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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212화 (212/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212화

????단계 - Lv.???? 몽환의 숲(3)

희우에게는 더 난이도가 높은 시험이 닥쳐왔다.

사실 꼭 그렇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먼젓번에 다수의 사수와 전사의 군대를 상대로 어찌 행동할지는 검수를 받았다.

그렇다면 그대로 하면 된다.

아저씨는 이 모든 일을 예측한 것일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단지 미궁에서 가장 위험한 부류 중 하나가 이런 정예 군대일 뿐일 것이다.

객실에서 전황을 눈에 담게 한 것은 일어날 수 있는 상황 중 제일 위기일 수 있기에.

이제 강력한 개인을 상대로는 적어도 도주는 가능하다.

수준 높은 집단이 상대라면 그것조차 여의치 않을 수 있다.

전투가 아닌 전쟁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에 대한 가르침이리라 생각했다.

블랑쉐는 아직 연습된 여러 가지 전술적 움직임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어떻게 움직여야 이상적일지 이제는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조금씩 아저씨의 구상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기쁨으로 가슴이 부푼다.

희우는 꼬맹이가 얼른 제니를 데리고 최후방의 안전한 곳으로 공간 이동하는 모습을 보며 구출대와 멀어졌다.

에르메스는 가능한 안정적인 화력 투사를 원했던 모양인지 암살자를 따로 구출대에 편성하지 않았다.

희우 역시 단검전사 정도로 인식되고 있으며 블랑쉐를 보면서도 암살자 하나 정도는 좋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런 예기치 못한 전투를 상상하지 못한 모습이다.

사실 집단전에서 암살자는 특출난 스펙의 격차가 있지 않는 한 쓸모가 없기도 하다.

암살이 무엇인가.

은밀하게 몰래 단일 개체를 제거하는 것이 암살자다.

숨을 공간조차 없는 이런 필드에서 투사무기가 난무하고 있다면 가장 무력해지는 클래스기도 하다.

하지만 희우는 힘살자라고 부를 만한 어중간한 위치의 능력치 배분을 했으며, 블랑쉐 역시 사기적인 태생이 힘입어 큰 차이 없는 위치의 암살자다.

그 힘을 보여줄 때다.

비행하는 천사의 자태는 분명 굉장한 어그로를 모으겠으나 천사임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그 존재감을 발산할 방법은 많다.

천사의 초인적인 종족적 특성과 태생적으로 초인인 희우의 근력은 놀라운 시너지를 만들어 낸다.

블랑쉐에게 급하게 가르친 수신호 몇 개를 날린 후, 희우는 점프했다.

비행이 아닌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행위.

하지만 결과적으로 큰 차이는 없었다.

땅이 일그러지고, 흙먼지가 터져 나온다. 그 위로 솟아오르는 인영.

고블린들에게도 틀림없이 익숙하리라.

그린스킨에는 일인군단이라 부를만한 전사가 많을 것이며, 그들은 틀림없이 이런 식으로 돌격한다.

더없이 익숙한 적의 전법에 고블린들은 절로 시선을 빼앗긴다.

먼지 사이로 아저씨가 적의 가장 강력한 전력인 소드 마스터를 노리고 돌입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렇다면 이쪽은 적 뒤편을 노리고 공격을 개시한다.

블랑쉐는 아주 유능한 인물이다.

희우의 짧은 신호에 자신의 역할을 대강이나마 파악했다.

정면으로 저 집단과 충돌할 스펙이 블랑쉐에게는 없다.

그렇다면 저 천사가 날뛰는 가운데 그야말로 암살자답게 암약할 수 있으면 되리라.

멀어지면 안 된다. 고립되면 그녀는 버틸 수 없다.

어디까지는 앞에서 위협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저 천사의 그늘에서.

* * *

고블린 지휘관은 익숙한 장면에 즉각 대공사격을 명했다.

타고난 전사들인 그린스킨들은 저런 식으로 기동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강습부대의 대공사격이란 높이 뛰어오른 괴물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다.

빗발치는 탄막이 형성된다.

사수들 사이에서 호위를 위해 자리 잡고 있던 백병전 병력이 태세를 갖춘다.

그러나 그들은 상대를 너무 단순히 전사라고만 여겼다.

별수 없다. 연방의 주적은 어디까지나 제국. 그러니 그들이 훈련 시 상정하는 적 또한 제국의 병사다.

암살자는 오히려 그들이 운용하는 병과이지 그들의 적국이 운용하는 병과가 아니다.

따라서 적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졌을 때 고블린들은 훈련이 상정한 수준을 벗어난 사태를 맞이했다.

물론 정말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단지 공중에서도 빠른 기동을 선보이고 있을 뿐이다.

오우거나 트롤 따위와는 다른 아주 날렵하고 기민한 움직임은 거대한 괴물을 상정한 밀집 사격을 쉬이 피해낸다.

"화망을 더 넓게 펼쳐라!"

대공 담당 장교가 소리친다.

임기응변에 따라 더 듬성해진 사격이 면을 형성하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병사들의 뇌리에 공통된 교범의 내용이 스친다.

일부 초인들, 유배자에 호의적인 국가기에 그들은 가능하면 전투를 벌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피치 못하게 그 초인들과의 전투를 벌이는 순간은 존재하며, 그에 대한 훈련 자체는 받아왔다.

케케묵은 훈련병 시절의 기억을 되새기며 다시 한번 태세를 정비한다.

우선 대열을 벌려 산개했다.

대공부대가 그렇게 움직이자 달려오는 지상의 유배자를 향해 사격하던 부대들도 반응한다.

하나의 전쟁 기계처럼 척척 맞물려 돌아가는 모습은 과연 연방의 최정예.

하나 적은 그들의 교범을 뛰어넘었다.

화망이 듬성해지는 순간 적은 그대로 낙하했다.

중력에 의한 낙하와 조금 다르다.

가속하고, 또 가속한다.

그 과정에 수십 발은 적중했으나 유배자 특유의 회복력으로, 그리고 순수하게 갑옷과 육신의 내구도로 버텨내며 순식간에 다가온다.

장교가 뭐라 명령하기도 전에.

상대가 대지를 타격했다.

폭음이 울렸다.

단순히 지닌 운동 에너지 이상의 파장이 퍼져 나간다.

중심부에 있었던 병사들은 마지막 순간 몸을 날렸으나 산산조각 났다.

포탄이라고 불러야 할 파괴적인 파문이 일순 사방으로 퍼진다.

하지만 그 덕에 이제 적의 위치는 분명해졌다.

사격이 집중된다. 서로를 쏘지 않기 위해 낮은 포복 상태로 중심을 향한 총격이 퍼부어진다.

트롤급 중장 전력으로 추정되기에 대전차 화기도 조준된다.

연기 속에서 가녀린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드러냈다고 담담하게 표현하기엔 아주 격렬하다.

솟구친 먼지가 걷힐 정도로 폭발적인 주력으로 다가온다.

정면에서 쏜 총격은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로 튕겨 나간다.

플라즈마 탄을 말 그대로 쳐서 날려 버리고 있었다.

호위하기 위해 빔 소드를 빼 든 백병전 병력마저 헉하고 숨을 집어삼켰다.

다음 순간, 충돌.

폭음.

파괴.

그리고 죽음이 날개를 폈다.

그것이 천사의 날개임을 제대로 알아본 고블린은 없었다.

매 순간순간, 그리고 그다음 순간마다 죽음이 임했다.

번뜩이는 빛과 함께 고블린들은 쓰러져 갔다.

* * *

제니는 꼬맹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 앞을 지키고 섰다.

꼬맹이는 그대로 이미 짜둔 공간 이동의 술식을 통해 크게 후방으로 물러난다.

구출대의 전사 비중이 높지 않아 전선이 형성되지 않는다.

저쪽이 일방적으로 화망을 뚫고 돌파해 오는 그림에 가깝다.

꼬맹이도 자신이 지닌 약점은 안다.

마력의 절대량이 부족한 점. 회복력은 우수하지만 연전이 된다면 큰 문제가 된다.

그러니 가능한 가성비 좋은 선택지를 골라야 했다.

그래서 꼬맹이는 전투에 거의 참가하지 않기로 했다.

멀찍이서 위기에 처하는 이가 있다면 그 앞에 마력 방벽을 형성하는 보조 역할만을 수행한다.

제니의 몸에도 마력의 축복이 깃든다.

버프라기보다는 정교하게 맞물린 갑옷 형태의 방벽이었다.

제니는 정확하게 자신의 역할을 이해했다.

애초에 저 난전 속으로 뛰어들 능력도 없던 차다.

꼬맹이를 향해 날아오는 일부 저격을 검으로 쳐내고 몸으로 받아내고, 상처를 입더라도 결코 뒤를 내주지는 않는다.

총알을 보고 받아낼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든든한 미스릴 갑주의 존재에 안심한다.

곧 암살자가 찾아왔다.

마법사는 미래에도 주요 표적이다.

신비가 저물어가는 시대에 그 신비를 체현하는 자들이 어찌 골치 아프지 않을까.

광학미채로 투명해져 몸을 숨기고 다가오는 고블린들을 제니는 감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꼬맹이의 눈에는 모두 잡혔다.

은신한다고 한들 마력 자체를 숨길 생각은 하지 않는다.

마력을 볼 수 있고, 보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꼬맹이에게 은신이란 생소한 개념이다.

다 보이는데 살금살금 소리 죽이고 이동하는 모습은 우습기까지하다.

정확히 연결되는 [체인 라이트닝]이 그들 사이에 형성되자 제니도 사태를 파악했다.

마법사의 지원을 받는 전사를 암살자들이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격렬한 전투 끝에 제니는 꼬맹이를 지켜내었다.

힘이 빠져 쌍검을 짚고 무릎을 꿇은 앞에 다섯 암살자의 시신이 있다.

꼬맹이가 배운 대로 고맙다고 인사했다. 제니는 그저 웃었다.

* * *

이후의 전황은 단순하지만, 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에르메스는 한두 명의 초인이 전황을 바꿔놓는 상황에 대하여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고 그들은 일개 연대급의 정예 미래 병력을 이겨냈다.

고블린들은 최후의 순간까지 항전했으나 조직화된 공세가 종말점에 도달한 순간 승패는 결정되었다.

소수의 초인들이 군대에게 패하는 것은 군대의 조직력이 무사한 경우의 이야기이다.

처음 당황을 넘어 기세를 회복하자 고레벨 유배자들은 그들이 어떻게 사선을 넘어 이 위치에 도달하였는가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최후의 고블린이 쓰러지고 구출대가 다시 모였다.

"사망자 있나?"

"부상자는 있습니다."

유배자가 부상자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은 힐링 포션을 모두 소진했다는 뜻이다.

"큰일이군."

에르메스가 침통하게 말했다. 뭔가 이상하다. 이런 식의 적이 외곽의 첫 전투부터 등장한 적은 없다.

"일단 저 고블린 부대는 도대체 누구의 경험인가?"

조용히 손을 든 것은 소드 마스터다.

에르메스는 분노를 표출하는 대신 차분하게 말했다.

"자네는 맨 앞의 사람이 아닌데. 규칙이 맞아떨어지지 않고 있군."

"미궁이 또 무엇이 불만인지 모르겠군요."

그 말을 받은 것은 로잘린이었다.

"아무리 우리가 조사하고 열심히 기록하더라도 미궁이 변덕을 한번 일으키면 걷잡을 수 없어지니."

"불합리하군."

웅성웅성하는 말이 나온다.

그래도 당면한 상황에 불평을 하는 이들은 없었다.

모두 오랜 도전자 생활을 청산하고 은퇴한 이들이다.

이런 어이없는 일들은 충분히 넘어왔다.

"그런데 문은 왜 안 열리고 있어?"

어느 궁수의 지적이었다.

몽환의 숲은 한 구역에서 전투를 벌여 적을 섬멸해 낸다면 다음 길이 열린다.

길이 아닌 통로로는 걸어가 봐야 처음으로 돌아갈 뿐이다.

그런데 길이 열리지 않고 있다.

"하나가 살아 있어서 그렇습니다."

기절한 고블린 소드 마스터였다.

"그걸 왜 살려두지?"

이쪽의 소드 마스터는 자신만만하게 웃음 지으며 말한다.

그 내용은 터무니없었지만.

"안면이 있는 친구라서 말입니다. 숲이 걸어둔 혼란을 해제한다면 우군이 되어줄 것입니다."

바로 직전 전투에서 보여준 신위가 그 말에 그럴싸함을 부여한다.

에르메스는 어이없는 티를 내지 않고서 말했다.

"[혼란]을 말하는 건가? 그건 디버프지. 여기 출현하는 몬스터는 어차피 미궁이 찍어낸 복제품이잖나."

"해제할 수 있습니다."

모두 도전자였던 몸. 로잘린마저 당혹스러워하며 마법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디버프를 거니 마니 하는 것은 전적으로 마법사의 소관이다.

"정화의 신의 성직자도 해제할 수 없었는데."

그러나 폭거조차 당연하게 받아들여 보는 것이 리프트 속의 유배자다.

은발의 흡혈귀는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기절해 나자빠진 고블린에게 손을 뻗었다.

진실이라면 든든한 전력이 될 것은 물론이요, 이후 몽환의 숲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뀔 테니까.

* * *

내가 언젠가 말했던가.

과연 미궁이 먼저일까? 마법이 먼저일까?

미궁이 있어 마법이 존재하는 것인지, 혹은 미궁 자체가 마법으로 구성된 것인지.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몽환의 숲에 등장하는 적들이 상태이상에 걸려 있을 뿐이란 것은 엄연한 진실이다.

그건 게임 시절에도 그랬다.

그리고 게임 시절에도 임의로 해제할 수 없는 시스템적 상태이상이었다.

하지만 현실이 되고 나서는 다르다. 난이도가 엄청나게 높을 뿐, 대부분의 일은 현실적 합리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낼 수 있게 되었다.

성직자가 해제할 수 없는 것도 결국 신성력 그 자체를 연구하는 이가 적어서일 뿐이다.

그런 이는 마법사가 될 테니.

그리고 그 정도로 마법을 깊이 이해한 마법사들은 디스펠이 가능하단 사실을 알더라도 알리지 않고 침묵하리라.

유배자의 정보 우위는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꼬맹이는 눈을 반짝이며 움직이지 않는 고블린 소드 마스터에게 다가갔다.

좌중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섬세하게 마력의 실을 뻗어나간다.

순수하게 기술적인 문제기 때문에 마력을 항상 눈으로 볼 수 있는 꼬맹이가 나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몇 번인가 실수할 뻔한 위기는 내가 바로잡아 주었다.

"깨워보지요."

총구가 겨누어진다. 혹여 적대 상태가 유지된다면, 그게 아니라도 우리가 무언가 속인 것이라면 즉시 쏘아버릴 기세다.

포션 한 모금을 흘려넣었다.

고블린은 곧바로 눈을 뜨고 검을 찾았다.

당연히 무기를 근처에 두진 않았다.

크게 낙법 치며 펄쩍 일어서자 에르메스의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나는 그대로 달려들어 붙잡아 메쳤다.

경황의 와중 제압당한 고블린에게 여신님의 신언이 흘러든다.

「눈을 뜨거라. 그리고 너의 신을 섬기는 대전사를 보아라.」

"……아아!"

나는 고블린을 놓아주었다.

그는 무기를 찾는 대신 내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려 했다.

「그러지 말지어다. 동료로서 대하라.」

소드 마스터다운 임기응변으로 자세가 변한다. 무릎을 꿇으려던 동작은 그대로 포옹이 되었다.

"오르골!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러운 연기였다.

나는 속으로 낄낄대며 고블린을 안아주었다.

"그러게. 여기가 어떤 곳인지 좀 설명을 해야겠는데."

"우리 고향은 아니군. 그리고 피비린내……."

동료의 시체들을 보고 고블린의 눈이 흔들렸다.

「두려워하지 말거라. 너는 그 누구보다 더 크게 헌신할 기회를 얻었나니. 너의 신에게 힘을 빌려주지 않겠느냐.」

이번에는 고블린의 작은 동공이 감격으로 흔들렸다.

어쨌거나 유배자에게 적대 판정의 NPC가 모두 사라지자 공터 가장자리의 안개가 걷힌다.

세 갈래의 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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