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에 갇힌 고인물-213화 (213/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213화

????단계 - Lv.???? 몽환의 숲(4)

유배자들은 당연히 사람을 가리게 된다.

힘이 곧 질서인 이 땅에서 더 강하고 유능한 유배자와 친분을 쌓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파티의 비범함이 충분히 알려진다면 일그림에게 꼬리를 잡히기도 쉬워지겠지만, 이 공간에서만큼은 즐기도록 하자.

우선 로잘린부터가 눈에 띄게 친근해졌다.

상대적으로 총천연색인 잎사귀 요정에 비해 그루터기 요정의 머리색은 차분하다.

은은한 갈색의 요정은 대놓고 나에게 추근거리기 시작했다.

"원래 소드 마스터 전문이야? 나 그런 사람 처음 보는데?"

"멋있으니까 해보려고 했죠. 노력한 결과입니다."

"나중에 나도 좀 가르쳐 줄 수 있을까?"

뭐, 낌새로 봐서는 여성으로서 어필하는 느낌보다는 순수하게 흥미로워하는 걸로 보이긴 하다.

하지만 희우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직 날개를 숨기고 있는 천사가 몹시 뚱한 표정으로 로잘린을 노려보고 있다.

로잘린도 바보는 아니다. 곧 희우에게 슬그머니 다가가더니 뭔가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

한참 재잘거리던 로잘린이 멀어지자 희우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불이 붙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 귓가에 속삭인다.

"좋은 언니 같아요!"

"대체 무슨 소리를 들은 거냐?"

"그건 비밀이에요!"

어렵군.

그 외에도 각자 관심이 있는 분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딱히 낭비하는 시간은 아니고, 전리품을 확인하며 겸사겸사였다.

연방의 최정예 병력이 사용하는 장비는 대체로 희토류 자원의 합금이다.

실로 마도 공학적 예술의 결정체인 합금 재질은 리프트를 드나들며 잔뼈 굵은 유배자들조차 활짝 웃게 만들었다.

"요즘 참 이런 거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46서버는 소수의 통과자들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고 말이야."

"위험하다곤 해도 몽환의 숲을 드나드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도 그래서긴 하죠."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원 몽환의 숲 경험자인 모양이다.

하긴 그 정도는 되니 적당히 마법사의 필요로만 우리 파티를 받아들였겠지.

다만, 그 덕에 묘하게 거리를 두며 벽을 치는 느낌이 있었다. 어중이떠중이와는 쉽게 섞이지 않는다는 거겠지.

물론 조금 전의 전투로 그에 대한 검증은 끝나 버렸다.

희우와 블랑쉐가 돌아왔을 때, 온통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들의 활약을 의심할 수는 없다.

단둘이서 헤집어둔 적진의 흔적을 본 구출대는 모두 약간씩 질린 얼굴을 보여주었다.

틀림없이 적으로 돌리기 싫다는 의미다.

강력한 마법사로서 필요한 순간 적절한 보조를 한 꼬맹이의 주가도 하늘을 뚫고 있다.

그 꼬맹이를 지키느라 너덜너덜해진 제니도 특별히 약함이 탄로 나진 않은 상태.

친해질 만한 상대라는 계산이 서고 나니 여유 시간 동안 적극적인 친목 도모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단검 전사로 그렇게까지 하는 건 본 적이 없는데."

"손에 잘 맞는 무기를 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단검은 써볼 생각조차 못 해봤는데 다음이 있다면 한번 해볼까. 롱소드 정도와 그렇게 대단한 차이는 없어 보이는데."

"어, 그게 사실 추천은 못하겠는데."

구출대의 유일한 전사였던 이는 마스터리를 중갑 대신 경갑으로 택하고 한손 검을 쓰는 이였다.

종족은 에르메스와 마찬가지로 늑대인간인 모양이었다.

민첩 전사는 본디 종족 선택의 폭이 좁다.

오크 같은 종족이야 민첩함과는 거리가 머니 이런 식일 수밖에.

블랑쉐도 몇 명의 궁수와 사수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

"목격자가 없으면 암살 뭐 그런 거야? 그렇게 뛰어드는 경우는 처음 봤는데."

블랑쉐는 가만히 듣고만 있는듯해 보이지만 내가 보기엔 약간 패닉 상태로 보인다.

독고다이하던 이전과 다르게 우리 파티의 일원으로 맞춰줘야 하는데 어떻게 말을 이어가야 할지 모르는 모습.

보다 못해 내가 도와준다.

"이 친구는 좀 과묵한 부분이 있어서 너무 그렇게 관심 가지면 불안해할 겁니다."

"하하하. 수줍음을 타나? 귀엽네."

그야 뭐, 붕대 둘둘이건 말건 내가 다가오자 내 뒤로 숨어버리니 그렇게 여겨지겠지.

본인은 그 평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내 등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아프다 아파.

꼬맹이도 귀여움 반, 경외 반이기는 마찬가지다.

이쪽은 주로 에르메스가 관심을 가졌다.

"아케인 소속 마법사 중에서도 그 정도로 다채롭게 마법을 구사하는 사람은 드문데."

"아케인 마법사들보다는 제가 더 잘해요."

"허허, 꼬마 아가씨 자신감이 넘치는군. 그래도 아케인의 그랜드 마스터들 앞에선 말조심해."

"제가 더 잘해요!"

"그래그래."

저긴 어째 손녀딸 보는 느낌인데.

에르메스 양반 연식이 얼마나 되시는 거람.

늑대인간도 수명이 특별히 짧은 종족은 아니다.

전 랭커쯤 되면 카드를 여러 번 쓰며 수명 세탁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쨌건 전리품 배분에 있어 우리 파티의 우선권을 분명히 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인정을 받았다고 하겠다.

무사히 남은 완제품은 거의 양보 되고, 대부분은 재료가 될 만한 고철들을 원했다.

나로서는 언제건 연방과 접선만 하면 구할 수 있을 장비들이기에 오히려 다시 양보했다.

몇 번의 겸양이 오간 후에 구출대 측에서 알아서 인수하기로 결정되었다.

"씀씀이가 크군. 하긴 저런 마법사를 아케인에서 파견한 형식도 아니고 파티 내에 거느리고 있다면……."

대충 돈벌이가 짭짤하겠느니 하는 이야기다.

그 뒤, 에르메스는 책임자로서 확인할 필요를 느낀 모양인지 내게 다가온다.

"저 고블린 친구는 아주 친분이 깊은 모양인가 본데. 이야기는 잘 해봤나?"

이건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다. 자신이 복제이며 이 아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시한부의 존재라는 사실을 어떻게 여기는가의 문제.

나라면 속일 것이다.

에르메스는 그렇게 말했다.

"뭐, 그건 문제없습니다."

"가능하면 묻지 않겠으나, 그래도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들어봐야겠군. 중요한 문제니까."

이름을 이제야 알게 된 고블린 소드 마스터, 고테로는 정말로 개의치 않았다.

그가 검객의 길을 걷고 연방의 영웅이 된 바탕은 결국 여신님에 대한 신앙이었으며, 그것은 그 자신이 무엇이건 변치 않을 문제였다.

정확히 제국의 수도에 강하하는 시점의 기억만 가진 채 소환된 그는 오히려 전쟁의 결말을 궁금해했다.

그리고 전쟁이 승리로 끝났음을 전해 듣고 아주 기뻐했다.

"제가 어떤 존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전의 승리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어머니 혼돈이여! 영원하라!"

감격은 감격이고 그는 그렇게 순순히 우리 파티에 합류하기로 했다.

이런 형태로라도 대전사께 더욱 헌신할 수 있음에 기뻐하는 모양새다.

대충 그러한 내용을 각색하여 그럴싸하게 둘러대자 에르메스는 고테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제니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고테로는 정말 한 점 불순함 없이 순수하고 곧은 눈빛을 하고 있다.

제니가 어색해하는 것이 여기까지 전해진다.

저 고양이 귀 요정은 최근엔 꽤나 의기소침해진 것 같다.

기죽을 일이 넘쳐나긴 했지.

"뭐, 그렇다면야."

유배자끼리의 신뢰는 전투에서 얼마나 헌신하느냐에 달려 있다.

실질적으로 승리를 만들어낸 우리 파티는 비로소 구출대원으로 인정받았다.

* * *

대우가 달라지면 발언권도 달라진다.

에르메스는 정복자 칭호를 가진 적이 있다는 내 말을 진담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사실을 전해 들은 로잘린은 성실하게 동료로서 나에게 질문했다.

"혹시 어느 갈림길이 더 좋을지 짚이는 부분이 있나요?"

서로가 아는 사실에 대해 교차로 검증을 해본다.

물론 내가 아는 사실은 틀린 부분이 없다.

로잘린은 몇몇 부분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그 지표는 상대의 강약을 나타내는 게 아니에요. 종류를 나타낼 뿐이죠."

"과연……."

모두가 듣고 있는 가운데 몽환의 숲에 대한 정보가 풀려나간다. 다들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이 정도는 풀려도 상관이 없다.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니까.

몽환의 숲은 본디 더럽게 인기가 없는 계층이다.

드나드는 사람이 있는 것도 46서버가 잠겨서 발생한 문제일 뿐이다.

유배자의 모든 장비는 미궁의 시스템에 의하여 현실보다 빠르게 소모되다 보니 일어나는 현상.

우연찮게 우리와 함께하게 되어 고생할 이들이니 이 정도는 베풀어도 되겠지.

모두가 살아서 왕국으로 돌아가리라는 보장도 없다.

"본디 선두에 선 인원의 경험이 출현하는 것인데, 지금은 꼬였으니 중앙의 인원이라고 해보죠. 거기까지 일관성이 없지는 않을 테니."

사실은 그냥 무조건 우리 파티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 사실만큼은 입을 닫고 있자.

"못해도 다섯 번의 전투 안에 야영지가 출현해야 하는데. 정말 골치 아프군."

몽환의 숲은 로그라이크 속의 또 다른 작은 로그라이크 같은 곳이다.

비전투 구역이 출현한다면 그곳을 거점으로 수색할 생각이었으나 첫 전투부터 이 모양이다.

전리품과는 별개로 한숨이 나올 상황.

로잘린이 말했다.

"출현 가능성에 대해 정리해 볼까요?"

"왼쪽 길은 유배자를 뜻하는 지표."

구출대의 리더로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에르메스가 고개를 젓는다.

"PVP는 피하고 싶군."

나도 마찬가지다. 아티팩트는 복제되지 않는다지만 일그림과 에리나가 나오면 너무 힘들다.

"오른쪽 길의 발톱 자국은 짐승을 뜻하는 것이군요."

"그건 좀 나쁘지 않은 선택지 같은데."

저기선 뭐가 나올 수 있을까? 드래곤? 케찰코아틀?

드래곤이 아니라면 뭐건 간에 해볼 만하다.

"중앙은…… 깨진 거울. 이건 도플갱어인데……."

"결국 PVP잖나."

사실상 세 갈랫길 중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다.

나는 지난 무수한 회차에서 나 자신과 싸워야 하는 곳만은 피해왔다. 차라리 화신이 낫지.

「나도 피하고 싶군.」

‘일단 상성 문제로 우리 천사를 확실하게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절대로 안 가야죠.’

PVP를 피하고자 하는 바람에 따라 오른쪽 짐승을 예고하는 길로 행선지가 결정된다.

드래곤 로드는 좀 빡센데. 그거보단 약한 게 나오면 좋겠다.

짐승이라, 짐승, 만나본 것 중 뭐 어떤 게 있었지?

이동하는 길은 다시 안개로 둘러싸여 있다.

중간중간에 보이는 지표들은 가장 다행스러운 결과를 가리키고 있다.

파충류가 나왔을 때는 조금 섬뜩했으나, 신화적 존재를 뜻하는 다른 지표가 나왔을 때는 차라리 다행이라 여겼다.

케찰코아틀은 그 기원이 태양신에 있는 뱀으로, 기믹 없이 상대하라고 하면 아주 힘들긴 하지만 드래곤보다는 낫다.

안개가 걷히고 둥글게 파인 절벽 아래의 분지가 나타났다.

대도시의 일개 구 정도 되는 광대한 넓이의 필드가 펼쳐진다.

그리고 빌딩만 한 크기의 날개 달린 뱀이 땅속에서 서서히 솟구치기 시작했다.

하나, 둘, 그리고 셋.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메인 던전 마냥 부대 단위로 몰려나오진 않는군.

"이게 왜 벌써 나오지?"

"마가 꼈군."

침통한 구출대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전투가 시작된다.

그리고 장장 2시간의 혈투 끝에 케찰코아틀 세 마리가 모두 쓰러졌다.

거대한 덩치에 걸맞게 막대한 공격력과 체력을 가진 보스다.

하나 충분한 기동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패턴도 파악하고 있는 고레벨 유배자들은 그 공격에 거의 당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맞으면 죽는다.

신경을 잔뜩 곤두세운 두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구출대원들은 대부분 녹초가 되었다.

두 갈래 길이 열렸다.

이번에는 화기애애한 휴식시간이 되지 못했다.

에르메스가 크게 난색을 표했다.

"몽환의 숲은 여러 번 와보았지만 이따위로 운이 없는 건 처음이군, 다른 길로 가야 했던 모양이야."

로잘린도 동의하는 가운데 다음 방향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검은 불꽃이 피어오르는 램프가 있었다. 낡았고, 자잘하게 금이 가 있다.

"이건 또 뭔지 모르겠군요. 램프라니."

"……램프는 정령을 상징합니다. 색은 속성이죠."

"어둠의 정령? 귀한 존재인데. 얻을 만한 게 있지 않을지."

케찰코아틀은 강력하고 피곤한 상대지만 그 비늘이나 피 따위는 귀중한 재료가 된다.

높은 난이도만큼이나 챙길 것도 많았기에 다들 피로감만큼이나 기대감도 가지는 와중이다.

당연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뭐가 나올지 뻔하다.

"정령은 위험합니다. 혹여 정령왕이라도 나온다면 큰 사달이 아니겠습니까."

"정령왕이라니 내 평생 본 적도 몇 번 없는 존재군."

에르메스는 농담처럼 웃으며 말했으나 아무도 웃지 않았다.

"좋아, 피해가도록 하지."

다른 선택지는 무덤이 놓여있다.

이는 언데드를 뜻한다.

이제 와서 바르바로이가 나올 것 같지는 않고…….

그렇게 생각했으나 큰 오산이었다.

가는 길에 보인 또 다른 지표는 땅에 박힌 피 묻은 꼬챙이.

이건 흡혈귀를 상징한다.

그리고……. 그 꼬챙이의 개수가 엄청나게 많다.

구출대 멤버 중 인간이 몇 명인 지부터 세어보았다.

블랑쉐를 제외하고는 두 명이 더 있을 뿐이다.

안개가 걷히고 언젠가 보았던 그 습지와 고성이 펼쳐졌다.

"이건 또 누구의 경험이지?"

"뱀파이어의 고성 같군요. 괜찮은데요? 이 정도면 할 만할 것 같습니다."

로잘린만이 미간을 조금 찌푸린다.

"이상하게 지표의 숫자가 많았어요. 엄청나게 많은 뱀파이어가 있을 거예요. 주의하세요."

나는 그때 고민에 빠져 있었다.

내 기억대로라면 4층은 용의 습지였다.

그 당시에는 모르고 히든보스인 본 드래곤을 건드리지 않은 채 넘어갔다.

하지만 이렇게 맵도 그대로 구현되었다면 분명히…….

"으아아……."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하는 구울들을 보며 희우가 눈을 가린다.

물론 자잘한 언데드는 구출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쾌속으로 진격하는 가운데 고성이 가까워져 간다.

고성에는 수백 개의 관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궁수들이 앞뒤 재지 않고 쏴버렸다.

상당수의 뱀파이어가 죽었으나 대다수가 무사히 깨어났다.

꼬맹이가 중얼거렸다.

"어라, 헌아빠가 엄청나게 많아요."

"전부 가짜니까 때려줘도 된다."

"그렇게 할게요."

그리고 성의 뒤편에서 본 드래곤이 늪지에서 솟구친다. 언젠가 보았던 에이션트 악어 수십 마리와 함께.

이번 전투는 길지는 않았다. 약 30분간의 정신없는 혈전 끝에 길이 열렸다.

결국 문제였던 것은 본 드래곤이었고, 생각보다 훨씬 강력한 녀석이었다.

당시에 건드렸다면 바르바로이와 함께 이승을 하직했겠군.

대체 왜 3000살급의 드래곤이 여기서 언데드가 되어 있었던 거지?

다음으로 열린 길에 갈림길은 없었다.

위험한 곳은 아니었다.

야영지였으니까.

에르메스는 마침내 의뢰를 실패 처리하고 후퇴하는 방안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