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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218화 (218/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218화

????단계 - Lv.???? 거신(2)

유배자짓을 오래 하면 [침공] 이벤트라는 걸 겪는다.

사실 직접적으로 겪는 경우는 적다.

직접적으로 공격을 강하게 받는 곳은 주로 거대 길드들의 거점, 인구 밀집지역이며, 정 살아남고 싶다면 기도하며 어디 변방의 먼 곳으로 도망치면 된다.

운이 좋아 왕국으로 복귀하지 않아도 되는 리프트 속이었다면 그대로 거기 죽치고 있어도 되고.

다만, 그 경우에는 나온다면 반드시 [침공]을 마주하게 되리라.

[게이트]만큼은 반드시 목표가 된다.

다행스럽게도 항상 침공 저지를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왕국의 문명이 오래 존속 될수록 점점 더 강한 [침공]이 밀려들어 오고, 그러다 보면 결국 언젠가는 무너진다.

왕국이 오래되었다는 것은 그 파멸의 이전과 이후를 이어줄 만한 요소가 얼마나 있느냐에 달렸다.

이번 회차의 왕국은 신들이 정말 오래 현역으로 버티고 있다는 느낌이기에, 오래된 왕국임을 직감할 수 있다.

"방법 있어요?"

"있기는 있지."

"그럼 빨리 어떻게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로잘린이 매달리는 듯한 눈으로 본다. 이건 수르트를 알고 있는 자의 눈빛이다.

저건 이길 수가 없다. 통상적인 유배자의 개념으로는 그렇게 알려져 있으리라.

[침공]이 거의 마지막 단계에 도달하면 저런 신화적인 이벤트가 일어난다. 단순히 막아낼 만한 세력의 공격이 아니라 정말로 쓸어내기 위한 수준의 공세들.

북유럽 신화에서 라그나로크가 닥쳐왔을 때, 세상을 파괴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거신은 그에 걸맞은 재앙이다.

저것을 막아낸 적이 있는 왕국은, 혹은 그것을 본 유배자는 극히 드물 것이며 로잘린 역시 그때 쓸려 나간 경험이 있던 모양.

"부를 원군 비슷한 게 있기는 해서."

"저거보다 센 거요?"

"저거만큼 센 거."

몽환의 숲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던 인물의 파티원답게 로잘린은 곧바로 눈치를 챈다.

이 숲은 이미 클리어한 길을 되돌아가는 것에 제한을 두지는 않는다.

물론 시간이 많이 흐른다면 결국 안개가 닫히고 다시 랜덤한 무언가로 돌아가겠으나, 야영지까지 돌아갈 시간은 얼마건 있다.

"우리 팀 말고도 수색하겠다고 더 깊숙한 방향으로 떠난 팀이 있었지?"

"에르메스가 있는 팀이군요. 학장 다음가는 실력자들이 있는 곳."

"일단 중심부로 간다. 불러내는 이상한 것들 봤지? 우리 천사랑 함께라면 시간 끌 만큼 골치 아픈 녀석들을 자꾸 소환할 수 있을 거야."

"그런다고 해도 싸워 줄까요?"

이번 회차에서는 지성체 보다는 지성 없는 괴물들을 더 자주 마주했다.

수르트 역시 마찬가지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움직인다기보다는 그저 일어나는 현상에 더 가까운 존재다.

"어떻게든 될 거 같다."

정신없이 달려 야영지에 도착한다.

야영지에 남았던 인원들이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 보였다.

출몰한 거신의 존재가 알려지고 다른 이야기도 전파된다.

안개가 닫히지 않았기에 야영지를 포함해 이어져 있는 모든 경로의 기온이 치솟고 있었다.

희우와 제니도 이미 무장이 끝나 있다.

"와아, 이거 10층에서 터뜨린 후가 생각나네요."

"내버려 두면 그거보다 더 높게 올라갈 거야."

"그건 큰일이네요. 그래도 지금 머리가 잘 마르고 있어요."

애가 묘하게 뽀송뽀송하다고 했더니 씻고 나오던 참이었나. 제니도 비슷하다. 이쪽은 겁에 질려 있지만.

불길의 거인은 빠르지는 않지만 느리다고도 못할 속도로 우리를 쫓아왔다.

유배자의 전력질주니 무사히 여기까지 온 게지 일반인은 이미 따라잡혔으리라.

마법사들이 특히 혼비백산해 있다. 단순히 달리는 체력으로는 유리할 것이 없으니까.

"로잘린, 학장과 호위대 사람들한테 어디 다른 경로로 가서 숨어 있으라고 전해. 절대 돌아오지도 말라고 하고."

"알겠어요."

"아, 그리고 이놈 좀 챙기고 있어 줘."

"마법사로 위장하고 있던 암살자네요?"

"나중에 물어볼 게 있으니 살려둬. 의식은 안 돌아올 거야."

우리 파티원만 어떻게 빨리 수습한 후에, 에르메스가 떠난 경로를 뒤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수르트를 유인하기 위해서는 꼬맹이와 함께 마법을 엮어 냉기를 퍼붓는다.

불의 속성을 가진 거신은 차가운 것을 싫어한다. 잠깐 멈칫한 수르트가 나를 보았다.

붉게 타오르는 거인의 눈구멍과 내 눈이 마주친다.

강렬한 에너지로 휩싸여 있는 흐릿한 인간의 형상,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아티팩트 [레바테인].

이번 회차에선 [레바테인]을 손에 넣은 유배자가 없는 모양이다.

그랬다면 수르트가 맨손으로 출현했을 테니까.

아티팩트는 숲이 복제하지 않는다.

아니, 사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긴 하다.

숲의 중심, 클리어하면 곧장 몽환의 숲 정복자를 얻게 되는 그곳.

거기서는 틀림없이 전쟁의 화신이 출현하게 된다.

그걸 쓰러뜨릴 방도가 딱히 없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말이다.

희우는 달리기에 전혀 부담이 없다. 박쥐화하기에는 너무 기온이 올라간 상태라 꼬맹이를 들고 뛰고 있다.

신성력을 억제하는 장갑을 낀 채, 겨드랑이에만 손을 집어넣어 들고 있으니 좀 우습다.

꼬맹이가 마치 고양이 같군.

그 상태로 재주도 좋게 나를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저씨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 것 같아요. 전쟁의 화신이랑 저 불덩이 이름이 뭐랬죠?"

"수르트."

"둘이 붙여서 같이 잡을 생각이죠?"

"가능하다면?"

"가능해요?"

"아마도."

뭐 많은 일들이 그렇듯이, 설계하는 것은 내 몫이겠으나 그게 이루어질지는 하늘에 달렸다.

촉한의 제갈량 선생님도 그러셨지.

"잘만 되면, 몽환의 숲에 다시 돌아올 이유가 사라지지."

"돌아올 거였어요?"

"왕국의 유배자들이 종족 카드를 어디서 수급한다고 배웠지?"

"……홀수 층요."

몽환의 숲은 홀수 층이라 불리는 아공간 중에서도 아주 높은 난이도로 설계된 곳이다.

외곽을 맴도는 것은 생각보다 쉽겠으나, 중심으로 다가갈수록 보스러시가 시작된다.

중앙이 가까울수록 지표도 중요하지 않아진다. 어차피 피해갈 수 없는 위험이 결국 닥쳐오기 마련이다.

그런 곳의 보상이 어떤 것이겠는가?

정복자 칭호만으로도 랭커 중에서도 이름을 날릴 만큼 유명해질 수 있다면.

"나오는 카드의 드랍 테이블이 정해져 있는 거군요? 그것도 굉장히 좋은 걸로."

"반드시 악마 3종 중 하나가 나와."

희우의 눈이……. 탐욕으로 물든다.

왜 탐욕이지?

"아저씨가 악마가 되면 우리 서로 만질 수 있는 거죠?"

"나한테 안 쓸 건데?"

"아니, 왜요!"

"난 지금도 세니까."

"제길!"

"이쁜 말 쓰자!"

어차피 악마가 된다고 물질 분해 블레이드보다 더 빡빡한 공격력을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물며 마법 구사에 있어서는 뱀파이어면 떡을 친다.

재생력도 훌륭하고 그냥 지금 이대로 지내는 게 좋다.

나는 어느 상태에서나 충분한 전력이지만 파티원들은 내가 아니니까 말이지.

힘의 균형을 맞추려면 블랑쉐나 꼬맹이부터다.

행복한 상상은 여기까지만 하자.

불길의 거인이 조금씩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노골적으로 도발했으니 명확하게 우리를 노리고 쫓기 시작한 탓이다.

"방어막 준비해 줘."

꼬맹이가 10층에서 했듯이 열기를 차단하는 방호막을 만든다.

그 정도를 못 버틸 것은 없으나 장비의 손상이 우려된다.

마침내 숲도 타오르기 시작했다.

미궁의 법칙이 가로막고 있었으나, 수르트 역시 어느 정도는 그 법칙을 초월한 재해.

음산하리만치 적막한 무채색의 숲에 붉은빛이 점차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 * *

에르메스에게 설명할 시간은 없었다.

그는 상황이 이상해졌음을 깨닫고 돌아오고 있는 와중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일단 뛰어!"

뒤편에서 달려오는 불의 거인이 보이자 에르메스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다른 모든 유배자와 학회의 마법사들도 입을 닥쳤다.

아니, 닥치진 않았다.

"세상에, 저건 수르트라는 현상 아닌가!"

"맙소사! 저걸 내 눈으로 보게 되다니."

그러고 보니 이 녀석들 불의 마탑이었지? 제 목숨이 경각에 달렸음에도 즐거워할 수 있다니 이해하기 어렵다.

그루터기 요정과 마법광의 사고가 뒤섞여 이상해진 게 틀림없다.

"제일 만만한 게 어디야?"

"어, 그건 저쪽의 야생 오우거 떼가……."

"거기로 간다!"

이런 비상시에는 목소리만 크면 땡이다.

카리스마라는 것은 의외로 별것 아닌 요소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음색부터 해서 표정, 몸짓, 등등 여러 가지.

검을 뽑아 들고 오러를 일으킨 채 방향을 가리키는 것만큼 좋은 제스처도 없다.

그리고 혼란의 와중에도 확신을 담아 말하는 것이 느껴지는 큰 울림의 목소리.

다들 일단 내 말을 따른다.

배를 긁으며 낮잠을 자고 있던 오우거 부족은 나타나자마자 순식간에 피떡이 되었고 다음 길이 열렸다.

나는 꼬맹이를 제니에게 떠넘기고 희우에게 가장 바짝 붙어 있었다.

선택지 중 검은 램프가 보인다.

"여기로!"

두말없이 돌격하자 이미 암묵적으로 리더가 된 나를 모두가 따른다.

어두운 우주가 펼쳐지고 거대하고 흉험한 몸체를 지닌 우주적 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법사들이 많았기에 거동하는 데 문제는 없었다.

거대한 어둠의 정령왕은 가장 먼저 우리를 보지 않았다.

뒤편에서 따라오고 있는 수르트를 보고도 이런 작은 집단들에게 눈이 간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

그렇다고 우리에게 어둠 정령들의 공격이 닥쳐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 정도는 문제도 아니다.

마법사들은 과연 마탑에 소속되어 학회까지 참석할 만한 인재들이었다.

"그쪽으로 마력선 연결하고! 거기엔 마력 장벽 좀 더 견고하게!"

"이…… 이건 이렇게 하면 되겠소?"

"어허, 유체 역학 안 배웠어?"

"그게, 학부생 시절이라 좀……."

"비키시오, 내가 그건 더 잘할 것 같군!"

그루터기 요정들이 묘하게 신이난건 그렇다치고, 정확히 5분 만에 근처 낡은 동체 하나를 우주선으로 만들었다.

마법사는 엄청나게 많고, 마력도 넘치니 가능한 짓거리다.

수르트는 어둠의 정령왕을 신경쓰지 않았다.

자신에게 냉기를 뿌린 우리를 붙잡겠다고 검을 휘두른다.

"발사해!"

불의 마탑답게 추진력은 확실했다.

몇 가지 조합되어 구현한 화염의 마법이 급조 우주선 꽁무니에 불을 붙인다.

로켓처럼 날아가는 우주선의 궤적 끝에 레바테인이 스쳤다.

"저기 끝까지 가야해!"

"추진은 언제까지 유지하면 되겠소?"

"1분 후에는 지금의 10%로 줄여!"

"여긴 이렇게 보강해도 되는 거요?"

"좋은 생각이니까 그냥 해!"

꼬맹이도 거든다. 세밀한 마력의 운용으로는 정말로 여기 마법사들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오히려 눈으로 전부 볼 수 있으니까 훈수도 두기 시작한다.

기묘하게 화기애애한 우주선, 아니, 이제는 로켓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건 무시무시한 속도로 발진하고, 그대로 어둠의 정령왕을 관통했다.

정상적으로라면 우리가 살아남기 힘든 돌파였지만 정령왕은 수르트에게 모든 정신을 집중하고 있다.

뚫고 지나간 뒤편은 그야말로 장관이 펼쳐졌다.

우주적 단위로 크기를 재는 편이 더 좋을 수준인 어둠의 정령왕에 비해 수르트는 손가락 하나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레바테인이 화염을 토해낸다. 어둠의 상극은 당연하게도 빛이다.

불과 빛은 언제나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원소다.

어둠이 쏟아지고 우주에 때 아닌 불꽃놀이가 터져 나와 사방을 수놓는다.

오래지 않아, 구현된 맵의 끝자락에 도달했을 때, 어둠이 무너져 내렸다.

파편화되는 정령의 육신 사이로 불길이 터져 나온다.

소멸하는 어둠의 정령과 유사 정령계를 배경으로 완전히 멀쩡한 수르트가 솟아난다.

맵의 끝이 열리고 다시 숲이 나타난다.

안개가 걷히며 갈림길이 나타났다.

지표를 꼼꼼히 따져볼 시간도 없었다. 디딜 대지가 없는 무중력 공간을 수르트가 빠르게 가로지른다.

걷거나 달리는 것보다 훨씬 빠르다.

그 다음은 우주 함대와 드래곤을 뜻하는 지표가 보였다. 늘 그렇듯이 끔찍한 선택지 둘 사이에 멀쩡한 선택지도 하나씩 보인다.

하지만 따라잡히지 않으려면 수르트 입에 계속해서 미끼를 던져줘야 한다.

"마력만 충분하면 대규모 공간이동 마법 준비할 수 있나?"

바람의 원소 결정을 잔뜩 쏟아내며 묻자 마법사들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로 급조 우주선을 다음 우주공간으로 끌고 갔다.

내가 지휘하여 술식이 짜 올려지고, 마법사들이 수제로 구현한 워프가 실현된다.

젊은 드래곤 로드는 워프하는 우리를 보며 어이없어했으나, 그 뒤를 맹렬히 추격하고 있는 불길의 거신을 보며 입을 벌렸다.

당연히 수르트가 곧장 도륙을 내버렸지만 다시 다음 길이 열린다.

아슬아슬하지만 되려나? 혹시 그냥 가는 길에 전쟁의 화신이 나와 주면 안 되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신을 상징하는 신좌가 나타난 것은 마침내 숲의 중심에 도달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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