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229화
왕국 ? Lv.98 영재 진학반(3)
문득 생각해 보면 정말로 학부모가 된 게 맞나 싶은 기분이다.
블랑쉐는 나를 아비로 오해했고, 미아는 어쨌건 양녀라고 할 수 있으니까.
두 딸을 학교에 보내두고 나서 부모가 무엇을 하는가 하면.
"용사의 자질이 보이는 어린애는 없지?"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 같아요. 언제 찾지."
"우리 46서버도 그린스킨 제국과 나머지 종족 연합이 전쟁을 시작했으니 어디선가 입질이 있긴 할 거란 말이야. 용사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히어로 유닛이니까."
생업에 종사해야 한다.
애들 먹여 살리려면 매일 출근해서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학비 덕에 뼈가 삭는다 삭아.
물론 학비는 농담이다. 돈은 썩어 넘친다.
이 모든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걸 벌어들이기 위한 노력이다.
"일단 오늘 수색은 여기까지만 하고 레벨링 하러 가자."
"좋아요! 저도 그게 더 재밌어요!"
규칙이라고 할 만큼 제대로 파악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난이도 조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도 파워 업을 충분히 하였기에, 이제 20단계 이상으로 제물을 바치지만 않으면 할 만한 수준의 스테이지만 등장한다.
거기에 우리의 홈그라운드라면 그보다 더 할 만한 스테이지가 많이 출현한다.
용사 수색의 일환으로 여기저기 들쑤시는 데 큰 부담이 없다.
불의 마탑의 그랜드 마스터인 학장이 보장하는 덕에 내 신분은 아주 분명하다.
그 덕에 리프트 이용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그동안 안 쓰고 고이 보관만 하고 있었지만 난쟁이 왕국을 몰살시키며 경험치를 벌어들였던 것은 연계 퀘스트의 일환이었다.
일그림과 에리나에게 추적당한 탓에 잠시 몸을 숨겼으나 지금쯤 다시 나서도 좋을 것이다.
"진행이 빠르군. 한번 작살을 내버려서 그런가."
"연계 퀘스트가 무너져서 그때 하늘 유적으로 튀어버린 것 아니었나요?"
"맞아, 하지만 그 결과를 수동으로 찾아갈 수는 있지."
제니는 본디 43서버에서 수렵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당연하지만 43서버의 상황에 대해서는 빠삭하다. 로건과 함께 스스로를 베테랑이라 여길 만큼은 오랫동안 드나들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내가 제니에게 물어본 것은 하나뿐이다.
"친구 많냐?"
"네?"
"NPC 친구 말이야. 정 마음이 아프다면 그 친구들 가족을 우리 길드원으로 받아줄 수도 있어."
"아……. 기껏해야 가끔 거래하던 상인들 정도에요. 그 이상으론 없네요."
"그렇다면 다행이야."
제니가 변절하거나 하는 일은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그리고 보통은 그런 일은 정 때문에 일어나지.
우리 파티는 43서버를 철저하게 파밍 장소로서만 대할 것이다.
"괜찮겠지?"
"네. 각오하고 있어요."
* * *
미아는 잔뜩 흥분했다.
이렇게 무언가를 주도하는 입장이, 그것도 자신의 말을 척척 따라주는 집단의 수장이 되어본 적은 없다.
게다가 미아가 더할 나위 없이 좋아하는 마법에 관한 일이다.
그 마음은 틀림없이 학예회를 준비하는 어린아이의 마음과도 비슷하지만 미아로서는 잘 알지 못한다.
들뜨고 설레었다.
그게 전부다.
거기에 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리는 일 자체도 즐거웠다.
사실 엄마랑 비슷한 느낌이 아닌가 싶지만 그래도 엄마는 엄마니까.
"거기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놔야할 것 같아. 흐름이 불안정해."
"그걸 어떻게 그렇게 바로 알아?"
마력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숨기라고 들었다. 미아는 태연하게 둘러댔다.
"여기랑, 여기에 작은 술식을 넣어보면. 어때? 불꽃이 튀지?"
"아, 마법진 검산식이구나. 혹시 어떤 식을 쓰는지 알려줄 수 있을까?"
미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둘러대느라 방금 만든 건데. 이런 급조를 알려줘도 되는 걸까?
물론 조심스레 알려주자 그 간단한 식의 이론적 깔끔함을 깨달은 학생은 충분히 기뻐했다.
그가 스스로 고안해서 사용하던 것보다 압도적으로 직관적이었다.
"이건 내 마법 체계에도 호환될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고마워."
저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바로 하루 전날만 해도 두려워하던 학생들은 미아를 친근하게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우선 본인부터가 악의 한 점 없었던 점이 크다.
거기에 순수하리만치 아름다운 열정.
마법에 누구보다 진심이게 이 영재 진학반에 선발된 학생들인만큼 열중하는 누군가의 모습에 감명 받지 않는 이도 없다.
"저기, 머리카락 만져봐도 될까?"
"응? 응. 괜찮아."
"거기! 리틀 양을 방해하면 어쩌나요!"
"앗! 선생님 잠깐만요. 은색이 너무 예쁘잖아요."
스스로는 아무런 생각도 없으며, 인지했다 하더라도 일말의 가치조차 부여하지 않았을 외모도 한몫했다.
어린 아이에게 우호적인 것은 종족불문하고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이다.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의 외모를 하고 있는 학생들 사이에서 기껏 해봐야 열 살이 조금 넘은 외모는 튄다.
짧은 팔다리를 바쁘게 놀리며 대광장을 누빈다. 귀엽다고 생각하지 않기도 힘들다.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외모에 압도적이어서 질투조차 들지 않는 능력.
그 모든 것을 납득하고 나자 오히려 친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물론 몇 명은 지금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묻기도 했다.
가장 먼저 교사가 그러했다.
"리틀 양, 그래도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저도 알아야 합니다. 제대로 설명해 주시겠어요?"
"앗. 넵."
결국 미아의 연구 개요를 작성하기 위한 실험이다.
이 자체로 이미 증명이 되지 않나 싶은 느낌은 들지만 무엇인지는 알아야 작성을 도울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사실 이미 개요를 작성할 필요는 사라진 것 같았다.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곧 대학에 진학할 영재 진학반 하나가 갑자기 대광장을 전세 내고 무언가 하기 시작했다!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권을 부여받은 수준으로 특혜를 받는 반이기에 그 행위 자체는 문제되지 않는다.
그 실험의 규모가 놀라울 뿐이다.
교무실에 허가 요청을 위해 갔던 학생을 통해, 곳곳에 실험을 위한 물품들을 확보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학생들을 통해서.
조금씩 주변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준비과정이 워낙 길다보니 위험성을 생각하여 찾아오는 교수도 있었다.
"지금 무엇을 하는 겐가? 이런 규모의 실험은 교수의 참관 하에 진행해야하거늘!"
교사로서도 그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미아에게 지금부터 증명할 내용을 전해 듣고 이해한 그는 자신만만하게 마탑의 마스터에게 대답했다.
"이 실험은 환상의 실존 증명에 관한 것입니다."
"음? 무슨 말인지 더 자세하게 설명해 보게."
"환상 마법의 실체화는 보통 물리력을 발휘하는 술식을 통한 모방이지 않습니까. 그것이 정신적인 모체를 통해……."
교사의 생각대로 찾아온 교수는 전문 분야가 아님에도 큰 흥미를 보였다.
"그렇다면, 그건……. 미궁의 보정을 받을 수도 있나?"
"네, 이론적으론 그런 모양입니다. 저도 아직 다 파악하진 못했지만……."
"아니! 자네가 모르면 누가 이 실험을 주도하는 것인가?"
"학생이 하나 있습니다."
"학생?"
교수가 아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마력의 흐름을 다시 관찰한다.
연구소 규모의 일인데.
"이걸 학생이 하고 있다고?"
교사는 자랑스럽게 가슴을 폈다.
"틀림없는 천재입니다!"
"저리 비키게! 내 직접 만나봐야겠네. 아니, 잠시만, 그, 자네는 연락 좀 해주겠나?"
"네?"
"이런 걸 하면 그 교수를 불러야 하지 않나. 그그그. 이름이 뭐였지? 하이랭커인 명예 교수."
"레베카 교수님 말씀이십니까?"
"그래! 나이가 드니 기억력이 영……. 어쨌건 지금 아케인에 머물고 있다고 하지 않나."
교사는 무릎을 탁 쳤다.
비록 그들은 리프트를 드나드는 워 메이지는 아니지만 랭커는 그럼에도 절대적인 존재다.
거기에 레베카 교수는 이론 마법의 분야에서도 눈에 띄는 실적을 내고 있는 전도유망한 이였다.
종족도 강력한 꽃잎 요정이기에 오랫동안 아케인을 발전시킬 것이며, 동시에 미궁에 의한 파멸이 닥쳐오더라도 다시 마법을 이어나갈 것이다.
마침 뱀파이어도 수명으로부터는 자유로운 종족이다.
교사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달려갔다.
* * *
차근차근 쓸어 담았다.
43서버에 입장한 후, 맵의 크기부터 파악한 한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일소한다.
경험치가 될 수 있는 건 전부 쓸어 담았다.
요정의 숲이 있다면 사라진다.
고블린 부락이 있다면 지워진다.
뱀파이어 클랜이 있어도 불살라 버린다.
다만, 인간은 건드리지 않았다.
"왜 그러는 거예요?"
"이렇게 꾸준히 활동하다보면 신원이 노출되기 마련이니까 그때는 그냥 인간의 편을 드는 유배자인 척하면 되는 거야."
학살 자체는 문제가 없다.
이미 43서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비규환이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알아맞혀 보라는 과제를 희우가 풀어내었다.
"난쟁이 왕국의 수도가 사라지면서 균형이 크게 무너졌고……. 그게 인간 측의 유배자라고 생각한 다종족 연합이 전쟁을 일으켰다?"
"오, 디테일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정확해."
"어디가 다를까요?"
"꼭 인간 측 유배자의 짓이라곤 생각 안 할 거야. 그렇게까지 원수를 진 건 아니니까. 다만, 난쟁이 왕국이 크게 약화되었으니 한입 베어 물겠다는 거지."
"잔혹한 이야기네요."
"우리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대륙판 세계대전이다.
아마 각국의 상층부는 고레벨 유배자와 연이 닿아 있을 테니 상황을 더 제대로 파악하고 있겠지.
그들의 생각에는 이건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돌발행동이지 지속되는 파괴활동은 아닐 것이다.
일그림 파티가 범인을 추격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제는 알려질 만큼 알려졌겠지.
그럼 그 다음은 결국 이권이다.
새롭게 개편될 미래에서 더 큰 이익을 취하고 싶다면 자신과 우호관계를 맺고 있는 종족, 혹은 국가가 번성할 필요가 있다.
난쟁이 왕국을 찢어먹는 것은 그런 문제이리라.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유배자나 그에 가까운 관점을 가진 일부 사람들 이야기고. 43서버 대륙 주민들이 기준이라면 패닉 워(Panic War)가 맞지."
이런 파괴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으며, 장담하더라도 불안을 누그러뜨릴 수는 없다.
사라진 것이 난쟁이 왕국의 수도니까.
곧바로 방위전쟁이 벌어진다. 애초부터 키메라 양산 같은 연구는 전쟁준비다.
평화 목적의 키메라? 그런 게 어디 있나.
어차피 일어날 전쟁을 좀 더 극적으로 격렬하게 터뜨렸을 뿐이다.
"유배자들만 신나지. 이참에 적대 진영을 아무리 약탈해도 문제가 안 생기니까."
"그래서 인간의 편인 척 하는 거군요."
마지막 요정 하나를 추격해 제거하고 돌아온 제니가 그 이야기를 들었다.
피가 잔뜩 묻은 잎사귀 요정이 한숨을 내쉰다.
"거국적으로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하고 계시네요."
"같은 요정 죽이는 건데 좀 괜찮아?"
"네. 생각해 보면 원래 이런 게 유배자였지 싶네요. 튜토리얼에서는 늘 이렇게 살았는데."
슬슬 계단을 찾아 돌아가려고 했다.
한 무리의 검은 집단들이 말을 타고 달려오고 있었다.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까 했으나 저쪽이 너무 빨랐다.
"멈춰라! 유배자! 어느 쪽이냐!"
검은 후드와 까마귀 문양.
43서버의 나이트 크로우로군.
전쟁이 벌어질 경우 특전부대 같은 역할로 활약하는 단체니 전장에 모습이 보인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다.
나는 나이트 크로우의 문양을 꺼내 보여줬다.
"이곳의 적을 물리치고 복귀하려는 참이오."
"아, 아군인가? 그거 참 고맙군."
전쟁으로 지친 얼굴에 약간의 화색이 돈다. 유배자와의 싸움은 언제나 위험하니까 피하고 싶으리라.
안 그래도 지금은 온 사방에서 유배자들이 미쳐 날뛰고 있으며 개중에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도 흔하니까.
"그럼 가 보겠소."
"인류를 위한 그대들의 헌신에 경의를 표하지!"
나는 그대로 계단을 내려가려고 했다. 희우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멈춰 섰다.
나도 따라서 멈췄다.
"어?"
"왜 그래?"
"용사의 자질이 뭐였죠?"
"어린 나이, 비상식적인 전투 재능."
"출현 조건은요?"
"인류의 위기."
"나이트 크로우는 어린 애들을 전투원으로 쓰나요?"
"아니지."
희우가 대열의 뒤편을 가리켰다.
분대의 장으로 보이는 소년.
그래 정말로 소년.
겉모습만 보면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이런, 43서버의 용사를 찾아내려고 했던 건 아닌데."
하지만 용사의 스승 같은 칭호를 챙기는 건 어느 서버의 용사여도 상관이 없다. 딱 좋구만.
"모르고 지나갈 뻔했군! 잘했다!"
"더 칭찬해 줘요!"
"엄청 잘했다!"
"우히히히."
원래 이게 그렇다. 물욕 센서란 게 열심히 찾을 땐 안 보이고 다른 거 하면 갑자기 덜렁 튀어나오는 시스템이거든.