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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203화 (203/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203화

55단계 - Lv. 2782 하이랭커 일그림(3)

나는 저 스킬을 알고 있다. 창을 사용하는 전사가 범용성 높게 채용할 수 있는 원거리 견제기다.

물론 전사이니만큼 위력은 견제에 지나지 않으나 현재의 스펙 차이라면 이걸 맞으나 저걸 맞으나 죽는다.

상대가 그 정도로 내가 허약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일반적인 랭커 마법사는 전사의 견제기에 사망할 만큼 방어 수단이 미약하지는 않다.

하지만 [마투사]와 [소드 마스터]는 다르다. 이 클래스는 방어와 관련된 보정이 그냥 제로다.

다만, 나는 충분히 불가사의한 공격 수단을 보여주었고 상대의 오판을 유도했다.

상대는 적어도 나를 일반적인 랭커급 마법사, 개중에서도 PVP에 빠삭한 질 나쁜 살인마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창잡이 하이랭커, 43서버의 문제로 나를 찾아다닐 녀석이라면 ‘일그림’이라는 녀석일 것인데.

삼의회가 알려준 사실에 따르면 제법 오만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즐기는 녀석이었다.

그게 온전한 진실일지는 모르나 최소한 쫄아서 물러날 놈은 아니겠지.

그러니 시간벌이를 위한 견제가 끝나고 판단의 결과대로 직접 공격을 가해올 터.

투쾅!

그런 와중 다시 창이 날아왔다. 초당 한 발씩은 발사되고 있다.

풍압에 휘말려도 치명적이기에 빠르게 [블링크]로 범위에서 벗어난다.

공간이동이 아니라면 피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다.

체감상 투창이라기보다는 대공 레일건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간발의 차이로 내가 사라진 자리에 투창이 지나간다.

공간이 살포시 일그러지며 빛을 산란시켰다.

스킬로 이루어진 빛의 창은 그대로 태양을 향해 날아간다.

투쾅!

그리고 다시 다음 투창이 날아든다.

이미 시야는 탁 트여 있다.

연속되는 투창이 운해의 구름마저 모두 걷어버렸다.

이건 좋지 않다. 소모전으로 가면 백전백패다.

몇 가지 마법을 동시에 캐스팅한다.

마인드맵이 보정을 가하는 마법 구사 능력 자체가 사정거리를 줄이는 대신 빠른 발동을 위해 특화되어 있다.

공간이동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마법이다.

소모가 극심하다.

하지만 다음 일격을 위해 공간의 균열을 동시다발적으로 열 준비를 한다.

그리고 하나 더.

멀티 캐스팅을 최대로 해본 것은 열 네 개 까지다.

실전에 배치가 가능한 수준이면 여덟 개가 한계다. 옥타 캐스팅이라고 하자.

술식을 완성하고 발현만 지연시키는 마법사의 기본적인 테크닉, [메모라이즈]까지 동원한다면 한계는 백 단위긴 하다.

하나 그건 아까 디버프를 미리 캐스팅하고 때려 박느라 모조리 소비했다.

또다시 날아오는 투창, 캐스팅하여 [메모라이즈]해 둔 [블링크] 하나를 다시 소모한다.

극심한 마력 소모에 멀미가 일어나려고 했다.

평소에는 쓰지 않는 소매틱(Somatic), 수인(手印)까지 동원한다.

왼팔로는 무수한 공간계 마법을 끊임없이 메모라이즈하고, 오른손으로는 대지와 불의 복합 술식을 캐스팅.

완성 되는 순간 발현시켰다.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일그림의 시선이 느껴진다.

순간적으로 나를 본 후, 쏟아지기 시작하는 운석을 본다.

아마 몸으로 때우겠지.

* * *

일그림은 혼란에 빠졌다.

이 자식 뭐지?

마법사인가 검사인가.

마검사라고 하기에도 이질적이다.

소드 마스터인가 싶다가도 뭔가 아닌 거 같다.

대체 뭔지 알 수가 없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어떻게든 되살려야 한다.

100년 전 T튜버들이 올리던 온갖 기묘한 빌드들을 떠올려라. 저딴 게 하나 정도는 있었을 법도 한데.

스쳐 지나가는 몇 가지 가능성.

애초에 말도 안 되는 공격력이었다.

방어력 관통이 100%라도 되는 것 같은 압도적인 공격.

하지만 그런 게 가능할 리는 없다.

침투형 물리 마법 복합 공격인가? 오러 블레이드도 따지고 보면 물리적 마법 비슷한 거라고 들은 거 같긴 한데.

이게 참 어렵다.

일단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일그림은 상대의 스펙이 높을 가능성을 배제하기로 했다.

최소 한도로 잡아도 마법사와 검사를 병행하고 있다.

전사 단일 클래스인 그보다 스펙이 높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야말로 전사답게 근접전이다.

전문 마법사가 아닌 이상 마력이 넉넉할 리도 없고 도망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전투가 개시되고 전장을 옮긴 지 불과 1분.

일그림은 결단을 내리고 투창을 거두려고 했다.

그런데 그 결단은 상대가 더 빨랐다.

투창을 공간이동으로 피하던 상대의 오른손에서 붉은 스파크가 튄다.

급격히 퍼져나가며 발현하는 술식은 하늘이다.

갑작스레 붉어지는 하늘에 일그림은 생각을 멈추어야 했다.

잘 아는 마법의 전조다.

상징적이면서도 파괴적이기로 유명한 마법.

하늘에서 불타는 파괴의 권화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느껴지기로는 특별히 강화된 [미티어 스웜]은 아니다.

그렇다면 저건 공격을 위한 수작이 아니다.

랭커급의 PVP에서 마법사들이 전사를 상대할 때 흔히 저지르는 것이 지형을 날려버리는 것이다.

전사에게 지형은 몹시 중요한 요소다.

무기를 어떤 식으로 사용하건 전사는 대지를 밟고 있을 때 가장 강하다.

땅을 강하게 내딛는 반발력을 고스란히 무기에 담아낸다.

제대로 힘이 들어간 공격이란 것은 그런 거다.

하지만 연약한 대지는 전사 본인과 다르게 쉽게 바스러진다.

운석의 충격에 뒤엎어진 대지는 전사에게 만족스러운 발판이 될 수 없다.

운석을 모두 요격할 수 있을까?

가능은 하지만 상대가 그러도록 내버려 두진 않겠지.

그건 악수다.

보조로 가지고 다니는 무기는 이것까지다.

모두 잃으면 마스터리 보정이 사라진다.

어차피 운석으로 타격을 입힐 생각은 아닐 터.

그 기묘한 검기에 대응해야 한다.

동시에 운석이 낙하했다.

일그림은 몇 가지 방어적 스킬을 발동하며 충격에 대비했다.

온몸을 뒤흔들고 대지를 갈아엎는 운석의 파괴력도 하이랭커의 영역에 도달한 전사를 해하지는 못한다.

강력한 열기가 피해를 가하지만 열이건 냉기건 마인드맵에서 힘을 가득 찍다 보면 내성은 저절로 메꿔진다.

하지만 몸이 날아오르는 것만은 어쩔 수 없다.

별다른 대미지가 없더라도 인간의 질량일 뿐이니까.

대지가 갈라지고 폭압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인간의 질량은 허공을 정신없이 날아다닌다.

마구 튀어 다니는 가운데 일그림은 정신을 집중했다.

진짜는 아마도 공간이동으로 온다.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형태였다면 이미 시도했겠지.

스릴과 서스펜스가 느껴진다.

내키건 내키지 않건 미지의 상대를 마주하는 것은 즐겁다.

일그림은 사납게 미소 지었다.

이런 모험을 즐기지 않는다면 어찌 도전자로 남았겠는가.

물론 좀 더 평화롭고 확실한 방향이라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지금 한 가지 확신하게 된 것이 있다.

이 자식은 틀림없이 [게이머] 태그를 달고 있는 놈이다.

그것도 아주 썩다 못해 화석 연료가 된 녀석.

그리고 허공에서 위치가 잠깐 안정되는 순간, 일그림은 지금이라고 느꼈다.

상대도 같은 생각을 했음이 분명하다.

집중하면 시간의 흐름이 느려지는 듯한 기분을 받는다.

민첩직 스킬에는 실제로 그런 효과를 가진 [클락 업]이란 스킬이 존재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다.

아드레날린이 들끓는 와중 온몸의 감각을 바짝 곤두세운다.

수없이 잘게 쪼개진 찰나의 사이에서 허공에 푸른 불꽃이 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나가 아니다.

수십 개의 공간 균열이 동시에 발생한다.

진짜는 하나다.

맞추지 못한다면 정말 죽을 수도 있다.

일그림은 전투의 전율이 온몸을 바짝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 덕이었다.

일그림은 시간이 멈추는 것을 느꼈다.

일반적인 [시간 정지] 마법과는 전혀 다른 감각.

그 역시 유배자로서의 삶에서 단 한 번 겪어보았기에 알 수 있는 감각.

시간의 신의 권능으로 세상이 잠깐 멈춰서는 그것.

* * *

충분한 경험을 쌓는다면 누구나 멈춘 시간의 틈새를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거기서 좀 더 훈련한다면 그 사이에 끼어드는 것도 가능하다.

이 기묘한 세계에서 정점을 노리자면 반드시 익혀야할 요령이다.

그러나 그렇다 한들 그것이 일어날 타이밍을 대강이나마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반응 속도에서 큰 차이를 불러온다.

하물며 시간의 신의 권능은 평범한 [시간 정지]보다 은밀하다.

나는 희우가 시간의 천사임을 알고 있었기에 제때 그 흐름에 합류했다.

일그림이 그것을 따라 들어온 것은 상정 외였다.

"그렇게 쉽게는!"

공간의 균열 속에서 내가 나타나자마자 색채를 되찾은 일그림이 창을 휘두른다.

사실 그건 휘두른다고 말해도 되는지 의심스러운 어떤 일격이었다.

얼어붙은 시간 속에서도 광풍이 몰아치는 기분이 들었다.

실제 물리적 여파는 시간이 다시 흐른 후에 일겠으나 기세만큼은 그러하다.

하지만 정지한 시간 속이라는 환경은 특수하다.

휘둘러지는 창의 여파만으로도 나는 위험했겠지만, 멈춘 시간 속의 매질들은 충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다음 순간, 일그림의 두 번째 창이 물질 분해 블레이드와 맞닿았다.

있는 대로 마력을 구겨 넣은 룬강철은 한순간 버텨내는 듯했다.

하지만 씌워진 마력이 얼마나 막대하건 오러 블레이드의 절삭력에 흠집조차 나지 않을 수는 없다.

약간의 흠집이라도 생긴다면 그 사이를 미세한 마력의 포말이 채우고, 터진다.

내부부터 무너져 내리는 창을 보며 일그림은 몸을 반대로 틀었다.

주먹질이다.

정상적으로라면 그 속도는 내가 대응할 수 없어야 한다.

하지만 한순간에 무기를 잃은 전사의 몸에서 마스터리의 보정이 빠져나간다.

공격력, 속도, 정밀도, 하다못해 체력까지.

모든 것은 마스터리의 보정을 받는다.

제 무기를 잃는다면 유배자는 상상 이상으로 약해진다.

막내가 북부의 왕을 상대로 주먹다짐에서 승리했듯이.

힘을 잃은 주먹은 어떻게든 반응할 수 있다.

마법적 염동력을 불러일으킨다.

재생할 수 있으니 팔은 좀 험하게 써도 된다.

검을 쥔 팔이 우드득하고 부러지며 주먹을 향해 꺾인다.

아직 그 파괴적인 검기는 남아 있다.

팔을 잃을 수는 없을 테니 물러나…… 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피의 군주]에 딸린 강화된 소환수들을 불러낸다.

내 가슴팍에서 피어난 커다란 늑대가 대신 맞고 박살 난다.

검기는 일그림의 팔을 베고, 그대로 기세를 잃지 않은 채 다리를 사선으로 그었다.

직후에 전진하여 와서 닿은 주먹이 내 몸을 박살내 으깨버렸다.

조금 먼 곳에서 재생하며 화를 냈다.

이 무식한 전사 놈 같으니라고.

* * *

에리나는 똑똑히 보았다.

기천사의 몸을 휘감은 지극히 스킬적인 물리력은 온전히 내지르는 단검 끝에 집결되어 있었다.

저 스킬이 무엇인지는 안다.

[슈퍼 히어로 랜딩].

어지간한 바보가 아닌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굳이 쓴다면 종족이 천사일 때가 최선이다.

습득 난이도에 비해 위력 자체는 터무니없긴 하다.

저 물리적 충격을 온전히 시전자가 몸을 감당해야 하기 반쯤은 자살공격이기도 하다.

이렇게 누군가를 쿠션으로 사용한다면 의미 있는 공격이 될 수도 있다.

천사는 잘 박살 나지도 않을 테니 포션에 여유가 있다면 사용해 볼 만도 하다.

물론 에리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유니크 스킬 [무명신풍류]는 딸려 있는 패시브가 적은 대신 액티브를 여럿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 하나하나는 별다른 쿨다운 없이 연사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게 딱히 액티브의 한방 위력이 낮다는 의미가 되지는 않는다.

스킬의 보정을 듬뿍 머금은 막대한 물리력이 부딪힌다.

에리나의 오른 주먹은 약간의 손상을 입었고 내구도가 뭉텅 깎여나갔다.

잠깐은 주먹을 쓰기 힘들 것 같다. 포션으로 회복하더라도 후유증이 남을 정도의 충격이다.

몸은 날아가지 않았다.

고도로 압축된 힘은 정확히 집약되어 서로를 향해 발해졌고 무분별하게 퍼져나가지 않았다.

그저 파문이 되어 사방을 울리게 했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에리나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기천사가 허물어진다.

검을 역수로 쥐고 내리찍었던 손이 무기를 놓친다.

핀 형태의 날개 몇 장이 빛을 잃고 충격에 휘말려 스러진다.

자세를 제어할 수 없게 되니 몸의 균형도 잃는다. 에리나는 굳이 마무리하지 않았다.

이겼으니 이야기를 들어볼 수는 있지.

멀쩡한 왼손으로 머리를 으깨는 대신 멱살을 그러쥐려 하였다.

상대가 웃고 있었다.

피투성이의 얼굴로 미소를 짓고 있다.

엄습하는 오싹함.

불길한 무언가가 추가적으로 다가온다.

에리나는 고개를 들었고.

또 하나의 섬광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무엇인지 생각할 틈은 없었다.

유니크 액티브 [무명신풍류 - 굉타(轟打)]

왼손으로 다음 공격을 마주해야 했다.

크게 좋지 않다. 굉타는 일섬과 달리 집중되지 않고 퍼지는 공격이다.

심지어 에리나는 오른손잡이다.

미궁의 무수한 보정은 결국 신체 능력을 증폭하는 것이다.

격투가가 주로 쓰지 않는 손으로 날리는 공격이 상대적으로 약함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

다시 한번 떨어지는 [슈퍼 히어로 랜딩]과 에리나의 왼 주먹이 부딪힌다.

* * *

꼬맹이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관측하고 있었다.

[은빛 섬광]은 유니크 스킬인 동시에 꼬맹이의 천사 엄마가 이미 습득한 [궤적 재생]의 상위 스킬이다.

그다지 높은 등급의 스킬이 아닌 [궤적 재생]은 단지 일반적인 공격을 잠시 후에 한 번 더 재생할 뿐이다.

중위 스킬을 지나 상위 스킬의 영역으로 간다면 다른 스킬마저 다시 재생하는 [은의 궤적]이 된다.

애초에 [은빛 섬광]은 [은의 궤적]과 연계하는 스킬이다.

당연히 습득 조건에 해당하기에 이미 습득했다.

그 결과가 두 번 떨어지는 [슈퍼 히어로 랜딩]이다.

「지금이다. 가라.」

상황을 지켜보던 여신님의 지시가 떨어진다.

꼬맹이는 적이 파악하지 못한 마법사 전력이다.

이렇게 적이 다른 파티원의 존재를 신경 쓰지 못하게 되는 순간 나서기 위해 기다렸다.

바리바리 [메모라이즈]해 둔 무수한 마법 술식을 등에 지고 꼬맹이는 달려갔다.

넓던 복도는 짧은 시간동안 너무 여러 가지 충격이 가해진 나머지 꽈배기처럼 뒤틀려 있다.

[메모라이즈]해 둔 것 중 하나인 비행 마법을 동원하여 직선으로 이동한다.

아직 서툰 박쥐 비행보다 이편이 더 낫다.

두 천사의 격전지는 이미 너무 넓어져서 투기장에 가까워져 있다.

무너진 바닥 아래로 유사 정령계가 보인다.

꼬맹이는 재생되는 두 번째 충격과 에리나가 부딪히는 순간 현장에 도착했다.

의식을 잃은 천사를 [메모라이즈]한 마법이 소환한다.

시야에 들어와 있으니 바로 옆으로 전송 완료.

다시 모골이 송연해지는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두근두근했다.

지금까지는 항상 보조 역할만 했다.

이번에도 보조라면 보조지만. 단독으로 몹시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았다.

시간의 신전 이후로는 처음이다.

실수해서는 안 된다.

두 번째 충격을 견뎌낸 붉은 머리의 천사가 이쪽을 본다.

꼬맹이는 마법사임을 최대한 드러내는 공격을 퍼부었다.

당연히 소용없다.

천사의 마법저항력은 끔찍할 정도로 높으며, 레벨의 격차는 말할 것도 없으니까.

하지만 마법사임을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천사는 굳은 표정으로 팔을 뻗었다.

온전한 상태가 아니다. 그 억센 치천사의 날개가 부러져 꺾여 있다.

공격 대 공격으로 온전히 상쇄하기에는 너무 급히 대응한 탓이리라.

「저 무기는 [전능한 충격]이 확실하군. 저렇게 생긴 게 또 있진 않을 테니.」

‘준비한 대로 하면 되겠죠?’

「그래. 이제 저걸 쏠 거다. 애초에 격투가와 사수 공용 무기거든.」

* * *

아티팩트의 각반 파츠가 마저 전송된다.

기천사가 이 무기의 완전한 소환을 막아낸 것은 중요한 한 수가 되었다.

각반이 있었다면 왼팔 대신 다리로 받아내었을 것이니.

맨다리로 받아낼 공격은 아니었다.

현재 에리나의 양팔은 잠깐은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면 몸 전체의 균형이 어긋난다.

그때 나타난 미지의 마법사는 곤란한 문제였다.

기천사를 빼돌린 걸 보면 파티원일 터.

에리나는 가장 쉬운 길을 택했다.

뭔가 하기 전에 사격한다.

손바닥을 조준하듯 뻗는다.

귓가에 울리는 아티팩트의 기계음.

[Cannon Mode Set Up.]

팔다리의 [전능한 충격]이 분해되어 펼쳐진다.

무기 자체에 액티브가 있는 경우도 있다. 전사계통 무기에 가장 흔하다.

자체적인 에너지원을 가지고 움직이는 [전능한 충격]에는 포격이 탑재되어 있다.

에리나의 좌우로 길게 펼쳐진 무기가 포구가 되었다.

눈에 보일 듯이 선명한 마력의 선이 그 사이를 이어 실체를 만든다.

[Blast Shot Ready.]

마법사의 방향을 보며 주먹을 쥔다. 그것을 트리거로 발사.

압축된 충격파가 길게 꼬리를 끌며 쏘아졌다.

이건 이렇게 보여도 물리 공격이다.

마도공학의 산물은 마법 공격이 되지 않는다.

아티팩트의 모든 동력을 이 일격에 때려 넣었다.

[전능한 충격]이 힘을 잃고 돌아와 평범한 강철 건틀렛과 각반이 된다.

하지만 쏘아진 충격파는 이미 충분히 확장된 복도를 더 크게 개장하며 전진했다.

마법사와의 거리는 그리 멀지도 않다.

이런 공격에 대응했을 리가 없으니 이걸로 끝.

일그림은 제대로 처리했는지 보러가야겠다.

그리고 에리나가 그렇게 단정 짓는 순간.

푸른 스파크가 크게 터져 나왔다. 거대한 공간 균열이 입을 벌린다.

균열은 포격을 통째로 삼켜버리고 다시 입을 닫았다.

"뭐?"

저게 어디로 간 거지 그럼?

이미 바깥에서는 일그림과 다른 녀석의 전투가 벌어지는 참이다.

땅이 흔들리고 폭음이 들려오는 것은 여전하다.

그 사이로 이질적인 폭발음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에리나는 와락 인상을 찡그렸다.

* * *

마법사에게는 사수 대책이 필요하다.

원거리에서 마법보다 훨씬 빠르게 날아드는 포격은 모든 마법직의 골칫거리다.

전사처럼 그걸 몸을 때울 내구도가 없는 와중에 캐스팅할 시간은커녕 목숨 보전조차 힘들다.

그러나 마법사는 본래 미리 전투를 준비하는 클래스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

이 말이 그보다 잘 어울리기도 힘들지.

제대로 준비된 마법사는 마력이 모두 떨어질 때까지는 가장 강력하다.

꼬맹이가 미리 신호를 보내왔다.

전투 와중 저쪽의 상황을 들으며 나와 여신님이 즉석에서 입안한 계획이었다.

하이랭커급 중장 전사의 방어력을 뚫어낼 공격력은 당연하지만 같은 하이랭커에게 있다.

공간 균열의 출구를 유도한다.

푸른 스파크와 함께 일그림을 향해 입을 벌린다.

그 속에서 사수 계통 아티팩트기도 한 [전능한 충격]의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재생하던 일그림이 그 포격에 휘말린다.

죽었으면 좋겠지만…….

다음 순간 일그림이 돌진해왔다.

제대로 재생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몇 가지 스킬을 동원한 추진력으로 보인다.

나는 마법 방벽을 전개하며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날아오는 동안 포션이 일그림의 몸을 재생시켰다.

그렇지만 공격에 힘이 빠졌다.

충분한 타격을 입은 모양이다.

랜스 차징을 빗겨 흘리려고 하며 세로로 내려 벤다.

세 번째 보조 무기도 가지고 다닌다고?

너무 신중한 하이랭커인데.

그러나 공격은 자신의 타격을 도외시하고 있다.

확실하게 나를 끝장내기 위해 자신의 피해마저 감수한 돌진이다.

정면으로 마주하기보단 흘려내는 요령으로 무기에 검을 가져다 댄다.

다시 모든 것을 분해하는 검기가 창과 마주하고.

베지 못했다.

그대로 밀려난다.

베어내지 못한다면 저 공격력은 그대로 내 몸에 전해진다.

해소되지 못한 압력에 몸 여기저기가 으스러질 듯하다.

처음부터 흘리려던 의도였기에 살았다. 공격에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밀려난다.

내 몸이 로켓처럼 옆으로 발사되었다.

팔이 정상이 아니다. [피의 샘]도 슬슬 바닥을 보인다.

거참, 5분가량의 짧은 전투임에도 이리 너덜너덜해지는군.

멀어진 상대가 무기를 들어 올린다.

묵빛의 검은 창.

아다만타이드와는 다르다. 아무런 광택 없이 모든 빛을 빨아들이듯 새카만 물질.

금속인지조차도 확실하지 않다. 타오르고 일그러진 대지 속에서 홀로 생동감 없는 칠흑이다.

저게 뭔지 안다.

비현실적일 정도로 새카맣고 물질 분해 블레이드로도 손상을 줄 수 없는 물건.

여신님이 화를 냈다.

「[롱기누스의 창]! 내가 저걸 얼마나 찾아 헤맸는데. 나만 무기 없어!」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저놈 아티팩트가 저거면 마스터리 보정 뽑는다는 계획이 망해버리는데.’

「어쩔 수 없지. 화신 한 번 더 해주랴?」

‘신앙 있습니까? 없으면 여신님 레벨 떨어질 텐데.’

신좌는 엄격하다.

그대로 결단의 순간이 찾아오려는 와중, 사태가 다시 변했다.

[일동 정지. 내 영지에서 무슨 짓인가?]

이미 섬이 박살 날 대로 박살 나서 진동하는 가운데 거대하고 희끗한 형상이 중심에 떠올랐다.

우리 실피드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커다란 노인이 굽어보고 있다.

이 서버의 바람의 정령왕이다.

「다행이군.」

여신님의 말대로다.

나는 겨우 한숨을 돌렸다.

블랑쉐가 어떻게 잘 꼬셨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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