수색은 아무 맥락 없이 허공에 떠 있는 계단을 발견해 두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심연에서 우리와 함께 분투한 언데드 고블린들은 모두 영웅이 되었다.

내가 손수 그들 모두에게 명예로운 혼돈의 별을 하나하나 달아주었다.

연방 최고 훈장인 혼돈의 별은 아주 아름답게 세공된 보라색 사탕이다.

"취향 참 일관되시군요."

「군것질거리를 좀 많이 요구하다 보니 그냥 저렇게 되더군. 내 의도는 아니었다.」

그건 그렇다고 해드리자.

파티원들의 휴식은 하루로는 부족했다.

악마로부터 구입한 식량은 극한의 칼로리 가성비를 추구했기에 오트밀 따위가 전부였고 당연히 끔찍하게 맛이 없었다.

영양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모두가 피폐하다.

아직 생명체인 넷이 그야말로 반쪽이 되어 있었기에 회복에 전념했다.

잘 먹고, 잘 쉬어야 한다.

사냥꾼은 요정이 되었다. 요정 카드의 외모 보정은 과연 경이롭다.

그루터기 요정 카드는 삭막한 수염 중년을 약간 눈빛이 날카로운 미남자로 만들어주었다.

그와 동시에 마력을 느낄 수 있게 되었기에 사냥꾼 역시 마법 수업에 동참했다.

영감님은 기력이 없었기에 내가 직접 했다.

여러 사람들이 피폐했다.

특히 심연의 환경에 취약한 희우는 정신적으로 몰려 있었기에 불안 증세를 보였다.

일종의 강박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도움이 되어야 한다. 제 몫을 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론 그러지 못했으니까.

나와 희우는 아예 같은 방을 쓰며 지냈다.

침대는 둘이었으나 자꾸 파고들더라.

내가 서지 않기에 ‘완벽하게 안전한’ 것은 그렇다 치고, 진심으로 손을 잡고 자면 아이가 생기는 줄 알아서 황당했다.

아래쪽의 기능 이상은 언젠가부터 그랬다. 아마 정신적인 문제인 것 같은데 그걸 상대에게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어 다행이다.

희우는 아주 일관성이 있었다.

침대까지는 야심 차게 파고들더니 그 뒤에는 수줍음을 탄다.

조금 어정쩡하게 거리를 두기에, 뱀파이어는 생식 능력이 없다는 말을 하자 그제야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이제 와서 빨개지는 모습도 충분히 귀여웠다.

함께 잠에 들기 전까지 매일 많은 나누었다. 주로 바깥의 삶에 대한 이야기. 본래라면 하지 않을 이야기.

지금까지도 종종 들었지만 희우의 집은 아주 삭막한 분위기였던 모양이다.

일종의 애정결핍이 미궁이라는 상황과 맞아떨어져 해소할 방향을 찾은 것이 나일까?

발랄하며 쾌활한 모습도 사실 PTSD의 일환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연기한다.

그러다가 결국 스스로 그 연기를 믿어버린다.

진심을 다해 고백하는 상황에서도 마지막의 마지막에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한 것 또한 그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그 수줍은 모습이 더 본성에 가까운 것 아닐까?

이런 식으로 습관적으로 상대의 심리를 분석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희우는 행복했고, 나 역시 그랬다. 위안이란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저 대화하고 얼굴을 보며 웃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신님과 자연의 신은 밤이 되면 지켜보지 않았다.

둘 모두 몹시 흐뭇해하는 눈치라 기분 나쁘다. 나이 먹은 아저씨들 같다고 할지.

거사가 있었다고 여긴다면 큰 착각인데.

시간은 금방 흐른다.

보름이 훌쩍 흘러갔다.

"석 달 정도라는 게, 결국 이렇게 맞아떨어지는군."

그리하여 계단을 내려갔다.

여전히 시비 거는 듯한 로딩 메시지가 떠오른다.

[TIP : 많은 유배자들이 왕국에 도달함으로써 자신들의 여정이 끝났다고 여깁니다. 실제로는 훈련소를 수료한 것에 불과하지만 말입니다.]

* * *

물질이라면 물질이고 마력이라면 마력이라 할 수도 있는 기묘한 공간.

아무것도 없는 하얀 공간이 나타났다.

바닥도 있고 위아래로 무언가가 있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없다.

그곳에 마찬가지로 새하얀 문이 있었다.

왕국의 문을 처음 보는 파티원들이 감격에 몸을 떨었다.

"저는 겨우 이것을 보려고 제가 9년 동안 고생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요……."

"하하. 왕국. 하하."

각각 꼬마 마법사와 사냥꾼의 반응이었다.

물론 사냥꾼의 눈은 그것보다는 오른쪽으로 가 있었다.

찬란한 황금빛의 신전,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연상케 하는 금빛의 구조물이 그곳에 있었다.

사냥꾼은 의외로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눈물은 가족들을 위해 남겨두겠습니다."

그리 말하는 사냥꾼은 역시 허무해 보였다.

미궁의 많은 것이 그렇다.

힘든 상황에서는 그렇게도 갈구하던 것이, 막상 얻고 나면 겨우 이거였나 싶다.

사실은 당연한 것인데.

본래 당연히 누리던 것인데.

미궁에 와서 빼앗겼던 것일 뿐인데.

이제야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그런 이야기.

왕국에 처음 입장하면서 허탈함에 휩싸이는 이들은 아주 많다.

인간이 바라는 것은 대개 목적 그 자체보다는 목적을 가짐으로써 생기는 희망이니까.

그렇지만 그 시원섭섭함과는 별개로 우리에겐 해야 할 일이 있다.

"이제 시간 여행을 해볼까?"

"우리가 가지 않으면 또 다른 우리가 위험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거니까요."

일단 10층에서 천사 카드를 회수하지 못한다면 난 다음 회차로 사출 당할지도 모른다.

원인은 틀림없이 화병이다.

* * *

8층.

꼬맹이는 자신이 낙하한 지점이 익숙한 어느 땅임을 확인했으며, 시간의 신의 권능 덕에 여신님과는 연결이 끊어졌음도 깨달았다.

그녀는 완전히 혼자였다.

눈을 가리던 금빛의 광채가 사라진다. 시간의 신은 신전 중심의 구조물에 기도를 올리자 일언반구 없이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켜 주었다.

확실하게 시간을 거슬렀다.

그리고 이제 주변엔 아무도 없다.

꼬맹이는 몹시 신이 났다.

처음이었다.

언제나 짐덩이였던 자신이 임무를 받고 어딘가로 혼자 파견된다.

첫 심부름만큼이나 흥미진진하고 흥분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아빠의 부탁도 너무 좋았다.

명령도 아니었고, 신뢰도 느껴졌다. 모두 처음 겪는 일이었다.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어두운 밤을 암시로 꿰뚫어 보며 꼬맹이는 불타는 요새를 찾아 움직였다.

그리고 예정조화처럼 위기의 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래 연마한 [파이어 월]은 충분한 저지력을 발휘했고, 이후의 전투에서도 용암망치 대대를 멋지게 혼내주었다.

꼬맹이는 자신의 역할이 아주 즐거웠다.

좀 더 약하던 시절의 아빠와 엄마를 구하는 일이라니. 한 번도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

깜짝 놀라는 두 명의 모습이 너무 재밌었다.

잔뜩 신이 난 나머지 미래의 이야기를 누설할 뻔도 했다.

미래의 아빠가 말했다. 확률은 행운의 신이 담당한다. 미래의 정보를 누설하는 것은 시간의 신의 영역이다.

이 두 부분이 교차한다면 확률의 진폭은 커진다.

꼬맹이는 그 사실은 온전히 이해했으며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도 알았다.

그러니 엄마의 종족이 천사가 되어서 뱀파이어인 아빠와 손도 못 잡게 된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서는 안 된다.

그걸 안 엄마가 천사가 되는 것을 거부할지도 모른다.

꼬맹이는 아빠가 준 암시만으로 이 결론에 도달한 자신이 뿌듯했다.

엄마에게는 딸아이 된 도리로 약간의 조언을 했다.

지금부터 많이 안기고 많이 좋아하라고.

물론 이루어지는 것은 좀 더 나중이겠지만.

첫 심부름은 성공적이었다.

보조가 아닌 주력인 마법사로서의 경험은 처음이다.

자신이 주도권을 쥐는 상황도 처음이다.

엄마와 아빠를 살짝 놀려주는 것도 재밌었다.

아직 인간인 아빠의 품에 안겨도 보았다.

딸이라는 소리도 들어보았다.

기뻤다.

뱀파이어가 되기 전에도 후에도 누려보지 못한 여러 가지가 삶에 가득하다.

10살에 뱀파이어가 되었던 작은 소녀는 최근 정말로 행복해졌다.

* * *

14층.

막내는 가장 먼저 멀쩡한 함선을 찾아 헤매야 했다. 우주 유영을 위한 장비는 연방에 제공받았다. 수리 도구 역시 그랬다.

해야 할 일은 잘 알고 있다.

기절하기 전에 파티를 구조했던 함선을 보기는 했다. 조금씩 달라질 수도 있으니 완전히 일치할지는 모른다.

시간이 얼마나 주어졌는지도 모른다.

막내는 최선을 다해 멀쩡해 보이는 우주선들을 수색했다.

내부에 언데드가 있는 경우는 많았다.

막내의 물리 공격으로는 타격을 주기 힘들었다.

그래서 그냥 집어 들고 우주로 내던졌다.

비명을 지르듯이 입을 벌리고 손을 뻗는 좀비들을 보며 막내는 조용히 합장하며 허리를 숙였다.

부디 편히 쉬시길.

기억하던 것과는 조금 다른 형태였으나 멀쩡한 연방 우주선을 찾아낼 수는 있었다.

하지만 내부 정리를 해야 한다.

아직 멀쩡한 산소탱크도 확인했다.

그래서 아예 외부로 통하는 해치의 뚜껑을 따버렸다.

그다음에 내부를 샅샅이 뒤져 활동하는 모든 시체를 우주로 내던진다.

청소 작업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막내는 점차 초조해졌다.

그가 청소하는 동안 AI 장비가 우주선의 동력을 복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연방의 기술력은 과연 훌륭했다.

마침내 엔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멈춰 있던 마력로는 상당히 덜그럭거렸으나 여기에 아주 오래 머물 필요는 없으니 괜찮다.

막내는 서둘러 운전했다.

과연 연방의 장비 대부분은 막내가 바깥에서 알던 물건들과 조작법이 똑같았다.

바깥의 삶은 주관적인 시간으로는 아직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이다. 조작법을 잊었을 리가 없다.

뜻하는 대로 능숙하게 우주선을 움직이며 어쩐지 우울해졌다.

아주 합리적 의심이 샘솟았기 때문이다.

투철한 신앙이 합리적 사고마저 막아서지는 못한다.

막내가 살았던 지구의 남미는 그런 곳이었다. 신앙은 위안일 뿐이지 현실을 대신해주지는 못했다.

그랬기에 막내는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이제 신은 실재한다.

한때 유배자였다면 어떠한가. 신이란 기댈 수 있을 만큼 위대한 존재면 그뿐이다.

이제 더 이상 본인도 믿지 않는 신앙을 주워섬길 필요가 없다.

괜찮을 거다. 잘될 거다. 주님께서 지켜보신다.

그리 말하며 어린 동생들을 달랠 필요가 없다.

심지어 바깥의 주님께서는 어린 동생들을 너무 어여삐 여기셨다.

그래서 일찍 데려가셨다.

적대 조직원들이 홧김에 저지른 짓이었다.

그러나 따질 수조차 없었다. 항쟁을 일으킬 수는 없는 노릇이니.

사실은 그 슬럼의 모두는 이미 알고 있었으리라.

신은 없다.

그렇다면 세상이 이 꼴일 리가 없지.

그러니 신이 실제로 존재하는 미궁은 얼마나 축복인가.

실재하는 여신님은 장난스러우나 진중하며, 발랄하지만 엄숙하시다.

일전 리더에게 강림했을 때, 그 모습을 뵐 기회도 있었다.

친구의 딸아이 같은 그 모습에는 과연 신이라 부를 만한 기품이 서려 있었다.

그때 막내는 그 기품 있는 신성함에 남몰래 눈물을 흘렸었다.

애초에 좋아서 조직에 들어간 것은 아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대신 막내와 가족들이 죽었을 것이다.

이젠 무엇도 할 필요 없다.

스스로 괴로운 선택을 할 필요도 없다.

여신께서 앞길을 비춰주신다.

괴로우면 들어주시고 슬퍼하면 위로해주신다.

무엇도 책임질 필요가 없다.

무엇도 고민할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은 여신님의 뜻대로.

혹여 자신이 미궁의 데이터 조각이면 어떠랴.

그렇다면 고통받았던 그의 가족들과 그 자신의 손에 묻혔던 피도 실존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오히려 좋다. 그가 바깥에서 누구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이 되니까.

심지어 여신님께서는 직접 그의 죄를 사하겠다고 말씀해주셨다.

어떤 슬럼가의 말단 조직원에게 그 무엇보다 큰 구원이었다.

우주선을 몰고 어둠 속을 항행한다.

목표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 고요함 속에 소란스러운 곳은 하나뿐이었기에.

실로 오랜만에 홀로되는 시간이었다.

언제나 지켜보시던 여신님의 시선도 없다.

그러나 그의 신이 잠깐 자리를 비운 틈에도 더욱 공고해지는 신앙을 느낀다.

정신이 명료해진다. 어둠 속에서도 앞길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 길을 따라 걸은 끝에 막내는 과거의 파티원들을 구출하는 것에 성공했다.

마치 그리되기로 정해져 있던 것처럼 딱 맞는 시간이었다.

이 또한 여신님의 인도이리라.

구출 후, 과거의 자신이 아가씨의 목조르기로 기절하는 모습을 보았다.

당시에는 기절해서 미처 보지 못했던 것도 볼 수 있었다.

여신님의 대전사가, 그의 대전사님께서 거대한 검은 악을 물리친다.

그 장엄하면서도 신성한 광경에 막내는 합장하고 깊이 고개 숙였다.

그의 삶은 혼돈의 여신님께 바쳐졌다.

처음부터 제 것으로 삼고 싶지는 않던 삶이었다.

그래서 미련 없이 바칠 수 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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