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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184화 (184/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184화

12단계 - Lv.652 미친 마법사(1)

전사가 마법사를 배척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동급이라면 이기기 힘들어서다.

현대 국가 수준의 법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세상도 아닌 마당.

왕국의 치안은 지구 기준으로 보자면 아주 낮은 축에 속한다.

노지에서 갑작스럽게 전사와 마법사의 대결이 이뤄진다면 전사에게 크게 불리하다.

그러니 멀리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이렇게 아예 다른 터를 잡고 사는 지경까지 온 것이다.

칭호가 신분증의 대신이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만만하지 않아 보이는 칭호를 내걸고 다닌다면 범죄로부터 상당히 자유로워지니까.

반면 너무 휘황찬란한 칭호여도 곤란할 수는 있다.

노골적으로 말해 우리 파티가 보유한 전투력에 온전히 걸맞은 칭호들은 아니다.

상황이 그러했고, 운도 나름대로 따라주었으며, 내가 굉장했기에 달고 있는 칭호다.

한동안은 너무 번쩍거리는 칭호는 숨기고 다닐 필요가 있다.

"점점 풍경이 신기해지네요. 사실 처음부터 신기하긴 했는데. 다니는 사람들이 진짜 신기해요."

데이트를 즐기던 시가지 외곽을 지나 하드스록의 [리프트]가 존재하는 중심구역까지 도달했다.

중간에 신원확인을 하는 검문이 있었다. 리프트는 그 자체로 이권이기에 아무나 집어넣지 않는다.

슬럼과 시가지를 나눈 경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삼엄하다.

왕국의 국가들은 중심으로 갈수록 거칠고 험한 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판타지 배경의 창작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험가’라는 직종들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리프트]를 드나드는 모험가들은 왕국을 지탱하는 약탈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1차 산업 종사자들이다.

그들은 온갖 서버나 차원의 균열을 돌아다니며 그곳의 자원을 채취하여 왕국에 공급한다.

물론 때로는 약탈이 아니라 상인일 수도 있다.

그들은 서버의 NPC, 대륙의 주민들과 거래를 트고 대대적인 사업을 벌이기도 한다.

물론 그런 유배자들은 어느 정도 급이 되는 자들로, 대다수는 일용직에 가까운 육체노동자들이다.

그리고 왕국은, 특히나 하드스록은 그런 육체노동자의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으며 동시에 대우받는다.

"우리 막내 아저씨 못지않은 험악한 인상들도 많네요."

"그렇지만 경찰들도 있지."

"하드스록의 길드 문장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 말이죠?"

"최소한의 치안을 유지하지 못하면 존속할 수 없으니까."

저런 기본적인 제도조차 없다면 리프트 입구에서 기다리다가 전리품을 습격하여 탈취하는 강도짓이 성행하게 된다.

가장 주의해야 할 문제이며 가장 철저하게 통제되는 문제다.

아무래도 모험가들의 자율만으로는 제대로 굴러갈 수가 없기에 얼치기라도 거대 길드 연합의 통제가 필요하다.

그것이 왕국에서 국가의 존재 의의다.

주민 복지 따위가 아니라 말이지.

그런 모험가들이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시가지 중심부는 많은 의미로 분위기가 달랐다.

슬럼의 거칠고 칙칙한 느낌도 어느 정도 남아 있지만 거주구인 시가지 외곽의 정돈된 느낌도 공존한다.

거기에 다양한 종족과 다채로운 장비들이 있다.

풀 플레이트 메일을 착용한 전사가 등에 대검과 어썰트 라이플을 함께 지고 다니질 않나.

거대한 트롤이 쿵쿵거리면서 지나가는데 몸에 손도끼와 수류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기도 하고.

길거리 구석에서 권총을 찬 난쟁이가 사슬낫을 심각한 표정으로 살피며 그라인더질을 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로 말할 것 같으면.

"넌 가능하면 등에 멘 총 쓰지 마라."

"아니 왜요! 저 사격 잘해요!"

"꼬맹이가 더 잘해."

"히잉."

내가 맞을까 봐 무서워서 쏘라고 하질 못하겠다.

하지만 총기는 그 자체로 평가받을 만한 요소다.

진정한 전사라고 총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관련 스킬도 없는 총기는 그 무엇보다 범용성이 높은 원거리 공격 수단이기에 각광받는다.

플라즈마 라이플 정도 된다면 어느 파티의 리더라도 박수를 치며 환영할 정도다.

아니, 오히려 리프트 입장 후에 털릴 위험이 있을 정도기도 하다.

우리 파티는 모두 총을 한 자루씩 들고 있다.

일반적인 수준의 유배자들은 미래로 진입할 기회가 잘 없기 때문에 SF적인 장비들은 대체로 고가에 거래된다.

꼬맹이도 마법사입네 하고 대놓고 다니기엔 좀 곤란한 관계로 설정상으론 마법을 익힌 사수인 것으로 해두기로 했다.

전사들의 마법사에 대한 증오란 것도 참 모순적인 것이라, 그 편의를 아주 이용하지 않을 수는 없다.

적어도 리프트 내부에서는 마법을 구사하는 동료는 든든한 존재니까.

그래서 타협된 결과가 듀얼 클래스거나, 그 정도 능력이 안 된다면 애초부터 그 사이에 위치한 마검사 같은 클래스다.

이 또한 전사의 나라에서는 가치가 높은 파티원으로 평가받는데, 사수이기까지 한 꼬맹이는 어느 파티에서나 환영받을 것이다.

물론 외견이 열 살인 건 엄청난 디메리트인지라 그 장점을 다 상쇄해 버리겠지만.

"지금 우리가 가진 [키 아이템]이면 단계를 상당히 건너뛸 수 있으니까 다른 파티의 협력을 조금 받아보자고."

"그 단계라는 거 되게 어색해요. 게임 같은 설정이라."

"층이랑 똑같은 거야. 미궁은 원래 그랬어."

파티원을 모집 중인 파티 리더들은 많다. 곳곳에 마련된 쉼터들의 게시판을 보면 다양한 일거리가 존재한다.

"민첩 계통 딜러 찾는 곳을 찾으면 나한테 와서 말해. 단계는 10단계 이상. 맵은 고를 필요 없어. 클리어 기록이 필요한 거니까."

"알겠습니다!"

앞 단계의 맵이 클리어되지 않으면 그다음 단계로 갈 수 없다.

하지만 그건 파티 리더 기준이다. 일단은 뚫어야 한다.

그렇게 찾은 파티가 있다면 대기하는 곳으로 가서 면접을 보아야 한다.

셋이서 가자, 아까는 사슬낫을 손질하고 있던 난쟁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끼 난쟁이라 노인 같은 외모이다.

"오, 훤칠한 모험가들이네. 경력 좀 볼까?"

하드스록 공인 인증서를 내민다. 물론 위조되어 있다.

연차를 속이진 않았다.

어차피 10년 차 이상은 자율 기입이다. 체면 문제도 있어서 아직 유배자인가 아니면 기한이 다했는가만 표기된다.

물론 우리는 전부 친애하는 마이어 씨가 조작해 주었다.

원래 미궁의 문서란 그 정도 신뢰도밖에 없다.

그래도 경력만은 엄정하게 기록되고 증명되니 신뢰받을 수도 있다.

우린 그것도 다 조작이지만.

난쟁이 파티 리더는 우리 세 명의 클리어 경력에 만족한 듯했다.

"훌륭하군. 장비도 좋고. 실력도 좋고. 오래 함께하기도 했고. 우리도 그랬는데 함께하던 딜러들이 계약이 끝나서 말이지. 집 샀다고 은퇴하더군."

"그 사람들이 누구였건 우리가 그보다 나을 거라고 장담하죠."

"좋은 관계가 유지되면 좋겠어. 그런데 단검 전사는 굳이 왜 하는 건가? 아, 이건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엄청 드물잖나."

그 시선은 당연히 희우에게 향한다.

희우가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

"튜토리얼을 뚫은 방식이 방식이다 보니 말이죠."

"음, 알겠군. 예쁜 게 꼭 좋지는 않지. 그래서 암살 쪽을 좀 타다가 틀었구먼. 그거 약하니까 다음 회차에선 하지 마."

"참고하지요."

희우의 날개와 링은 위장 마법으로 숨겨두었다.

평범한 인간으로 보일 테니 단지 이런 암시만으로도 여러 고난이 짐작된 모양.

난쟁이 리더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꼬마 아가씨는, 아니지, 실제 나이는 모르니까. 아가씨는 마법을 어디까지 쓸 수 있지?"

꼬맹이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최대한 어린아이 느낌이 나지 않도록 연습시켰다. 겉모습과 다르게 늙어 보이는 편이 좋으니까.

"보조계 마법은 대부분 가능하고 공격 마법도 불은 일부 가능해요."

"공격 마법 쓸 일은 없을 거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마지막으로 나에게 시선이 돌아온다.

"자네가 제일 평범하군그래. 뱀파이어 검사라. 그것도 참 드문데. 프로보이 클랜 혈족이라도 되나?"

"바르바로이긴 합니다만."

"트리가 꼬였나 보군. 껄껄."

함께하기로 결정되었다면 신고를 해야 한다.

허가받고 월급 받으며 일하는 하드스록의 국가 마법사가 지친 표정으로 접수했다.

이로써 이 파티의 기록은 하드스록 데이터베이스에 남아 언제 건 열람할 수 있게 된다.

"통성명이나 하지."

"전 오르골입니다."

희우의 가명은 대거다. 대체 왜 무기 이름을 가명으로 쓰나 물었더니 그냥 기억하기 쉽지 않냐더라.

꼬맹이는 리틀이다. 그야말로 작아 보이는 가명.

"거 참 성의 없이도 지었군. 난 로건일세. 레벨은 공고에 적어뒀다시피 231이고. 어이, 제니! 이리 와서 인사해."

누굴 부르나 했더니 근처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요정 하나가 벌떡 일어나 달려왔다. 고양이 귀가 있으니 잎사귀 요정이다.

쌍검을 차고 있다. 저건 전혀 탱커가 아닌데.

"음냐, 로건 아재. 사람 구했어요?"

"요정으로 탱을 섭니까?"

"아니, 우리 파티는 나 혼자 탱이야. 내가 다 알아서 드리블할 테니 처리만 잘해주면 되네."

"냐하하. 로건 아재 [검은 곰] 길드 소속이에요."

"탱커로 가장 유명한 집단이군요. 그 사슬낫, 어그로 모으는 용도였습니까?"

"리치가 길면 편하거든."

꽤 숙련자들이 맞는 것 같다. 이건 정말로 잘 골랐다.

"자 그러면 오늘도 일하러 가자고. 자네들과 우리가 잘 맞으면 좋겠군."

그런 말을 하며 리프트가 위치한 제단으로 이동한다.

리프트는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 같은 모습으로 존재한다.

타원형의 푸른 에너지체는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렁거림을 보여준다.

그 주변에는 리프트의 에너지로 빛나는 여러 제단들이 있다.

그곳에 [키 아이템]을 파티 리더가 바치면 적합한 곳으로 이동한다.

이번의 경우에는 차원의 틈은 아니고 서버로 이동하게 되어 있다.

"12단계라 난이도는 별로 안 높아. 그냥 좀 강한 짐승들이 많을 뿐이지."

로건이 꺼낸 제물은 숫자 12가 새겨진 이름 모를 짐승의 뿔이다.

튜토리얼 12층 정도의 난이도를 가졌으며, 적은 짐승형 몬스터 위주로 나온다는 뜻을 가진 [키 아이템]이다.

우리가 겪었던 12층은 통상적인 튜토리얼에서는 나오지도 않을 난이도이니만큼 예외로 쳐야 할 것이고.

모든 것이 랜덤인 튜토리얼 이전과는 달리, 어느 정도 범위 내에서 유배자가 갈 곳을 고를 수 있다는 말이 이것이다.

적합한 [키 아이템]을 통하여 자신에게 맞는 곳만 골라 다니며 성장할 수 있다.

고로 정말로 무모한 도전만 하지 않는다면 살아갈 만하다.

튜토리얼을 이겨내고, 클리어에 도전할 생각도 없는 유배자들도 모험가를 직업으로 삼는 이유다.

나는 제단에 제물을 바치는 로건을 한 번 보고 희우를 다시 슬쩍 보았다.

희우도 이제 알고 있다. 확률이 이상하게 튀는 건 자신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걸.

그 때문에 걱정도 하고 고민도 많이 해본 모양이지만 딱히 짚이는 구석은 없는 모양이었다.

왕국 이후에도 설계를 벗어나는 확률이 펑펑 튀어나온다면 그게 꼭 좋은 일일 수는 없다.

험난함은 지금까지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한 가지 기대해 볼 만한 사실은 있었다.

시간의 신도가 된 지금에는 행운의 신이 개입할 여지가 차단되지 않았을까 하는 부분.

서로의 영역에 간섭하지 않는 대신격들의 특성상 정말로 그럴 수도 있다.

빛이 번쩍인다.

방금 결성된 다섯 명의 파티가 스륵 하고 빛 속으로 잠겨 들었다.

긴장하고 있었던 것은 우리 셋뿐이다.

로건과 제니가 멀뚱멀뚱 서서 이동하는 동안 우리는 언제 건 이탈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재고 경계 태세를 취했다.

그 모습에 로건이 조금 의아하다는 듯이 말한다.

"이건 5의 배수 단계가 아닌데. 12단계 정도에서 무슨 보스전 하듯이 그렇게……."

말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부유감과 함께 로딩이 시작된다.

[TIP : 외딴 섬에서 생체 실험을 하는 대마법사라고 한다면 무엇이 떠오릅니까? 기괴한 키메라, 극도로 강화된 사나운 짐승들의 우리 같은 게 떠오르나요? 정답입니다.]

아, 랜덤 인카운터 떴네.

12단계에서 뜰 확률은 거의 없는 인카운터인데. 이건 25단계 보스전에나 적절한 난이도다.

아무래도 시간의 신이 태업을 하는 모양이다. 젠장.

[메인 던전]도 이 꼬라지로 뜨면 안 되는데.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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