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211화
????단계 - Lv???? 몽환의 숲(2)
[소드 마스터]라는 클래스는 유명하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유명한가 하면 그 불합리함으로 유명하다.
유배자 소드 마스터는 상당한 상위 클래스로서 꽤 많은 포인트 투자를 요구한다. 그마저도 방법을 아는 자들은 많지 않다.
나름대로 상위 클래스에 해당하는 일부 클래스들은 우연의 산물로 획득하기는 힘들다.
그렇게 힘겹게 소드 마스터가 된다 치더라도 그다음이 문제다.
너무나도 불안정하다. 그저 체력이 다할 때까지 무기를 휘두를 수 있는 전사들과 달리 모든 공격이 마력이라는 제한된 자원을 소모한다.
마법사들의 단점인 지속력의 부재를 공유하는 전사라니. 이도 저도 아닐 수밖에 없다.
거기에 방어적인 보정이 전무하다.
막대한 공격력을 대가로 생존에 관계된 스킬은 거의 존재하지 않기에 운용이 지극히 난감하다.
쉽게 죽고 다음 회차로 사출되고 싶어 하는 유배자는 없다.
그렇다면 종족 특성으로 생존력을 보완해야 한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트롤.
하지만 트롤로 지능 쪽 트리를 짜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드물다.
결국 유배자에게 소드 마스터의 이점을 꼽으라면 막대한 공격력밖에 없다.
대다수의 유배자는 그렇게 강력한 일격필살을 노리기보단 안정적으로 딜링을 누적하고 싶어 한다.
게임이 아닌 삶이 되어버린 미궁이니 별수 없다.
그래서 소드 마스터는 왜 굳이? 같은 식의 평가를 받곤 한다.
다만, NPC가 소드 마스터일 경우에는 전혀 달라진다.
평생을 검술을 갈고닦고 신체를 단련한 NPC 소드 마스터는 이미 초인이나 다름없다.
방어적 보정이 없더라도 혈혈단신 칼 한 자루로 충분하다.
총알을 튕겨내며 포탄을 빗겨낸다.
마법을 가르고 갑옷도 찢어발긴다.
검 한 자루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기에 기피되는 유배자 소드 마스터와 다르다.
애초부터 검 한 자루에 모든 것을 걸어온 검객이 도달하는 곳이다.
그래서 소드 마스터라는 클래스는 유배자에게 동료로서도 적으로서도 기피될 수밖에 없다.
* * *
"거리를 벌려!"
"이런 제기랄. 너무 몸놀림이 빠른데!"
"숫자도 너무 많아!"
안개가 걷히며 드러난 고블린의 규모는 상상 이상으로 대단했다.
군대라고 부르기 손색이 없는 대열이 공격해 오기 시작한다.
고레벨이 쏘아내는 투사무기는 일반적인 몸놀림으로는 피하기는커녕 막아낼 수도 없다.
그럼에도 상대의 선봉에 선 고블린은 빛나는 검을 휘두르며 그 투사무기에 반응했다.
마법을 담은 화살을 아무렇지도 않게 베어버린다. 화살에 담긴 마법은 술식부터 베여나가 발동하지 못했다.
에르메스는 보았다.
자신의 사격을 선두에 선 고블린이 모두 쳐내었다.
검신으로 쳐낸 것도 아니다. 반으로 벤 후, 마지막 순간 검신을 살짝 틀었다.
반 토막 난 총탄은 운동에너지가 분산되어 힘을 잃고 떨어진다.
말 같지도 않은 묘기다.
이렇듯 NPC가 소드 마스터라면 대인전에서만큼은 재앙이 된다.
파티에 전사의 비중이 낮은 것은 차라리 다행이었다.
대부분의 갑옷은 오러 블레이드라는 이름의 단분자 커터 앞에서는 무력하다.
차라리 강력한 마법 방벽이 더 낫다.
다행스럽게도 구출대 역시 모두 베테랑.
사방으로 산개하면 사격으로 대응하자 고블린들도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마법사! 지원해! 가능하면 적을 갈라!"
외견이나 정신연령이 약간은 미심쩍으나 그 실력만큼은 확실하다.
에르메스는 저 마법사를 영입할 생각을 한 자신을 칭찬했다.
은발의 흡혈귀는 제 몸보다 커다란 스태프를 휘두르며 그 지시에 응답했다.
번개가 달려드는 고블린 백병전 병력을 갈라놓는다.
그 사이로 불길의 장벽이 피어올랐다.
"좋아! 다들 다시 모여!"
마법사가 시간을 벌었다. 불길을 어떻게 베고 들어오건 딜레이는 있다.
[파이어 월]은 시간을 끄는데 제격인 마법이다.
순식간에 산개했던 구출대가 다시 모여든다.
12명의 구출대 중, 전사 계열은 마법사네 파티의 둘을 포함해서 3명이다.
중장 계열은 없었다. 묵직한 승부보다는 약한 적만 골라 빠르게 격파하며 전진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소드 마스터 뱀파이어의 존재는 고무적이었다.
"상대 가능한가?"
"물론이죠."
솔직히 말해서, 다른 멤버와 다르게 실력을 철저하게 검증하지는 않았다.
단지 잃어서는 안 되는 마법사의 호위대를 꾸린다는 생각으로 한 번에 고용했다.
그래도 저런 수준의 마법사가 동료로 있을 정도면 결코 약하지는 않으리라.
사실 선택지도 빈약하다. 오러 블레이드와 마주 닿을 수 있는 것은 아티팩트나 같은 오러 블레이드뿐이다.
아군의 소드 마스터가 출전하고, 구출대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궁수와 사수들이 사격을 개시했다.
마침 고블린들은 불의 벽을 뚫고 달려오는 길이었다.
화력 인플레가 심한 미래 스테이지에서는 고블린처럼 체구가 작은 녀석들이 더 피곤할 수도 있다.
빛이 번뜩인다.
궁수들의 손이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화살을 시위에 메긴다.
날아가는 화살은 갈라지고, 때로는 유도되며, 그 끝에는 폭발했다.
고블린들은 마주 총기로 그 화살에 대응하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다.
하지만 숫자가 아주 많았다.
일개 연대급일까?
안개 속에서 빗발치는 사격이 쏟아지기는 저쪽도 마찬가지다.
마도공학의 산물일 것이 분명한 반투명한 막이 펼쳐진다.
그 뒤로 마주 화망을 형성하며 이쪽을 향해 거리를 좁힌다.
그러는 와중 빔 소드를 빛내며 백병전 전력이 달려든다. 등에 멘 부스터가 평범한 달음박질을 아득히 초월하는 추진력을 부여한다.
그런 혼란의 도가니에서도 훈련이 어찌나 잘 되어 있는지 뒤편의 고블린 사수들은 오사조차 없이 확실하게 구출대를 견제하고 있었다.
로잘린이 [익스플로전]을 다발로 캐스팅했다.
화살 끝에 마법의 룬이 흐르며 폭발이 새겨진다.
열 발을 장전한 후 한 번에 시위에 매겼다.
태양 그리폰의 힘줄로 만든 활시위가 같은 속성의 마법에 힘을 더한다.
발사의 순간 스킬이 작동한다.
[멀티플 샷]
날아간 열 발의 화살이 정확하게 적을 향해 날아간 것은 로잘린의 기술이다.
그 화살들이 다시 각각 수십 발로 분열한 것은 보조 패시브를 잔뜩 투자한 [멀티플 샷]의 힘이다.
공중 지원을 받은 듯한 폭격이 적의 방패를 두드렸다.
그 폭음 사이로 마법을 띤 화살과 총탄들이 계속 날아든다.
고블린 분대의 일부가 무너진 것이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백병전 전력이 거리를 벌리려고 애쓰던 구출대를 따라잡았다.
전투는 즉시 난전으로 이행한다.
방패를 든 고블린 사수들도 방패를 해제하고 거리를 좁히기 위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 * *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나는 판단했다.
힘을 숨길 때가 아니다.
이 고블린들……. 너무 세잖아.
당연히 개개인은 랭커급에도 미치지 못하겠으나, 내가 그토록 전쟁터는 피해 다녔던 이유가 이것이다.
잘 훈련된 집단은 강력한 개개인들을 압도할 수 있다.
전멸하지야 않겠으나 벌써부터 사상자가 나온다면 곤란하다.
그랬다간 앞으로의 여정이 험난해지지 않겠는가.
사실 이 상황 자체도 우리 탓이긴 하다.
파티원들에게 수신호를 보낸다.
꾸준히 연습하고, 스펙업에 맞춰 변경해 온 전술 중 하나다.
블랑쉐와 제니는 아직 편입되지 않았다.
온전히 꼬맹이와 희우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수신호다.
여신님이 걱정스럽게 말을 걸어온다.
「너무 많은데.」
‘절대 일반적인 난이도는 아니군요.’
「숲의 초입이라고 하긴 힘들겠군.」
‘와보셨습니까?’
「나 지금도 정복자 있다.」
스펙으로 찍어 누른 케이스인가? 여신님은 레벨이 몇이지?
보유한 유니크 스킬의 개수를 감안해도 어마어마할 거란 생각은 든다.
일단 당장의 상황에 집중하자.
용맹무쌍한 연방의 자랑은 대전사도 신앙도 알아볼 수 없는 눈으로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잠깐 고민을 해보자. 저 녀석을 여기서 죽일까?
앞으로 닥쳐올 일이 얼마나 험할지 확신할 수 없다.
실피드는 한 번 밖에 사용할 수 없으니 사릴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전력은 다다익선이겠군.
사로잡자.
안개가 짙어 뱀파이어로서 가지는 페널티는 전무하다.
마력을 발바닥으로 가볍게 분출하는 느낌으로 몸을 가속한다.
당연히 동작도 그에 최적화해야 한다.
몸을 숙이고 상체의 흔들림은 없이.
검은 약간 느슨하게 쥔 채 앞을 막듯이 댄다.
어차피 가속은 마력의 비중이 크므로 상체의 흔들림은 최소한으로 줄인다.
이런 초인적인 달리기는 대부분 극단적으로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공기저항을 감당하기도 힘들고 속력을 내기도 힘들다. 피탄 면적을 줄인다는 의미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급습에 가장 용이하다는 점이다.
신체의 팔이 가지는 리치는 제아무리 초인이 되더라도 중요하다.
그 어떤 스킬을 동원하더라도 냉병기를 쓴다면 무기 자체가 적에게 닿는 것보다 강할 수는 없다.
직접 패는 게 최고란 뜻이다.
가장 먼저 상대가 인식할 틈조차 주지 않고 기습을 꽂아 넣는다.
화력 인플레가 갈수록 심화되는 미궁에서 비슷한 체급의 적을 상대할 때, 선빵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난전으로 번졌음에도 노련한 구출대의 유배자들은 우선순위를 알고 있었다.
고블린 소드 마스터는 구출대가 여유가 생기는 대로 날리는 견제 사격의 강력한 포화를 집중적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쪽을 향해 달려간다는 사실 역시 구출대원들에게 충분히 인식되었다.
안 그래도 각자 여유가 없던 차에 고블린 소드 마스터에 대한 견제가 순간적으로 멎는다.
이미 내 위치는 난전이 시작된 곳보다 더욱 전방이다.
그렇게 내가 돌출되자 사격을 멈추었던 고블린들이 다시 탄막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전사를 상대하는 것에는 이골이 난 녀석들이다. 그들의 투쟁 대부분은 그린스킨 제국을 향한 것이었으므로.
아직 물질분해 블레이드를 쓸 필요는 없다.
일반적인 오러 블레이드를 일으킨다.
마투사적인 패시브들이 잔뜩 뒤섞인 탓에 발동은 압도적으로 빠르지만 마력의 소모는 훨씬 크다.
더스번 경이 그랬듯, 검기를 날려 적을 견제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하나 상관없다.
진정한 소드 마스터는 적의 투사 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랜만에 찾아드는 검사의 감각.
다양한 클래스를 플레이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게임하던 시절처럼 즐거운 고양감이 몸을 감싸고, 나를 향해 날아드는 총탄을 향해 정신을 집중한다.
조금의 떨림도 있어서는 안 된다. 날숨을 내뱉으며 손끝의 신경을 활성화한다.
미스릴 검신의 얇은 첨단조차도 내 몸처럼 여겨지기 시작한다.
그 위로 푸르스름하고도 창백한 플라즈마가 다발로 쏟아진다.
반의반의 반 호흡도 되지 않는 시간이 주어졌다.
최소한의 동작으로 첫 번째 사격을 쳐내고 휘감듯이 검을 움직이며 다음 사격을 밀어낸다.
그 뒤로는 촘촘한 면과도 같은 포화가 다가온다.
살짝 몸을 틀며 빠져나갈 틈을 만들고 포화 사이를 오러 블레이드를 더 크게 키우며 벤다.
사람 하나가 간신히 통과할 틈이 생기고 검격의 여파를 방패 삼아 빠져나온다.
그 뒤에 날아드는 실물 미사일이 보였다.
고폭탄이라 할지라도 미궁에서 사용되는 물건은 마력을 머금기 마련이다.
마력의 흐름을 본다면 내부 구조도 쉽게 확인된다.
[대시]를 살짝 응용하여 팔의 위치를 바로잡는다.
그럼에도 오른팔은 크게 베었기에 너무 멀리 있다.
엄지로 튕기며 손바닥으로 밀어 검을 왼손으로 날린다.
그대로 바꿔 잡은 자세는 이미 찌르기다.
미사일의 뇌관이 있는 위치를 파악하고 그 회로를 향해 연속된 찌르기 세 번.
그리고 미사일을 밟고 뛰어 넘었다.
갑자기 고도가 상승하자 고블린들의 사격이 따라오지 못한다.
밀도 높은 사격의 막을 넘어 마침내 적장의 눈앞에 도달한다.
이미 서로 너무 근접했다.
오사를 우려하여 그 어떤 총탄도 이쪽을 향해 날아들지 않는다.
전진하려고 힘쓰던 고블린 소드 마스터도 이쪽을 돌아본다.
늦었다.
나는 있는 대로 가속하고 있고 저 고블린은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다.
물론 그도 검의 달인인 만큼 억지로 방어 태세를 취한다.
내 마력이 뭉텅 빠져나간다.
다음 순간, 평범한 오러 블레이드에 모든 것을 분해하는 힘이 깃든다.
* * *
에르메스는 갑자기 돌진하는 뱀파이어 소드 마스터를 보며 깜짝 놀랐다.
군대를 향해 저런 막무가내 돌진을 하는 것은 중장 전사나 가능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빨랐으며 동시에 의표를 찌른 타이밍이었다.
적도 아군도 미처 깨닫지 못한 틈에 이미 쭉쭉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사선에 겹치기 전에 부랴부랴 사격을 멈춘다.
하지만 저쪽은 오히려 사격을 개시했다.
그 직후 보인 것은 눈을 의심케 하는 묘기였다.
사수는 위력에 관여하는 스킬이 전무하다.
그래서 에르메스는 대신 정찰에 관여하는 스킬을 많이 챙겼다.
강화된 전 랭커의 시력이 모든 순간을 똑똑히 포착한다.
스펙이 아주 높지는 않았기에 볼 수 있었다.
저 동작이 조금 더 빨랐다면 에르메스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보고도 알 수 없는 이상한 동작이었다. 중간에 검을 쥔 손을 바꾸는 것은 또 뭔가.
쌍검사도 검을 저런 식으로는 쓰지 않는다.
두 검 중 하나는 보조적인 역할을 할 뿐이다.
그렇게 섬전 같은 찌르기 직후 양측의 소드 마스터는 충돌했다.
충격파가 퍼지는 일은 없다.
단지 유령처럼 서로를 스치고 지나갔을 뿐이다.
달려드는 고블린 하나의 머리를 쏘고 뒤로 도약하면서 에르메스는 그 장면에 집중했다.
급박한 전장 속에서도 그곳만큼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해 보였다.
허, 하고 에르메스가 탄식을 내뱉는 순간.
여전히 빛나던 고블린의 검에서 빛이 꺼졌다.
그리고 자세가 무너진다.
피 보라를 뿌리며 쓰러지는 와중에도 고블린은 검을 결코 놓지 않았다.
그다음은 보지 못했다.
빔 소드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다른 고블린이 있어서다.
에르메스도 당장의 싸움에 집중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