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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182화 (182/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182화

왕국 - Lv. 1320 북부 슬럼의 왕(3)

[부활]은 일반적인 왕국의 유배자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인 스킬이다.

단 한 번의 죽음이 영원한 죽음으로 이어지지는 않겠으나, 몇 년간 공들여 이룩한 것을 잃는 것은 충분히 큰 위협이니까.

유배자가 아니게 된 유배자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다.

죽음을 기꺼워하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단 한 번의 부활 기회가 지금 날아갔다는 사실에 북부의 왕은 엄청나게 분노했다.

"이런 제기라알!"

방심? 맞다.

방심한 것 자체는 사실이다.

시간을 다루는 마법사의 존재는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정지한 시간을 인지하는 감각도 너무나도 녹슬어 있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나.

몸이 완전히 회복된다. 스킬의 쿨다운이 돌아오진 않을지언정 상태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온전해졌다.

재차 달려드는 공격을 격렬하게 쳐내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 개 같은 녀석들! 너희가 지금 무엇을 날려버린 것인지 알아!"

분노로 눈이 돌아간 전사는 스킬셋과는 무관하게 광전사나 다름없다.

레미는 얼른 물러났다.

리더가 분석한 북부의 왕의 스킬셋은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다.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녀는 이 세상을 게임이라고 여긴 적이 없다. 그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현실 이상으로 힘겹고 괴로운 삶을 감내해야 하는 미궁을 게임같이 여기는 것은 얼마나 말랑말랑한 생각인가.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현실적인 이 공간들이 요즘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리더는 대단한 사람이다. 이 세상을 게임으로 보는 것이 당연할 정도로 뻔히 꿰뚫고 있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리더의 지시를 따랐을 때 실패란 없다.

그런 강력한 믿음 하에 두려움도 없다.

달려드는 북부의 왕을 향해 막내가 달려든다.

왕은 정말로 자기 보신할 생각조차 없이 대검을 휘둘렀다.

검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둔기에, 둔기라기보다도 좀 더 원초적인 폭력에 가까운 공격이었다.

날을 댈 생각조차도 없다.

분노로 일그러진 저 얼굴에 담긴 생각은 벤다가 아니라 부수다니까.

막내의 미스릴 문짝이 그 앞을 막아섰다.

왕은 개의치 않았다. 이 녀석은 확실히 인간이다.

천사 같은 변칙이 없는 이상 찢어 죽일 수 있다.

최대한 빨리 저 뒤의 마법사를 으깨버리고 천사를 상대해야 한다.

천사가 날아든다. 깃털이 휘날리며 몸 주변에서 폭발하지만 충분히 튼튼한 왕의 몸뚱어리는 그 정도 피해를 감내한다.

방패가 밀려난다.

그렇다.

박살 나는 것이 아니라 밀려났다.

왕은 당황했다.

그의 대검은 정련된 룬 강철 중에서도 최고 품질을 가진 물건이다.

상대가 천사가 아니었다면 내구도가 아까워 꺼내 들지도 않았을 강력한 무기다.

그의 유니크 스킬이 부여하는 강력한 공격력과 무기의 성능이 결부된다면 어지간한 방패 전사는 모두 무력하다.

그 파괴적인 힘에도 상대의 방패는 흠집 정도만 날 뿐 미동도 하지 않는다.

쇠와 쇠가 부딪히며 튀는 불꽃이 푸르스름한 은빛이었다.

이건 알고 있다. 미스릴의 색이다.

"이런 빌어먹을!"

뒤편에서 천사가 날아든다.

어쩔 수 없이 회전하며 그 검을 받는다.

천사의 대검은 그다지 훌륭한 재질이 아니다.

그냥 딱 적당한 재질의 일반적인 강철.

주력 무기라기보다는 소모품으로 사용하는 무수한 예비 장비에 가깝다.

힘을 주어 밀어붙인다. 이미 여러 번 부딪혔고 그의 몸에도 부딪혔다.

그럼 내구도가 다할 만도 하다.

조심해야 할 것은 무기가 파괴되며 발생하는 크리티컬.

감각적으로 두 번 후려친 후, 세 번째 검격을 날리는 동시에 몸을 숙였다.

푸른 파편이 튀어나간다.

천사의 대검이 박살 나며 크리티컬이 발동, 그의 대검에 순간적으로 훨씬 강력한 힘이 가해졌다.

왕은 그저 대검을 놓아버렸다.

숙인 자세 그래도 천사를 향해 돌격한다.

그래플링은 기사의 미덕이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천사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마운트가 걸린다.

"머리를 으깨주지!"

그리고 뒤편에서 막내가 돌진했다.

왕의 뒤통수에 미스릴 문짝이 틀어박혔다.

쾅하고 우악스러운 힘과 재질에 의한 공격에 왕이 날아간다.

막내의 공격으로 유의미한 대미지를 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질량이 존재하는 이상 떠밀려 날아가는 것을 피할 수는 없나니.

천사가 웃으며 왕의 대검을 집어 들었다.

북부의 왕은 이를 갈며 도주하기 시작했다.

아직 그에게는 부하들이 많다. 적어도 당장 배신할 정도는 아닌 부하들이.

* * *

마법의 신은 악마로서는 아주 이례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악마 역시 천사만큼이나 외모에 큰 보정을 준다.

인간의 형상을 유지한 채, 언제나 수분에 구애받지 않고 탄력을 유지하며, 만지면 부드럽지만 평범한 날붙이로는 생채기조차 나지 않을 질김을 가진다.

그런 사양이다 보니 굳은살이 생길 일도 없어 언제나 뽀송뽀송하다.

머릿결 역시 마찬가지다. 조금 방치한다고 상하기에는 너무 막강한 내구력을 지니고 있는 덕에 언제나 최상의 상태를 유지한다.

하지만 눈앞의 신은 한눈에도 상태가 썩 좋지 않아 보였다.

신좌에 오른 유배자답지 않게 다크서클이 짙게 올라온 채 푸석푸석한 머리카락, 윤기 없는 피부.

산발에다가 마른 체격이다 보니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리지만 골격은 확실히 남자의 것이다.

그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조차도 힘없고 음울한 느낌이다.

"오오…… 드디어. 드디어. 내 자네를 만날 수 있게 되었군."

말투는 늙수그레하지만 외모는 지금의 나와 큰 차이가 없다. 당장에라도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신은 비척이며 달려와 내 손을 잡았다.

"정말……. 정말 자네는 내가 본 모든 유배자 중에 최고의 마법사야. 부디 내게 가르침을……!"

"잠시만요, 마법신 양반. 당장 쓰러질 것 같은데 잠은 제대로 자고 있습니까?"

"아아, 잠 말인가? 그런 개념이 존재했었지. 신은 참 편리해. 단 한숨도 자지 않아도 문제가 없으니."

"신좌의 유지력이 감당 못 할 정도로 무리한 거잖아 이거!"

"나는 멀쩡하네만."

이건 또 참 드문 케이스다. 마법에 미친 자들은 많지만 대부분은 마법이 생업 그 자체인 대륙의 주민들이었다.

유배자들은 보통 그 정도는 아니다. 스킬의 보정이 있기 때문에 NPC들만큼 깊이 파고들지 않아도 더 좋은 성능을 낼 수 있다.

아무런 보정 없이도 마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도록 노력한 나 같은 경우는 왕국의 마탑에서도 드문 케이스다.

그들이 연구하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순수마법인 경우가 드무니까.

그 샤크마조차도 마법의 신만큼 열정적이진 않았을 것 같은데.

신은 자신의 입장조차 생각하지 않은 모습으로 내게 구걸했다.

"제발, 나와 그때 그 가상 마력로를 구현하는 이론에 대해 토론해 주게……."

"잠깐 진정하시고. 저는 어디 안 갑니다. 그리고 우린 앞으로 친하게 지낼 거고요. 그렇죠?"

"물론이지. 자네 같은 마법사가 어찌 객사하겠나."

거 죽어서 이번 회차로 넘어온 거요만.

마법의 신은 그저 좋다는 듯 실없이 웃고만 있었다.

일단 원하는 것부터 챙겨 주는 게 맞을 것 같다. 지금 태도는 이렇지만 이 신은 충분한 광인이다.

언제건 돌변하여 나를 ‘수집’해 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미치광이의 기운이 느껴진다. 어쩐지 오싹하려고 해.

통 속의 뇌가 될 수는 없지. 전쟁의 신보다 무섭다.

* * *

리더는 필요한 순간 필요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지침을 내렸다.

애초부터 플랜 A는 저택에서 쉬고 있던 세 명이 처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마무리와 소문내기는 레미와 막내가 한 것으로 퍼뜨릴 예정이었다.

랭커를 제압했다는 명성.

그것만큼 슬럼에서 큰 도움이 되는 명성은 없을 테니까.

우습게도 왕국에는 랭커 살해자라는 칭호도 존재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이른 공격이 시작되었다.

천사는 북부의 왕이 수세에 몰리는 순간 도주할 것이란 사실을 예견한 리더에게 가볍게 감탄했다.

랭커라 불리는 족속들은 대부분 자존심이 강하기에 저렇게까지 줄행랑을 치는 경우는 드물다.

암만 보아도 한 수 아래인 적들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신중할 수 있는 것도 재능 아닐까?

지금은 일견 북부의 왕이 극도로 불리한 상황에 몰린 것 같지만, 이쪽 세 명에게 저 튼튼한 전사를 단숨에 제압할 방도는 여전히 없었다.

저자가 주먹질로 대검을 상대하며 지구전으로 나아가더라도 결과는 장담할 수 없을 정도다.

이대로면 질척한 진흙탕의 예감.

"정말 쥐새끼 같은 녀석이군요. 귀는 늑대의 귀를 달고 있던데. 일단 늑대가 아니라 개 같긴 합니다."

막내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이례적으로 누군가를 강하게 비난하는 모습에 레미가 약간 놀랐다.

그리고 이내 납득했다. 막내의 바깥 삶에 대해서는 대강 들었다.

아마도 저런 이들이 너무나도 많았던 것이겠지. 개인적인 원한도 어느 정도 얽혀 있지 않을까?

카르텔의 조직원으로서도 우직하고 의리가 있어 보이는 남자이니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하죠? 천사의 존재를 그냥 까버릴까요?"

"리더가 어떻게 하건 사후에 이득을 볼 방도는 있다고 했으니까 언니가 편한 대로 하세요."

천사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이대로 날개를 펴고 추적을 시작한다면 아마도 확실하게 저 북부의 왕을 몰락시킬 수 있다.

언젠가 랭커가 될 것이 확실한 고위종족과 슬럼의 왕으로 만족한 잎사귀 요정 전사.

험난한 튜토리얼을 뚫어내고 이곳까지 도달한 유배자들이 판단 내릴 재료로는 충분하고도 남는다.

그 경우 인망이라고 할 것도 없는 북부의 왕에게 남을 것은 없다.

위험부담이라면 46서버 출신의 천사임이 확실시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신변을 노출시키는 것.

이 부분에 대해서는 리더가 자율에 맡겼다.

상황을 보고 판단하라. 예측과 설계만으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럼 추적하겠습니다. 최대한 광고하죠."

"좋네요. 천사의 눈물 길드에는 진짜로 천사가 있다고 널리 알리죠."

레미가 마법을 캐스팅했다.

리더가 연습시킨 술식으로 그리 어렵지는 않지만 결코 간단하지도 않았다.

반짝이는 빛들이 흩날린다. 눈을 멀게 하는 [섬광] 주문을 응용하여 후광처럼 비치도록 만든 무언가다.

천사가 날았다. 날개를 펼치고 깃털을 흩날리며.

때마침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황혼을 배경으로 대검을 든 천사가 떠오른다.

약탈을 일삼고 있던 왕의 부하들이 가장 먼저 흩날리는 깃털과 하늘에 번쩍이는 후광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깃털에 부주의하게 맞은 몇몇은 그대로 중상자가 되었다.

곧 약탈로부터 몸을 숨기던 주민들도 하늘을 나는 신의 사자가 존재함을 알았다.

혼돈의 여신께서 자신의 천사에게 신성을 부여했다.

그다지 전투에 도움되는 권능이 없는 혼돈의 신좌이기에 그저 이펙트만 요란했지만 그걸로 충분하다.

보랏빛 혼돈의 신성이 깃든 깃털들이 너울거리며 눈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장엄하며 환상적인 광경이었다.

그리고 천사가 쫓는 끝에 꼴사납게 고함을 지르며 도망치는 전사가 있었다.

건물 위로 뛰어올라 그 위를 달리고 있는 전사의 머리 위에는 알아보기 좋게 [북부 슬럼의 왕]이라는 칭호가 번쩍인다.

왕의 부하들이 망연하게 멈추어 섰다.

슬럼의 지배는 공포의 그림자로 이루어진다.

신의 휘광마저 깃든 대검의 천사가 포악한 지배자를 추격하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감상을 품게 했다.

"신이시여……!"

"오오, 우리를 구하러 오신 천사님이시다……!"

유배자였던 적이 없는 자들에게는 시스템상의 신이 아닌 그야말로 종교적인 충격을.

"저건…… 엔젤이잖아?"

"고위종족……."

"잠깐만, 그럼 혹시 46서버의 천사가 엔젤이야?"

슬럼으로 밀려나 폭군의 따까리 노릇을 하며 연명하던 왕의 부하들에게는 흔들리는 충성심을.

"돌아가자. 아무리 생각해도 저 줄을 잡는 게 맞는 거 같아."

"와아! 천사다! 천사!"

"이번엔 줄을 정말 잘 잡은 것 같은데요?"

구함을 받고도 의심하여 도망칠 생각만 하고 있던 제리코 부부와 다른 북부 병원구역의 보스들에게는 희망을 주었다.

천사는 계속해서 날았다. 가능한 이 모습을 많은 이들이 볼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북부의 왕이 사태를 깨닫고 돌아섰을 때는 이미 충분히 많은 이들에게 그 추격전의 모습이 보여지고 난 후였다.

그가 으르렁거렸으나 더 이상 그를 따를 자는 남아 있지 않았다.

착지한 천사를 향해 마지막 투지를 불태우는 가운데, 막내가 앞으로 나섰다.

막내는 방패를 내려놓았다. 갑옷도 하나하나 벗어 던졌다.

그렇게 맨몸이 된 후에, 주먹을 들었다.

왕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하지만 이제 물러날 곳도 없었다.

주변을 살펴보아도 구원을 위해 찾아오는 이는 없다. 있다면 진작 있었을 것이다.

힘에 의한 지배는 더 큰 힘 앞에 무너지는 법이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위험은 자초한 것이며 신중함은 어중간했다.

조금씩 사람들이 몰려든다. 전투는 끝났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음을 모든 왕의 부하들이 직감했기에 이곳으로 모여들어 지켜보고 있다.

시선이 많아지자 최후의 자존심으로 왕은 갑옷을 해제했다.

그 역시 삶을 쉽게만 살아오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이 처음도 아니다.

유배자들이 서로 주 장비를 들지 않은 상태에서는 마스터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는 생각보다 레벨의 격차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잎사귀 요정이 특출나게 신체적으로 강고한 것은 아니니 더더욱 그렇다.

"날 이기면 살려는 드리지."

막내의 말에 왕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마스터리는 전적으로 도검에 한정되어 있다.

랭커에 오를 정도의 경험을 쌓은 만큼 최적화를 할 지식도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상대방은 어떨까. 방패를 사용하는 전사는 대부분 주먹이 세다.

힘에 극도로 몰아넣는 마인드맵에선 격투 마스터리도 소소하게 뜨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왕은 1,300레벨대의 랭커다. 아직도 그는 유리했다.

더 이상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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