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202화
55단계 - Lv.2782 하이랭커 일그림(2)
당연히 사람마다 성격은 다르겠으나 하이랭커쯤 되면 죽음에 조심스러워진다.
그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도전자’를 공표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경우 도전하는 곳은 좀 더 높은 단계일 뿐이지 완전한 미지는 아니다.
PVE는 미궁의 소위 ‘몬스터’라고 할 수 있는 존재들과 NPC들을 상대한다.
애초부터 유배자를 상대하는 PVP와는 결이 다른 행위다.
몬스터와 NPC들은 각자 가진 배경 설정이나 외형으로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를 시사한다.
PVP는 그렇게 미루어 짐작할 수 없기에 위험해진다.
유배자가 클래스마저도 숨기고 다가온다면 미리 알 방도가 적다.
아무리 고레벨이요, 아무리 까마득한 고참이요 혹은 신일지라도.
어느 쪽이 더 부담스러운가를 따진다면 PVP다.
그렇기에 랭커일지라도 PVP에는 조심스럽다.
명백한 승리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한발 물러서서 관망하기까지 한다.
대신 그 명백한 승리를 위해 압도적인 전력 차를 만들어 낸다.
레벨링, 파밍, 소모품의 비축, 승리를 위한 수단은 다양하다.
일그림은 바로 그렇기에 곤란했다.
지금 만전의 무장을 갖추고 왔냐고 한다면 그렇지는 않다.
그리고 그는 게이머 시절에 그다지 고수가 아니었다.
아니, 고수라고 할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진짜 로그라이크가 아닌 로그라이트 게임일지라도 이 미궁의 원본이 되던 게임은 충분히 어려웠다.
제대로 미궁의 끝을 본 적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름대로 고수의 반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정석적인 루트라면 모조리 꿰고 있다.
다만 저것은 그에 해당하는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미궁에서 단련된 분석 능력이다.
방금 전에 일어났던 일이 어떤 것인가.
공간이동의 추적을 허용하여 확실한 공격 명중을 노리는 잡기술.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멀티 캐스팅 디버프.
[오러 블레이드] 같았으나 차원이 다르게 강력한 정체불명의 검기.
그 짧은 틈을 파고든 검붉은 침식형 무언가.
종족이 뱀파이어라 가지는 재생력과 심장을 따로 빼돌릴 정도의 숙련도.
지금도 햇빛에 불타지만 그럼에도 충분한 저항력을 가진 듯한 모습.
카드로 된 시조 뱀파이어라면 [데이워커]라 불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클랜의 혈통일 텐데 프로보이 클랜?
마법의 구사가 능한 것을 보면 바르바로이일지도.
일단 적어도 환혹계의 클랜은 아니다.
그렇다 한들 무기를 잃은 것은 뼈아프다.
위력이 강해서일까 아니면 모종의 무기를 파괴하는 스킬인 것일까.
일그림은 미궁에 존재하는 모든 스킬을 알지는 못한다.
그 사실만으로도 지금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포션을 까서 왼팔을 침식하는 붉은 살점에 부어보았다. 회복되지 않는다.
단순한 도트 대미지 상태이상은 아닌 모양이다.
전사로서 몸에 깃든 막대한 스탯과 패시브 스택이 버텨내고 있을 뿐 좋은 상태는 아니다.
일단 등에 멘 보조 무기를 든다. 막 쓰기 좋은 룬강철 창이다.
상대에 대하여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래도 스펙은 이쪽이 절대 우위임이 틀림없다.
부딪치는 순간 느꼈다. 상대가 더 강했다면 정말로 거기서 절명하는 수도 있었다.
HP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의 문제점이다.
"제길, 가진 것 중 세 번째로 좋은 창이었는데."
아다만타이드는 현재 왕국에서 품귀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크리티컬 판정과 함께 흩어진 게 아니라 부러진 것이니 재활용은 할 수 있겠지만, 내구도는 큰 손해다.
일단 저 마법사? 마검사? 알 수 없는 뱀파이어를 처리하자.
스펙에서 큰 우위가 존재한다면 직접 부딪치지 않고 견제기를 날려도 충분하다.
저쪽에겐 한 발 한 발이 생명의 위기일 것이다.
[제식 투창 - 빛]
액티브 발동.
"도열하라."
허공에 빛의 창들이 수십 발 나타난다.
그리고 붙잡아 던지기 좋은 위치로 도열한다.
본신 능력치에 따라 강도가 결정되는 재질이다.
그대로 하나를 잡아 던졌다.
그리고 다시, 또다시.
계속해서.
빛의 창들이 하늘을 가르고 구름을 찢어발겼다.
번뜩이는 신의 분노처럼 하이랭커의 힘을 담고 저 너머의 어딘가를 향해 날아간다.
* * *
두 천사의 충돌은 내부 공간의 공기를 순간이나마 밀어내 압축시킬 만큼의 충격을 낳았다.
밀려난 공기가 다시 자리를 되찾는다. 기분 탓인지 열기가 실려 있다.
에리나는 충격의 순간 자신이 힘에서 월등하게 앞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상대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도.
상대는 처음부터 정면충돌할 생각은 없었다. 맨주먹과 닿은 단검에 검은 불꽃이 튄다.
그 반대 팔에 그대로 뻗은 주먹이 붙잡혔다.
랭커건 하이랭커건 유배자는 별달리 특수한 종족이 아니라면 인간형이다.
두 팔 달렸고 두 다리 달렸다.
제아무리 빠르고 강력해지더라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육체가 서로 부딪치는 전사 클래스의 싸움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니까 타격 이외의 수단은 여전히 유효하다.
거의 합기에 가까운 흘리기로 주먹질의 방향이 비틀린다.
동시에 팔 한쪽을 붙잡히며 매끄럽게 이어지는 꺾기였다.
에리나는 몸을 뒤집으며 그 방향에 순응했다.
상대는 인간을 상대로 한 무술에 능한 듯하나 공중전에는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다.
이런 공중전에는 힘을 받아야 할 대지가 없다. 당연히 땅에 대고 꺾을 수도 없다.
팔꿈치로 찍으며 밀어내고 왼손으로 잽, 폭탄이 터진 소리와 함께 공간이 찌그러진다.
하나 놀랍게도 상대가 손을 받아낸다.
그대로 이어지는 전진과 함께 강렬한 스트레이트.
맹격은 지속된다.
머리를 노리는 걸 상대가 쳐낸다.
그사이 복부로 들어가는 훅.
간발의 차이로 옆구리를 스친다.
턱을 노리는 어퍼컷.
오히려 머리를 내리쳐치며 이마로 받았다.
피가 튄다. 마력을 한순간 집중하여 죽지 않고 받아낸다.
훌륭하다. 그 용기도, 살 것이란 직감도.
거기에 머리가 진탕 흔들릴 텐데도 티가 나지 않는다.
한 바퀴 돌며 왼쪽 팔꿈치로 팔을 찍는다.
틀림없이 뼈가 부러졌겠지만 부러진 팔 그대로 가드를 유지하여 피해를 줄인다.
충분히 넓은 복도이건만 폭풍이 불었다.
그 덕에 기천사의 추력으로도 순간 흔들릴 정도의 강풍이 발생하고 실로 상대의 자세 제어가 무너진다.
크나큰 빈틈.
계속 돌격하여 앞차기.
단검으로 받아낸다기보단 갖다 댄 수준이지만 방어한다.
자세 제어가 무너진 덕에 포탄처럼 날아갔다. 대기가 다시 요동친다.
부딪친 벽이 고스란히 무너졌다.
에리나는 칭찬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스펙 차이에도 공방이 성립은 했다.
"좀 치는데? 레벨은 한 1500되나? 너 몇 위야?"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반응하지 않는다. 어쩌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무너진 벽 속에 파묻혀 무언가 노리고 있나?
에리나가 생각하는 전사는 당당히 돌격하여 그런 꿍꿍이를 분쇄하는 존재다.
대지를 크게 내디딘다. 힘을 집중하는 요령이 있기에 무너지지는 않으나 힘의 여파가 유적 바닥을 타고 흐른다.
1층 전체가 진동하는 힘은 고스란히 에리나의 추진력이 되었다.
낮고 깊은 대지의 울음과 에리나가 돌격하는 파공성이 교차했다.
한순간에 무너진 벽에 도달하고 무심하게 지른 정권이 벽을 통째로 뜯어낸다.
그 사이로 양팔로 얼굴과 몸통을 보호한 기천사가 날아올랐다.
포션을 통한 회복이 보인다.
기천사는 과감하게도 에리나의 목을 노린다.
고개를 틀어 피하고.
다시 강렬한 훅.
기천사 특유의 호버링이 유령처럼 몸통을 옆으로 옮겨 피해낸다.
에리나는 개의치 않고 그대로 뒤돌며 돌려차기를 넣었다.
빗나가 맞은 벽이 다시 우드득 하고 찌그러진다.
그러나 다리에 서늘한 감각이 동시에 느껴진다.
피가 튀었다.
상대의 단검이 다리를 베었다.
어느새 다리를 노리기 좋도록 아래로 이동해 있다.
확실히 관성을 무시하고 이동하는 기천사의 날개는 성가시다.
그래도 에리나는 개의치 않았다.
깍지를 끼고 내려친다.
이미 공격을 시도했기에 생긴 허점이다. 이건 못 피한다.
펑 하고 폭음이 울렸다.
손맛이 허전하다. 많이 겪는 방어법이다.
민첩 전사들은 힘에서 밀리는 대신 더 정밀한 동작이 가능하다.
이건 공격의 힘이 상대의 몸이 아닌 대지로 흘려지는 감각이다.
하나 그렇다면 흘려내지 못할 때까지 두들겨 패면 되는 것이지.
에리나는 그대로 어떤 스킬도 없이 완력을 휘둘렀다. 어차피 격투가로서 최적화한 마인드맵은 액티브를 그다지 채용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냥 그 자체로 강하다.
벽이 스티로폼처럼 찌그러지고 먼지가 날린다. 시야가 방해된다. 그럼에도 천사의 예민한 오감은 상대를 놓치지 않았다.
시각이 기능하지 않는 환경에서의 공방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그 맹공을 상대가 놀라울 정도로 잘 받아내고 있었다.
에리나가 아는 기천사는 치천사에 비하면 내구도 위주의 천사는 아니다.
의외의 선전에 약간 의구심을 느낄 시점에서 상대가 마침내 반격에 성공했다.
에리나의 주먹을 휘감듯이 타고 올라오는 뱀 같은 움직임으로 단검이 들어온다.
오랜만에 느끼는 섬뜩함이다.
팔을 얼른 빼냈으나 치천사의 강인한 피부는 이미 피투성이다.
이어지는 다음 공방에서 적의 공격은 더 예리해졌다.
정확하게 힘줄을 노리고 근육을 노린다.
어디를 공격해야 몸을 못 쓰게 되는지 너무나도 잘 아는 상대다.
순식간에 양팔을 제대로 못 쓰게 되었다.
"이거 PVP 전문이군. 악질인데."
그런 유배자가 괜찮은 심성을 가진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살인을 즐기거나, 스릴을 즐기거나, 혹은 남의 장비를 빼앗은 편이 미궁을 떠도는 것보다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거나.
에리나는 잠깐 물러났다.
포션을 깐다. 대충 뿌린다. 팔이 회복된다.
"저는 사람보다 괴물 더 잘 잡는데요!"
상대는 추격해 오는 대신 목소리를 내었다. 이번에는 티가 난다. 토할 것 같은 비명에 더 가까운 목소리다.
하지만 그럼에도 의외로 낭랑하게 울리는 목소리는 생각보다 어렸다.
"그건 내가 판단한단다. 아가야."
"아니! 왜 맨날 날 보면 다들 애 취급하는 건지!"
에리나는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살인에 능한 녀석이지만 궁지라는 것을 알 것이다.
여기가 저 천사의 무덤이 될 것이다.
* * *
타는 듯한 붉은 머리의 천사는 끔찍하게 강했다.
애초에 날개가 깃털이니 치천사다.
치천사는 단순한 힘에서는 기천사를 앞선다.
그러나 지금은 속도로도 따라잡을 수 없다.
저 천사는 너무 빨랐다. 무기도 쓰지 않으니 놓치게 유도하여 마스터리 보정을 빼낼 수도 없다.
공격에 익숙해지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포션을 모조리 소비해야 했다.
천사가 된 이후로 일격, 일격에 피멍이 들고 골절이 일어난 적은 없었다.
지금 일어나고 있다.
날붙이도 잘 안 드는 종족이 천사인데.
마치 인간 시절 쇠뭉치로 두들겨 맞는 기분이다.
상대 주먹질 한 번 한 번에 바닥이 쩍쩍 갈라진다.
그 물리력을 마력을 동원한 흘리기로 최대한 바닥으로 해소했기에 망정이지.
공중전은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중에선 흘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
다른 물체로 힘을 흘려 해소할 수 없다면 죽을 수도 있다.
"후우우."
기본기. 기본기. 그래 그 와중에도 그것만은 희우가 우위였다.
상대는 전문적으로 무언가를 배웠다기보다는 경험에서 체득한 형식의 싸움법이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무언가를 죽이기 위해 단련되어 온 희우에 비할 바는 아니다.
아저씨의 말을 다시 떠올리자.
PVP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 스킬의 파악. 모르면 죽어야 하는 일이 수없이 많은 곳 미궁이다.
바로 그다음이 기본기다.
얼마나 사람 죽이는 법을 잘 아느냐.
관절, 힘줄, 근육의 위치, 핏줄, 치명적인 출혈을 유도할 수 있는 부위, 기절을 유도하는 부위, 끊어내기 용이한 신경.
천사는 대부분의 신체구조가 인간과 흡사하다.
그리고 비록 대상이 사람은 아니었지만 희우는 바깥에서도 분명히 무언가를 죽이는 데 있어서 프로다.
동시에 정씨 가문이 오랜 기간 갈고 닦은 무술의 달인이다.
그랬기에 버텨내었다.
정신없는 연격이 눈에, 몸에 익숙해지자 바로 치명적인 일격을 꽂았다.
조금만 더 빨랐다면, 더 정교했다면 정말로 치명타가 되었을 공격은 약간의 부상을 입히는 데 그쳤다.
그 후에 상대가 여유를 부리는데도 추격할 엄두를 낼 수가 없다.
잠깐의 공방으로 팔다리부터 타고 전해져 내장까지 손상되었다.
갈빗대도 여러 번 나가고 뼈가 이상하게 뒤틀리기까지 했다.
치고받는 건 자살행위다.
차라리 운석을 받아내는 편이 더 쉬울 것 같다.
흙먼지가 가라앉을 때까지 짧은 휴식.
검을 쥔 주먹을 쥐었다 편다. 부상은 회복되었으나 찌르르한 감각은 남아 있다.
그게 사라지지 않았기에 차라리 살짝 베어 상처를 낸다.
팔이 화들짝 놀라 말을 듣기 시작한다. 지금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면 죽는다.
약간 가라앉은 흙구름 사이로 시야가 트인다.
원래부터 골렘이 드나들던 넓은 복도는 거의 세 배로 넓어져 있었다.
주먹질로 터널 확장공사를 할 수 있는 존재라니.
때맞춰 쿨럭 하고 속에서 무언가 올라온다. 뱉어보니 시뻘건 피다.
상처가 나았어도 충격에 의한 내출혈은 남은 모양이다. 속이 뒤집힐 것 같다.
아아, 천사의 피 비싼 건데.
상대를 보았다. 붉은 머리의 천사가 갑자기 팔을 벌렸다.
뭔가가 나타났다.
희우는 판단했다.
지금 들어 가야 한다.
소환되는 무기.
저런 게 가장 위험하다고 배웠다.
* * *
에리나가 여유를 부린 것은 여유라기보다는 준비를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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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환]
[장비 종류 : 무기]
[무기 종류 : 건틀렛]
[명칭 : 전능한 충격(Allmight imp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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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의 귀중한 장비인 아티팩트.
그중에서도 특정한 아티팩트들은 소환 기능을 지원한다.
항상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원할 때 불러들일 수 있다.
이번에는 내구도를 아끼지 않는다. 사람 죽이기에 능한 녀석들을 상대함에 방심은 금물이다.
실제로 신좌에서 죽어 쫓겨나 본 입장에서 더 확실하게 와 닿는 격언이다.
아티팩트라고 하여 모두 먼 과거의 물건은 아니다.
때로는 어느 정신 나간 마도 공학자가 기이할 정도의 집착으로 제작하는 물건도 있다.
그 광기와 집착의 산물에는 미궁의 축복이 깃든다.
양 주먹에 빛이 입혀진다. 파르스름한 광채는 고스란히 금속이 되었다.
팔에 끼는 쇠주먹인 건틀렛은 발전하면서 좀 더 이상한 무언가가 되었다.
푸른색과 검은색을 기조로 한 정교한 기계장치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곧바로 팔에 달라붙는다. 속장갑이 장갑처럼 끼워지고 톱니가 가득한 외부장치가 달라붙는다.
찰칵찰칵 기계가 맞춰지는 소리가 들린다.
끝으로 외부 장갑이 딱딱 맞물려 장착이 된다.
로봇팔 같은 느낌은 없다. 아주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손에 딱 맞는 금속 장갑이다.
상대는 이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반드시 위험하다는 사실만은 깨달은 모양이었다.
다리에도 마저 입혀지기 전에 기천사가 움직였다.
실로 섬광과도 같은 속도였다. 음속의 벽이 찢어지기 전에 이미 에리나에게 도달한다.
다리 쪽 각반의 전송이 멈췄다.
하지만 충분하다.
달려드는 단검을.
손을 뻗어 붙잡았다.
검은 불꽃이 세차게 튀었다. 아다만타이드 재질이라. 좋은 걸 쓰네.
다른 팔로 날개를 잡으려다가 방향을 바꾸었다. 핀 형태의 날개는 붙잡기 힘들다.
대신 팔뚝을 붙잡는다.
기술적으로 유능한 이는 단순한 완력으로 대하는 것이 최선이다.
상대가 탈출하려고 했으나 맨손일 때와는 차원이 다른 완력이다.
에리나는 그대로 몸을 크게 틀었다.
아주 과장된 동작 같지만 높은 스탯과 패시브 스택의 보정을 받은 그녀는 정확하게 힘의 방향을 컨트롤했다.
막대한 신체 능력이 고스란히 붙잡은 기천사에게 가해지는 운동에너지가 되었다.
한 바퀴 크게 돌고 손을 놓았을 때, 던져진 천사의 속도는 음속의 몇 배를 웃돌았다.
충격에 기천사는 상처가 났고 그 출혈이 다시 증발하여 증기가 된다.
운동에너지가 변환된 열기가 주변에 훅 끼쳤다.
벙커 버스터가 터진 것과도 같다.
유적의 1층이 흔들리며 귀퉁이가 무너져 내렸다.
그럼에도 죽진 않았을 것이다. 천사란 그런 존재다.
유적의 천장으로 집어던졌으니까 벽을 뚫고 섬 위로 날아가리라.
그렇게 생각하고 따라가기 위해 날아올랐으나.
상대가 돌아왔다.
마치 시간의 단절이 있다는 듯 부자연스럽게.
아니 틀림없이 부자연스럽다. 감지 못한 [시간 정지]가 있었다.
미처 생각도 못 한 힘이 내리꽂혔다.
[슈퍼 히어로 랜딩]
그 힘의 크기를 깨닫는 순간 에리나는 반사적으로 대응했다.
지하의 정령왕을 의식하여 자제하고 있던 파괴적인 공격.
지금은 하늘을 향하니 문제없다.
유니크 액티브 [무명신풍류 - 일섬(一閃)]
내리꽂는 섬광과 치고 올라가는 섬광이 충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