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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221화 (221/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221화

????단계 - Lv.???? 거신(5)

마법사들은 도리어 보상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저 일반적인 호기심이다. 더 악랄한 생각을 하기에는 날 때부터 요정이며 앞으로도 요정일 것이다.

마법에 더 능한 종족이 악마이니 구매 의사를 타진해 보는 정도겠지.

하지만 기본적으로 훔치거나 빼앗는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으리라.

마법사들은 그저 온건하게 이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

유배자들은 조금 다르다. 그들의 삶은 대부분이 투쟁이었다.

바깥의 삶이 흐릿해질 만큼 긴 세월을 그렇게 살아온 이상 저런 보물을 본다면 본능이 반응한다.

그리고 동시에 그 본능을 억눌러야 했다.

너덜너덜하다고는 하지만 천사임을 드러낸 희우가 있었고, 한눈에도 위력적인 장비의 사수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다.

짧고도 긴 침묵이 지속된 후에 호위대장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그쪽 사람들이 물러난다.

"우리가 받은 의뢰는 어디까지나 학회의 수호요. 저건 우리랑 관련 없는 물건이지."

에르메스가 쓰게 웃었다.

"좋은 판단이군. 안 그랬다간 나도 이쪽에 붙을 거라서."

"그래 보여서 이런다네. 자네 눈에는 욕심이 없더군."

"벌어진 일을 보고도 그러나?"

"솔직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도 잘 모르겠어. 그렇다면 알고 있을 것 같은 사람을 따라야지."

가끔 있다. 이해의 범주를 벗어난 수준의 퍼포먼스를 보고는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는 종류의 사람들.

아티팩트와 카드, 그게 반드시 악마 3종 중 하나라는 것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충동이 찾아올 만도 하다.

실제로 탐욕으로 손이 움찔거리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도 호위대장이 고개를 젓자 물러난다.

처음부터 생각했지만 급조된 분위기는 아니다. 우리 쪽처럼 파티모집을 했다기 보단 원래부터 저런 일을 하기 위해 한 깃발 아래 모인 길드겠지.

나는 그 모습을 스윽 살피고, 말없이 걸었다.

한번 불타올랐던 흔적이 전혀 남지 않은 숲은 을씨년스러우면서도 서늘했다.

치솟았던 기온에 달궈진 몸이 주변을 채운 안개에 식어간다.

"몽환의 숲 최종 보상이 종족 카드였나?"

"마이어는 왜 인간으로 남은거지?"

"인간 근본주의자라는 소문은 있던데."

습도 높은 공터는 작게 속삭이는 소리까지 멀리 퍼뜨린다.

나는 비로소 긴장을 완전히 풀었다. 재차 전투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주변에서는 우리 파티를 한없이 강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한계에 도달한 상황이었다.

희우는 입술을 앙다물고 태연한 척하고 있지만, 한동안 요양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걸 쏘아낸 레일건조차도 상태가 안 좋은데 탄환이었던 녀석이 멀쩡할 리가 있나.

꼬맹이도 빈 깡통이 되어 있고 나로서는 여기 모두를 홀로 제압할 정도의 힘은 없다.

길동무로 데려갈 수는 있겠지.

아무래도 전쟁의 신이 또 친절을 베풀 것 같지도 않고 말이야.

그러니 발걸음은 당당하게. 힘이 넘치고 위풍당당하게.

새로운 숲의 정복자다운 위엄으로 속여 넘긴다.

카드에 손을 뻗는다.

언젠가 그랬듯 허공에 떠 있던 금빛의 카드가 내 손으로 빨려 들어온다.

손이 닿자 카드의 그림을 가리고 있던 금빛이 샤라락 벗겨진다.

위쪽부터 천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정체는 빠르게 드러났다.

산양을 닮은 뿔.

실루엣이기에 붉은 피부는 묘사되지 않았으나 이건 이블(Evil)이다.

NPC로서는 여러 세계를 떠도는 상인이며, 플레이어블로서는 유틸리티에 극도로 특화된 마법 전문 종족.

이러면 블랑쉐에게 줘야겠군.

표정 변화 없이 카드를 품속에 넣는다. 궁금해하는 시선이 느껴지지만 굳이 숲의 보상을 노출할 필요는 없다.

다음은 레바테인이다.

성스러운 속성을 지닌 묠니르와 달리 레바테인의 화염은 완전한 악 속성이다.

뱀파이어인 내가 만져도 전혀 무리가 없다. 오히려 천사인 희우가 사용할 수 없는 검이다.

수르트가 들고 있을 때는 아주 거대했으나 지금 바닥에 꽂혀있는 레바테인은 딱 인간 사이즈의 장검의 형태였다.

과할 정도로 단단히 박혀 있었기에 뽑으려다가 쪽팔릴 뻔했다.

흐읍 하고 힘을 줘서 들어 올리니 불길이 피어나며 검신에 새겨진 문자를 불태운다.

화염이 내 주변을 휘감는다. 마력을 불어 넣으며 진정시킨다.

이건 마검이다.

그리고 마검은 많은 경우에 그렇듯 주인을 시험한다.

게임 시절에는 능력치 제한이 걸려 그걸 만족 못하면 장비시 꾸준히 화염 피해를 입었다.

현실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 능력치는 레바테인을 사용할 만큼 높지는 않다.

하지만 항상 우회로는 있는 법. 게임이 아니기에 가능한 마법적 해킹이다.

아티팩트를 여러 번 제작하다 보니 생긴 노하우지.

마력의 실을 뻗어 레바테인의 문자를 향한다.

불길은 저항하지만 그 사이로 빠져나가는 미세한 마력을 어찌 할 수는 없다.

주인을 시험하는 이 화염은 결국 검신에 새겨진 문자가 원인이다.

몸이 좀 타는 것을 감수하며 술식을 약간 고쳐 쓴다.

원래 조건은 힘 스탯이지만 그걸 지능으로 바꿔치기한다.

마투사 루트를 먼저 밟았던 나는 지능이 훨씬 높다. 기초 스탯 문제도 있고 아무래도 마법사 쪽으로 쏠리는 수밖에.

제대로 고치지는 못했다. 그건 너무 힘들뿐더러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도 없다.

레벨링을 좀 더 할 때까지만 임시로 막아두면 된다.

오래가지는 않겠지만 그걸로 충분하다.

화염이 굴복했다.

바르바로이의 망토 뒤로 수르트의 몸을 이루는 것과 흡사한 불길이 날개처럼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곧 내 안으로 갈무리된다.

마인드맵을 확인하자 레바테인에 딸려 오는 몇 가지 스킬이 새겨져 있다.

대체로 원주인인 수르트가 보여준 퍼포먼스와 흡사한 것들이다.

모두 해금되어 있지는 않다. 이런 귀중한 장비들은 장비의 성능을 온전히 깨워내는데도 여러 가지가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도 이러면 이제 롱기누스의 창과도 부딪혀 볼 만하겠군.

그래도 가능하면 일그림을 다시 만나는 건 레벨링을 더 한 후면 좋겠다.

안전제일이지.

* * *

카드를 획득한 순간 몽환의 숲이 클리어되었다고 간주한다.

이 사실은 몽환의 숲에 입장하려는 자들을 통해 왕국에 널리 알려질 것이다.

"구출대상도 이쪽으로 오겠군."

"당분간 비활성화 되니 그렇겠군요."

"그런데 살아 있을까?"

"검과 방패를 같이 쓰는 전사라고 했으니 무사하겠죠."

오래지 않아서 다른 쪽으로 흩어졌던 팀들도 나타났다.

몽환의 숲 전체가 한 번 재생성될 정도의 힘이 충돌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안개는 강력한 시스템적 장벽이다.

필드의 현장에 있었던 우리와 달리 다른 팀들은 그렇게까지 파괴적인 위협에 노출되지는 않았다.

"미친, 말도 안 되는데. 도대체 어떻게 한 거죠?"

그럼에도 여기저기 그을린 로잘린이 길쭉한 귀를 쉬지않고 파닥거리며 말한다.

"그런데 그 마이어의 파티원이었으면 당신도 이 정복자 칭호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는 한발 빨리 은퇴했어요.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마이어가 공략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죠."

"오, 그것 참 애석한 일이군요."

보상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최소한의 매너를 지킬 줄 아는 괜찮은 유배자다.

안개가 서서히 옅어지고 있었다.

오랫동안은 아니겠으나 당분간 이 숲은 안전한 곳이 된다.

숲의 모든 통로가 자유롭게 통행 가능해진다.

거기에 바깥에서 입장할 수는 없고 안쪽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만 가능하다.

분쟁이 생기기 딱 좋은 상황이지만 호위대는 정말로 욕심을 더 내지 않았다.

어떻게 찌르고 튄다는 생각을 해볼 법도 한데 말이지.

질서가 바로 서있는 길드로군.

고테로가 다가왔다.

"저는 여기까지군요. 대전사님."

"아."

희우도 아쉬워했으나 뜻밖에 로잘린이 가장 아쉬워했다.

고테로처럼 파티에 헌신하는 전사는 드물다. 후방에서 사격을 하는 직종에게는 그만큼 반가운 이도 없었겠지.

고테로는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 존재에 대해서는 한 점 의문도 품어본 적이 없습니다. 여신님과 이런 곳에서나마 이렇게 가까이에서 함께 하였음이 저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

마음의 준비가 끝난 이의 회고 같은 말을 듣는 건 어딘가 찝찝한 기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바보 같을 정도로 우직한 고블린들은 그런 마음마저 들지 않게 만든다.

고테로는 마지막으로 부탁했다.

"진짜 저를 다시 만나신다면 부디, 이 경험을 가슴에 새길 수 있도록 잘 전해주시기를."

여신님이 눈물을 흘리셨다.

「아니다! 내 계시로 너의 꿈에 이 일을 알리겠다.」

"감사합니다."

고블린 소드 마스터는 걷혀가는 안개 속에서 기도하는 자세로 흩어져 사라졌다.

그의 장비는 남았다. 이 숲에서 하도 열심히 쓰는 바람에 내구도가 간당간당한 빔 소드다.

"이건 제가 챙겨둘게요."

희우가 그렇게 말하며 자기 주머니에 냉큼 집어넣었다.

"황제랑 싸울 때 구해준 것도 잊지 못할 거야. 고테로……."

낭만적이구만 그래.

고블린도, 소드마스터도, 여신님도.

* * *

구출 대상이 스스로 찾아오는 것은 보기 드문 광경이다.

카이트 실드를 들고 다른 손에는 낡은 아다만타이드 장검을 들고 있는 사내 하나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오고 있었다.

온통 그슬린 그 몸에는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방패는 한눈에도 내구도가 간당간당해보였다. 다만 그 내구도 소모의 원인은 짐작할 수 있었다.

완전히 열로 달궈졌던 흔적이 보인다.

단순히 끔찍할 정도로 올라간 기온의 영향만 받아서는 저렇게 되지 않는다.

애초부터 아직도 랭킹에 이름을 올리고 있을 정도의 유배자가 외곽에서 실종되었을 리는 없다.

정말로 그는 단독으로 클리어에 도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남자는 지쳐 보이지만 그 눈빛만은 흉흉했다. 아직도 전장 한가운데에 있다는 듯 날이 서있다.

나는 에르메스를 보았다.

"저 사람 맞지?"

"복장이 일치하는군요. 곧 죽어도 검은 후드와 망토를 쓸 것이라고 했습니다. 검과 방패도 확실하구요."

"그렇군. 검은 후드? 컨셉 플레이인가. 아니, 잠깐만 그거 설마……."

다시 걸어오고 있는 사내의 복장을 본다.

검은 후드, 검은 망토, 그리고 어딘가 익숙한 문양이 수놓아져 있다.

검은 까마귀.

그 어느 서버에서나 공통적으로 출현하는 인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집단의 상징.

게다가 종족조차 인간이다.

"나이트 크로우?"

에르메스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어, 음. 그러고 보니 구출 대상이 나이트 크로우에 아주 심취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혹시 어느 정도인지도 들었어?"

"1인 길드로 길드 명이 [밤까마귀]인 사람입니다. 그…… 뱀파이어와 분쟁을 자주 일으킨다고."

중증이군.

저런 유배자들은 제법 있다. 주로 바깥에서의 삶이 비참하지는 않았지만 동시에 만족스럽지도 않았던 사람들.

그런 이들인 미궁에 익숙해진 후, 이곳에 감화된다.

초인적인 힘과 다양한 종족, 그리고 무수한 이야기들.

제니와 로건처럼 먹고 살기 위해 살아가는 것도 아니며, 도전자처럼 미궁이라는 주어진 목표를 위해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의미로 모험이라는 개념 그 자체에 매료되고 그것에 의미를 찾은 자들이다.

흔히 리프트를 드나드는 이들을 퉁치는 표현인 모험가가 아니라, 정말로 진정한 모험가 말이다.

마법의 신 또한 그런 존재다. 그는 이 미궁의 마법이라는 것에 심취하고 오직 그것만을 목표로 삼은 자니까.

전쟁의 신 또한 그 자신을 진정한 전사요 그린스킨으로 여기는 자이고.

지금 이곳의 마법사들 역시 유배자 2세긴 하지만 미궁의 요소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낸 이들이다.

아마도 저 남자에게는 나이트 크로우라는 조직의 로망이 그런 의미일 것이다.

멋있긴 해. 좀 오글거릴 수는 있지만, 검은 후드에 망토, 그리고 뱀파이어 헌터.

너무 로망으로 가득 채운 집단 아닌가.

과연, 성큼성큼 걸어오며 주변을 살피다가 꼬맹이에게 시선이 가서 닿는다.

그리고 나에게서도 멈춘다.

눈빛은 여전히 서슬이 퍼렇다.

잠깐만, 이거 설마.

얼마나 중증인거지? 아니면 숲 중심부에서 1년 이상 고립되어 미쳐 버렸나? 어떤 것이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불길한 추측을 뒷받침하듯 으르렁거리듯이 울리는 낮은 목소리.

"뱀…… 파이어."

일단 생리적으로 싸우기 싫은 유형인데.

머리를 빠르게 굴린다.

검방 랭커란 말이지? 검과 방패를 같이 쓰는 랭커라면 PVP에서 아주 강력하다. 죽이지 않고서 제압하는 일은 정말로 쉽지 않다.

"야야야야야! 그거 그거 그거 어딧냐? 그거 분명히 언젠가 쓸 거라고 고이 모셔놨는데?"

희우가 피로로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뜨며 고개를 갸웃한다.

"어떤 거요?"

"나이트 크로우 자유 이용권! 4층에서 더스번 경에게 받은 거 있잖아!"

당연하지만 그 시점에서 함께 있었던 멤버는 이제 희우뿐이다.

다른 파티원들은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서둘러 차원 수납 주머니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이 숲에서 챙긴 산더미 같은 소재들 덕분에 도통 나오지를 않았다.

그런 와중 구출 대상인 남자는 발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구출대는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다.

구출대상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도 우습지 않은가.

마침내 남자가 검을 뽑아 들었을 때.

내 주머니의 바닥에서 간신히 까마귀가 양각된 펜던트가 발견되었다.

"멈추시오! 나와 이 아이는 그대의 적이 아니오!"

제정신인지 잘 모르겠으니까 연기 톤으로, 저런 식으로 정신 나간 사람에겐 맞춰주는 게 특효다.

"뭣이? 그 펜던트는……."

남자의 검이 멈춘다.

그리고 아무런 공격 의사가 없었다는 듯 다시 검집으로 들어간다.

대신 검을 쥐고 있던 손을 뻗었다.

펜던트를 쥐고 확인한다. 아무 문제가 없는 진품일 것이다.

더스번 경이 직접 준거니까.

남자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펜던트를 돌려주었다.

"그렇다면 자네는 내 친구일세."

"그거 참 고맙네요."

"선량한 뱀파이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는데 참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

제기랄. 미친놈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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