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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181화 (181/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181화

왕국 ? Lv. 1320 북부 슬럼의 왕(2)

누누이 말하지만 플랜은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나는 북부의 왕이라는 랭커에 대하여 철저하게 조사했다.

아니, 사실 그리 철저하게 조사할 필요는 없었다.

제 자신을 숨길 생각이 많지 않은 녀석이었다.

슬럼의 통치는 보통 공포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며, 공포를 주기 위해서는 무슨 대단한 스킬을 가졌더라 같은 식의 소문이 나기 때문이다.

그의 산하에 있었던 북부 병원 구역의 길드 마스터들도 도움이 되었다.

의리를 지켜 뭔가 숨기려는 놈들은 단 하나도 없다.

그런 놈들이 슬럼에 있을 리가.

애초에 슬럼으로 밀려난 유배자들은 제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았다 할지 모르나 멀쩡한 녀석들은 아니다.

이건 인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순수하게 유배자로서의 능력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강함에 미친 자들은 조직을 꾸리지 않는다. 꾸리더라도 자신이 그 수장이 되지는 않는다.

책임이 생기면 그만큼 강함과 멀어지기 때문이다.

슬럼의 왕이란 건 어느 회차에나 존재하는 칭호지만 대개 그것을 가진 녀석들은 어느 정도 안주해버린 놈들이다.

랭커라 한들 그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저 재능이 좀 있었기에 도달했을 뿐이지.

"마이어 씨가 말하길, 그 녀석 967위라던데. 지금의 네가 싸우면 그럭저럭 이길 수 있을걸?"

"그렇게 쉬워요?"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 네가 너무 센 거지."

"히히, 그런가?"

미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킬’, 그 이후는 종족을 포함하며 기초 스탯 따위의 ‘태생’, 그다음이 마인드 맵의 ‘스탯’이다.

유배자가 된 이후 올라가는 힘민지 3스탯은 분명 유의미할 정도의 힘을 부여한다.

하지만 그것은 각자 그 종족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한다.

인간이라는 종족으로서는 아무리 힘 스탯이 높아져도 평범한 거인과의 팔씨름을 이길 수는 없다.

종족 자체의 한계가 있기에 그 강화되는 힘은 점점 효율이 감소한다.

‘태생’은 그 효율의 한계를 극적으로 바꾸어주며, ‘스킬’은 모든 것을 초월하는 맥락 없는 초능력이다.

예를 들어 내가 가진 [피의 군주]는 비록 얻기까지 스탯과 스킬이 충분히 쌓일 수밖에 없는 [유니크 스킬]이다.

하지만 내게 그 어떤 보정도 없이 [피의 군주] 하나만 덜렁 주어지더라도 홀로 하드스록을 초토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스킬이란 것은 그런 영역의 일이다.

"유니크 스킬이란 것도 무조건 센 건 아닌가 봐요?"

"이 유니크는 ‘유일한’이라는 의미지 레어 위의 유니크가 아니거든. 어느 정도는 강하지만 무조건적으로 강하진 않지."

"유일의 유니크라면, [피의 군주]는 이 회차에서 아저씨만 가지고 있단 거네요?"

"유배자 중에서는 그렇단 거야. NPC는 중복된 유니크 스킬을 보유하기도 하니까."

종종걸음으로 우리를 따라 걷던 꼬맹이가 고개를 든다.

"아빠! 저도 스킬을 가질 수 있을까요?"

"제한적으로는 가능하지. 그에 걸맞은 위업을 쌓거나, 혈통적으로 뛰어난 경우. 혹은 그저 타고난 재능."

"……저는 혹시 이미 무슨 스킬이 있는 걸까요?"

"아마 그럴 건데. 우리 여신님 신전이 생기면 확인해 보자고."

통상적으로 바르바로이 클랜의 랜덤 NPC에게 주어지는 스킬은 [초마도사] 심플하면서도 강력한 유니크 스킬이다.

이걸 가지게 되면 마법적 재능이 증폭된다.

미궁의 보정에 의해 강제적으로 마법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며 감응력에 보정이 달린다.

액티브가 없으나 대신 그만큼 패시브가 강력한 종류의 스킬이다.

달리 말하면, 나처럼 자력으로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필요 없기도 하다.

먼 과거에 마법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습득한 적이 있었다.

마법 이외에는 길이 없었던 관계로 초기에는 순수 마법사로서 활동했기에.

"슬슬 너도 유니크 스킬 각을 봐야 하는데."

"그거 하나만 가질 수 있나요?"

"아니, 중복으로도 가질 수 있는데 하나 뜨고 나면 다음부터는 확률이 극도로 떨어져."

"기묘한 밸런스네요."

"미궁의 운빨이란 것은 통제 가능한 변인으로 남으려는 성질이 있거든. 이걸 이해한다면 유배자로서 살아가는 게 한결 편해질 거야."

"통제 가능한 변인…… 최대한 덜 불합리하게 작동한다는 거군요."

"그래 봐야 그러는 척에 더 가깝긴 한데……."

운빨에 공정함을 고려한 보정이 들어가 있다 한들 결국 운이다.

게임을 집어 던지지는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에 불과하다.

기획자의 노련함은 현실이 된 후에도 힘을 발휘하고 있다.

"저쪽에선 이길 수 있겠지요?"

여신님께서 알려주었기에 지금 슬럼 쪽에 북부의 왕이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말석 랭커면 찍먹 해본 녀석이라고 봐야지. 요정 마법사 기억해? 그 양반이랑 비슷한 정도일걸."

요정 마법사가 비록 [리프트]를 통한 레벨링은 하지 못했지만 그 서버에서 그대로 1,000년을 보내왔다.

그렇다면 랭커라고 불릴만한 영역에는 도달한다.

[시간 정지]를 스킬로 띄운 것도 우연은 아닐 거고, 띄우는 법을 대강이나마는 알고 노린 것이라 봐야 하지 않겠나.

"그 정도면 이젠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원래 마법사가 천사인 유배자를 잡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굳이 말하지 않기로 했다.

"단지 시간만으로 랭커가 된 녀석은 레벨값 못 하는 경우도 있어. 하지만 상위권 랭커들이 환상을 만들어주지."

"공포 마케팅인가……."

마케팅? 그건 아닌 거 같긴 한데.

"어쨌든 유배자에게 가장 부족한건 언제나 정보야. 여러 개라곤 해도 제 목숨을 마구 내던지며 정보를 얻고자 하는 녀석은 아주 드물거든."

그마저도 요령이 없다면 헛된 목숨 낭비가 되고 만다.

"아저씨는 뭐든지 알고요?"

"뭐든지는 아니고, 아는 거만 알지."

그런 대화를 하며 만신전에 도달했다.

만신전의 관리인, 토끼 귀의 잎사귀 요정 소녀가 맞아준다.

* * *

권능을 통한 시간 정지는 쿨다운이 길다.

대신 더 완벽하고 깔끔하며, 인지하기 힘든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시간의 신]이 직접 내리는 권능이니 당연하다. 가장 완벽하고 은밀하게 구사한 [시간 정지]도 신의 권능을 따라잡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북부의 왕은 레미의 시간 정지를 최초에는 인지하지 못했다.

완전한 기습인데다, 상대가 시간의 신도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한 결과다.

레미는 굳어버린 잿빛의 풍경을 보며 잽싸게 행동에 나섰다.

방심은 금물이다.

인지를 늦게 할 수는 있지만 결국은 해낼 것이다.

멈춰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상대에게 더 강렬한 경고가 간다고 했다.

하물며 상대는 레벨 1,000 이상의 괴물이다. 그것도 튼튼하기로 유명한 전사 클래스 랭커.

이번 전투 내에서는 다시 사용하지 못할 [시간 정지] 타이밍에 최대한 큰 피해를 입혀야 했다.

땅에 처박힌 천사에게 다가가 황금빛 신성을 소모한다.

신도가 되며 주어지는 기본적인 신앙을 마구마구 소모하고 있다.

강력하지만 그만큼 다시 채우기 힘든 대신격의 신앙을 이렇게 소모하는 건 아쉽지만…….

랭커를 잡았다는 사실이 퍼짐으로써 그녀의 조직과 혼돈의 교단이 거두게 될 이득을 생각하면 납득할 수 있다.

적어도 그녀의 리더는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무채색으로 물들었던 천사에게 색이 깃든다. 강한 충격으로 인해 [광폭화]는 해제되었다.

흐릿해진 이성이 돌아오며 천사가 상황을 인지한다.

"작전대로 되었네요?"

"광폭화가 풀리면 바로 시간 정지. 딱 좋군요."

신의 권능이기에 가능한 타인을 불러들이는 행위.

레미는 새삼 대신격의 권능이 가진 사기성을 체감했다.

고참인 천사는 그런 일에 일일이 놀라지 않는다. 대신 빠르게 몸 상태를 확인했다.

랭커의 일격은 광폭화한 상태로도 견디기 쉽지 않다. 천사라는 종족의 압도적인 내구도가 아니었다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

잔 부상은 있으나 심각하진 않다. 일단 바닥에 박힌 몸부터 뽑아내야 했다.

힐링 포션을 딱 한 모금만.

"으으윽!"

힘을 한참 줘야 겨우 바닥을 뜯어내고 일어설 수 있었다.

"시간 없어요! 빨리 쳐요!"

천사는 대검을 들었다.

[강격]의 파생인 몇 가지 중위 스킬이 동원된다.

핵심인 [광폭화]는 쿨다운이지만 그게 없어도 광전사는 충분히 강하다.

시간 정지의 아쉬운 점은 상대가 받을 대미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거기에 천사의 근력은 분명히 강력하지만 200밖에 되지 않는 레벨의 한계 역시 존재한다.

레벨이 낮으면 스택된 패시브가 적으며, 단순 힘 수치도 낮다.

‘공격력’ 보정이 떨어진다. 단단한 갑주와 장비로 무장한 전사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을까?

거기에 시간 정지라는 특수한 환경은 모든 물리적 타격을 다시 시간이 흐르는 순간에 가한다.

순간적으로 타격을 흡수하는 방어 패시브는 전사에겐 흔한 것이며, 그것에 대부분 흡수당할 수도 있다.

어찌 되었던 지금 최대한의 타격을 누적해야 한다.

레미도 마법을 캐스팅했다.

* * *

나는 고개를 돌렸다.

"왜 그랭?"

토끼 귀를 한 열다섯 정도의 소녀가 나를 돌아본다.

순진무구한 표정이 흰 원피스와 잘 어울리지만 만신전의 관리인은 호락호락한 자리가 아니다.

지닌바 힘은 랭커 중에서도 상위권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신들이 이렇게 중요한 곳의 관리를 맡길 리가 없으니까.

"저쪽에서 시간이 멈춰서."

그 말에 키리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힌 소녀가 고개를 갸웃한다.

나와 같은 방향을 보더니 다시 갸웃하고, 눈을 가늘게 뜨더니 말한다.

"여기서 그걸 어떻게 감지행. 거짓말하면 못 썽."

"그래. 그런 걸로 하지."

"너 말투 기분 나빵."

나는 웃으며 키리를 계속 따라가기 시작했다.

토끼 귀가 쫑긋거리며 나를 만신전의 중앙으로 안내한다.

아무나 받아들이는 곳은 아니다.

나를 기다리는 신이 있기에 그 명을 받아 안내 중이다.

파티원들은 바깥에서 대기해야 했다.

대부분의 신들은 내게만 관심이 있다.

가는 길에 레미가 있을 방향에서 느껴진 [시간 정지]가 어떤 결과를 내었을지 생각해 보았다.

북부의 왕은 도전자가 되지 못한 쫄보다.

최근 들어 리프트를 통해 레벨링과 파밍을 하러 떠나는 모습은 전혀 목격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랭커라는 타이틀을 얻은 것에 만족하고 안주했다.

미궁에서는 흔한 성향이며, 그런 성향을 가진 녀석이 세팅하는 마인드 맵 역시 어느 정도 뻔하다.

당당하게 본인이 과시하는 스킬셋과 비열하고 포악한 성격, 그것에서 유추할 수 있는 스킬셋은 극도로 방어적인 것.

유니크 스킬은 [짐승의 왕]이다.

성능으로만 보자면 전쟁의 신이 가진 [원초의 힘]과 유사한 계열이지만 액티브 공격기가 있는 대신 전체적인 성능은 그보다 저열하다.

무난하긴 하지만 B급 정도밖에 되지 않는 적당한 유니크 스킬.

아마 명확하게 얻는 방법을 모른 채로 멀리 돌고 돌아서 간신히 도달한 스킬일 것이다.

그리고 북부의 왕은 생각했겠지.

공격적인 유니크 스킬을 뽑았으니 나머지는 전부 탱킹으로 도배하면 되겠군.

딱, 슬럼에서 떵떵거리고 살 생각이라면 옳은 판단이다.

그것을 위한 세팅도 뻔하다.

일반적으로 유배자들 사이에 많이 알려진 전사계통의 각종 방어 스킬들이 있다.

프로방스도 사용하던 암살 대응 스킬 [오토 가드]를 비롯하여, 죽음에 이르는 수준의 큰 대미지를 0.1초 동안 무효화하는 [수호자], 갑옷에서 노출되는 부위에도 갑옷의 방어력을 적용해주는 [확장 방어구] 등.

모두 획득 난이도 대비 고효율이기에 유명하며 랭커쯤 되었으면 반드시 가지고 있을 스킬들이다.

그걸 기본으로 하고 [짐승의 왕]이 뜰 환경에 자연스럽게 함께 가질 스킬들이 추측하자면.

까다로울 것은 [부활].

민첩을 최소한으로 찍고 힘만 내달리는 마인드 맵에서 [짐승의 왕]이 뜬 이후 반드시 뜰 스킬.

애초에 조건이 [짐승의 왕]과 아주 흡사하다.

일회용이지만 아직 죽은 적이 없을 확률이 높다. 그럼 두 번 죽여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가능하겠네."

"넌 혼잣말이 많구낭?"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을 때가 있잖아."

"고참다운 소리양. 너도 고생이 많구낭."

기묘한 공감을 받으며 만신전의 중심에 도달했다.

옆으로 뻗은 뿔과 피막으로 된 날개를 가진 악마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순수 마법사 종족인 데몬이다.

실체는 아니었다. 신좌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것이다. 만신전에서만 가능한 일.

그의 신성은 짙은 푸른색, 어딘가 신비한 색채를 가진 아름다운 색.

마법과 지식의 신이다.

* * *

북부의 왕은 당혹해했다.

필름이 끊기는 이 느낌은 이제는 조금 낯설어졌다.

[리프트]를 마지막으로 탄 게 언제였지?

[시간 정지]를 감지하는 감각도 무뎌져 있었다. 그걸 사용하는 적을 만난 지가 너무도 오래되었으므로.

몸에 들어오는 타격을 깨닫는다.

온갖 스킬상의 실드가 켜진다.

그리고 깨진다.

그의 모든 방어수단이 시간이 멈춘 동안 입은 타격을 방호하는 데 소모되었다.

맨몸이 된 그 순간, 목을 내리찍는 대검이 보였다.

북부의 왕은 한 번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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