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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178화 (178/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178화

왕국 ? Lv.167 하드스록의 슬럼(4)

[북부 슬럼의 왕]

머리 위에 그런 칭호를 달고 있는 남자가 홀로 걷고 있다. 호위는 없다. 그건 전사답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대외적으로나 그렇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이런 작은 구역에 자신을 위협할 만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과시는 중요하다. 보스에 대한 공포는 조직의 중요한 자산이기에.

절그럭절그럭하고 발걸음마다 쇳소리가 울린다.

그 소리를 들은 슬럼의 주민들은 하던 일조차 멈추고 어디론가 숨어들었다.

휘말린다면 어떤 꼴을 당할지 알 수 없으니까.

유배자, 그것도 제대로 된 장비를 구하고 그것을 착용할 근력을 갖춘 유배자 전사는 제아무리 많은 NPC들이 달려들더라도 막을 수 없는 인간 전차와도 같다.

발걸음마다 울리는 금속의 소음은 살고 싶다면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

마법이라는 불가사의한 힘과 마인드맵이라는 정체불명의 보정을 받은 풀 플레이트 아머다.

바깥이었다면 전시품이었을 쇳덩이지만 이곳에서는 전차의 장갑보다도 튼튼하며 자주포의 포격마저 버텨내며 전진하는 기괴한 무언가다.

북부의 왕은 그 자태를 자못 공포스럽게 과시하며 거리를 걸었다.

곧바로 찾아오는 이가 있었다.

"로커스트! 오랜만이군. 개 털렸다면서?"

넉살 좋게 웃고 있지만 그 눈은 서늘하다. 로커스트는 고개를 조아리고는 사죄의 말을 내뱉었다.

"그, 그 저희로서는 역부족이었기에 어쩔 도리가……."

발차기가 날아갔기에 로커스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우린 꽤나 친한 사이 아니었나?"

벽에 처박혀 피를 토한 후, 꼼짝도 못 하고 미끄러지는 유배자의 팔목이 짓밟힌다.

반대쪽도.

"다리는 남겨주지. 그래야 안내를 할 테니."

로커스트는 바들바들 떨며 일어섰다. 결코 거역할 수 없는 고참이다.

입은 은혜도 있으나 튜토리얼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위용은 잊을 수가 없다.

하늘과 땅이나 다름없는 수준의 단순 스펙 차이를 제외하더라도 상대조차 되지 못하리라.

무기술부터 전투 센스까지 하나도 그가 따라잡을 수 없는 압도적인 실력을 지닌 상대니까.

포션을 쓸 수도 없었다.

이 남자는 ‘처벌’을 한 것이다. 그런데 힐링포션을 쓴다면 노발대발로 끝나지 않으리라.

"자자, 오랜만에 회포나 풀자고. 술이나 한잔할까? 여기 좋은 곳이 있나?"

"안내하겠습니다……."

말은 저리 하지만 어차피 로커스트의 가치는 튜토리얼에서 써먹기 좋은 놈 정도였다.

아마 사태가 알려지고도 바로 연락이 오지 않은 것 역시 그의 존재를 떠올리는 데 시간이 필요해서.

벌써 10년쯤 지난 일이다.

단지 그런 놈이 있었지 이상의 감상은 기대하지 못한다.

"싸구려 가짜 술 말고 멀쩡한 술이긴 한 곳으로 가자고. 나는 쌈마이한 것도 좋긴 한데, 그래도 사람 먹을 건 되어야 하지 않겠어."

"예, 물론입죠."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따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잔인하고 사납고 포악한 괴물이지만, 도움이 된 자에게 내리는 상 또한 후하다.

그러니 북부의 왕이 되었을 것이다.

강렬한 이득은 없던 인망조차 만들어낸다.

이 슬럼에 처박힌 이들에게 랭커가 떨궈주는 단물은 너무나도 달콤하니까.

* * *

신들은 슬럼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애초에 대부분의 인구는 NPC다. 각 서버마다도 얼마건 존재하는 신도들.

그리고 길드의 중심부에서 밀려난 유배자들은 대체로 어중이떠중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신들은 슬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일부만을 주시한다.

포섭의 대상도 그들로만 한정된다.

예컨대 능력은 훌륭할지언정 성질이 너무나도 반사회적이라 밀려난 랭커.

"북부의 왕이란 놈이 그렇단 거군요."

"그렇소. 내가 보기에는 당신들이 감당할 위인이 아닐 것 같은데."

"그보다 원장님 목숨은 어찌 붙어 있는지 신기하네요."

"나는 도움이 되니까. 그 녀석의 부하들을 치료하는 데 말이지."

레미는 약간 의아함을 느꼈다.

"그런 놈의 부하라면 뻔할 뻔 자인데 용케 치료를 하시네요?"

"의사는 상대의 직업이나 성격을 가리지 않소. 인명이란 그런 것이니까. 목숨이 여러 개인 것도 유배자나 그렇지."

자랑스러워하는 태도도 사명감이 느껴지는 태도도 아니다.

원장의 발언은 단지 비가 오면 땅이 젖는다는 수준의 당연한 사실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레미는 어쩐지 불쾌해졌다.

그러나 참아야 한다. 최중요 포섭대상이니까.

"그래서 이 병원을 신전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어찌 여기시는지요?"

"나로선 나쁠 것 없네. 신의 은총이 머문다면 이곳의 사람들도 더 살기 편해지지 않겠나."

노인이 계속해서 태연자약하게 말한다.

레미는 속으로 짜증이 일어남을 느꼈다.

뭔가 이권이 얽혀 있다거나 원하는 것이 있다거나.

그런 것이라면 쉽다. 욕망을 감지하는 것은 자신이 있다.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이 노인은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환자를 구하는 것에도 욕심이 보이지 않았다.

단지 그렇게 살아야 하니까 산다는 것뿐으로 보일 정도다.

혹자는 성자나 성인이라고 부를지 모르나 레미는 그것이 마음에 안 든다.

"저런 어딘가 속이 안 좋으신가?"

"아닙니다."

"그래, 그럼 그 마음씨 좋은 신이 어느 분인지 좀 여쭈어도 되겠소?"

여기서는 약간 냉소적인 태도.

정말로 미궁의 신이냐 아니면 신을 자처하는 얼간이냐를 묻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제는 혼돈의 신도가 아닌 레미는 대신 옆의 거한에게 고갯짓했다.

막내가 앞으로 나선다. 실로 경건한 태도, 그 어떤 성직자가 오더라도 절로 고개를 끄덕일 모범으로 말한다.

"혼돈의 여신님께서 슬럼을 포용하고자 하십니다."

원장은 의심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혼돈? 이 왕국에는 없는 신 아닌가."

"이 땅의 가장 오래된 신격이시죠."

"흠, 들어본 적은 없는걸? 뭐 마음대로 해보게. 나는 그럼 하던 일이나 하러 가야겠군."

"바쁘신 모양이군요."

"죽어가는 녀석들은 넘치지. 날 때부터 이런 지옥에 태어난 불쌍한 녀석들 말일세."

명목상의 허가는 받았다. 사실상 이 거리의 민심을 홀로 틀어쥐고 있는 노인이다.

레미는 일단 그거면 되었다고 생각했다.

원장이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말했다.

"북부의 왕이 찾아올 거야. 그놈은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하는 성격이니까. 거기다 자네들은 그놈의 영토를 건드렸네. 부디 내가 시체 치울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

정말로 한 점의 기대조차 없는 태도였다. 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저희가 알아서 할 문제지요."

레미는 명목상으로 산하에 둔 조직들에게 지시했다.

시가지에서 마차와 차량들이 출발했다.

* * *

친애하는 마이어 씨는 바보가 아니었다.

의원들 사이에 비밀이 있을 필요는 없다.

그는 적어도 하드스록의 통치를 맡고 있는 삼의회의 세 명만큼은 충분한 양식인이라 믿었다.

비록 트롤과 용인이지만 말이다.

트롤은 의문의 파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반색했다.

"뭣이? 그런 수준인 데다가 천사인 전사라고? 믿을 수 없군."

"흘흘, 트롤의 좋은 점을 매일같이 떠들고 다니는 녀석이 천사에는 혹하나 보군."

"그럼 네놈은 천사 카드를 주면 안 바꿀 거야?"

"용인 정도면 충분하지."

"그래서 안 바꿀 거냐고."

"바꾸긴 해야지."

비록 저렇게 시답잖은 소리들을 잔뜩 지껄이긴 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음모 같은 것이 아니다.

저 트롤은 바깥에서 고위 공직자였던 자이며 노티 나는 용인은 추기경 출신이라고 한다.

물론 지금의 모습을 보면 대체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싶다.

미궁이 사람을 버려놓기에 너무 좋은 것인 걸 어쩌겠는가.

다양한 종족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이 미궁에서만 겪을 수 있는 별난 경험이다.

하지만 마이어는 찝찝해서 인간을 그만두지 않았다.

종족마다 뇌 구조나 호르몬 체계도 전부 다를 것 아닌가.

트롤이 된다면 좀 더 흉포해질 것이며 용인이 된다면 저렇게 늙수그레해질지도 모른다.

물론 당장 명확하게 눈에 띄는 문제는 없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이종족의 흔적이 정신에 쌓여가기 시작한다면 종래에는 내가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물론 그래봐야 죄다 데이터 쪼가리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으로서 순수성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은 버릴 수가 없다.

능력이 되기에 가질 수 있는 낭만적인 의견이다.

"어이, 마이어. 너는 천사 카드 줘도 안 쓰겠지. 안 그래?"

"물론 그렇지.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저번에 말한 그 선배님 말인데……."

이번엔 동행하자는 의견을 말한다.

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받는다.

"같이 얼굴이나 익혀두러 가자는 거겠군."

"하이랭커들은 또 어느 구석으로 처박힐지 모르니까 말이야."

이들이 이리 태평할 수 있는 것은 어쨌든 온건하고 얌전한 분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하이랭커라는 족속들은 다른 곳에서 무지막지하게 레벨링을 하고 기술을 갈고닦는다.

보통은 연차로도 못해도 70년은 넘어가는 이들 중에서 재능 있는 자들이 도착하는 영역.

그리고 그들은 대개 도전자이기에 그러다 죽어서 다음 회차로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남는 시간은 거의 없다.

약간의 여유만을 가지고 다음 회차에 도달한다면 조급해하게 마련.

그러다 보니 새롭게 들어오는 하이랭커급 유배자는 제정신인 이를 찾는 것이 더 힘들다.

죽음의 그늘이 다시 자신에게 드리우기 전에 잃어버린 힘을 되찾고 싶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다가 타이머가 다한다면 이제 죽음이 두려워 그대로 눌러앉아 버리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왕국에는 통제 불가능의 괴물이 탄생한다.

반면 온건한 대화를 그쪽에서 먼저 의도하고 제안해 온다면, 단지 그것만으로도 양식 있음을 넘어 존경할 수 있는 선배가 되어버린다.

"함정일 가능성은 없겠지?"

"하이 랭커 하다가 온 양반이면 뭐가 아쉬워서 우리 따위를. 흘흘."

손익조차 따질 수 없다. 그쯤 되는 존재가 무슨 생각인지는 알기 어려우니까.

"그래도 슬럼을 정리해 준다는 건 좋은 소식 같은데."

"그 뒤에 우리에게 칼을 꽂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정도를 넘어서 무언가 하려고 한다면 삼의회로서도 별수 없다.

연락이 닿는 모든 하이랭커들에게 연락이 갈 것이다.

그러면 토벌이 시작된다.

왕국의 균형이란 것은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다.

시간은 넉넉했다. 애초에 저쪽이 자기들 편한 시간으로 고른 것은 그들도 업무를 끝마친 시간이었다.

다만 장소는 삼의회가 정했다.

"퇴근 후 업무 수당은 안 주나? 갑자기 슬럼에서 막대한 자금이 시가지로 흘러들어 왔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어떻게 하라고. 던질 거면 돈이라도 더 줘야지."

"자리가 주는 권력의 단맛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닝기미 하이 랭커들 눈치만 보는 자리에 무슨 권력."

마이어가 한숨을 쉬는 가운데 약속 장소에 도달했다.

삼의회의 얼굴은 특별히 알려져 있지 않다.

미디어가 그리 발달하지 못한 탓이다.

희소한 용인으로서 눈에 띄는 것도 후드를 눌러씀으로써 해결했다.

온건한 선배님은 자신을 지칭하기를 오르골이라고 하면 된다고 했다.

그 호칭에 왕국에 떠돌던 몇 가지 낭설이 떠올랐으나 지금 중요하진 않다.

말끔한 외모의 두 남녀를 다시 보게 된 곳은 시가지 고급 레스토랑의 내부였다.

저번에 발견된 곳과는 사뭇 다른 VIP만을 받는 업장이다.

다만 한 명이 늘어 있었다.

"그분은……?"

"아, 내 딸이야."

"딸?"

펼쳐지는 몇 가지 불경한 상상의 나래를 접어두고 공손하게 셋 모두를 선배로 대한다.

천사 하나와 뱀파이어 둘.

식사가 준비되었다.

급사가 설명을 시작했다.

"이것은 43서버 요정왕의 피와 거인의 피가 블렌드되어 있는 수프입니다. 물론 베이스는 신선한 인간의 혈액입니다. 처녀만을 엄선했지요."

선배님의 표정이 묘해졌다.

"왕국이 이렇게 오래되면 이종 간 요리 연구도 하나 봐?"

"그 부분이 저희 레스토랑의 자랑거리입니다."

그 반응은 틀림없이 건전한 호기심과 흥미였다.

어딘가 인간으로서 망가지지 않았음을 확인하니 의원들도 새삼 안심이 된다.

천사를 위한 식사는 천상의 감나무밭에서 난 이슬과 [메인 던전] ‘헤븐’에서 공수한 성스러운 소의 고기 스테이크다.

"어이가 없군. 정말로 귀한 게 맞다는 게 제일 어이가 없어. 이 스테이크는 뱀파이어가 먹으면 죽겠는걸."

"입맛에 맞으시면 좋겠습니다."

"내가 먹으면 죽는데?"

"옆의 숙녀분 말이지요."

급사가 물러난다.

삼의회의 의원들은 누그러진 분위기 속에서 통성명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의 굽신거림에는 여러 가지 사심도 있었다.

‘멀쩡한’ 하이랭커와 친분을 만든다?

그보다 좋은 일도 드물 것이다.

요리로 관심이 굉장히 쏠렸기에 구체적인 이야기는 식사 후로 미루어졌다.

마이어 씨는 이 레스토랑의 오너에게 감사했다.

그 와중, 식사 중의 테이블 매너까지 쓸데없이 완벽하다.

십 대 초반의 소녀로 보이는 선배님이 어딘가 어색해했으나 오르골 선배님이 상냥하게 가르쳐 준다.

내막을 모르고 본다면 정말로 젊은 부부와 딸 같은 느낌으로 볼지도 모른다.

억측은 금물이다.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을 곤두세운 식사가 끝이 났다.

개인의 심사란 어찌 뒤틀려 있는지 겉으론 모르는 법이니.

"식사는 즐거우셨습니까?"

"이런 방식의 요리 접근은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역시 회차마다 새롭군."

"미궁의 몇 안 되는 장점 아니겠습니까."

"그래, 우리를 부른 이유는?"

명목상은 삼의회가 부른 것이 맞다.

"의원들과 안면을 익혀두시면 선배님께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여……."

"그냥 우리 속셈이 궁금하다고 해."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쿨하니 서로 편해서 좋다. 뒤틀린 인격들만 보다가 전사답게 호쾌한 모습을 보자니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다.

안색이 밝아지는 의원들을 보며 오르골이 말한다.

"일단 나도 하나 묻지. 북부의 왕 죽여도 되나?"

디저트로 나온 얼린 드래곤의 피를 핥으며 태연자약하게 할 말은 아니다.

"문제없습니다. 그는 우리로서도 골칫거리인 남자입니다."

"다른 왕은?"

"슬럼의 완전한 지배자가 되시겠다고 한다면……."

"그건 못 두고 본다?"

"저희가 아니라 다른 하이 랭커들이 말입니다."

"말은 그렇게 하겠지. 좋아. 그건 참지."

오르골은 그 부분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 웃는다. 필요하다면 다 죽일 수도 있다.

그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가 생각하면 오싹해지는 일이다.

슬럼의 평균은 낮을지 몰라도 그곳에 자리 잡은 강자들은 무시할 정도가 아니니까.

하드스록의 군대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냐면 어려운 일을 태연하게 해도 되냐고 일개 파티가 묻고 있다.

"그런데 선배님."

말하라는 듯 바라보는 시선.

"갑자기 슬럼에서 흘러든 극히 희귀한 보석과 귀금속은 선배님 파티의 물건입니까?"

부피는 얼마 되지 않음에도 실로 천문학적인 가격을 매길 수 있는 귀중품들이었다.

적어도 북부 병원 구역의 작은 갱들이 가지고 있을 만한 재산은 아니다.

하물며 그것조차도 빙산의 일각이라 여겨지는 부분까지 있다.

금이나 은 같은 것을 말하는 건 아니다.

앤티크한 바람의 결정부터 말도 안 되는 크기와 순도의 촉매가 될 수 있는 보석 원석들, 고블레타리아 연방이라는 알 수 없는 인장이 찍힌 순도 99.99%의 아다만타이드 주괴.

리프트에 바친다면 전설처럼 전해지는 [축재의 길] 같은 스테이지가 등장할지도 모르는 막대한 재산이다.

그중 극히 일부만이 경매에 급하게 등장했다. 아마도 더 존재할 것이라 여겨진다.

그 대금은 전부 물자로 바뀌어 북부 병원 구역으로 향했다.

이미 출발했다는 사실은 전해 들었다.

그런 짓을 할 사람은 이 선배님들밖에 없다.

"그건 우리 거 맞아. 그러고 보니 여긴 신전도 허가제인가?"

재정적인 부분을 맡고 있는 용인이 한숨을 내쉰다. 더 있겠군. 하는 중얼거림이 마이어에게도 들려온다.

신전이라는 말에는 트롤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그의 일이다.

"예, 그렇습니다만. 혹시 슬럼에 신전을 세우시려는 생각이십니까? 그곳이라면 허가는 없어도 괜찮습니다. 저희 관할이 아닙니다."

무법지대에 무슨 허가를 요청한단 말인가.

"그래도 국토지 않나? 법은 지켜야지."

마이어는 그 말에서 약간 위화감을 느꼈다.

뭔가 한 가지 실마리를 통해 결론에 도달할 때의 그런 기분.

"시가지로 편입하실 생각입니까?"

"잘 정돈된다면."

이건 마이어의 일이다.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애초에 시가지와 슬럼의 구획이 나뉜 이유가 무엇인가?

길드 연합체에 불과한 하드스록이 감당할 예산도 행정력도 없었기에 그랬다.

벽마저 세워 구분 지은 지도 아득한 세월이 흘렀다.

무엇보다 이미 특권 계층인 시민들이 원할 리가 없다. 그들을 무시할 수도 없다. 강력한 힘을 지닌 유배자들이니.

"그건 시민들의 반발이 심할 것입니다. 저희로서는 도울 방법이……."

"도울 필요는 없어. 그냥 그렇게 될 거야. 저절로 말이지."

그때 용인이 끼어들었다.

"선배님, 그렇다면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할 것입니다. 오히려 저희가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가진 귀중한 물품들의 매각 같은 것 말입니다."

"그거 고마운 말이군."

그 눈은 황금을 보는 눈이다.

마이어는 이 의원에겐 용인보다 이끼 난쟁이가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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