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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207화 (207/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207화

왕국 - Lv.152 민첩한 자들의 나라(3)

어차피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꼬맹이는 귀엽고 유능하며 말도 잘 듣는다. 그럼 된 거다.

그리고 또 말 잘 듣는 아이 하나를 보며 묻는다.

"지금은 압도적인 전력 차가 있어서 아무 상관은 없어. 그러나 적들의 전력이 800레벨급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이상이면 도망쳐야 한다. 랭커에 준하는 고레벨의 유배자 군대가 상대라면 가볍게 상대할 수 없다.

정도 이상으로 불확실한 것에는 발을 들이지 않는 것이 장수의 비결인 법.

희우는 길게 고민했다.

그것을 내버려 둔 채, 창으로 밖을 구경한다.

그동안 바깥은 번쩍번쩍하며 분노의 번개가 내려친다.

처음 만났을 때의 꼬맹이는 백지상태나 다름없었다.

삶의 대부분을 정신적으로 문제를 가진 상태로 보내왔고, 지닌 거대한 재능에 먹혀 죽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목적의식을 부여한 것이 내가 보여준 마법이며, 정서적인 안정을 찾아준 것이 희우의 애정이다.

제대로 가르칠 수만 있다면 바르바로이 클랜의 랜덤 NPC가 가장 좋은 이유다.

보통 이해받지 못하는 재능은 결여를 낳는다.

꼬맹이는 그 결여를 채우려는 듯 마법에 몰두했다.

막대한 재능을 가진 백지다. 그 위에 그린 그림이 어찌 훌륭하지 않으리.

이제 한 가지 흠이라면 마력의 양이다.

유배자가 아니기에 마인드맵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

레벨링에 따른 보정은 존재하지만 대륙의 주민들은 애초부터 자기 레벨을 잘 모르고 살아간다.

그 정도로 미미한 수준에 불과한 것.

그렇다고 오랜 기간 마력을 흡수하여 용량을 키울 시간은 없다.

그러니 관련된 장비를 주렁주렁 걸칠 필요가 있다.

꼬맹이는 앞으로 난쟁이 산맥에 퍼부은 운석 소나기룰 평타처럼 갈겨댈 수 있어야 한다.

마법진의 보조 없이도 말이지.

"정리했어요!"

"말해 봐."

희우에게도 수업이다.

본인이 너무 강하니 파티원의 강함을 오판할 수 있다.

모두가 자신 같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나 역시 과거에 저질러 본 실수니까.

애초에 우리 파티는 내가 자리를 비울 경우 희우가 지휘한다.

"열차를 엄폐물로 삼고 승객과 승무원들을 미끼로 숨어든 채, 환경을 바꿀 수 있는 준비시킬 거예요."

"속성은?"

"블리자드가 좋아요."

"이유는?"

"지속성 있는 방해 효과니까요."

옳은 판단이다. 전격은 강력한 마비 효과를 내지만 유배자는 결국 회복해 낼 것이다.

[블리자드]는 지속시간이 훨씬 길다.

일단 시야를 가리는 효과도 중요하다.

적들의 무기에 총기가 많았으니 그만큼 사수도 많으리라는 판단.

"다른 인원들의 포지션은 어떻게 할까?"

"제니는 꼬맹이 호위로 붙이고 저랑 블랑쉐 언니가 움직여야겠죠."

"더 구체적으로는?"

"제가 날개를 펴고 종족의 희소함으로 시선을 집중시킨 다음에 언니가 우두머리급의 목을 노리는 식으로……."

"블랑쉐는 별로 강하지 않아. 그 점은 고려하고 있지?"

"아……."

아무래도 희우의 기억 속에 남은 블랑쉐가 지나치게 강력한 모양이다.

사실 포텐셜로만 따지자면 블랑쉐도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존재긴 하다.

유전자 조작 인간의 기초 스탯이 일반적일 리가 없지 않은가.

희우가 그거보다 더 고스펙인 게 많이 이상한 거지.

"어, 음. 그러면 호위로 남겨야 하나?"

"아니지. 사실 처음 판단은 옳아. 블랑쉐는 당장은 약하지만 암살자로서 기술과 판단력만큼은 나에게 준해."

"으으. 그럼 왜 틀린 것처럼 말해요!"

"구체적인 방안이 없다면 틀린 게 맞으니까."

희우가 블랑쉐가 보유한 몇 가지 스킬을 되뇌인다.

그리고 자신이라면 어떻게 할지를 중얼중얼 응용해 본다.

천사가 되기 전 기준으로 생각 중이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할 것이 당황해서 입으로 저절로 흘러나오는 게 귀엽다.

본인은 전혀 모르는 눈치다.

"암살자가 저 하나인 척하면 될까요?"

"그렇지. 블랑쉐는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말고 움직이라고 주문하면 그럴 수 있을 거야."

"제 옵션처럼 쓰면 되겠네요."

"그거야. 네 무기처럼 다루는 거지. 이렇게 전력 차가 나도 기술적 숙련도가 높은 동료라면 쓸 수 있어."

"공부가 되었어요."

원래 같으면 이 정도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머리에서 증기를 뿜기 시작했다.

그러나 왕국의 문에서 결단한 후로는 정말로 열심이다.

"넌 머리가 나쁜 건 아닌데 안 썼던 거 같아."

"그럴까요?"

"무술의 달인이 머리가 나쁘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거니까."

헤헤하고 웃으며 옆머리를 귀 뒤로 넘긴다. 무의식적인 행동인 거 같지만 외모가 많이 달라진 지금은 아주 청순가련하다.

웃는 건 여전히 아이 같지만 말이다.

"앞으로 영입할 동료 후보는 전사 계통으로 둘이야. 그리고 그 둘도 몸에 익힌 기술로는 밀리지 않는 사람들일 거고."

"충분히 레벨링 된 후라면 더 쉽게 생각해도 되겠군요."

"우리 파티는 체스로 친다면 모두가 퀸이 되어야 하니까."

현재 마법사로는 아주 훌륭해진 꼬맹이지만 마력의 양 외에도 문제는 있다.

근접전의 소양이다.

그쪽으로도 슬슬 훈련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 * *

제니는 아직도 마법적인 전격이 감도는 물웅덩이로 뛰어들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제 분수를 알고 있다.

블랑쉐와 싸우며 느꼈다. 의외로 단순 스펙의 격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제니가 블랑쉐를 이길 수 없는 것은 그저 실력의 문제다.

압도적인 전투 경험과 기술적 완성도의 차이.

제니는 특별히 바깥에서도 전투에 종사하던 이는 아니었다.

그래서 택한 모험가로서의 루트도 짐승 사냥이다.

PVP에 재주가 있을 리가 만무하다.

야망은 있되 아직 능력이 부족하다.

리더인 오르골이 간섭하지 않는 가운데 제니는 꼬맹이와 블랑쉐의 눈치를 살폈고, 곧 그 둘이 자신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음을 깨달았다.

자존심이 상한다면 상하는 일이었으나 찍소리도 못한다.

솔직히 말해서 이 파티에서 그녀의 기능은 43서버로 통하는 열쇠로 족할 지경이니까.

"그래도!"

372레벨이다.

안다. 이건 그녀의 길드에서도 상위에 해당하는 레벨이다.

제아무리 그에 걸맞은 경험을 갖추지는 못했어도 무시당할 레벨은 전혀 아니다.

그리고 리더가 말했다.

맡긴다고.

"으아아아아!"

승객들이 아직도 산발적으로 전투를 벌이는 객실을 달린다.

실내에 있었던 열차 강도들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

마비되어 버르적거리다 이승을 하직한 녀석도 있지만 운 좋게도 빗나가 전투를 속행하는 녀석들도 있다.

승객들은 그리 강하지 않았고 강도들은 충분히 강했다.

제니는 대검을 휘두르는 강도 하나를 향해 달려갔다.

그 앞에선 부부로 보이는 유배자 전사 둘이서 힘겹게 막아내고 있다.

척 보아도 강해 보인다. 클래스는 아마도 버서커.

이미 [광폭화]를 발동한 상태다.

이전 같았으면 달려들 엄두도 내지 못했겠으나 지금은 다르다.

미끄러지듯 [대시]로 달려든다. 상대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대검 전사는 제니의 존재를 눈치채고 부부를 밀쳐냈다. 이미 한계였던 모양인지. 힘없이 밀려나 쓰러진다.

"이야아압!"

쌍검의 장점은 공격 속도이다. 무기가 둘이니 그만큼 빠르게 딜을 구겨 넣을 수 있다.

검술이라 할 만한 것은 필요 없다.

그저 두 검이 서로를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만 숙련되면 된다.

부끄럽게도 말이다.

사람을 상대하는 데는 분명히 검술이 필요했다.

제니는 그럴 수 없기에, 스킬에 의존한다.

[회전 베기]

쿨다운이 짧은 쌍검의 광역기.

제자리에서 스킬에 지정된 동작으로 크게 회전하면 주변을 원형으로 벤다.

공격력에 추가 보정이 있다.

광역기라곤 하나 일반 공격 사이에서 모션 캔슬이라도 되는 마냥 섞어 넣을 수 있다.

대검 전사가 막은 후 공격하려다 주춤한다.

제니는 스킬의 여파를 고스란히 이용하여 오른손으로 후려쳤다.

벤다기보단 후려친다가 맞다. 전사의 자세가 살짝 무너진다.

앞으로 [대시].

그대로 몸통으로 들이박았다.

올라간 레벨에 따른 능력치와 패시브 스택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근력을 부여한다.

바닥도 미끄러운바, 상대가 쭉 밀려났다.

상대의 몸에서 살타는 냄새가 났다.

객실이 그을려 있기도 했다. 마법의 낙뢰는 분명히 이 대검 전사에게도 내리꽂혔던 모양이다.

대검은 초근접한 상태에선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는 무기다.

상대도 안다. 광폭화해 흐릿해진 머릿속으로도 제니를 밀쳐내려고 했다.

제니는 오른손의 검을 놓았다.

그리고 주먹을 쥐고 상대의 얼굴을 때렸다.

투구 덕에 제대로 된 대미지를 가하진 못했지만 당황하게는 만들었다.

쌍검은 따로 마스터리가 없다.

그저 [한손검 마스터리]일 뿐이다.

무기를 놓을 수 있다.

팔꿈치로 찍으며 이번엔 역으로 제니가 살짝 거리를 벌리고.

왼손의 검으로 베었다.

옆구리에서 피가 쏟아진다.

갑옷 때문에 더 파고들진 못했다.

광전사가 포효한다.

위기에 처하면 더 근력이 증폭되는 효과가 있다고 알고 있다.

제니는 번쩍 들려 내던져졌다.

이어서 대검이 날아온다.

검면에 손을 대고 받아낸다. 그 와중 시도하는 흘리기.

신전에서 블랑쉐에게 당한 것을 흉내 낸다.

제대로 되진 않았으나 안 하는 것보단 나았다.

광전사의 큰 빈틈이 드러난다.

쿨다운이 돌아왔다.

얼얼한 손바닥과 팔은 무시한다.

예비 무기를 얼른 허리춤에서 뽑는다.

비어 있는 오른손에 쥐어 쌍검 상태가 된다.

[회전 베기]

푸확 하고 피가 솟았다. 광전사는 그 클래스명답게 상처에 개의치 않고 달려든다.

방금은 틀림없이 가슴을 베었다.

치명상임에도 무시무시한 위압감. 포션을 쓸 생각조차 않는 맹돌격.

제니는 순간적으로 반응했다.

왼손을 내밀어 한 손으로 흘리기를 시도한다.

당연히 안 된다.

대검이 내려쳐진다. 왼팔이 부러지는 느낌.

그래도 기세는 죽였다.

왼쪽 견갑을 그대로 들이댄다.

둥근 표면이 대검의 날을 미끄러지게 했다.

오른손은 그 와중에도 뻗는다.

목을 노렸으나 살짝 빗겨갔다.

그래도 베어낸다.

안쪽으로 더 힘을 준다. 광전사는 비틀거리다 쓰러졌다.

발로 힘차게 짓밟았다. 커다란 짐승들은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벌떡 일어나 다시 덤벼들기도 했다.

밟고, 밟고, 다시 밟고. 뼛조각이 튀고 희끄무레한 액체가 흐를 때까지 밟았다.

"하아. 하아."

이겼다.

상대의 레벨은 모르겠지만, 원래 같으면 눈도 똑바로 마주치기 힘들 고레벨 아니었을까?

몸을 감싸는 경험치의 느낌. 그 짜릿한 쾌감은 레벨이 하나 더 올라갔음을 알린다.

레벨링으로선 효율이 나쁠 뿐, 고레벨 유배자는 경험치를 확실히 더 주긴 한다.

분명히 500 가까이 되는 녀석이었다.

"이겼드아아아!"

강해졌음을 실감한다. 제아무리 마법사가 약화시켰다곤 해도 격상의 상대에게 승리했다.

드워프 왕국에서 무수한 키메라를 상대로 죽기 직전까지 몰리며 싸웠던 경험이 빛을 발한다.

악으로 깡으로, 죽지만 않으면 완치되니 상관없다는 각오로!

튜토리얼에서 느꼈던 처절함을 다시 되찾은 기분이다.

"으흑. 흐윽. 하지만 너무 아파."

얼른 시체의 포션을 찾아낸다.

급할 때 써야 하니 품속 깊숙한 곳에 두진 않는다.

아픔은 잦아들지만 한 번 작살이 난 어깨가 완전히 회복되진 않았다.

키메라와 싸울 때도 그랬다.

제니는 아파서 눈물이 나는 와중에도 오른팔로 슥 닦아내고 다음 적을 찾아 달렸다.

로커스트는 그제야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자신을 구해준 요정 쌍검사가 달려가는 뒷모습만 보였다.

고마운 고참이라고만 생각했다.

* * *

낙뢰의 여파는 소나기로 생긴 물웅덩이에 아직 남아 있으나 블랑쉐의 부츠는 절연 기능이 있다.

번개는 대부분의 근접직들에게 아주 귀찮은 속성이기에 이 정도 대책은 기본이다.

달리는 방식은 오르골에게 배운 것.

두 팔을 뒤로 뻗고 무게 중심을 앞으로 한 채 질주한다.

바깥에서는 장비의 보조로, 미궁에서는 마인드맵의 보조로 해낼 수 있는 주법이다.

애초부터 초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온 블랑쉐에게 미궁의 보정은 아주 낯선 것이 아니다.

적당한 시점에서 [은신]의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은신]은 그 뒤로 보이지 않기에 발동 순간만큼은 요란한 부분이 있다.

사실 암살자의 스킬 대부분이 그런 식이다.

대응할 여지를 주기 위함일까?

미궁의 기묘한 밸런스다.

자취를 감춘 흐릿한 실체가 되어 블랑쉐는 적 사이로 파고들었다.

아직 마비에 깨어나지 못한 녀석, 포션으로 회복 중인 녀석.

그 사이를 무시하고 지나친다.

출발하기 전에 열차 위로 올라가 대략적인 우두머리들의 위치는 파악해 뒀다.

친절하게도 꼬맹이가 추가타로 위치를 지정도 해준다.

하늘에서 뻗는 [라이트닝]이 번뜩이는 곳으로 가자 한눈에도 고레벨인 사수가 보였다.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움직이는 법을 바꾼다.

발소리가 사라지고 기척을 죽인다.

무시해도 좋은 잔챙이들 뒤로 붙으며 상대의 시야에서 모습을 숨긴다.

단검 하나를 정신없는 적들 사이에 꽂아둔다.

그대로 장갑차 하나의 뒤편으로 빙글 돌아 상대의 목전까지 도착했다.

일체의 낭비도 없는 절제된 동작은 눈으로 보고서도 인지할 수 없게 만든다.

주변에 소리를 지르며 부하를 독려하던 사수는 마지막 순간까지 블랑쉐를 눈치채지 못했다.

암습 판정이 번뜩인다.

미스릴 단검은 사수의 빈약한 방어력을 손쉽게 돌파했다.

리치가 짧을수록 암습 보정은 극대화된다. 단검은 더할 나위 없는 암살자의 무기다.

거기에 암살자로서 온갖 패시브의 공격력 보정이 떡칠된 암습이다. 정확히 일격에 절명.

그리고 점멸.

미리 날려둔 [점멸 단검]의 위치로 이동하면 모두가 블랑쉐의 위치를 놓친다.

다시 스며들고, 같은 일을 반복했다.

단순작업에 가까운 일곱 차례의 암살이 끝나고 블랑쉐는 적진에서 빠져나왔다.

"후."

힘들지는 않았다. 진짜 암살자의 기술을 가진 암살자는 드물다.

대부분은 스킬에 의존하는 얼치기들이니까.

물론 바깥부터 일반인이 아니었던 블랑쉐니까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승객들이 서서히 반격을 해내고 있다.

도리어 적진을 향해 돌격하는 무리도 있을 정도다.

승무원들은 열차의 방어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빠져나오지 않는다.

블랑쉐는 입맛을 다시며 여전히 번개를 뿌리고 있는 뱀파이어 소녀를 보았다.

민첩직은 본디 마법사의 상극이다.

암살자로서 블랑쉐는 마법사의 탐지를 무력화시킬 수단을 여럿 보유하고 있다.

이길 수 있을까?

거의 습관적인 상대 전력의 분석.

캐스팅은 매우 빠르다.

투사체 정확도도 매우 높다.

하지만 너무 정직하다.

평지에서는 힘들겠지만, 실내나 숲만 되더라도 몇 가지 페이크를 섞으며 마력 낭비를 유도할 수 있어 보인다.

입체적인 기동은 특기다.

정확도가 높다 한들 투사체.

디버프는 회피하거나 베어낼 수 있을 터.

그러다가 단 한 번만 접근하면 끝이겠지.

할 만하다.

다만, 열차 내에 남은 둘은 불가능하다.

합류하고 난 이후에도 사소한 실험은 해보았다.

기척은 언제나 감지당하고 있다.

천사인 쪽은 그렇다 치더라도.

저쪽은 저러고도 ‘오르골’ 본인이 아니란 말이지?

이해하기 어렵다.

* * *

새침한 태도의 블랑쉐와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 보이는 제니가 돌아왔다.

꼬맹이는 좀 더 자신의 존재를 어필한 후 객실로 들어왔다.

마력 탈진이 오기 직전이다.

"겨우 그거 썼다고 그렇게 되면 앞으로 이 험난한 미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단다. 딸아."

"노력……. 노력하겠습니다!"

지쳐 휘청거리면서도 눈은 빛난다.

극한까지 마력을 소모한 후 다시 회복하면 어느 정도 마력량의 성장이 있다.

다만, 완전히 바닥난 마력은 회복에 너무 긴 시간을 요하기에 아주 위험하다.

꼬맹이는 조금 공백기가 있더라도 위험에 처할 상황은 아니다.

"자자, 지팡이 받아줘."

희우가 지팡이를 받아 구석에 세워둔다. 꼬맹이를 안아 들고 혈액팩 하나를 꺼내 먹인다.

꼴깍꼴깍 잘 받아먹는다.

그리고 등을 두드려 주고 문질문질 해주자 그대로 잠들었다.

정신적으로도 몹시 흥분한 상태로 탈진 직전까지 마법을 뿌려대었으니 대단한 무리긴 하다.

제니가 뚱한 눈으로 그 모습을 보는 와중 누군가 객실의 문을 두드렸다.

차장이었다.

"마법사님께 어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벌써 감사하진 말고 진정하시지. 열차 수리도 도와줄 테니까."

"네?"

시티즌까지 걸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마력 엔진은 상당히 크게 파손되어있었기에 임시변통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파손된 객차도 제법 있어 열차가 몇 량 줄어든 덕에 어찌 출발할 수 있었다.

그만큼 좌석도 줄었으나, 승객도 줄었기에 큰 문제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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